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논설고문gjgu7749@ajunews.com
- 아주경제 논설고문
- (전)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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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의 지피지기] '우주夢' 쏘아 올리는 중국 중국 무인 달 탐사선 '창어 5호' 귀환 지켜보는 기술진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중국 수도 베이징에 있는 '베이징 우주비행 통제센터'(BACC) 기술진이 17일(현지시간) 대형 모니터를 통해 달 표면 샘플을 실은 무인 달 탐사선 창어(嫦娥) 5호의 지구 귀환을 지켜보고 있다. 창어 5호의 귀환 캡슐은 이날 중국 북부 네이멍구 자치구의 초원지대인 쓰쩌왕에 무사히 착륙했다. 2020년 12월 17일 우리의 신문과 방송들은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싸움으로 지면과 화면을 뒤덮었다. 대부분의 조간신문들은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전대미문의 징계가 16일 새벽 4시에 ‘정직 2개월’로 결정난 사실을 1면 왼쪽에서 오른쪽 끝까지 꽉 채우는 배너 제목을 달았다. 이로부터 14시간30분 뒤인 오후 6시30분 문재인 대통령이 재가해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 자정부터 2개월간 직무가 정지됐다. 이날 한국시각 새벽 2시59분(중국시각 1시59분) 동경 111° 26′ 20″, 북위 42° 20′ 19″ 중국 북동부 내몽고 초원에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달 표면에서 암석과 토양 샘플 1.7㎏을 채취하고 돌아온 창어(孀娥) 5호가 성공적으로 착륙했다. 14억 중국인들 대부분은 TV생중계로 창어5호가 달에서 지구로 돌아와 땅에 착륙한 순간 환호를 올렸다. 중국 국내정치와 이념 문제 이외에는 잘 싣지 않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17일 아침 창어5호가 오성홍기(五星紅旗)와 함께 내몽고 초원에 착륙한 컬러 사진을 커다랗게 싣고, “창어5호가 우리 중국 역사상 최초로 지구 밖 천체의 샘플을 채취하고 돌아왔다”는 제목을 달았다. ‘창어(孀娥)’는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미녀의 이름이다. 서한(西漢) 때 씌어진 ‘회남자(淮南子)’에 따르면, 중국 최초의 전설상 지배자였던 삼황오제(三皇五帝) 가운데 ‘제곡(帝嚳)’의 딸이다.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염황(炎黃)의 후손’이라고 말하는데 제곡은 전설상의 선조 염황과 역사에 실재했던 선조 요순(堯舜)을 연결하는 황제의 이름이다. 제곡의 딸로 미녀였던 창어는 남편 예(羿)가 곤륜(崑崙)산에 사는 선녀 서왕모(西王母)로부터 훔쳐온 불사약(不死藥)을 남편 몰래 먹어버리고 달로 도망갔다. 우리는 달에 계수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다고 보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달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창어가 살고 있다는 전설을 “창어가 달로 도망갔다(孀娥奔月)”는 말을 즐겨 하며 믿고 있다. ‘창어(孀娥)’는 우리에게도 ‘상아’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고. 우리에게는 ‘상아’라는 이름보다도 ‘항아(姮娥)’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문제(文帝) 때 문제의 이름이 ‘유항(柳恒)’이었기 때문에 황제의 이름에 사용된 한자와 유사한 글자는 이름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피휘(避諱)’의 관습에 따라 원래 ‘항아’이던 달에 사는 불사 선녀의 이름도 ‘상아(孀娥)’로 개명해야 했다. 달에 산다는 불사의 미녀 창어를 만나보겠다는 중국인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창어 프로젝트’는 중국 최고의 자연계 대학 출신 수재였던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 시절인 2004년에 계획이 수립됐다. 후진타오 총서기의 창어 프로젝트 수립 결단에 따라 행정부인 국무원은 제1단계 무인 탐사선 달 착륙, 제2단계 유인탐사선 달 착륙, 제3단계 달에 상주 기지 건설로 짜여진 ‘창어공정(工程ㆍproject)' 계획을 수립했다. 창어 프로젝트의 큰 줄기는 “라오(繞) - 달 궤도 진입, 루오(落) - 달 표면 착륙, 후이(回) - 달 탐사선의 지구 귀환”의 3단계로 짰다. 계획에 따라 2007년 10월 24일 창어1호가 중국 남부 하이난(海南)성 원창(文昌) 우주발사기지에서 장정(長征)시리즈 로켓에 탑재돼 발사됐고, 2010년 10월에는 창어2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달 궤도에 진입해서 선회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2012년 9월에는 창어3호가 ’위투(玉兎)‘라는 이름의 달 표면 무인 탐색 차량을 싣고 발사돼 중국인이 만든 탐색 차량이 달 표면을 탐색하는 현장을 중국인들에게 생중계로 보여줘서 중국인들의 달나라 여행 꿈이 현실화 될 거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2018년 12월 8일에는 창어4호가 중국 서부 칭하이(靑海)성 시창(西昌) 기지에서 발사돼 2019년 1월 3일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의 후면에 착륙해서 태양빛이 전혀 닿지 않는 극저온 상황에서 각종 실험을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실험 발사와 달 궤도 선회, 달 표면 탐사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24일 새벽 4시30분 하이난 원창 발사기지에서 장정 5호 로켓에 실려 발사된 달 탐사선이 창어5호였다. 창어5호는 중국의 우주 개발 역사상 최초로 달 표면에 착륙해서 달 표면의 흙과 암석 샘플을 채취해서 지구로 돌아오는 과정까지를 완성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달 탐사선을 지구로 귀환시키는 과정에서 중국 우주개발 담당자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고난도(高難度)의 기술은 달 표면의 샘플을 실은 창어5호가 달 궤도를 떠나 지구로 돌아와 대기권으로 진입할 때의 충격과 고열(高熱)을 어떻게 극복하고 샘플이 소실(消失)되지 않게 하느냐는 문제였다. 샘플이 소실되지 않아야 창어 프로젝트의 2단계인 유인 탐색선을 달로 보내 임부를 마친 뒤 지구로 생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창어프로젝트 제3단계인 달에 유인기지를 건설하느냐는 기본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중국인들을 들뜨고 환호하게 만든 것은 창어 5호가 우주 개발 기술 수준이 중국보다 훨씬 앞서있는 미국과 러시아도 실험해보지 못했던 ‘다수이퍄오(打水漂)’라는 방식을 중국이 처음으로 실험해서 성공했다는 점이었다. ‘다수이퍄오’란 중국어는 우리말로 ‘물수제비 뜨기’, 또는 ‘물제비 뜨기’라는 말로 어린 시절 우리도 저수지나 잔잔한 바다에서 해보았던 돌던지기 놀이를 말한다. 돌을 거의 수면과 평행한 낮은 각도로 물 표면으로 힘껏 던지면 돌이 물 위에서 반사돼 두세 차례에서 일고여덟 번 튕긴 다음에 물에 입수하게 된다. 이번에 창어5호는 달 표면 샘플을 채취해서 지구로 돌아와 대기권으로 진입하면서 충격과 고열을 피하기 위해 대기권 입사각을 최대한 낮추어 물제비 뜨듯 대기권 경계면에서 한 번 튕겨 나온 뒤 다시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이런 대기권 진입 방식은 지난 2009년 98세로 베이징(北京)에서 세상을 떠난 ‘중국 미사일의 아버지(中國導彈之父)’ 취안쉐썬(錢學森)이 고안한 방식이다. 지상에서 발사된 미사일이나 우주에서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우주선의 속도를 적절하게 조절할 경우 미사일이나 우주선이 그리는 궤도가 마치 물제비를 뜰 때 수면위의 돌이 그리는 궤적처럼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는 점에 착안한 방식이다. 중국 우주과학자들은 이 불규칙한 궤도를 ‘취안쉐썬 탄도(彈道)’라고 명명했다. 1911년생인 취안쉐썬은 1934년 자오퉁(交通)대학 기계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공대와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강의를 하던 중 1955년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요청으로 귀국해서 마오가 중국인들에게 제시한 꿈인 ‘양탄일성(兩彈一星)’ 계획의 실현에 평생을 바쳐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물리학자였다. ‘양탄일성’이란 ‘미사일(導彈)과 핵폭탄(核彈), 인공위성(人工衛星)’을 줄인 말로, 마오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벌어진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국으로부터 받았던 원자탄 공격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국주의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양탄일성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한 데 따라 수립된 군사와 우주개발 기술 개발 프로젝트였다. 취안쉐썬은 그런 마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최고의 애국자 대접을 받았다. 창어5호 귀환 이틀 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베이징(北京)에서 거행된 “달 표면 샘플을 당과 정부에 넘겨주는 의식에 참가한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류허(劉鶴) 부총리가 대독한 연설을 통해 ”창어5호의 성공은 당중앙이 항공우주사업을 고도로 중시하는 정신을 잘 실현한 것이며, 우리의 국가 건설이 과학기술 강국을 지향한다는 방향을 명확히 해준 것“이라고 치하했다. 중국 국가항천국(航天局·우주국)은 18일 ”중국이 달 표면에서 채취해온 샘플은 국제사회의 우주과학 발전을 위해 국제사회가 공동 향유하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관리조례를 발표했다. 우리가 더욱 놀라야 할 사실은 2021년 양력 새해를 앞두고 창어5호의 지구 귀환을 성공시킨 중국의 우주개발 기술능력이 지난해 7월 23일 발사한 중국 최초의 화성탐사선 ‘톈원(天問)1호’가 다음 달 12일 중국의 춘제(春節)에 맞추어 화성에 착륙할 예정이라는 사실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미국과 유럽을 휩쓰는 가운데 중국이 의욕적으로 발사한 톈원1호는 길이 3m, 높이 2.2m의 화성표면 탐사 차량을 싣고 갔다. ‘톈원(天問)’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3세기에 초나라에 살았던 대시인 굴원(屈原)의 시 “우주의 생성에 대해 묻는다”는 시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의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중국 정치 지도자들이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과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확산되는 재난 속에서도 중국인들의 꿈을 위한 달과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중단 없이 추진하는 동안, 과연 우리의 정치는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꿈을 제시했는가를. 국민들을 위해서는 혁명과 개혁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꿈도 만족시켜 주어야 좋은 정치라는 사실을 우리 정치인들은 잊었는가. <논설고문> 2021-01-20 04: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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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의 지피지기] 시진핑 권력블루스 ..내년 100주년 中 공산당의 앞날 [(상하이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11월 12일 상하이에서 열린 '푸둥(浦東) 개발·개방 30주년 축하 대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2021년 7월로 창당 100주년을 맞는다. 중국공산당은 1921년 7월 23일부터 31일까지 9일간 제1차 당 대회를 개최했다. 제1차 당 대회를 개최한 곳은 상하이(上海)의 프랑스 점령 조계(租界)지역이었다. 대회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있던 마당(馬當)로 골목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중국공산당 제1차 당 대회 개최 당시 당원숫자는 중국대륙 전역에 50명 정도였고, 참석한 각 지역 대표 숫자도 불과 13명이었다. 이 가운데 마오쩌둥(毛澤東)은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 대표로 참가했다. 회의는 30일 밤까지 계속됐으나 31일 새벽에는 “프랑스 경찰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첩보에 따라 급히 기차 편으로 저장(浙江)성 자싱(嘉興)현 난후(南湖)라는 호수로 옮겨 배 위에서 마지막 날 회의를 했다. 최초의 당서기로는, 회의에 불참했던 베이징(北京) 대표 천두슈(陳獨秀)가 선출됐다. 현재 중국공산당은 제1자 당 대회 개최지에 대규모 기념관을 건설해놓았다. 창당 기념일은 인민들의 기억 편의를 위해 7월 1일로 정해놓았다. 그로부터 100년, 중국공산당 당원 숫자는 2019년 말 현재 9191만4000명으로 집계돼 있다. 중국공산당은 창당 28년 만인 1949년 10월 1일 선포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수립을 주도했고, 그 결과 중국 헌법 전문(前文)에 “중국 각 민족들은 중국공산당의 영도 아래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鄧小平) 이론, ‘3개 대표 이론’, 과학적 발전관, 시진핑(習近平)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 아래…(중략)…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한다”는 구절을 삽입하는 위치를 확보했다. 중국 헌법 전문에 나타난 것처럼 중국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마오쩌둥이 1949년부터 1976년까지 27년간, 덩샤오핑이 1978년부터 1989년까지 11년간, ‘3개 대표 이론’을 만든 장쩌민(江澤民)이 1989년부터 2002년까지 13년간, ‘과학적 발전관’을 만든 후진타오(胡錦濤)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현재의 시진핑이 2012년부터 현재까지 8년째 최고지도자로 당을 이끌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헌법에 따라 당의 최고지도자인 당 총서기가 국가수반인 국가주석과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당과 정부의 중앙군사위 주석을 겸임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장쩌민이 만든 ‘3개 대표이론’을 바탕으로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와 신흥 부르주아(유산계급)를 포함한 ‘모든 인민’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 시절에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추구했으나,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전략이 채택된 이후에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해왔다. 문제는 2012년에 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이 추구해온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가 과연 어떤 체제이며, 시진핑이 설정한 “아름다운 사회주의 강국”이 과연 어떤 나라이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꿈”이 구체적으로 과연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냐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2012년 5년 임기의 당 총서기로 선출된 이후 두 번의 총서기 임기를 마치게 될 2022년 개최 예정인 20차 당 대회 때 시진핑이 덩샤오핑 개혁개방시대의 관례를 깨고 세 번째 5년 임기의 당 총서기로 다시 선출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안팎의 관측 대상이 될 전망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시진핑은 지난 2017년 두 번째 5년 임기의 당 총서기로 선출된 직후 2018년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헌법에 명시된 국가주석의 3연임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중국 국내정치 최대의 사건을 빚어놓았다. 시진핑이 중국 헌법의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정치적 사건을 만들자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시진핑이 마오쩌둥의 뒤를 따르는 1인 독재체제를 구축했다”고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중국 국내정치 최고 권력은 의전상 국가수반인 국가주석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의 최고 지도자 직위인 당 총서기의 손에 있다. 당 총서기의 임기는 헌법이 아니라 당의 최고 규약인 당장(黨章)에 규정돼 있다. 당규약 제38조는 “당의 각급 간부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됐든, 영도기관에 의해 임명됐든, 직무를 종신(終身)으로 해서는 안 되며, 연령과 건강이 계속해서 공작을 담당할 수 없는 간부는 정부의 규정에 따라 물러나야(離休)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 규약의 이 조항은 시진핑이 헌법 전문을 고친 이후에도 개정되지 않고 있다. 당 규약이 규정한 ‘정부의 규정에 따라’라는 조항은 현재 장관급 이하는 60세, 장관급은 65세로 규정돼 있고, 덩샤오핑이 만든 내부 규정에 따라 장관급 이상의 당 간부는 67세 이하만 해당 직위에 취임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칠상팔하(七上八下)’라는 4자 성어로 알려져 있던 중국공산당 최고급 간부에 대한 연령규정에 따르면 시진핑은 1953년 6월생이므로 20차 당 대회가 열리는 2022년 가을에는 이미 만 69세를 넘어선 나이이므로, 세 번째의 당 총서기에 선출될 수 없다는 것이 당규약의 규정이다. 그러나 시진핑이 2018년 3월 헌법에서 국가주석의 3연임 금지조항을 삭제한 이후 중국 안팎에서는 “시진핑이 그런 내부 규정을 무너뜨리고 세 번째의 당 총서기로 선출될 것이다”, “당규약을 개정하고 마오의 뒤를 따라 중국공산당의 종신 지도자로 계속 권력을 쥐고 있을 것이다”라는 관측이 정설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앞날을 좌우할 시진핑의 당 총서기 3연임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중국공산당이 이렇다 할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기자 출신으로, 1989년 6월의 천안문(天安門) 학생시위 사태 직후 미국으로 망명해서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우궈광(吳國光)이 미 스탠퍼드 대학 후버연구소가 운영하는 온라인 중국전문 계간지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에 중국공산당 내부 움직임을 관찰하는 기준을 제시해서 주목받고 있다. 우궈광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내부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현 국가부주석 왕치산(王岐山)의 정치운명을 지켜보면 된다는 것이다. 왕치산은 시진핑보다 5세 위이지만 시진핑과 마찬가지로 1966년에 시작된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을 피해 중국 혁명의 본거지 옌안(延安)으로 스스로 하방(下放)을 자초해 내려간 이른바 ‘지청(知靑·지식청년) 출신이다. 왕치산은 장쩌민 총서기와 후진타오 총서기 시절에는 중국인민건설은행 행장과 수도 베이징(北京)시 당서기를 거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올림픽조직위원회 주석으로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공으로 부총리 직위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왕치산은 2012년 시진핑 당총서기 체제가 시작될 때 중국공산당 권력구조의 최고위에 해당하는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1인으로, 당 안팎의 부패 척결을 담당하는 당 기율검사위원회 주석을 맡았다. 왕치산은 이후 5년간 시진핑이 자신의 당내 권력 강화를 위한 부패척결 캠페인을 벌일 때 시진핑이 휘두르는 칼의 역할을 했다. 특히 2014년 시진핑이 전임 후진타오 총서기를 지탱하는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저우융캉(周永康)을 부패혐의로 당적을 박탈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도록 할 때 왕치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우궈광의 주장이다. 왕치산은 시진핑의 첫 5년 임기 당 총서기 때 시진핑을 도와서 부패척결 활동을 벌인 공로로 시진핑이 두 번째 임기 당 총서기에 선출된 이후 2018년에 70세의 나이로 국가부주석으로 추대됐다. 그랬던 왕치산인데 2020년 들어 왕치산의 측근들이 아이로니컬하게도 당의 기율위반 혐의로 감찰과 조사를 받아 직위가 박탈당하는 일이 속속 벌어져, “시진핑이 첫 당 총서기 임기 5년 동안 벌인 부패척결 활동의 사냥개로 활용했던 왕치산을 토사구팽(兎死狗烹)식으로 제거하려 한다”, 또는 “시진핑과 시진핑 체제 제2의 권력자 왕치산 간에 권력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 우궈광의 관측이다. 실제로 왕치산의 베이징 시장, 당서기 시절의 최측근으로 베이징 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리웨이(李偉)가 지난 8월 당과 국가의 감찰을 받은 뒤 10월 15일 정협 부주석 직이 박탈됐다. 왕치산의 또 다른 측근으로 왕치산이 하이난(海南)성 당서기 시절 왕을 수행했고, 왕치산의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주임 시절 보좌했던 둥훙(董宏)이란 인물도 지난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기념일에 수사를 받게 됐다는 뉴스가 터져 나와 중국공산당 안팎을 흔들어놓았다. 우궈광에 따르면, 시진핑은 자신의 장기 집권 기반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당의 정법위원회와 행정부의 공안부 인적 구성을 자신의 인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시진핑 자신의 첫 5년 임기 동안 부패척결 작업을 주도했던 정법위와 공안부 인물들을 하나하나 토사구팽식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제 남은 일은 왕치산과의 마지막 한 판이라는 관측이다. 시진핑이 왕치산과의 마지막 한 판에서 승리할 경우 시진핑 자신이 지난 가을 제19기 5중전회에서 설정한 “2035년까지 아름다운 사회주의 강국 건설”과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수립 100주년까지 달성하기로 약속한 “중국의 꿈(中國夢)” 달성을 위해 달려갈 태세다. 그러나 1953년생인 시진핑으로서는 20차 당 대회가 열리는 2022년이면 69세, 21차 당 대회가 열리는 2027년이면 74세에 이르는데다가, 과체중에 통풍을 앓아, 가끔씩 외국 방문 때 의장대 사열을 하면서 부자연스럽게 걷는 모습을 대외에 보여주는 건강 문제가 중국공산당의 앞날에 후계 다툼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발생 가능성도 예고하고 있다. 논설고문 2020-12-31 05: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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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의 지피지기] 시진핑 재벌夢? “중국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에 새로운 패러다임, ‘중국 주식회사(China Inc.)'에서 ‘중국공산당 주식회사(Chinese Communist Party Inc.)’로.” 미 스탠퍼드 대학 후버(Hoover)연구소가 운영하는 중국 연구 온라인 계간지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China Leadership Monitor)’ 겨울호에 그런 제목의 소논문이 올라왔다. 필자는 미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정치경제 전문가 주드 블란쳇(Jude Blanchette). 월스트리트 저널과 파이낸셜 타임스, 포린 어페어즈와 포린 폴리시에 중국의 정치, 경제, 외교의 트렌드에 대해 깊이 있는 관찰과 분석이 담긴 글을 쓰는 학자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새로운 홍위병 : 급진주의 부활과 마오의 부활(China's New Red Guard : The Return of Radicalism and the Rebirth of Mao Zedong)>이라는 책을 썼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중국의 국내 경제 체제에 중대한 변형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개혁은 기업들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는 기조 위에서 중국공산당 조직과 공기업, 민간기업의 조직을 통합하는 것이다. 이 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은 ‘국무원 국유자산 관리위원회(SASAC·State-owned Assets Supervision and Administration Commission)’가 담당하고 있으며, 이 위원회는 기업을 관리하는 방식에서 자본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정치적인 통제력은 중국공산당이 행사하고 있으며, 시진핑 시대는 공기업과 민간기업,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를 혼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현을 목표로 ‘다퉁(大同)’사회의 건설을 추구하던 이상주의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시대는 1976년 9월 마오의 사망으로 끝났다. 프랑스 유학파로 마오가 죽은 뒤 권력을 장악한 현실주의자 덩샤오핑(鄧小平)은 1978년부터 사회주의에 시장경제 시스템을 접합시키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만들어왔다. 정치 개혁은 유보한 채 경제 개혁만 밀어붙인 덩샤오핑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구축 작업은 중국을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의 나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은 정치와 금융을 중국공산당이 관리하는 경제체제를 구축해왔다. 그 결과 이미 중국의 경제체제는 ‘국가 자본주의’에서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는 ’당 자본주의(CCP Capitalism)'로 변형되어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전의 ‘중국 주식회사(China Inc.)'가 ’중국공산당 주식회사(CCP Inc.)’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블란쳇은 중국의 경제체제가 국가 자본주의에서 당 자본주의로 변형되어 가고 있는 방식은 우선 SASAC를 비롯한 자본 관리 위원회와 기관들이 기업의 자산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국유기업들 간의 합병흡수를 유도해서, 보다 자산규모가 큰 기업으로 키운 다음, 그 기업의 조직을 중국공산당이 장악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그 결과 2003년에 189개이던 핵심 국유기업의 숫자가 흡수 합병을 통해 2020년 현재 96개로 숫자가 줄어들었으며, 이 숫자는 2030년대에는 80개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흐름을 주도하는 시진핑 체제의 목표는 숫자를 줄이고 크기와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 예가 지난해 11월 26일 중국내 1위 조선기업 중국선박집단유한공사(CSSC)와 2위 중국선박중공업집단공사(CSIC)를 합병해서 세계 최대의 조선회사 중국선박공업집단(CSG)을 발족시킨 것이다. 이 합병을 주도한 것이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였으며, SASAC는 10월 25일 두 조선회사의 합병을 승인했다. CSSC와 CSIC는 1999년 7월1일 장강(長江)을 경계로 남북 두 회사로 분할됐다가 20년 만에 다시 합쳐졌다. 이번 합병으로 CSG는 147개 연구기관과 사업부문, 상장 기업을 합해 총 자산규모 1120억 달러(132조원)에 직원 수 31만명으로, 항공모함부터 석유와 천연가스 운반선을 제조할 수 있게 됐다. 합병 이전에도 CSSC의 점유율은 11.5%로 세계 2위, CSIC의 점유율은 7.5%로 세계 3위였다. CSSC와 CSIC의 지난해 연 매출을 합하면 85조원을 넘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매출을 합한 것보다 많은 수준이라는 것이 국제적 조선업계 분석기관 클랙슨 리서치의 추산이다. 이에 앞서 2017년 8월에는 중국내 1-2위 석탄생산기업 신화(神華)집단(Shenhua Group)과 중국국전(國電)집단공사(Guodian Group)가 합병해서 총자산규모 2740억7000만 달러 규모의 국가능원(能源)투자집단(State Energy Investment Group)을 발족했다. 2015년에는 중국베이처(北車)주식유한공사(China CNR Corporation Limited)와 중국난처(南車)주식유한공사(China South Locomotive & Rolling Stock Corporation Ltd.)가 합병해서 세계1위의 철도건설기업인 중국중처(中車)주식유한공사(China Railway Rolling Stock Corporation Ltd)를 발족시켰다. 이 두 건의 합병도 SASAC가 주도한 것은 물론이다. 블란쳇에 따르면, 중국이 이처럼 ‘국가 자본주의’에서 ‘당 자본주의’로 전환하고 있는 것은 중국에 앞서 ‘국가 자본주의’를 구축한 한국의 ‘재벌(Chaebol·財閥)’ 시스템과 일본의 ‘게이레츠(Keiretsu·系列)’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는 것이 홍콩의 중국경제 전문가 아서 크뢰버(Arthur Kroeber)의 진단이다. 크뢰버는 2016년에 출판한 ‘China's Economy(중국경제)’에서 “한국의 재벌체제는 가족 중심으로 형성됐고, 일본의 게이레츠가 재벌그룹 소유의 은행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반면,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수립을 주도한 중국공산당이 주도하고, 기업의 자산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당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공산당은 이 같은 ‘당 자본주의’ 구축을 위해 시진핑이 당 총서기로 선출된 다음해인 2013년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8기 3중전회)의 결정에 따라 “국가의 전략적 목표 달성과 국가 안보, 경제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전반적인 국가경제에 대한 관리를 ‘기업에 대한 관리 방식에서 자본에 대한 관리 방식으로(從管企業到管資本)’ 전환하기 위해 국유자산관리위원회(SASAC)를 설립했다. 이 SASAC의 통제에 따라 국유기업들의 투자부문을 총괄 관리하는 국가개발투자집단유한공사(SDIC)를 설립했으며, 양곡과 식용유의 수급을 통합 관리하는 ‘COFCO Group(中糧集團)’의 자회사로, COFCO Group의 자본을 통제하는 ‘COFCO Capital(中糧자본투자유한공사)을 설립했다. 현재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시진핑이 제시한 2050년 ‘중국의 꿈(中國夢)’ 달성을 위해 중국대륙에 시속 300㎞가 넘는 고속철도망을 깔고. 이 고속철도망을 아시아와 유럽으로 확장해서 아시아와 유럽을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추진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도 SASAC가 합병을 주도해서 형성한 중국중처(中車)주식유한공사(‘중처(中車)’의 발족이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 19세기에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한 것과 같은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 세계 1위의 패권국으로 유럽에서 러시아와 힘을 겨루던 영국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건설 목표지점이 한반도라고 판단하고,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1885년 3월 발틱함대를 조선으로 보내 거문도를 점령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은 1887년 2월까지 2년 가까이 계속됐으며, 당시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가 편지로 고종에게 영국함대의 거문도 점령을 알려준 사실이 역사에 기록돼있다. 19세기 국제사회에서 패권국가였던 영국은 당시 자체 기준으로 ‘Far East(極東. 중국어로는 遠東)라고 부르던 한반도와의 거리가 너무 멀다고 판단, 1902년 일본과 동맹을 체결해서 러시아의 한반도 진출 저지를 일본에게 맡겼으며, 영국과 동맹을 맺은 일본은 1905년 중국 랴오둥(遼東)반도로 진출한 러시아군과 러일전쟁을 벌여 승리함으로써 한반도와 조선왕조에 대한 정치, 경제적 권리를 보장받는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한 사실을 역사에 기록했다. 일본은 1894년에 청을 상대로 벌인 청일전쟁의 결과 승리해서 1895년 리훙장(李鴻章)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서명한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해서 조선왕조를 청의 영향권에서 분리시킨 또다른 역사기록을 남겼다. 포츠머스 조약과 시모노세키 조약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를 보장해준 국제조약이었다. 블란쳇의 차이나리더십 모니터 겨울호 소논문은 우리 사회에서 중국에 대한 보다 깊은 관찰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논설고문> 기술 자립 촉구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 (상하이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2일 상하이에서 열린 '푸둥(浦東) 개발·개방 30주년 축하 대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2050년 무렵까지 세계 최강국으로 올라서는 장기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력을 다해 기술 자립을 위한 '혁신 엔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12-14 03: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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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가장 위험한 연설'의 결말? [박승준의 지피지기(知彼知己)]“나는 이미 은퇴한 사람입니다. 은퇴한 사람이 정부 공식행사가 아닌 포럼에 나와 하고 싶은 말을 한번 다 해보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외부의 비전문적 인사의 관점도 여러분에게 참고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덜 성숙한 견해일 수도 있고 잘못된 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번 크게 웃어넘기시면서 들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10월 24일 중국 상하이(上海) 와이탄(外灘)에서 개최된 제2회 금융정상회의(Bund Summit) 개막식. 유엔 디지털 협력 소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연단에 나온 중국 최대 인터넷 상거래 포털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은 말머리를 그렇게 꺼냈다. 이 회의에는 중국 국가부주석 왕치산(王岐山)이 참석해서 축사를 한 것을 비롯해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로버트 루빈과 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 재무장관, 조지프 스티글리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비롯한 500여명의 세계 경제계 VIP들이 모였다. 와이탄은 상하이 중심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황푸(黃浦)강의 서쪽 강변으로, 1920년대 세계 금융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가 100년 만에 다시 세계 금융과 경제의 중심지로 주목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회의 주제는 '위(危)와 기(機) : 새로운 국면을 맞는 새로운 금융과 새로운 경제'. 이 회의에서 마윈의 개막 연설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11월 5일로 예정된, “세계 최대의 공모주 청약”이라는 말을 듣던 앤트 파이낸셜(Ant Financial·馬蟻金服)의 상장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앤트 파이낸셜은 세계 최대의 전자 상거래 포털 알리바바와 중국의 온라인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를 주도하는 그룹으로, 예정대로 앤트 파이낸셜의 공모주 상장이 이뤄질 경우 중국 대륙에서 515만명이 청약을 하고, 홍콩에서 155만명이 청약을 해서 350억 달러(약 40조원)의 시가총액을 기록하면서 모두 3300조원의 투자를 끌어들이는 세계 최대의 공모주 상장이 이뤄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중국 금융에는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리스크란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국 금융에는 시스템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 금융업은 아직 청소년의 단계이기 때문에 성숙한 생태 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큰 은행들은 큰 강이나 대동맥처럼 큰 흐름을 관리하고는 있지만, 우리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조그만 저수지와 연못, 조그만 계곡과 개울들입니다. 중국 금융에는 이런 생태계가 없기 때문에 홍수 때는 물에 빠져 죽고, 가뭄이 들면 말라 죽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가의 금융에는 건강한 금융 시스템 리스크라는 것이 없습니다. 마치 노년 치매와 소아마비증을 함께 앓고 있는 것과 같지요. 두 가지 병은 완전히 서로 다른 병인데, 어린아이가 '노년 치매'를 앓는다면 참으로 기기묘묘한 병을 앓고 있는 셈이지요.” “오늘 나는 이 자리에서 자랑스럽게 선포합니다. 어제 저녁 앤트 파이낸셜의 상장 가격이 정해졌습니다. 앤트 파이낸셜의 이번 상장 가격 결정은 미국 뉴욕 이외의 도시에서 테크놀로지 기업의 상장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며, 세계의 변화는 참으로 신기할 정도입니다.” 송나라 때의 수도로, 당시 세계 경제의 중심 도시였던 항저우(杭州) 출신인 마윈은 이 대목에서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대전(赤壁大戰) 이야기를 꺼낸다. “적벽대전 당시 (북쪽 왕조였던 위[魏]나라의 총지휘관이었던) 조조(曹操)는 (남쪽 왕조였던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수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수의 군선[軍船]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연환계라는 전술을 구사했는데) 현대의 항공모함을 만드는 발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갈공명이 생각해낸 화공[火攻]전술 때문에 조조의 배들이 모두 불에 타버리는 결과가 빚어져서) 이후 1000년 동안 중국에는 감히 항모를 만드는 발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조의 군선들이 불에 타버린 데 생각이 미치면 누구도 감히 (항모를 만들자는) 새로운 발상을 할 수가 없었지요. 이것이 바로 하나의 착오가 한 시대의 새로운 발상을 소멸시키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마윈이 삼국지에서 조조의 연환계가 공명의 화공에 무너진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현재 중국 금융업의 발전을 위한 개인과 민간의 아이디어를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가로막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윈은 중국 금융 당국과 정부에 들으라는 듯 중국공산당 중앙총서기 겸 국가주석인 시진핑(習近平)의 말도 인용하고, 시진핑의 정치에 대한 평가까지 언급한다. “시진핑 주석은 ‘공을 꼭 내가 세워야 할 필요는 없다(功成不必在我)’는 말을 했지요. 나는 이 말을 일종의 책임이랄까 하는 것을, 말하자면 미래를 위해, 내일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져야 한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오늘의 세계에는 중국 문제를 포함해서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이 모든 문제들은 새로운 창안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창안이란 대체로 안내하는 가이드가 없는 가운데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일입니다. 새로운 창안이란 착오를 범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에, 문제는 착오를 범하지 않으려는 흐름입니다.” 마윈은 다시 한번 중국의 금융과 은행들의 문제를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누가 은행에서 10만 위안(元)을 대출한다면 (갚을 수 있을까를) 대출한 사람이 걱정을 안게 되지만, 1000만 위안을 대출한다면 은행과 대출자가 함께 걱정하게 되고, 10억 위안을 대출한다면 대출자는 아무런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은행이 커다란 고민을 떠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윈은 현재 중국 정부가 전 세계에서 앞서 정착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는 디지털 화폐의 문제에 대해 “애플이 휴대폰의 정의를 바꾸어놓아 현재 휴대폰이 전화가 아니게 된 것처럼, 디지털 화폐는 가치를 창조하는 일이요, 세계 경제가 직면한 지속가능한 무역, 환경보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사고방식의 문제"라는 말도 했다. 마윈은 연설 도중 “내가 이해하기로는 시진핑 주석이 말하는 이른바 집정(執政)능력을 높이라는 말은 감독과 관리 아래에서 질서정연하고 지속가능하며 건강한 발전을 이루라는 말이지, 감독과 관리가 발전하지 않고 있다는 말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라는 말도 했다. 연설 도중 시진핑 지도자의 말을 두 차례 언급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마윈이 이 연설을 한 후 지난 11월 5일 중국 대륙과 홍콩에서 이루어지기로 예정돼 있던 앤트 파이낸셜의 세계 최대 규모 공모주 청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중국 금융감독위원회가 마윈을 소환해서 청문을 하는 자리가 있었다고도 하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이에 관해 뉴욕타임스는 지난 6일 “베이징(北京) 당국은 앤트 파이낸셜 그룹의 세계 최대 공모주 청약의 플러그를 뽑아버림으로써 투자자와 기업가들에게 중국공산당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보여주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가 앤트 파이낸셜의 홍콩·상하이 상장 취소를 전하면서 선택한 ‘pull the plug’라는 말은 '중단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관용어지만, 중국 정치와 경제에서는 때때로 알 수 없는 손이 전기 플러그를 뽑아버리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원래 용어 그대로 직역했다. 마윈이 주도했다고 볼 수 있는 앤트 파이낸셜 그룹의 중국 대륙과 홍콩 동시 상장은 취소된 것인지, 연기된 것인지 현재로서는 분명치 않다. 중국의 주식 시장에 관해 중국 지식인들은 “현재 중국경제에는 숫자가 9000만명 정도인 중국인 개미투자자들로 구성된 ‘주식투자당’과 역시 당원 숫자가 9000만명 정도인 중국공산당의 힘이 서로 작용과 반작용을 하고 있으며 ‘주식투자당’은 중국경제가 경제원리에 맞게 흘러가기를 희망하고 있는 반면, 정의감과 의무감에 넘치는 중국공산당은 ‘중국 사회에 어떤 문제가 생기든 우리 중국공산당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마윈이 인용한 시진핑의 “공을 꼭 내가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 역시 원래는 1930년대에 시인 후스(胡適)가 중국인들에게 이기적인 생각이 중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뜻에서 한 말이었지만, 시진핑이 최근에 다시 강조한 이유는 개인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중국식 사회주의의 완성을 위한 개인들의 노력도 중요하다는 뜻이라는 점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중국 지식인들은 귀띔해 주었다. <논설고문> [사진=웨이보 캡처] 2020-11-27 02: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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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의 지피지기] 미중관계 트럼프시대와 어떻게 달라질까 바이든 당선에 입장 표명 자제하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9일 베이징에서 정례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데 대해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박승준의 지피지기] 2017년 1월 17일 조 바이든(Joe Biden) 미 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하기 사흘 전이었다. 바이든의 부통령 임기도 사흘 남았을 때였다. 당시에는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한 회견이었지만, 이제 바이든이 트럼프의 후임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실해지고 보니 다시 돌아봐야 할 회견이 됐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전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이랬다. 시진핑 : “오바마 대통령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바이든 부통령께서 중·미관계와 양국 인민들의 상호 이해와 우의를 위해서 한 공헌을 적극적으로 평가합니다. 중·미 수교가 이뤄진 후 38년 동안 두 나라 관계는 비바람을 겪으면서도 총체적으로는 발전해왔습니다. 특별히 3년여 전에 나와 오바마 대통령이 중·미 관계를 신형 대국관계로 건설하자는 공통인식을 갖게 된 이래 쌍방의 공동 노력 아래 중·미관계는 정확한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중요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과를 거두어 왔습니다. 양국의 쌍방 무역, 상호 투자액, 인적 교류 모두가 사상 최고기록을 올렸습니다. 우리 양국 인민들과 세계 인민들의 근본 이익에는 중·미 양국의 공동노력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협력관계가 필수적입니다.” 바이든 : “시진핑 주석께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개막식에서 중요하면서도 훌륭한 연설을 한 데 대해 축하드립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안부를 잘 전하겠습니다. 주석께서 미·중관계의 발전을 위해 기울인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미·중관계는 극히 중요한 양자 관계로, 21세기에 미·중 양국의 성장과 번영은 세계에 지극히 중요합니다. 우리 미국은 미·중 양국이 상호 신뢰를 계속 심화시키고, 협력을 확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상은 신화통신이 전한 대화 내용 전문이다. 물론 외교적인 수사밖에는 없는 대화인 듯 보이지만 바이든과 시진핑의 대화 내용 속에는 시진핑의 표현으로 ‘신형 대국관계’, 바이든의 표현으로 “극히 중요한 양자 관계”, 다시 말해서 “세계질서를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주도해나가자”는 공통인식에 서로 동의한다는 표현이 보인다. 그러나 이 회담 사흘 뒤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 4년 만에 바이든과 시진핑의 당시 대화 내용은 무색해졌고, 두 나라 관계는 무역 마찰로 인한 징벌적 관세와 첨단기술 개발 경쟁으로 인한 대립과 갈등이 ‘신냉전’으로 발전해서 두 나라는 경제는 물론 국제정치적으로도 ‘디커플링(decoupling ‧ 헤어지기)’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바이든이 시진핑과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8월이었다. 바이든은 오바마 대통령의 메이트 부통령이었고, 시진핑은 국가부주석이었다. 바이든은 당시 베이징(北京)을 방문했고, 국가부주석이던 시진핑은 바이든의 중국 방문 전 일정 안내를 맡았다. 시진핑은 2012년 2월 국가부주석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고, 이때는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시진핑의 방미 일정 전 과정을 안내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때부터 바이든과 시진핑의 관계를 ‘라오펑여우(老朋友 ‧ old friend)’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바이든은 2013년 12월에도 베이징을 방문해서 시진핑을 만났다. 시진핑은 이보다 1년 전인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2013년 3월에는 국가주석으로 취임해서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 이번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이든은 신화통신의 표현에 따르면 ‘개인간 우의(私人友誼)’가 깊은 시진핑의 중국과의 관계를 4년 전으로 복원하게 되는 것일까. 바이든은 올해 3-4월호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왜 미국이 다시 리드해야 하는가 : 트럼프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 구하기(Why America Must Lead Again : Rescuing U.S. Foreign Policy After Trump)’라는 글을 싣고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의 중국 정책 구상을 밝혔다. 바이든은 우선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아닌 미국이 전 세계적인 과학혁신을 이끌어 나가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히면서 “클린 에너지와 양자(量子)컴퓨터, AI(인공지능), 5G, 고속철, 암치료 분야에서 중국에 뒤떨어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자유무역에 관해서는 “현실을 외면해가며 무역거래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며, 문제는 무역거래를 지배하는 규칙을 어느 나라가 만드느냐 하는 것”이라면서 “노동자와 환경을 보호하고, 투명성과 중산층의 임금을 보장하는 노력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그러나 “중국이 특별한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나는 중국 지도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 우리 미국이 무엇에 부딪히고 있는가를 이해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중국은 전 지구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기나긴 게임을 해왔으며, 자신들의 정치 모델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미래의 테크놀로지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해 현재 미국과 중국이 경쟁상태에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중국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며, 중국은 미국 기업들로부터 기술과 지적재산을 강도질(robbing)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트럼프 대통령의 메이트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같은 수준의 표현을 구사한 것이다. 바이든은 또 “중국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맹이나 파트너 국가들과 통일전선(united front)을 형성해야 한다”는 생각도 밝혔다. 바이든의 이 같은 포린 어페어즈 기고는 바이든의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나도는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는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의 쿼드(Quad) 형성을 강력하게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잘못됐음을 보여준 것이다. 바이든의 포린 어페어즈 기고는 1967년 10월 닉슨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베트남전 이후의 아시아(Asia after Vietnam)”라는 글을 기고한 의도와는 다른 것이다. 닉슨은 당시 포린 어페어즈 기고를 통해 미국이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공산당과 장졔스(蔣介石) 국민당 사이의 내전에서 국민당을 지원했다가 실패한 1947년 이후 중국대륙과 일체의 관계를 끊고 지내는 점을 비판했다.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고 있던 닉슨은 “이 조그만 별에서 10억의 인구를 ‘분노의 고립 상태(angry isolation)’에 내버려두는 미국의 대외정책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17세 때부터 영어를 공부해온 마오쩌둥은 포린 어페어즈에 실린 닉슨의 글을 읽고, 이 글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에게 읽어보라고 권하면서 “이 친구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좋겠구먼”이라고 일러주었고, 마오의 의도를 알아차린 저우언라이는 그 글을 다시 외교부로 내려보내면서 “미국의 전략적 동향을 주의깊게 관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마오와 저우언라이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고,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연설에서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했던 중국에 대한 외교 전략 구상을 거듭 확인했고, 닉슨은 1971년 대통령 안보보좌관 키신저의 비밀 방중과 저우언라이와의 회담을 통해 1972년 2월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성사시킴으로써 미국과 중국의 화해 시대가 시작됐다. 실제로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을 추진한 것은 1976년 9월 마오가 사망한 뒤 후계자가 된 덩샤오핑(鄧小平)이지만, 그 배경은 마오와 저우언라이, 닉슨과 헨리 키신저 4인이 엮어낸 미·중 화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1969년 10월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닉슨의 글이 이후 50년간의 미·중 협력관계의 틀을 만들어놓은 글이었다고 한다면, 바이든이 지난 3-4월호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이 앞으로의 미·중관계를 트럼프 시대의 디커플링 관계를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바이든은 부통령 시절 시진핑과 서로 친한 친구의 관계였지만, 트럼프 대통령 4년을 거치는 동안 미·중관계가 신냉전의 관계로 나빠진 것은 트럼프의 대외정책의 실패라기보다는 바이든이 기고문에서 밝힌 것처럼 “중국이 미국에 특별한 위협이 되고 있으며,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도둑질’하고 있다는 점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시대 미·중 관계의 기본 구조 역시 트럼프 시대 미·중 관계의 기본 구조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음을 예고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 트럼프의 공화당 측이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작가 피터 슈바이처(Peter Schweitzer)의 <비밀의 제국(Secret Empire)>이나 익명의 작가가 쓴 <바이든 플랫폼(Biden Platform : China Won)> 같은 e-book을 통해 폭로한 바이든의 둘째 아들 헌터(Hunter)의 중국 비즈니스에 대한 의문도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암초로 작용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 시대의 미·중관계는 트럼프의 전임자 오바마 시대의 평온한 미·중관계로는 되돌아 갈 수 없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논리로 말하면 바이든과 시진핑의 정치적 관계라는 상부(上部 ‧ 頂層)구조가 변하더라도 중국과 미국 경제의 경쟁관계라는 하부(下部 ‧ 基層) 구조가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는 것이다. 2020-11-11 02: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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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의 지피지기] 시진핑 '쌍순환' 제3 경제혁명? ‘쌍순환(雙循環) 전략’은 중국 제3의 혁명? 중국공산당은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간 제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9기 5중전회)를 개최한다. 중앙위 전체회의는 1년에 한 차례 열리며, 이번 회의 참석 범위는 중앙위원 204명과 후보중앙위원 172명을 포함한 376명이다. 여기에 전문가와 학자들이 초청된다. 회의는 인민해방군이 경영하는 베이징(北京) 서쪽 징시(京西)호텔에서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번 19기 5중전회의 의제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집행될 제14차 5개년 경제계획을 확정하고, 이후 2035년까지 적용될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원경(遠景·장기) 목표와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2012년 시진핑(習近平)이 당 총서기로 선출된 직후 정치적 구호로 내세운 “두 개의 100년(兩個百年)” 가운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를 실현한다”는 약속이 지켜졌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이와 함께 2017년 10월 두 번째 5년 임기의 당 총서기로 재선출되면서 약속한 “2035년까지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에 따른 사회주의 현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번 19기 5중전회는 특히 시진핑 당 총서기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나타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America First’ 전략에 따른 미·중 경제의 ‘디커플링(Decoupling)’ 흐름과 지난해 말부터 확산된 ‘신관폐렴(新冠肺炎 · Covid19)’이 중국경제에 남긴 충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두 개의 난제가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공산당 지도부에 안겨진 가운데 개최되는 회의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공산당 간부들의 당 이론 학습을 위해 발행되는 ‘학습시보(學習時報)’가 지난달 9일 “쌍순환(雙循環) 신발전 국면을 정확히 인식하고 파악하자”는 논평을 게재해서 중국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시진핑 당 총서기가 최근 경제사회 영역의 전문가들과의 좌담회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이론”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이론은 “국내 대순환을 주체로 하고 국내와 국제 쌍순환이 상호 발전을 촉진하는 새로운 발전 구조이론으로, 1980년 개혁개방 정책이 채택된 이래 우리 중국의 경제발전을 지도해왔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정치 경제학의 새로운 경계를 개척해온 이론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는 우리 중국이 높은 발전단계에 들어서서 부딪친 각종 중장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새로운 전략적 조치”라고도 설명했다. 학습시보는 “20세기 1980년대 이래 중국은 글로벌화의 파도를 타고 국제대순환 구조에 의존하는 국내 시장경제 개혁을 시작해서 내부 시장화(市場化) 구조를 건설하는 대순환의 외향형 발전 전략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해서 중국경제의 쾌속발전을 지속시키는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 외향형 발전 전략은 다음과 같은 폐단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첫째, 글로벌화의 이점이 점차로 줄어들고, 분배 방식의 변화로 글로벌화 발전의 동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중국경제에 대한 외부의 수요가 크게 위축되고, 중국의 경제발전 모델은 수출이 투자를 유발하는 모델에서 내수가 새로운 동력을 일으키는 모델로 변화했다. 둘째는 대국 간의 충돌이 기술발전의 ‘목을 누르는(卡脖子)’ 문제가 발생해서 중국의 기술발전에는 ‘기술수입-이식-모방-소화’라는 자주적인 창조모델이 필요하게 됐다. 셋째로, 시작도 끝도 외국에 있는 ‘양두재외(兩頭在外)’의 무역모델은 중국을 글로벌 가치사슬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서 비교우위 저수준의 함정에 빠뜨리는 위험을 조성했다. 새로운 국제협력 모델과 국제경쟁력이 필요하게 돼 중국은 필수적으로 국내 분업 체계를 업그레이드하고, 전면적으로 강화해서 국내경제로 대외경제를 촉진하는 ‘이내촉외(以內促外)’의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낼 필요가 발생했다. 학습시보의 주장은 한마디로 “수출 수입에 의존하는 중국경제의 외향형 구조를 수정해서 내수가 대외경제를 촉진하는 내수 위주의 전략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은 중국이 1978년의 제11기 3중전회 이래 채택해온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전략이 외국과의 수출입을 강화하는 ‘이외촉내(以外促內)’의 경제전략을 수정해서 국내경제를 우선하고 대외경제 요소를 축소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중국 안팎에 충격을 주었다. 트럼프의 중국 기술발전에 대한 저지 시도와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확산)이라는 두 가지 난관을 만난 시진핑 체제가 지난 40여년간 지속돼오던 개방형 경제를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내수 위주 경제구조로 전환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에 따르면 시진핑은 지난 5월 통일전선 조직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에 나가 경제계 인사들과 좌담회를 하면서 “국내 대순환 구조를 주체로 하고, 국내와 국외가 상호 촉진하는 새로운 쌍순환 구조를 조속히 건설해야 한다”는 언급을 했다. 시진핑 당 총서기는 8월 31일에 열린 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면서도 같은 언급을 했으며, 블룸버그 통신이 시진핑이 말한 내수 위주의 쌍순환 구조를 ‘Dual Circulation’이라고 번역해서 베이징발로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의 톱 리더들은 다음 달에 앞으로 5년간의 경제전략을 확정하면서 국내 소비를 늘리고, 중요한 기술의 국내 비중을 높임으로써 세계 2위의 중국경제를 소용돌이치는 지정학적 긴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전략 설계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1921년 상하이(上海)에서 창당된 중국공산당은 1840년 영국과의 아편전쟁 이래 산업혁명에서 앞서간 유럽과 미국의 반(半)식민지가 된 중국대륙에 마르크스 레닌 이론으로 무장한 마오쩌둥이 이끈 사회주의 혁명으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하기는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기본 구조로 한 마오쩌둥이 이끈 첫 번째 혁명은 1950년대 이후 대약진 운동이라는 조급한 경제력 강화에 실패하고, 1966년에 시작해서 1976년에 마오가 사망함으로써 종결된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름의 국내 정치 투쟁으로 실패로 귀결됐다. 첫 번째 혁명 이후 중국의 권력은 파리 유학생 출신의 덩샤오핑(鄧小平)이라는 지도자에게 넘어갔고, 덩샤오핑은 마오가 건설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사실상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는 두 번째 혁명의 길을 걸어왔다. 덩샤오핑의 두 번째 혁명은 중국인의 상인(商人) 본능을 자극해서 지난 40년 동안 빠른 경제발전에 성공하면서 중국을 GDP 세계 2위의 국가로 끌어올렸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발표하는 WDI(World Development Index · 한 국가의 GDP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계수)는 2005년 4.81%에서 2018년 15.84%로 높아졌다. 이 기간에 미국의 WDI는 27.5%에서 23.91%로 낮아졌으며, 중국은 독일과 일본을 차례로 제쳐왔다. 덩샤오핑이 중국 경제를 쾌속 발전시킨 전략은 외국으로부터 FDI(Foreign Direct Investment)를 받아들이고, 미국과 유럽 시장과의 수출입 구조를 강화하는 ‘이외촉내(以外促內)’의 외향형 경제구조 건설 전략이었다. 시진핑이 최근 들어 중국 관영매체들이 전하는 것처럼, ‘이내촉외(以內促外)’의 내수형 경제 건설을 목표로 하는 전략을 이번 제19기 5중전회에서 채택한다면 앞으로 중국경제는 제3의 혁명의 길로 접어들게 될 전망이다. 마오의 제1혁명과 덩샤오핑의 제2혁명에 이은 시진핑의 제3의 혁명의 길로 중국은 접어들게 될 것이다. 물론 ‘쌍순환’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시진핑의 중국이 대외경제 교류의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국내경제에서 내수의 비중을 점차로 높여나가는 제3의 혁명의 길을 걸을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기본 통화인 위안화(元貨)가 미 달러에 연동되는 페그 시스템(Peg System)을 채택하고 있어 외향형 경제를 내수 위주 경제로 전환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더구나 시진핑은 지난 10월 중순에 중국 남부 선전(深圳)에서 열린 경제특구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함으로써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특구개발 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현함으로써 ‘이외촉내’ 전략이 빠른 시간 내에 ‘이내촉외’로 전환되지 않고 점진적인 템포로 진행될 것이라는 뜻을 시사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거듭 강조해온 쌍순환 전략은 결국 수출입에 의존하던 중국경제가 내수 위주의 경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커다란 방향을 제시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20년 1~7월 우리 경제의 수출의존도는 전경련 집계로 중국이 25.8%, 미국 14.7%, EU 9.9%, 일본 5.2%의 구조를 갖고 있다. 일본으로부터의 산업 이전(移轉)으로 경제 발전을 시작한 우리 경제는 미국 의존형에서, 1992년 한중수교를 전후해서 중국 의존형 외향형 경제 구조를 갖게 됐다. 중국 경제라는 거함이 내수 위주의 방향 전환을 한다면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1위인 우리 경제도 방향전환을 할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특히 마오시대 제1의 혁명에 대한 이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치 지도부로서는 덩샤오핑의 제2의 혁명에 이어 진행될 전망인 중국공산당 제3의 혁명에 주목도를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논설고문> 광둥성 이틀째 시찰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 (산터우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3일 남부 광둥성 산터우의 옛 시가지를 돌아보며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담화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12일부터 광둥성에 대한 시찰에 나섰다. j 2020-10-26 03: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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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의 지피지기]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박승준의 지피지기(知彼知己) 중화인민공화국의 지형은 서고동저(西高東低)로 되어있다.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그래서 황허(黃河)와 장강(長江)은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중국 땅의 서쪽 끝에는 파미르 고원이 있다. 파미르는 현지 거주민인 타지크족의 언어로 ‘세계의 지붕(世界屋脊)’이라는 뜻이다. 고대로부터 중국과 유럽은 이 파미르 고원을 사이에 두고 서로 따로 떨어져 살아 왔다. 파미르 고원을 사이에 둔 중국과 유럽의 분리상태가 무너진 것은 18세기 유럽의 산업혁명 때문이었고, 산업혁명은 1765년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으로 시작됐다. 사람의 노동력과 소, 말 등 가축의 힘만이 동력이던 산업혁명 이전 시대에서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인류사회는 새로운 동력을 갖게 됐고, 산업혁명의 결과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군함을 갖게 된 영국은 청나라 대포보다 훨씬 먼 거리를 날아가는 함포를 장착하고 1840년 중국 남부를 공격해서 아편전쟁을 일으켜 홍콩을 150년 조차지로 확보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앞세운 유럽은 청 왕조가 지배하는 중국을 반식민 상태로 만들어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세계사 흐름을 만들어냈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중국어 발음 ‘장’은 한자로 ‘疆(강)’이라고 쓴다. 이 글자의 오른쪽 부분을 자세히 보면 가로로 그은 세 개의 선과 그 세 개의 가로선 사이에 두 개의 밭 ‘田(전)’자로 이뤄져 있다. ‘疆’이라는 한자는 형상문자로, 맨 위의 가로 선은 알타이산맥을 가리키고, 그 아래의 밭 田자는 준가르(Zhunngar · 准噶尔)분지를 가리킨다. 가운데의 가로 선은 천산(天山) 산맥을 가리키며, 그 아래쪽 밭 田자는 중국 사람들이 타리무(塔里木)분지라고 부르는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중국인의 관점에서 이 사막에 들어가면 죽어서도 못 돌아 나오는 죽음의 사막이었다. 물론 지금은 매장량을 알 수 없는 석유와 천연가스, 각종 지하자원의 보고(寶庫)가 되어있다. 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리키는 밭 田자의 아래쪽 가로 선은 옥(玉)으로 이뤄졌다는 쿤룬(崑崙)산맥을 가리킨다. 중국 입장에서는 톈산산맥 남북의 준가르 분지와 타클라마칸 사막 일대를 ‘疆’이라고 부르고, 그 동쪽을 ‘강역(疆域)’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疆’은 영어로는 ‘boundary’로 번역된다. 이 글자는 마치 하늘 위에서 이 지역을 내려다본 듯이 글자 하나에 지역의 특성을 그려 넣었다. 이 疆의 북쪽 분지, 알타이산맥 남쪽과 톈산(天山)산맥 북쪽에 위치한 준가르분지 지역에 살던 준가르 민족을 18세기 청의 건륭황제가 복속시켜 새로운 강역에 포함시켰다고 해서 ‘신장(新疆)’이라고 이름붙였다고 중국인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 위구르(維吾爾 · Uygur)인들을 대표로 하는 소수민족 자치구가 성립된 것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6년 뒤인 1955년 10월 1일이었다. 이 지역은 원래는 소련의 영향권 안에 있던 이스트 투르키스탄(東突厥 · East Turkistan) 정부가 있었으나, 소련 공산당 최고 권력자 스탈린과 중국공산당 주석 마오쩌둥(毛澤東)의 협상 결과 중국공산당 영향권으로 넘어갔다는 것이 미국과 유럽 국제정치학자들의 시각이다. 거기에다가 마오는 1949년 9월 21일 중국공산당 주도로 개최된 제1차 인민정치협상회의에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이스트 투르키스탄 권력자 5명을 참가하도록 초청했는데, 이 5명이 탄 비행기가 이 지역 중심도시 우룸치에서 베이징으로 날아가는 도중 추락해 모두 죽는 바람에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자치정부가 탄생했다고 미국과 유럽의 역사학자들은 주장한다.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중국 지방정부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넓이는 166만㎢로, 중국 국토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한반도 면적의 7.5배에 달한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크스탄, 파키스탄, 몽골, 인도, 아프가니스탄 등 8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중국이 ‘주변국가(周邊國家)’라고 부르는 인접국과 맞닿아있는 국경선의 길이는 5600㎞에 이른다. 중국공산당의 고민은 이 지역이 1955년 10월 1일 ‘신장위구르자치구’로 편입되기 이전에 존재하던 ‘동돌궐(東突厥)’ 즉 이스트 투르키스탄(East Turkistan) 국가의 회복을 목표로하는 분리독립 운동이다. 미국과 유럽은 중국정부가 이 분리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위구르(Uygur)족을 중심으로 한 소수민족들을 대거 체포해 수용소에 수용하고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들어서는 각종 생체정보 빅데이터와 스마트폰, 드론, 위성 감시 장치 등 각종 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소수민족들의 이스트 투르키스탄 분리독립 운동을 탄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들어 신장위구르 분리독립주의자들은 동남아를 경유해서 중동의 이슬람국가(IS)의 테러리스트와 연결을 시도하고 있고, 중국 정부는 신장위구르 분리독립주의 세력 가운데 무장투쟁을 벌이는 세력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미국과 유럽에 대해 “테러리즘은 중국과 서방사회 공동의 적”이라는 논리를 세워 “신장위구르 분리독립 세력은 중국과 미, 유럽이 공동 대처해야 할 집단”이라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2015년 터키 앙카라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테러리즘의 피해국가”라고 주장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이스트 투르키스탄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격은 국제 공조를 해야할 사안”이라면서 “우리 중국은 테러리즘에 대해 유엔이 주도하는 앤티 테러리즘 종일전선을 구축해서 국제사회가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미르 고원과 그 동쪽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중국, 동아시아와 유럽은 서로 분리된 채 근대까지 따로 역사를 써왔고, 중국과 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통하는 길은 현재 위구르 자치구의 가운데를 동서로 가르지르는 톈산산맥을 따라 난 길 실크로드가 유일한 통로였다. 중국 동부의 장쑤(江蘇), 저장(浙江)성에서 생산된 비단과 차(茶)가 이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를 비롯한 유럽 각국으로 비싸게 수출됐다. 톈산산맥 북쪽으로 난 길은 톈산북로였고, 남쪽으로 난 길은 톈산남로였다. 중국과 동아시아에서 남아시아의 인도로 가는 길은 일단 실크로드를 따라 타클라마칸 사막을 통과한 후 파미르 고원에 이르기 전에 남하해야 인도로 갈 수 있었다. 당나라의 현장(玄奘 · 602 ~ 664)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나 신라 혜초(慧超 · 704~787)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모두 실크로드를 따라 현재의 신장위구르 지역을 통과해서 남하해 천축(天竺)이라고 부르던 인도에 가서 불경을 공부하고 수집해온 기록이다. 혜초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당나라 시인 이태백(李太白 · 701~762)은 관리로 등용되지 못한 울분을 달래기 위해 투르판 등 신장위구르 지역을 여행하면서 시를 남겼다. 위구르족은 투르판을 포함한 타클라마칸 사막 곳곳의 오아시스 지역에 퍼져 사는 유목민족으로, 2010년 중국 인구센서스 결과 1006만9346명을 기록했다. 한족을 포함한 전체 인구는 2523만여명으로 집계된다. 위구르족은 180㎝가 넘는 성인 남자가 많을 정도로 체격이 큰 민족이다. 얼굴 생김새는 중동인에 가까우며 대부분 이슬람교를 신앙으로 갖고 있고, IS를 비롯한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연결해 분리독립을 시도하고 있어 중국당국에 문제를 안겨주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중국 정부가 감염현황을 발표할 때 다른 지역은 모두 성(省)이나 자치구(自治區) 당국 명의로 발표했으나, 신장위구르자치구만은 ‘신장생산건설 병단(兵團)’ 명의로 발표했다. 이 병단이란 조직은 이 지역이 자치구로 선포되기 전인 마오쩌둥 시절 1954년 10월 7일에 중국 인민해방군 제1야전군이 조직한 행정-군사-기업 3원1체의 조직으로 중국공산당의 직접 지휘를 받는 조직이다. 바이러스 감염자 숫자를 신장위구르 자치구 정부가 발표하지 않고 군 조직인 생산건설 병단이 집계해서 발표되는 점을 보면 현재 이 지역이 중국 인민해방군이 행정조직을 대신하고 있는 지역임을 말해준다. 분리독립 세력의 테러가 얼마나 빈번하게 벌어지는지도 유추하게 해준다. 신장위구르 자치구 지역에 대한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체포와 수용소 건설, 인권탄압을 둘러싼 미국, 유럽과 중국의 다툼에 대해 우리 정부는 유사시에 전략적 카드로 활용하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사각(Quad) 안보협력’은 태평양 통제권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읽을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전략적 관심을 본격적으로 기울여야 할 부분은 바로 태평양을 사이에 놓고 빚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흐름이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최근 예정했던 방한을 취소하자, 왕이 외교부장도 예정했던 방한을 취소하는 모습은 현재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잘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논설고문 신장위구르 자치구 철저 관리 당부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월 26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3차 중앙신장공작좌담회 이틀째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민족 대통합을 당부했다.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의 신장 인권 문제 공세에 맞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j 2020-10-07 02:4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