주재우경희대 교수jwc@khu.ac.kr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이며 국내 최초의 미중관계사 책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와 베스트셀러 『팩트로 읽는 미중의
한반도전략』의 저자가 실타래와 같은 동북아 국제관계를
팩트로 풀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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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국가안보실장의 외교장관 등판과 고립외교 탈피 [주재우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을 하루 앞둔 20일 우리 외교사에 ‘신의 한수’를 놓았다. 외교부 장관의 교체였다. 그것도 국가안보실장을 역임(2017~2020)한 정의용 실장을 외교부 장관에 기용한 것이다. 이는 청와대 소속의 국가안보실이 2013년에 설립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배경과 이유는 무엇일까. 남은 임기 동안 그가 그리는 외교 구상에 이런 인사가 과연 꼭 필요한 것이었나. 우리나라에 전례 없는 일이기에 다른 나라의 사례를 빌려서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자. 우리나라의 국가안보실은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와 같은 격의 기구이다.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그 업무의 장은 대통령의 직무실이다. 우리나라는 청와대이고 미국은 백악관이 되겠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국가안보실장과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이 각각 그 수장직을 맡는다. 이들의 주된 임무는 외교국방안보와 관련 부처의 수장 간에 의견과 정책 조율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다. 미국의 경우 그래서 국가안보보좌관은 거의 매일 대여섯 번 대통령을 알현한다. 따라서 미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신뢰는 거의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이번 같은 외교장관의 인사는 미국에서도 드물다. 그 첫 번째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의 등용이었다. 그는 1969년부터 1975년까지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했다. 그리고 1973년에서 1977년까지 국무장관을 지냈다. 두 번째 사례는 콜린 파월(Colin Powell)이었다. 그 역시 국가안보보좌관(1987~1989)을 역임하고 국무장관(2001~2005)에 임명되었다. 마지막 인사는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였다. 국가안보보좌관(2001~2005)을 먼저 역임한 후 국무장관(2005~2009) 자리에 재기용되었다. 미 대통령이 이 같은 인사를 단행한 것은 미국 국무부 230년의 역사와 국가안전보장회의 67년사에서 단지 세 번밖에 없었다. 물론 국가안전보장회의가 1953년에 설립되어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졌기에 비교가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역대 국무장관이 70명 있었고 국가안보보좌관 30명(보좌관 서리 2명 포함)이 배출된 사실에서 정량평가를 해도 이는 매우 드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의 재기용 시기도 흥미롭다. 키신저는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약 2년간 겸직했다. 라이스는 대통령이 재임하면서 재등용했다. 파월의 경우 냉전시기의 마지막 국가안보보좌관을 아버지 부시(George H. Bush) 대통령 시기에 지냈고 그의 아들(George W. Bush)이 4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국무장관 자리에 올랐다. 이들의 중용은 어떠한 연유에서, 어떠한 의미에서 이뤄졌을까. 우선 직무상의 연속성이 가장 큰 이유다. 키신저와 라이스에 적용되는 것으로 이 두 사례의 의미는 상당하다. 당시 미국의 외교가 전환점이라고 하는 두 가지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키신저는 베트남전쟁 종결과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 등을 책임지고 있었다. 라이스는 북핵위기와 9·11 테러사태의 후속전쟁 등을 총괄하는 책임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둘째 이유는 대통령의 이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다. 국가안보보좌관직은 대통령과 행정부의 외교안보국방정책에 대한 부처 장관들의 의견과 정책제안을 대통령을 대신하여 조율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다. 국무장관의 경우 대통령의 외교적 의중과 사상을 부처에 전하고 외교에서 이행되게끔 관리·감독한다. 키신저와 라이스 모두 재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에 국무장관에 올랐다. 대통령 첫 임기의 엄중한 책무를 완성시키는 데 이들을 최적의 적임자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라이스의 경우 회고록에서도 기술했듯이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국가안보보좌관 시절 때처럼 매일, 언제든지 연락하고 방문해도 된다면서 무한한 신뢰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성과가 능력을 대변한다. 키신저는 1975년 베트남전쟁의 종결과 미·중관계 정상화의 토대를 이뤘다. 특히 미·중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그는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겸 외교부 부장의 생전에 기본적인 원칙과 프레임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정권교체로 1977년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중국과 합의한 사항은 2년 뒤 미중수교의 결실에 본바탕이 되었다. 라이스는 9·11 테러사태로 빚어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하나를 해결했다.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2003년에 생포하고 2006년에 처형함으로써 이라크 전쟁의 종결을 볼 수 있었다. 비록 반쪽의 성공이었지만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두 개의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결실이었다. 그러면서 다음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정책 출범을 가능케 했다. 즉, 미국이 다시 아시아에 신경을 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것이다. 또한 2차 북핵위기 사태에서 6자회담을 출범시켰고 임기 동안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합의도 도출해냈다. 공교롭게 그의 임기와 함께 6자회담도 종결되었다. 정의용 신임 외교부 장관 인사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일까. 대다수의 국민이 이에 동의할까. 현실은 이런 전례 없는 인사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회전문’인사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은 상기한 미국의 사례에 견주어 이번 외교부 장관의 인사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설득력있게 잘 설명해야 한다. 지난 18일 열린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발언에서 이번 인사에 대한 대통령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완성을 위해 모든 외교적 노력에 집중하겠다고 천명했다. 즉, 대북정책의 연속성과 연관해서 국가안보실장의 외교장관 임명을 설명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를 위해 그가 소개한 방법론은 벌써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 비핵화 프로세스를 위해 한미 연합군사훈련 등 한미동맹의 의제를 북한과 협의하겠다는 발언 때문이다. 적국과 우리의 국방과 안보문제를 협의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대통령의 의지를 미국 측에 오해 없이 전해야 하는 중책이 정의용 외교부 장관 내정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물론 한미군사훈련과 같은 의제는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공식 논의될 것이다. 그러나 외교 수장으로서 북한관련 사안의 외교적 해결을 위해 직접 외교협상을 벌여야 하는 것이 외교장관의 책무 중 하나임을 감안하면 신임 외교장관의 첫 과제는 이미 예사롭지 않다. 정의용 내정자는 3년여 동안 국가안보실장으로서 대통령을 보필하면서 서로간의 신뢰를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의 외교성과를 고려하면 문 대통령의 내정자에 대한 신뢰의 원천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교와 국방 문제 등 어느 하나 결실을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북관계에서 우리의 국익과 의지대로 미국과 어떠한 결실을 내지 못했다. 일본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는 사드문제로 인한 제재를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작년 9월에 출판된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전장: 자유세계 방어를 위한 전쟁>에서는 그가 정의용 전 실장에게 사드 추가 배치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사례까지 소개되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국민이 우려하는 우리나라의 외교적 고립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아니, 미국의 정권교체로 우리 외교가 심기일전하여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호기가 도래했다. 북한의 8차 당대회 결정문과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사를 근거로 새로운 전략을 짜면 된다. 북한의 입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변한 것이 없다. 바이든은 동맹의 가치를 최우선시하는 기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북·미 양국의 요구를 절충할 수 있는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이에 성공하면 가령 중국과의 사드문제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략사고에서 외교를 펼쳐야 대통령이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성공을 위한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2021-01-22 00: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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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금지법 강행 ..정부 '오발탄' 관람記 [주재우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국회는 작년 12월 14일에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의 처리를 강행했다. 22일, 국무회의는 이를 심의·의결했다. 이에 국제사회가 들끓고 있다. 미 의회는 연초에 이와 관련하여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우리 정부와 국회는 이런 결과를 과연 예측하지 못했을까.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우리 정부와 국회의 대응 및 발언을 취합해 보면 문제점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사고하지 못한 결과 설득력이 없다. 다른 하나는 법안 발의 동기가 모순덩어리라는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더 다양한 경로를 통해 특히 미국의 관련 인사 및 기관을 다층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설득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16일 강경화 외교장관의 미 CNN 방송 인터뷰가 그 신호탄이었다. 게다가 여당도 국제사회 비판에 반박하고 나섰다. 강 장관의 인터뷰 발언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안일하게 접근하고 있음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영어를 잘하고 미국을 잘 안다고 정평이 난 강 장관이 인터뷰서 전달한 메시지는 적절하지 못한 비유로 설득력이 없었다. 강 장관은 대북전단금지법의 필요성을 2014년의 북한 고사포 발포 사건에 빗대어 설명했다. 이 사실을 모른 듯 CNN 앵커는 놀라면서 “풍선에 고사포를 발사한 것은 균형적 대응은 아니다(It really is kind of way out of proportion)”라는 반응을 보였다. 리액션에 불과했다. 그런데 외교부는 이 인터뷰 영상에서 이를 “대북 전단 살포나 북측 발포 등의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라고 번역해 올렸다. 외교부는 강 장관의 인터뷰를 유의미 있게 포장하려했으나 실패했다. CNN 앵커의 발언을 오역했고 이를 실수라고 인정했다. 이런 정부의 왜곡 행위는 외교부뿐이 아니었다. 통일부 또한 작년 12월 15일에 낸 설명 자료에서 외국 인사의 입장을 오용했다. 자료는 작년 6월 칼 거시만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담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거시만은 “대북전단의 정보 전달 효과는 크지 않다”며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정보 유입 방법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자 거시만 회장은 12월 23일 같은 방송에서 통일부의 왜곡 사실을 밝혔다. 그는 6월 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아주 효과적인 정보 유입 방법이라고는 보지 않기 때문에 관련 단체를 지원하지 않는 것”이라며 “대북전단이 위협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그의 말뜻은 그의 단체가 미국의 <북한인권법>으로 이런 행위에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그의 단체가 불참하기로 한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려 한 것이었다. 대신 NED는 한국의 다른 대북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강 장관의 발언으로 미국이 놀란 이유는 그가 잘못 비유한 미국의 사례 때문이다. 그는 형사법으로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처벌해야하는 정당성을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의 자유 보장 행정명령’이 ‘기금으로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식의 예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0월 ‘대학 교정에서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행정 명령(Executive Order on Improving Free Inquiry, Transparency, and Accountability at Colleges and Universities)’에 서명했다. 그런데 그 내용과 취지를 알았으면 이런 비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행정명령의 내용은“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대학에 연방 정부의 연구 기금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미국 대학에서 어떤 이가 강연이든 행사에 학교 측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인사를 초청하는 데 저지당하면 이의 부당성을 유관 기관에 제기할 수 있다. 이 경우 부당한 조치로 판단되면 연방 및 지방 정부가 이 대학에 대한 기금과 재정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명령의 취지가 가히 비민주주적이고 미국의 헌법에 위배되어 벌써 그 실효성이 의심되고 있다. 왜냐면 미국의 가치를 수호하고 양산하는 교정에 이에 반하는 의식을 가진 인사의 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다. 가령, 비민주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의식을 가진 인사의 연설을 누가 정당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미국에는 전교생이 흑인인 대학이 중남부지역에 대거 집중되어 있다. 특히 테네시 주에 6개 대학이 있다. 이들 학교에서 만약 연고지의 이유로 이 주에서 탄생한 백인우월주의집단 ‘쿠 클럭스 클랜(KKK)’의 인사를 연사로 초청한다고 하자. 학교 당국은 당연히 거절할 것이다. 이를 이유로 정부가 지원을 금하는 것은 비민주적이고 미국의 헌법에도 위배된다. 유태인 학교에 나치 추종자의 활동도 금지하지 말라는 것이 트럼프가 서명한 행동명령의 문제다. 그런데 우리나라 외교장관은 ‘대북전단금지법’이 미국의 보수주의라며 이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부연했다. 미국인들에게 그의 비유가 설득력이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정부가 추진한 ‘대북전단금지법’이 지탄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발의 동기가 모순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이의 명확한 설명을 국제사회는 요구하고 나섰다. 현 정부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들의 불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년 상반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작년 5월 31일 우리의 탈북단체가 자행한 전단 살포에 대해 김여정은 6월 4일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그의 협박성 담화에 통일부는 예고도 없는 브리핑을 가지면서 대북전단과 관련한 법률 정비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가 열거한 보복조치 중 6월 16일에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정부는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 북한 인권 관련 단체와 활동에 대한 탄압을 즉각 개시했다. 7월 14일에는 탈북단체 2곳의 설립허가 취소를 염두에 둔 조치를 취했다. 하루 안에 취소 처분에 대한 의견을 내라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그리고 12월 3일 국회는 북한 인권 관련 단체의 예산을 줄줄이 삭감했다. 우리의 북한인권법이 내부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의 반증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북한 인권 관련 UN 결의안에서 역대 정부가 ‘포기표(abstain)’를 던진 입장을 더 이상 절충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 되었다. 국제사회가 이해를 못하는 또 하나는 정부가 ‘표현의 자유’ 제한을 우리 국민의 안전문제로 연계한 데 있다. 2014년 대북 전단 살포 때 북한의 고사포 도발이 이유였다. 따라서 남북접경지역에 주거하는 우리 국민 112만 명의 목숨을 담보할 수 없다는 논리다. 문제는 국제사회가 이미 정부가 우리 국민 한 사람의 목숨도 보호해주지 못한 사실을 목도한 데 있다. 작년 9월 21일 소연평도 해역에서 우리 공무원의 피격 사망 사건이었다. 그런데 112만명의 목숨과 안전을 보호하겠다니 어불성설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미 의회 청문회 개최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반박 발언이다. 이를 내정 간섭으로 규정했다. 국민에게 이들의 언행은 가히 모순적이다. 중국의 사드보복조치야말로 우리 주권에 대한 무시와 내정간섭의 표본인데 이에 대해선 함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당의 주장은 세계화시대에 지극히 역발상적이다. 세계화시대에도 주권은 존중되고 보호되어야한다. 그러나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두고 주권은 타협의 대상이다. 특히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권익이다. 이의 보호와 존중에는 국경이 없다. 이런 이유로 586세대는 군사독재시기에 미국의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the Amnesty International)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은혜를 입었으면 결초보은(結草報恩)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배은망덕은 자제해야 한다. 이것이 세계화시대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미덕이다. 지난 2일 발표된 한 설문조사에 현 정부의 가장 시급한 외교문제로 국민의 50.2%가 한미동맹강화를 꼽았다. 다른 현안에 비해 압도적인 반응이었다. 한미동맹은 가치에 기반한다. 우리는 인류보편가치와 민주주의가치를 모두 수용한다. 북한 인권도 예외적일 수 없다. 우리의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 및 부속도서로 정의한다. 따라서 이 모든 지역에 거주하는 이는 곧 우리 국민이라는 의미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과 성의를 다하는 것이 586세대 정치인들의 최소한의 예의다. 2021-01-04 03: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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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방한의 교훈: 냉철한 대중(對中) 외교가 필요하다 [주재우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지난달 말 2박 3일의 여정으로 중국 외교부장 왕이가 서울을 다녀갔다. 그러면서 우리 외교가 또 한번 홍역을 치렀다. 그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만남에 25분 늦게 도착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본인의 사과도 없었고 우리 외교 당국도 사과를 받아낼 생각도 없었다. 더 실망한 것은 우리 외교 당국이 이번에도 중국 측과는 전혀 다른 회담결과를 발표한 사실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우리 정부가 발표한 정상회담과 장관회담의 결과 발표는 상대국의 발표와 전혀 달랐다. 외교관계를 연구하는 필자는 애로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과거에는 양측의 발표 전문이 대칭적이었다. 외교 학도들이 점검해야 할 것은 번역 과정에서 특정 단어의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만 확인했으면 됐었다. 그러나 이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외교정책을 공부해야 하는 노력과 시간이 두 배 이상 늘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가 왜 이런 행태를 보이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정부가 도대체 무엇을 숨기려 하고, 무엇 때문에 정정당당하지 못한지를 말이다. 이 정부의 출범 모토 중 하나가 ‘정정당당’ 아니었는가. 이 정부가 왜 유독 저자세로 중국을 대하는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의 2017년 12월 첫 중국 방문에서부터 우리 국민의 자존심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시진핑 주석은 문 대통령의 방문을 알면서도 다른 일정으로 베이징을 떠났고, 대통령은 이틀 동안 아무 일정 없이 혼밥을 해야만 했다. 이런 식의 외교 결례는 초유의 일이었음에도 대통령은 중국의 한 대학 연설에서 중국을 큰 산, 우리를 작은 산으로 비유했다. 우리나라 수행 기자는 대통령의 면전에서 중국의 사설경비업체 직원에게 폭행까지 당했다. 이 사건은 미제(未濟)사건으로 남아 있다. 대통령은 사드 문제의 해결을 호언장담하면서 시진핑의 답방에 목을 매고 있다. 정부와 여당도 모두 동참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이런 나라의 모습을 보고 실망할 수밖에 없다. 시 주석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수차례에 걸쳐 대통령을 면전에 두고 사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직접 촉구한 데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 가장 최근의 것이 작년 6월 오사카 G-20 정상회담 자리에서였다. 물론 시진핑의 이런 발언은 우리 정부 당국의 어떠한 문건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언론기사에도 보이지 않는다. 중국 언론에서는 보도되었음에도 말이다. 아직까지 사드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하면서 시진핑의 답방을 기다리는 마음은 무엇일까. 우리의 수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6월부터 한·중 양국은 필수적인 경제활동과 기업인의 왕래를 보장하는 이른바 ‘기업인 패스트 트랙’을 시행했다. 이에 우리 정부와 언론은 중국의 호의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불과 5개월 뒤인 11월 11일 중국은 일방적으로 이를 중단시켰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전면적인 중단’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결과는 완전한 중단이다. 얼마 뒤 우리 국민의 중국 입국 조건을 강화하는 조치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12월 1일부터 중국 입국을 위해서는 사전 코로나 검사결과뿐 아니라 유전자증폭(PCR) 검사와 혈청 항체 검사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이에 우리 정부 당국은 항의는커녕 해명조차 요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동일한 조건을 중국 입국자에게 적용하지도 못한다. 우리 국민을 분노케 한 희대의 사건이 또 있다. 지난 10월 25일 중국인민지원군의 6·25전쟁 참전 70주년 행사에서 시진핑이 중국의 참전을 ‘정의로운 전쟁’으로 묘사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2008년 방북과 2010년 6·25전쟁 60주년 행사에서 시 주석은 동일한 발언을 했지만 이번에만 부각되었다. 이 정부에 와서 주목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 어떠한 중국 지도자도 중국의 참전을 정의로운 전쟁으로 칭송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시 주석이 우리 역사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2017년 4월 그가 미국에서 가진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찬 자리에서 한반도(의 역사)가 중국의 일부라고 발언한 이유를 가늠할 수 있겠다. 시진핑의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왕이 외교부장의 방한 동안에도 우리 국민의 자존심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특히 한·중 외교장관회담 종결 직후 중국외교부가 홈페이지에 회담 결과를 ‘10가지 공동인식’의 제목으로 먼저 올린 사건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외교부의 보도 자료에는 ‘10가지 공동인식’ 중 두세 개만 선별적으로 포함되었다. 이에 대한 외교부의 변명은 더 궁색했다. "일부러 뺀 게 아니라, 각자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달라 생긴 차이"라고 했다.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를 수 없다. 중국의 자료에 의하면 양국이 ‘상정(商定, 상의하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외교부의 해명이 안일하다고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은 10가지의 공동인식 내용이 중국의 요구에 의해 이뤄진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가령, 세 번째 결정사항이 한·중 외교안보전략대화(2+2)를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대화의 수준이 장관급인지 차관급인지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한·중 양국 간에는 이미 외교안보대화 기제가 존재한다.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 개최된 바 있다. 중단된 것이 재개될 뿐이다. 그런데 중국 측의 문헌에 이를 시작(启動)하자고 발표한 것은 상당한, 고도의 전략적 의미를 내포한다. 재개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측의 의견이 수용되었다면 재개가 되어야 한다. 중국이 한·미관계를 견제하겠다는 의사가 담긴 대목이다. 이 세 번째 사항에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이 언급됐다. 양국 간 해양실무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단순히 불법조업과 어업협정을 논의하자는 목적이 아니다. 이미 이를 협의하는 기제가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우리와 해양 분야에서 실무회담을 하자는 의도와 목적을 간파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외교 당국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우리 국민을 더 비참하게 만든 것은 왕이가 일본 방문에서 일본 외무상에게 제안한 협력사안 때문이다. 그의 제안은 우리 측에 제안한 것과 차원이 달랐다. 그는 중·일 양국이 경제무역투자, 서비스무역, 에너지 절감 및 환경보호, 전자상거래, 의료서비스, 재난방지, 디지털경제, 녹색발전, 지방 간의 교류, 기후변화 등의 영역에서 서로 이익을 보게 협력을 확대하자고 했다. 이에 일본 외무상 모테기 도시미쓰는 고위급 왕래와 소통을 유지하면서 양국 간 의회 교류의 재개, 경제무역외교 당국의 협상과 안보대화의 재개, 양국의 관광업, 의료서비스, 에너지 절감 및 환경보호, 농산품무역, 기후변화 등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 등에 동의했다. 우리와는 한·중 경제무역과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에 집중한 것에 비하면, 일본과는 실로 글로벌한 이슈들이 논의됐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의 방문 목적이 미·중 갈등과 관련 있다는 시각을 제시한 기자의 질문에 세계에는 미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일축한 발언이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나라니까 잘 알아서 행동하라는 함의를 담은 경고성 발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그의 발언은 매우 모순적이다. 독립자주적인 나라로서 우리가 주권이익을 위해 취한 결정에는 중국이 제재를 취하는 행위에 반문하고 싶게끔 만드는 대목이다. 그야말로 병 주고 약주는 언행이다. 그런데 더 답답한 것은 왕이가 문 대통령에게 “(시진핑의)국빈방문 초청에 감사하고 여건이 허락될 때 방문하고자 한다”고 한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통령은 그가 언급한 ‘여건’을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로 해석한 것이다. 그야말로 동문서답한 격이다. 역지사지의 지혜가 필요한 대목이다. 시진핑의 입장에서는 그의 발이 한국 땅에 닿는 순간 사드 문제의 해결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는 ‘손에 코 안 데고 코 푼 격’이다. 중국에 주는 것 없이 문제 해결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보다 더한 금상첨화의 결과는 없다. 이런 결과를 시진핑은 중국공산당에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의 국익을 최우선시해야 한다. 현실은 중국이 한반도 분단 이후 남북한 모두를 제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반도 전체를 통제하려는 중국의 야욕에 냉철하게 대응해야만 하는 시기임이 분명하다. 2020-12-10 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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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기울어진 韓中 외교 운동장 [주재우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25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한국을 공식 방문한다. 이번 그의 방한은 지난해 12월 4∼5일 이후 약 1년 만으로 우리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그의 방한은 4년 8개월 만에 이뤄졌다. 바로 옆에 있는 이웃나라인 한국을 자주 방문하지 않는 이유 때문일지 몰라도 왕이 외교부장과 같은 중국 고위급 인사가 올 때마다 외교부와 언론 등 우리 측 대응은 지나치다 할 정도로 요란하다. 왜 그런지 몇가지 이유를 분석해본다. 우선 이들의 방한은 매우 간헐적으로 이뤄진다. 우리 고위급 인사들의 빈도수에 비해 중국 측의 방한 횟수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중국 정상들의 방한은 우리 대통령 임기 내 한번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 정상들 중 복수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이는 후진타오뿐이었다. 그의 두 차례 방한 이유는 임기 중 두명의 한국 대통령(노무현과 이명박)이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G-20 정상회의와 같은 국제행사가 국내에서 개최되었기에 재방문이 불가피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1992년 이후 총 11번 중국을 방문했다. 반면 중국 국가주석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은 총 5번에 불과하다. 김영삼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각 한번씩 방문한 것 외에 모두 중국을 복수 방문했다. 물론 여기에는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2014년의 APEC 정상회의와 2016년의 항저우 G-20 정상회의 등에 참석하기 위함도 포함된다. 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은 각각 두번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에 국빈방문을 했고, 2015년에는 중국의 국가행사에 참석했다. 둘째,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중국 최고지도자들뿐 아니라 중국 정부 고위인사들의 방문도 드물다. 이런 이유로 우리 정부와 언론의 관심도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가령, 방한한 중국 총리는 세명에 불과하다. 리펑(李鵬) 전 총리가 1994년, 주룽지(朱鎔基)는 2000년, 원자바오(溫家寶)가 2007년과 2010년에 두 차례였다. 중국의 국방장관은 단 세번(2000, 2006, 2015년)밖에 방문하지 않았다. 국방장관의 상호방문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와 군사적으로 대치중인 북한에 대한 의식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장이 국가 정상의 수행단원으로 방문한 것을 제외하고 단독 방문한 적도 많지 않았다. 첸지천(錢其琛) 전 외교부장은 1994년, 탕자쉔(唐家璇)은 1999년과 2002년, 리자오싱(李肇星)은 2003년, 양제츠(楊潔篪)는 2008년, 2011년과 2012년에 방한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2014년과 2019년에 방문했다. 지면 관계 상 모두 나열할 수 없지만 국방장관을 제외하고 우리 장관의 방중은 중국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셋째, 아마도 중국 고위급 인사의 방문으로 그간 우리를 섭섭하게 했던 양국간 이슈가 해결될 것이라는 과한 기대감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늘 그랬듯이 대부분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해왔다. 이번 왕이 방문에 대해서도 우리는 또 다른 기대를 하고 있다. 작년에도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우리는 왕이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답방에 관한 메시지를 가져올 것을 기대한다. 중국은 이번에도 우리 한국과 여러가지 산적한 문제의 해결에는 큰 관심이 없을 듯하다. 왕이 외교부장의 방한 목적은 미국의 신정부 출범과 함께 제기될 한·미 양국 현안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의 관심사는 오로지 시진핑의 답방 여부에 있다. 참으로 씁쓸한 광경이다. 우리가 중국을 대하는 외교가 특정 안건, 특히 지도자의 관심사에 매몰되다보니 우리의 국익과 권익은 항상 뒷전이었다. 이 같은 자세로 일관하는 결과는 하나다. 우리나라가 건국 이래 견지해온 가치와 이념을 타협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외교의 목표와 원칙이 있다한들 지켜질 리 만무하다. 우리의 국익과 권익이 자연스럽게 희생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번 정부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 정부와 지도자들의 전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탈북자 송환문제와 이들의 중국 내 인권문제에 입도 열지 못했다.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가 왜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가진 한·중정상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문에 이 문제를 포함시키지도 못했다. 대신 우리는 2006년에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해줬다. 2010년의 천안함 피폭사건과 연평도폭격사건에서도 북한의 명백한 도발과 우리 국민의 희생에 대한 중국의 대북 지탄을 확보하지 못했다. 북한의 핵위협이 명확한 가운데 우리의 국방과 안보를 위해 배치한 방어무기에 대한 중국의 이해는 추호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 조치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한반도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이 남북한 모두에게 동시에 제재를 가하는 양상을 넋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중국은 우리의 영해와 영공마저도 침범하고 있다. 2013년 이후 지속된 중국의 침범행위는 2019년에는 급기야 독도로까지 확산되었다. 중국에서 발행되는 모든 지도에는 우리의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다. 다른 나라나 외국 기관의 동일한 행각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비판하고 수정을 요구한다. 중국의 불법조업은 우리의 서해바다에서만 이뤄진다는 이야기는 옛말이다. 동해로까지 확대되면서 우리의 해양자원주권이 극심한 침략을 받고 있다. 이 모든 것에 우리는 꿀 먹은 벙어리다. 중국인권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고개를 돌린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홍콩보안법과 관련하여 미국이 중국 내의 미국인과 미국기업을 보호하지 못하면 국가로서 무책임한 행위라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사전에 중국을 향해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면서 국민과 기업을 안심시키려 한다. 우리 정부도 이런 국가적 의무감과 사명감을 가져야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행태를 보면 동 법안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중국 교민과 기업이 동 법안에 의해 구속되고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의문스럽다. 홍콩보안법을 묵인하는 정부의 처사는 우리 중국 교민과 기업의 권리와 권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가치와 이념을 희생하면서 이권과 이득만을 추구하는 잘못된 외교의 교훈을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미국의 가치와 이념을 희생하면서 국가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했다. 그러면서 그의 개인적 영욕을 동시에 취하려 했다. 즉, 미국의 가치와 이념을 이익과 타협한 것이다. 그는 2019년 천안문 민주화사태 30주년, 홍콩보안법의 채택, 신장위구르족의 강제수용과 티베트문제에 대해 함구했다. 아니 논평조차 내기를 거절했다. 트럼프의 이런 모습은 미국 국내 문제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60년대 이후 인종문제의 최대 위기, 남북전쟁 이후 최대 분열과 베트남전쟁 이후 글로벌 리더십이 제일 위협받는 국면을 자초했다. 그는 중국과 미국의 가치와 이념을 타협하면서 무역협정을 타결하고 이를 재선의 발판으로 이용하려 했으나 결과는 재선의 실패였다. 가치와 이념은 리더십의 토대이고 기본이다. 이를 희생하면서 취한 이익은 리더십 수호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외교적 교훈을 거울삼아 우리가 대 중국 외교 자세를 가다듬을 시기가 도래했다. 2020-11-24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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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당선이후, 김정은의 운명은 [주재우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7일(현지시간) 승리를 공식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바이든 후보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 한·미 관계의 미래에 대해 강한 기대감을 표명했다. 이번 대선이 사실상 바이든 승리로 끝났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승복하지 않고 법적 소송에 나서면서 바이든 후보의 당선 확정 공식발표는 지연되고 있다. 전례에 없는 1억명 이상의 미국 유권자들이 코로나19사태로 사전투표와 부재자투표(우편투표)를 하면서 그의 당선 확정의 공식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 그의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청와대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12시간이나 하면서 새로이 선출된 미국 대통령의 한반도정책 대비책 마련에 분주했다. 한미동맹과 관련하여 바이든 정부의 초기 정책 기조는 지난 10월에 발표된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이 당면한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진행될 공산이 크다. 문제는 바이든의 당선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이다. 바이든은 역대 미 대통령 그 어느 누구보다도 외교경험이 풍부하다. 선임 대통령에 비해 그는 외교에 있어서만큼은 준비된 대통령이다. 냉전 이후 역대 미 대통령 중 해리 트루먼,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조지 H. 부시 등만이 외교적 경험을 가지고 취임했다. 이들은 모두 부통령 출신 대통령이었다. 이들을 제외한 대통령들은 모두 주지사나 상원의원(버락 오바마) 출신이었다. 이 중 로널드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재직 동안 1975년에 대만의 장제스 총통 장례식에 미국 조문단의 대표로 참가한 것이 유일하게 외교분야 경험이었다. 이들의 외교분야 경험 유무에 따라 외교에 대한 접근방식도 독특한 유형을 보였다. 외교경험이 있었던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 때부터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선 유세 때 발표한 구상 전략을 관철하기 위해 공세적으로 외교정책을 개진한다. 즉, 이들은 외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교경험이 없는 대통령은 이와 반대적인 경향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연임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초임과 재임 시기에 그들의 외교 태도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첫 임기 때 이들은 외교에 대부분 소극적이다. 특히 미국이 적대적으로 인식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말이다. 두 번째 임기에 오면 외교에 편안함을 느끼면서 이들의 외교 태도가 전환된다. 자신감을 가지고 적대적으로 여겼던 국가와의 관계 개선이든 모종의 합의를 달성하면서 어느 정도의 외교적 성과를 올렸다. 이에 반해 바이든은 상원의원으로 미국의 외교정책 비준 작업에 36년 동안 참여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가 2000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인준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미 상원대표단의 일원으로 1979년 4월에 덩샤오핑을 생전에 만난 경험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부통령으로서도 미국의 외교전선에서 8년 동안 활동했다. 따라서 그가 대선 유세 때 밝힌 외교정책의 구상은 실로 유의미하다. 바이든의 외교구상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알려졌다. 하나는 2019년 7월 뉴욕시립대학에서의 연설이었다. 다른 하나는 2020년 3월 <포린어페어스>에 게재된 “왜 미국이 리드를 해야 하나”라는 기고문을 통해서였다. 이들에서 드러난 바이든의 외교 신념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미국의 이념과 가치다. 즉, 자유와 인권의 가치, 그리고 민주주의 이념을 얼마큼 존중하고 준수하는지에 따라 그 나라와 미국과의 관계가 결정된다는 의미다. 이는 가히 중국과 북한에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바이든에게 외교에서 미국의 가치와 이념에 타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이든의 외교는 트럼프와는 상반되게 추진될 것이다. 가령, 트럼프는 사욕(재선)과 국익(경제이익)을 위해 이들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과 밥 우드워드 기자의 <레이지(격노)> 책에서 나타났듯이 트럼프는 미국의 이념과 가치가 외교의 정무적 판단 근거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중국과의 무역합의서를 도출하기 위해 신장, 티베트와 홍콩 문제가 중국의 내정 문제임을 시진핑 주석에게 직접 시인했다. 그리고 미국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도 거절했다. 바이든은 미국의 가치와 이념을 수호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민주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최선의 전략으로 인식한다. 이를 위해 다자주의에 입각한 다자협력을 최적의 방법으로 확신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바이든의 다자주의가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즉 ‘뜻을 같이하는 나라(like-minded state)’와의 협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그렇지 않은 나라에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복선이 깔려 있다. 따라서 그의 다자주의는 배타적이고 차별적이기 때문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바이든이 김정은에게 더 이상 ‘귀인’은 아니다. 김정은의 ‘귀인’은 트럼프였다(본지 2019년 3월 21일자 “‘귀인’ 만난 김정은 위원장, 70년 숙원 풀까” 참조). 불행하게도 그 귀인은 4년 만에 사라졌다. 바이든은 김정은의 악몽이 될 것이다. 김정은이 북한의 인권 개선과 자유를 보장하지 않으면 제재 완화는 어불성설이다. 더 이상 비핵화 의사 표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김정은의 완전한 비핵화(CVID) 의지가 확고해도 북한 사회가 개방되고 개혁되지 않으면 미국의 제재 완화는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우리는 김정은과 만날 의향이 있다는 바이든과 그의 참모의 발언에 현혹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바이든 캠프 외교정책 고문인 브라이언 매키언 전 국방부 수석부차관은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계승 여부를 묻는 질문에 "바이든은 오바마가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도 만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바이든은 10월 22일 마지막 대선후보 TV토론에서 김정은과의 만남 조건을 묻는 질문에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해 그가 핵능력을 축소하는 데 동의하며 한반도가 핵무기 없는 구역(nuclear free zone)이 돼야 한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김정은과의 만날 의향과 그 조건을 밝힌 것에 불과했다. 바이든의 북한 비핵화 해법을 묻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그는 이미 북한이 미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 능력을 갖추는 데 기여한 정부의 핵심 인사라는 시선을 받고 있다. 북한이 네 차례 핵실험과 수많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으로 미국에 대한 위협의 완성도를 높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정치적 부담이 그의 대북 강경책을 부축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바이든은 8년 동안 부통령을 역임하면서 북핵문제의 본질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다. 북한의 얄팍한 눈속임의 꼼수는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행동 대 행동’과 같은 비핵화의 단계적 접근방식으로 바이든의 미국을 설득할 수 없다. 북한 인권문제를 명분으로 미국이 취한 제재는 지금까지 하나였다. 지난 4월에 발효한 이른바 ‘웜비어법’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자제해도 미국이 대북제재를 더 강화할 수 있는 유효한 명분이 인권에 있다. 따라서 북미 핵협상이 어떠한 타결을 보기 위해서는 김정은이 미국의 가치와 이념을 반드시 수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바이든의 미국은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 완화 요구에 동일한 조건으로 응수할 것이다. 대북제재 완화의 선결조건이 북한 인권문제의 개선임을 명확히 할 것이다. 이를 남북한이 수용하지 못하면 한반도에서의 ‘신냉전’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신냉전’이 한반도에서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전략적 선택은 하나다. 변화하는 상황에 우리의 대북전략도 적응해야한다. 우리가 존중하고 수호하는 자유 가치와 민주주의 이념이 투영된 대북전략만이 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2020-11-09 03: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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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이 콜한 終戰블루스 왜 北도 UN도 시큰둥했나 [주재우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해 정부는 종전선언의 구현을 다방면에서 촉구하고 나섰다. 대통령에서부터 당국자와 실무급 인사까지 종전선언의 외침은 연일 이어졌다. 우리의 평화 호소에 국제사회는 냉담했다. 마크 내퍼 미국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는 우리 대통령의 종전선언 호소에 ‘남북관계와 비핵화가 불가분한 관계’라고 일침을 놨다. 6·25의 비극과 한반도의 분단을 청산하고 영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한다는데 국제사회는 왜 냉담한가. 다른 전쟁은 어떤 형태로 종결되더라도 평화협정이 뒤따르는 것이 관례일 정도인데 한반도는 왜 유사한 결과를 보지 못하는 걸까. 강대국의 지정학적 전략이익의 첨예한 대치 때문이라는 설명은 이젠 진부할 뿐이다. 이런 반응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데서 비롯된다. 한국전쟁 이후 체결된 정전협정의 속성과 구조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평화의 아름다움만을 부각하는 이상주의적 감성팔이로 국제사회의 호응을 기대하긴 어렵다. 평화를 원치 않는 나라는 없다. 특히 냉전시대의 마지막 잔재인 한반도의 분단 해결에 단초를 제공하는 것에 어느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이상적으론 그렇단 말이다. 현실은 그러나 냉혹하다. 정부가 이를 인지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을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정착을 구현해줄 수 있는 평화협정의 디딤돌로 생각한다. 수순은 맞다. 그러나 선언의 주체가 문제다. 정전협정의 당사국이 우선시되는 게 현실이다. 이는 북한, 중국과 유엔(UN)이다. 우리의 자리는 종전선언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들과 국제사회의 동의가 전제된다는 의미다. 우리가 전쟁을 벌인 실질적인 당사국임에도 말이다. 따라서 정부가 생각하듯 남북한이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유엔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유엔이 대표성을 가지고 서명한 정전협정을 어떠한 식으로라도 대체하기 위해서는 유엔을 설득시켜야 한다. 유엔 총회가 되었든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가 되었든 이들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유엔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군사적 도발 행위를 묵인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는 특히 북한의 핵개발과 핵실험에 대해 유엔이 취한 제재결의안으로 입증된다. 세계 평화 수호를 지상최고의 가치와 목표로 하는 유엔이 북한에 호의적이지 않다. 유엔사를 유엔이 아직도 유지하는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하는 대목이다. 가장 큰 이유는 유엔사가 정전협정의 효력을 발휘하는 데 효과적인 기제로 작동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의 대체는 체결 측간의 상호합의를 전제한다. 협정의 5조는 협정의 정정과 내용 추가가 가능한 조건을 담고 있다. 상호합의로 정정이나 별도의 내용이 추가가 되지 않으면 기존의 협정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또한 평화정착(peace settlement)을 위한 적절한 합의문(an appropriate agreement)이 제공될 경우 대체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 문구 때문에 우리 정부가 평화협정에 조급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도발행위가 멈추지 않는 사실에 있다.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의 내용만 보더라도 북한과의 평화협정 논의가 왜 요원한지 알 수 있다. 북한 핵개발과 핵실험, 그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때문에 제재가 채택되었다. 이를 북한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즉, 유엔 산하의 비확산조약(NPT)의 의무와 책임을 철저히 준수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과 사찰에 적극 응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준 태도는 비핵화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길 원한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주장하는 것은 핵을 챙기기 위한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북한의 본모습이다. 그래서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평화협정을 내걸고 있다. 북한의 꼼수는 이를 유엔이 아닌 미국과 양자 차원에서 합의를 보려는 데서 드러난다. 이런 북한의 입장과 결의는 오래된 사실이다. 1974년부터 북한은 이 문제를 꾸준히 미국 측에 제기해왔다. 북한의 목적과 의도는 한 가지다. 정권의 안정 보장을 빌미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포기를 유인하면서 북·미수교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있다. 북한이 단계적 비핵화 전략을 선호하는 이유다. 즉, 이렇게 단계별로 진전이 있을 때마다 비핵화를 조금씩 해나가겠다는 속셈이다. 따라서 북한은 정권의 안전을 위해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이 필요한데 유엔과 굳이 협력할 당위성을 찾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미국에 대해 평화협정의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필요도 없다. 주한미군의 주둔 용인은 중국이나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구상에서 비롯하지도 않았다. 대미 타협용에 불과하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문제를 무마시키기 위한 전술이다. 여기에 우리 정부는 현혹되고 있다. 마치 북한이 평화협정의 최대 장애물인 주한미군의 주둔 문제를 해소해주는 것처럼 아량을 베풀어 주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 주둔문제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다자간 협상, 즉 정전체결 당사국 간에 이 문제를 논의할 때는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철수를 전제로 내세운다. 90년대의 4자회담과 2000년대의 6자회담에서 보여준 북한의 주장이 증거다. 그러나 북·미 양자 간에 평화협정을 거론할 때는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특히 핵개발이 시작된 1992년, 그리고 그 완성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2000년과 2018~2020년) 주한미군의 주둔이 정권 안전에 더 이상은 큰 위협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수교만 해주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 있어 주한미군문제가 더 이상의 걸림돌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런 북한의 인식은 2018년 3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때 ‘미국과 싸울 준비가 되었다’는 북측의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이상에서 우리는 북한이 더 이상 왜 우리와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을 구체적으로 모색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북한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평화협정문제를 1963년 이후에 공식 제기한 이후 그 협의 대상은 줄곧 우리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그 대상을 미국으로 교체한 1974년 이후 2001년까지 우리에게 더 이상 제안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이 우리에게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한 것은 2007년의 일이다. 2005년 6자회담의 동북아평화체제 실무그룹이 출범한 가운데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정전체제의 종결과 종전선언 등의 문구가 공동성명서에 포함됐다. 이후 이들은 곧바로 종적을 감춘 후 2018년의 판문점 선언에서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당시 우리 정부의 제안을 북한 측이 수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북한은 그럴 의도가 추호도 없다는 것이 후속 행동에서 역력히 드러났다. 북한의 계속된 군사적 도발과 ‘통미봉남’ 전술의 견지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한국전쟁은 국제적인 전쟁이었다. 그 성격과 본질에 맞게 전쟁과 관련된 사안을 처리하는 것이 맞다. 더 나아가 70년이 지난 오늘날의 상황 변화도 무시 못할 요소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우리나라의 변화된 위상에 따라 문제를 접근하려한다. 상대방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인지하지 못한다. 그 변화에 따라 상대방의 전략과 전술이 어떻게 변한지도 모른다. 결과는 메아리 없는 외침만 하는, 공허한 모습의 연출이다. 종전선언, 평화협정 모두 북한의 뉘우침과 진정성을 전제한다. 북한에 대한 눈먼 사랑으로 우리의 국가적 위상과 신뢰가 추락하는 불상사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우리의 안보와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자충수가 되기 때문이다. 2020-10-22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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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드(Quad)’ 참여가 국익이다. [주재우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올 하반기에 우리 외교는 큰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다음 달 초 미국과 중국의 외교 수뇌부 방한이 예정됐다. 이들은 한국의 ‘쿼드(Quad, 4개국 안보협의체)’ 참여를 두고 상반된 요구를 타진할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일본에서 열리는 ‘쿼드’ 외교장관회의에 참석 후 방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의 의제 중 하나가 역내 국가의 확대 참여 문제고 우리가 명단에 올라있다. 따라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공산이 크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일본을 먼저 방문해 동태를 살핀 후 우리에게 압박 메시지를 전하러 올 기세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쿼드 참여를 우회적으로 피하기 위한 발언을 일찌감치 내놓았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왕이 외교부장의 방한 목적을 암시하는 질문에 선을 그어버렸다. 25일 미국의 아시아소사이어티가 개최한 화상회의에서 그는 한국이 쿼드 플러스에 가입할 의향이 있느냐는 사회자 질문에 "다른 국가들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그 어떤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공개적으로 일축했다. 정부의 이타적 입장은 좋다. 자유질서를 추구하는 나라라면 배타적이고 비개방적인 방식으로 일부 역내 국가에 불이익을 주면서 지역협력을 도모하는 것에 반대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면 국익에 입각한 전략적인 차원에서 좀더 설득력을 담아내야 하지만 이런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외교는 ‘상황적(situational)’ 대응을 요구하는 생물이다.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고 유동적으로 반응해야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외교에는 절대적 이득(absolute gain)이 없고 상대적 이득(relative gain)만 존재한다. 다시 말해, 외교의 목적은 국익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절대적 이득을 신봉한다. 미중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 신세를 면하고자한다. 따라서 미중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과제를 흑백논리의 관점에서만 보려한다. 그러나 진영논리가 사라진 오늘날의 외교세계에서는 흑백논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만이 유일한 길이다. 이제 ‘쿼드’ 문제는 참여와 불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외교적 사명이 세계자유질서의 수호라면 더 이상 흑백논리로 응대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이 ‘쿼드’에 민감하다 해서 중국의 눈치를 보면 안 된다. 대신 중국의 과민한 반응으로 야기될 수 있는 잠재적 손실과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역점을 둬야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 측의 최근 발언에는 이런 고민의 흔적이 없다. 우리의 국익 관점에서 입장 설명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익 계산은 ‘쿼드’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전제한다. 우선 ‘쿼드’의 기반인 ‘인도-태평양전략’구상의 발단배경에 대한 정부의 이해가 부족하다. 이를 단순히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일본의 모략으로 치부한다.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인도-태평양전략’구상의 의도와 목적, 전략과 목표를 알 리가 만무하다. 그럼 결과는 자명하다. 우리 주변지역의 판세를 읽지도 못한다. 둘째, 판세를 읽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국익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이 구상은 단순히 다른 국가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공세적이고 공격적이며 수정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행위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초기처럼 기존의 국제질서에 편입하고 융합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이런 견제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작금의 중국은 이를 거부하고 나서고 있다. 자신의 영해권을 자신만의 잣대인 이른바 ‘9단선’과 ‘제1도련선’ 등으로 새로이 규획하려한다. 중국이 자신의 영해를 이런 식으로 확장하고 통제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나라는 우리나라다. 이 범위에 유일하게 포함되는 나라가 우리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다른 주변 국가는 범위 밖에 위치한 섬나라와 반도 국가들이다. 셋째, 외교에서 도덕과 윤리는 설득력이 없다. 강경화 외교장관의 발언은 ‘쿼드’가 본질적으로 도덕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이런 신념이 확고하다면 중국의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발언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대 중국 외교에서 이런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다. 특히 우리의 주권이익과 보편적 가치를 중국 외교에 투영하지 못하고 있어 국민의 자존감을 격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이른바 ‘쿼드(Quad)’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다자안보협의체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협의체가 최근에 구상된 것으로 오인한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새로운 지리적 개념이 최근에 도입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집단안보체제 개념의 발상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동아시아의 집단안보체제 개념은 1955년에 태동됐다. 당시 미국은 이를 3개 지역에서 주도했다.유럽에서는 ‘나토(NATO)’, 중동에서는 이란을 핵심 축으로 이른바 ‘테헤란 액시스(Teheran Axis)’가 기획됐다. 6.25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북대서양조약(NAT)을 1954년에 집단안보체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테헤란 액시스’도 1955년에 시작됐지만 결국 1967년 중동 정세 변화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동아시아에서는 1955년 동남아조약기구(SEATO)를 출범시켰지만 시대적 정치와 역사의 이유로 기대한 결과를 보지 못했다. 첫번째 이유로, 역외 국가로 참가한 영국과 프랑스의 반대가 있었다. 전후시기에 동아시아에까지 전력을 투입하기에 여력이 없었다. 둘째, 일본의 참여가 불가능했다. 이른바 ‘평화헌법’으로 미일동맹관계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역내 군사 활동이 불허되었다. 셋째, 1969년의 ‘닉슨 독트린’ 때문이다. 미국이 아시아의 문제를 아시아인이 해결해야하는 입장을 천명했다. 역내 문제에 미국의 간여를 축소하는 일환으로 미군의 감축 조치도 도한 선언됐다. 넷째, 1973년의 베트남전쟁 종결이다. 이로써 미국에는 ‘닉슨 독트린’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전략적 판단이 선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1972년 중국과 일본 수교협상에서 중국 측(덩샤오핑)은 일본과 수교협상 때 센카쿠열도의 국경문제를 놓고 “쟁론은 뒤로하고 공동개발(搁置争议,共同开发)”의 원칙을 제시, 일본 측의 양해를 구한 것이 유효했다. 이 원칙은 훗날 남중국해 일대의 영해분쟁을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의 눈에는 적어도 2015년까지는 말이다. 중국을 견제하고자하는 동아시아 집단안보체제 구상이 재개된 것은 기존의 지역질서에 대한 중국의 입장변화 때문이다. 가령, 2015년 4월 시진핑 국가 주석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남중국해의 인공섬의 요새화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귀국 직후 이런 약속을 번복하고 이들 섬의 군사화를 가속화했다. 미국을 포함한 역내 국가에게 중국의 행위는 지역 내에 보장되어야하는 이른바 ‘자유항행’의 권리를 중국이 통제하려는 움직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런 중국의 행위에 대한 역내 국가의 의구심이 이듬해 사실로 입증됐다. 외교적인 해결노력을 중국이 무시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필리핀이 국제상설중재재판소(PAC)에 재소한 영해분쟁의 승소 판결을 중국은 수용할 수 없다고 즉각 선언하고 나섰다. 이런 중국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에 역내 국가의 선도가 요구된다. 지금은 협의체 수준에 불과하지만 ‘쿼드’의 전력화는 시간문제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되든 이의 적극적인 추진을 공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판세에 따라 미중에 대한 우리 국익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외교 레버리지를 증강할 수 있는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2020-09-30 03:4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