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객원논설위원montlim@hanmail.net
- 아주경제 객원논설위원
- 국회 입법정책연구회 상임 부회장
- 前) 국회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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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칼럼] 솔솔 불거지는 정세균 구원투수론 [임병식 위원] 아마 내일 자정께면 서울과 부산시장은 결정된다. 치열했던 만큼 결과를 놓고도 분분한 해석이 예상된다. 사실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보궐선거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여야는 정권 재창출과 정권 교체를 놓고 격전을 치렀다. 선거는 흑색선전과 네거티브로 얼룩졌다. 정권 안정과 정권 심판 사이에서 이제 유권자들의 선택만 남았다. 선거 결과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내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초반만 해도 낙승을 자신했다. 근거는 충분하다. 국회의석 180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에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도 안정적으로 관리됐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압도적인 조직력은 강점이다. 국회의원 49석 가운데 41석, 구청장 25곳 중 24곳, 서울시의원 109명 가운데 101명. 이 정도면 민주당 손아귀에 있다 해도 과언 아니다. 하지만 “바람(민심)을 이기는 조직(세력)은 없다”는 말을 실감하며 전전긍긍이다. 선거 와중에 터진 악재는 타격이 컸다. LH 땅 투기 의혹에서 시작된 부동산 이슈는 민주당 국회의원들로 확산됐다. 여기에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국회의원은 기름을 끼얹었다. 가뜩이나 성난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민주당 지도부는 수습에 나섰지만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다. 사실 부동산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다. 보다 근본적인 건 쌓이고 쌓인 오만함과 독주에 대한 분노다.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다. 민주당이 싫어 등 돌리고 있다. 집권 초기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80%대 초반이었다. 지금은 30%대 초반으로 주저앉았다. 50% 가까운 지지층이 이탈했다.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세에 접어든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비판적 지식인들은 무능과 오만, 위선을 꼽는다. 한때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586 정치인들이 보여준 민낯에 지지층은 고개를 돌렸다. 당내 언로는 꽉 막혔다. 반대 목소리는 찍어내고, 적으로 돌렸다. 심지어 검찰과 감사원, 사법부마저 적폐로 몰았다. “문재인 정부에는 민간인 사찰 DNA가 없다”고 했지만,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징역 2년 6개월을 받고 구속됐다. 조국 자녀 관련 입시 비리 혐의 또한 7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급격한 민심 이반은 이 같은 결과다. 모든 사안을 이념 대결과 적폐로 몰아간 과오를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4·7보궐 선거는 끝이 아니다.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예방주사로 여기고 전열을 가다듬는다면 디딤돌을 놓을 수 있다. 거꾸로 적전 분열은 더 큰 패착을 피하기 어렵다. 가장 타격을 입게 될 사람은 아무래도 이낙연 선대위원장이다. 당헌·당규까지 개정해 가며 후보를 낸 책임이 작지 않다. 패한다면 선수 교체와 강판 요구가 뒤따를 게 빤하다. 지지율 하락도 불가피하다. 호남을 중심으로 선수 교체론도 솔솔 나오고 있다. 유력한 대안으로 정세균 총리가 거론된다. 지지율은 낮지만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 그는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해왔기에 당내 기반이 두텁다. 무엇보다 실물경제와 정책집행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통합 리더십도 돋보인다. “이재명은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인식과 맞물려 유력한 제3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만일 선거 결과가 좋지 않다면, 정 총리에게 균형추가 기울 것은 분명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신호다. 20대 대선은 11개월 앞이다. 안정적이며 능력 있는 후보 발굴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정책 역량에서 돋보이는 정세균과 다이내믹한 이재명 간 경선은 흥행에도 도움이 된다. 국민들은 차기 대통령 덕목으로 국정운영 능력과 통합을 꼽고 있다. 정 총리는 두 차례 당대표, 산업자원부 장관, 6선 국회의장, 국무총리까지 경륜을 갖췄다. 또 상식적인 언행은 여야를 떠나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공직사회와 경제계도 호의적이다. 정치권이 ‘저평가 우량주’ 정 총리를 주목하는 이유다. 다만, 지나친 신중함은 걸림돌로 남아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 경쟁력 있는 제3후보 등판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만일 잠복한 민심을 감지하지 못한 채 대선을 치렀다면 아찔하다. 위기를 인지했다는 건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4·7 재·보궐 선거는 백신이다. 민심 풍향계를 읽고 가다듬으라는 경고다. 이래저래 4·7 보궐선거는 어떤 형태로든 민주당 대선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불공정과 불평등, 계층 양극화, 기후변화 등 다양한 현안에 직면해 있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은 “나는 개인적으로, 학습을 게을리하여 실력은 부족하면서도 지적 우월감, 윤리적 우월감으로 무장한 ‘민주 건달’이 되지 않을 것을 자경문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오늘날 욕받이가 된 586 정치인들. 마지막 할 일은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후보를 세우는 일이다. 4·7 선거를 쓴 약으로 여길 때 새로운 길은 열린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후보는 누구일까. 계파를 떠난 열린 논의를 기대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2021-04-06 02: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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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칼럼] 중국에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임병식 위원]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전쟁이다. 인조는 청나라 군대에 쫓겨 남한산성으로 숨어들었다. 40여일 농성 끝에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했다. 청과 화친을 주장한 최명길은 오랫동안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 훗날 정민시(1745~1800)는 “최명길이 없었다면 국가와 사직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재평가했다. 박세당(1629~1703)도 “조선 사람들이 편히 잠자리에 들고 자손을 보존한 것은 모두 최명길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병자호란 당시 명나라는 지는 해, 청나라는 뜨는 해였다. 그런데도 사대주의에 매몰된 조선 사대부들은 명과의 의리를 고집했다. 조선은 청을 자극했고, 병자호란을 자초했다.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했어도 인조정권은 명을 떠받드는 데 급급했다. 최명길은 현실을 우선했다. 나라가 보전된 다음에야 와신상담도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명은 절대적 우방도 아니었다. 인조 책봉을 2년 반 이상 미루며 조선을 길들였다. 380여년이 흐른 지금은 달라졌을까.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행태는 여전하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앞세워 한반도 역사를 자신들 역사로 날조하고 있다. 또 사드를 이유로 치졸하게 보복했다. 중국에서 한국 연예인을 몰아냈다. 또 한국 기업의 숨통을 조였다. 롯데는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고 중국 시장을 접었다. 5년째를 맞은 한한령(限韓令)은 계속되고 있다. 동네 깡패만도 못한 G2 중국의 모습이다. 한국을 속국으로 여기는 오만한 태도다. 최근에는 김치 분쟁을 촉발했다. 김치 종주국은 한국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네티즌과 함께 억지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김치 논쟁에 불을 지폈다. 그는 중국인 유명 음식 블로거와 함께 김치 담그는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 누리꾼들은 격돌했다. 한국 문화를 존중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정부 대응은 소극적이다. 동북공정, 사드 보복 당시에도 말을 아꼈다. 김치 논쟁도 관망 중이다.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외교정책 때문이다. 경제적 불이익을 우려해 가급적 중국과의 충돌을 피하려는 의도다. 한데 정작 중국은 우리 입장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한한령에서 확인됐듯 오만방자하다. 주권 국가로서 인내하기 힘들다. 반면 미얀마 군부에는 일관된 메시지를 내놓았다. 쿠데타 직후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충격적인 소식에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군부를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6일 SNS에 “미얀마 군과 폭력적인 진압을 규탄하며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을 비롯해 구금된 인사들 석방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아시아 국가 정상으로서는 처음이다. 제3국 문제에 대해 정부가 단호한 메시지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미얀마 사태로 60명 가까이 숨지고 1700여명이 체포됐다. 국제사회는 한목소리로 군부를 비난하고 있다. 5·18을 경험했기에 우리는 폭넓게 공감한다. 우리 정부가 미얀마 사태에 강경 메시지를 낸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홍콩 시위, 신장·위구르 인권 유린 당시와 비교하면 왠지 불편하다. 두 곳 모두 폭력 진압으로 얼룩져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우리 정부는 중국 눈치를 보느라 침묵했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생각했다면 같은 잣대를 대야 맞는다. 중국은 두려운 상대, 미얀마는 만만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대응이다. 바이든 취임 이후 미국은 가치 중심으로 국제사회와 연대를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시대 훼손된 외교를 복원하면서도 대중국 정책 기조는 승계했다. 바이든은 시진핑과의 첫 통화에서 중국이 “홍콩 인권 활동가를 탄압하고 신장·위구르에서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우리 정부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지난해 10월, 유엔은 홍콩 보안법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당시 39개국이 참여했지만 한국은 불참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380년 전 허약한 조선이 아니다. 교역 규모 세계 10위, 성숙한 민주주의는 국제사회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미국이란 우방도 곁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전략적 모호함을 내세우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왔다. 바이든 정부에서도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한다면 갈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분명한 가치를 놓고 움직일 때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오는 6월 한국은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호주, 인도와 함께 초대 받았다. 이들 국가는 민주주의라는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중국에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주권국가라면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2021-03-09 22: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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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칼럼] 강남에서 마주친 태극기 부대 [임병식 위원] 봄기운으로 완연한 주말, 강남대로를 걸었다. 가벼운 옷차림에서 봄은 벌써 도착했다. 강남역 주변은 언제나 그러하듯 활기차다. 익숙한 풍경 사이로 ‘이건 뭔가’ 싶다. 태극기 부대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증오하는 패널과 펼침막을 들고 있다. ‘4.15 부정 선거’가 단연 눈길을 끈다. 선거 끝난 지가 언제인데? 그들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 봄, 청년, 강남과 어울리지 않는 생뚱한 풍광이다. 그들은 정말 4.15 총선을 부정 선거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한가. 하필 강남 한복판일까. 자신들 말에 젊은이들이 공감할 것으로 믿나.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잠시 지켜봤다. 10여분이지만 그들도, 행인도 따로였다. 청년세대 누구도 태극기 부대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태극기 부대 또한 청년은 관심 밖이다. 단지, 자신들끼리 떠들며 유튜브 방송을 진행할 뿐이다. 그들은 언제부터 강남역 주변을 무대로 삼았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후가 아닐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출몰 횟수는 늘었다고 한다. 광화문 집회에는 전국 단위 태극기 부대가 몰린다.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주변은 관광버스로 가득 찬다. 정부 정책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한풀이 하는 날이다. 반면 강남 집회는 소규모다. 대부분 서울에 사는 이들로 추정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한창 때는 잘 나갔던 이들이다. 그들이 강남 한복판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우선 유동인구가 많은 밀집지역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수원, 광명 등 수도권 광역 연결망도 고려했다. 강남역 주변은 광역 노선버스가 지난다.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자신들이 접근하기도 맞춤하다. 그래서 경로당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대신 뜻 맞는 이들끼리 모인다. 수다 떨고 어울리며 서로 인정하고 위로 받기 위해서다. 지난날을 보상받기 위한 ‘인정투쟁’이다. 악셀 호네트는 <인정투쟁>에서 모든 사회적 갈등 뒤에는 인정 욕구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인간을 인정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규정했다. 우리는 서로 인정받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긍정적 자아를 만든다고 한다. 반대로 지속적으로 무시당할 때 분노한다. 분노는 마침내 폭동이나 봉기와 같은 사회적 투쟁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신사의 나라’ 선진국 영국에서 벌어진 ‘영국 폭동’을 그는 인정투쟁이란 틀로 해석했다. 강남 태극기 부대도 이런 시각에서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이해된다. 젊은 날이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에 대한 분노다. 산업화, 민주화 고비마다 주역이었다고 믿어왔다. 박정희와 박근혜에게 투영시키며 노년을 맞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랑스러운 흔적은 몽땅 적폐로 몰렸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꼴통 보수’가 됐다. 심리적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 안에서는 행복하기 때문이다. 인정투쟁은 편향동화와 맞물릴 때 신념이 된다. 보고 싶은 정보만 받아들이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괴물이 된다. 파하드 만주가 쓴 <이기적 진실>에 나온 사례다. 2004년 대선 후보 경쟁에서 선두는 민주당 존 케리 상원의원이었다. 선거 결과 케리는 2% 차이로 공화당 부시에게 패했다. 케리 낙선은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주도했다. 케리는 베트남 전쟁 영웅이었다. 그런데 참전 동료들로부터 외면 받고 낙선했다. 왜 일까. 케리는 전쟁이 끝난 뒤 베트남전 참상을 증언하고, 책도 썼다. 미군이 민간인을 살상한 불편한 진실이다. 참전 용사들은 케리를 거짓말쟁이, 반역자, 지휘 부적격자라고 공격했다. 전국적인 낙선 캠페인은 성공했다. 그들에게 케리는 자신들 과거를 부정하는 악이다. 자신들이 수행한 전쟁이 자랑스러우려면 케리는 부정되어야 한다. 케리 낙선에 나선 이유는 바로 과거를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인정투쟁과 정보 선택은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그들은 케리 주장은 거짓이라며 SNS와 트위터, 페북으로 왜곡된 정보를 공유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에겐 호재였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믿고 싶은 정보만 편향적으로 받아들였다. 지난 대선에서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믿고 싶은 정보만 선택하며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강남 태극기 부대도 마찬가지다. 지난 세월을 인정을 받고 싶어서다. 그래서 왜곡된 정보를 진실이라 믿고 열심히 퍼 나르고 있다.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지만 유튜브를 하며 스스로 만족해 한다. 유튜브 방송이 갈수록 극단화되는 이유다. 그 안에선 투명한 선거 결과조차 부정선거로 둔갑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그랬듯 태극기 부대가 간과한 게 있다. 그럴수록 공감은커녕 비난과 혐오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정말 4.15 총선을 부정 선거라고 믿고 있는 걸까. 아무리 인정받고 싶다 해도 객관적 사실마저 부인하는 현실은 생뚱맞다. 2021-03-01 01: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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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칼럼] 거짓 해명에 무너진 사법부 신뢰 [임병식 위원] 사회를 지탱하는데 신뢰는 얼마나 중요한 자산일까. 언론학자 파하드 만주는 <이기적 진실>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1954년, 사회학자 밴 필드는 이탈리아 남부에 도착했다. 북부는 잘 사는데 남부는 왜 가난한가? 아홉 달에 걸친 관찰 끝에 내놓은 결과는 ‘신뢰’였다. 그는 남부 주민들 사이에 만연한 불신을 가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신뢰도가 낮다보니 생산성은 낮았다. <뒷걸음질 치는 사회의 도덕 기반>은 그 결과물이다. 믿음이 강한 공동체는 결속력도 강하다. 그런 사회는 소통이 원활하고 정보 유통도 빠르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안다는 말이 있다. 믿고 왕래하다보니 속사정까지 훤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울력, 두레, 품앗이는 교환 노동이다.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노동 방식이다. 이번에 도와주면 다음에는 내가 도움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된다. 그렇지 않다면 헛걸음할 이유가 없다. 신뢰가 있는 공동체가 잘 사는 건 당연하다. 신뢰는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있다. 신뢰도가 높은 지역 주민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사망률이 낮았다. 불신 사회에선 긴장과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 반면 신뢰가 높으면 긍정적 에너지가 넘칠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은 신뢰를 ‘사회 자본’을 구성하는 핵심 자산으로 봤다. 공자도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언급하며, 믿음이 무너지면 개인이든 국가든 존립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거짓말 논란은 사법부 불신을 촉발했다. 두 차례 해명과 사과에도 불구하고 불신은 확산되는 양상이다. 김 대법원장은 19일, “부주의한 답변으로 실망과 걱정을 끼쳐 사과한다”고 했다. 임성근 부장판사 사의를 반려한 것에 대해선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 법과 규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했다. 또 “헌법적 사명을 다하겠다”는 말로 비등한 사퇴 압박을 일축했다.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어이없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김 대법원장 때문에 법원 신뢰가 추락했음에도 여전히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녹취록에서 김 대법원장은 “툭 까놓고 얘기하면 (여당이) 탄핵하자고 설치고 있는데 사표를 수리하면 무슨 이야기를 듣겠냐”고 했다. 사법부를 정치권력에 예속시켰다는 비난을 듣기에 충분한 발언이다. 그런데도 국회에는 거짓 해명했고, 이후 ‘불명확한 기억’, ‘부주의한 답변’이라며 머뭇거리고 있다. 대법원장도 거짓말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거짓말이 불가피했다면 대법원장으로서 솔직한 사과는 당연하다. 그런데 일반 범죄자들처럼 구차한 변명을 늘어놨다. 더구나 국회가 탄핵할 때까지 내버려둔 것은 직무유기다. 흠결이 컸다면 대법원에서 자체 처리하는 게 바람직했다. 민주당은 ‘헌법적 가치 위배’를 탄핵 근거로 삼았다. 그렇다면 대법원 자체적으로 파면도 가능했다. 그런데 입법부에 넘김으로써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고 있다. 일선 판사들이 탄핵을 순수하게 보지 않는 이유다. 최근 인사는 이런 시각에 힘을 싣는다.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한 재판부는 옮기고, 우호적이라고 여겨지는 재판부는 잔류시켰다는 말이 나온다. 인사를 통해 재판에 개입하려한다는 합리적 의심이다. 앞으로 해당 판사들이 정권에 우호적으로 판결할 가능성은 별개다. 의심받을 소지가 있는 인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신뢰는 훼손됐다. 그런데도 김 대법원장은 “사법개혁 완수”를 입에 올렸다. 낯익은 화법이다. 조국 사태 초기 조국은 “검찰개혁 완수”를 들먹이며 버텼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또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는 점에서 둘 다 같다. 후배 법관, 변호사회, 대한법학교수회, 서울대 77학번 동문, 사법연수원 15기 동기까지 사퇴를 요구하는 마당이다. 물론 사퇴는 핵심 쟁점이 아니다. 어쩌다 대법원장마저 거짓말 대열에 합류하게 됐는지 현실에 대한 직시다. 법정에선 위증죄를 무겁게 처벌한다. 거짓말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재판 결과에 악영향을 미친다. 거짓말로 누군가 인생이 바뀐다면 사법 신뢰는 무너진다. 재판부가 위증 사범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는 이유다. 최근 중학생 제자를 성폭행하고도 자신이 당했다며 위증한 여교사는 3년 실형과 함께 법정 구속됐다. 정경심씨와 이재용 부회장도 중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모두 위증죄가 결정적이다. 우리 사법부 신뢰도는 바닥이다. 지난해 OECD 회원국 가운데 39위(27점)로 꼴찌다. 1위 덴마크‧노르웨이(83점)에는 한참 못 미친다. 회원국 평균(54점)에는 절반 수준이다. 김 대법관 거짓말과 법관 인사는 사법부 신뢰에 적지 않은 과제를 남겼다. 법정에서 위증과 판결 불복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조심스럽다. 대법원장 거짓말 논란은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아직도 녹취 행태를 문제 삼는다면 본질에서 한참 비켜났다. 2021-02-22 00: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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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칼럼] 정쟁에 휘말린 부끄러운 대법원장 [임병식 위원] 전주 덕진공원에는 ‘법조삼성’ 동상이 있다. 우리나라 사법 기틀을 다진 세 분을 기렸다. 사법부 독립과 위상을 확립한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대쪽 검사로 불리며 검찰 위상을 높인 ‘화강 최대교’, 죄수들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펼쳐 법복 입은 성직자로 불린 ‘사도 법관 김홍섭’. 김대중 정부 시절, 1999년 11월 세웠다. 세 분 모두 전북 출신이다. 법조인들이라면 이들이 걸어온 행적에서 존경과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법조계가 어지러울 때가 있을까 싶다. 추미애와 윤석열 갈등 와중에서 사법부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극단적 불신은 화환 정치에서 엿보인다. 지지자들은 대검찰청과 법무부 청사 앞으로 화환을 실어 날랐다. 자신들 입맛대로 적은 글로 지지층을 자극했다. 대검찰청에서 시작된 화환이 급기야 대법원 마당에까지 등장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근조화환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 오죽하면 녹음”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붙잡는다. 김 대법원장을 조롱하는 글귀다. 어쩌다 사법부 최고 기관인 대법원까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는지 안타깝다. 대법원장 사퇴 논란은 탄핵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태를 촉발한 당사자는 대법원장 자신이다. 그는 임성근 부장판사 사직서를 반려하면서 탄핵을 이유로 댔고, 이를 부인했다가 하루 만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녹취록에 의하면 김 대법원장은 여당이 주도하는 탄핵을 의식해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즉각 사법연수원 17기 판사 140여명은 “김명수 대법원장 탄핵이 선행돼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대법원장이 정치권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해 법관이 부당한 정치적 탄핵 소용돌이에 휘말리도록 내팽개쳤다. 심지어 대화 내용을 부인하는 거짓말까지 했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법정은 위증죄를 엄하게 다룬다. 그런데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했으니 할 말이 없게 됐다. 김 대법원장은 “9개월 전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지 않았다”고 말해 또 다른 논란을 촉발했다. 거짓이 거짓을 부르는 형국이다. 일부에서는 녹취를 문제 삼고 있다. 상대 허락을 구하지 않은 녹취는 불법이자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다하더라도 거짓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녹취는 불법이지만 거짓말은 거짓말대로 남는다. 성명서는 “이런 행동은 법원의 권위를 실추시켰고, 법관으로 하여금 치욕과 자괴감을 느끼게 했다”고 비판했다. 2019년 1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그로부터 2년 만에 대법원은 다시 기로에 섰다. 김 대법원장은 어쩌면 현 정부 인사들의 거짓말 릴레이 바통을 이어받은 것일지 모른다. 법원은 최근 조국, 정경심, 최강욱의 거짓을 심판했고, 유시민은 거짓말을 사과했다. 또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박원순 시장 피소 사실 유출과 관련 거짓 해명 논란에 휩싸였다. 연이어 위장된 위선이 드러난 것이다. 우리사회는 지난 4년 동안 이들이 내뱉은 거짓말을 뒤치다꺼리하느라 혼란을 겪었다. 서로 지지하는 진영에 서서 증오와 갈등을 키워왔다. 여기에 대법원장까지 합류한 셈이다. 사법부가 권력에 굴종할 때 인권은 설 자리가 없다. 인혁당 재판부가 권력에 굴복해 무고한 시민 8명을 형장으로 보낸 게 1975년이다. 그 뒤로 47년이 흘렀다. 이승만 독재정권,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을 지나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 오래다. 그런데 아직도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스스로 유예한 채 머뭇거린다고 생각하면 씁쓸하다. 2015년 한국은 OECD 회원 국가 중 사법부 신뢰도에서 꼴찌 언저리를 맴돌았다. 지난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명수 대법원장 거짓말은 사법부 신뢰도 하락을 가속화시킬 게 분명하다. ‘법조삼성’은 험난한 시절에도 법관과 검사로서 양심을 지켰고 당당했다. 권력을 살피기보다 국민을 섬겼다. 재판 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는 이승만 대통령을 향해 김병로 대법원장은 “이의 있으면 항소하라”며 맞받아쳤다. 결기 있는 판사, 대쪽 같은 검사, 약자를 보듬는 법관을 기대하는 게 욕심일까. 권력과 진영논리에 편승해 오락가락하는 법관과 검사들로 인해 사법부가 어지럽다. ‘정치 판사·정치 검사’는 부끄러운 이름이다. 국회까지 접수한 법조 권력은 힘이 세다. 법조인 출신들은 국회를 과잉 대표하고 있다. 여기에 로펌, 전관예우까지 법조 카르텔이 한국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사회가 정신적으로 지체된 다른 이유다. 전북 순창에는 김병로 대법관 호를 딴 ‘대법원 가인연수원’이 있다. 이곳에서 초임 판사들은 법관으로서 소양 교육을 받는다. 김병로는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면 최대 명예손상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논란에 휩싸인 김명수 대법관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마키아벨리는 “정치는 도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했다. 정치를 폄하하는 이 말이 법관들에게도 해당된다면 수치다. 돌아오는 설에는 법조삼성과 가인 연수원을 찾아봐야겠다. 2021-02-08 17: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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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칼럼] 막말로 지새는 여의도 정치 [임병식 위원] 정치권이 또 다시 막말로 소란스럽다. 이번에는 ‘조선시대 후궁’ 발언이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을 저격하며 쓴 말이다. 맥락에 맞지 않을뿐더러 여성 비하, 성희롱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은 조수진 의원을 상대로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국회 윤리위원회에도 제소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사자 고민정 의원은 조수진 의원을 모욕 혐의로 고소했다. 앞서 조 의원은 고민정 의원에 대해 “‘산 권력’을 업고 당선됐다”며 “조선 시대 후궁이 왕자를 낳았어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천박하며, 독기 서린 막말이다. 이후 다른 막말이 더해지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어쩌다 ‘일베’ 정치인으로 변질됐는지 개탄스럽다”며 오세훈을 힐난했다. 또 국민의힘 김근식은 “우상호 의원이 ‘대깨문’ 선봉에 나섰다”며 거들었다. 막말과 망언은 오일장처럼 반복된다. 그때마다 강도를 더한다. 언론과 시민단체 십자포화에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는 정치 혐오를 부른다. 진영갈등이 심화되면서 지지층을 향한 정치 언어는 갈수록 거칠다. 2019년 자유한국당 5.18망언은 극치를 보여줬다. “5.18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이 세금을 축내고 있다”, “5.18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됐다.” 바닥까지 내려간 망언이었다. 범여권 인사들이 내뱉은 말도 분노에 차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부패한 무리의 더러운 공작” “똘마니들을 규합해 장관을 성토” “정권 바뀐 것을 느끼도록 갚아주겠다”(최강욱 의원), “‘윤서방파’ 몰락은 시간문제”(정청래 의원), “동네 양아치들 상대하며 배웠는지 ‘낯짝’이 철판”(김경협 의원). 검찰 개혁 와중에서 나온 말들이다. 아무리 검찰 개혁이 당위성을 갖는다하더라도 지나쳤다는 게 일반 인식이다. 이런 말은 또 어떤가. “광화문 집회 주동자들은 도둑놈이 아니라 살인자”(노영민 전 비서실장), “경고한다. 선을 넘지 말라”(윤건영 의원), “전직 대통령이 되면 사면 대상이 될지 모른다”(주호영 원내대표), “성 피해 호소인”(남인순 의원), “북한 원전건설은 이적행위”(김종인 비대위원장). 하나같이 분노와 증오로 날 서있다. 국민은 안중에 없다. 진영에 기대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기 품은 언사들이다. 정치 언어는 왜 독할까. 막말 정치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의도된 ‘노이즈 마케팅’이다. 인지도를 높이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다. 그래서 전체 시민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지지층을 타깃으로 삼는다. 상대를 타격함으로써 지지층을 모을 목적이다. 진영 안에서 독설은 가속도가 붙는다. 니체는 “개인은 제정신이 아닌 경우가 드물지만, 집단은 제정신 아닌 게 정상이다”고 했다. 집단 속에서 막말이 난무하는 이유다. 조수진 의원은 언론인 출신이다. 평생 언어를 다뤄왔다. 누구보다 말이 낳는 파장에 민감하다. ‘조선시대 후궁’을 언급하면서 여파를 감안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무리수를 두었다. 집단에 매몰된 나머지 균형감을 잃어버린 결과다. 의도한대로 파장은 간단치 않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연이은 권력형 성범죄로 높은 성인지 감수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이런 와중에서 후궁 운운했으니 어처구니없다. 진영논리와 확증편향은 막말과 망언이 자라기 좋은 텃밭이다. 내 편은 덮어놓고 지지하고, 상대는 배척한다. 이런 배경에서 막말과 망언은 좀비처럼 살아난다. 함량 미달 정치인도 문제지만 맹목적 환호 또한 분별력을 잃게 한다. 독설과 막말은 공동체를 파괴한다. 내편이라도 꾸짖고, 상대라도 박수칠 수 있는 아량과 상식이 절실하다. 그럴 때 공동체 유지, 성숙한 정치, 국민통합을 기대할 수 있다. “너희는 무리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출애굽기)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 구절 덕분에 살면서 소수파에 속하는 걸 겁내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자기 생각을 가진 각성한 시민이 절실하다.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는 도덕적 우월감에서 막말한다고 했다. 그는 “도덕적 우월감은 역지사지나 공감을 불가능하게 한다. 또 냉정한 이성마저 마비시킨다는 점에서 ‘정치적 독약’이다”고 했다. 우월감 반대는 인정과 포용이다. 18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김용민 후보는 막말로 자신과 당을 망가뜨렸다. 21대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차명진 후보가 대신했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 막말’로 당과 자신을 해쳤다. 품위 있는 언어, 품격 있는 정치. 어떻게 하면 우리 정치가 막말과 망언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2021-02-02 17: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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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칼럼] '싸가지 있는' 정치는 남는 장사 [임병식 위원] 유시민은 말과 글이 현란하다. 그 화려함을 무기로 오랫동안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에게 진보진영은 우호적 텃밭이다. 진보진영은 유시민이 발신하는 메시지를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확대 재생산하는 메신저 역할을 해 왔다. 이런 유통 구조 아래서 유시민은 ‘싸가지 없다’는 호칭까지 얻었다. 타고난 언변에다 영향력이 결합된 결과다. 그 싸가지 없음이 결국 사고를 쳤다. 유시민은 1년여 전, 검찰이 자신과 노무현재단 계좌를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2019년 12월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검찰이 노무현재단 은행 계좌를 들여다본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확인했다"는 단정적 표현을 동원했다. ‘검찰개혁’이 들끓던 와중이라 파장은 컸다. 더불어민주당과 추미애 장관은 이를 ‘검찰개혁’ 당위성으로 활용했다. 지지층과 김어준 뉴스공장, 유튜버도 가세했다. 그런데 1년 만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는 사과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거짓임을 자인하는 '싸가지 없는' 논객은 초라했다.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셀프 면죄부로도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한동훈 검사장은 “거짓 선동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유시민 발 사찰 의혹으로 우리 사회는 극심한 대립과 진영 갈등을 겪었다. 검찰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해졌다. 어용 지식인으로서 과잉 상상력이 초래한 폐해는 작지 않다. 그는 “사실이 아닌 의혹 제기로 검찰이 저를 사찰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 검찰 관계자들께 사과드린다. 어떤 책임 추궁도 받겠다”고 했다. 또 “입증하지 못할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노무현재단을 정치적 소용돌이에 끌어들였다. 재단 후원 회원 여러분께도 사과드린다”고 했다. 선동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흉기다. 영향력이 큰 지식인이라면 폐해는 더 크다. 히틀러는 선동 정치에 뛰어났다. 그는 독일 국민을 꾀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유대인들이 일자리와 먹을 것을 빼앗아간다고 부추겼다. 그 결과 수많은 사상자와 재산 피해를 낳았다. 러시아인 2000만명, 유대인 600만명이 숨졌다. 다시는 선동으로 인한 참극이 없어야 한다는 자성이 일었다. 이런 각성에서 전쟁 이후 독일 교육은 선동가 판별에 초점을 맞췄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반문하는 교육이다. 유시민은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싸가지 없음’은 집권세력인 586정치인들에게로 이어진다. 강준만 교수(전북대학교)는 2014년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이런 행태를 비판했다. “싸가지 없는 진보는 단기적으론 남는 장사일망정 장기적으론 자해(自害)다”고 했다. 강 교수는 2021년 <싸가지 없는 정치>를 다시 들고 나왔다. ‘진보는 어떻게 독선과 오만에 빠졌는가’라는 부제가 달렸다. 그는 민주당 집권 이후 ‘싸가지 없는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며,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다. ‘싸가지 없는 정치’로 인해 민주당은 물론 우리 사회가 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진보를 ‘완장’으로 이용하는 ‘싸가지 없는 정치’가 극한 대립과 갈등을 초래한다는 분석이다. 그는 ‘싸가지 없는’ 정치가 발원한 배경으로 내재화된 이분법적인 진영 논리를 지목했다. 격렬한 투쟁 일변도 정치 행태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은 이런 586정치인들을 ‘민주건달’로 규정했다. 1987년생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1987년 민주화운동 주역이었던 현 집권세력은 우리 사회 기득권자이자 변화를 가로막는 존재가 됐다”면서 “더 나쁜 놈들도 있다고, 나 정도면 양반이라고 손쉬운 자기 합리화 뒤에 숨어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는 것을 멈춰달라”고 했다. 부인하고 싶지만 둘 다 되새겨야 할 뼈아픈 지적이다. 20일 취임한 조바이든 대통령은 “상대방을 적으로 여기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며 통합을 말했다.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진영논리에 매몰된 586정치인들에 둘러싸여 집권기간 내내 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다. 강 교수는 “‘정말 나라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책을 썼다”고 했다. <김대중 죽이기>를 집필할 때 강 교수는 39살이었다. 그가 60대 중반이 되어 우리 정치에 던지는 메시지는 간곡하다. ‘싸가지 없는’ 적대 정치를 멈출 때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나아간다. 겸손하며 상대를 존중할 때 정상적인 정치 복원도 기대할 수 있다. 유시민과 586정치인들에게 ‘싸가지 있는’ 정치를 기대한다면 과욕인가. 2021-01-25 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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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칼럼] 보수언론의 윤석열 띄우기 [임병식 위원]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는 98년 5월 <인물과 사상>에서 조선일보를 이렇게 평했다. “〈조선일보〉는 상업주의 관점에서 가장 선진적이다. 그런데 장사만 잘하면 문제가 없는데 그렇질 않으니 문제다.” 강 교수는 “<조선일보>가 직접 국가 경영을 해보겠다고 나선 게 문제다”면서 “대통령을 뽑는 데 영향을 미치는 ‘킹 메이커’ 역할은 기본이다. 그걸 딱 깨놓고 하면 모르겠는데 온갖 술수와 술책을 동원한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대선 보도는 ‘비이성적 행태’로 최소한 자존심마저 지키지 못했다. 언론이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을 갖거나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한다면 더 이상 언론과 나라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97년 대선을 코앞에 둔 12월 16일,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이 채택한 ‘공정보도를 위한 우리의 뜻’이라는 결의문 일부다. 당시 방송 4사, 28개 지역 언론사 정당 출입 기자 103명이 서명했다. 기자들은 웬만해선 타사 보도 내용을 시비하지 않는 관행이 있다. 그런데 소속사를 넘어 한목소리를 내고, <중앙일보> 실명까지 거론했다. 그만큼 당시 중앙일보 보도는 ‘이회창 편들기’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와중에 국민신당은 그해 11월 29일 중앙일보 내부 문건을 폭로했다. ‘이회창 경선 전략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이다. 파문은 컸지만 <중앙일보>는 “정보 보고를 위해 기자가 작성한 것”으로 일축했다. 이후 23년여가 흘렀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바뀌었을까. 많은 이들은 여전히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최근 ‘킹 메이커’를 자처했던 이전 보도 행태를 떠올린다는 이들이 많다. 두 매체는 윤석열 검찰총장 보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신변잡기부터 서민행보, 대망론까지 윤석열 띄우기가 이어지고 있다. 공교롭게 윤 총장은 여론조사 1위로 부상했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원내부대표는 “정도를 넘어선 ‘윤비어천가’”라고 비난했다. 도대체 어떤 보도이기에 여당 원내부대표가 보도 행태까지 문제를 삼을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보도는 ‘윤석열 대망론’에 편승했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30일 ‘박찬호 뺨치는 수다 맨, 청소 여사님까지 챙겨’를 보도했다. 대검찰청 직원이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요약한 기사다. 수사관과 청소하는 아주머니까지 챙기고 야구선수 박찬호처럼 말도 많은 정다운 총장이라는 내용이다. 이어 1월 1일 <‘국민’ 14번 언급한 윤석열 신년사>, 4일 <윤석열 현충원 방명록, 1년 전과 비교해 보니>를 연이어 보도했다. 검찰총장은 장관급으로 여러 부처 수장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신년사를 분석하고, 1년 전 방명록과 비교했으니 민망했다. 아무리 뉴스 중심에 있다고는 하지만 지나쳤다는 게 중론이다. 5일자 ‘순댓국’ 보도는 한술 더 떴다. 윤 총장이 중앙지검 간부, 수행비서, 운전기사와 순댓국을 먹는 21초짜리 유튜브 영상을 전한 보도였다. 기사는 “기관장이 운전기사와 함께 밥을 먹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묘사했다. 기사를 읽고 왕조시대나 북한 전체주의를 떠올렸다는 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영상은 2019년 9월 보수 유튜버가 윤 총장의 서민 흉내를 비난할 목적에서 올린 것이다. 그런데 1년 반이 지나 서민행보를 칭찬하는 영상으로 재가공 됐으니 어떤 의도인지 대략 가늠된다. <중앙일보>는 한층 노골적이다. 12월 18일자는 2개월 정직을 받은 윤 총장이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윤 총장이 유기견 보호단체 회원이라고 알렸다. 압권은 1월 12일자 ‘윤가는 나서는 성격 아니다’는 기사다. 전면을 할애하고 논설위원까지 동원됐다. 내용은 윤석열 현상과 대망론, 권력 앞에 당당한 강직한 면모, 갑론을박하는 파평 윤씨 후손들 목소리를 담았다. 이를 위해 기자는 집성촌인 충남 논산까지 다녀왔다. 이밖에도 <중앙일보>는 ‘윤석열의 야성이 돌아왔다’, “‘이쯤 되면 대권 도전은 숙명’··· 빅3 뜬 윤석열에 檢 술렁인다”라며 ‘윤석열 대망론’에 팔을 걷은 모양새다. 정권에 불편한 수사를 강행해온 윤 총장에게 우호적 여론이 형성된 건 사실이다. 또 뉴스 메이커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하더라도 지나친 관심과 우상화는 문제가 많다. 객관성을 상실한, 과잉 보도는 윤 총장이나 검찰조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일 두 매체가 대통령 만들기를 작심했다면 공정보도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강준만 교수 말처럼 “딱 깨놓고”하는 게 맞다. 덧붙여 국민들은 검찰총장이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지, 1년 전 방명록과 어떤 내용이 달라졌는지 궁금해 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국민을 너무 얕잡아 본 건 아닌지 묻고 싶다. 2021-01-18 19: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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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칼럼] 기습 폭설이 남긴 연대 정신 [임병식 위원] 지난 7일 저녁, 서울에는 폭설이 내렸다. 밤 10시께 학교를 출발,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평소 20분이면 가능한 거리다. 기습적인 폭설은 짧은 시간, 서울 전역을 눈으로 덮었다. 한파에다 눈 폭풍까지 겹친 퇴근길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2시간 넘는 밤길을 어떻게 운전해 집에 왔는지 한참동안 멍했다. 다음날 뉴스를 보면서 위안이 됐다. 수백m 거리를 3~4시간 걸렸다는 이들도 허다했다. 나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했다. 정신이 수습되자 지난밤 상황이 느리게 재생됐다. 처음 만난 이들 덕분에 늦게라도 집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북이걸음으로 가슴 졸이며 운전하다 한남대교를 건너자마자 문제가 터졌다. 경부고속도로 진입부에서 눈길에 갇혔다. 그렇게 가파른 길도 아닌데 차는 맥을 못 추었다. 이리저리 운전대를 꺾어도 공회전만 할뿐 당황스러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는 처지가 비슷한 차량이 2대 더 있었다. 5t 트럭과 고급 리무진 승용차였다. 두 운전자 모두 60대 가까웠다. 그들은 견인을 위해 레커차를 불렀다고 했다. 벌써 1시간 넘게 눈밭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전역이 난리 통이라 언제 도착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레커차 부르기를 포기하고 다시 운전을 시도했다. 그러자 그들은 내차를 밀어줬다. 10여분 분투 끝에 가까스로 눈구덩이를 빠져나왔다. 다급한 마음에 고맙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못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밤을 새워야 했을 것이다. 난장판,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생면부지 시민들은 한마음이 됐다. 자신도 어려운 처지임에도 처음 보는 이를 위해 힘을 보탰다. 어려운 이웃을 지나치지 않는 측은지심이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 정치적 성향도, 신분도 뛰어넘었다. 5t 트럭, 고급 리무진 승용차는 평소라면 한데 어울리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다고 판단되자 함께 팔을 걷었다. 아마 그들 중 누구는 보수, 누구는 진보로 정치성향이 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처럼 사람냄새를 느낀 뜻깊은 시간이었다. 우리 국민은 이렇듯 따뜻한 심성을 지닌 민족이다. 그러나 지난 한 해를 온통 갈등하며 지새웠다. 불공정이 판치고, 불평등이 심화된 탓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정치는 제 기능을 못했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악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 결과 누구도 공정을 믿지 않으며, 상대에 대한 불신은 깊게 패었다. 우리 사회에서 계층 갈등과 자산 불평등은 IMF 사태를 기점으로 한다. 돌이켜보면 IMF 사태 당시 우리 국민은 하나가 되어 위기를 극복했다. IMF 사태라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하나가 됐다. 금모으기는 IMF 사태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면이다. 돌 반지부터 신혼 예물까지 장롱 깊숙이 간직했던 금붙이를 앞다퉈 내놓았다. 그 뒤 금값이 올랐지만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한 당연한 행동 정도로 여겼다. 숱한 전란 속에서 보여준 공동체 의식은 IMF 터널을 지나는데도 유감없이 큰 힘이 됐다. 지난 한 해 한국사회는 정치적 갈등이 심각했다. 여진은 새해도 계속되고 있다. 뜻 있는 국민들은 화합과 안정을 기대하고 있다. 1년 가까운 코로나19 국면에서 민생경제는 괴멸 직전에 놓였다. 어디 한 곳 성한 데가 없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벼랑 끝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정치는 그들에게 한 가닥 희망이라도 제시할 책임이 있다. 새해가 시작됐지만 그런 온기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새해벽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국민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굳이 위기를 만들 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 국민은 충분히 지쳐 있다. 바닥에 떨어진 민생위기 하나만으로도 버겁다. 전직 대통령 사면은 화합으로 가는 길이어야 한다. 또 다른 갈등을 초래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통합보다는 갈등 조짐이 보인다. 우리 국민은 위기에 강하다. IMF 사태 때도 정치성향, 경제적 차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 목요일 폭설 때도 기꺼이 팔을 걷었다. 또 추위를 무릅쓰고 버스를 밀었다. 문재인 정부 5년 차다. 최근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집권 5년 차 피로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국론 분열에 더 큰 실망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1년은 통합과 민생경제에서 성과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게 국민의 기대다. 정당이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래도 무엇이 중한 일인지 우선순위는 있다. 지금처럼 의석수를 앞세운 더불어민주당 독주는 갈등과 증오를 부채질할 뿐이다. 국민의힘 또한 건전한 야당으로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고질적인 발목잡기만 거듭한다면 도태를 피하기 어렵다. 야당은 여전히 대안세력으로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아직도 무엇이 문제인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더는 희망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밤중 한파를 무릅쓰고 모르는 사람의 차를 밀어주는 시민정신을 돌아본다.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치만 정신 차리면 된다. 2021-01-11 20: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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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칼럼] 저항, 분노, 공감 그리고 연대 [임병식 위원] 새해에는 ‘저항, 분노, 공감, 연대’를 제안한다.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치로 저항, 분노, 공감, 연대를 강조한다. 그는 세계 2차대전을 야기한 나치즘은 바로 이러한 가치가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독일 국민은 히틀러 선동에 침묵하거나 눈감고 오히려 동조했다. 그 결과는 참혹한 홀로코스트였다. 오늘날 독일 교육이 저항, 분노, 공감, 연대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모든 역사는 저항과 분노로 쓰였다. 우리 근대사만 해도 그렇다. 동학, 4·19, 부마항쟁, 5·18, 6·29, 촛불혁명까지 저항과 분노가 단초가 됐다. 또 공감과 연대는 공동선에 필요한 자양분이 됐다.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고 분노한 결과, 우리 사회는 흔들리면서도 나아갔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이것으로 끝인가. 안타깝게도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저항과 분노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공감과 연대 의식도 희박하다. 그저 진영 안에서 감싸고 합리화하기 급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불평등은 갈수록 쌓였다. 상위 1%만을 위한 사회다. 고려대 김우창 명예교수는 한국사회를 ‘오만과 모멸로 구조화된 사회’로 정의했다. 승자는 한없이 오만하고 패자는 모멸감을 내면화하는 사회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도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같은 주장을 펼쳤다. 공정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승자는 오만, 패자는 굴욕과 분노를 키운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국인은 대개 가난한 성인이 된다고 했다. 하버드와 스탠퍼드 대학생 3분의2는 소득 상위 10% 가정 출신이다. 반면 아이비리그 대학생 가운데 하위 10% 출신자는 4%도 되지 않는다. 학벌은 소득 격차를 낳았다. 1970년대부터 늘어난 국민소득 대부분은 상위 10%에게 집중됐고, 하위 50%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부유한 1% 미국인은 하위 50%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벌고 있다. 이게 미국만의 현상일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더하다. 지난해 한국장학재단에 장학금을 신청한 서울대·연대·고대생 2명 중 1명은 부모 소득이 1억1000만원 이상이다. 연소득 1억7000만원이 넘는 부모도 25%에 달했다. 반면 기초·차상위 계층 가정 자녀는 5.8%에 그쳤다. 이탄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고소득층 가정 학생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있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에게 대물림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산 불평등은 어떤가. 우리나라 상위 1%는 16%, 상위 10%는 66%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반면 하위 50%는 1.8%를 소유하는 데 그친다. 부동산 불평등은 한층 심각하다. 부동산 부자 상위 1%는 25%, 상위 10%는 96.4%의 집과 땅을 소유하고 있다. 반면 하위 90%는 3%의 부동산을 나눠 갖고 있다. 국회의원, 청와대 참모, 고위 공직자들은 확고한 1%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 정치권력에 저항하고 분노하는 사회라야 한다. 한때 불의한 독재 권력에 맞섰다면, 이제는 불공정한 정치권력에 저항해야 한다. 또 박종철군 고문치사에 분노했다면, 온갖 스펙을 위조한 조국 일가에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 샌델은 미국 명문대 입학에는 명사들과 사모펀드 거부들이 연루됐다고 강조한다. 조국·정경심 행태와 너무 흡사하다. 그런데도 친문 지지층은 두둔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히려 비판하는 지식인들을 공격하는 홍위병을 자처했다. 그들은 그깟 표창장 위조가 무슨 죄냐고 우겼다. 그러다 유죄판결을 받자 이번에는 사법부를 흔들었다. 샌델은 미국, 영국, 유럽에서 포퓰리즘이 발흥한 원인으로 집권 엘리트층에 대한 반작용을 들었다. 학벌에 기반한 엘리트층의 위선과 소득 불평등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도 다르지 않다. 부와 권력의 대물림과 불평등은 한계에 달했다. 저항과 분노를 외면한 한국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윤리기준은 허물어졌고, 갈등은 극단적이며, 삶은 피폐하다. 건강한 시민이라면 오만한 권력, 불공정한 사회에 저항하고 분노해야 한다. 조국, 윤미향, 추미애, 월성원전 수치 조작은 대표적이다. 그리고 공감·연대함으로써 사회변화를 견인할 책임이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연대는 중요한 가치다. 나만 잘해서는 한계가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백신 접종을 외면하고 있다. 그들을 놔둔 채 자신들은 안전할까. 우리 사회도 그런 어리석음은 없는지 돌아보자. 나와 우리 가족, 우리나라를 넘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 윤리기준을 다시 세우고, 공동체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 사회를 위해 쓴 소리를 내는 지식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최장집, 홍세화, 강준만, 김누리, 유인태, 최진석. 새해에는 편 가르지 말자. 대신 저항하고, 분노하고, 공감하고, 연대할 일이다. 2021-01-06 02: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