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 교수
ph410@anu.ac.kr
-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회장
- 교수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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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의 함께꿈] 2024학년 수시 경쟁률로 본 지방대학의 현주소 [안상준 교수] 2024학년도 대학입시의 막이 올랐다. 지난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수시 입학원서 접수가 종료되었다. 대학입시는 분명히 대한민국 국민에게 최대의 관심사이지만, 수년 전부터 지방 소재 대학에 근무하는 구성원에게 대학입시 결과는 눈썹이 타들어갈 만큼 긴박한 문제로 부상했다. 학생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대학이 망할 지경이고 그에 따라 지방소멸의 가속화가 한층 우려되기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학령인구의 지속적인 감소와 지방 학생의 서울 집중 현상이라는 이중적인 요인으로 지방 소재 대학은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있는 와중에 올해 입시는 좀더 새롭게 다가온다.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 현 정부는 멋진 구호와 함께 지방대학의 관리 권한을 지자체에 이관하고, 미증유의 재정지원 정책으로 지방대학을 살리겠다고 공언했다. 물론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한 RISE체계(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도 글로컬대학30 선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정책의 효과가 입시에 바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기는 성급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캠퍼스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기에 정책의 비전과 효과가 수험생에게 전달되고 영향을 미칠지 궁금했고, 입시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입시 결과를 지켜보면서 일말의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서울권 대학의 평균 경쟁률이 17.79:1인 반면, 지방권 대학의 평균 경쟁률은 5.49:1로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수험생 1명이 6장의 원서를 쓰기에 6:1의 경쟁률에 미달하면 사실상 미충원의 수렁에 빠질 게 뻔하다. 그런 계산 아래 이미 지방대의 미충원은 기정사실이 되어간다. 지방 내에서도 격차가 존재하기에 그나마 전통적인 유명세를 보유한 대학을 제외하면 많은 대학이 미충원에 시달릴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대학이 어느 정도의 정원을 채우지 못할지 수시 원서접수 결과는 대략의 윤곽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 입시에서 글로컬대학30에 예비 선정된 대학의 수시 경쟁률이 매우 중요했다. 정부의 정책 대안이 앞으로 지방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설립유형에 따라 국립대와 사립대로 분리하여 경쟁률 분석과 해석을 진행해보니 다음과 같았다. 1 위 표는 국립대학 가운데 의과대학을 설치한 대형 국립대 9곳과 대체로 중소도시에 소재하고 의과대학이 없으며 규모가 작은 중소형 국립대 11곳의 2024학년도 수시 경쟁률을 집계했다. 올해 경쟁률의 추이를 살피기 위해 2022학년도와 2023학년도 지표를 병기했다. 그에 따르면 상기 20개 국립대 가운데 전년도보다 경쟁률이 오른 대학은 3개에 불과하다. 국립한밭대는 3년째 조금씩 상승하는 추세로서 지방대의 특이한 사례로 보이며, 충남대와 국립한국교통대는 전년도에 상대적으로 큰 하락을 겪고 난 후 눈에 띄게 반등하는 점이 이례적이다. 세 대학의 상승은 개별적인 현상일 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미약해 보인다. 세 대학의 상승에 반해서 나머지 국립대의 경쟁률은 모두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대부분의 대학이 3년째 조금씩 하강하는 추세가 단연 눈에 띈다. 부산대는 2022학년도 국립대 전체에서 경쟁률 선두를 유지하다가 작년에 소폭 하락에 이어 올해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충북대, 국립안동대, 국립금오공대 등 다수의 대학이 해마다 뚝뚝 떨어져 이제는 4:1에도 미치지 못해 미충원이 확실한 상황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국립대 가운데 다수의 대학이 실질적인 미달에 해당하는 6:1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대형 국립대 가운데는 경상국립대와 제주대, 중소형 국립대 가운데는 국립공주대, 국립부경대, 국립한밭대를 제외하곤 모두 이에 해당된다. 이미 중소형 국립대 가운데 여러 대학(국립목포대, 국립군산대, 국립순천대, 국립강릉원주대, 국립안동대 등)이 2021년부터 미충원을 탈피하지 못하는 터에, 경쟁률이 더 하락함으로써 미충원의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 상당히 우려스럽다. 사실 이번 수시 전형을 시작하면서 글로컬대학 30에 예비 선정된 대학의 경쟁률 추이에 관심이 쏠렸다. 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원이 지방대의 생존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기에 과연 이 점이 수험생의 대학 선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비 선정 명단에 오른 국립대(*로 표시함) 가운데 경쟁률이 오른 대학은 단 두 곳, 즉 경상국립대와 국립한국교통대뿐이다. 경상국립대의 상승은 아주 미미하고 국립한국교통대가 약간의 도약을 보이지만, 예비 선정 대학의 프리미엄이라고 보기에는 어색하다. 따라서 지방대학에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지원한다고 해도 수험생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해 미충원의 규모가 커지면 엄청난 부조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재정지원 이후에 학생의 선택이 달라질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지방대학의 생존과 발전을 위하여 재정지원을 넘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위 표는 글로컬대학 30 예비 선정 대학과 필자가 임의로 선별한 권역의 주요 대학들의 2024학년 수시 경쟁률을 보여준다. 앞서 국립대에서 살펴봤듯이, 글로컬대학 30에 예비 선정된 사립대의 수시 경쟁률은 선정 가능성과 별개로 대체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6개 대학 중 4곳이 하락했고 2곳이 상승한 가운데, 한림대의 상승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고 순천향대의 상승이 눈에 띄지만 작년의 급강하를 만회하는 반등의 의미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동대를 제외하고 예비 선정된 대학에는 의과대학이 있어 한층 강화된 의과대학 진학 열풍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한편, 수도권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세 대학(한림대, 순천향대, 연세대 미래캠)이 6:1이 넘어 안정권을 보이지만 수도권에서 상당히 떨어진 세 대학(울산대, 인제대, 한동대)는 4:1도 넘지 못하는 약세여서 실질적인 미충원이 예상된다. 이 현상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글로컬대학30이 재정지원을 넘어 근본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한, 지방대의 학생 충원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견된다. 지방 사립대학의 2024학년도 수시 접수 결과는 전체적으로 약보합세로 판정할 수 있다. 작년보다 학령인구 감소폭이 커지고 수험생 수가 최초로 40만명 이하로 떨어지는 해라는 암울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수시 경쟁률 하락폭은 예상보다 크지 않다. 물론 각 권역에서 대표격인 사립대학임에도 영남대가 6.09:1을 기록하여 가까스로 미충원의 우려를 벗어날 뿐, 나머지 대학은 모두 미충원에 시달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동서대처럼 하락폭이 매우 큰 대학은 지방 사립대의 미래를 예고하는 것 같아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 국립대와 사립대를 막론하고 지방대 전체를 통틀어서 공과계열 학과 전반과 특히 첨단기술 분야 학과가 경쟁률 하락을 견인하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러운 요소다. 예를 들어 경북 지역의 국립안동대와 국립금오공대를 살펴보자. 국립금오공대는 표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2022학년도에 6:1에 가까운 경쟁률을 보였지만, 올해 들어서는 4:1에도 미치지 못함으로써 구미 국가산업단지를 끼고 있는 입지를 고려할 때 자존심을 구겼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국가산업단지의 규모와 영향력이 계속 줄고 있는 최근의 상황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또한 국립안동대의 경우 공과대학 14개 학과 중 6:1을 넘는 학과가 단 하나도 없고, 3:1에도 이르지 못해 대규모 미충원이 예상되는 학과는 무려 9개에 달한다. 이런 경향은 국립목포대나 국립순천대 같은 중소형 국립대학에서도 대동소이하게 나타난다. 나아가 기술혁신과 융복합을 반영하여 학과 명칭을 새로이 짓거나 바꾼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첨단’, ‘융복합’, ‘AI’가 명칭에 들어간 학과들은 2:1을 넘기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첫째, 지방의 제조업 기반 약화와 특히 중소도시 학생의 탈지역 흐름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구미의 사례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의 지방 산업단지가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지역민의 삶에 기여하는 정도가 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가능하면 수도권으로 이동하여 내일을 준비하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둘째, 지방대학에 오는 학생의 학습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기초적인 수학 능력을 갖춰야 공학적인 이론과 실제를 습득할 수 있지만 많은 학생들은 이를 상당히 버거워한다. 게다가 첨단과 융복합 등 새로운 기술에 대한 두려움은 이와 연관된 학과명을 멀리하는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지방대 소멸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지방대 스스로 이를 극복하고자 몸부림치기도 한다. 국립군산대, 국립목포대, 국립안동대, 국립순천대 등 중소형 국립대학은 최근 몇 년 새 나름의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모두 4:1의 경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수시 결과를 받아들었다. 자체적인 변신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얘기다. 사립대학 역시 이 점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대로 간다면 모두 지방대라는 이름으로 휩쓸려 내려갈 운명이다. 문제 해결의 요체는 학령인구 감소다. 그에 따라 대학의 규모도 줄여야 하는 건 당연하다. 무엇보다 효율적인 감축이 중요하다. 대학 간 적극적 통폐합과 캠퍼스 특성화를 통한 전향적 변신은 분명히 앞서 언급한 학내 구조조정이나 외형적 변모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상북도의 두 국립대 안동대와 금오공대를 살펴보자. 인문학을 모태로 성장한 안동대의 공과대학을 금오공대로 넘겨 공학 특성화 캠퍼스를 구미에 조성하고 안동대 캠퍼스를 인문학, 생명과학 및 지역사회에 필수적인 학과들로 특성화하는 한편, 도청 신도시에 평생교육을 중심으로 새로운 캠퍼스를 조성하면 경북 유일의 대학이자 신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로컬대학30을 계기로 두 대학을 통합할 절호의 기회가 있었으나 서로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해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결과에 따라서는 양측이 두고두고 후회할 수도 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유사하리라 본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멀리 내다보는 혜안이 없으면 지방대학은 모두 소멸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지만, 국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조용하다. 대학과 지자체에 권한과 재정을 이관하는 것으로 제 할 일 다 했다는 식이다. 대학의 변신과 대학 간 통합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나아가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국가균형발전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실현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전제가 국가균형발전이고, 대학이 국가균형발전의 거점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길 바란다.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전) 한국중세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2023-09-26 1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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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의 함께꿈] '정국 뇌관' 대한민국 교육 현장 [안상준 교수] 교육 현장에 쓰나미가 밀려온다. 한여름 무더위가 휘감은 거리에서 교원의 성난 목소리가 거리를 뒤덮는다. 대학가에는 소멸의 공포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며 교수들의 한숨과 체념이 하염없이 늘어진다. 느닷없이 수능 출제의 기조 변경에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과 공포는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올 하반기는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아우성이 정치 이슈를 뒤덮고 내년 총선에 커다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 뚜렷하다. 기나긴 무더위를 보내고 맞는 9월은 새로운 시작이다. 각급 학교는 2학기를 맞고, 여의도에는 정치의 계절이 도래한다. 그 출발점에 ‘9·4 교육공동체 회복의 날’ 집회가 여의도에서 열릴 예정이다. 현재까지 교원 6만여 명이 연가와 재량휴업을 활용하여 7월 18일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서이초 교사 49재에 참가할 뜻을 밝혔다. 세종시교육감(최교진)과 서울시교육감(조희연)은 공개적으로 지지와 동참 의사를 표명하며 학교 구성원의 관계 회복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했다. 이에 대해 교육당국은 9·4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예의 그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분하겠다고 경고와 협박을 표명했다. 지금까지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 대한 교육 당국과 수사 당국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고, 교실 붕괴 방지를 위하여 거리에서 외치는 교원의 요청에 대한 교육부와 정치권 반응은 여전히 미지근하다. 교육 당국의 경고와 협박에도 타오르는 교원의 적극적인 투쟁 의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권의 재정립이다. 그것은 교사의 권위 회복이기도 하고, 교사의 가르칠 권리 회복이기도 하다. 교실은 가르치는 자(교사)와 배우는 자(학생)의 교감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고 인격을 형성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의 질서는 구성원의 언어적 소통과 공동체적 협력에 기초하여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도덕적·지적 권위는 학생과 학부모에 의해 도전받지 않아야 하며, 학생의 배울 권리와 인격적 대우를 받은 권리는 훼손될 수 없다. 한때 학교는 체벌과 폭력의 현장이었고, 예나 지금이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고 항변하며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내몰리는 학생들은 적지 않다. 경제적 풍요, 교사의 자질 향상, 교육 환경 개선 등 교육 여건이 눈에 띄게 나아지는 가운데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상당히 개선되었다. 교육 재정의 획기적인 확충과 사립학교 교원의 인건비 지출 등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나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대표적인 성과다. 하지만 제반 요소의 향상과 개선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은 여전히 ‘승자 독식의 교육관’에 눌려 신음하는 중이다. 공부를 잘하면 모든 것이 허용되고, 일류 대학 진학이 사회적 성취로 이어지는 등 학업 성적으로 학생을 줄 세우고 대학 입시 성과로 교사의 능력을 측정하는 사회에서 상호 소통하는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관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른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라는 과도한 반응도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교사들의 소망은 소박하다. ‘가르치는 본업’에 전념하는 것이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애정을 갖고 가르치는지,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지’ 학생들은 직감한다. 그리고 대다수 교사에게는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들은 날마다 학생을 관리하고 학부모와 상담하고 성적과 사무를 처리하는 업무에 지쳐 있다. 최선을 다해 가르치기 위하여 교안 작성에 공을 들이고 학생과 교감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교사든 교수든 학생들과 지적 대화를 나누고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질 때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기는 매일반이다. 따라서 교육 당국의 최우선 과제는 학생 관리를 포함한 교사의 행정업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교사가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가르치는 능력 향상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9월이면 대학가에는 개강의 신선한 바람이 분다. 방학을 마치고 다시 보는 학생들의 면면에는 무더위 속에 영근 모습이 비친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대학가를 휘감는 소멸의 바람이 이번 학기부터는 더욱 스산하게 불어닥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이 바람의 진원지는 교육부라는 점에서 저항의 맞바람 또한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컬대학30’ 사업 선정이 눈앞에 다가왔다. 예비 선정된 15개 사업단은 10월 6일까지 본 선정을 위한 시행계획서를 제출하고, 본 선정 결과는 10월 말에 발표될 예정이다. 10월이면 수시 입학 전형이 시작되고 경쟁률이 드러나는 때라는 점에서 발표 시기가 상당히 미묘하게 다가온다. 교육부는 글로컬대학 선정이 ‘지역과 대학이 탄탄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동반 성장을 하도록 지역과 연계한 대학의 혁신을 집중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표방한다. 그러나 대학들은 본 사업이 오히려 대학의 무한 경쟁체제를 유도하고 비수도권의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사업은 선정 기준으로 제시된 학과 간, 대학과 지역‧산업 간, 국내외 간 벽 허물기를 제시한다. ‘지역과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경쟁, 교육 수요자 의견 중시, 교육‧연구의 질 제고를 위한 경쟁 촉진, 획일적인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는 효과’를 그 근거로 내세운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자연적 요인과 대학 서열화와 수도권 대학 쏠림이라는 사회적 요인으로 소멸의 위기를 맞은 비수도권 대학을 살리는 대책으로 다시 경쟁 구도를 조성하여 살아남으라는 요구와 다름없다. 본질적으로 대학 구조조정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그런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6월 하순에 발표한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은 대학의 단위로서 학과 또는 학부의 설치 원칙을 철폐한다. 이제 대학은 융합학과(전공) 신설이나 자유전공 운영, 학생 통합 선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 조직을 자유롭게 구성·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제부터 대학에 무자비한 학생 유치 경쟁, 전공 존치 경쟁, 재원 분배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고장이나 다름없다. 치열한 경쟁 속에 교육과 연구를 비롯한 대학의 본원적 기능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시행령 개정안은 학교 밖 수업도 허용하고 있다. 이제 학교 밖에서 이동수업과 협동수업이 가능해진다. 특히 협동수업은 정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학생의 현장 실무지식 습득을 위한 목적으로 산업체·연구기관 등과 맺은 협약에 따라 해당 기관이 보유한 시설·장비·인력을 활용하여 학교 밖 장소에서 실시하며, 학점 인정 범위는 졸업학점 중 4분의 1까지 확대된다. 이는 대학이 고급 지식을 생산하는 고등교육기관보다는 기업을 위한 취업 준비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교육부는 대학 자율이라는 허울을 쓰고 국가 재정으로 기업의 인재 양성을 위한 통로를 마련한 셈이다. 한국 대학에서 고급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 기능은 사치다. 나아가 취업과 연계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기초과학, 인문학, 예술 분야는 대학에서 지위를 유지하기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릴 게 뻔하다. 고등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큰 그림 없이 즉흥적이고 폭력적인 구조조정이 라이즈 체계와 글로컬대학이라는 미명 아래 펼쳐진다. 지역의 사립대나 중소 도시의 국립대가 소멸의 늪으로 빠지는 상황을 대학의 구성원과 지역 주민은 그대로 두고 볼지 주목되는 지점이다. 11월 16일에 치를 수능은 교육 현장에 대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대통령의 킬러 문항 언급 이후 신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킬러 문항 배제를 공식적으로 단언했다. 신임 원장은 교사 출신으로서 장학관을 거쳐 교육부 관료를 지낸 바 있다. 대통령 지시를 충실히 이행할 임무를 띠고 평가원장으로 낙점된 인물로 볼 수 있다. 킬러 문항이 사라지면 수능 난이도는 어떻게 변할까? 교육부의 바람대로 적정한 난이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사실 적정한 난이도라는 표현이 매우 모호하다.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풀 수 있는 문제를 내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르면 당연히 난이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예측은 이미 재수생의증가를 불러왔다. 대학에 다니는 이른바 반수생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는 고학력자들이 의대 진학의 꿈을 다시 지피고 있다는 소문이 횡행한다. 그렇다면 고3 학생들 관점에서 난데없이 경쟁자가 늘어난 셈이다. 당락에 따라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대통령을 원망할 요인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적정한 난이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예년처럼 불수능 평가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출제에 동원된 모든 인원은 조사와 수사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출제진으로 참가한 교수와 교사가 초유의 상황에서 적정한 난이도를 어떻게 상정할지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가 예상된다. 그런 예상을 한다면 출제진 확보 자체가 어려운 난감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훌륭한 출제진 구성은 수능의 성패를 좌우하는 제1요소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평가원의 고충이 그 어느 때보다 크리라고 여겨진다. 어떤 경우든 이번 수능은 당사자들에게 매우 어려운 난제가 되었고, 결과에 따라 휘발성 강한 이슈로 터질 우려가 있다. 교원의 분노, 대학의 소멸 우려,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 2023년 하반기 교육 현장과 정치권을 강타하리라고 예상되는 세 가지 요인을 검토하면서 교육 문제의 근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성적지상주의와 입시, 대학 서열화, 지방과 중앙의 격차 심화, 각자도생의 사회 분위기 등 교육 현장의 병폐들이 집약되어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으로 지친 구성원들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 무한경쟁에 던지기 싫고 무한경쟁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도 버겁다는 청년의 아우성이 궁극적으로 국가 소멸의 우려를 낳고 있다. 문제의 출발점은 무한경쟁의 해소이고 입시에 종속된 교육의 해방에 있다. 이제 교육 당국과 국민 모두에게 대안적 사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경쟁 교육에서 전인 교육으로 교육의 지향점이 바뀌어야 한다. 최근 방영된 ‘EBS 세계의 교육’ 시리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1등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 나아가 교육의 관리체계가 통제시스템에서 자율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은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위주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은 국가의 의무로서 효율성 원칙에서 보충성 원칙으로 나아가야 마땅하다. 우리나라는 교육에 투여되는 공공재정의 비율이 높지 않다. 특히 고등교육은 OECD 국가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러고도 대학 혁신을 외치는 모양새가 무모하게 다가온다. 진정한 글로컬대학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 과시적 성과보다 근본적 해결을 위해 함께 이마를 맞대야 할 때다.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근간)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2023-08-29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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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의 함께꿈] 극우화하는 유럽 정치 …드리우는 전쟁의 그림자 [안상준 교수] 2015년 여름 학생들을 인솔하여 동유럽 현장학습을 다닐 때였다.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때 켈로티 역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를 보며 난생 처음 마주친 생경한 광경에 당혹스러웠다.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유로 자국을 버리고 서유럽 국가로 망명하려는 난민들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다. 뉴스에서 듣던 난민의 실체를 착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면서 이주, 국적 그리고 평화 등 인간의 생존과 그 가치를 곱씹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영화 ‘스위머스’(The Swimmers)를 감상하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는 무작정 고무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 땅으로 향하는 난민의 실태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가운데, 천신만고 끝에 베를린 난민촌에 들어간 시리아 수영선수 출신 자매가 각고의 훈련 끝에 IOC ‘난민대표선수단’으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참가하는 스토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당시 독일 총리 메르켈의 적극적인 난민 수용 정책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홍보하려는 의도도 다분히 깔려 있다고 느껴졌다. 현재, 여전히 지중해의 파도는 난민의 생명을 집어삼키기 일쑤고 유럽 각국은 이주민 정책으로 쉽게 내홍에 휘둘린다. 바로 지난 7월 초 네덜란드 연정의 내각이 총사퇴를 결정했다. 연정 붕괴의 발단은 난민 정책에 대한 이견이었다. “전쟁 난민 가족들의 입국을 매달 최대 200명으로 제한하고 전쟁 난민들이 자녀를 데려올 경우 최소 2년을 기다리도록 하겠다.” 중도우파 보수 정당 ‘자유민주인민당’을 이끌며 14년째 총리직을 수행하는 마르크 뤼터가 내놓은 고육지책으로, 난민 수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가능한 한 가족의 입국은 보류하자는 방안이었다. 연정의 파트너 중도좌파 정당 ‘민주주의66’은 이러한 반인륜적인 난민 정책에 강력히 반발했고 연정은 붕괴했다. 사실 이 뉴스를 접하고 ‘네덜란드 너마저!’ 하는 생각에 실망스러웠다. 강소국 네덜란드가 어떤 나라인가? 필자가 아는 한 네덜란드는 유럽, 아니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국가에 속한다. 16~17세기 전 유럽을 광기와 전쟁으로 몰아넣은 종교개혁의 소용돌이에서 박해받는 신앙인들의 종착역은 네덜란드였다. 그만큼 네덜란드는 개방과 관용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 국가였다.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포용은 근대 초기 이래 네덜란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그런 네덜란드마저 난민에 대하여 점점 제한적인 수용으로 선회하는 상황은 유럽이 난민 수용의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신호로 읽혔다. 뤼터 제안의 문제는 극우파의 논리를 보수 집권여당이 정책에 차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는 네덜란드 국민의 상당수가 이민자 수용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민에 관한 강경책이 극우 정당이 이민에 관한 담론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 성격을 띠었다고 분석했다. 최근 독일의 정치적 상황 변동은 더욱 우려스럽다. 전임 총리 메르켈의 난민 수용 정책에 반발하는 극우 세력의 준동이 심상치 않아, 이러다가 극우 정권의 성립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섬뜩할 정도이다. 실제로 지난달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후보들이 시장으로 선출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바로 작센-안할트주 라군에스니츠 시와 튀링엔주 존넨베르크 시로, 모두 과거 동독 지역에 위치한 소도시들이다. 통일 이후 2등시민의 불만을 꾸준히 표출한 동독 지역 주민들이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은 10년 전 창당 초기부터 예상 밖의 인기를 얻었는데, 세계 경제의 위기와 그로 인한 실업률 증가라는 상황이 극우가 성장할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방의회와 연방의회를 넘어 이미 유럽의회에도 진출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치 정권의 퇴출 이후 독일 정치에서 극우 성향 시장의 등장은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이 분명하다. 또한, 최근 여론조사는 이런 변화에 대한 우려를 실증적으로 반영한다. 극우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집권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음 일요일에 총선이 치러진다면’ (Polit Barometer)] SPD(사회민주당, 중도좌파, 현 집권당) CDU/CSU(기민련 =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 중도우파) Grüne(녹색당, 중도좌파, 연정 참여) FDP(자유민주당, 중도우파, 연정 참여) AfD(독일을 위한 대안, 극우 정당) Linke(좌파당, 좌파 정당) Andere(기타 소수 정당을 통칭)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을 위한 대안’은 20%를 얻어 아직 집권까지는 부족하지만 제1야당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중도우파 보수당 기민련이 여전히 1당의 지지세를 획득한 가운데, 현 집권 여당 사민당의 지지세는 3위에 그쳐 초라하기 그지없다. 녹색당이 분전하는 모습이지만, 극우 정당의 약진을 저지할 정도의 지지는 받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중도좌파와 좌파가 인기를 잃는 만큼 극우 정당의 지지가 확대되는 추세가 역력하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난민 정책의 반동으로 보수 연정이 붕괴하고 극우적 성향의 정치세력이 약진하는 현상은 다른 나라들의 극우파 득세와 더불어 유럽 정치 지형의 전반적인 극우화 경향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00년 만에 도래한 이탈리아 극우 정당의 집권, 프랑스 극우 정당의 괄목할 만한 의회 진출, 대표적인 북유럽의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극우 정당의 제2당 지위 확보 등 주요 국가에서 극우 세력의 선전은 개별 국가의 차원을 넘어 범유럽적이다. 그래서 차기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파가 어느 정도 약진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지난 6월 하순 프랑스에서는 알제리계 10대 소년이 검문 중에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고, 7월 초순까지 낭테르 지역을 비롯한 전국에서 이주민의 폭력적인 항의 시위가 전개되었다. 검문 과정에서 이미 프랑스 경찰은 소년에게 위협을 가했고, 소년의 저항은 곧바로 총격으로 이어졌다. 2005년 경찰의 추격에 쫓기던 두 청년이 철조망을 타고 넘다가 감전사를 당한 사건과 판박이다. 물론 이로 인해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고, 시위대의 구호에서도 이는 감지된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프랑스인이 될 수 없다!’ 그들은 프랑스 사회를 청소하고 물건을 배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프랑스 정부가 이주를 허가한 과거 프랑스 식민지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주민들이었다. 이번 시위로 극우파 대선 후보 마린 르펜의 인기는 더욱 치솟고 있다. 여론의 추이를 보면 그는 이미 대통령이 되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차마 자기 손으로 극우 대통령을 찍을 수 없었던 프랑스 국민의 양심(?)은 어쩔 수 없이 마크롱을 선택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 마크롱은 철저하게 친기업 반서민 정책으로 국민을 우롱했다. 중도우파도 중도좌파도 몰락한 프랑스 유권자의 표심에 주목하는 이유다. 유럽 정치 지형의 극우화는 전쟁의 위험이 서서히 다가온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지속되는 경제위기, 장기적인 실업률 증가,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적인 삶의 질 저하는 중산층의 붕괴를 초래하고 분노와 혐오는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다.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20세기 초반 인류의 재앙이 다시 도래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 1차 세계대전은 흔히 제국주의 전쟁으로 불린다. 유럽의 열강이 제국주의를 본격적으로 실천하며 식민지 개척에 나선 시점은 바로 독일통일 직후인 ‘1873년 공황’기였다. 비스마르크는 동맹체제로 신생 독일제국에 다가오는 전쟁을 막았지만, 마침내 독일이 제국주의 경쟁에 뛰어들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1900년 전후 유럽의 근대화와 번영을 가리키는 ‘벨 에포크(Belle Epoque: 좋은 시절)’는 외적으로는 열강의 식민지 경영과 세계 분할, 내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혁명의 열기를 동반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1차 대전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총력전이었다. 전쟁은 무려 4년을 끌었고 1000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20년 뒤 극우 전체주의자들은 전 인류를 또다시 전쟁의 참화로 끌어들였다. 이번에는 6년 동안 7000만명이 희생되었다. 그 근저에는 세계 경제의 파탄, 개인의 생존 위기, 불평등과 사회적 원한이 도사리고, 이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으로 전쟁을 감행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우민화가 뒤따랐다. 그렇게 나치가 탄생했고, 인류 최악의 전쟁범죄가 벌어졌다. 쿼바디스(Quo vadis)? 지난 세기의 역사를 되새기며 묻는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근간)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2023-07-2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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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의 함께꿈] 킬러문항도, 5지선다형도 아니라면 [안상준 교수]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를 내면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통속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이권 카르텔은 교육 질서를 왜곡하고, 학생들이 같은 출발선에서 공정한 기회를 제공받는 것을 저해한다." 지난 6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 관련하여 발언한 진술의 일부이다. 가히 파격적이고 예측 불허다. 그래서 수능 당사자들은 불안과 혼란을 호소한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수험생들은 레이스가 흐트러질까 불안해하고, 학부모들은 자녀의 입시 결과에 악영향이 미칠까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일선 교사들의 난감한 표정과 학원 강사가 지을 의문의 미소마저 떠오른다. 모두가 느닷없는 평지풍파에 당황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의 돌출 발언에 여론의 반응이 예상 밖으로 커지자 이미 희생양이 발생했다. 수능 업무를 담당하는 교육부의 국장이 경질되었고,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게다가 여당은 대통령의 진의를 옹호하며 킬러문항을 비난하고 사교육 업계의 일타강사 때리기에 나섰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상황이 도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이런 험악한 분위기에서 혹여라도 출제 난이도 때문에 검찰의 조사를 받는 시나리오를 제기하며 과연 올해 수능을 무난하게 치러낼 수 있을지 우려한다. 수능은 대학 진학의 관문이다. 대학마다 수시 전형의 비중이 높아졌어도 학력 측정의 척도로서 수능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특히 상위권 학생의 실력을 변별하는 출제 난이도는 수능의 효능감을 과시하는 요소이면서 출제 오류의 원인이 되곤 한다. 2022학년도 수능이 끝난 후 평가원은 생명과학II 문항의 정답 오류 시비에 휘말렸다. 당시 평가원은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아도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다시 말해서 ‘문항은 틀렸지만, 오류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견 모순된 태도로 맞섰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출제자는 수험생들이 논리성·합리성을 갖춘 풀이 방법을 수립해 문제 해결을 시도할 경우, 정답을 고를 수 있도록 문제를 구성해야 한다. 문제의 오류로 인해 정답을 선택할 수 없게 됐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수능의 변별력과 킬러문항의 등장이다. 변별력은 공부 잘하는 수험생과 그렇지 못한 수험생의 실력차를 정확히 구별하는 척도를 말한다. 시험의 난이도와 변별력은 비례한다. 그런데 수능은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이다. 100점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몇 명이 100점을 맞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다수가 100점을 맞는 복잡한 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킬러문항이 등장한다. 즉 공부를 잘해도 틀려야 하는 문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가원은 ‘변별’을 수능의 중요한 덕목으로 보고, 국민이 바라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대체로 불수능 기조를 유지하는 추세이다. 변별력을 기초로 수능의 공정성은 절대적인 가치로 승화했다. 경제력의 격차, 기회의 차별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수시와는 달리 공정성 시비 없이 수험생을 줄 세우려면 시험이 가급적 어려워야 한다. 이것이 교육의 원칙이 되고 국민은 큰 저항 없이 수용했다. 교육과정은 입시를 위하여 존재하고, 교육목표는 입시 성과로 귀결된다. 그 결과, 학력과 학벌이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학벌사회가 탄생했고, 공부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것이 오늘날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대통령의 돌발적인 수능 발언은 교육개혁의 시발점일까 아니면 교육부 장관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나온 즉흥적인 제안일까? 교육과정과 수능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어느 정도일까? 수능의 초고난도 킬러문항을 질책하면서 대통령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의 출제의 예로 국어의 비문학 복합지문을 콕 집어 지적했다. 그런데 현행 교육과정은 핵심 목표로서 '지식 정보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기반 마련'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미 학교는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의 벽을 허물어 융합 교과 수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문과와 이과를 통합하는 취지도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심지어 대통령은 학과의 벽을 허무는 대학에게 전폭적으로 지원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교육정책에서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인식과 지시가 반복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미래인재 양성을 표방하면서 이명박 정부 시절의 전수평가를 도입하고, 공교육의 정상화를 내세우면서 특목고 폐지를 번복하는 정책의 상충이 다반사다. 그날 대통령의 발언은 준비되고 다듬어진 정책의 지시라기보다 즉흥적인 대응으로 보인다. 문제는 만기친람 스타일의 대통령이 즉흥적인 사안을 불쑥 지적하고 지시하는 행태가 교육 분야에서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경제를 위한 교육의 쓸모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도구적 교육관이 빚는 반복된 현상으로 이미 지난해 반도체학과 설립 지시에서도 드러났다. 대학 입시는 교육과정 평가의 한 단계에 불과하지만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사안이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대학입시 개편이 얼마나 어려운지 윤석열 대통령은 과소평가한 게 틀림없다. 수능은 일종의 늪이다. 준비 없이 내딛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무한경쟁을 조장하는 줄 세우기식 상대평가를 없애고 수능을 포함하여 절대평가 체제로 전환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입시개혁이 뜨자마자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어 김상곤 교육부 장관 겸 초대 사회부총리는 교육개혁의 첫발도 떼지 못하고 맥없이 물러났다. 이번 논란으로 대통령과 여당에게 밀려올 파고가 서핑을 즐길 정도의 수준일지 아니면 쓰나미가 되어 모든 걸 휩쓸어 갈지 자못 궁금하다. 이 가이드라인이 대략 50만 수험생의 인생을 좌우하는 변수로 작용하고, 그로 인하여 수험생의 반발이 터져 나오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통령이 직접 발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능의 난이도와 사교육비 감경 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챙길 사안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마치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에 대하여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설전을 벌임으로써 외교문제가 더욱 복잡미묘해지는 것처럼, 교육 내적인 문제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는 전문가와 교육부 관료에게 맡기는 게 타당해 보인다. 그보다 큰 틀에서 거시적인 관점으로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해결할 문제는 따로 있다. 수능으로 가는 ‘교육지옥’에서 학생과 학교를 구해내는 임무다. 대한민국 초·중등 학생은 시험의 굴레에서 시들기 일쑤이고, 획일적인 교육과정 때문에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몸에 익히지 못한다. 5지선다형 찍기 교육으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증강현실 등 최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상품으로 만들 인재의 육성은 요원하다. 교육방식의 다양화와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교육목표의 설정이 시급하다. 식민지 시대부터 지속되는 공급자 위주에서 교육 수요자 위주로 교육의 관점이 전환되어야 한다. 수능은 공정한 잣대를 핑계 삼아 교육 수요자를 객체로 전락시키는 도구로 작동한다. 교육 수요자의 사고 능력이나 전인적 인격과는 전혀 무관한, 타인의 성적에 따라 나의 지적 능력과 심지어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비인간적인 방식이라는 말이다. 2019년 11월 한국교육개발원은 대학 입시 제도의 개편을 모색하면서 주요 국가들의 최근 입시제도를 소개한 바 있다. 전반적인 흐름은 획일적인 평가를 벗어나 다면적인 평가를 강화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독일과 프랑스처럼 교육의 공공성이 확립된 국가는 누구나 원하면 대학에서 공부할 권리를 보장한다. 학문의 성격상 입학 인원 제한이 불가피한 일부 학과(의학과, 심리학과, 법학과 등)의 경우에 제한하여 경쟁 입시가 치러진다. 미국, 일본, 중국도 예외 없이 다원화하고 차원이 다른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학생의 수학능력을 다면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날한시에 5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으로 학생의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무모한 방식을 재고하고, 국가적 과제로서 수시 전형의 공정성 담보 및 한국형 다면평가의 방식 도입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지식영역을 넘보는 시대가 도래하여 인간에게 남겨진 분야가 무엇인지 우리는 냉정하게 분별할 시점에 와 있다. 모든 전문가는 창의력과 철학의 영역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 맥락에서 올해 치른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의 문항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1. 행복은 이성(理性)이 관계된 영역인가? 2. 평화를 원한다는 것은 정의를 원하는 것이기도 한가? 3. 제시된 레비 스트로스(프랑스의 인류학자, 구조주의자)의 <야성의 사고> 중 한 대목을 읽고 분석하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에게 묻는 문제로서 참으로 품격이 있다. 위 문항 중 하나를 골라 4시간 고민하고 답안을 작성하는 수험생을 생각해보라. 대통령의 돌출 발언이 논란이 된 지 5일 만에 이주호 장관은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공정 수능이 되도록 공교육 과정 내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를 배제하고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출제기법을 고도화해 출제진이 충실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 점검을 하는 등 교육부 수장으로 모든 가능한 지원을 하겠다.” 대통령의 의지가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봐야 5지선다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미네르바대학, 태재대학 등 캠퍼스 없이 세계 각지를 옮겨다니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신개념의 대학을 논의하는 세상이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인간은 우주로 여행하는 시대를 꿈꾸고 있다. 수능의 공정성과 문항의 난이도를 놓고 여론이 들썩일 때가 아니다. 우연히도 대통령의 킬러문항 발언 덕에 본격적으로 수능 개편을 논의할 시점이 찾아왔다. 역사는 예기치 않게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필진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근간)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2023-06-27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