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논설실 부국장alexlee@ajunews.com
- 아주경제 논설위원
- 前 로이터 통신 선임 특파원, 편집장
- 前 서울외신기자클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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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美경제 '키맨', 두사람을 보라 한편의 엽기적인 저질 코미디 같던 미국 대선 드라마가 막을 내리고 조 바이든 신행정부 출범이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패배를 부인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몽니는 끝내 극렬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동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점철되면서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씻기 힘든 큰 오점이 새겨졌다. 트럼프는 오랜 전통을 깨고 오는 20일(현지시간)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바이든 당선자는 오히려 "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남긴 최악의 유산은 '분열'이다. 바이든은 이번 대선을 민주주의 기본가치와 미국의 영혼(soul)을 되찾기 위한 전투라고 했다. '트럼피즘' 극복이라는 난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원 장악(블루웨이브)이라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각종 정책 추진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당선자는 줄곧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를 지나치게 거래적이라고 비난해왔지만 큰 틀에서 보면 접근방식만 다를 뿐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외교는 지속될 전망이다. 전통적 동맹주의자로 알려진 바이든이 자신의 외교안보팀이 "동맹국들과 협력할 때 미국이 가장 강력해질 수 있다는 나의 신념을 구현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을 보면, 적어도 트럼프처럼 동맹국을 적보다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게 한다. 국제정치도 중요하지만 바이든의 최우선 과제는 코로나19 대유행을 종식시키고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다. 잘 알려졌듯이 친환경 정책과 인프라 투자 등은 바이든 경제정책의 핵심이다. 앞으로 '바이드노믹스'를 대통령 곁에서 주도적으로 펼쳐나갈 인물에 대해서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한다. 바이든의 거시경제정책은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새로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과 자영업자의 파산을 막는다는 방향성에선 트럼프와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트럼프의 감세와 기업 규제완화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면서 동시에 경제회복의 속도를 내기 위한 액셀도 함께 밟는 것과 같아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법인세 인상과 고소득자 세율인상으로 마련된 재원으로 경기부양도 하고 코로나로 심화된 빈부격차와 경제 불균형을 치유하겠다는 것인데 대기업과 부유층의 반발이 예상된다. 연방 최저시급을 15달러로 두배 인상하는 최저임금정책 공약도 서비스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6일 치러진 조지아주 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민주당이 2곳 모두 승리하면서, 이제 민주당은 12년 만에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하게 되었다. 대규모 재정지출과 인프라 투자 등 각종 경제법안의 의회 통과는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경제회복의 여부는 코로나19 종식에 달려있다. 바이든은 코로나 대응에 있어 트럼프와 달리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와 경제활동 중단조치에 상당히 적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경제호전보다는 바이러스를 통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그의 신념은 소비가 주도하는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3조 달러에 달하는 역대 최대규모의 경기부양 돈풀기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바이든의 언급처럼 아직 혹독한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경제가 단기간에 급반전하지 않는다면 경기부양을 위한 미국의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는 올해에도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재정정책과 더불어 바이드노믹스의 또 다른 축은 통화정책인데 향후 1~2년은 현재의 제로금리 및 양적완화정책이 크게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 기후변화와 그린 경제 산업 정책에서 바이든 당선자는 전통적 중화학 산업보다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측면에서 트럼프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는 지구촌 최대 현안이자 인류의 재앙이 될 수 있는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미국이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리하여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하고, 2035년까지 발전소의 환경 유해물질 배출을 중단시키고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할 '그린 경제' 시스템구축을 주요공약으로 내세웠다. 특히 향후 4년 동안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2조 달러(약 2180조원)를 투입한다고 밝혀 미국의 산업 및 에너지 지형은 이번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무게중심이 확 바뀐 셈이다. 또 바이든이 내세운 '과거보다 나은 미국 건설(Build America Back Better" 구호를 자세히 보면 미국산 상품 구매 확대라는 '바이 아메리카' 정책을 통한 제조업 활성화, 그리고 5G, 전기차, 인공지능(AI)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과 투자가 핵심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던 월가가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보다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4배의 지원금을 제공한 것은 이런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미 경제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든의 당선 이후 나스닥의 대표적인 IT공룡들은 긴장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에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던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IT업계를 선도하는 페이스북, 넷플릭스, 아마존, 구글 등 4대 독과점 빅테크기업(FANG)은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 캠프에 엄청난 돈을 뿌렸지만 시장주의를 앞세우는 바이든 당선자가 추진할 반독점 규제법안의 주요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IT업계와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인 월가의 표정은 사뭇 다르다. 역시 바이든의 승리에 베팅한 월가는 이번에도 백악관과 바이든 행정부 요직에 월가 인사들을 포진시켰다. 바이든 미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재무장관으로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을 지명했다. 대표적인 비둘기파(통화완화주의자)이자 정부의 확대 재정을 옹호하는 '케인스주의자'다. 민주당 내 진보주의자들은 옐런의 폭넓은 식견과 풍부한 경험이 바이든의 초대 재무장관으로 제격이라고 환호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재무부 부장관으로 지명된 월리 아데예모(39)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표정이다. 상원 인준 절차를 마치면 옐런은 미국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 아데예모는 흑인 출신 최초의 재무부 부장관이 된다. 나이지리아 태생 이민자인 아데예모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제 경제 분야 참모로 일하다가 7조 달러가 넘는 자금을 다루는 월가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에서 래리 핑크 회장(68)의 정치자문과 비서실장으로 2년간 일한 경력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동안 핑크 회장의 최대 관심사는 블랙록이 재무부나 연준 등 미 규제당국에 의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IFI)'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는 일이라고 알려져왔다. SIFI의 꼬리표가 붙을 경우 블랙록은 여러가지 고강도 규제에 직면하게되는데 아데예모의 입각은 이해관계상충에 해당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아데야모는 오바마 행정부에 합류하기 전에 미국의 신자유주의 싱크탱크인 신자유주의 '해밀턴 프로젝트(Hamiliton Project)'(THP)에 가담해 월가에 우호적인 '거짓 진보주의' 정책을 연구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THP 설립자는 다름아닌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경제회의 보좌관과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이다. 그가 1999년 퇴임 직후 공동회장으로 취임했던 씨티은행은 상업-투자은행 겸업 금지 폐지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루빈은 '오바마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해 월가의 자금줄을 끌어오는 연결고리 역할을 맡기도 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 당선자가 월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일 것이다. 아데예모가 자신의 블랙록 경력과 친월가 성향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가 월가의 횡포에 목소리를 가장 높이는 민주당 내 대표적인 진보인사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는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특이하다. 워런은 아데예모의 부장관 지명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블랙록 핑크 회장과 워런 두 사람 중에서 누구의 편에 설지,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두사람의 비위를 모두 잘 맞출 수 있을지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다. 바이든의 경제팀 인선에서 재무부 수장 못지않게 주목을 받는 자리는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다. 이 자리에도 오바마 행정부 시절 경제 참모로 일하다가 2017년 블랙록에 합류, 지속가능한 투자 분야의 글로벌 본부장을 역임한 브라이언 디스(42)가 선임되었다. NEC는 재무장관을 비롯해 경제 관련 장관들이 모두 참여해 국가정책의 큰 줄기를 결정하고 국내외 정책에 대한 조정업무를 관장하는 곳으로 이곳의 수장인 NEC 위원장은 ‘미국의 경제사령탑’ 역할을 한다. 국가안보를 총괄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경제판’으로 통한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디스의 NEC 위원장 선임을 바이든의 핵심 공약인 기후변화(climate change) 대응 정책과 연관시키고 있다. 디스는 오바마 행정부 기후변화 특별고문 시절인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체결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디스를 "현재의 경제 위기를 끝내고 더 나은 경제를 건설하며, 기후변화라는 실존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전문가"라고 평가했다. 디스와 재무장관 지명자인 옐런은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 위기가 수그러지면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기후변화 위기 대응에 두면서, 온실가스 줄이기와 클린 에너지 생산 확장을 위한 관련 법안마련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옐런 재무장관 지명자도 탄소배출세를 도입하여 지구 온난화에 대비하고 기후 변화 대응과 관련된 재정지출과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바이든의 공약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바이든이 월가 출신에 대한 진보진영의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디스를 택한 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대응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옐런과 디스, 그리고 백악관 예산관리국 국장으로 지명된 니라 텐던, 이 세 사람이 합작해서 바이든의 바람대로 올해 안에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합의를 바탕으로 그린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통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선보일 수 있을지가 주요 관심사이다. 이 세 사람 중에서 기후변화의 최대 전문가로 꼽히는 디스의 역할이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바이든의 경제팀은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2010년 마련된 도드-프랭크법도 활용할 태세이다. 즉, 은행이나 투자자문사에게 리스크가 커지는 석탄이나 석유 가스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 자금 지원을 봉쇄하는 법안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블랙록은 바이든의 경제정책 방향과도 어울리는 회사이다. 월가의 대형투자은행(IB)과 달리 블랙록은 지속가능성과 친환경 등의 가치에 집중하고 있어 바이든이 자신과 함께 손을 잡고 일할 핵심 경제브레인 2명을 이곳에서 다시 컴백시킨 이유로 해석된다. 기후 변화 대응이 바이든 집권 4년의 경제정책 최우선 순위에 있다는 것은 탄소배출 감소를 위해 기존 에너지 산업이 새로운 각종 금융 규제로 인해 사양길로 접어들고 태양광, 전기차 풍력 등으로 산업의 축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과거 역사적으로 환경문제로만 취급되던 기후변화가 이제 경제정책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미 전 세계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미국에서 바이든이 추구하는 친환경 정책과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경제건설이 제대로 구체화될지는 미지수이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 갈라진 민심을 하루속히 통합하고 국가발전을 위한 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내정된 브라이언 디스- 로이터연합뉴스] 2021-01-11 00: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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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코로나와의 사투 1년.. '빚더미'에 올라탄 세계 경제, 터널 끝은 언제? 코로나에 뚫린 서울동부구치소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9일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서울 동부구치소에 방역복을 입은 관계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쓴 지 거의 1년이 다가온다. 올해 세계 경제는 2차대전 이후 가장 혹독한 시간을 경험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았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많은 국가들은 국경을 봉쇄하고 경제 활동을 제약했다. 실업자가 급증하고 경기가 급하게 얼어붙자 각국 정부는 곳간 문을 활짝 열고 돈을 풀어 경기진작에 나섰다. 하반기 들어 글로벌 경제는 큰폭 반등했지만 코로나 재유행으로 다시 내려가는 W형 '더블딥'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영국과 미국 등에서 백신접종이 시작되었지만 언제쯤 우리가 정상생활로 복귀할지 예단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은 전례없이 큰 규모로 증가한 통화량과 부채이다. 늘어난 부채는 고스란히 나랏빚으로 쌓이게 된다. 아직도 코로나 불 끄기에 급급한 세계. '부채 쓰나미' 경고음에 대해선 귀를 닫고있는 모습이다. 코로나19 전쟁의 최대 패전국은 미국이다. 누적 사망자는 2차대전 미군 희생자 29만1557명을 이미 훌쩍 넘겼다. 슈퍼 부양책이 실시되면서 올해 미국의 공공부채는 처음으로 경제규모를 넘어설 전망이다. 총통화량은 11월까지 3.9조 달러(25.3%)나 증가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순항하던 미 경제는 올해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지난 2분기(-31.4%)에는 1947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고 3분기엔 33.1%(전기대비 연율)의 기록적인 반등을 보였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올해 마이너스 4.2%, 내년도엔 플러스 4.2%이다. 미국은 경제가 올해 전체적으로 3.7% 위축됐다가 내년엔 3.2%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은 미국보다 심각하다. 올해 -7.5% 역성장에서 내년엔 3.6% 플러스 성장에 머물 전망이다. 한국은 올해 -1.1%와 내년 2.8%로 미국이나 유로존에 비해 양호하다. 이러한 전망은 세계 경제가 백신 접종과 치료제 개발로 코로나19 위협으로부터 거의 벗어날 것이라는 낙관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플레이션 괴물'은 사망? 올 들어 세계 각국이 경제 살리기에 뿌린 돈은 엄청나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전 세계 총부채는 15조 달러(약 1경6600조원) 증가해 올해 272조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GDP대비 총부채 비율은 320%에서 365%로 늘어날 전망이다. IMF도 지난해 2% 증가했던 전 세계 GDP대비 총부채 증가율이 올해에는 13%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막대한 현금 수혈에도 불구하고 경기 회복이 지연되자 미국과 EU 등 주요 경제국은 돈을 더욱 풀 태세이다. 넘쳐나는 돈은 상품과 서비스 생산에 쓰이지 못하고 엉뚱하게 주식과 부동산에 몰리고 있다. 과연 통화량을 늘려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은 정말 괜찮은 걸까? 최근 자산버블(거품)과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다시 흘러 나오고 있지만 그다지 큰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 연준이 경기 침체를 막기위해 '양적완화'를 도입, 대규모 돈풀기에 나서자 통화론자들은 고인플레이션(high inflation)을 경고했지만 실제로는 저물가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경제침체 시 '돈풀기'는 세계 경제의 뉴노멀이 되다시피 했다. 세계 각국이 거리낌이나 두려움 없다시피 돈을 푸는 가운데 국가 부채에 대한 오랜 통념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규모보다 훨씬 적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경제학자들과 경제정책 입안자들의 널리 일치된 견해였다. 그러나 지금은 금리가 제로에 가깝게 떨어지면서 이자 지출도 감소해 부채가 적절한 용도와 대상을 위해 쓰인다면 부채비율이 높아져도 큰 문제가 없다고 믿는 경제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EU(유럽연합)의 경우 GDP대비 부채가 60%를 넘지말 것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폐기수준이다. IMF(국제통화기금)나 세계은행과 같은 권위있는 기관도 각국이 코로나19 충격 완화를 위해 금융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차입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오직 중요한 것은 과감해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誌는 최근 팬데믹 이후 세계가 고물가 시대로 진입할 것이라는 통화론자들의 주장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첫째는, 그동안 크게 위축되었던 소비심리가 되살아나 기업들의 공급여력이 수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해 내년도엔 일시적으로 물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벌써부터 구리 가격은 연초에 비해 25% 폭등했다. 둘째로, 세계가 일시적인 물가상승을 극복하더라도 인구 고령화 등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보다 지속적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방 세계와 주요 아시아 국가들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심화로 인해 발생하는 노동력 부족이 생산성을 잠식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화(globalisation) 물결 속에 재화와 노동 시장은 효율성이 높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세계화는 후퇴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셋째로, 각국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현실안주 태도이다. 그들이 노령 연금과 헬스케어 등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재정적자 확대라는 쉽고 간단한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각국의 부채 등 팬데믹이 남길 크고 작은 상처에 대해 세계는 무신경적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실물경제는 최악의 위기인데, 주식시장은 2000년 닷컴버블을 연상할 만큼 역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증시호황은 무엇보다도 '인플레이션 괴물'이 사망한 상태에서 경기가 조만간 강하게 반등할 것이라는 투자가들의 낙관론에 기반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부채문제는 갈수록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특히 기업부채와 가계부채 등 민간부채의 위험수준이 11년 만에 '경보' 단계에 달했다는 국제결제은행(BIS)의 경고도 나온 상태이다. 민간부채가 과도하면 정부가 개입해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아직까지는 재정여유가 비교적 충분하다고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국가부채까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은행의 가계대출은 지난달에만 13조원 이상 급증, 한국은행 통계작성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들의 생활자금마련 빚이 늘어나고, 부동산·주식 시장 광풍에 빚내 투자하려는 수요까지 몰리면서 생긴 결과이다. 코스피는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는가 하면 지방도시에서도 10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금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우리나라 경제에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괴리와 '자산 격차'가 벌어지는 '갭코노미(gap +economy)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 뻔하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경기회복 시점이 예상보다 상당기간 늦어지는 경우이다. 최악의 경우 경기침체 속에 기업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속출하고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까지 올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장기 경기침체의 전조라 할 수 있는 자산버블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 단적으로 일본의 예를 보자.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달러 약세, 엔화 강세가 심해지자 일본은행은 경기침체를 우려해 저금리정책을 도입했고 주식과 부동산은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상승했다. 1990년대 초 일본은 극심한 자산시장의 거품 문제를 고민하다가 1990년대 초 결국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소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침체에 돌입했다. 1985~1989 일본의 모습처럼 버블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1980년대 후반의 일본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상황은 코로나라는 돌발적 변수로 인해 화폐 공급량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에 100조원 내외의 국가부채 증가를 감수하고 558조원에 달하는 초슈퍼 예산을 확보했다. 이 중에서 72.4%를 상반기에 투입할 예정이다. 다행히 코로나가 몇달안에 진정된다면 정부의 재정투입은 어느 정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환율·금리변동 등 금융시장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경제는 더욱 힘든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돈은 경제의 혈액이다. 혈액이 부족해서도 안 되지만 혈액이 정상적인 속도로 적재적소에 공급되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이다. 돈맥경화 경제를 살리기 위해 화폐 공급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많이 풀려도 '화폐유통속도(velocity of money)'가 느리면 경제회복 효과는 제한적이다. 화폐유통속도는 경제현장의 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널리 간주되고 있다. 화폐유통속도가 감소한다는 것은 생산과 소비와 투자 등 실물경제로 돈이 제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금융권에 잠겨있거나 개인의 금고나 지갑 속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코로나19 대응책으로 소위 '평균물가목표제'까지 도입했다. 실물경제가 정상화되기까지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선(근원 개인소비지출 물가 상승률 기준 2%) 위로 올라간다 해도 이를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원래 물가 상승이 2%를 넘으면 금리인상을 해야 하지만, 물가상승률이 2% 이상을 넘어가면 이에 못 미친 시기를 감안하여 상쇄시키겠다는 의미이다. 고용상황이 악화되고 경기는 여전히 침체인데 물가가 2% 올랐다고 금리를 올렸다간 긴축발작이 발생해 금융시장의 대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결국은 기대인플레이션을 상승시켜 화폐유통속도를 증가시키겠다는 의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화폐유통속도(명목GDP/M2)는 2011년 이후 꾸준히 둔화 추세이다. 이른바 '돈맥경화'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사상최저치인 0.6배로 추정이 된다. 올해 들어 4차례 추경에다 금융권 자금지원과 대출 등 풀린 돈 상당부분은 증시 또는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었다. 동학개미운동’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주가 급락 이후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됐지만 배경에는 화폐유통속도 감소로 자산시장으로 유동성이 유입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해 소비자물가지수는 0.5% 상승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등했다. 이런 가운데 단순히 소비자물가지수로 계산한 인플레이션 통계를 보고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할 수 있다. 통화량의 증가 대비 유통속도 감소가 자산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정책당국의 시급한 과제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시상황에서 국가는 국민의 생존을 위해 돈을 먼저 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무한정 윤전기를 돌릴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무분별한 돈풀기는 결국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다시 등장시키곤 했다. 가장 극단적인 예로 1차대전의 패전국 독일이 전비조달을 위해 엄청난 화폐를 발행하면서 물가가 수년간 통제불가 상태로 올라가는 하이퍼인플레이션 사태이다. 이런 경제 대혼란을 틈타 독일에선 아돌프 히틀러 나치스 정권이 탄생했다. 전시 상황과 같은 코로나 사태가 막을 내린 후 세계 경제가 어떤 모습일까? 요즘 주목을 받는 책이 있다. 런던정경대(LSE) 금융경제학 석좌교수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와 거시경제 분석가 마노즈 프라드한(Manoj Pradhan)은 <인구구조의 대전환(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이라는 저서에서 세계 경제는 저(低)인플레이션, 고(高)부채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보고있다. 이들은 과도하게 풀린 통화량이 원인이 되어 내년도엔 인플레이션이 5%, 심지어는 10%까지도 치솟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 이유로 상품 생산과 관련 세계화의 퇴조, 고령화로 인한 노동시장의 위축, 저축 열기의 감소로 인한 이자율 상승 등을 들었다. 무엇보다도 생산자보다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늘어나면서 인플레이션 상승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세계 대부분 국가들은 이와 같은 인플레이션 경고 목소리에 대해서 괘념치 않는 분위기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인플레이션 통제보다는 고용과 실업률을 중시하고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시장개입을 옹호하는 케인스 학파 경제학자 출신인 재닛 옐런 전 연준의장을 초대 재무장관으로 내정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앞으로 파월 현 연준 의장과 손발을 맞춰 달러를 더욱 많이 풀어 가계와 기업에 대한 재정지원 등 적극적으로 경제부양을 실시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파월 의장은 2023년까지 제로(0)금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가 있어, 그의 말대로라면 향후 2~3년간 미국과 세계 곳곳은 달러가 넘쳐날 것으로 보인다. 2020-12-20 23: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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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러스트벨트,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오나 [이수완의 월드비전] 미국을 세계 최대 경제부국으로 만든 3대 자연자원이 있다. 첫째는 서부의 황금이다. 19세기 중반 백인들이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드문드문 모여살던 캘리포니아 황야로 일확천금의 금광을 찾아 마차를 타고 우르르 몰려갔다. 북미 대륙 동부해안지역을 식민통치하던 영국에서 독립한 지 얼마 안된 신생국 미국의 이른바 '골드러시'는 눈부신 서부개척사의 시발점이 되었다. 둘째로 남부의 석유이다. 멕시코와의 전쟁 이후 미국 영토가 된 텍사스 유전에서는 석유와 가스가 무한정 공급되었다. 값싼 에너지와 전기료는 미국의 산업발전을 가속화하고 소비기반도 단단하게 쌓았다. 셰일가스 혁명으로 '석유 제국'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채굴가능한 에너지 양은 다른 모든 나라들을 합친 것보다 많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확보는 미국을 경제적으로 다른 선진국들보다 한 수 위에 놓이게 만들었다. 20세기초 '석유왕'으로 불리던 J.D록펠러(1839~1937)는 자본주의체제 미국 부(富)의 상징이었다. 달러로만 거래된 석유는 미국의 전략물자이자 금융패권까지 보장해주었다. 석유야말로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잡게 만든 핵심 자원이라 할 수 있다. 오대호(Great Lakes)의 철광석 또 하나의 핵심 자원은 북미 대륙 동부의 거대 호수군인 오대호(Great Lakes)에 매장된 엄청난 철광석이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산업의 번창은 미국을 제조업의 강국으로 만들었다. 스코틀랜드 출생인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는 가족과 함께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로 이주해 용광로에 석탄을 넣는 화부로 일하기도 했다. 그가 세운 '카네기 제철'은 석탄 채광부터 운송, 제품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수직적으로 연결시키는 데 성공해 경쟁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5개 호수를 연결해 전부 합치면 한반도 면적보다 큰 오대호 주변은 2차대전 이후 굴뚝산업을 키우는 데 딱 안성맞춤이었다. 공장들은 산업용 담수를 필요한 만큼 마음껏 호수에서 끌어다 썼다. 말이 호수이지 바다처럼 넓고 수심이 깊어 폐수를 버려도 엄청난 저수량으로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 사방으로 연결된 운하와 철도망 덕분에 물류 수송도 최적이었다. 주변 지역은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하며 한때 미국의 경제발전과 고용창출의 주역을 담당했다. 오대호 인근 미시간주 웨인 출생 자동차왕 헨리 포드(1863~1947)는 20세기초 최초로 조립라인 양산체제까지 확립하며 자동차 대중화시대를 열기도 했다. 펜실베이니아의 석탄과 오대호의 철광석을 이용해 제철 도시로 명성을 날리던 피츠버그는 2차대전 당시 수많은 군수품 공장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로 한때 '매연의 도시(smoky city)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디트로이트와 함께 미국 제조업 몰락의 대명사인 '러스트 벨트'(Rust Belt)'하면 떠오르는 상징적 도시이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중국과 후발 신흥공업국의 약진에 경쟁력을 잃고 10년간 75%의 제철소가 문을 닫고 35만명이 해고되었다. 인근 미시간주의 최대도시이며 오대호의 심장부에 자리한 디트로이트는 철강제품의 안정적인 공급과 수륙교통의 발달에 힘입어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3대 자동차 생산 주력공장이 자리잡았고 조선과 기계·화학 공업도 번창했다. 이곳도 도요타와 혼다 등 고품질 일본 자동차의 수입이 급증하면서 1970~80년대 자동차 생산이 40% 감소하고 수많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급속한 산업공동화로 공장설비가 부식되어 녹(rust)이 슬어버린 지역이라는 의미의 '러스트벨트'라는 호칭이 만들어졌다. 과거 압도적 제조업 강국인 미국을 상징했던 '러스트벨트'의 흥망성쇠는 세계 경제학자들의 주요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20세기초 오대호 인근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피츠버그, 시카고,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등에 기업가들이 너도나도 공장을 세우면서 미 대륙 각지에서 몰려온 노동자들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당시에는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을 비롯 오하이오, 위스콘신, 일리노이, 인디애나, 아이오와, 웨스트버지니아 등 오대호 주변지역의 공업지대를 '공장 벨트(factory belt)', '제조업 벨트(manufacturing belt) 또는 '철의 벨트(Steel Belt)'로 불렀다. 한때 미 전체 고용인구의 40%를 차지했던 지역이 쇠퇴의 길로 치닫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자동화 물결 속에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고 값싸고 품질이 좋아진 외국산 제품이 미국으로 대거 몰려온 것이 주요 요인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철강·자동차·조선 등 전통 제조업 분야에서 기술력과 생산성 우위를 다른 국가에 넘겨준 것이다. 거기다가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와 노조의 강세는 이곳의 기업들로 하여금 해외와 미 남부·서부 해안으로 공장을 이전토록 만들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시작된 IT붐으로 서부의 실리콘밸리에 인재들과 기업의 투자가 몰리면서 대호수 인근 공장지대는 어두컴컴한 음지로 변해갔다. 기업들이 떠난 도시에는 흑인 빈곤층이 늘어나고 범죄율도 폭증했다. 11월 2일 피츠버그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유세장 모습 [UPI/연합] 미국 대선의 승부처 선거 때마다 '러스트벨트'는 어느 지역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표심대결이 치열한 지역이다. 특히 4년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에서 7만8000표 차로 신승하면서 대권을 잡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전통적으로 '러스트 벨트'의 도시지역은 민주당, 농촌지역은 공화당의 텃밭이다. 이번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이 지역에서 승리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백인 유권자들이 다수인 교외지역에서 트럼프 돌풍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주요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2016년 트럼프는 '러스트벨트'의 고통과 아픔을 십분 캠페인에 활용했다. 그는 오랫동안 소외되었던 저학력 백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집중 공략했다. 그리하여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흑인 유권자들만 믿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결정타를 날렸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잃어버린 제조업 영광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약속을 한다. 트럼프의 2017년 취임 연설을 보자. 그는 "녹슨 공장들이 미국 전역에 무덤처럼 널려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무너져버린 미국의 철강산업을 재건하고, 제조업을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의 고향은 오하이오주 북동부에 있는 항구도시 애슈터뷸라이다. 트럼프의 매파 책사인 그는 미국의 대표적 철강수출항으로 번창했다가 고향이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중국에 강한 반감을 품고 자랐다. 이번 선거에서도 트럼프는 백인 노동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러스트 벨트 경합주를 중심으로 강행군을 펼쳤지만 결과는 4년전과 달랐다. 힐러리와 달리 바이든 후보가 이 지역을 이번 선거의 최대 승부처로 삼고 교외지역 백인 유권자의 표심을 상당히 자신에게 끌어온 결과이다. 이와 더불어 4년전 트럼프가 집권한 이후 '러스트벨트'의 경제적 사정이 나아지긴커녕 후퇴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영국의 인디펜던트지 분석에 따르면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유럽의 철강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고용인구는 늘어나지 못했다. US스틸 등 철강주의 주가도 다른 기업들에 비해 맥을 못 추고 있다. 관세부과 영향으로 철강가격이 상승하면서 포드와 GM 등 자동차업체들의 비용이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일자리도 감소했다. 지난해 GM은 콤팩트카 '쉐보레 크루즈'를 생산하던 오하이오주 소형자동차 공장의 문을 닫으며 1200명을 해고했다. 자동차의 메카인 미시간주의 일자리수는 2017년초부터 2020년 9월 사이 약 4000명이 감소한 3만6000명 수준으로 내려갔다. 코로나 팬데믹이 기승을 부린 올해 미시간, 오하이오 등 일부 '러스트벨트' 지역의 실업률은 미국 여타지역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가 해외에 투자한 미국 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오는 '리쇼어링'이 대거 진행 중이라고 큰소리 쳤지만 실제 '러스트벨트'로 제조업 투자붐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통계는 없다. 트럼프가 단행한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조치의 대부분 혜택은 부자들에게 갔다. 전반적으로 트럼프의 정책이 '러스트벨트'를 살리는 데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인디펜던트의 분석이다. 신경제(new economy)로 재도약 턴어라운드 마련 그렇다고 '러스트 벨트'가 미래가 없는 버려진 땅은 아니다. 구경제(old economy)에서 IT, 헬스케어, 금융서비스 등 21세기 신경제(new economy) 모델로 산업구조를 전환하고 환경보호에 힘쓰면서 진흙탕에서 장미가 핀 사례들이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철의 도시' 피츠버그로 다시 가보자. 이 도시는 교통의 요지로 운하가 워싱턴 DC까지 연결되고, 오하이오강을 통해 북으로는 시카고와 디트로이트가 있다. 과거 제철의 도시라는 영광은 한물갔지만, 서비스섹터로의 산업전환과 경제회복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이곳에서는 제2의 피츠버그 르네상스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 4차산업혁명 분야에서 구글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첨단 기술기업이 대학들과 산학협력을 펼치면서 일자리와 신산업 창출의 메카를 꿈꾸고 있다.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디트로이트도 '자동차의 메카'라는 명성을 찾기위해 전진하고 있다. 바이든 당선자의 선거공약은 큰 힘이 되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세계 1위 복귀를 천명했다. 자동차 부품과 소재, 전기차 충전소, 부품 공급망, 제조까지 전기차 생태계를 만들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2013년 재정파탄으로 파산선고까지 했던 이 도시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쨍'하고 해뜰 날이 돌아오길 고대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당선자는 '러스트 벨트' 최대 승부처 펜실베이니아의 탄광도시 스크랜턴에서 태어나 10살 때 델라웨어주로 이주했다. 스크랜턴은 석탄으로 만든 전기를 이용해 미국 최초로 전차를 운행해 '전기 도시(The Electric City)'라고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우리나라로 치면 태백 삼척 정선 등 강원도 폐광지역과도 유사하다. 바이든은 고등학교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유리창 청소를 하거나 풀을 뽑았고 말더듬이라고 놀림까지 받기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8년 바이든을 부통령으로 지명하면서 '스크랜턴 출신의 허접한(scrappy) 소년'이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바이든을 '허접한 조(scrappy Joe)'라고 놀려댄 배경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이번 선거유세에서 '러스트 벨트'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집권시 임기 4년간 총 7000억 달러(약 770조원)의 정부예산을 추가 투자해 제조업과 첨단 기술분야에서 500만개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그가 보호무역주의 논란의 소지가 큰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을 고집하는 이유도 '러스트 벨트'의 민심을 꼬옥 붙잡기 위해서다. [오대호 부근 러스트벨트州] 2020-11-30 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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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태국 민주화 시위 '감히' 왕을 건드리다 민주 개혁 요구하는 태국 반정부 시위대 (방콕 AP=연합뉴스) 태국의 민주화 시위대가 29일 수도 방콕의 실롬 지구에서 총리 퇴진과 개현,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태국의 불안한 정국이 다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 반정부 시위대는 6년째 집권중인 군인 출신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퇴진뿐 아니라 오랫동안 금기시된 태국 왕실개혁 문제까지 들고 나섰다. 과거 집회가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서민층 '레드셔츠'(red shirts)의 주도로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20~30대 직장인들이 나섰다. 이에 왕당파 지지세력 '옐로셔츠'(yellow shirts)가 군주제를 모욕하는 사람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대응을 주장하며 세몰이와 반격에 나서고 있다. 1932년 태국은 절대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 전환되면서 형식상으로 주권은 국왕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 그러나 신세대 젊은층은 몰라도 중장년층은 오랫동안 국왕을 '신'(神) 또는 '국민의 아버지'로 여기고 살았다. 노랑색은 태국의 왕실을 상징한다. 친정부 '옐로셔츠' 세력이 국가의 안정을 위해 왕실이 절대 흔들려서는 안된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왕권수호에 나서고 있다. 불교국가인 태국은 국민들의 왕실과 국왕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이 매우 강한 국가이다. 정치적.외교적 위기 때마다 국왕은 적극 나서며 나라의 구심점이 되었다.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유럽 열강의 식민지가 된 적이 없는 나라인데 국민들은 이를 국왕의 훌륭한 정치력과 외교력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율 브리너 주연의 추억의 명화 '왕과 나'(1956)는 시암(태국의 과거 국호)의 국왕 라마4세(1851~1868년 재위)와 영국에서 건너온 여교사(데보라커)와의 로맨스를 다루었다. 이 영화가 태국에서 아직도 상영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의 치열한 식민지 쟁탈전에서 태국의 독립을 지키고 문호를 개방하여 근대화의 길로 이끈 라마4세가 다소 거칠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부분들 때문이다. 태국에서 왕실은 물론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는 경우 최고 15년의 징역형을 받는다. 태국 형법 112조의 '왕실모독죄'는 "국왕을 숭배해야 하며, 어떠한 이유에서도 국왕을 비방하거나 명예훼손을 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태국의 정치를 이해하려면 태국 특유의 권력구도를 살펴보아야 한다. 1932년 무혈쿠데타로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군부 세력은 민주공화제 대신 입헌군주제를 도입해 왕실과 타협을 시도했다. 이후 군대는 왕실을 보호하고, 왕실은 군인들의 통치를 용납하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 혼란 시 걸핏하면 군부가 일어나 정권을 잡는 '쿠데타의 나라'가 된 배경이다. 군부의 지원을 받는 왕실은 국가통합 및 국가수호의 광범위한 상징이자 부와 권력까지 거머쥐고 있다. 특히 지난 2016년 10월 13일 서거할 때 까지 무려 70년 동안 통치했던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라마 9세)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과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푸미폰 국왕은 군부 쿠데타 등으로 정국이 혼란에 빠질 때마다 높은 도덕적 권위로 시국 안정을 위해 영향력을 유감없이 행사했다.1973년에는 군부가 민주화 학생 시위대에 발포하자 학생들에게 궁전 문을 개방했다. 1992년에는 민주화 시위 와중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수친다 당시 총리와 야권을 대표하는 잠롱 스리무리앙 전 방콕 시장의 대립으로 정치적 불안이 극에 달하자 두 사람을 왕궁으로 불러들여 무릎을 꿇어앉히고 준엄하게 질책했다. 수친다 전 총리는 결국 해외 망명길에 오르고 민주정부가 들어서게된다. 그러나 빈민층과 농민 등으로부터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탁신 친나왓 총리가 2006년 해외 순방 중 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축출될 때는 묵시적으로 동의를 표시하기도 했다. 현 쁘라윳 총리가 육군 참모총장에 재직하던 2014년 주도한 쿠데타도 최종적으로 푸미폰 국왕의 승인을 받으면서 탁신의 동생 잉락 친나왓 총리의 퇴진과 군부 통치로 귀결될 수 있었다. 재임기간(1946~2016) 19번의 쿠데타를 겪었고, 헌법을 16번 개정했고 총리를 28명이나 교체했다. 군부와 왕실, 그리고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라는 세개의 권력이 서로 견제하는 미묘한 권력구도이다.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이러한 역학구도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여부이다. 관건은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이다. 태국 국민 다수는 세계 최장인 70년의 재위 기록을 가진 푸미폰 국왕을 구심점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태국의 시위대가 '신성 불가침적' 영역인 군주제 개혁까지 들고 나온 배경에는 코로나19 사태로 관광산업이 멈추며 실업자가 수백만명 발생하는 등 경제가 최악인데도 호화생활로 물의를 빚어온 현 국왕인 라마 10세(마하 와치랄롱꼰, 68세)에 대한 실망감 때문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올해 태국 정부 예산에서 로열오피스(Royal Office)로 배정된 왕실 예산은 90억 바트(약 3400억원) 2018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외유를 즐기는 국왕은 수십대의 항공기와 헬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왕실 예산의 20% 이상이 항공기의 연료비, 유지 보수비 등에 투입되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 창궐 시 태국을 떠나 독일 알프스 리조트에서 수십명의 여성 수행원과 휴가를 보내는가 하면, 헌법을 바꿔 태국을 섭정 통치해 독일 정부의 항의도 받았다. 수출과 관광수입이 주도하는 태국경제는 지난 2분기 마이너스 12.2%를 기록했다. 올해 전체로는 마이너스 8% 수준으로 추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태국 국왕은 재산이 400억 달러(약 46조원)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군주’로 꼽히고 있다. 입헌군주제 국가가 된 이후 태국은 국왕 개인 재산과 왕실 자산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왕실자산국(Crown Property Bureau. CPB)을 설립했다. 지난 2018년 6월 16일 태국 CPB는 매우 이례적인 발표를 내놓는다. 80년 이상 CPB가 관리하던 모든 왕실재산을 마하 국왕 명의로 돌린다는 내용이었다. CPB는 방콕 번화가의 주요 부동산뿐 아니라 태국의 주요 기업인 시암시멘트그룹(Siam Cement Group, SCG)과 이 기업의 최대 채권자인 시암상업은행(Siam Commercial Bank, SCB)의 상당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빅 뉴스'가 당시 CPB 웹사이트에 보일듯 말듯 조그마하게 실리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 왕실예산 문제와 함께 부각되고 있다. 시위자들은 태국보다 독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국왕에게 왜 막대한 공적 자금이 지원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왕실 예산의 삭감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군부가 '왕실모독죄'라는 칼을 휘두르고 있어 태국 언론들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태국의 경제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태로 빠진 부의 양극화는 최대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2018년 크레딧스위스(Credit Suisse)의 글로벌 웰스 리포트(Global Wealth Report)에 따르면 태국은 빈부격차와 계층간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90.2로 아세안 국가 중에서 1위이다. 세계적으로는 우크라이나(95.5), 카자흐스탄(95.2) 이집트(90.9) 다음으로 4위이다. 태국 성인의 91.9%가 연소득이 1만 달러 미만이다. 반면 태국 상위 1%가 전체 부의 2/3를 가지고 있다. 과거 1980~90년대 태국은 아시아에서 경제성장이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였다. 이후 1인당 GDP가 중국에 추월당하고 한국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가 된 것은 무엇보다도 정치 사회적 불안으로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결과로 보인다. 최근 외신 보도를 보니 태국 경찰은 총리퇴진과 개헌 그리고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에 물대포를 발사했다. 시위대 인근에서는 국왕을 상징하는 노란색 상의를 입은 시위대가 군주제 수호 구호를 외쳤다. 태국사회의 현 모습이다. 그런데 유난히 눈길을 끈 기사가 있었다. 지난 1일 마하 국왕이 왕궁 밖에서 지지자들을 격려하면서 시위대에 정치적 제스쳐를 보냈다는 내용이다. 그는 일부 해외언론으로부터 민주화 시위대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들도 똑같이 사랑한다"면서 "태국은 타협의 땅"이라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CNN은 국왕이 이날 타협을 언급한 것은 장기간의 교착 상태를 풀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외신들이 태국 국왕의 시위대를 보는 발언도 발언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권위를 대폭 낮춘 국왕의 행동이라고 보도했다. 별세한 푸미폰 국왕을 포함 태국 국왕이 언론사 기자의 단독 질문에 바로 응답한 경우는 수십년간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에 못 보던 태국 국왕의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국왕은 이날 수티다 왕비와 팔짱을 끼고 노란색 옷을 입은 지지자들 사이로 지그재그로 돌며 군중의 연호에 화답했다. 국왕은 중 고교 1학년 남학생이 ”셀프 카메라를 찍어도 되냐”고 하자 “그럼” 하며 포즈까지 취해 주었다. 군주제 개혁까지 나오는 시국에 마하 국왕은 왕실도 몸을 낮추고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듯하다. 2014년 잉락 친나왓 총리를 축출하고 탄생한 태국의 현 군부정권은 태국의 극심한 정치적 갈등 해소를 통한 국민 화합과 조속한 민정이양을 약속했다. 그러나 2017년 군부의 정치 개입을 허용하는 새 헌법이 반포되면서 태국 민주주의는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태국 헌법은 상원의원 250명을 정부가 지명하도록 하고 있다. 하원의원 500명 중 350명은 지역구 유권자들의 직접 투표, 나머지 150명은 정당 비례대표로 선출된다. 그런데 상하원 의석에서 다수를 차지한 정당이 집권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여당 후보에 유리하다. 쁘라윳 총리는 '민정 이양'에 관한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스스로 총리가 된 데 이어 작년 3월 총선 당시 연임에 성공했다. 태국의 반정부 시위는 올해 2월 젊은 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던 야당인 퓨처포워드당(FFP)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강제 해산된 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반정부 시위가 3개월 이상 계속되자 쁘라윳 총리는 지난달 15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태국의 Z세대가 주축인 이번 민주화 시위대는 과거와 달리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게릴라식 전법을 구사하며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사퇴불가'에서 요지부동이다. 과거 군부정권시절 우리 민주화시대 겪었던 진통이 생각난다. 우리에겐 군부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1:1 대결이었는데, 태국은 좀 복잡하다. 왕실과 군부의 밀월관계 종식은 현실적으로 쉽지않다. 그리고 열렬한 왕실지지파와 도시의 중산층이 포함된 기득권층, 경제 성장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농민과 소외계층 그리고 거침없이 자유와 정의를 열망하는 신세대 젊은 학생들로 분열되어 있다.그래서 태국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것이 우리보다 훨씬 힘들고 오래 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왕 사진 들고 '군주제 수호' 시위하는 태국 왕실 지지자들 (방콕 로이터=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국왕을 상징하는 색깔인 노란색 상의를 입은 왕실 지지파들이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 사진과 국기를 들고 '군주제 수호'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0-11-16 00: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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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더 이상 그 美國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시간주 랜싱의 캐피털 공항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랜싱= AP·연합뉴스] 지난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선이 초유의 접전으로 아직 당선자를 가리지 못하는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선거일 밤에 개표 결과 확정이 늦어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다음날 새벽 모두 승리를 주장했다. 미 선거역사상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은 일부 경합주의 개표 중단 소송을 제기했다. 미 선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승리 연설보다 패자의 승복 연설이 더욱 감동적일 때가 많았다. 4년 전만 해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트럼프보다 300만표 가까이 더 많은 표를 득표했으나 선거인단 수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미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했던 클린턴은 선거 다음날 대중 앞에 섰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패배의 고통이 오래갈 것이라면서도 누군가는 빨리 '단단한 유리천장'을 깰 것을 희망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번 미 대선의 피말리는 개표전쟁을 보면서 2000년 미 대선이 떠오른다. 당시 플로리다주에서 개표 분쟁이 벌어져 한달 가까이 당선자를 확정하지 못하다가 대법원의 판결로 결정되었다. 이번에도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플로리다에서는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가 앨 고어 민주당 후보에게 500여표 차로 이기는 박빙의 결과가 나왔다. 조지 부시의 동생 젭 부시가 주지사였던 플로리다주에서 고어를 찍은, 의사가 분명한 많은 표들이 무효 처리됐다. 이에 고어 쪽은 재검표를 요구했으나, 부시 쪽은 재검표 중단을 법원에 제소했다. 플로리다 법원은 재검표 중단을 결정했고, 연방대법원도 주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여 결국 부시의 승리로 귀결됐다. 고어는 깨끗이 승복했다. 그가 승복을 하지 않았더라면 남북전쟁 때처럼 미국은 연방정부와 주(州) 간의 알력다툼이 지속되어 대혼란 속에 빠질 게 분명했다. 고어는 당시 "이게 미국입니다. 정치색보다 나라를 우선으로 둡니다. 새 대통령 뒤에 저도 함께 서겠습니다"라고 선언하며 온국민의 찬사를 받았다. 대선불복과 미국사회의 분열 미국 대선에선 선거인단 과반인 270명을 확보한 후보가 나오면, 개표 중에라도 패자가 승복 연설을 해왔다. 아름다운 전통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미국이 자랑해온 승복의 전통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 대선 불복 소송으로 이미 심각한 상태인 미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더욱 악화될 조짐이다. 자칫 지지자들끼리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질 수 있는 험악한 분위기도 연출되고 있다. 이번 대선은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에서도 알 수 있듯 유권자 관심이 어느 때보다 집중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침체, 부의 양극화, 인종차별반대 시위로 인한 미국사회의 분열은 악화일로였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도 이번 선거를 계기로 지난 4년간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로 국제질서가 혼란에 빠진 트럼프 시대가 막을 내릴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선거 과정과 결과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우린 미국이라는 초강국, 그리고 미국인들의 속내와 참모습을 조금이나마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초반에 리드했던 일부 경합주에서 막판 전세가 역전되면서 트럼프의 당선이 불투명해진 상황이지만 분명한 것은 예상보다 많은 미국인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거를 앞두고 서방의 대다수 주류 언론들이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우세를 점쳤지만 이번에도 트럼프는 4년 전처럼 타고난 승부사의 관록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에겐 '샤이 트럼프(shy Trump)'라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러스트벨트(쇠락한 북부 공업지대)와 팜벨트(중서부 농업지대) 저학력 백인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이들 중에는 인종과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 등 분열적이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인물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을 꺼리지만 속으로는 트럼프의 공격적인 스타일에 끌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서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즉, 승부를 가르는 주요 경합지에서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은, 숨어 있던 트럼프 지지자들이 예상보다 많이 투표에 나선 것이다. 질서 파괴자(disruptor-in-chief) vs '치유의 리더(healer-in-chief)' 트럼프는 지난 4년간 국제사회에서 최고의 질서 파괴자(disruptor-in-chief)로 불렸다. 2차대전 이후 군사나 경제,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던 미국은 자유주의와 인권 수호를 위한 '세계의 경찰' 이라는 타이틀이 붙어다녔다. 트럼프는 이러한 역할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며서,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국제관계에서 글로벌리즘(globalism)을 금전거래로 전락시키고 국가 애국주의에 호소했다. 우리에겐 주한미군 분담금 확대라는 불똥이 튀고,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자인 중국에는 관세폭탄을 퍼부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동맹 경시, 파리기후협약·이란 핵합의·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시리아 철군 등에서 보듯이 트럼프 시대 국제질서는 곳곳에서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트럼프가 돈과 미국의 국익을 위한다며 국제사회가 받아들여온 핵심적인 규범을 마구 파괴했지만,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의 반감이 커지면서 미국의 리더십과 위상도 크게 훼손되었다. 그동안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전통적 동맹국까지 깔보고 얕보는 미국을 진정으로 따른 국가는 얼마나 있었을까?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미국의 일방주의와 지구촌의 탈세계화는 지속될 전망이다. 40년 동안 공직에서 일한 노련한 기성정치인으로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품의 바이든 후보는 '정치적 이단아'로 불리며 기성 정치의 틀을 벗어난 트럼프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트럼프 시대를 '미국의 암흑기'로 규정하고 민주주의를 새롭게 건설하자고 미국인들의 단합을 촉구했다. 선거 과정에서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시대를 극복하고 잃어버린 '미국적 가치'를 되찾자고 주장했다. 1972년 상원의원(델라웨어주)에 당선된 직후 교통사고로 아내와 13개월 된 막내딸을 잃는 등 아픈 가족사를 당당히 극복해낸 그의 모습은 유권자들에게 공감과 '치유의 리더(healer-in-chief)'로 이미지 매김했다. 외교 전문가인 바이든은 트럼프가 국제사회 질서와 규범을 얼마나 심각하게 파손시켰는지 누구보다 잘 알 터이다. 바이든은 집권 시 미국을 적어도 트럼프 이전의 시대로 되돌리려고 할 것이다. 환경과 무역, 기후변화 분야에서도 세계 질서 회복과 협력이 미국 같은 슈퍼파워에게 비용보다는 편익을 주고 안보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법하다. 트럼프 시대 국제사회가 입은 상처에 대한 치유에 바이든의 역활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많은 국가로부터 존경받는 국가도 아니고 더군다나 군사적 또는 경제적 파워가 과거와 달리 압도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트럼프는 집권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자신의 바람과 달리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관계도 미국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힘'과 '억지' 외교로 미국만이 유일하게 국제 질서를 마음먹은 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예외론(American exceptionalism)'은 트럼프 시대가 막을 내릴 경우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대신 협력과 소통을 통한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건설적 리더십과 역할에 대한 비전을 다시 싹틔울 수 있는 희망도 품게 된다. 한반도 정책, 한·미 동맹은 이번 대선 결과 우리에게 최대 관심은 향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일 것이다.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과의 직접 만남 또는 '아름다운 편지' 교환 등 정상 간의 유대를 통한 톱다운(top-down) 방식보다는 실무자 간 협의와 성과를 우선시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바이든이 평소 '독재자' 또는 '폭력배(thug)'라고 비난해온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미 관계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처럼 난항이 예상된다. 정권 교체 시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북한의 도발 움직임도 경계해야 한다. 한·미 관계도 바이든의 집권 시 큰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트럼프처럼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 셈하거나 터무니없는 방위비 분담금 요구는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 언론에 보낸 기고문에서 바이든은 주한미군 철수 협박으로 동맹인 한국을 갈취(extort)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바이든의 시대가 우리에게 그리 장밋빛을 투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원하는 한·미 동맹의 재구축은 결국 미국의 패권 경쟁자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대중(對中) 동맹으로의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집단안보체제인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탈중국 공급망 구상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등에 대한 한국의 동참 요구가 구체화될 전망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바이든의 스타일상 미국이 무조건 중국 때리기에 나서지는 않을 듯하다. 한반도 문제 등 사안에 따라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 동맹 강화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되 이것이 반중전선 동참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우리 정부가 직면한 중차대한 외교·안보적 도전이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도 미국과 중국, 나아가서는 일본과 러시아의 협조를 끌어내는 전략과 지혜가 필요하다. 미국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 미국은 향후 4년 미국을 위기의 수렁에서 꺼낼 사람으로 '착한' 대통령을 새로 선택하느냐, 아니면 허풍이 심하고 성품도 괴팍하고 종잡을 수 없는 선동 정치가이지만 '힘센' 대통령을 연임시키느냐 기로에 서 있다. 선거 개표에 대한 논란이 조속히 수습되길 바란다. 미국의 혼란이 상당기간 지속된다면, 미국의 통치 기능은 마비될 뿐 아니라 세계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많은 국가들은 미국이 이전의 미국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협력과 소통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건설적 리더십과 역할에 대한 비전을 다시 싹틔울 수 있는 희망도 품게 되어 다행이다. 2020-11-05 23: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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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트럼피즘(Trumpism)은 사라질 것인가? 유세중 마스크 손에 든 바이든 "모두에게 코로나19 무료 백신" (윌밍턴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23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유세 연설 도중 마스크를 손에 든 채 코로나19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바이든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모두가 무료로 맞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20년 미국 대선이 막을 내릴 때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4년 전처럼 막판 뒤집기로 또다시 대역전극을 펼치느냐? 아니면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줄곧 크게 앞선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코로나19 확진에서 금세 일어나 폭풍유세를 펼치고 있는 트럼프의 맹추격을 따돌릴 것인가? 다음 주면 판명이 날 것이다. 다만 전제조건이 붙는다. 패자가 승자를 인정해야 한다. 올해 우린 유독히도 혼란스럽고 희한한 모습의 미국 대선을 지켜보았다. 코로나 팬데믹은 일순간 선거 유세를 크게 위축시키고 투표 풍경도 바꾸게 했다. 대선을 엿새 앞둔 28일(현지시간) 사전투표(조기 현장투표 + 우편투표)는 7000만명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 중이다. 이 중 우편투표는 벌써 4775만명를 넘어 유효투표 확인 등 개표작업이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부 경합주에서는 선거일 3~4일 후 또는 최악의 경우 몇주가 지나야 최종 개표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거리로 시위대가 나서는 등 사회 갈등과 혼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가 패배 시 사실상의 '친위 쿠데타' (self coup)를 통해 정권유지를 시도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 본산격인 미국에서 이런 일이? 어째 기분이 묘할 뿐이다. 미 대선 방식은 참으로 복잡하다. 전국 득표수가 아닌 주별로 배정된 선거인단을 얼마나 확보하는지를 계산해 당선자를 결정한다. 당선을 위해선 선거인단 538명의 과반인 270명의 지지가 필요하다. 엄밀히 말하면 11월 3일은 각주마다 선거인단을 뽑는 날이다. 주별로 한표라도 많은 표를 얻으면 지역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형태(메인·네브래스카주 제외)다. 오는 12월 14일까지는 정식으로 대선후보에 투표를 하게 되는 선거인단이 구성되어야 한다. 내년 1월 20일엔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게 된다. 지금 최대 관심사는 이러한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 여부다. 지기 싫어하는, 아니 자기가 패배자라고 인정을 해본 적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개표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 이를 쿨하게 인정하지 않고 부정선거로 몰고갈 우려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근거도 없이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하며 줄곧 대선 패배 시 불복 의사를 밝혀왔다. 그러다가 비판적인 여론이 커지자 지난 15일 타운홀 미팅에서 처음으로 평화적인 권력이양을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지난 4년 전 대선에서 자기 이름이 적힌 수천개의 투표지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다는 등 근거없는 주장을 펼치며 이번 선거에서 우편투표가 부정선거로 이어질 가능성을 거듭 제기했다. 4년 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의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도 트럼프 후보는 부정투표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당시에도 여론조사에서 밀리던 트럼프가 패배 시 선거 결과를 수용할지 여부는 큰 관심사였다. 그는 선거 보름을 앞둔 막판 유세 중에 갑자기 '중대 발표'를 한다. 자신은 모든 국민들에게 선거 결과를 완전 수용할 것을 약속하고 맹세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다음 세 단어를 강조한 후 입술을 살짝 펴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If … I … win!” (내가 이긴다면) 대선불복?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한데다 인종차별 폭력과 시위로 이번 선거 분위기가 완전 뒤틀린 마당에 '대선불복' 사태로 사회 혼란이 가중된다면 세계 최강국 미국의 체면은 더욱 구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와 러스트벨트 등 박빙의 승부로 핵심 경합주를 휩쓸며 대권을 차지했다. 전체 선거인단 306명(힐러리 클린턴 232명)을 확보해 승리했으나, 미국 유권자 전체 득표수에서는 힐러리에 287만표나 뒤졌다. 트럼프는 당선 이후 2016년 선거에서 최소 300만명의 불법이민자들이 힐러리에게 부정 투표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도 전혀 근거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승부욕이 강한 인물이며 자신의 패배나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는 성격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에 의해 널리 알려진 역사 해석학 용어인 '휴브리스(hubris)'는 성공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우상화함으로써 자기 오류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가 코로나의 위협을 가볍게 여기다 대선 한달을 앞두고 확진 판결을 받아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것은 그야말로 이번 대선의 최대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일부 심리학자들은 그를 반사회적 인격장애(소시오패스)와 자기애적 인격장애(나르시시스트) 등의 복합증상을 보이는 '위험인물'로 분석하고 있다. 지더라도 그냥 쉽게 물러날 그가 아닌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박빙의 승부 끝에 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가 조작되었다며 재검표 소송에 나서거나 경합주의 선거인단 선출을 지체시켜 상대방이 과반수의 선거인단 확보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는 등 각종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는 쿠데타와 무장봉기 총격전 등 독재국가에서나 어울리는 생소한 단어들이 미국에서 쏟아질 줄은 우리가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현재 민주당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개표가 지연되고 선거인단 명부를 확정하지 못해 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상황이다. 두 후보 중 누구도 선거인단의 과반인 270표를 확보하지 못하면 각 주별로 한명의 연방 하원의원이 대표로 투표해 대통령을 선출한다. 현재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지만 주별로 따지면 26개 주에서 공화당이, 23개 주에서는 민주당이 다수다. 이 상황까지 가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히려 유리해진다. 트럼프가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의 후임으로 보수성향의 코니 배럿 판사를 서둘러 지명하고 상원 인준을 밀어붙이는 것도 대선 불복 소송을 노린 포석으로 보인다. 이번 주 배럿 지명자가 임명되면서 미 연방대법원은 보수 6명, 진보 3명의 보수 절대 우위 구도를 가지게 됐다. 정치용어 인터레그넘(interregnum)은 선거일로부터 차기 대통령의 취임선서까지의 사이클을 일컫는다. 다시 말하면 최고 권력의 부재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무슨 일이 미국에서 발생할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근대 미국 선거 중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높은 적이 있었나 싶다.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우편투표율 증가를 고려할 때 올해 미 대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예년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승자 결정과 관련한 불확실성은 11월 3일 선거 이후 몇주간 계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 대선이 혼탁해질 경우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악화는 물론 최고 신용등급인 트리플A(AAA)도 위태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검표 사태가 벌어진 지난 2000년 대선 때도 선거 이후 5주간 혼란이 계속됐지만 신용등급은 유지됐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혼탁한 이번 미국 대선은 지금 이렇게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다. 샤이 트럼프 vs 샤이 바이든 트럼프가 4년 전 '아웃사이더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전 세계는 극심한 혼란과 갈등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트럼프 특유의 '변덕과 변칙', '마이웨이' 외교 전략에는 동맹도 적도 없고 오직 경쟁자만 있을 뿐이었다. 트럼프라는 최고 권력자가 지난 4년 미국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사실 트럼프는 미국사회가 만든 산물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아메리카 퍼스트'와 반이민정책을 내세우며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팜벨트(중서부 농업지대)의 저학력 백인 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됐다. 이들 중에는 인종과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 등 분열적이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인물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을 꺼려했지만 속으로는 그의 공격적인 스타일에 끌리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소위 '샤이 트럼프(shy Trump)'들이 대거 투표장에 몰려와 2016년 대선은 사전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트럼프의 승리로 귀결된 것이다. 이번에도 '샤이 트럼프'의 위력이 다시 한번 발휘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올해는 2016년과 상황이 바뀐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첫째는 여론조사기관들이 지난 대선의 실패를 교훈 삼아 조사방식을 대폭 보완했다. 여론조사 대상에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저학력층 백인, 비도심 지역 거주자의 비중을 높인 것이다. 또 하나는 누구를 찍을 것인지 밝히지 않는 부동층 유권자가 4년 전부터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샤이'하지 않고 커밍아웃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많다. 공격적인 트럼프 지지층 때문에 바이든 지지를 못 밝히는 '샤이 바이든(shy Biden)'이 '샤이 트럼프'만큼 많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샤이 트럼프' 돌풍으로 아슬아슬하게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준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몇몇 경합주에서 '샤이 바이든'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바이든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트럼프와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다. 트럼프가 정치와 전혀 무관한 경력을 쌓은 뒤 백악관에 입성한 반면, 바이든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과 8년을 함께한 부통령, 7선 관록의 상원의원, 3번의 대선 도전 등의 수식어로 설명되는 정통 정치인이다.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품으로 유권자들의 '비호감'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은 4년 전 '거만하고 잘난 척하는 기성 엘리트 정치인 이미지가 너무 강하고 불편한 인상을 주었던 힐러리 클린턴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어디로 튈지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면 바이든은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한 인물이다. 이리하여 바이든 시대의 미국은 일방적이고 거친 외교에서 벗어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원칙에 입각한 다자주의를 추구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되살아나고 있다. 선거후 미 경제 더블딥 우려 코로나19 재확산과 부진한 실물경제 지표 속에 치르는 이번 대선은 미국 경제 회복의 탄력성을 결정짓는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특히 대선 결과 불투명 등 요인이 발생할 경우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백악관의 새 주인이 누가 되든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준은 당분간 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 시 집권 2기 정책은 감세와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기조가 이어지고 코로나로 무너진 경제 회복에 초점을 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지배할 경우, 트럼프의 각종 경제정책은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이 당선되면, 그의 공약대로 법인세율 인상과 규제강화가 미국 기업들의 고용·투자 의욕과 가계 소득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만약 바이든이 패배한다면, 소위 '바이드노믹스(Bidenomics)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라는 말도 나올 것이다. 세계 경제의 불안요소인 미·중간 무역전쟁도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바이든 역시 트럼프처럼 중국을 겨냥해 공격적인 무역 조처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마지막에 웃을지, 11월 3일 선거가 끝나봐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왜 공화당 후보로 나섰지만 '정치적 이단자'로 취급받던 트럼프를 선택했는지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은 그가 워싱턴의 정치질서를 마구 흔들어 놓기를 바랐다.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의 괴팍한 성격 그리고 기성 정치의 틀과 법률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 등에 대해 그의 지지층은 본능적으로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여론조사는 거의 만장일치로 데마고그(demagogue·선동정치가) 트럼프가 패배, 4년 단임 대통령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든이 설령 승리해도 세계화와 엘리트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로 요약되는 트럼피즘(Trumpism)은 미국에서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즉, 바이든이 승리해도 미국의 모습이 4년 전 모습 완전히 복귀를 의미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중국의 맹추격으로 인한 글로벌 질서의 급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결집으로 악화된 미국사회의 분열은 자유세계의 리더 미국의 위상을 계속 위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뉴햄프셔에서 주말 유세하는 트럼프 대통령 (런던데리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말인 26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런던데리의 맨체스터-보스턴 공항에서 대선 유세를 하고 있다. 2020-10-29 19: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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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脫코로나 웃는 中..'세계 미운털' 박힌 中 경제 간담회 주재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월 24일 베이징에서 경제ㆍ사회공작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을 가장 먼저 받은 국가이다. 바이러스 감염이 처음으로 보고된 내륙의 중심도시 우한은 올해 초 두달 반 동안이나 완전 봉쇄되면서 대륙이 패닉에 빠졌다. 이번 달 초 중국인들의 국경절 황금연휴 대이동이 그 어느 때보다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된 이유이다. 우한을 비롯한 전국 관광지엔 구름 인파가 몰리고 소비가 예년 수준을 능가했다. 마침내 중국이 코로나 악몽을 떨쳐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경제회복의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잔뜩 움츠렸던 소비심리가 기지개를 켜면서 지난 8월에는 소매판매가 전년동월에 비해 0.5% 증가했다. 비록 1%도 안되는 증가율이지만 올해들어 처음 플러스로 돌아선 만큼 그 의미는 상당히 크다. 고용과 실업률도 대도시를 중심으로 안정을 찾고 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10월 1일부터 시작된 8일간의 국경절 연휴 동안 국내 여행객은 6억3700만명(연인원)으로 예년의 79% 수준에 달했다. 소매 판매액과 요식업 매출은 지난해 국경절 연휴 때보다 4.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비스 업종에서 가장 늦게 영업재개했던 영화관에도 관객들이 대거 몰리며 흥행작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이런 중국의 뚜렷한 경기 회복세를 반영하며 위안화 가치도 초고속 상승세이다. 위안화는 달러화에 비해 지난 3분기에만 약 4% 가까이 상승했다. 주식과 채권투자 글로벌 자금이 대거 중국으로 몰리고 있다. 중국의 주가 전망과 국채 수익률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코로나의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부분의 다른 국가들과 중국은 확연히 구분된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단기간에 거국적인 대응으로 코로나 극복에 성과를 낸 결과이다. 코로나 종식 선언? 지난 9월 8일 시진핑 국가주석은 인민대회당 연설에서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거둔 중대한 전략적 성과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우리 사회주의 제도의 현저한 우월성을 충분히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의 코로나 종식 선언이자 향후 사회주의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지난 1월 23일 우한을 봉쇄하며 주민 900만명을 고립시키는 극약처방을 선택한 지 7개월반 만에 코로나 사태 극복에 대한 자신감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행사였다. 국경절 연휴기간인 지난 4일에는 코로나 임시병원으로 개조되었던 우한의 체육관에 농구스타 야오밍이 설립한 야오밍 재단 주최 친선 농구경기에 7500명의 관중이 몰려 환호했다. 휴식 시간에는 중국 코로나 방역의 상징적 인물인 중난산(鐘南山) 중국공정원 원사의 축하 메시지가 나왔다. 우한의 랜드마크인 황학루(黃鶴樓)에는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우산을 쓴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국경절이 지난 후 지난 11일 산둥성 칭다오에서 10여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식적인 통계상 중국본토에서 거의 두달 만에 코로나 환자가 나온 것이다. 중국은 세계보건기구(WHO)나 대부분 다른 국가들과 달리 무증상 감염자는 확진자로 포함시키지 않는다. 중국은 서방 국가들과 달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큰 충격 없이 넘기고 고속 경제 성장을 지속하면서 지정학적 글로벌 파워로서의 위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중국은 전세계 경제성장의 1/3이나 기여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을 거두고 중국이 경제대국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도 금융위기 직후이다. 2017년 시 주석은 이젠 중국이 세계 무대의 중심에 자리잡을 때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은 금융위기 당시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세계 경제에 대한 충격과 파장이 엄청나다. 그리하여 중국이 이번 위기를 다른 국가보다 신속하게 극복해 낸다면 또 한번의 대약진을 위한 날개를 달게되는 셈이다. 중국 국무원 산하 싱크탱크인 국무원발전연구중심(DRC)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미·중간의 심각한 무역갈등에도 불구하고 12년 뒤인 2032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압하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16.9%에서 2025년에는 18.1%로 커지고, 미국은 같은 기간 24.1%에서 21.9%로 줄어들 것이라고 봤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비중이 확대되는 가운데 반중(反中) 정서도 심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나 다른 국가 기업들이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쉽지않은 선택이다. 최근 블랙록, 뱅가드, JP모건 등 미국 금융사들은 중국 슈퍼리치를 찾아 본토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에서 영업 중인 미국 기업들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겨우 4% 정도 본국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이 미국의 전방위적 공세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 경제가 요즘 유독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이유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조직적이며 그물망식인 방역조치와 경제 재개를 위한 침착한 정책대응이 꼽힌다. 중국 정부는 우한에서 밤샘 공사로 불과 10일 만에 1000개 병상 규모의 훠선산(火神山) 야전 병원을 만들고 4만여명의 민·관·군 의료진을 투입했다. 베이징에서 집단감염이 발발하자 대규모 이동식 핵산검사 시설을 배치해 2300만 인구 절반 이상이 검사를 받게했다. 해외 역유입 방지를 위해 국경지역 감시를 강화하고 공항과 항구를 통한 입국자에 대한 2주간 시설 격리를 실시했다. 봉쇄와 격리, 대규모 핵산 검사 등 3박자 대응으로 코로나 방제에 성공하면서 5월을 기점으로 중국 경제지표는 꾸준히 개선되는 추세이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대미문의 대규모 부양책을 꺼내들며 2월부터 8월 사이 통화량을 20%정도 늘렸다. 중국 역시 부양책을 내놓긴 했지만 통화량을 5.2% 늘리는 정도로 미국만큼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펼치지 않았다. 중국 당국은 경제 재개의 초점을 공장의 우선 가동에 두었다. 쇼핑몰이나 음식점에 비해 방역과 통제가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환자가 우한에서 처음 발견될 당시 정보를 은폐하는 등 투명성 결여로 세계적인 팬더믹으로 이어졌다는 '중국책임론'으로 시 주석의 입지는 한때 크게 흔들렸지만 이젠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올해 1분기 중국 GDP는 6.8% 하락했으나 2분기엔 3.2% 성장을 기록, 1분기 만에 침체에서 바로 벗어났다. 각종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오는 19일 발표되는 3분기 GDP는 6% 성장 수준에 거의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최근 블룸버그의 이코노미스트 설문조사 결과 올해 전체적으로 중국이 2.1% 성장을, 미국은 -4.4% 역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 중에서 오로지 중국만이 플러스 성장이 예상된다. 위안화 초강세 이어진다 중국이 코로나19 진원지라는 오명을 극복하고 경제가 'V'자형 반등을 보이면서 위안화 강세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특히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중국에 초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외국인 투자가들이 중국 주식과 채권에 몰리면서 위안화는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미국의 제로금리 정책과 공격적인 통화정책으로 최근 미·중간 10년물 국채금리 스프레드는 연초에 비해 2배 이상 벌어졌다. 지난 9일에는 위안화 상승폭이 최대 1.45%에 이르러 달러당 6.6930 위안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5년 위안/달러 페그제가 폐지된 뒤 15년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달러당 7위안대를 뚫고 올라가는 등 약세 우려가 컸던 상황과는 전혀 상반된 상황이다. 미국의 경기 침체와 연준(Fed)의 초저금리 정책을 감안하면 위안화의 강세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일부 전문가는 향후 3~6개월 안에 최대 달러당 6.50위안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위안화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일본의 엔화나 영국의 파운드화 또는 스위스 프랑화처럼 글로벌 안전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최근 국제 외환시장에서의 위안화 일일 거래량을 보면 프랑화와 파운드화 수준과 맞먹는다. IMF자료에 따르면 세계 외환시장에서 위안화 비중은 2년 전에 비해 1.4%에서 2,1%까지 올랐지만 60% 이상을 차지하는 달러화에 비해서는 비교가 안된다. 중국 견제에 나선 미국은 중국 기술기업 옥죄기에 이어 금융거래 차단 카드까지 꺼내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이런 미국의 움직임에 대비해 금융시장 개방을 통한 세계자본의 중국 시장 의존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중국정부가 디지털 통화(DCEP) 출시를 통한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환율이 안정될수록 외국인 자금도 몰려들어 위안화는 더 강세가 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원화는 위안화에 동조현상을 보이면서 최근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중국 경제의 빠른 회복세는 다른 국가에 비해 분명 돋보인다. 그렇지만 결코 느긋하게 여유를 가질 상황은 아니다. 수많은 대내외 리스크가 잠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퓨리서치(Pew Research) 센터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호주 등 14개 주요국가에서 진행된 중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를 보면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7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세계 무대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이념적,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총력전에 돌입하고 있다. 오는 11월 3일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미국은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흑자를 줄이고 국내시장 개방을 확대하고 기술절취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고 총공세를 펼칠 전망이다. EU(유럽연합)는 현재 중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다. 중국과 EU는 8년째 포괄적투자협정(CAI)을 논의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협정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중국이 외국기업에 대한 국내시장 개방과 국유기업 개혁과 관련된 EU의 요구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어 협상이 답보를 거듭하고 있다. 이리하여 중국의 경제개혁에 대한 '슬로 페이스'에 지친 EU가 중국을 향해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EU까지 미국의 중국 고립화에 동참한다면 중국 경제의 최대 대외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회불안 요인 청년실업 중국 경제 내부를 살펴보자. 8월 산업생산은 작년 동기대비 5.6% 늘었다. 작년 12월(6.9%) 이후 최고 수준이다. 정부의 인센티브 제공 정책에 힘입어 8월 자동차 판매도 12% 가까이 증가했다. 중국이 서방세계와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대외무역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 촉진에 포커스를 두고 경제성장을 독려한 결과이다. 그러나 무려 5.6%나 증가한 8월의 생산에 비해 소비가 0.5% 상승에 미치지 못한 것을 보면 아직도 많은 중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코로나 공포를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제 분석가들은 이러한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코로나19 경제의 근본적 문제로 남을지 주목하고 있다. 실업률을 보자. 공식 통계로 중국의 도시지역 실업률은 7월의 5.7%에서 8월 5.6%로 소폭 내려갔지만 중국 정부의 우선과제인 고용이 안정을 되찾고 있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특히 청년 일자리 마련이 여의치 않아 중국 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 영향으로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거나 감원을 실시하면서 올해 대졸 취업자들이 일자리 구하는 게 쉽지않다. 올해 중국 대학 졸업생은 작년보다 40만명 늘어난 874만명으로 역대 최대이다. 거기다가 해외에서 유학하다 귀국하여 고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중국인 유학생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올해 80만명을 넘을 전망이다. 사회불안 요인이 될 수 있는 청년실업문제가 정부의 급선무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올해 중국 경제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이중순환 (dual circulation)'이다. 지난 5월 시 주석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중국은 거대시장과 수요를 최대한 활용하여 수출과 내수가 상호보완적으로 이중순환하는 새로운 경제발전 패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래 대내외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정확한 의미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중국이 지나친 수출주도 경제에서 탈피, 내수 비중을 높이면서 자급자족 생산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글로벌 가치사슬과 경제·금융 시스템과의 일정부분 단절, 즉 디커플링(decoupling)의 길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이 외생적 경제 리스크로부터 중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국이 코로나 위기 극복을 계기로 민족주의를 앞세워 내부문제를 덮고 체제의 우월성 선전에 치우친다면 국제사회의 반감은 그만큼 커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미국에 버금갈 만큼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책임있는 강대국'의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야 한다. 국경절 연휴 즐기는 중국인들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의 국경절인 1일 관광객들이 상하이의 중국식 전통 정원인 예원(豫園) 앞 거리를 걷고 있다. 중추절과 국경절을 맞아 8일까지 이어진 연휴 기간 수억명의 중국인들이 국내 여행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2020-10-13 19: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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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미 대선 승부 마지막 열쇠는 경제살리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대선 경합주인 위스콘신주 모사이니의 센트럴 위스콘신 공항에 마련된 유세장에 도착하고 있다. [모사이니 AP=연합뉴스] 11·3 미국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부 주(州)에서 조기투표가 이미 시작되었고, 우편투표도 발송되면서 선거판이 달아오르고 있다. 일주일 후면 이번 선거의 최대 분수령이 될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의 첫번째 TV토론이 진행된다. 연초만 해도 미국 경제가 2010년 이후 최대 호황을 누리면서 트럼프의 재선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코로나19로 미국 경제가 침체의 수렁으로 추락하지 않았다면 트럼프가 지금처럼 수세에 몰리기보다는 자신의 화려한 경제 치적을 뽐내면서 승리 굳히기에 돌입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기업들이 일하기 좋은 방향으로 규제를 정비하고 법인세를 7% 포인트 인하하는 등 친기업적 행보로 기업인들을 저절로 춤추게 만들었다. 바이든 후보는 자신이 승리하면 대통령 취임 첫날에 2017년 개정된 세법을 폐지하여 원점으로 돌릴 것이라고 했다. 대신 기업과 부자들로부터 더 걷힌 세금을 의료보험과 교육비 등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 확대에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의 선거전략은 바이든을 '사회주의자', '급진좌파'로 몰아 그로부터 중도층을 분리시키려는 것이다. 바이든은 민주당 내 대표적인 온건 중도파로 알려져 있는데, 트럼프의 선거전략이 먹힐지는 미지수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미국 사회에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엄청나다. 특히 일자리를 잃어버린 저소득층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 민주당 진보세력은 바이든 후보가 좀 더 '좌(左)클릭'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 후보가 진보층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다 보면 중도층 유권자의 이탈이 우려된다. 바이든이 백악관에 입성하려면 극복해야 할 최대 딜레마이다. 미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보수주의, 작은 정부, 그리고 감세정책과 규제완화를 바탕으로 한 선거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민주당은 진보성향으로 가급적 정부가 시장 개입에 나서거나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고 친환경·친노동 정책을 펼치려고 한다. 공화당인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때문에 의도치 않게 올해 전대미문의 막대한 재정을 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리하여 내년엔 미국의 부채가 70년 만에 처음으로 GDP 대비 100%를 넘어 104.4%에 이를 전망이다(미 의회예산국 '예산전망 2020~30년 수정전망, 9월 2일 발표). 나랏빚이 버는 돈보다 많아진다는 의미이다. 코로나 백신이 연말이나 내년 초에 나온다 해도 미국 경제는 급격한 경제 회복보다는 상당기간 재정적자 폭증과 양극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리하여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새 정부는 진정한 경기 회복을 위해선 장기간에 걸쳐 힘든 싸움이 불가피해 보인다. 경제살리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지막 승리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방송이 공동조사한 여론조사(13~16일, 유권자 1000명) 결과를 보면 바이든 후보가 51%의 지지율로 트럼프(43%)를 8% 포인트 앞섰다. 현재 유권자들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선거 이슈로는 경제가 40%로 가장 많이 꼽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정직성과 신뢰도 등 대선후보의 인물에 대한 평가나 코로나 방역과 헬스케어 등 각종 정책평가에서 바이든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캠프가 초조해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경제역량 분야에서는 트럼프가 바이든 후보보다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문제에 민감한 북동부 오대호 주변의 러스트 벨트(쇠락한 제조업지대) 등 주요 경합주에서 트럼프의 최근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바이든이 '트럼프 경제 치적 지우기'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트럼프의 잘못된 대응으로 수많은 사업장이 문을 닫고 실업률이 치솟는 등 경제적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코로나 이후 미국 경제 재건의 적임자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미국 경제에 남긴 상처는 엄청나다. 그 상처는 팬데믹이 잠잠해져도 쉽게 아물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후보 수락연설에서 바이든이 미 대공황 시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언급한 것을 보면 코로나19 위기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항공산업은 급격히 줄어든 여객 수요로, 석유 생산업체는 유가 하락으로 파산 직전이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면서 사무실 건물과 대형 쇼핑몰 건설은 중단되고 있다. 출퇴근 등 이동수요가 줄면서 자동차 판매는 감소하고 디지털 장비가 급속히 인간노동력을 대체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 경제가 앞으로 수출이나 투자, 내구 소비재 판매 등 전통적인 경기 진작책으로 회복되긴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일자리가 늘어난 분야는 제조업 생산 분야가 아니고 대부분 음식점이나 커피숍, 마사지, 미용업 등 서비스 분야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 같은 서비스 분야 종사자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겼다. 팬데믹 공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전처럼 음식점이나 콘서트홀이 사람들로 가득 차진 못할 것이다. 일자리 회복이 늦어지면서 저소득층은 밀린 집세와 공과금에 시름만 깊어질 것이다. 여론 조사를 보면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응이 미국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점은 민주당 캠프엔 부담이다. 트럼프는 최근 미국 경제의 반등세가 뚜렷해지고 있음을 강조하며, 자신이 집권하면 내년도 미국 경제는 역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성적을 낼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이든이 집권하면 세금을 올리고 규제를 늘리면서 기업은 수익이 악화되고 미국의 자본주의가 위협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에게 경제는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또 동시에 외부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타깃(target)이 될 수 있다. 코로나 여파로 2분기 미 GDP 성장률(연율 환산 전분기 대비)은 -32.9%로 73년 만의 최악을 기록했다. 또 지난 3월까지 완전 고용에 가깝던 실업률은 4월 한달에만 20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미국에서 앞서 10년 동안 창출된 일자리가 불과 한달 만에 증발된 셈이다. 연방정부와 의회는 코로나 확산이 본격화한 3월 초부터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2조9000억 달러(약 3370조원)가 넘는 긴급 재정지원금을 살포했다. 2008~2009년 금융위기 당시 경제 회복을 위해 마련된 지원책을 훨씬 웃도는 미국에서도 전례가 없는 최대치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이미 5월 중순에 3조4000억 달러(약 3950조원)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5차 지원법안을 통과시켰다.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은 연방 재정적자 폭증을 우려하며 1조 달러 정도를 고집하고 있다. 대선 전까지 코로나19 추가지원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후임 지명을 놓고 대립이 격화되면서 추가부양책에 대한 양당의 정책 협조는 물 건너 간 모습이다.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3분기 미국 GDP는 전분기 대비 플러스 성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실업률은 수개월 동안 두 자릿수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가 지난 8월 일자리가 140만개 늘어나면서 8.4%를 기록했다. 트럼프는 8월 실업률이 한 자릿수대로 내려간 것을 두고 미국 경제의 'V자' 회복 신호라고 강조했다. 반면 바이든 캠프는 미국 경제 회복이 상위층에 국한되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내리막길로 가고 있다며 'K자' 회복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가 급락한 가운데 애플과 아마존, 페이스북 등 IT 대기업들은 대규모 흑자를 내고 주식과 고임금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의 재산은 빠르게 증가한 반면, 중소사업 운영자나 판매원 또는 현장 육체노동자들의 소득은 더욱 악화되는 양극화 현상을 결코 진정한 경제회복이라 할 수 없다며 트럼프의 경제성적표 '깎아내리기'에 나서고 있다. 바이든의 고민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민주당 내 좌파 끌어안기이다. 그는 민주당 후보 경쟁에 나섰던 좌파진영 대표 격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손잡았다. 그러나 큰 정부를 지향하는 좌파 정책을 도입할수록 ‘바이든=사회주의자’라는 프레임이 강해지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바이든과 샌더스의 정책 태스크포스팀은 한달여간의 논의 끝에 민주당의 주요 선거공약을 정리해 공개했다. 샌더스가 내세웠던 가장 진보적이었던 정책들, 특히 시장에 충격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였던 정책들, 예를 들어 '전 국민 보험 구상(Medicare for All)'이나 전액 학자금 면제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온건 중도파인 바이든이 '좌클릭'한 흔적도 상당히 엿보인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오는 29일 첫 대선 토론회를 시작으로 대선 전까지 3차례 격돌한다. 두 후보가 그동안 공개적으로 표명한 주요 경제정책을 살펴보자. 먼저 세제 정책에서 입장차이가 두드러진다. 트럼프는 이미 자신이 많이 내린 법인세율을 현 21%에서 20%로 더 낮추겠다고 하고 있다. 세금 덜 내게 해줄 테니, 기업들은 그 돈으로 투자 많이 하고 일자리 늘려서 국가 경제 좀 빨리 살려내라는 얘기다. 또 에너지·금융·농업 등 산업 전반에 걸친 규제 완화 정책을 확대할 예정이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연간 소득 4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핀셋 증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현행 21%인 법인세를 28%로 다시 인상하고 개인소득 현행 최고 세율을 37%에서 39.6%로 되돌리겠다는 계획이다. 노동자 최저임금을 7.5달러에서 15달러로 두 배 올리고, 중산층 일자리를 500만개 만들어 전 계층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달라는 얘기다. 바이든의 증세 구상은 향후 10년간 수조 달러의 세수증가를 의미하지만, 중산층이 아닌 상위 1% 고소득자가 증가분 대부분을 부담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재정·경제 분야의 중립적 싱크탱크인 ‘책임 있는 연방 예산 위원회(CRFB)'는 바이든 후보가 집권하면 상위 20% 소득자의 세금이 2.3~5.7%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또 상위 1% 소득자는 13.0~17.8%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헬스케어 정책을 보면 양당의 정치적 지향점이 크게 차이난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 후보는 환자보호 및 부담적 정보험법(PPACA: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소위 '오바마 케어'의 주도자 중 한명이었다.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가 폐기한 '오바마 케어'를 확대해 전 국가적인 의료보험 시스템 구축을 약속하고 있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공화당은 오바마 케어가 기업 및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재정부담을 가중시킨다며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케어를 폐기한 대신 적극적인 약가 인하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교육분야에 있어서는 바이든 후보는 연소득 12만5000달러 이하 가정의 학생들에게 무료학비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의 세율 인상과 헬스케어, 교육분야의 공약이 향후 10년간 세수를 3조3750억 달러(약 3925조원) 증대시키고 연방지출은 5조3500억 달러(약 6222조원) 늘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바이든 후보는 기후 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미 서부지역에서 계속되고 있는 사상 최악의 산불 사태를 두고 "트럼프는 기후 방화범"이라며 이번 대선의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트럼프는 산불의 원인이 기후 변화가 아니고 "산림 관리"라고 응수하고 있다. 바이든은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다시 가입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2조 달러(약 2326조원) 규모의 ‘그린 뉴딜’ 카드를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달리 환경문제 등에 관한 국제사회 공조를 강조한 셈이다. 그러면서 바이든 후보는 친환경 정책이 100만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 달성을 목표로 대중교통의 청정연료 전환, 친환경 에너지 주택 150만채 공급, 친환경 연료 자동차 보급 확대, 태양열 및 풍력 발전 등 친환경 에너지 확대 등을 약속했다.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하면 관세전쟁과 중국 기업 제재로 중국 압박을 이어갈 태세이다. 또 도로, 철도 등 인프라 재건과 '세계 최고의 5G 통신망 인프라 구축'을 내세우고 있다. 갤럽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보수파’라고 답한 미국인은 37%, 좌파는 24%, 그 중간인 온건파는 35%였다. 트럼프는 기독교 보수파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2016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는 애시당초 오른쪽만 쳐다보며 좌파와의 대결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바이든은 좌파와 온건파 지지를 모두 얻으려고 한다. 그의 지지자 중에는 급진적 포퓰리즘 정책을 부르짖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극도의 경계감을 나타내는 사람도 많다. 지지층 결집력 면에서 보면 바이든에게 불리한 싸움이다. 그에게 다행인 것은 지금 미국 경제가 좋은 상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고 자신은 코로나를 잘 통제하고 미국을 좀 더 안전하고 부강한 국가로 이끌 수 있는 적임자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관건이다. 2020-09-22 19:5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