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 경희대 교수
jwc@khu.ac.kr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이며 국내 최초의 미중관계사 책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와 베스트셀러 『팩트로 읽는 미중의
한반도전략』의 저자가 실타래와 같은 동북아 국제관계를
팩트로 풀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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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방중 대신 방러 택한 김정은의 속셈은? [주재우 교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3일부터 5박 6일 동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방문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경을 봉쇄한 이후 그의 첫 해외 방문국이 중국이 아닌 러시아였기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2018~2019년 2년 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5차례 정상회담을 한 사실을 고려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팬데믹 이후 첫 방문 국가로 중국을 다시 찾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 북·중 관계에 이상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그리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다. 우선 김정은이 중국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부터 규명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북한 측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확한 근거 자료는 없다. 단지 정황 증거로 이를 유추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과 중국 고위급 인사들 사이에 북한 문제를 두고 나눈 회담 내용에 근거할 수 있다. 올해 2월부터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과 포탄 등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같은 달에 왕이 중국 국무위원과 독일 뮌헨에서 회담하면서 두 가지를 요청했다. 하나는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지 말 것과 하나는 북한도 그렇게 하지 않게 중국이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블링컨 장관이 각각 5월과 6월에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도 이들의 대북 메시지는 일관적이었다. 중국 측 고심이 커졌을 법한 정황도 이후 드러났다. 7월 북한 전승절 기념행사에 중국이 예상외로 당 서열이 낮은 인사를 파견했기 때문이다. 리훙중 중국인민대표자대회 부위원장이자 당 정치국 위원이었다. 그는 당 서열 24위로 정치국 25명 중에서 간신히 턱걸이한 인사였다. 그리고 9월에 있은 북한 노동당 창당 기념행사에 중국은 류궈중 부총리를 참석시켰다. 그는 정치국 위원도 아니었다. 그러면 당 서열 25위에도 끼지 못한 인사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서열이 낮은 인사를 북한의 중대한 기념행사에 파견한 것도 전례에 없던 일이었다. 북한이 기념행사에서 열병식을 한 이후 중국은 줄곧 고위급 인사를 보냈다. 가령 2010년 9월 노동당 창당 행사에는 저우용캉 중앙기율위원회 위원장(서열 9위)이 참석했다. 2013년 전승절에는 리위안차오 부주석(서열 8위)를 파견했다. 2018년 건국 70주년 행사에는 서열 3위였던 리잔수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위원장이 열병식을 참관했다. 이처럼 북한의 뜻깊은 국가적 행사, 그리고 특히 열병식이 개최될 때 중국 측은 항상 고위급 인사를 보내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 두 차례 행사에는 이에 못 미치는 인사를 파견함으로써 중국 측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음을 감지할 수 있겠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김정은이 러시아를 방문하게 된 동기를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또한 그가 방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알아봐야 한다. 왜냐면 개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기와 이득에 대한 분석이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우크라이나와 한창 전쟁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과 회담을 한 이유를 동기와 이득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전쟁 중에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6000㎞ 이상 떨어진 극동 러시아 지역까지 와서 회담을 하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또한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김정은과 푸틴의 노림수를 읽음으로써 김정은이 코로나 이후 러시아를 첫 방문국으로 선택한 이유를 규명할 수 있겠다. 야당과 언론에서 지적했듯 김정은의 선택을 추동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이념외교나 진영외교의 결과도 아니다. 그가 군사시설을 방문했다고 해서 무기 거래를 목표로 푸틴과 회담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미·일 3국의 군사관계 강화가 북·중·러 3국의 단합을 유발해 대항마로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북·중·러 3국의 군사관계는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한·미·일 3국에 대항마가 될 수 없다. 우선 북·중·러 3국 군사관계에서 북한이 약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2007년부터 연례 연합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이 동참할 리 만무하다. 북한의 재래식 무기 수준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상 훈련에 참여하려 해도 현재 북한 함정과 군함 수준으로는 수치스러울 것이다. 북한에는 중·러가 동원하는 이지스함급 군함이 없다. 공군 훈련도 마찬가지다. 주지하듯 북한의 최신예 전투기는 1980년대에 소련에서 제공받은 미그기가 전부다. 둘째, 북한에 군사훈련 참여를 유발하도록 중국과 러시아 그 어느 누구도 현재로서는 무기를 제공할 의사가 없다. 북한은 재래식 무기 향상과 개선을 위해 중국을 찾아간 바 있었다. 북한은 최고지도자 수행 방문단 일원이 아니라 처음으로 단독으로 공군과 해군 사령관을 각각 2007년과 2011년에 베이징에 파견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중국 최신예 전투기와 군함 구매를 타진해봤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가면서 빈손으로 귀국한 바 있다. 이후 북·중 간 재래식 무기 거래설이 나오지 않은 지 오래다. 러시아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러시아와 무기 거래를 논한 지는 1980년대 이후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시급히 해소해야 할 당면 과제는 경제다. 코로나 시기 쇄국정책을 펼치면서 북한 경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경제 성장률에서부터 식량 생산까지 총체적인 난국에 처했다. 이는 올해 김정은이 주재한 당 회의에서도 식량과 농업 문제를 강조한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에 무기 구매나 거래가 최우선 과제는 아닐 것이라고 가늠할 수 있다. 비록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지 대부분이 군사무기 제조·생산시설이었음에도 주된 회담 의제는 경제라는 점이 간과되었다. 특히 북·러 양국이 건설·관광·농업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연내에 추진하기로 합의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 경제난을 위한 김정은의 포석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일 김정은과 회담할 때 푸틴을 배석한 러시아 인사들을 주목할 필요 또한 있다. 러시아 부총리를 비롯해 산업, 교통, 자원 부처 수장 등이 모두 동석했다. 푸틴은 모두 발언에서 “우리는 분명히 경제협력 문제, 인도주의 성격의 문제, 지역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북·러 양국 간 경제협력이 주된 의제였음을 시사했다. 푸틴의 발언을 방증하는 증거 또한 실무급 회담 여러 곳에서 포착되었다. 특히 12일 새벽 러시아 국경역 하산에 도착한 김정은은 코제먀코 연해주 주지사와 만나는 자리에 배석한 러시아 인사들을 보면 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이 자리에 알렉산데르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환경장관이 배석했다. 코즐로프 장관은 북·러 통상·경제와 과학기술 협력 정부 간 위원회 의장직을 겸하고 있다. 13일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코제먀코 주지사는 본인 텔레그램에 “(김 위원장과) 올해 관광·농업 발전과 연계된 공동 프로젝트들을 개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며 “이는 건설과도 연관된 문제”라고 소개했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북·러 양국은 연해주를 비롯한 극동 지역에서 농업특구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특히 나진·하산 프로젝트 재개와 관광·문화 교류 사업 등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북한이 비(非) 군사 영역에서 러시아와 협력을 타진한 이유는 더 현실적이고, 더 수월하고, 북한에 더 이득이 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무기 거래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푸틴도 전쟁 중에 북한에 무기를 제공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언론과 전문가들 예측대로 북·러 정상회담이 성사된 이유가 북한에서 포탄과 탄약을 조달하는 것이라면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신 북한이 러시아 측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무기 생산 공장 가동이 전제된다. 이를 위한 에너지원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전력도 에너지 동력도 부족한 북한에서 러시아 측 주문을 맞추기 위해서는 러시아에서 에너지 공급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자 식량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들이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원활한 에너지 자원과 식량 수급은 군사력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양상에 현혹돼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가 에너지든, 식량이든, 인프라 구축을 위한 경협이든 물자가 왕래할 때 러시아 첨단 무기 부품과 소재가 포함되어 운송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들 부품과 소재는 눈속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국제사회는 경계해야 하며 우리 당국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겠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3-09-2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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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캠프 데이비드 합의, 범국민적 지지 보내야 [주재우 교수] 지난 18일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국, 미국, 일본 3국 정상회담을 보면서 국민들은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변화된 위상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120여 년 전의 대한민국은 미국과 일본이 밀약하면서 일본에 합방되었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한일합방의 빌미를 제공했고 우리는 곧 주권을 상실했다. 당시 이들 열강은 제국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밀약을 맺었으며, 조선은 이들의 권력 경쟁에 제물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은 우리의 달라진 국제적 위상을 세계 만방에 알렸다. 그야말로 우리 외교사(史)에 새로운 장(章)을 열은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미국 일본과 함께 공동의 위협에 적시 대응하는 데 희생양이 아닌 어깨를 나란히하는 필수불가결한 협력 국가로 거듭난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한·미·일 3국 관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사실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관건은 이제 앞으로 합의한 사항을 지속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의 실현 가능성을 우려하는 의견이 분분하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미·일 정상회담 결과가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을 걱정한다. 더욱이 기시다 일본 총리도 윤석열 대통령 퇴임 이전에 물러날 가능성이 높아 이런 우려를 증가시킨다. 그러나 선례에 비춰보면 이번에 이들이 신설하기로 한 고위급 대화 채널은 유지될 것으로 확신할 수 있다. 가령, 한·미와 미·일 간의 이른바 ‘2+2’ 형식의 외교·국방회담이 지금까지 지속된 사실이 이를 확신할 수 있는 방증이다. 게다가 국방과 외교 분야에서 한·미·일 3국의 대화가 이미 정기적으로 개최되기 때문에 이의 연장선상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신설하기로 합의한 3국의 재무장관, 상무부와 산업부 장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연례 회담도 별 무리 없이 지속성을 가지고 개최될 것이다. 3국 정상이 이번에 신설한 대화 채널 역시 흥미롭다. 연례적인 개최에 합의가 된 이들 대화 채널은 3국이 당면한 과제별로 조직되었다. 3국의 인도-태평양 대화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이행 과제 조율과 공동 대응 요소의 식별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번에 대략적으로 합의된 요소에는 허위 정보(disinformation)와 외국의 정보 조작(information manipulation) 위협과 감시기술의 악용 등이 포함됐다. 이들이 합의한 또 하나의 대화 채널은 개발정책 조율과 협력을 심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출범시킨 것이다. 오는 10월로 개최가 예정된 ‘3국의 개발정책대화(Trilateral Development Policy Dialogue)’가 그것이다. 이 역시도 지속성을 가지고 연례적으로 개최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번 3국 정상회담이 도출해낸 결과 중 가장 주목받아야 할 대목은 정보공유다. 정보공유는 모든 협력의 성공을 담보하는 전제조건이다. 정보공유 없이 협력이나 정책 조율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냐면 국가 간에 일정 수준의 신뢰(trust)와 믿음(confidence)이 담보되지 않고서 전략이익에 민감한 군사, 경제, 첨단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정보공유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회담을 통해 미·일 양국이 우리와 이러한 정보공유에 합의한 사실로도 우리나라의 달라진 위상과 위신이 또다시 증명되었다. 군사 분야에서 한·미·일 3국은 실시간 미사일 경보 정보를 올해 말까지 작동하는 것을 목표한다고 선언했다. 경제안보 측면에서도 3국은 올해 이미 3개국 경제안보대화의 틀에서 대화를 2번이나 개최했다. 이들 3개국 경제안보대화를 통해 반도체와 이차전지의 공급망, 기술안보와 표준문제, 청정에너지와 에너지안보, 바이오기술, 희토류, 의약품, 인공지능, 양자컴퓨터와 과학기술연구 등의 현안들이 포괄적으로 논의되었다. 앞으로 한·미·일 3국은 공급망의 교란 가능성에 대비한 정책 조율에 협력을 강화할 것을 이번 회담에서 선언했다. 이를 위해 3국은 개도국이 청결에너지 공급망에서 소외되지 않고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회복력과 포용적인 공급망 제고 파트너십(Partnership for Resilient and Inclusive Supply-chain Enhancement, RISE)’을 발전시켜 나갈 것을 천명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올해 창설한 ‘핵심기술 타격 부대(disruptive technology strike force)’가 한·일 양국의 관련 부처와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더 나아가 민군겸용기술에 관한 수출통제문제에서도 3국은 협력 결의를 다졌다. 이 모든 협력 사안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의 정보공유에 기초한 정책 조율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회담의 가장 큰 결실은 이런 전제조건을 충족시킨 데 있다. 앞으로 한·미·일 3국의 협력 관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과 사회의 전반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과거사에 사로잡힌 이들의 태도 전환도 필요하다. 이제 이들도 달라진 세상과 대한민국의 위상과 위신을 직시해야 한다. 더욱이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중국 시장에서의 우리의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도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우리나라가 더 이상 중국 무역시장에서 흑자를 기대하는 것은 무역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결과다. 우리 경제가 선진국 대열에 오르면 우리의 대중국 무역수지는 적자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값싼 제품을 더 많이 수입해야 하는 시장 논리 때문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에서 중국에 무역 흑자를 보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모두들 적자를 본다. 이제 우리의 대중국 무역수지 구조도 적자로 전환되는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 2022년 국가별 대중국 무역 총액 면에서 1, 2, 3위의 나라는 미국, 한국, 일본 순이다. 이런 나라들이 협력을 강화하면 할수록 중국이 보복이나 비우호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도 현실적으로 인지할 때가 됐다. 대중국 직접투자(FDI) 면에서도 홍콩, 싱가포르, 버진아일랜드처럼 투자원천이 불투명한 지역을 제외하면 최대투자국도 한국, 일본, 미국이 2021년 기준 1, 2, 3위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중국 시장을 상실하는 것을 우려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사고에는 스스로가 망각하는 사실이 하나가 있다.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시장 의존도다. 이들이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단절한 상황에서 우리가 이들의 진영에 합류하면 중국 시장을 상실하는 것은 자명한 결과다. 그러나 이들 또한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고 교역을 계속하기 때문에 이런 우려는 가히 비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대신 중국 시장 상실을 우려하는 이들은 한 가지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 주도의 대중국 견제 전략의 목적이 그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중국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경제 행위를 교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중국이 수용할 경우 모든 것이 정상화된다는 의미다. 중국의 경제 행위 교정은 우리 국익에도 부합하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때까지 중국 시장 상실에 대한 우려를 우리는 잠시 접어둬야 한다. 그리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및 부속 조치에 대해 초당적이고 범국민적 지지를 보내는 현명함을 보일 때가 됐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3-08-20 16: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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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美.中 잇따른 비공개 고위급 회담… 왜? [주재우 교수] 미국과 중국은 최근 고위급 회담을 연쇄적으로 개최하며 관계 개선의 단초를 모색하고 있다. 모종의 ‘딜(deal)’이 협의되고 있음을 의심치 않게 하는 정황적 증거가 적지 않다. 그중 특히 회담 이후 미국 측이 회담 내용을 발표하지 않은 사실을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중국 측도 하나만 공개했다. 매우 이례적이다.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의 대미, 대중 외교도 경계심을 가지고 우리의 전략 변화를 적극 모색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지난 5월 10~11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위원회 판공실 주임 겸 중앙정치국 위원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담을 했다. 이틀 동안 이어진 회담 중 하루는 8시간 이상 ‘마라톤 회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공개된 결과는 없었고 회담을 한 사실을 알리는 설명자료(readout)가 백악관 홈페이지에 게재되었다. 5월 25~26일 미국 워싱턴에서는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 간 회담이 있었다. 이들 회담 결과에 관한 공식 발표 자료는 미국 상무부 홈페이지나 중국 상무부 홈페이지 어디에도 제공되지 않았다. 미국 상무부 홈페이지에는 설명자료만 간략하게 올라 있었다. 그리고 지난 6월 18~19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왕이 정치국 위원과 친강 외교부 부장과 이틀 동안 회담을 했으나 이 회담 내용 역시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 국무부는 대변인을 통해 역시 설명자료만 공개했다. 미국과 중국이 이처럼 고위급 회담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설명자료 형식으로 제공하는 것은 가히 그 의도와 취지를 의심할 만하게 하는 대목이다. 설명자료는 대체적으로 회담 내용을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관점에서만 담아 발표하는 자료다. 따라서 상대방의 의제, 요구사항, 의견에 대한 것을 감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설명자료가 이를 발표한 나라의 것만 일방적으로 부연하는 것이다 보니 상대방의 반응이나 대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것을 대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세 번의 고위급 회담 중 이것이 가능한 것은 블링컨과 왕이, 친강의 회담뿐이다. 이마저도 회담 결과에 대해 우리의 이해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의 설명자료에는 블링컨 국무장관이 미국 측 의제만을 기술했기 때문이다. 중국 측 설명자료는 중국의 입장만 서술했다. 이와 덧붙여 미·중 관계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잘못된 입장과 오해를 지적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왕이 위원은 미국에 ‘중국 위협론’을 더 이상 외교적·정치적 카드로 활용하는 것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한 일방적인 제재와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압박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서 우리는 미·중 양국이 고위급 회담을 연쇄적으로 개최한 이유를 정황적·상황적으로 가늠할 수밖에 없다.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을 놓고 보면 최소한 비(非)정치·군사·외교안보 분야, 즉 경제·통상 분야에서 관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임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6월 5일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시한을 앞두고 있었다. 백악관은 시한 연기에 미국 의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시한 도래를 며칠 앞둔 27일(현지시간) 밤에 가까스로 미국 하원 의장 케빈 매카시(공화당)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현지시간 5월 31일에 미국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에 합의하는 안을 하원이 통과시키면서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봉합 수준에 그쳤다. 미국 행정부의 핵심 부처(key departments)들은 앞으로 10년 동안 긴축재정의 시간 속에서 공무를 봐야 한다. 이번 바이든-매카시 합의에서 핵심 부처가 정의되지는 않았다. 다만 이들 부처의 예산이 앞으로 10년 동안 1% 이상 증가하지 못하는 제약의 대상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예산 규모는 2022년 수준에서 출발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1% 예산 상승률도 비국방 부처의 예산(non-defence budget)이 2024년에 동결을 거친 이후, 즉 2025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따라서 미국의 건강보험과 식료품 구입 및 제공 지원 프로그램(food welfare) 등 사회복지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의 지원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는 곧 미국이 앞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즉, 긴축재정을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일궈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국방 분야의 예산 감축을 하지 않고 증가할 공산이 커지는 상황에서 타 부처에 재정 긴축을 요구하면서 미국의 경제성장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야말로 쉽지 않은 숙제다. 더욱이 현재로서 미국 의회가 중국에 대한 압박과 견제 법안을 대거 상정한 가운데 미국 경제의 회복을 운운하는 것은 미국의 숙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런 합의로 미국의 공무원과 군인들의 월급이 제대로 나오고 연방정부의 연금을 국민이 제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국가를 채무위기로 몰아넣은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렵다. 특히 두 개의 숙제를 다 하지 못했을 때 그의 재선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내년 미국 대선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자들은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의 결정적인 오점인 국가부도위기 사태를 집요하게 공격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어떤 후보든지 이런 공화당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미국 경제의 회복이 관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이나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은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중국의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 3월 ‘리오프닝’을 선언한 이후 중국 경제의 회복과 성장은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5월 중순 중국 국가통계국은 산업생산이 5.6% 증가했지만 예상치 10.6%를 밑돌았다고 발표했다. 소비자 지출이 전년 대비 18.4% 증가했지만 이 또한 예상치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16-24세 청년 실업률이 20.4%에 달하면서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작년 여름에 세운 종전 기록인 19.9%를 넘는 것이었다. 중국 전체 실업률이 5.2%로 떨어진 것은 위안이 되겠지만 지난달부터 중국 대학 졸업생이 약 2000만명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청년 실업률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대외무역에서 중국의 올해 실적도 저조한 상황이다. 올해 1~5월 수출입 총액은 5012억 달러를 기록 중이나 전년 대비 6.2% 감소한 규모다. 수출액은 0.3% 증가한 반면 수입액은 6.7% 감소했다. 대외무역 문제 때문인지 최근 중국 환율의 변동 추이 또한 심상치 않다. 올 초만 해도 달러당 6.7위안이었던 위안화 환율은 6월 말 7.25위안으로 8.2% 치솟았다. 수출시장 경쟁력 확보를 통해 경제 부양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파급효과가 중국의 철강재 수출 급증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구의 유수한 분석기관과 국제금융기구는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가령 지난달 골드만삭스는 6%에서 5.4%로, 노무라는 5.5%에서 5.1%로, S&P도 5.5%에서 5.2%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IMF 역시 5.1%에서 4.6%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낮췄다. 중국이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 경제 문제 해결이 시진핑 주석에게도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내년 말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미국의 중국 ‘배싱(때리기)’이 계속되면서 중국 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대선이 끝나면 시 주석의 3임 통치기간이 반환점을 돈다. 그가 4연임을 하려면 그 정당성을 경제 회복과 성장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 압박이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6월 초 기준 미국 의회가 대중국 경제 압박과 규제와 관련해 상정한 법안만 194개에 이른다. 이들 법안 중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 공산당원들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 및 미국 내 활동 금지(H.R.3334, S.580, H.R.688, S.852), 중국 교육기관의 미국 진출 및 기존 교육시설 폐기(S.1121, H.R.1516, S.768, S.852, H.R.1157, H.R.1225), 중국 금융경제활동 제약(H.R.499, S.860, ), 중국과 무역관계 정상화(H.R.638, S.153, S.152), 중국의 제3세계 국가 및 발전 중 국가 자격 박탈(S.906, H.R.1137, H.R.1107) 등이 있다. 이 밖에 미국 의회는 중국의 미국 인프라 건설 투자 규제, 미국 내 소셜미디어(SNS) 규제, 미국 농장 투자 규제 등 법안을 상정해 중국에 대해 미국 시장 진출을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뉴욕의 중국 총영상관 폐쇄(H.R.2865)와 중국 공산당 미국 내 경찰 활동 금지 법안도 상정됐다. 미국 의회의 이 같은 대중국 견제 및 규제 법안이 다양한 분야에서 상정되면서 미국의 ‘디리스킹’ 정책이 본격화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인적 교류와 연구기관 간 교류에 대한 제약은 물론 기술 이전에 대한 규제 구상도 4월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에 의해 밝혀지면서 중국은 상당한 경계심을 가지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번 블링컨·왕이 회담에서 왕이가 이를 직접 언급한 사실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오는 6~9일 베이징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 분야에서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가운데 우리의 대중, 대미 전략도 변화가 필요하겠다. 우리는 중국이 ‘제로 코로나’를 선언했던 2021년에 큰 낙수효과를 봤다.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11년 만에 4.15%를 기록하면서 전년(-0.71%) 대비 4.86%포인트 증가하는 결과를 봤다. 우리의 대중국 수출입도 각각 145%와 154% 증가했다. 대중국 무역 흑자는 486억 달러를 기록하며 2017년 사드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 관계를 개선하면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우선 우리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른 만큼 대중국 무역구조도 선진국화, 즉 수입이 수출보다 크게 증가하는 시기로 진입했다. 그러면서 무역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이 우리의 중국 전략의 대명제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런 명제하에서 우리의 중국 전략은 비경제 분야(외교·군사·안보 등)와 경제 분야를 이원화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과 파트너 국가들이 중국과 함께 이같이 현안들을 이원화해 당분간 이들 두 분야에서 입장은 평행선을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역시 이 같은 시류에 편승하는 전략 조정이 필요하다. 셋째, 미국의 대중국 강경 정책과 입장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엄격하게 국내 정치용이고 미국 주도의 전략구상에 우방의 동참을 촉구하는 데 쓰이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철저하게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우리만의 중국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미국은 첨단 과학기술의 원천 국가로서 해외 이전과 아웃소싱을 통해 완제품을 수입하는 나라다. 우리가 한·미 동맹으로 기술 이전의 수혜를 보고 중국 시장에 대해서도 완제품에 대한 레버리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미·중 간에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넷째, 미·중 양국의 정책 조정과 전략 변화가 앞으로 무상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정확하고 명확히 분석·판단하기 위한 정책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 미국 의회의 법안 분석에서부터 국내 정치의 동향 분석을 통한 의미를 파악해야 하고 실제로 미·중 관계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야 한다. 중국의 국내 정치·경제의 변화가 대외정책, 특히 대미 관계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이해할 때 우리의 대응 전략 마련도 가능하다. 다섯째,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대미 레버리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대중 레버리지로 활용해서 우리의 대미, 대중 확대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모든 고위급 회담에서 상대방의 대중, 대미 전략과 입장을 알아보기 위한 탐구적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미·중 전문가들이 회담 준비에서부터 결과 분석 작업, 그리고 전략 수립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3-07-0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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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파상공세 퍼붓는 중국.. 우리의 ''對中 외교원칙' 공식화할 기회 세계는 중국과 경제 관계 개선을 위한 전략 재구상에 바삐 돌아가고 있다. 여기에 미국까지 가세하면서 행보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4월 20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존스홉킨스대학 연설을 필두로 27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브루킹스연구소 대담회까지 미국의 대중국 경제 관계의 발전 방향에 관한 미국 백악관과 행정부 입장이 밝혀졌다. 그리고 지난 5월 25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통상 장관회의를 앞두고 미·중 양국 상무장관 또한 회담을 했다. 이에 앞서 5월 12일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역시 8시간 넘는 마라톤 회담을 했다. 옐런 장관과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의 연설문 이외에 나머지 회담 내용에 대한 내용을 관련 당국이 밝히지 않으면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미·중 경제 관계에 있을 변화를 ‘장님 코끼리 만지듯’ 추측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회담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미·중 경쟁관계가 격렬해지는 가운데 양국이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아무래도 민감한 사안들에 관한 논의가 많았고 아직 그 결과가 미성숙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 이유를 두 가지 맥락에서 유추할 수 있겠다. 하나는 미국이 대선 정국에 진입하는 길목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론 디샌티스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의 출마 선언으로 미국 대선 정국의 시작이 알려졌다. 또 하나는 따라서 대선을 의식한 중국의 ‘리오프닝’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새로운 입장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 행정부도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기조에서 ‘디리스킹’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강조된 설리번의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이 같은 변화가 예고된 것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과의 경제 경쟁에서 미국의 위험 부담을 줄이면서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으로의 전환은 미국 국익에서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방증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미국은 그러면서도 중국의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고 부정한 경쟁 행위에 대해 묵과할 수 없다는 종전의 정책 기조에는 변함이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특히 옐런 재무장관 연설에서는 이 점을 확실히 부각시켰다.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미국의 위험 완화 범위 내에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미국 측 발언에서 미국의 대중국 경제정책 기조에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의 위험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가부채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데 미국 의회가 합의하면서 일단 급한 불을 끈 상태다. 미국의 경기 회복을 위해서라도 ‘리오프닝’하는 중국 시장은 미국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8일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공급망 부문에 관한 합의가 도출되었다. 공급망 위기에 회원국이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우리 정부의 행보도 뒤처지지는 않았다. 지난달 21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회담을 했다. 여기서 한·미 양측은 앞으로 연 1회 한·미 공급망·산업대화를 개최하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디트로이트에서 회담을 했다. 이 회담에 관한 한·중 양측 보도자료 발표 내용이 차이를 보였다. 중국 측은 “양측은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영역에서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에 반해 우리 측은 “중국 측에 교역 원활화와 핵심 원자재·부품 수급 안정화를 위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는 점만 담았다. 중국이 ‘반도체 대화와 협력 강화’를 강조한 대목에서 우리는 중국의 절실함과 초조함을 다시 한번 감지할 수 있었다. 여기에 마이크론사(社)에 대한 중국 측 제재 결정에 미국 측의 우리 제품의 대체 공급 문제에서도 새로운 기류가 나타면서 중국의 조바심을 한층 더 부추기는 형국이 조성됐다. 우리 정부는 부인했지만 지난 4월 미국은 마이크론사의 공백을 한국의 반도체가 메우지 말 것을 경고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최근 미국 의회는 한국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워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필요시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미국의 수출 허가 예외 조치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미국의 입장 변화가 가능해진 사실은 옐런과 설리번의 연설, 그리고 IPEF 공급망 협정에서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겠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제조업 회복과 공급망에서 우방과의 협력을 강조한다. 특히 이들의 연설은 당당한 산업정책 추구, ‘동맹이 뒤처지게 두지 않을 것’이라며 동맹과의 협력을 역설했다. 이런 결과의 일환으로 한·미 양국 간 경제협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설리번의 연설에서도 나타났듯 미국은 앞으로 첨단 과학기술 이전의 장벽을 높이는 것과 관련해 "단지 군사적으로 우리에게 도전하려는 소수 국가와 소수의 기술에만 적용된다"고 발언하면서 그 대상에 중국이 포함된 점을 암시했다.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협력과 경제 관계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그래서 미국이 중국과의 ‘디컬플링’에서 ‘디리스킹’ 입장으로 전환한 이유에 대해서도 부연했다. 연설문에서 그는 디리스킹을 “근본적으로 탄력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공급망을 확보한다는 의미로 이를 구축하는 데 다른 국가에서 압박을 받지 않는” 것으로 설명했다. 즉, 특정 제품과 광물에 대한 미국과 동맹의 높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중국의 4차 산업 경쟁력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 또한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이를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대중국 경제정책의 모토라 할 수 있는 ‘작은 정원, 높은 펜스(small yard, high fence)’에 다시 비유했다. 즉 맞춤형 수출 규제를 지속해서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수출 통제 대상의 기술 범위가 비록 넓지 않지만 강력한 규제 기준을 적용해 철저하게 첨단 과학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전략 변화에 중국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이 끝나면 시진핑 3기도 반환점을 도는 시기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를 ‘리오프닝의 해’로 선언한 만큼 중국도 괄목할 만한 경제 성과를 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의 압박을 느낄 터이다. 중국도 ‘디리스킹’이 필요한 만큼 우리와 같이 4차 산업 분야에서 선도적인 국가와의 협력이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정황은 여러 곳에서 일찍이 감지되었다 가장 비근한 예로 지난 4월 12일 시진핑 주석은 중국 광둥성 산업 시찰에서 한국 LG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했다. 작금의 한·중 관계 상황에서 볼 때 이는 예상하지 못한 행보였다. 한국 기업, 한국 산업, 더 나아가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대만해협과 관련된 발언이 연속 공개되면서 중국의 우리에 대한 불만은 커져만 갔다. 중국의 불만과 경고 메시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5월 22일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주사 사장(아시아 담당 국장)의 방문에서도 중국 측의 경고가 전해졌다. 그리고 5월 26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언론 방송 참여에서도 이와 유사한 수준의 불만이 제기되었다. 일부 국내 언론에 따르면 류 아주사 사장은 한·중 관계와 관련해 ‘4개의 불가’ 방침을 표명하면서 우리나라의 대만 문제와 한·미·일 공조 강화에 대해 극도에 달한 중국의 불만을 표명했다고 전해졌다. 소위 ‘4개의 불가’ 방침 내용은 '(대만 문제 등)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 한·중 협력 불가, 한국이 친미·친일 일변도 외교 정책으로 나아갈 경우 협력 불가, 현재와 같은 한·중 관계 긴장 지속 시 고위급 교류(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불가. 악화한 정세 아래 한국의 대북 주도권 행사 불가 등'으로 알려졌다. 싱하이밍 대사는 한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과 핵심 우려를 존중할 것을 주문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좋지 않은 한·중 관계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 핵심 요지였다. 이런 중국의 경고성 메시지 배경에는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공조 강화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런 상황 변화에 중국이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조바심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더욱이 IPEF의 (중국에 대한) 공급망 협정이 체결되면서 이런 중국의 불안감을 더욱 자극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렇게 우리에게 파상공세로 나오면서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기회가 왔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외교원칙을 공식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겠다. 중국이 자국의 핵심 이익과 핵심 우려를 존중할 것을 요구하면서 정치적 압박 공세를 격하게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의 대응은 우리의 원칙을 존중할 것을 주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우선, 우리의 바다와 하늘에 대한 무단 진입 자제를 촉구하면서 우리의 주권과 영토주권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내세워야 한다. 두 번째로 우리의 국가 체제와 정체성에 대한 존중 요구다. 세 번째로 우리가 선택하고 견지하는 가치와 이념에 대한 존중이다. 네 번째로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평화와 안정 수호에 기여하는 것을 존중하는 것이다. 중국은 한·중 수교 공동선언을 근거로 우리에게 ‘하나의 중국’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 역시 공동선언에서 약속한 ‘한반도 정세 완화와 안정,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는 정신을 준수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즉, 대만해협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중국의 책임과 의무를 상기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평화 통일에 대한 우리의 원칙을 존중하는 것이다. 공동선언 5조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 통일에 대한 중국의 기여와 지지를 다시금 요구하는 것을 원칙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3-06-0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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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우리도 대중 전략 조정이 필요한 이유 중국이 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벗어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3월 개최된 ‘양회’에서 경제 관련 영역의 안정을 강조하면서 해외 투자 유치를 강화할 의지를 표명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5% 전후로 예측하며 세계 각국은 중국의 ‘리오프닝’과 관련해 경제적 낙수효과를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밀착했던 일부 국가들도 국익과 각자도생을 적극 추구하고 있다. 미국도 중국과 대화할 가능성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지난 4월 11일 백악관 대변인에 따르면 중국은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을 중국으로 초청해 이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달 20일 옐런 장관이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미·중 경제 관계에 대해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 내용을 두고 국내 일부 언론은 미국이 국가안보에 ‘올인’하고 중국에 대한 견제를 지속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연설은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범위와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마치 중국 측 초청에 호응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의 연설에서 미국이 대중국 경제 관계에서 추구하는 목표 3가지가 소개되었다. 첫째, 미국뿐 아니라 동맹과 우방의 국가안보 이익과 인권을 수호하겠다. 이는 중국의 대외 행위를 교정하겠다는 미국의 정책 기조와 일치된다(본지 2022년 2월 22일자 [주재우의 프리즘] 대한민국, 美 인태전략의 '인싸'가 되자” 참조). 이 같은 정책 기조가 경제적 영향은 있겠으나 미국의 안보와 가치에 대한 우려에 기반하기 때문에 불변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그러면서 이런 정책 기조가 경제적 우위를 점하기 위함만이 아니라는 점 또한 강조했다. 둘째, 중국과의 건강한 경제 관계를 모색이다. ‘건강한 경제 관계’는 미·중 두 나라의 성장과 창의력을 진일보 양산하는 데 있다고 부연했다. 부상하는 중국이 국제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 미국과 세계에 이득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 모두 이런 경제 관계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이유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전제조건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는 공정한 경쟁이 건강한 경제 관계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미국이 우방과 중국의 불공정한 경제 행위에 대해 계속 대응할 것이라는 점도 상기시켰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해결이 시급한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 중국과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작년 회담에서 거시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소통 강화에 합의한 사항을 적극 개진해야 하는 당위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적극적인 호응을 촉구하면서 이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의 요구에 대한 미·중 양국 공동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양국이 건강한 경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히 중국이 불공정한 행위를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중국이 ‘리오프닝’을 앞두고 미국과 우방의 일부 기업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행보를 지적했다. 미국의 마이크론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전수조사를 염두에 둔 대목이었다. 이러한 강압적인 행위에 대해 불만을 보이면서 그는 중국이 ‘양회’에서 밝힌 것과 같이 시장이 문제 해결의 핵심 주체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도록 촉구했다. 또 양국은 협력과 경쟁이 상존하나 경쟁 속에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잘 식별하는 것이 양국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공통된 국익에 부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우방인 서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중국을 향한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해 11월 베이징을 가장 먼저 방문해 중국과 경제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양회’ 폐막 이후 싱가포르 총리 리셴롱이 3월 27일, 말레이시아 총리 안와르 이브라힘이 3월 29일, 스페인 총리 페드로 산체스가 3월 30일, 그리고 일본 외무상 하야시 요시야마도 4월 1일 베이징을 방문했다. 이 중 산체스 총리는 국빈 방문이었다. 이 밖에 올 상반기에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최근 들어 미국 기업들도 중국과 협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12일 미국 자동차 산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포드자동차는 중국 CATL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 생산에 합의했다. 포드자동차는 2026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전기차를 200만대 생산한다는 계획에 부응하기 위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제약을 우회하기 위해 중국과 협력하는 결정을 내렸다. 포드 측은 35억 달러(약 4조5000억원)을 투자하면서 지분 100%를 소유하고 CATL 측은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 합의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생산업체 테슬라는 지난 4월 9일 상하이에 대용량 에너지 저장장치인 메가팩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가을에 착공하고 내년 봄에 완공해 연간 1만개의 메가팩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른바 ‘메가팩’은 테슬라가 생산하는 산업 설비용 대용량 에너지 저장장치다. 테슬라는 이 공장을 상하이 린강 자유무역구에 위치한 자사 기가팩토리공장에 역시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기가팩토리에서 작년 한 해 생산한 전기차는 71만대를 넘었다. 그리고 지난달 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중국 방문 기간 프랑스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의 중국 투자도 확정되었다. 에어버스는 중국 톈진의 조립 공장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는 투자를 결정했다. 이런 배경에는 에어버스가 중국에서 일궈낸 계약 성과가 주효했다. 에어버스는 2022년 여객기 292대 판매계약에 이어 또다시 160대의 추가 구매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톈진 조립 공장의 확대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중국이 에어버스의 라이벌인 보잉사를 배제한 사례에서 보듯이 미·중 갈등 심화는 미국 기업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미국 의회가 제정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반도체법이 현실적 한계를 드러내면서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활로를 모색하게끔 만들고 있다. 미국 내에서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가 생산되거나 제조와 조달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들 법안의 규제는 미국 기업들의 눈에는 비현실적인 법안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작년 12월에 공개된 IRA 백서에서 중국·러시아·이란 등 해외우려기업(FEOC)에서 조달한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사용을 금지시켰다. 다시 말해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와 중국산 부품(희토류 등)이 내재된 배터리에 대한 차별 정책은 배터리와 희토류를 생산하지도 않는 미국의 산업 실정에서 어불성설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IRA와 반도체법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통과되었기 때문에 미국 기업의 입장에서 비현실적이고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30년까지 신규 판매 자동차의 5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IRA나 반도체법은 제동만 가할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기업들은 이들 법안에 반하는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미국 상무부는 임시방편의 조치를 취한다. 3월 21일 반도체법의 가드레일 규정, 3월 31일에는 IRA의 세부 지침을 소개한 것이 조치였다. 세부지침으로 북미에서 제조·조립한 배터리 부품을 50% 이상 사용 시 미국이나 FTA 체결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 광물의 40% 이상 사용하면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반도체 가드레일의 핵심은 미국의 보조금을 받으면 앞으로 10년간 중국 등에서 현행 대비 첨단 반도체는 5%,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 생산능력 확대가 제한된다. 생산능력을 완전히 차단하려 했던 원안보다는 한층 더 유연해졌다. 최근 외부 세계의 중국에 대한 경제 행보가 달라진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2021년 중국이 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을 당시 각국이 대중국 무역에서 누렸던 낙수효과에 대한 기억이다. 가령 프랑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일본, 독일의 대중국 수출은 전년 대비 각각 182%, 145%, 145%, 132%, 124% 증가했다. 대중국 수입 면에서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국가는 전년 대비 171%, 154%, 147%, 134%, 126% 증가율을 기록했다. 미국도 대중국 수출과 수입이 각각 전년 대비 142%와 132% 증가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대중 무역흑자를 기록한 것은 아니다. 독일과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의 대중 적자도 7100억 달러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럼에도 이들이 누렸던 경제 낙수효과는 국내 경제 안정이었다. 지금과 달리 안정적인 물가를 유지하면서 경제 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의 ‘리오프닝’으로 대단한 낙수효과를 경험했다. 우리의 대중국 수출과 수입이 전년 대비 각각 145%와 154% 증가했다. 그 결과 우리의 대중 무역흑자 또한 오랜만에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2021년 우리의 흑자는 486억 달러를 기록했다. 2018년 557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하향세에 접어들었던 우리의 흑자가 다시 상승세로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이듬해 우리의 흑자 규모가 12억 달러로 급락했지만 우리가 중국 시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과 동맹이 중국에 대한 전략을 조정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다. 미국 주도의 대중 전략 구상이 정상궤도에 올라 정상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는 2018년부터 인도·태평양전략(‘인태전략’)의 참여와 자국의 전략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를 이미 본궤도에 올려놓고 자국의 이익을 모색할 수 있는 여유와 여력이 생긴 것이다. 일본 또한 2021년 미·일 동맹 70주년을 맞아 쿼드를 출범시키고 인태전략에 대한 입장을 공표했다. 우리가 비록 이들에 비해 후발 주자지만 인태전략 보고서를 발표했고 이에 참여 의지를 공식화했다. 이제는 우리도 여유를 갖고 중국에 대한 정책과 전략을 탐구할 때가 되었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3-05-0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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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거세지는 한반도 신냉전 파도 …눈치보기 그만하자 [주재우 경희대 교수]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3연임을 확정한 이후 첫 방문 국가로 러시아를 찾았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개인적인 우애뿐 아니라 중·러 양국 우호 관계의 견고함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이들의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중국은 일련의 입장문과 공동성명에서 러시아와 연대하여 미국에 대항하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특히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와 관련해 양국이 밝힌 입장에서 북·중·러 진영의 공고화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시진핑은 2013년 국가주석으로 처음 선출되었을 때도 첫 방문 국가로 러시아를 선택했다. 이후 그와 푸틴 대통령은 다자회담을 포함해 총 40차례 회담을 했다. 그는 모스크바만 9차례 방문했다. 그리고 APEC, BRICS, G20, 상하이협력기구(SCO) 등 연례정상회의 자리에서도 따로 회담을 했다. 두 사람이 1년에 최소한 평균 네다섯 번 만난 셈이다. 시 주석의 러시아 공식 방문을 전후하여 중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양국 연대 관계의 공고함을 과시했다. 전인대 개최 기간 동안 올 1월에 신임 외교부장으로 임명된 친강(秦剛)이 3월 7일 공식 외신 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 역시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입장과 지지를 밝혔다. 시 주석은 모스크바로 출국하는 당일인 3월 20일 '러시아 가제트(Russian Gazette)'에 기고문 발표를 통해 중·러 관계의 현황과 의미를 알렸다. 그리고 이튿날인 21일 중·러 양국 정상은 회담을 하고 두 개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하나는 '중·러 신시대의 전면적 전략파트너 관계의 심화를 위한 공동성명'이었고, 하나는 '2030년 이전의 중·러 경제협력의 중점 방향과 발전 계획에 관한 공동성명'이었다. 친강 외교부장은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질의응답이 없었다. 예년 사례와 비교하면 이는 이례적이었다. 특히 지난 20년 동안 5년마다 개최된 전인대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질의응답이 없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관계가 격화되면서 양국의 협력 가능성이 희박해진 가운데 중국 측의 관심도 저하되었다는 방증이었다. 이번 중·러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은 2001년, 2021년과 2022년에 이어 네 번째다. 2001년 중·러 우호협력조약 형식으로 발표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개의 성명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차이점은 중·러 양국의 협력 분야, 특히 경제 영역에서 협력의 범위가 해가 거듭될수록 확대된 데 있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추가된 경제협력 분야로 주목할 만한 사항은 농업, 공업과 광업 분야다. 식량안보를 위한 양국의 협력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 비료 사업을 강화할 것을 약속했다. 그 연장선으로 광물자원 분야에서 야금(冶金)을 포함해 광산자원의 장기적이고 호혜적인 공급 협력을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공업 분야에서 양국 정상은 양국의 기술 표준에 의거해 협력의 질적인 향상과 새로운 공급망의 구축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는 미국이 재편하려는 공급망에 대한 이들의 대응책이라 할 수 있다. 외교 분야에서는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양국의 일치된 인식과 입장이 다시 공식화되었다. 중·러 양국 정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을 촉구했다. 특히 시 주석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조망했다. 그는 과거에 전쟁이 최종적으로 대화와 담판으로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를 위해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일방적인 제재의 중단을 전제조건으로 다시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러 양국이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행동할 것을 밝혔다. 이는 유엔 중심의 국제 체계, 국제법에 기초한 국제 질서,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에 의거한 국제 관계의 기본 규범을 준수하고 존중하면서 국제 체제의 다극화와 국제 관계의 민주화, 다자주의와 인류의 보편 가치를 관철시킨 신형 국제 관계와 인류 운명공동체의 구축에 기여를 의미한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안은 인도와 몽골의 협력을 강조한 대목이다. 중·러·인, 중·러·몽 등 3국의 협력을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이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적 계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미국 전략 구상에서 최대한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려는 인도를 약한 고리로 인식하는 중·러 양국의 전술적 책략이라 할 수 있다. 중·러·인 3국은 2018년부터 3국 정상회담을 시작했으며 2019년에 2차 정상회담을 한 바 있다. 이후 코로나 사태로 재개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3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들의 연합군사훈련도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인도의 러시아산 무기뿐 아니라 에너지 구매량도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22년 2월 2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던 인도의 러시아 에너지 구매량은 10월에 20배 넘는 41억 달러로 확대되었다. 몽골과도 2017년부터 연합군사훈련이 시작되었다. 중·러·몽 3국 정상회담도 2014년부터 매년 개최되었으나 코로나 시기에 잠시 중단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제6차 회담이 재개되면서 3국 간 군사훈련과 더불어 경제협력도 한 층 더 가속화되고 있다. 2022년 9월 인도와 몽골은 중·러가 주도한 ‘동방-2022’ 연합군사훈련에 참가했다. 중·러·몽은 또한 작년에 ‘파워오브 시베리아2(Power of Siberia2)’ 가스수송관을 2024년 착공하는 데 합의했다. 2030년 완공 예정이지만 준공 시기를 앞당기는 것도 현재 논의 중이다. 2019년 완공된 ‘파워오브 시베리아1’ 가스관은 이르쿠츠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4000㎞에 달하는 수송관으로 연 380억 ㎥ 규모다. ‘파워오브시베리아2’는 시베리아산 가스의 수송을 몽골을 거쳐 중국에 바로 공급되는 구조를 갖출 것이다. 공급량 또한 500억 ㎥에 달할 것이며 몽골은 가스 공급에 통행료까지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의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중·러 양국 정상은 ‘쌍궤병행’을 최선의 해법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즉, 북한의 비핵화 과정과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 구축 과정을 동시에 진행하는 구상에 입장을 같이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러시아는 1차 북핵 위기 때부터 이런 입장을 견지해 왔다. 2017년 3월 중국은 이를 재포장했다. 중국이 애초에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제시한 것은 ‘쌍중단’과 ‘쌍궤병행’이었다. 그러나 이번 중·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쌍중단’이 빠진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의 입장 변화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북핵 문제에 있어 미국에 북한의 합리적인 우려에 부응하는 태도로 임할 것을 공동성명에서 주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러 양국이 최근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시험발사와 예고된 7차 핵실험을 북한의 당연한 자위권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따라서 미국이 한·미 동맹과 연합군사훈련을 하는 동안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는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올 초에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왜 유엔에서 결의안 도출에 실패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러 양국은 공동성명으로 향후 유엔에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한 결의안 채택을 반대하겠다는 포석을 미리 둔 것이다. 즉, 한·미 군사훈련이 지속되는 한 그리고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임하지 않는 한 중·러 양국은 북한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반도 안보 상황이 긴장 국면을 유지하는 한 중·러 양국은 이 일대에서 연합군사훈련은 물론이고 연합비행도 정기적으로 이행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중·러 양국의 군사훈련이 우리 서해와 동해에서 빈번해질 것이다. 또한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는 비행 행위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이런 중·러의 군사적 합동 행위는 결국 북·중·러 3국의 연대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중·러 정상회담의 공동성명 발표 전후에 드러난 중국 측의 행보를 보면 향후 한반도 주변의 국제 역학 구도는 진영 대결로 치달을 것이 자명하다. 이는 북·중·러 대(對) 한·미·일 대립 구도의 심화를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군사외교안보전략의 조정도 시급하다. 우리의 안보와 주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가의 경제 발전과 번영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가 밝혔듯이 ‘인도·태평양 전략’ ‘쿼드 워킹그룹’ ‘한·미·일 군사협력’ 등과 같이 우리 안보가 담보되는 소다자주의 군사협의체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혹자는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가 상기한 전략적 선택을 할 경우 중국 시장을 상실하거나 중국한테 경제보복을 당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만의 현실이 아니다. 전 세계 120개 나라가 중국을 최대 무역시장으로 가지고 있다. 미국의 전략구상에 동참하는 나라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이들도 우리와 같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전략 구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을 비롯해 서구의 많은 미국 동맹국들의 중국에 대한 경제 이익 규모가 우리보다 월등히 크다. 미국의 대중 무역 규모는 작년에도 신기록을 달성했다. 미국의 적자 또한 기록을 경신했다. 일본도, 유럽 국가들도 우리와 버금가는 대중 교역량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가 이들보다 규모가 더 큰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무역 구조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미국과 중국의 눈치만 볼 것이 아니다. 세계 정세의 흐름에 정확히 판단하고 전략 변화에 적극 참여하며 우리와 같은 운명을 가진 나라와 긴밀한 공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우리의 의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 기초로 오는 4월 26일 있을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서 우리는 긴밀한 공조 체계를 갖추는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3-04-0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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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속도내는 美 인태 전략... '괴물' 중국의 성장을 막아라 다음 달부터 미국과 인도·태평양 지역 주요 동맹 및 우방 정상들 간 만남이 줄을 잇는다. 윤석열 대통령도 4월 26일 미국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도 중남미를 순방하면서 미국을 경유할 예정이다. 5월에는 일본에서 G7 정상회담이 기약되어 있다. 앞으로 전개될 미국의 외교 행보에서 한 가지 확실한 전망은 중국 옥죄기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기는 불안한 분위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중국의 이 같은 우려는 친강 외교부장의 지난 7일 기자회견 답변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미·중 관계를 답변하는 자리에서 미국의 잘못된 중국 정책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그 재앙적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더 나아가 그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이성적이고 건전한 바른 궤도를 완전히 벗어났다"며 "미국이 말하는 경쟁은 사실상 전방위적 억제와 탄압이며,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인태전략)을 두고 그는 “자유와 개방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패거리를 만들고, 각종 폐쇄적이고 배타적 울타리를 만들며, 지역 안보를 수호한다면서 실제로는 대항을 유발하고 아·태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획책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중국이 “시종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상호 존중, 평화적 공존, 협력·공영의 원칙에 따라 중·미 관계의 건전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추동하는 데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위협팽창'이라는 전략적 불안을 해소하고, 제로섬 게임의 냉전적 사고를 버리길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실로 중국의 불안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욱이 중국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을 통해 중국은 이번 ‘양회’에서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제를 회복하는 데 전념할 의지를 상당히 강조했다. 여기에는 안정적인 국제 정세가 담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미국의 중국 정책은 이를 보장할 기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에 대한 압박과 견제가 올 한 해 더욱 기승할 것으로 보일 뿐이다. 이를 경제 분야에서도 감지한 듯 친강 외교부장은 "국제통화가 독자 제재에 쓰는 비장의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되며, 괴롭힘과 협박의 대명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달러 패권의 횡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와 더불어 ‘양회’ 공작보고는 세계의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두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과 억제를 상승시킨 결과 중 하나라고 날 선 비판을 했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과 견제 정책은 올해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을 우리는 미·중 양국의 국내 정치 일정에 근거해 유추해볼 수 있다. 미국은 2024년 대선이 기약되어 있다. 대만은 총통선거가 미국 대선보다 이른 2024년 1월에 예정되어 있다. 2025년에 미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영접할 것이다. 새 대통령이 현 대통령의 재선으로 조 바이든이 되든,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든 중국은 미국의 새 정부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 입장에서 2025년은 그의 3기 집권이 반환점을 도는 해가 될 것이다. 4연임을 생각한다면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2027년까지 경제 회복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양회에서 중국 경제성장률이 5% ‘전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중국이 이렇게 자신 없게 ‘전후’라는 표현을 쓰면서 성장률 전망을 한 것도 이례적이다. 그만큼 중국의 국내외 정세가 불안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방증이다. 이런 중국의 초조함과 불안감은 현재 미·중 경쟁 구도에서 미국이 공세적인 입장, 중국이 수세적인 입장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하면 시진핑 주석의 3기 통치의 성공에 대한 칼자루를 미국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기존의 소다자주의 협의체를 본격적으로 적극 가동할 것이고, 더 많은 소다자주의 협의체를 조성해 나갈 것이다. 현재 미국이 운영 중인 소다자주의 협의체는 쿼드(QUAD, 미국.인도.일본.호주 안보협의체), '칩4' 반도체 동맹,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비롯해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미국·캐나다·영국·호주·뉴질랜드 정보기관 공동체), 한·미·일 협의체 등이 있다. 이들은 경제, 기술, 안보 등 영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은 현재 동맹들이 양자 관계에서 추진 중인 외교·국방(2+2)협의체가 더욱 확산되어 모종의 소다자협의체를 양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선봉에 나서고 있는 나라가 일본과 호주 등이다. 일본은 동남아 지역에서도 이런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최근 필리핀과 준동맹 수준의 군사협력 합의를 도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은 또한 대만과의 관계 역시 전방위적으로 강화해나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미국이 소다자협의체에 의존하는 까닭이다. 미국이 중국을 단독으로 압박하고 견제하기에는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미국이 과거처럼 세계 경제력의 40% 이상 비중을 가지고 공공재를 동맹에 제공하면서 자국의 전략 이익을 더 이상 관철할 수 없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대선 유세 기간 동안에 강조했듯 동맹과 우방이 결속하면 세계 경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힘을 가지고 중국을 압박할 수 있다고 미국은 확신한다. 이들이 힘을 합쳐 결국 중국의 거침없는 부상을 견제하고 제어해야 한다는 논리가 미국 인태전략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이유는 한 가지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필요한 자원을 충족하려는 방식에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급속한 발전으로 더 이상 자원을 자급할 수 있는 상황을 지난 지 오래다. 에너지부터 식량, 광물과 기술 등 영역을 망라하고 중국은 이 같은 조달을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를 갖게 됐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질서, 제도, 법과 규범 속에서 원활한 수급이 이뤄질 수 없는 것이 현실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중국이 ‘괴물’로 변하면서 그 괴물이 과대한 식욕을 충족하는 데 오히려 이러한 질서, 제도, 법과 규범이 장애가 되고 있다. 중국이 오늘날 이를 무시하고, 위반하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 경제 규모가 5% 전후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공공재와 자원 조달을 전제로 한다. 특히 4차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자원 확보가 중국의 국가적 명운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4차 산업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자원의 충족 속도도 더욱더 가속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자원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중국이라는 ‘괴물’이 식탐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이런 식탐으로 중국 ‘괴물’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기존의 질서, 제도, 법과 규범을 장애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괴물’의 행동은 이를 모두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중국의 과욕을 미국이 이제는 통제해야 한다고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미국의 인태전략은 따라서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중국 ‘괴물’의 왕성한 식욕을 통제하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공재와 자원을 무작위로 무차별하게 독식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당위적 필요성의 인식이 작동한 결과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의 ‘괴물’과 같은 부상이 인류의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왕성한 식욕이 통제되지 않으면 이를 충당하기 위한 중국의 행동이 가치, 규범, 제도, 질서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위반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운 계산이 설 수밖에 없다. 중국은 자원을 이유로 남중국해를 자국 영해로 간주한다. 제3세계 자원 보유국의 경제적 취약점을 노리고 일대일로 사업을 명분으로 이들의 자원을 착취하는 수준의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 4차 산업의 발전 속도를 맞추기 위한 명분으로 지식재산권을 무시하고 기술 편취와 탈취하는 행동도 일삼고 있다. 14억 인구의 식품 기호가 급속도로 바뀌면서 세계 식량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인류가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 밖에 중국이 거대한 ‘괴물’로 변하면서 배설하는 쓰레기와 오염물질로 지구촌 환경생태계에 대한 위협을 인류가 우려할 수밖에 없게 됐다. 또 다른 목적은 소다자협의체를 통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것이다. 미국이 독자적으로 이를 수행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한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소다자협의체를 전방위적이고 다층적으로 결성하여 이들을 네트워크화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견제를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 이들은 합체할 것이다. 이들의 합체는 ‘트랜스포머’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즉, 다양한 영역과 분야에서 개별적으로 조성된 협의체가 합체될 때 트랜스포머와 같은 강력한 대항마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소다자협의체가 각기 다른 분야에서 각기 다른 나라로 팀을 이뤄 분업화되어 있어 그 실체를 아직 가늠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에 이 트랜스포머는 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트로이 목마와도 같은 존재로 설계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소다자협의체에 적극 참여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미국 인태전략의 설계 목적과 의도에 있다. 이에 참여하여 우리 국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참여국과 신뢰가 증강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런 신뢰 구축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신뢰를 얻기 위해 외교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신뢰는 언행일치에서 시작된다. 즉, 국제 정세와 안보 상황에 대한 인식을 이들 협의체에 참여하는 국가와 공유해야 한다. 더욱이 가치 중시를 우리 외교의 기조로 선언한 만큼 동맹·우방과 최소한의 인식 공유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인태전략보고서나 국방백서에는 이런 면모가 없어 보인다. 4월과 5월, 우리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동맹과의 인식 공유를 통한 국가적 신뢰를 재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3-03-09 0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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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中 '정찰풍선'에 상승기류 탄 美의 대중 압박 전략 미국이 자국 영공을 침범한 중국의 '정찰풍선'을 격추하자 중국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미국이 최근 짜기 시작한 중국 압박 프레임에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미국은 지난 2년 동안 중국 압박 전략의 명분을 마련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시나리오 착수 작업에 나선 정계, 학계, 관계 모두 행보를 같이해왔다. 가닥을 가까스로 잡아가던 미국에 호재가 발생했다. 이는 중국의 정찰풍선의 미국 영공 침입 사건이다. 지난 2일 미 당국은 중국의 정찰풍선이 자국 영공을 침입해 비행하는 것을 포착하게 된다. 중국은 이를 민수용 기상관측 비행선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측은 이런 중국의 주장을 부정하며 중국이 정찰 목적으로 띄운 것으로 판정했다. 그리고 다음날 5일로 예정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을 전격 취소했다. 미국은 4일에 급기야 이를 격추시켰다. 이에 중국은 과잉 대응이라며 강한 외교적 반발을 표출했다. 이 사건으로 미·중 양국 간 전략경쟁적인 관계를 전환시킬 수 있는 모멘텀을 조성하기는 당분간 더 어려워져 보인다. 이번 사건은 미국에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명분만 더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미국의 대중국 강경 정책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은 미국 영공이 얼마큼 무방비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미국에 2001년 9·11 테러 사태의 악몽을 다시 기억하게 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중국의 주장 역시 설득력 없는 이유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행풍선이 민수용이라 해도 민간 측에서 풍선의 비행 항로를 관측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탈하면서 타국의 영공에 침입할 경우 정부 당국에 보고했어야 했을 것이다. 이에 정부 당국은 타국의 관련 당국에 이 같은 상황을 역시 전달했어야 한다. 이런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중국은 여러 나라와 이른바 ‘핫라인’을 최고지도자에서부터 군당국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런 ‘핫라인’을 가동하지 않은 게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해명이 설득력 없어 보이기에 충분했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의 대중 압박 전략 명분은 더욱 강화되었다. 안 그래도 우린 최근 대중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미국 정·관·학계의 발 빠른 행보를 목도해왔다. 그 첫발은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의 4연임 가능성을 예단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를 그 명분의 프레임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27년에는 그의 4연임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그가 4임에 선출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그중 최선의 명분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 앞으로 4년 동안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다. 시 주석에겐 괄목할 만한 경제 성과를 등에 업고 다시 선출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이겠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미국의 대중국 공급망 재편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 중국 경제에 작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현재 미국 내에는 미·중 경쟁의 심화로 중국 경제가 작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 관측이 만연해 있다. 이런 예측에 근거해 미국의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시진핑 주석이 4임을 달성하기 위한 명분으로 대만 통일을 내다보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합참의장,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등도 이 같은 전망에 가세했다. 더욱이 2027년이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 100주년인 해라는 사실이 이들의 명분 설계에 기초가 되었다. 이 같은 군사적인 명분이 시 주석으로 하여금 대만의 무력통일을 꿈꾸게 하는 요소로 미국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따라서 중국 경제가 호전되지 못하면 시진핑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즉, 대만 통일이라는 과업을 달성해 4임의 정당성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풀이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은 2027년을 그야말로 대만해협 위기의 D-데이로 사실상 정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만의 국방과 방어 능력을 증강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2021년 1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미국 하원에서는 대만의 군사력 강화와 미국의 대만 방위에 관한 법안 8개를 상정했다. 이들 중 '대만정책법(Taiwan Policy Act)'만 입법되었다. 나머지 법안은 이후 11월 중간선거로 입법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법안에서 제기된 대만 군사와 미국의 방위 능력 제고에 관한 내용은 미국 의회가 12월에 채택된 국방수권법(NDAA)에 대부분 반영되었다.(본지 2022년 12월 28일자 “美 ‘4不1無' 약속한 것 아니었어?···日과 中공세 본격화” 참조). 이런 미국의 움직임 속에서 한·미 동맹과 대만 문제도 자연스럽게 연계되어 제기되고 있다. 대만 유사시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서부터 한·미 동맹의 가동성까지 민감한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지력 강화에 있다. 미국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를 증강하는 의지와 결의를 수 없이 비쳤다. 그리고 실제로 한·미 국방당국은 이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지난 1월 31일 한·미 국방장관은 회담 공동성명에도 확장억지력을 증강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날로 증강하는 북한의 핵위협에 우리 국민은 불안하다. 최근 실시된 대국민 여론조사도 이를 방증한다. 지난 1월 29일 설문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76.6%가 자체 핵무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시카고 국제문제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68%의 국민이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다시 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분석가들은 우리 국민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미국의 확장억지력에 대한 불신이 날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즉, 국민들 눈에 미국의 억지력 수단과 방법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비핵화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북한의 위협에 우리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인식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달 19일 CSIS 산하 한반도위원회가 공개한 ‘대북정책과 확장억제(North Korea Policy and Extended Deterrence)’ 보고서가 우리 국민의 인식과 결을 같이했다. 보고서는 “미래 어느 시점에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할 가능성에 대비해 기초 작업과 관련한 모의 계획 훈련을 동맹국들이 검토해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런 보고서를 두고 미국 내에 한국에 대한 핵억지력 강화를 위한 전략으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진단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성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과연 미국의 연구기관이 전술핵 배치 문제를 제기한 저의가 무엇일까 말이다. 특히 미국의 중국 전략이 2027년 프레임에 짜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주장하듯 대북 압박용일까, 아니면 또 다른 전략적 함의를 내포하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첫째, 북한의 핵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전술핵이 재배치되어야 한다면 얼마만큼의 핵무기가 필요한가. 냉전시대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무기는 상당히 많은 양이 배치되었다. 1958년부터 배치되었던 미국의 전술핵무기는 1963년에 600기를 넘었다. 이듬해에는 640기가 배치되었다. 이 시기 역시 북한과 중국을 겨냥할 목적으로 배치되었는데 이들은 당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들이었다. 이후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한 후 1974년에 약 740개의 전술핵무기가 남한 미군기지에 배치되었다. 중국은 2030년에 1000개, 2035년에 약 15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도 수백 개에 이를 것이다. 이런 북·중의 핵무기를 억제하기 위해 도대체 몇 개의 핵무기가 적당한지 물어야 한다. 핵으로 핵억지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격능력(second-strike capability)이 어느 정도 갖춰져야 한다. 둘째,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전술핵무기가 한국에 재배치되면 이에 대한 비용 지불 문제가 대두될 것이 자명하다. 미국도 경제적으로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한미군기지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유지·관리하는 데 그 비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드 배치 이후 2년 차부터 우리에게 유지관리 비용을 공동 분담 또는 우리가 부담하는 것을 고려한 것도 이의 방증이다. 국방수권법에서도 대만에 애당초 제공하고 지원하기로 한 무기들이 입법 과정에서 대만의 구매와 대만 구매 지원 등으로 전환되었다. 핵무기는 개발 비용이 제일 적게 들고 관리유지 비용이 그다음으로 비싸다. 핵 폐기는 이들을 더한 비용보다 더 들어간다. 셋째, 미국이 중국 전략을 2027년 프레임에 맞춰 짜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전술핵 배치의 저의와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 과연 북한에 대해서만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적용되는 것인지를 말이다. 대만 유사시에 미국은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의 역할을 고민한다. 즉 한국의 주한미군 전력자산의 운영을 검토한다는 뜻이다. 그럼 주한미군기지에 배치된 전술핵무기가 대만 유사시에 가동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일본의 주일미군기지에 미군의 전술핵무기 배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말이다. 일본은 1971년 오키나와 관할권이 주일미군에서 일본 정부로 이양된 이후 모든 핵무기를 철수했다. 이어서 같은 해 일본 정부는 비핵화 3원칙을 공표했다. 일본 참의원에서 이 결의안은 채택되었다. 일본의 비핵화 3원칙은 일본이 핵무기를 생산하지도 않고 보유하지도 않고 이의 자국 내 배치도 불허한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대만 유사시 중국에 핵억지력을 즉각적이고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괌에도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대안을 조속히 강구하는 모양새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술핵 배치든, 자체 핵무기 보유든 우리의 현실적 문제를 타진해야 한다. 즉, 북한·중국과의 핵 경쟁에서 우리에겐 상당한 정치·군사·외교적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으면 핵무장하면서 이들과 공존하는 방안을 외교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군사적으로 대칭하면서도 공존하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핵억지 능력을 갖추면 때로는 공존하는 데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대등한 군사력 수준에서 상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긴장이나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핵보유국 간 양보 없는 치킨게임의 시작은 자명하다. 즉, 외교적인 타협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외교적 능력이 구비된 이후에야 핵무장이 가능하겠다는 말이다. 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핵무기 보유라는 타이틀만을 가지고 우리가 모든 위험 부담을 떠안을 용의가 있을까라고 반문하고 싶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3-02-06 20: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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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美 "4不1無' 약속한 것 아니었어? …日과 中공세 본격화 2023년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월 대만의 총통 대선이 예정되어 있고, 미국도 2024년이면 대선 정국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내의 정치 논쟁이 한층 더 격화될 것이다. 대만 문제에 대해 미국이 초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미 의회와 행정부는 서로 더 강경하고 강력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 전념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는 이를 두고 두 당과 입법부와 행정부 간에 ‘누가 더 매파인지를 입증(outhawkish)’하는 공세적인 정치 싸움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또한 중국을 겨냥해 대만에서의 전략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미국이 더욱 배가할 것이라는 전망 또한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런 근거로 지난 두 해 동안 대만 관련 법안이 미 의회에서 약 10개가 소개되었다. 이들 중 '대만정책법(Taiwan Policy Act'만 입법되었다. 나머지 법안의 내용은 지난 12월 6일에 미 의회가 통과시킨 '국방수권법(NDAA)'에 고스란히 담았다. 4408쪽 분량의 국방수권법에서 대만 문제에만 3108쪽이 할애되었다. 미국의 대만 방위 및 방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책략을 이번 국방수권법에서 세부적으로,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담아냈다. 물론 지난 11월 14일 발리 G20 정상회의에서 가진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 내용에 비춰보면 미·중 양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을 같이하는 면모를 보였다. 중국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른바 ‘4불(不)1무의(無意)’를 제안한 데 근거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중국에게 하지 않을 것 네 가지와 의도가 없는 한 가지를 축약한 것이었다. 우선 미국이 중국의 체제를 존중하기 때문에 중국 체제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는다. 셋째, 반(反)중국을 위한 동맹관계를 강화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과 충돌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충돌의 가능성으로 바이든은 중국과의 디커플링, 중국 경제발전의 훼방과 중국 포위의 결과를 예로 들었다(본지 11월 30일, “시진핑이 달라졌다? …3년 만에 빗장 열고 유화 제스처” 참조).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미 백악관과 국무부에서 제공한 회담 결과 내용 자료에는 찾아 볼 수 없다. 미국 전문가들의 이야기처럼 “누군가 말은 했지만, 듣고 있지 않았을(They hear each other, but didn’t listen)” 개연성이 많은 대목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이든의 ‘4불, 1무의’는 중국 외교부의 발표 자료이기 때문에 허튼소리는 아니었을 가능성도 높다. 아마도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축약·정리해 중국인이 좋아하는 방식, 즉 숫자로 이를 정리·요약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미국 전문가들의 말처럼 미국이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입장 표명한 것이라 우리가 현혹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대만의 독립을 지지한 바 없었고, 중국을 포위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긴 하다. 그리고 중국과 충돌 방지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도 미국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미국의 국방수권법이 존재한다. 이번에 통과된 국방수권법에는 미국의 대만정책이 대만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기정사실화(a fait accompli)’된 상황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법안의 중대한 목적 중 하나라고 명시했다. 여기서 ‘기정사실화’의 의미는 미국이 반응하기 이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을 동원하여 대만을 선제공격하여 정복하는 상황이다. 이런 대비태세를 미국 혼자만이 갖추겠다는 것이 아니다. 국방수권법안은 군사적 협력 의미에서 협력 대상의 파트너를 또한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일동맹, 한·미동맹, 호주·뉴질랜드와의 동맹(ANZUS), 미국의 중대한 안보협력파트너인 싱가포르(a Major Security Cooperation Partner of the United States), 오세아니아지역의 미크로네시아, 마셜제도, 팔라우 등을 포함한 남태평양지역의 열도(The 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 the Republic of the Marshall Islands, the Republic of Palau, and other Pacific Island countries),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을 포함한 유럽연합국가와 나토(NATO) 회원국 등이 포함됐다. 특히 나토 회원국과는 대응계획을 마련하는 데 공조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사실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국방수권법의 대외관계 분야에서는 대만과 관련하여 '대만 회복성 제고 법안(Taiwan Enhanced Resilience Act)'을 소제목으로 하는 대목을 주목해야한다. 대만의 방어와 방위 능력 향상을 골자로 하는 미 의회의 지원을 정당화하는 법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특히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 강화로 인해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고 불정당한 불이익을 받았을 때를 대비하겠다는 미 의회와 국방 당국의 의지도 강조되었다. 여기에는 대만을 겨냥하여 영향력 발휘와 정보활동에 대해 미국이 대응하는 전략(Sec. 5513),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 보복에 맞대응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팀(Sec. 5514)과 중국 센서십(언론 검열)과 행동 그룹(Sec. 5515)의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즉, 대만이 중국에 비군사적인 수단으로 보복이나 불이익을 받을 경우에 미국이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대목이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대응방안도 모색할 것을 미 의회가 주문한 것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대만이 누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와 권한 또한 강화시켜나갈 의지를 이번 국방수권법에서 명확히 했다. 이런 의미에서 국방수권법은 국제사회에서 대만이 유의미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할 것도 주문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에도 대만이 유의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전략 마련도 요구했다. 특히 팬데믹 유행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상황에서 인구 2200만명의 대만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참여하는 것은 인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보편적 인류가치를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중국의 반대로 대만은 2017년부터 정치적인 이유로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 WHA)에 초청받지 못했다. 대만 상공과 근처 영공을 비행한 민간항공기의 편수만 해도 2018년 기준 175만 편이었다. 이에 탑승한 탑승객만 해도 6890만명 이상이다.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보편적 인류 가치의 관점에서도 대만의 국제민간항공기구 참여는 반드시 관철되어야하는 부분이다. 특히 중국이 방공식별구역(ADIZ)을 법적 효력과 구속력이 없는 규범으로 치부하면서 이를 위반하는 군사적 행위를 일삼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연 7000만명의 목숨을 담보하는 중국의 군사적 도발과 도박을 국제사회가 더 이상 수수방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 국방수권법으로 미 국무부의 대만해외군사재정(Department of State for Taiwan Foreign Military Finance) 지원금을 대폭 확대했다. 미국은 1961년의 해외원조법에 따라 대만에도 지원할 수 있는 상한선을 연 20억 달러로 책정했다. 그럼에도 미 의회는 대만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앞으로 3년 동안 예외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동 해외원조법을 일부 수정했다. 이번 개정을 통해 국방수권법은 2023, 2024, 2025년 어느 한 해를 미 국무부가 선택하면 연 50억 달러로 지원금을 확대·제공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SEC. 5503). 이 외에 미 국무장관에게 상기한 지원금의 부족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권한을 제공했다. 미 국무장관은 동 재정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은, 가령 대만 방어를 위한 훈련(training program)의 운영을 위해 연간 200만 달러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국방수권법은 또한 미 대통령이 연 100억 달러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국의 무기 재고를 임의대로 대만에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SEC. 5505)를 제공했다. 또한 긴급상황에서 미국의 재고물품과 자원 중 미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대만에 즉시 공급할 수 있는 수준도 연간 2500만 달러로 획정했다(SEC. 5505). 대만을 둘러싼 미·중 경쟁관계에서 우리에 대한 참여와 지지 요청도 자명하다. 왜냐면 미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대응 전략과 함께 미군 및 동맹국 군사자산 조달 계획을 보고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국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 대비해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의 군 가용성과 기동성 등에 대한 조사도 병행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동맹관계를 가진 우리나라와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평가 작업도 수반될 것이다. 이런 의미로 일본은 지난 12월 16일 국가안보전략과 국방전략, 방위력 정비계획을 채택했다. 여기에 핵심은 군사안보 방면에서 미국과 모든 것을 합체(integrated)하는 구조로 군사전략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기체계에서부터 작전체계까지 다 포함된다. 일본이 미국과 군사안보에서 같은 마음과 몸으로 합체해 움직이는 데는 나름의 명분이 있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 위협뿐이 아니다. 대만에 있는 일본 주재원이 더 강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2022년 9월 30일 기준, 대만에 주재하는 일본인의 수는 1만5956명으로 미국인(1만1462)과 한국인(4843명) 등보다 많다. 미국인도 적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미·일이 의기투합할 수 있는 정당한 명분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미·일 양국은 이른바 ‘비전투 병력을 통한 탈출(non-combatant evacuation)’ 작전 수립을 착수한 지 오래다. 오늘(28일)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다고 한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행보를 어느 정도 고려해 작성되었는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우리의 참여 목표와 취지를 무슨 명분으로 정당화했는지 국민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명분이 설득력이 없다고 국민이 느끼면 이는 중국을 두려워하는 우리 국민의 불안 심리를 또다시 자극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과 올 한해에만 6차례 이상의 3국 회담을 가졌다. 따라서 이들의 것과 보다 조율되고 맥락을 같이하는 우리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나오길 기대한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2-12-2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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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시진핑이 달라졌다? …3년만에 빗장 열고 유화 제스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3년 동안 걸어 잠근 빗장을 풀고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2019년 1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창궐하고 2020년 1월 미얀마를 방문한 이후 이후 첫 외출을 지난 9월 15일에 했다. 그의 첫 행선지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였다. 그곳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두 달 뒤 11월 16일 G20 정상회의에 대면 참석을 위해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했다. 또 18-19일에 태국을 공식 방문하고 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근 3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외교 행보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미국과의 갈등이 지난 8월 미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으로 최고조에 이른 이후 미·중 정상회담의 개최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국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되었고 이밖에 그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 G20의 수장들 대부분 그와의 약식회담(a pull-aside meeting)을 갖기 위한 외교 쟁탈전을 벌여야만 했다. 15일 G20 정상회의 종료 후 그는 8개국 정상과의 약식회담 일정을 소화해야했다. 쉴틈 없는 일정에 그가 각 회담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약 30분에 지나지 않았다. 한·중회담이 예외가 아닌 이유였다. 그리고 이튿날(16일) 저녁 시진핑은 유엔 사무총장과 이탈리아 총리를 만난 후 태국으로 출국했다. 다음날에도 그는 못 다한 회담을 이어나갔다. 여기에는 일본과의 정상회담도 포함됐다. 이 중 세계의 관심사는 단연 미국과의 정상회담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2021년 취임 이후 두 정상이 처음으로 대면 회담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간 두 정상은 화상회의만 1회, 영상통화 1회, 그리고 전화통화만 3회 가졌다. 총 5번 대화를 했지만 만남만 못하다는 것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겠다. 두 정상이 만나서 이야기하고픈 마음이 간절했는지 발리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G20 정상회의가 개최되기 전날인 14일에 회담을 가졌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가진 시진핑의 약식회담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지난 3년간 회담국가와의 관계를 악화시킨 요인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피했다. 불과 작년 7월만 하더라도 시진핑은 대만문제를 건드리면 ‘(미국의) 머리를 깨부순다’ ‘(미국이) 불에 타죽는다’ 등 강한 수사로 미국을 겁박했다. 그러나 이번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대만문제를 중국의 내정문제라며 이에 대한 미국의 존중을 ‘점잖게’ 요구했다. 그 이상의, 그 이하의 어떠한 발언도 가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약식회담에서도 시진핑은 사드를 암시하는 발언을 삼갔다. 예전의 정상회담뿐 아니라 장관급 회담에서 모든 중국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양국의 중대 관심 사항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것으로 회담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번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 내용에서 이와 같은 언급이 전혀 없었다. 중·일회담에서도 역시 지난 6월 현역 자위대를 정보관으로 대만대표부에 파견하는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당시에 중국 관영매체 사설은 일본의 행각을 도발이라며 ‘한 대 맞아야 정신 차릴 것’이라는 문구를 머리기사로 올렸다. 이처럼 중국이 지난 3년 동안 은둔생활하며 내뱉었던 과격한 발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런 연유에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중국의 국익에 중요한 나라들과 대척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면모는 그가 회담국과의 관계 회복과 대화, 그리고 협력을 강조한 데서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둘째 공통점은 관계 개선의 의사를 분명히 전한 데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궤도에 오를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국과도 분리할 수 없는 협력파트너로서 세계의 번영에서 중요한 책임이 있기에 중국과도 이런 국익 부분에서 광범위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략적 소통의 강화를 통해 ‘정치적 신뢰’를 쌓자고 전했다. 일본과의 관계도 그 중요성이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성의를 다해 서로 대하며 신뢰를 가지고 교류할 것을 요구했다. 중·일 양국이 서로 협력 파트너로 서로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공통된 정치의식에서 정책 입안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일 양국이 상호존중하며 신뢰를 증진시키고 의구심을 희석시키며 이견이 있는 현안을 공동 관리할 것을 전했다. 이런 시진핑의 서두 발언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것이 보였다. 우리에게 정치적 신뢰를 구축하자고 요구한 대목이다. 우리와의 역대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의식한 이유 때문에 우리와 ‘정치적’ 신뢰를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우리와의 정치적 신뢰를 발언한 것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입장의 문제를 ‘공동 관리(管控)’하자는 것은 미국에나 할 법한 발언이지만 일본과의 관계를 그만큼 중시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이다. 물론 일본을 미국과 동격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일 양국이 당면한 도전과제가 미·중 양국의 것과 유사한 수준의 이해관계의 속성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셋째 공통점은 소통과 협력을 강조한 점이다. 미국과 한국에 대해 시진핑은 경제현안의 ‘정치화(politicization)와 안보화(securitization)’를 피할 것을 유독 강조했다. 경제현안이 시진핑의 말대로 정치화, 안보화되는 순간 협력을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전례 때문이다. 세계는 이와 같은 결과를 수없이 경험했다. 인류가 당면한 비군사적이고 비정치적인 분야에서의 위협 요소의 해결, 즉 이른바 ‘비전통안보’ 현안의 해답은 다국 간의 협력에 있다. 가령, 석유와 같은 전략물자의 안정된 공급 확보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다. 석유야말로 비전통 안보분야에서 국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안 중 하나다. 세계가 1970년대 초 ‘오일 쇼크’를 경험하면서 산유국은 석유를 무기화했고, 산유 수입국은 더 많은 물량 확보를 위해 평소에 강조한 이타적인 협력 태도에서 이기적으로 변했다. 석유가 민감한 국익문제이기 때문에 이의 확보문제는 정치화되고 안보화되었다. 그러면서 오늘날까지 석유에 대한 해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들 간의 한때 성행했던 ‘공동구매’의 꿈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이렇듯, 국익 현안이 비록 전통적인 안보요소가 아닐지언정 정치화, 안보화되는 순간 협력을 기대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 같은 역사적 교훈을 시진핑은 앞으로 미·중, 한·중 관계의 발전에 초석이 되어야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한 것이다. 시진핑의 약식회담에서 눈여겨볼 만한 다른 점도 풍성했다. 미국과의 회담에서 그는 미·중관계가 ‘제로섬’이 아닌 점을 누차 강조했다. 서로를 거울삼아 협심하여 같이 발전할 것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이기고 네가 지는’, 즉 ‘너 죽고 나 사는’ 식의 관계는 서로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을 잠식시킬 뿐 아니라 인류 발전에도 불행만 가져다줌을 상기시켰다. 그는 더 나아가 대만문제와 관련해서도 내정이라며 미·중 양국 간에 넘지 말아야 할 선임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대만의 독립문제와 대만해협의 안정문제가 물과 기름과 같이 분명히 차별되고 융합될 수 없는 속성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점과 관련하여 시진핑은 바이든 발언에 고무된 것 같아 보였다. 바이든이 시진핑에 전한 미국의 입장, 이른바 ‘4불(不)1무의(無意)’ 제안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이 중국에게 하지 않을 것 네 가지와 의도가 없는 한 가지를 뜻한 것이었다. 우선 미국이 중국의 체제를 존중하기 때문에 중국 체제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는다. 셋째, 반(反)중국을 위한 동맹관계를 강화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과 충돌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충돌의 가능성으로 바이든은 중국과의 디커플링, 중국 경제발전의 훼방과 중국 포위의 결과를 예로 들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특이점은 우리에 대한 인식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와의 정치적 신뢰를 강조한 사실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만큼 미·중 경쟁시대에 한·중관계의 발전 토대가 정치적 신뢰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중국이 앞으로 어느 정도 견지하느냐가 한·중관계의 결정적 요소라는 점을 자각한 결과다. 이런 발언으로 우리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전화되었다고 예단하기에는 이르겠다. 그러나 한·중 수교 30년을 맞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이 최소한 한·중관계에서 제일 취약점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할 의사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를 중국과 정치적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로 적극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의 약식회담 분위기에 도취되면 안 될 것이다. 외교는 외교에서 끝내야 한다. 외교의 장을 떠나는 순간 바깥 세상은 생존과 국익을 위한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미·중 양국 정상이 3시간 넘는 회담을 가지면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 종료 불과 열흘 만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5일 미국 내에서 중국 화웨이(華爲)와 중싱(中興, ZTE) 정보통신기업 제품의 수입과 판매 전면 금지를 선포했다. 미·중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현타’(현실자각타임)이 오는 순간이다. 우리 또한 이런 외교 현실을 보면서 자아도취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중국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 영화를 각각 한 편씩 상영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한한령’의 해제 조짐이 보이는 것으로 오판하면 안 된다. ‘한한령’에도 구체적인 기준과 항목이 있다. 이의 해제에서도 순서가 있다. 가령, 우리 방송의 수신 해제에서부터 우리 드라마의 방영은 물론 우리 연예인 출현의 광고 방송까지 허용돼야 한다. 한·중관계가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사사건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때론 우리도 긴 호흡을 가지고 중국식 표현으로 ‘만만디(慢慢得, 천천히)’하게 한·중 양국관계를 견인하고 중국의 언행에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 ‘포커 페이스(poker face)’의 유지가 한·중관계에서는 필요하겠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2-11-30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