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 소장
carmine.draco@gmail.com
-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 前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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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비욘드 ESG] 화석연료와 더 독하게 '헤어질 결심' [안치용 교수] 독일 에너지업계에서 쓰는 용어 중에 'Dunkelflauten'이라는 게 있다. ‘Dunkel’은 어둡다는 뜻으로 이 뜻에서 파생하여 흑맥주를 지칭하기도 한다. ‘Flauten’은 ‘Flaute’의 복수로 무풍 상태를 의미한다. /둥켈플라우텐(Dunkelflauten)'은 태양이나 바람이 충분하지 못하여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이 미미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필요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쓰겠다는 국제적 흐름인 RE100과 관련하여 둥켈플라우텐이란 용어가 자주 사용된다. ▲'Dunkelflauten'=예컨대 다음 그래프에서는 전력 수요량에 비해 풍력 에너지 공급량이 넘치거나 모자라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래프상 모자라는 부분이 둥켈플라우텐에 해당한다. 공장이나 설비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이 대체로 일정한 반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을 통해 생산되는 전기는 들쑥날쑥하다. 유럽 어느 지역 공장의 실제 풍력전기 수급 2주치 상황을 기록한 그래프에서 첫째 주 말고 둘째 주가 둥켈플라우텐에 해당한다. 이 공장은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약속한, 즉 RE100을 약속한 곳이지만, 재생에너지 공급이 안 되는 둥켈플라우텐엔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쓸 수밖에 없다.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이용함으로써 재생에너지 100% 사용 약속을 저버린 이 공장이 RE100을 달성할 기회는 영영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공장의 해태가 아니라 풍력발전소가 제때 전기를 공급하지 못해서 빚어진 사태인 만큼 화석연료를 쓴 만큼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를 구매하면 RE100에 머문 것으로 인정된다. 실제로 RE100 기업 가운데 소요 에너지 전량을 재생에너지로 쓰는 곳은 드물다. 대부분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를 부분적으로 사용하면서 화석연료 사용량만큼을 REC로 상쇄하여 RE100을 달성한다. REC 활용 비율이 국제적으로는 사용 에너지의 4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뱅크오브아메리카처럼 거의 REC 구매만으로 RE100 달성 기업에 이름을 올리는 곳도 있다. ▲RE100=RE100(Renewable Energy 100%)은 국제적으로 추진되는 민간 차원의 자발적 이니셔티브다. 국가 단위에서 수립되는 재생에너지 확산 정책과 별개로 기업 등 개별 조직 차원에서 진행한다. 비영리 단체인 ‘더 클라이밋 그룹’과 CDP(Carbon Disclose Project)의 파트너십으로 2014년 9월 유엔 기후정상회의에서 출범했다.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는 주지하듯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연속적인 공급(생산)이 가능하고 사용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에너지원을 뜻한다. RE100에서 용인하는 친환경 발전원으로는 바이오매스(바이오가스 포함), 지열, 태양광, 태양열, 수력, 풍력 에너지 등이 있으며 태양광과 풍력이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면서 두 곳에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 동시에 역으로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투자가 확대하고 발전원가가 하락하며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양의 피드백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1 세계 에너지 투자 현황’에 따르면 2020년 재생에너지 발전 투자 금액은 전년 대비 6.9% 늘어난 3588억 달러로, 세계 전력부문 투자의 46.1%를 기록했다. 2020년 신규 풍력설비는 2019년의 두 배인 114GW였으며, 같은 해 신규 태양광설비 또한 전년보다 25% 늘어난 135GW였다. 에너지 연구기관인 BNEF는 2040년까지 전 세계 신규 발전설비 투자액(10조2000억 달러)의 72%인 7조4000억 달러가 재생에너지에 몰릴 것으로 예측했다. 전 세계에서 RE100에 참여한 기업은 400곳을 넘어섰다. RE100 2021 연례 보고에 따르면 2021년 연간 보고에 참여한 315개 RE100 회원사는 2020년 전력 소비량(340TWh)의 평균 45%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했다. 앞서 살펴본 둥켈플라우텐이 RE100 천명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재생에너지 조달비율을 사용 에너지의 절반 미만에 머물게 한다. ▲24/7 CFE=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재생에너지 공급량은 3372GW로 전년(3077GW) 대비 8.9% 증가했다. IRENA는 21세기 말까지 지구표면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막으려면 연간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2030년까지 현재 수준의 3배로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략은 타당한 것이지만 다른 보완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살펴본 대로 둥켈플라우텐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RE100은 완벽한 온실가스 저감 대책이 될 수 없다. 대중은 흔히 RE100을 선언한 기업이 연중무휴 24시간(24/7/365) 재생에너지를 쓴다고 착각하지만 RE100 2021 연례 보고에서 나타났듯 재생에너지 조달 비율이 45%에 그쳤다. 핵심 재생에너지인 풍력과 태양광 전력 공급에 변동성이 존재하기에, 둥켈플라우텐에 발생한 수급 불일치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이 관건이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해법은 저장장치다. 인용한 그래프에서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소요량을 상회하는 첫째 주에 잉여 전력을 저장했다가 다음 주 둥켈플라우텐에 사용하면 깔끔해 보인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저장장치의 한계는 몇 시간에 불과하다. 며칠이나 몇 주가 되어야 둥켈플라우텐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데 저장 기간이 턱없이 짧다. 시급히 기술혁신이 이루어져야 할 부문이고 이제 막 가능성을 타진하는 중이다. 이에 따라 100% 재생에너지에 이어 100% 무탄소 에너지 사용이 에너지 분야의 핵심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다. 100% 무탄소 에너지 사용을 세계적 의제로 제안한 곳은 구글이다. 구글은 2018년 ‘24/7 CFE(Carbon-Free Energy·연중무휴 무탄소 에너지)’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2017년에 구글은 처음으로 자사 연간 에너지 소비량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구글이 RE100을 달성하자마자 24/7CFE란 의제를 제기한 까닭은 재생에너지 수급불일치에 따라 RE100 달성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와 완벽하게 결별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년 이후 매해 RE100을 달성하고 있지만, 2021년을 예로 들면 그해 사용한 에너지의 67%만 무탄소로 조달했다. 명목상 RE100 달성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여전히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쓰고 있다는 뜻이다. 구글은 2030년 ‘24/7 CFE’ 달성을 목표로 둥켈플라우텐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 ‘24/7 CFE’는 재생에너지 공급 효율을 높이면서 저장장치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과 결부된다. 100% 재생에너지 충당이 어려울 때 그만큼 REC 구입을 인정한 RE100보다 ‘24/7 CFE’는 훨씬 까다롭고 근본적인 개념이다. ‘24/7 CFE’와 RE100은 시간 기준이 다르다. 연간 기준인 RE100과 달리 ‘24/7 CFE’는 시간(hour) 단위로 재생에너지 공급 계획을 수립한다. 필요 전력을 상시적으로 무탄소로 공급하는 데 중요한 원칙은 ‘시간 일치’와 ‘현지 조달’이다. 무탄소전력 수급을 시간별로 계획해 구매한 재생에너지가 전력소비로 연결하도록 하고, 소비 지역에서 청정 전력을 구매해 전력 소비자가 자기 책임하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들 수 있다. 풍력과 태양광 전력을 주요하게 활용하되 지열이나 수력과 같은 대체 재생 에너지원을 함께 활용하여 둥켈플라우텐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에너지 저장 솔루션과 혼합 재생에너지원 개발이 중요해진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업이 중심인 RE100과 달리 ‘24/7 CFE’가 에너지 구매자, 공급업체, 정부, 비정부기구, 학술기관 등 에너지 생태계 전반의 이해관계자를 포괄하는 이유가 이러한 배경에서 해명된다. 2021년 9월 미국 뉴욕시에서 주요 에너지 구매자, 공급업체, 솔루션 제공업체, 정부 등은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한 에너지(SEforALL)’ 및 유엔에너지(UN-Energy)와 협력하여 ‘연중무휴 무탄소 에너지 협약(24/7 Carbon-Free Energy Compact)’을 출범했다. 여기서 핵심은 ‘24/7 CFE’에 동원된 많은 에너지 기술이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더 잘 이용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24/7 CFE’은 재생에너지에 초점을 맞춘 에너지 활용 지침이라는 사실이 잊혀서는 곤란하다. 베를린공과대학이 최근 시뮬레이션한 바에 따르면 아일랜드에서 2025년 ‘24/7 CFE’을 적용한 결과 RE100에 비해 이 나라 발전 분야에서 탄소를 약 15%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학 연구팀은 ‘24/7 CFE’의 90~95%를 달성하는 데 추가로 아주 많은 비용이 소요되지 않았으나 마지막 5%p에서 탄소를 없애는 데는 약 3배의 비용이 들었다고 분석했다. RE100에 이어 등장한 24/7 CFE’는 미래 에너지 분야의 확고한 흐름이 될 공산이 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12월 미국의 모든 연방 기관에 ‘24/7 CFE’ 조건의 전력 구매를 요구하는 행정명령 14057호에 서명했다. 2030년까지 100%의 CFE를 달성하고 이 중 50% 이상을 연중무휴 대응할 수 있는 현지의 재생에너지로 제공한다는 게 목표다. 한국 정부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21.6%)를 2021년 전 정부에서 확정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상 비중(30.2%)보다 크게 줄였다. <성장의 한계> 50주년을 기념하여 로마클럽에서 ‘인류 생존을 위한 가이드’ 성격으로 발간하여 최근 국내에 번역된 <모두를 위한 지구>는 총 에너지 비용과 관련하여 당분한 급격한 상승을 감수해야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보하는, 이 책에서 ‘거대한 도약’이라 명명한 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고통과 비용을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느냐가 지구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8월 22일은 20회 에너지의 날이었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에 관해 고민이 더 깊어진 기념일이었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2023-08-31 23: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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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비욘드 ESG] 우리가 맹그로브 숲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 [안치용 교수] 7월 26일은 ‘국제 맹그로브 생태계 보존의 날’이다. 2015년 11월 6일 유네스코 총회에서 맹그로브 숲 보존을 위해 매년 7월 26일을 맹그로브 생태계 보존의 날로 지정하였다. 유엔에서 기념일을 지정한 까닭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맹그로브가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추고 생태계를 보호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뜻이겠다. 맹그로브 숲 ◆새로이 각광받는 맹그로브=맹그로브 숲은 조간대에 있다. 조간대는 만조 때 해안선과 간조 때 해안선 사이의 땅으로 대체로 염습지다. 육지와 바다 각각에 인간의 피부에 해당한다. 맹그로브는 다른 대부분 나무와 달리 바닷물에서 생장할 수 있다. 맹그로브 뿌리는 음전하(-)를 띠고 있어서 염화 이온(Cl-)은 밀어내고 나트륨 이온(Na+)은 끌어당겨 뿌리 표면에 달라붙게 만든다. 이런 연유로 바닷물 속에 있어도 염분(NaCl)이 뿌리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물만 빨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염분이 90% 이상 뿌리에서 걸러지고 나머지는 잎에서 소금 덩어리로 배출된다. 맹그로브가 바닷물에서 소금을 걸러내는 방식은 담수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한다. 조간대의 맹그로브 숲은 해안에서 완충림 역할을 한다. 즉 태풍, 해일, 쓰나미 등 자연재해를 최일선에서 막아 해안가 피해를 줄이고, 맹그로브의 수많은 뿌리가 토양을 고정하여 해변 침식을 억제한다. 어떤 맹그로브 종은 받침뿌리가 땅속으로 10m가량 파고들어 갈 정도로 탄탄하게 땅과 연결된다. 지구상에 100종 가까운 맹그로브가 존재하며 사람 키 정도에서 물 위로 40m나 자라는 것까지 다양하다. 모든 맹그로브는 물이 천천히 흘러 세립질 저질(底質)이 쌓일 수 있는 저산소 토양에서 서식한다. 산호와 마찬가지로 낮은 온도를 싫어해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서 자란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맹그로브 숲의 면적은 1480만헥타르(㏊)다. 아시아가 555만㏊로 가장 넓고, 아프리카(324만㏊), 북아메리카 및 중앙아메리카(255만㏊), 남아메리카(212만㏊), 오세아니아(126만㏊) 순으로 분포한다. 기온이 낮은 유럽과 남극대륙에는 맹그로브 숲이 없다. 세계 맹그로브 숲의 40% 이상이 인도네시아(19%), 브라질(9%), 나이지리아(7%), 멕시코(6%)에 있다. 맹그로브 숲은 두꺼운 뿌리가 땅속 깊이 자리할 뿐 아니라 서로 빽빽하게 엉켜 있어 매우 안정적이다. 숲이 해안선의 변화에 조응해 아주 느린 속도지만 같이 이동하기에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시대에 천연 제방으로 거론된다. 복잡하게 뒤엉킨 맹그로브 숲의 뿌리 체계는 수중에서 질산염·인산염 등 많은 오염 물질을 걸러낸다. 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수질을 개선하는 천연 필터인 셈이다. 많은 물고기와 생명종이 음식과 피난처를 찾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맹그로브 숲이 조성된 바닷가는 그렇지 않은 바닷가에 비해 어획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맹그로브의 뿌리와 물고기들 ◆사라진 맹그로브 숲, 가라앉는 도시=그러나 그동안 맹그로브 숲의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맹그로브 숲을 보유한 인도네시아는 인구 대국이기도 하다. 경제 개발에 따라 무분별하게 맹그로브 숲이 파괴되거나 개간되었다. 2015년 기준으로 인도네시아 맹그로브 숲의 약 40%가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맹그로브 숲이 있던 자리에 주거지나 물새우와 밀크피시 양식장이 들어섰다. 방파제 및 천연 제방 역할을 하던 맹그로브 숲이 사라지고 해수면 상승과 대규모 지하수 개발이 겹치면서 인도네시아가 가라앉고 있다. 특히 수도인 자바섬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라앉는 도시가 됐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인구 과밀인 자카르타는 매년 지반이 내려앉아 현재 도시의 40%가 해수면보다 낮은 상태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2019년 8월 보르네오섬 동칼리만탄으로 수도를 옮기기로 하고 2년 반이 지난 지난해 1월 새 수도 명칭을 누산타라(Nusantara)로 발표했다. 서둘러 수도를 옮겨야 할 정도로 자카르타 상황이 심각하다. 강우나 홍수와 무관한 자카르타의 침수 모습은 종종 언론 보도로 전해진다. 당연히 맹그로브 숲이 사라진 이유만으로 자카르타가 가라앉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반 침하 이유에서 맹그로브 숲의 파괴를 빼놓을 수는 없다. 태국에서도 맹그로브 숲의 손실이 심각하다. 3100㎞에 이르는 긴 해안을 보유한 태국은 전체 해안 중 약 4분의 1인 700㎞가량이 심각한 침식으로 고통받고 있다. 태국 해안에 광범위하게 서식하던 맹그로브 숲이 줄어들면서 해안 침식이 더 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과 태국 정부가 조사한 결과 1961~2000년 사이 태국 해안의 맹그로브 숲 3분의 1이 증발했다. 맹그로브 숲이 동남아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계기는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부 해안의 40㎞ 지점에서 발생한 매그니튜드 9.1~9.3의 초대형 해저 지진. 이 지짐으로 30만명 이상이 숨지고 5만명이 실종됐으며 170만명가량 난민이 생겼다. 사망·실종 피해 대부분은 쓰나미 때문이었다. 재앙이 지나간 후 맹그로브 숲이 온전한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피해가 눈에 띌 정도로 작은 것이 확인되며 맹그로브 복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다. 맹그로브의 천연 제방 효과는 미국에서도 확인됐다. 2017년 허리케인 어마가 미국 플로리다를 강타했을 때 그곳의 맹그로브 숲이 50만명 이상을 보호했고 15억 달러의 직접적인 홍수 피해를 방지한 것으로 추산됐다. ◆지구온난화 시대의 총아=맹그로브 숲은 자신의 몸(바이오매스)과 뿌리내린 해양 진흙에 이산화탄소를 저장한다. 유엔 ‘적도 이니셔티브’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맹그로브 숲 1㏊당 1500톤 이상의 탄소가 그 아래에 저장되어 있다. 육지 숲보다 8배 많은 양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맹그로브 숲과 연안습지는 열대림보다 10배 빠른 속도로 탄소를 격리한다. 더 빠르게 더 많은 탄소를 제거하는 맹그로브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맹그로브 숲은 지구온난화 시대에 매우 중요한 탄소 저장고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유엔은 맹그로브가 격리한 탄소를 ‘블루카본’으로 정의했다. 2009년 유엔 보고서 <블루카본-건강한 해양의 탄소 포집 역할>에서 처음 언급된 블루카본은 어패류, 잘피, 염생식물 등 바닷가에 서식하는 생물과 맹그로브 숲, 염습지 등 해양 생태계가 흡수한 탄소를 뜻한다. 탄소 흡수 속도가 육상 생태계보다 최대 50배 이상 빠르고 탄소를 수천 년간 격리·저장할 수 있다. 지구의 탄소는 블루카본, 블랙카본, 그린카본 등 3가지로 구분하는데 블랙카본은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나 나무 등이 불완전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탄소를 가리키며, 그린카본은 열대우림과 침엽수림 등 육상 생태계가 흡수한 탄소다. 연안의 맹그로브 숲이 파괴되면 탄소 격리 능력이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고 맹그로브가 이미 격리해 몸에 저장한 탄소를 방출하는 이중의 피해를 유발한다. 이에 따라 맹그로브 숲 보존이 국제적 관심사로 급부상하게 된다. 맹그로브 파괴로 위기에 직면한 베트남,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10개국은 ‘미래를 위한 맹그로브’ 프로젝트를 통해 숲 복원에 나섰다. 특히 수도의 지반 침하 문제를 겪고 있는 인도네시아 국가개발계획청은 2045년까지 시행할 맹그로브 보존 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맹그로브 복원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방글라데시(60%)와 인도(40%)에 걸친 세계적으로 큰 맹그로브 숲 중 하나인 순다르반 지역(140만㏊)의 맹그로브 숲 복원사업은 ‘아시아의 허파 재생’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맹그로브 액션 프로젝트’는 전 세계 맹그로브 숲을 보존하고 복원하기 위해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 단체다. 이 단체는 건강한 맹그로브 숲이 특히 가난한 해안 지역사회에 지속 가능한 삶을 제공하고 자연재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지역민이 복구 사업에 참여하는 ‘지역사회 기반 맹그로브 복원(CBEMR)’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기업도 맹글로브 숲 복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애플은 콜롬비아 카리브해 연안에 맹그로브 군락지 조성 사업을 벌여 1만1000㏊를 복원 중이다. 이 사업으로 1만7000톤의 탄소를 흡수해 자사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케냐 해양수산연구소는 가지만 일대에서 지역민과 협력하여 맹그로브 숲을 복원하고 여기서 생긴 탄소배출권 수익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SK어스온이 2018년부터 베트남 미얀마 해변 136SK어스온에 맹그로브 묘목 53만그루를 심었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KB국민카드는 인도네시아 해안에 맹그로브 묘목을 식재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에서 맹그로브 숲을 조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맹그로브 서식 북방한계선이 계속 올라가면서 조만간 우리나라 남쪽에 맹그로브를 심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의 역설적 풍경이다. 현재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에 26종, 일본에 6종의 맹그로브가 서식하고 있다. 한국에 맹그로브가 살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온난화 추세가 계속되면 맹그로브 중에서 추위에 강한 종이 우리나라에 자리 잡을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지게 되고, 더불어 한국으로서는 지구온난화 대응의 선택지가 늘어나게 된다. 좋을 일일까. 우리나라 남쪽 갯벌에 맹그로브 숲이 조성된 이색 풍경을 만일 보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2023-07-2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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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비욘드 ESG] 기후 난민 '북극곰'에겐 시간이 없다 온실가스는 세계를 주유하며 편재하지만 기후변화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지구에서 가장 변화가 큰 곳은 북극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2006년 이래로 매년 발표하는 ‘북극 성적표(Arctic Report Card)’에 따르면 북극은 다른 지역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온난화하고 있다. 2020년 6월 북극권의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 마을 기온이 섭씨 38도를 기록해 북극 기온으로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 17일 2027년 안에 지구 표면 평균기온이 66% 확률로 1.5도 상승제한 목표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류 문명이 배출하는 탄소와 올해 말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엘니뇨로 그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1.5도’ 돌파는 지구 표면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오른다는 의미다. ‘1.5도’는 인류가 정한 지구온난화 저지선이다. ◆그롤라와 피즐리의 등장 기온 상승은 북극 생태계의 근간인 해빙 면적을 좌우한다. 해빙은 북극을 둘러싼 대륙 안쪽 바다의 최상층이 얼어붙은 것으로 북극 생태계뿐 아니라 지구의 기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해빙 면적은 얼음 농도가 15% 이상인 바다의 범위로 정의된다. 해빙은 북극권 해양 포유류를 대표하는 북극곰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그롤라 베어의 등장은 해빙이 줄어들면서 북극곰의 삶이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2006년 캐나다 북극권에서 그롤라가 처음 발견됐다. 인간에게 사냥당한 곰이 얼핏 북극곰인 줄 알았으나 뭔가 생김새가 달라 연구 대상이 됐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생명과학 회사 WGI에서 사냥으로 죽은 이 곰의 DNA 검사를 한 결과 암컷 북극곰과 수컷 회색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곰이었다. 캐나다 환경부의 야생동물 부서에서 일하는 연구원 이언 스털링은 이 혼혈 곰에다 그롤라 베어(grolar bear)라고 이름을 붙였다. 북극곰을 뜻하는 폴라(polar)와 회색곰을 뜻하는 그리즐리(grizzly)의 합성어다. 외관상 그롤라 베어는 북극곰과 회색곰 모두의 특징을 지녔다. 털은 전반적으로 흰색이지만 발 부분에 회색곰의 흔적인 회색 털이 섞여 있다. 몸 전반적인 모습과 크기는 북극곰에 가까우나 얼굴은 회색곰과 유사했다. 4년 뒤인 2010년에는 북극곰 수컷과 회색곰 암컷의 교배종인 피즐리 베어(pizzly bear)가 확인되었다. 참고로 이종교배의 작명은 아버지를 먼저 쓰는 가부장제 전통을 따른다. 그해에 미국 국립해양포유류연구소 소속 브렌든 켈리 연구팀은 <네이처>에 "기후변화로 생태계가 파괴됨에 따라 북극 해양 포유류 34개 종이 이종교배가 가능한 환경에 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34개 종에 당연히 북극곰과 회색곰이 들어 있다. 그롤라와 피즐리의 등장은 기후변화 때문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북극곰이 남하하고 회색곰이 북상하며 두 종의 서식지가 겹쳐 생긴 일이다. 초반에는 이러한 일이 예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지금은 일반적 사실이 되고 있다. 2014년 내셔널지오그래픽팀이 알래스카의 카크토비크 마을을 탐사하여 고래 뼈더미에 접근한 목적은 그롤라와 피즐리가 한 생물 종으로서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북극곰과 회색곰이 동시에 나타나며 그동안 보지 못한 생김새의 곰을 보았다는 마을 주민들의 전언이 관찰 카메라 촬영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국립해양포유류연구소 소속인 켈리는 북극의 이종교배종을 연구하면서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서식지의 벽이 허물어져 이례적인 종간 교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생태계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주지 소멸로 난민이 된 북극곰 북극곰 난민이 생긴 이유는 그들의 영토가 소멸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 해빙은 계절 순환에 따라 3월에 최대 면적을 보이고 봄과 여름에 얼음이 녹아 9월에 최소 면적이 된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에 따르면 9월 기준으로 해빙 면적이 1979년에 약 645만㎢였지만 2021년엔 413만㎢로 줄었다. 그사이 한반도 면적 10배 이상의 얼음이 증발했다. 빙설자료센터는 북극 해빙 넓이가 10년에 평균 13.1%씩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면적만이 문제가 아니다. 북극 해빙의 질을 평가하는 또 다른 중요한 지표는 얼음의 나이다. 바닷물이 얼어 형성되는 해빙은 겨울에 생겼다가 여름에 녹는 단년생 얼음과 한 번 이상 녹지 않고 여름을 지낸 다년생 얼음으로 나뉜다. 다년생 얼음이 두께 4m까지 이르는 반면 단년생 얼음은 가장 두꺼워도 그 절반 정도에 머물고 다년생 얼음보다 쉽게 녹는다. 다년생 얼음은 북극 해빙 면적과 질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다년생 얼음은 1985년 9월 440만㎢에서 2021년 9월 129만㎢로 감소했다. 만들어진 지 4년 이상인 두꺼운 얼음이 1985년 30.6%였으나 2021년에는 3.5%에 불과했다. 북극 해빙 대부분이 형성된 지 1년 미만인 얇은 얼음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국립기상과학원은 이에 따라 북극의 연평균 빙하량이 21세기 말에 현재 대비 최소 19%에서 최대 76%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여름에는 21세기 중반 이후 북극에서 얼음이 거의 소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소멸 시기가 더 이를 것으로 보는 연구도 있다. 북극 해빙의 소멸은 되먹임 효과를 가져와 북극과 지구 전체 기후에 심대한 파급효과를 초래하며 북극곰이란 생명종에게는 멸종의 길을 열게 된다. ◆멸종 시나리오 현재 북극에 북극곰이 수만 마리가 살고 있지만 21세기가 끝날 때 몇 마리가 살아남아 있을까. 해빙 시점이 점점 더 빨라지고, 얼음이 다시 어는 시점이 늦어지면서 북극곰이 남아 있는 얼음과 얼음 사이, 얼음과 육지 사이를 헤엄쳐 이동하는 거리가 늘어난다. 장거리 수영이 가능한 북극곰이지만 수영은 걷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쓰야 하고, 특히 새끼 북극곰에게는 큰 시련이 된다. 평소 바닷속에서 유영할 때 콧구멍을 닫아 물이 폐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만 북극곰은 어류가 아니어서 무한정으로 콧구멍을 닫고 바다를 이동할 수 없다. 이동 거리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먹이다. 북극곰의 사냥 전술은 바다 얼음에 나 있는 바다표범의 원뿔 모양 숨구멍 위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다가 바다표범이 숨을 쉬기 위해 숨구멍으로 떠오르면 앞발로 바다표범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는 것이다. 이어 바다표범의 목을 물어 다른 곳에 가서 먹는다. 북극 해빙이 녹으면 기존 사냥 전술을 버려야 한다. 북극곰의 생태를 관찰한 결과 바다 위 사냥터를 잃고 육지로 이동한 뒤에는 바다표범을 사냥할 기회가 거의 없어 굶주렸다. 몇몇 북극곰이 새알과 베리 같은 육지 음식을 먹지만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다 얼음이 계속해서 녹으며 북극에서 북극곰이 익사 또는 아사할 확률이 높아지면서 북극곰에게 알을 빼앗기는 흰기러기 같은 철새의 번식도 난관에 처한다. 얼음 감소와 함께 해수 온도 상승 또한 북극곰의 생존을 위협한다. 미국 플로리다공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팀이 2018년 5월 <네이처 기후변화>에 게재한 논문에서 온실가스 방출로 촉발된 바닷물 온도 상승이 2100년 안에 해양생물의 파멸적 손실과 해양 먹이사슬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는 21세기 말까지 바닷물이 평균 2.8도도 상승할 것으로 보이며 해양생물 중 상당수가 이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북극곰이 견디지 못하는 해양생물 중 하나에 해당함은 물론이다. ◆북극곰 없는 22세기 혹은 21세기? 지난 간빙기에도 북극곰과 회색곰의 교배가 있었다. 2009년 북극해 인근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브루노’라는 10만년 전 고대 북극곰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당시 북극곰과 회색곰 사이에 광범위한 교잡(hybridization)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현존하는 회색곰 유전자의 10%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고대 북극곰이 남겼으니 두 종간 교류가 얼마나 빈번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두 곰은 이후 다시 각자 삶으로 돌아가 각자 영역에서 독립된 종으로 살아왔다. 20세기까지는 그랬다. 북극 얼음이 사라진 다음에 그롤라와 피즐리란 형태로 북극곰의 유전자가 일부 전해질 수 있겠지만, 만일 어느 날 북극에 얼음이 돌아온다고 가정한다면 그때 북극곰을 다시 볼 수 있게 될까. 약 2만~4만년 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 멸종 전에 한동안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했으며 그 기간에 둘 사이에 자손을 남겼고, 그 유전자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으로 최근 연구 결과에서 확인된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간, 10만년 전 북극곰과 회색곰 간 만남은 서서히 시작돼 오래 지속되다가 천천히 끊어졌다. 지금 북극곰은 100년을 채 못 남기고 종의 생존 혹은 하다못해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가 결정될 듯하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 유전자의 4% 이하로 흔적을 남기고 종적을 감췄다. 북극곰은 회색곰에 10%가량 유전자를 남겨놓고는 다시 개별 종의 삶을 살았다. 이번에 북극곰이 처한 곤경은 지난번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어서 영토를 잃고 난민으로 지내다가 이전처럼 고토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우리는 남은 21세기 내내 북극해에서 북극곰이 헤엄치다 탈진해 빠져 죽고, 북극권 육지에서 굶어 죽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보게 될 것이다. 북극곰의 곤경이 북극곰에서 끝나지 않을 것임은 강조할 필요조차 없겠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2023-06-28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