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논설실 부국장
alexlee@ajunews.com
- 아주경제 논설위원
- 前 로이터 통신 선임 특파원, 편집장
- 前 서울외신기자클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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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일대일로· 페트로 위안 …중동에 펼쳐진 '차이니스 드림' 1945년 밸런타인 데이(Valentines's Day·2월 14일)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크림반도 얄타에서 미·영·소 연합국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그는 수에즈 운하에 정박한 미 해군 ‘USS 퀸시’호 갑판 위에서 압둘 아지즈 이븐 사우드 국왕을 만난다. 사흘간 진행된 선상 회담에서 양국 간 지정학적 동맹 관계에 대한 기본 프레임에 합의한다. 당시 대규모 석유 개발과 함께 전제적 군주정치의 기반을 다져가던 이븐 사우드 국왕은 루스벨트에게 왕실의 안위와 군사적 지원 약속을 받는다. 대신 사우디산 원유를 원하는 만큼 ‘합리적 가격’에 미국에 공급해주기로 약속한다. 안보와 경제의 전형적인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 성사된 것이다. 사우디-중국 밀착에 요동치는 중동 정세 두 사람 간 만남은 지구촌의 '화약고'로 꼽히는 중동에서 80년 가까이 지속된 미·사우디 동맹 관계의 역사적 출발선이다. 최근 미국과 중동의 디커플링, 미국의 빈자리를 파고드는 중국의 행보는 역내 경제는 물론 국가 안보 측면에서 다자간 복합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이후 미국과 불편한 외교 관계를 이어가면서 중국·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의 앙숙으로 중동의 패권을 두고 다퉈온 이란은 미국과 체결한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무산되고 반정부 시위 탄압에 대한 서방의 비판에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미국 견제'라는 목표 아래 공동 전선을 펼쳐왔던 중국이 사우디 등 걸프만 왕정국가들과 에너지 분야 혁신 등 경제 협력뿐 아니라 호르무즈 해엽 3개 섬에 대한 영토 분쟁과 군사·안보 협력 문제까지 논의를 하자 이란은 발끈했다. 이에 당황한 중국은 황급히 이란 달래기에 나서기도 했다. 중동 내 외교 질서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2010년대 셰일(shale) 혁명 이후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변한 미국은 원유 수입이 감소하며 중동과 디커플링이 심화되고 있다. 이를 틈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 중국은 한걸음 한걸음 세계 원유시장을 통제하는 힘을 키우고 있다. 수입 원유 중 50%가 중동산인 만큼 중국은 이 지역에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 확보에 공을 들이면서 다각적 경제 협력과 무역 파트너십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특히 석유 의존 경제 탈피와 경제 개혁을 위해 산업 다각화와 대규모 국책사업을 추진 중인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수의 중동 국가에서 항만, 산업단지, 배후 도시 건설을 주도하며 현대판 육해상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불을 댕기고 있다. 사우디와 걸프만 국가들이 중국과 밀착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관심을 돌리자 중동 국가들의 소외감은 커지고 있다고 CNN 등 주요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군사력이 미약한 걸프만 국가들로서는 미국이 지역안보에서 손을 뗐을 때 새로운 안보 협력 파트너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은 일종의 위험 회피 카드인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이나 러시아와 달리 시리아 내전이나 이란의 핵 개발, 아랍과 이스라엘 간 평화 협상 등 중동 지역 주요 골칫거리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었다. 소위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외교원칙이 중동에서는 지켜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12월 시진핑 주석의 사우디 방문은 중동에 대한 적극 개입으로 방향 전환을 공식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 주석의 방문은 지난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위기 타개 차원에서 석유 증산을 요청하기 위해 사우디를 찾았다가 '빈손'으로 돌아간 것과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또 1945년 루스벨트-이븐 사우드의 'USS 퀸시’호 회동과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3박 4일 순방 기간에 시 주석은 제1회 중국·아랍 정상회의와 중국·걸프협력회의(GCC) 콘퍼런스에 참석해 연설하고 최소 17개국 정상과 연쇄 정상회담을 하며 아랍권과 관계를 다졌다. GCC는 사우디, UAE,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등 6개 산유국의 협력기구다. 사실상 수니파 이슬람 국가의 모임으로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중국은 2020년 EU를 제치고 GCC의 최대 무역 거래국이 되었다. 현재 GCC 6개국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마무리하고 있다. 시 주석이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후 발표된 4000자에 달하는 공동성명은 에너지 분야 혁신, 우주 개발, 디지털 경제, 인프라 건설, 이란 핵 프로그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우호 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사우디와 중국의 밀착은 사우디·미국 관계뿐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질서의 대변화를 의미한다.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우린 결코 이를 제로섬 게임으로 여기지 않습니다(We don’t see it as a zero-sum game by any means)." 그의 말이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과 사우디의 뉴파트너십 구축은 양국에 중동의 복잡한 역학구조에 얽매이지 않는 실익 추구와 새로운 기회 창출을 위한 도전임에 틀림없다. 페트로 위안 시대 올까?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자신들 룰에 따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 손꼽힌다. 미국은 엄청난 군사력으로 중동의 원유 공급을 좌지우지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은 경제와 화폐의 연결고리였던 금본위제를 일방적으로 폐지한 후 달러는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하지만 1974년 사우디와 손을 잡고 원유 대금을 달러로 지급하는 데 합의하면서 지금의 기축통화국 위치를 공고히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을 계기로 양국이 달러화 대신 위안화를 통한 원유 결제, 즉 '페트로 위안(petro yuan)' 체제 등 세계의 새로운 에너지 질서 구축을 위한 작업에 나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졸탄 포자르(Zoltan Pozsar) 크레디트스위스은행 애널리스트는 고객들에게 보낸 투자 메모에서 중국이 최근 급변하는 지경학적 변환을 틈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룰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이 달러화 외환보유액을 무기화하자 중국은 세계 각지에서 비(非)달러화 원유 결제를 늘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미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의 주요 회원국인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3국은 이미 중국에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를 팔고 있다. 중국이 이들 3개국과 맞먹는 원유 매장량을 가진 GCC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고 할 수 있다. .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제재에 시달려온 러시아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달러화로 거래하는 스위프트(SWIFT) 국제은행 간 금융서비스 대신 중국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로 갈아탔다. 이란,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도 현재 중국과의 일부 거래를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다. 미국 달러화 리스크의 위험 분산을 위해 CIPS를 선택하는 국가들이 늘어난다면 오랫동안 에너지와 상품시장을 기반으로 기축통화 자리에 오른 달러화의 지위에도 차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SWIFT 자료에 따르면 위안화는 국제결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 이내지만 최근 엔화를 추월해 달러, 유로, 파운드화에 이어 세계 4대 결제통화로 등극했다. 중국은 최근 일대일로를 명분으로 중동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 전 세계 저개발 국가에 통화스와프를 통한 구제금융성 자금을 제공하거나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들 국가의 위안화 사용도 크게 늘리면서 궁극적으로 '위안화의 기축통화' 진입을 노리고 있다. 즉, 일대일로와 기축통화 구상은 중국의 글로벌 패권국 도약을 위한 두 개의 큰 기둥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지만 아직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우디가 50년간 이어온 미국과의 '페트로 달러 협정'을 깨고 원유 대금을 달러화 대신 위안화 결제로 전면 변경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직 대외적으로 사우디와 중국은 양국이 '페트로 달러'의 포기와 위안화 표시 원유 계약 문제를 논의했다는 소문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사우디가 중국으로 수출하는 원유 일부에 대해 위안화 결제를 허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페트로 달러 협정이란' 중동의 1차 오일 쇼크 이후 미국과 사우디가 1974년 6월 원유 대금 결제를 달러를 통해서만 하겠다고 합의한 것을 이른다. 석유를 달러로만 사야 하면 세계 각국은 더 많은 달러가 필요할 테고, 달러 가치는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동 산유국은 원유 판매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미국 금융기관에 예치하거나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 미국은 다시 이 돈으로 상품을 수입해 세계에 돌려주는 달러 순환 체계가 세계경제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1971년 미국이 금 태환을 중지한 이후 가치가 폭락한 달러가 다시 한번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공고히 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달러는 막강한 군사력과 함께 미국의 패권을 지탱하는 든든한 두 개의 기둥이 됐다. 만약 사우디가 중국과 위안화로 원유 거래를 시작하고 다른 국가들도 이에 동참하면 중국의 '페트로 위안화' 시대라는 꿈은 현실로 성큼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 자본시장 자유화 수준이 선진국들에 비해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페트로 위안 시대를 향한 당근책으로 중국은 무역과 금융거래에서 위안화의 금태환을 추진 중이다. 중국의 금융 안전망(financial saftey-net)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다. 중국의 페트로 위안화 드라이브가 성공하려면 금 태환뿐 아니라 투자가들로 하여금 무역 거래는 물론 비무역 분야에서도 위안화를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바로 국내 자본시장 육성이다. 외환 헤지 등 대규모 외자 유출에 필요한 금융 시스템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세계 각국의 정책 입안자와 기업들 그리고 투자가들은 세계 에너지 시장의 혁신과 페트로 위안화를 향한 중국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페트로 달러 유입이 미국에서 금융 사업을 크게 성장시켰듯이 페트로 위안화가 중국의 금융 혁신에도 일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에너지 혁신으로 중국에 값싼 에너지가 충분히 공급된다면 중국으로 이동하는 세계의 기업들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2023-02-01 09: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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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매서운 경제한파..그래도 올해 희망을 품어야 하는 이유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 이맘때 대부분 전문가들은 2022년 세계 경제를 팬데믹 이전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회귀점으로 규정했다. 2021년 글로벌 경제는 코로나19 쇼크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국의 무차별적인 경기 부양책 덕분에 5% 넘게 V자 반등을 했다. 지난해는 '위드 코로나'라는 일상 회복과 2021년 남발했던 각종 완화정책의 축소가 공존하는 한 해였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경제가 4.1%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3% 내외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대란, 중국의 '제로 코로나' 봉쇄 조치와 미국 연준의 초강력 긴축과 금리 인상 등 우리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3% 정도 성장이라도 아주 절망적인 수치는 아니다. 팬데믹 발생 이전인 2018년·2019년과 엇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2023년도 전망보고서를 보면 대부분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과 힘든 싸움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작년보다 성장률이 다소 둔화되겠지만 심각한 경기 침체는 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잠재성장률로 추정되는 2%를 밑도는 1.6%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몇 가지 긍정적인 신호 새해 벽두부터 실물경제에 한파가 몰려오면서 올해에도 가계든 기업이든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하는 상황임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와 다른 몇 가지 긍정적인 신호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지난해 그토록 세계 경제를 억눌렀던 고물가와 가파른 금리 인상 속도에 대한 우려가 점점 수그러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수요 감소와 재고 증가 그리고 주택 가격 하락으로 지난해 4분기 이미 정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3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7.1%로 아직 높은 수준이지만 하향 안정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올해에도 인플레이션 통제를 위한 중앙은행들의 긴축 강도가 각국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성장 둔화와 함께 인플레이션도 함께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10월 말(4.23%) 대비 크게 하락한 3.8%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리하여 달러화 급등세도 주춤한 상태다. 달러화 가치와 미국 국채 수익률 하락은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에 향후 금리 인상 속도를 완화시킬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있다. JP모건체이스는 최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피크를 3.75%에서 3.5%로, 인도 준비은행의 기준금리 피크를 6.75%에서 6.25%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 3대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의 글로벌 수석 경제분석가 세스 카펜터(Seth B. Carpenter)는 지난해 세계 경제를 짓눌렀던 공급망 차질과 노동시장의 대혼란이 완화되면서 인플레이션도 하락하고, 중앙은행도 긴축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등 각국이 성장률을 회복시키기 위한 정책적 선택지를 늘려갈 수 있다고 최근 전망했다.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전 세계 경제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있지만, 지난해 미국 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현재 연방기금(FF) 금리 목표치(4.25~4.5%)는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공개된 위원들의 전망을 나타내는 이른바 점도표는 금리 인상이 5.1%(중간값) 수준에서 멈출 것임을 예고했다. 이를 보면 이번 달 31일 개최될 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추가 인상한 뒤 이후 한 차례 더 금리 인상에 나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더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올해 상반기 중 금리 인상을 일단 멈추고 물가 상승률과 고용 수준을 점검해가며 금리 인하로 피벗(Pivot·정책 전환)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고금리로 인해 미국 경제 침체가 가시화한다면 조기에 통화정책 완화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경제 연착륙(soft landing)을 위해 연준이 이번 달 0.25%포인트 또는 0.5%포인트 추가 인상을 마지막으로 단행한 이후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조정하지 않고 유지했다가 내년부터는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월가에서 나오는 이유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5% 또는 그 아래에서 멈춘다면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미국 금리를 어느 정도 추종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올해 기준금리를 3%대 중·후반에서 안정화시킬 수 있는 호재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급격한 내수 경제 침체와 주민 반발에 직면했던 중국 당국이 지난달 방역과 통제를 대폭 완화한 것도 올해 우리에겐 주요 변수다. 일단 입국자 격리 조치 폐지로 인해 한국, 일본, 태국 등 주변국 관광산업이 수년 만에 다시 활기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춘제(설) 연휴 귀성 기간 전후로 혼란이 당분간 가중될 수 있지만 올해 1분기를 지나 '위드 코로나' 정책이 정착되면 중국은 소매판매 증가와 함께 경제 회복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은 앞다퉈 중국 성장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올해 중국 성장률이 지난해 2.7% 내외에서 4.9%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시진핑 체제 3기 출범과 함께 경제를 안정적 성장 궤도로 올리겠다는 중국 당국의 강력한 의지는 지난달 15~16일 열린 연례 중앙경제공작회의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지난해 시 주석의 핵심 경제 어젠다인 '공동 부유'라는 단어가 거론되지 않은 것도 중국이 규제 대상으로 꼽았던 '빅테크' 기업에 대한 통제를 서서히 풀고 있다는 신호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의 핵심 정책 중 하나로 대외 개방이 언급된 것은 세계 최대 무역대국인 중국이 폐쇄경제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로 수출 대국인 우리에겐 긍정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공급망 혼란과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기록적인 물가 상승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곳은 유럽일 것이다. 유로존 대표 국가인 독일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축소와 경기 침체로 힘든 한 해를 보냈으나 소비자 심리나 기업체감지수가 최근 급락세를 멈추고 바닥을 다지는 모습이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유로존 경제가 긴축정책과 에너지 위기의 영향으로 0.2%포인트 정도 수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이한 것은 고물가와 경기 침체 충격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실업률이 6.5%대로 꾸준히 하향 안정화됐다는 사실이다. 올해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은 거세질 전망이다. 겨울철 혹한으로 전쟁 수행이 극도로 힘들어지고 중국과 인도까지 서서히 러시아에 대해 '거리두기'를 하는 모습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평화협상론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무르익고 있다.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 영향으로 유로화와 엔화, 파운드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 크게 올랐던 '킹 달러(King doallr)' 현상이 지난해 말부터 연준의 비둘기파적 피벗 기대감으로 퇴조하고 있는 것도 우리 경제에 청신호다. 지난해 10월 1444원대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현재 1270원 아래로 안정을 찾았다. 지난달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의 스티븐 추 수석 전략가는 보고서에서 올해 달러 가치가 추가로 하락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여하튼 올해에는 긴축에 대한 연준의 속도 조절로 지난해와 같이 국제 외환시장이 급격하게 흔들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아시아 고성장 시대 새해를 맞이하면서 또 하나의 특징은 아시아 지역에 대한 경제 전망이 타 지역에 비해 긍정적이라는 사실이다. 먼저, 앞에서 언급했지만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 폐기로 인한 민간소비 회복에 힘입어 5%가까운 수준으로 성장률이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십 년간 인구 고령화와 장기 저성장 또는 역성장으로 평균 0.8%대 성장률을 보였던 일본 경제는 올해 1.2% 성장할 것으로 모건스탠리는 전망했다. 일본은행은 오랫동안 일본 경제를 견인해온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정책)의 한 축인 금융 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에 대해 궤도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아베노믹스를 지지해온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 임기가 4월 종료되면서 국가 경제에 부메랑이 된 아베노믹스 철회를 공식화할지 여부가 큰 관심사다. 특히 인도는 올해와 내년 6% 이상 고성장을 이어가고 10년 내로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국제통화기금(IMF) 등 다수 기관들이 전망하고 있다. 인도가 선진국 수준인 디지털 인프라 환경을 기반으로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 제조업 투자, 에너지 변환이라는 경제 호항의 3가지 메가 트렌드 물결을 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구로 볼 때 중국, 인도에 이어 셋째로 큰 이머징 마켓인 인도네시아도 경제 개혁과 제조업 육성으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며 경제 규모가 한국을 추월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IMF는 글로벌 공급망 혼란으로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보았던 개발도상국 경제가 올해에는 선진국에 비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아시아 경제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인다는 것은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 극복과 성장률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일조하는 긍정적인 요소다. 아시아 경제의 정상화는 유럽 국가의 수출 수요를 증대시킬 뿐 아니라 세계적인 공급망 위기를 해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기를 쌓아라 지난해에는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회귀점으로 예상됐지만 세계적인 석학인 애덤 투즈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 말처럼 전쟁과 인플레이션 자연재해 등 '복합 위기(polycrisis)'의 한 해였다. 올해도 경제 한파를 이겨내기 위한 힘든 한 해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경제는 미래 세대 먹거리 찾기에도 매진할 때다. 또한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혁과 노동시장과 임금체계 개편 등 우리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과감히 제거하면서 힘찬 도약의 기회를 노려야 할 때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손흥민은 오랫동안 아버지의 혹독한 기본기 훈련을 통해 실력과 자신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자신의 실패를 딛는 힘, 긍정의 에너지 그리고 겸손한 태도까지 모두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아버지 손웅정씨는 프로 선수 시절 스피드가 뛰어난 측면 공격수였다. 그의 저서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보면 손웅정씨는 자신은 상대 선수 한 명 제칠 발기술이나 개인기를 완성하지 못한 채 그래도 성적을 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가 몸이 금방 망가져 조기 은퇴한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우리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가계는 눈앞의 단기적 이익에만 급급하지 말고 좀 더 멀리 내다보며 기본기를 차곡차곡 쌓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2023-01-02 15: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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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트럼프는 공화당의 '짐'인가 '자산'인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2024년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가 퇴임 후 1년 10개월 만에 정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공화당 입장에선 최악의 타이밍이다. 당 내부에서 그의 개입이 없었다면 주요 승부처에서 민주당에 낙승했을 것이라는 '트럼프 책임론'과 함께 다음 대선을 이기기 위해선 이젠 트럼프로는 안 된다는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그의 조기 출마 선언이 탈세 의혹과 국가 기밀 문서 유출 등 각종 비리 혐의와 관련된 검찰 수사를 염두에 둔 '방패막이'로 인식되는 것도 공화당에는 큰 짐이다. 이젠 유력한 공화당 기부자들까지도 트럼프에 대한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일주일 후인 11월 22일 트럼프가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에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회동한 이후 공화당 터줏대감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까지 당내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궁지에 몰린 트럼프. 그는 과연 거센 역풍을 뚫고 미국 정치적 역사에 새로운 신화를 쓸 수 있을까? 정치적 경험이 백지였던 '아웃 사이더' 트럼프가 처음 대권 츨사표를 냈던 2016년으로 우리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트럼프는 공화당 경쟁 후보자들을 향해 정제되지 않은 원색적 언어로 비난을 쏟아내면서 곧장 언론과 대중의 시선을 장악한다. TV 방송사에 트럼프는 단기간에 시청률과 수익을 높여주는 흥미진진한 '서커스' 경선의 주인공이었다. 트럼프가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적 거친 발언을 일삼자 주요 언론매체들은 그가 얼마나 품위 없고 분열적이고 위험한 인물인지를 알리는 데 혈안이었다. 이런 식으로 트럼프는 돈 한 푼 안 쓰고 언론에 노출되며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렸다. 놀랍게도 그의 유세장은 매일 열광적 지지자로 가득했다. 그는 12명이 넘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공화당 대권 후보를 거머쥐었다. 민주당은 트럼프와 같은 '괴짜'가 공화당 후보가 된 것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였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트럼프 지지자 50%를 '한심한 종자'라고 매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돌풍은 본선 대결까지 이어졌다. 트럼프가 공화당 주류와 언론의 멸시를 조롱하듯 대통령에 당선되자 힐러리 캠프는 언론이 트럼프의 손아귀에 놀아났다며 망연자실했다. 애초 공화당 주류의 눈에는 트럼프가 워싱턴 정가의 질서와 품위를 위협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통제불능식 막말과 언행으로 거침없이 상대방을 경멸하며 선거운동을 펼치던 트럼프를 지지자들은 부패한 엘리트 정치를 타파할 적임자로 환호했다. 당시 정치 신인 트럼프 돌풍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미국인들의 혐오에서 출발한다. 특히 보수 백인 남성 하류층의 울분을 자신의 지지로 성공적으로 전환시킨 트럼프의 선거 전략은 주효했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선 인종과 성별, 종교, 성적 지향, 장애, 소수 약자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이 엄격하게 금기시되는 일종의 사회적·문화적 규범이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소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즉 소수자 차별 금지에 대한 미국 보수 백인층의 반감이 트럼프를 통해 일시에 표출된 결과로 해석하기도 한다. 기존 정치인의 틀을 여지없이 깨버린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공화당은 사실상 트럼프의 당으로 빨리 진화했다. 그러나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고배를 마셨다.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선거 사기로 당선됐다는 주장을 계속하면서 아직도 상당수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당선을 도둑맞았다고 맹신하고 있다. 트럼프는 2021년 1월 6일 자신을 지지하는 폭도들의 의회 난입 사건으로 여러 명이 사망한 뒤에야 정권 이양에 착수했다. 앞으로 미국 헌정 사상 가장 어두운 장면으로 꼽히는 의회 폭동 사태에 대한 조사에서 트럼프의 선동 혐의가 입증된다면 그의 정치 인생은 중대한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미국 정치의 분열을 부채질한 소위 '트럼피즘'이라는 극우 포퓰리즘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물론 트럼프는 확고한 고정 지지층과 막강한 자금 동원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가장 유력한 공화당의 대선 후보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달 치른 중간선거 결과를 보면 공화당에서 트럼프의 영향력과 입지는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통적으로 집권당의 무덤으로 불리는 중간선거에서 그가 지지했던 후보들이 줄줄이 낙선되면서 기대했던 소위 공화당의 '붉은 물결'이 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 인기가 별로이고 물가 상승률이 8%까지 치솟는 등 경제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공화당이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은 트럼프 카드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공화당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가 막판에 지원 유세를 다니면서 대통령 재선 도전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밝힌 것은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을 자극했다는 평가다. 트럼프가 2024년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공화당 내 떠오르는 잠룡들과 주도권 쟁탈전이 벌써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44)는 이번 중간선거의 최대 승자로서 트럼프의 대항마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는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서 19.4%포인트 차로 단순히 재선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했던 지역에서도 전세를 뒤집으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트럼프의 집중 공략에도 함락에 실패했던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Miami-Dade County)에서도 득표율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은 라틴계 주민이 절대 다수인 이 지역에서 7%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는데 디샌티스는 이번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11%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디샌티스 주지사는 라틴계 유권자뿐 아니라 백인 노동자, 농부, 그리고 교외 지역 화이트칼라 등 폭넓은 지지층을 과시한 셈이다. 트럼프의 참모들은 그의 대선 출마를 조지아주 상원의원 결선투표 (12월 6일) 이후까지 미루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부진한 중간선거 성적표로 침체된 당내 분위기를 일신하고 입지가 좁아진 자신의 처지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서둘러서 발표를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마러라고 리조트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 나는 미국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시종일관 청중을 휘어잡던 열정적인 연설과는 거리가 멀었다. 트럼프의 '입'으로 통했던 폭스뉴스는 35분으로 예정됐던 트럼프의 연설이 1시간 이상 지루하게 늘어지자 생방송을 중단하고 다른 뉴스를 이어갔다. 공화당의 거액 기부자들도 현장에 없었다는 점도 그의 영향력이 이전과 같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이든의 민주당은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출마 선언에 대해 겉으로는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내심 반기고 있다. 둘로 극명하게 갈라진 미국 사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트나땡(트럼프 나오면 땡큐)'이라는 관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선전을 이끌면서 자신에 대한 차기 대선 불출마 압박에서 벗어날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선거를 공화당과 민주당 간 선택으로 프레임을 몰아간 바이든과 민주당의 전략이 먹힌 것이다. 한편으로 실망스러운 이번 선거 결과는 공화당에는 전화위복(blessing in disguise)이 될 수도 있다. 네바다와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애리조나 등 주요 경합 지역 유권자들은 2020년 대선이 사기라는 트럼프의 잘못된 주장을 신봉하는 '충성파' 후보들을 탈락시킴으로써 공화당이 트럼프의 막대한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었다. 중간선거 전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60%가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이 정당하다고 대답한 것을 보면 트럼프가 내세운 후보들이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이는 유권자들 대부분이 과거 수년간 거친 수사(rhetoric)와 음모론과 혼란의 늪에 빠진 미국의 민주주의가 정상화의 길로 가길 희망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가 트럼프에게 거대한 패배로 인식되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번 선거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심판일 뿐 아니라 트럼프의 극단적인 선거 부정과 선동에 대한 강력한 심판이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대신할 공화당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고 있는 디샌티스 주지사는 한때 트럼프의 지지자였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의 지원을 기피한 뒤 큰 표차로 승리했다. 트럼프는 중간선거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디샌티스가 대선에 나서면 "심하게 다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견제에 나서고 있다. 이런 트럼프의 선제 공격을 두고 디샌티스는 '소음(noise)'이라고 일축했지만 아직 정면 대결은 피하고 있다. 나이가 40대인 그가 좀 더 때를 기다릴지 아니면 2024년 공화당 경선 후보에 뛰어들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설혹 그가 다음 대선에 출마를 하기로 이미 결심을 했다 해도 발표를 서두르지 않고 페이스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트럼프가 처음 대선에 출마한 뒤 경선 후보들이 줄줄이 트럼프와 설전을 벌이다 진흙탕에 빠져 큰 낭패를 보았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동생 젭 부시 플로리다 당시 주지사는 뛰어난 정치적 자산과 배경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젭 부시는 경선 토론 과정에서 트럼프에게 일방적 공격을 받으며 후보를 사퇴했다. 트럼프가 이 순간 가장 걱정해야 할 문제는 당내 자신의 흔들리는 입지나 선거자금 같은 문제가 아닐지 모르겠다. 최악에는 당국의 수사 결과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당할지 모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진정한 리더는 자신이 당이나 국가에 큰 짐이나 골칫거리(liability)가 되고 있을 때 이를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또 정치적 무대에서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면 과감히 물러난다. 이는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보낸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2016년 처음 대선 도전을 선언한 이후 정치적 행보를 보면 이러한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올 리가 없다. 아직도 그는 자신만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맹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년 5월 시작되는 공화당의 프라이머리에서 트럼프는 이번에는 방어자의 입장으로 바뀌어 경쟁 후보들과 난타전을 준비해야 할 듯하다. 벌써부터 공화당의 주요 선거자금 후원자들이 트럼프 대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등 다른 후보군으로 관심을 돌리는 움직임이 있다지만 트럼프에 대한 일반 공화당원의 지지는 무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공화당 경선이 트럼프가 처음 대권 출사표를 냈던 당시와 같은 수준으로 TV나 유권자들의 흥미나 관심을 끌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트럼프가 공화당의 2024년 대선 후보 티켓을 거머쥐려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그가 당에 큰 짐(albatross)이 아니라 소중한 자산(asset)임을 입증해야 한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2022-12-05 12: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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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의 절차탁마] 명품 한류의 근원, 홍익인간 정신과 '코리안 드림'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US News & World Report에서 발표한 2022년 세계 10대 강국(the World's most powerful countries)에 한국이 6위로 랭크되었다(1위 미국, 2위 중국, 3위 러시아, 4위 독일, 5위 영국, 6위 한국, 7위 프랑스, 8위 일본, 9위 아랍 에미리트, 10위 이스라엘). 믿기지 않는 순위지만 산출 근거로 대상 국가의 세계 주요 뉴스에 노출되는 빈도, 정책결정권자의 영향력, 세계 경제에 대한 기여도, 외교정책, 군사예산 규모, 국제사회에 주는 신뢰도 등을 주요 고려 대상으로 하여 매긴 순위이기 때문에 신뢰성이 꽤 높아 보인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이 밖에도 문화 영향력(Cultural Influence)에서는 세계 7위,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선 세계 6위를 차지한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제는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선진국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외부에선 이렇게 우리나라를 높이 평가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국제적 순위평가에서 높은 평가를 대하면서도 우리 자신은 이런 결과를 잘 믿으려 하지 않으며 우리가 선진국 시민이라는 그런 느낌도 없다. 남들은 우리나라가 세계를 리드할 만한 리더십과 뉴스 생산력 그리고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었다고 보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엔 아직도 이 나라가 미국이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남아 있으며 봉건적 형태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반제·반봉건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노사 문제를 해결해 가는 능력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와 배분 문제, 그리고 정당 간 극한 투쟁을 보면 솔직히 우리는 선진스럽기보다는 후진스럽기 짝이 없다. 그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라는 자부심이 국민적 자부심이 되지 못하고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되었고, 그 국민적 성과에 나라고 하는 개인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늘 우리는 어느 계층에 있든 소외감을 느낀다. 우리라는 우리 우리는 조직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 ‘내부총질’이라는 거친 용어를 쓴다. 내부 비판을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작은 조직이나 큰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는 ‘왕따’라는 따돌림으로 나타나고 종교계에서조차 다소 다른 의견을 내거나 의견 일치가 되지 않으면 상대를 ‘이단’으로 몰아세운다. 이렇게 나와 같지 않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조직의 ‘순혈’ 혹은 단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아무래도 이런 사고를 가지게 된 데에는 우리의 생활환경이 협소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국토라는 공간만이 아니라 외부와 교류가 적어지면서 우리는 작은 우리 안에 갇혔기 때문이다. 국토의 분단은 우리의 의식까지 이렇게 소심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우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만 우리라는 말에는 너와 나라고 하는 구분이 있어야 함에도 너와 나는 언제나 같은 시각, 같은 사고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잠재해 있다. 엄연히 너와 나의 생각이나 취향이 다른데도 말이다. 우리라는 말은 너와 나로 분립된 자기 주도적 독립된 자아가 다시 만나 우리가 되는 것이다. 각자의 독립된 자아가 서로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필요가 있어야 하며 인정과 배려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는 해외에서 이주해온 다문화가정, 중국의 조선족, 그리고 북에서 온 탈북민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는 다양해졌다. 갑자기 찾아온 이 다양함에서 우리는 우리의 단일주의 의식을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가 우리 사회의 가장 긴급한 문제가 되었다. 며칠 전 나는 한 탈북민을 만났다. 1997년에 왔으니까 벌써 25년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 그이지만 그는 여전히 탈북민이다. 북한처럼 이남에도 출신 성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자신에게 붙은 꼬리표를 뗄 수 없는 사회라면 탈북민을 대하는 남한 사람들의 시각이 변하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정치 이야기를 좋아해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탈북민이 어느 정당이나 정치인을 비난하면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면서 상대가 엄청 화를 낸다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본인들도 한국 정치와 정치인들을 맹비난하면서도 탈북민이 그들을 비난하면 “너는 뭐 하러 남에 왔니? 그리 싫으면 북으로 돌아가라”며 화를 낸다는 것이다. 자신을 같은 주민이나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방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탈북민을 도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우린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우릴 ‘먼저 찾아온 통일’이라며 우리를 치켜세우지만 그 말은 우리를 이용해먹으려고만 하지 통일의 동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지 말고 사명감을 주어라. 동정이나 온정을 베풀지 말고 일자리를 주어라. 탈북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들어보려 하지 않고 정부나 교회는 우리에게 교육만 시키려 한다.” 탈북민들이 ‘먼저 온 통일’ 맞다. 통일은 나의 삶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삶을 존중해주면서 더불어 사는 삶이다. 지금 북에서 살고 있는 조선 인민들을 생각하면 탈북민들은 자기 삶의 의지와 결정권을 더 강하게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과 하나 못 되는데 어떻게 북한과 통일할 수 있겠는가. 교육은 우리가 받아야 한다. 성장과 삶의 환경이 전혀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교육은 우리가 필요하다. 같이 사과도 따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같이 체육대회도 하고, 같이 김치도 담그며 사고의 방식은 다르지만 더 나은 나라와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비전으로 같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민족의 비전, 코리안 드림 우리 민족의 시원이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먼 옛날 단군이라는 분이 ‘세상의 모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셨다는 역사 기록으로 우리는 반만년 전 옛 조선을 우리 민족의 시원으로 보고 있다. 반만년 역사를 이어오며 우리 선조들은 국난을 당할 때마다 이 건국정신을 되새기며 견디고 싸워 이겨 나왔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내외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이때에 우리를 다시 하나 되게 만드는 것은 역시 우리 역사의 첫 출발지인 건국정신을 되새겨보는 것이다. “온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겠다(홍익인간). 그러기 위해 참된 진리로 다스리겠다(제세이화)”며 빛나는 아침의 나라(조선)를 열었다는 이 이야기는 사실 서구 민주주의 기틀이 된 미국 독립선언서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이 한 문장보다 더 미려한 선언문이 아닌가. 이 건국의 비전은 현재 남이나 북이나 같이 배우고 있고 나아가 동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는 이야기다(단군신화와 홍익인간 정신은 중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도 비슷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실제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 한류가 얼마나 세계인들의 가슴을 감동으로 물들이는지 잘 모른다. 멋 옛날 주변국에서 우리 민족을 평할 때 ‘접화군생’ ‘군취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이 그저 집단적으로 음주가무를 좋아했다는 말로 그 의미를 축소 해석해 그동안 우리 스스로를 열등민족으로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접화군생(接化群生)이란 말 속에는 집단 속에 파묻혀 갈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대중 사회에서 창조적 개인으로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개인과 집단이 유기적이고 교호적 상호관계를 맺으며 이를 협동적으로 진전시킨다는 화합과 상생의 사상이 깃들어 있으며, 요즘 한류는 이러한 사상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 민족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평했다. 우리는 이집트처럼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거나 로마의 도로와 건축물, 중국의 만리장성 같은 빼어난 유산을 만들거나 거대한 제국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역사의 뜻이 ‘아가페’라고 한다면 우리는 신의 사랑을 제대로 찾아 나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가시 없는 장미를 볼 수 없듯이 아픔 없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만날 수도 없기 때문에 인류역사 자체가 고통의 길이요, 수난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역사를 타고르의 <기탄잘리>에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야말로 큰 길가에 앉은 거지 처녀다. 수난의 여왕이다. 선물의 꽃바구니는 다 빼앗겨버리고 분수 없이 왕후를 꿈꾼다고 비웃음을 당하고 애끓는 지친 역사다. 그래도 신랑은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 역사가 고난의 역사라고 말한 것은 우리 건국의 선조들의 건국이념이 실현되지 못한 채 외세에 의해 고조선이 망하고 400년 만에 다시 일어섰으나 삼국으로 쪼개지고, 다시 고려로 쪼그라들고 조선에선 더 왜소해지고 약화돼 끝내는 일본에 국체를 빼앗기고 신음하다가 마침내 독립을 이루었으나 우리의 꿈과 기상은 일어나지 못하고 다시 분단되는 이 슬픔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뜻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관통하는 그 뜻이란 무엇이냐, 바로 홍익인간의 비전을 실현하여 하늘이 곧 사람이라는, 모든 사람들이 하늘의 마음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여 이 땅에 평화세계를 실현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한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역사를 통해 패망과 죽음과 온갖 실패의 시련을 겪게 하고 견디게 하며 이 민족을 길러왔다는 것이다. 이 민족을 세계적인 선도국으로 만들기 위해 하늘은 어떤 뜻을 한반도에서 진행해 왔는지 최근의 역사를 돌아보자.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유행으로 검역(Quarantine)과 격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쿼런틴의 어원은 40일 분립을 의미하며 그 어원은 성서에서 왔다. 성서에서 40일의 예를 보면 노아 때에 방주(方舟)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 40일 기간, 모세의 바로궁중 40년, 미디안광야 40년, 가나안 복귀의 광야(曠野) 40년, 예수의 광야고난 40일, 부활 후 40일 등 40수는 고난을 통한 분립 혹은 새롭게 나아감의 의미가 있다. 이 40수의 의미를 우리 역사에 대비해 보면 1905년 을사늑약은 실제로 국권이 상실된 것으로 보아 1945년 광복될 때까지 40년간은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기로 민족의 암흑기, 1985년까지 한반도의 분단기, 그리고 2025년까지 통일기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보면 2025년까지는 우리는 어떻게 하든 통일의 전기를 마련해야 하는 역사의 뜻이 있다. 선조들이 독립을 위해 많이 애썼지만 우리 힘으로 독립을 맞이하지 못하고 외세에 의해 갑자기 찾아온 독립은 광복 후 엄청난 혼란기를 가져왔다. 이 혼란의 와중에 남과 북은 3년 후 정식으로 정부를 출범시키고 전쟁까지 치르게 되어 분단은 고착화되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1985년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처음으로 상봉하고 예술단의 상호 교환 방문으로 남북 화해의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3년 후인 1988년엔 서울 올림픽을 치르면서 공산과 민주 진영의 냉전 종식의 전기를 마련한다. 이제 3차에 걸친 40년이 지나는 2025년까지 3년 남았다. 지금 상황은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며 핵개발로 세계를 위협하는 매우 불안한 상황이지만 지금 이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갑자기 나타난 코로나 바이러스의 팬데믹 현상 추이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의 대만 침공설 등 국제 상황은 어떻게 요동칠지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혼란한 때에 우리는 노자가 말하듯 우리 민족의 근원, 원점으로 돌아가 민족의 비전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옛적의 어느 날, 만주 평원의 거친 풀밭 위에 먼동이 틀 무렵 훤히 밝아오는 그 빛이 흥안령 마루턱을 희망과 장엄으로 물들일 때 몸집이 큼직하고 힘줄이 울툭불툭하고 널따란 이마에는 어진이의 기상이 서려 있고 눈빛에는 날쌤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사람들이 솟아오르는 해를 향해 “홍익인간이다!”라고 외치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진리의 빛으로 하나님 같이 서로를 섬기며 광명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 위대한 함성. 이제 지난했던 고난의 역사를 뚫고 홍익인간이라는 ‘코리안 드림’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때가 된 것이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필자 소개 - 이두수(54)는 5년 전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노동 현장의 삶과 애환을 그림과 글씨로 표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건설 노동자로 일하기 전 시민단체인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8년간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2022-11-1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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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영국이 주는 교훈 .. 시장과 대결하면 곧바로 반격이 몰려온다 지난달 24일 영국의 집권 보수당(conservatives) 대표 겸 새 총리로 선출된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42)은 골드만삭스와 헤지펀드 등에서 근무한 초엘리트 금융인 출신이다. 인도계 이민 3세로 억만장자의 딸과 결혼해 부부의 재산이 1조가 넘는 슈퍼리치인 그가 40대 초반의 나이에, 그것도 비(非)백인이자 힌두교도가 최초로 영국 정치의 수장에 오른 과정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매우 이례적이다. 몇주 전 영국은 식민지였던 인도에게 세계 경제 5위의 경제 대국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수낵의 총리 등극은 인도의 부상(浮上)과 영국이 최근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일화이기도 하다. 2015년 35세의 나이에 보수당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수낵은 자신은 완전한 영국인이지만 종교는 힌두교이고 문화유산은 인도에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2020년 보리스 존슨 총리에 의해 내각의 실질적 2인자인 재무장관( Chancellor)에 파격 발탁된다. 언론에서 힌두교도라는 점이 부각되고 경험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고리타분'한 이미지의 전임 재무장관들과는 달리 솔직하고 절제된 언어와 신선한 외모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그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대규모 부양책을 주도하면서 차기 지도자로 부상한다. 그는 올해 여름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건 도박을 결심한다. 존슨 총리가 각종 추문에 휩싸이자 그의 보수당 대표직 사퇴를 이끌어 냈고 본인은 차기 총리 경선에 도전장을 내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리즈 트러스 전 총리에 밀리며 고배를 마신다. 패배를 인정하고 잠시 후선에 물러나 있던 그에게 한 달 반 만에 대망의 기회가 저절로 찾아왔다. 새 내각이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경기 부양을 한다며 성급히 내놓은 450억 파운드(약 72조원) 규모의 파격적 감세안은 '제2의 마거릿 대처'를 자처하던 트러스의 발목을 잡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10일간의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트러스와 그의 정치적 동지인 쿼지 콰텡 재무장관이 준비했던 소위 '미니 예산'은 그 이름과 정반대로 후폭풍이 어마어마했다. 고물가와 부실한 재정에 시달려온 영국에 대규모 감세를 통해 경제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트러스의 의도는 현실을 무시한 헛발질 정책이었다. 대규모 감세와 지출을 위한 정부의 재원 마련은 국채발행뿐인데 금리인상 기조에서 이러한 조치는 물가 상승을 부추길 뿐 아니라 정부 부채만 악화시킬 것이라는 비판과 우려가 국내외에서 동시에 쏟아졌다. 파운드화가 폭락하고 국채시장이 마비되자 트러스는 워싱턴에서 IMF 회의에 참석 중이던 콰텡 재무장관을 급히 불러들여 해임시켰다. 그리고 존슨 총리 후임을 선출하는 당내 경선에서 8위로 조기 탈락한 제레미 헌트 후보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에서 보건사회부장관을, 테레사 메이 내각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헌트 후보는 재무장관에 임명되자 문제의 '미니 예산'을 사실상 전면 파기했다. 시장은 비로소 안정을 찾았지만 트러스 총리의 참담한 경제 실책으로 정부와 여당의 신뢰와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의 사임은 시간문제라고 조롱하며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는 양상추와 트러스 사진을 놓고 어느 쪽이 오래가는지 유튜브 생중계를 올리기도 했다. 마침내 트러스 총리는 44일 만에 낙마하면서 영국의 최단명 총리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수낵은 지난 여름 당 대표 경선에서 영국의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 트러스가 공약한 '감세를 통한 성장' 정책을 '동화 같은 이야기로 경제위기를 몰고 올 것'이라고 비난했다. 당시 보수당원들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결국 그의 말이 옳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수낵은 차기 총리로의 길로 다가섰다. 그는 보수당 전체의원(357명) 중 200명의 지지를 얻어 유일하게 당 대표 출마요건인 100명 이상의 추천을 받았다. 영국 보수당이 '스피드 경선'으로 트러스의 후임을 선출한 것은 그만큼 영국의 경제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지율이 폭락으로 위기에 빠진 보수당을 하루속히 재건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애초 트러스 총리 사임 이후 경선 의지를 보였던 존슨 전 총리가 막판에 물러선 것도 거짓말 의혹으로 의회 조사를 받는 그가 출마할 경우 보수당 이미지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1922 위원회의 우려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1922 위원회는 보수당 평의원 모임으로 일종의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는 견제기구로, 트러스 감세안으로 민심 이반을 야기하자 '레드카드'를 꺼내 존재감을 부각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낵은 2016년 6월 진행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이후 5번째 영국의 총리이다. 그가 브렉시트 이후 혼돈에 빠진 보수당을 제대로 이끌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보수당은 정치적 고비 때마다 총리를 압박하고 교체하면서 당내 균열이 생기고, 영국인들의 신뢰도는 뚝 떨어졌다. 올해에는 총리가 2번이나 불명예 퇴진하면서 최근 유고브가 진행한 여론조사 지지율이 19%로 노동당(56%)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야당은 집권 보수당의 수장이 잇따라 사퇴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했다며 조기 총선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위기에 빠진 보수당의 '구원투수'로 나선 수낵 총리가 경제난과 당내 분열을 수습하고 다음 총선(2025년 1월 예정)에서 노동당에 승리할 수 있을지 전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영국 보수당은 1832년 토리당이 이름을 바꾸어 생긴 정당이다. 전신까지 따져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으로 간주된다. 2010년 이후 12년째 장기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당내 경선에선 2차대전 이후 최장수 총리인 '철의 여인' 대처의 열풍이 불었다. 1970년대 후반 케인스주의적 경제정책과 복지국가형 사회보장체제로 경쟁력이 하락하던 영국을 감세와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으로 국가 경제를 다시 일으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야심가인 트러스 전 총리는 '철의 여인'을 모방하려다 섣부르고 무모한 정책으로 경제에 큰 풍파만 일으키고 퇴진했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원조국가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불황이던 제조업이 몰락하고 금융과 서비스 중심으로 경제가 개편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자 영국 정치권은 유럽연합(EU)과의 연대를 탓하기 시작했다. 보수당은 영국의 EU 탈퇴 논란으로 오랫동안 당내 갈등을 노출하다가 2016년 당시 반대파이던 데이비드 케머런 총리는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투표 결과 브렉시트가 가결되자 케머런 총리와 당 원로들이 물러나고 테레사 메이 총리가 등장했으나 당내 갈등은 더욱 커졌다.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했다고 해서 브렉시트가 바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무역과 관세 체제, 이민,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 등 새로운 무역법 마련을 위한 협상은 험난하기만 했다. EU와 영국 간의 합의서는 영국 의회에서 3번이나 연기되었다가, 2021년 1월 31일 영국의 EU 탈퇴가 공식화 된다. 그후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11월 EU와의 47년 동반자 관계는 끝이 났다. 보리스 전 총리는 그리도 말썽 많던 브렉시트 협상을 완결하겠다는 공약으로 2019년 조기 총선에서 압승을 했다. 현재 영국 경제가 악화일로 상황에 빠진 근본적인 이유를 두고 '브렉시트의 저주'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U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면 영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해지면서 무역대국으로 변할 것이라는 보수당 강경론자들의 주장은 오늘날 날개 없이 추락하는 영국의 모습을 보면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분명하다. 트러스 전 총리는 애초 브렉시트 반대파였다가 강력한 옹호론자로 변신한 인물이다. 존슨 전 총리가 끝없이 불거지는 스캔들로 물러나자 보수당 내 우파들은 트러스 지원에 나섰다. 그러다가 트러스의 경제정책 실패로 시장이 요동치자 보수당 내 우파들도 트러스의 사임을 요구한 중도파들의 주장에 동조했다. 지금의 영국 위기가 근본적으로 브렉시트 갈등에서 출발한 것이 맞다면 이를 밀어붙인 보수당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낵은 10월 25일(현지시간) 오전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총리로 임명된 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실 앞에서 첫 대국민 연설을 했다. 그는 "성장 추구는 숭고한 목표이지만 리즈 트러스 총리는 몇 가지 잘못을 했고 나는 이를 바로잡으라고 총리로 뽑혔다"며 영국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안정과 신뢰를 정부 핵심 의제로 삼을 것이며, 이는 앞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다 소비 위축으로 영국은 이미 트러스 전 총리가 취임했던 9월부터 경기 침체의 길로 들어섰다. 수낵 새 총리에게는 경제 살리기 못지않게 어려운 과제가 앞에 놓여 있다. 정부와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또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부채 문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건전한 재정정책이 필수이다.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영국 정부는 오랫동안 긴축재정을 펼쳐온지라 향후 지출을 계속 줄이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생활고에 시달리는 저소득층 가계에 대한 지원 축소는 정치적으로 너무 민감한 사안이다. 헌트 재무장관이 취임 이후 트러스의 감세안 규모 450억 파운드에서 320억 파운드를 철회했지만 여전히 긴축강도를 늦추기는 힘든 상황이다. 결국 사회복지나 국방비 예산을 축소하거나 인기 없는 정책인 증세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수낵에게는 불편한 선택이다. 헌트 재무장관은 이미 법인세가 내년 봄 19%에서 25% 인상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은 영국이 경기 부양책을 포기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외치며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1992년 독일이 통일 후유증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 마르크화가 폭등했다. 이때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며 자국 통화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영국은 시장과 대결을 택했다가 조지 소로스를 필두로 한 세계 헤지펀드의 융단 폭격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30년이 지나 영국은 비슷한 위기를 자초했다. 글로벌 금리인상과 긴축 재정에 역행하며 홀로 확장 재정을 택했다가 시장에 굴복한 것이다. 지금 영국의 위기가 단순히 트러스 전 총리 한 사람의 패착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근본적 원인은 영국의 전반적인 국가 경쟁력 약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세계 금융시장이 극도로 예민할 때는 단 한번의 잘못 던진 '돌팔매'도 거대한 분노의 파도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우리 정책당국자들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가 향하는 길목 곳곳은 지뢰밭이기 때문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2022-11-06 13: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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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의 월드비전] 팔순에도 건강은 이상무? 바이든, 트럼프와 '운명'의 재대결 선택할까 지난달 18일 CBS 일요 TV쇼 '60 Minutes'에서 스콧 펠리 진행자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재선에 도전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했느냐고 물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답변은 솔직했다. 다시 출마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건 의사일 뿐이다. 그러나 나의 재선 출마가 확고한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But it's just an intention. But is it a firm decision that I run again? That remains to be seen)."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 달 20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팔순을 맞는다. 미국 중간선거가 실시된 후 2주 정도 지날 무렵으로 80세 생일을 계기로 미국 언론은 그의 건강 상태와 재출마 의지를 본격적으로 파헤칠 것으로 보인다. 그는 50년 전인 1972년 29세 나이에 최연소 상원의원 당선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그에겐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 당선인이라는 타이틀이 더해졌다. 역대 대통령과 달리 취임 직후부터 바이든의 재출마는 지대한 관심사였다. 바이든은 지난해 79세 생일을 가족과 함께 델러웨이주 윌밍튼의 고향집에서 조용히 보냈다. 올해는 큰손녀딸 나오미 바이든(28) 결혼식이 백악관에서 80세 생일 바로 전날인 11월 19일 열릴 예정이다. 나오미 결혼식 참석차 이미 워싱턴에 도착한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바이든 대통령의 생일 파티는 백악관에서 치러질 예정인지라 언론의 집중 조명을 피할 수가 없다. 바이든이 자신의 재선 도전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나이와 건강 논란이 다시 불붙지 않을까 백악관 참모들은 걱정하는 분위기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2년 후 대선에 출마해 승리한다면 82세 나이에 2기 임기를 시작하고 그의 후계자가 취임식을 할 때는 86세다. 2020년 대통령 선거운동에 뛰어들기 전부터 그에겐 '실언 제조기(gaffe machine)'라는 별명과 함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대해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다. 이를 의식해 선거 운동 기간 자신을 차세대 리더들과 연결고리, 즉 '가교 후보(bridge candidate)'라고 일컫기도 했다. 그리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러닝메이트였던 카멀라 해리스(57) 현 부통령이나 다른 젊은 인물이 2024년에 대선 주자 배턴을 이어받으리라는 분석도 적지 않게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몸이 더욱 수척해지고 머리도 더 빠졌으며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지난 4월엔 연설 직후 허공에 손을 내밀고 악수하는 듯한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백악관은 대통령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야당과 일부 보수 언론은 공개석상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할 때마다 건강이상설이나 치매설을 제기하곤 했다. '60 Minutes' 인터뷰에서 바이든은 자신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문제 없이 대통령 일정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반도체산업 육성법, 인플레리션 감축법(IRA)과 같은 입법 성과에 대해서도 "늙은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10일 후 사회 각계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근 교통사고로 사망한 재키 월러스키 하원의원 이름을 부르며 "재키, 여기 있나요"라며 찾는 듯한 모습을 두고 백악관 기자회견실에서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선 재출마와 관련해 바이든 발언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오랜 정치적 역정에서 모든 결정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바이든의 성격상 그는 실제로 최종 결심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의 결단은 오는 11월 8일 실시되는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는 '60 Minutes'에서 "내가 할 일을 하다가 다음 선거 뒤에 알맞은 시간에, 내년으로 접어들 때 무엇을 할지 결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달 초 'CNN Tonight'의 제이크 테퍼와 인터뷰하면서 만약 자신이 다시 출마한다면 트럼프를 이길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나이보다 능력으로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판단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하면 트럼프가 출마한다면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출마해서 '운명'의 재대결을 생각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2024년 대선 전초전인 미국 중간선거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패배에 대한 불복 운동과 연방수사국(FBI)의 트럼프 자택 압수수색, 낙태권에 대한 대법원 판결 등으로 미국 사회의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치르는 이번 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2024년 대선을 위한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 결국 선거 이후 정치적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공화당 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화당의 중간선거 예비선거에 지지 후보를 거듭 발표하면서 지난 대선이 도난당했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 사태와 관련해 공화당 내부에서 그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파 간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지만 트럼프는 현재로선 공화당 대선 후보 1순위로 꼽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현재 1·6 의사당 폭동 사태를 선동했다는 혐의와 탈세 등 각종 수사와 소송에 휘말려 있지만 이번 중간선거를 치른 이후 여론의 향방을 살피며 2024년 대선 출마를 최종 결심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의 결정에 따라 자신의 중요한 정치적 결심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만약 공화당이 이번 선거에서 상·하원 모두 다수당이 된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차기 대권 출마 구도를 굳힐 가능성이 크다. 의회 권력을 되찾은 공화당은 탈세 논란에 휘말린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추진해 정국이 소용돌이에 휩싸일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며 급속히 레임덕에 빠지면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치권의 모든 이목을 차기 민주당 대선 경쟁으로 쏠리게 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바이든의 불출마를 전제로 해리스 부통령, 피터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 여러 명이 잠재적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6년 임기인 상원의원 100석 중 35석, 2년 임기인 하원 435석 전체를 다시 선출한다. 공화당은 하원에서 6석, 상원에서 1석만 더 확보하면 양원에서 다수당이 될 수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공화당 양당 구분 없이 대통령 소속인 정당이 승리한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유권자들이 중간선거를 현직 대통령의 집권당에 대한 웨이크업 콜 (wake-up call)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 민주당은 의료보험 개혁에 반발한 공화당의 '티 파티' 세력에 의해 하원에서 63석을 잃는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도 집권 2년 만에 하원을 민주당에 넘겨주기도 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하원의 공화당 우세는 굳어졌고, 상원을 민주당이 수성할 것인지가 최대 관건이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가 초박빙 승부를 벌였던 5개 경합주(애리조나,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는 이번 선거의 최대 승부처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이곳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선거 예측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는 이달 9일 기준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할 가능성을 70%로 예측한 반면 민주당은 상원 다수당을 고수할 가능성을 67%로 보았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이번 봄만 해도 인플레이션 우려와 바이든의 지지율 폭락으로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 되는 '붉은 물결(Red Wave)'을 예상했던 분위기와 크게 달라진 것이다. 올여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 등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법안 통과와 함께 연방 대법원의 낙태법 폐지 후폭풍 영향으로 바이든 지지율이 반등한 결과다. 낙태법 폐지, 학자금 탕금···민주당에 기회 주나 사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 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각종 악재 속에 어떤 문제로 유권자 표심을 자기들에게 끌어올지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올해 6월 24일 연방대법원은 지난 49년간 낙태권을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었다. 그동안 줄기차게 낙태권 폐지를 주장했던 공화당 손을 들어준 것이다. 현재 연방 대법관 9명 중 6명은 보수 성향이며 이 중 3명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인물로 이번 판결이 트럼프 전 대통령 작품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연방대법원의 낙태법 판결에 대한 반발에 힘입어 민주당이 결집하고 여성 유권자 투표율은 이번 선거에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선거의 주요 변수 중 또 하나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발표한 학자금 탕감 조치다. 바이든 대통령은 장고 끝에 1인당 최대 2만 달러(약 2900만원)를 탕감해주는 이 조치를 의회와 협의하거나 승인하는 절차 없이 행정명령 형태로 내놓았다. 미국 내 학생에 수천만 명게 혜택을 주는 이번 조치는 향후 10여 년에 걸쳐 예산이 약 4000억 달러 소요되는 조치로 공화당은 선거를 앞두고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한 포퓰리즘 행보라고 비난하고 있다. 안 그래도 심한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여론과 함께 이번 조치로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경제적 고통을 크게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여론이 팽팽하다. 민주당은 학자금 탕감 조치 등 각종 포퓰리즘 정책, 낙태법과 트럼프에 대한 논란이 그동안 인기 없는 대통령과 집권당이 패배하던 중간선거의 역사적 전통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은 미국 유권자 마음이 그들에게 쉽게 돌아서지 않을 것으로 자신하는 모습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바이든 행정부의 초라한 경제 성적표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금리를 '자이언트 스텝'으로 연속해서 올려도 장바구니 물가가 잡히지 않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유권자 표심은 결정적일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 공화당에 넘겨주는 참패를 한다면 ‘트럼피즘’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허리케인이 다시 미국을 두 동강 낼 것이 분명하다. 민주당이 만약 상원이나 하원 중 한 곳이라도 승리한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2024년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예상을 완전히 깨고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지킨다면 바이든은 나이는 오직 숫자에 불과하다며 대선 출마를 조기에 공식화할 수도 있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2022-10-17 10:2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