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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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경제 수석논설위원
- 가천대 교수
- 前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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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의 Now&Future] 유례없는 美中 기술패권 경쟁 …尹대통령이 풀 '워싱턴 방정식'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는 한반도의 복잡해진 안보 정세가 만들어 내는 ‘부담의 연립방정식’을 풀기 위한 고난도 행보다. 우리의 안보 정세를 가장 크게 흔드는 미·중 대결 구도는 훨씬 세련된 격돌로 진화하면서 서로를 난적(難敵) 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새 국가안보전략에서 안보정책의 요체로 외교·정보·군사·경제의 약자를 나열한 DIME(다임)을 강조하며 ‘국력의 모든 요소를 망라해 전략적 경쟁자를 물리치겠다’고 적시했다. 미국 대통령의 평일 집무는 ‘인텔리전스 브리핑’이라고 부르는 정보분석 보고로 시작된다. 중앙정보국(CIA) 등이 국제 정세를 설명한다. 윤 대통령은 방미 기간 중 미국의 반중국 정서와 대중(對中)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현장 점검에서 미·중 대결의 근원이 ‘테크노 헤게모니 경쟁’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이는 대통령뿐 아니라 정치인, 관료, 기업인들 모두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DIME을 하나로 엮는 끈은 바로 기술이다. 반도체에서 양자컴퓨팅, AI(인공지능)의 한 영역인 챗GPT 등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기술패권 경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미·중 양국이 내놓고 있는 기술 중심의 산업정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국, 신산업정책 위한 R&D 정책 강화 기술 경쟁력과 상업화, 공급망 강화를 통한 제조업 부활 겨냥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 안보 관점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와 배터리 등 공급망을 강화하고, 국내 제조업을 부활시키기 위한 신산업정책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2024회계연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의 R&D 우선 항목과 연방정부 연구개발 예산안, 미국의 신산업정책을 추진하는 핵심 기관인 국립표준연구소(NIST)의 예산안에서 잘 나타난다. 미국은 R&D 정책에 경제 안보, 중요 기술, 기술 경쟁력과 상업화는 물론 기후변화와 청정 에너지를 포함시켜 R&D를 산업정책 실현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중시한 종래의 관행에서 벗어나 중요 기술의 개발과 상업화를 가속화함으로써 미래 산업과 제조업에서 미국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3개 반도체·과학법 수행기관에 많은 연구자금 배분 NIST, 제조업 공급망 강화를 위한 제조 프로그램 예산 증액 구체적으로 연방정부는 2024회계연도 예산안에 과학·기술·혁신 관련 연구개발 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2100억 달러를 편성했다. 이 예산안은 특히 국립과학재단(NSF), 에너지부 과학국, NIST 등 3개 반도체·과학법 수행기관에 많은 연구 자금을 배분하고, 첨단 제조업, AI, 생명공학, 반도체, 양자과학 등 중요·신흥 기술에 대한 R&D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의 신산업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NIST 예산 규모는 전년보다 35억8500만 달러(29%) 늘어났다. NIST는 제조업 공급망 강화를 위한 제조 프로그램과 중요 노동력 개발 프로그램 예산을 많이 늘렸다. 중요·신흥 기술 연구(2000만 달러)와 국내 공급망 강화(800만 달러)를 비롯해 미국 전역의 16개 첨단 제조연구소를 지원하기 위한 민관 협력 제조 네트워크 프로그램인 ‘매뉴팩처링 USA’ 예산은 6030만 달러, 중소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제조 확장 파트너십(MEP)’ 예산은 1억90만 달러 늘어났다. 중국, 과학기술 행정체제 개편 단행 미국과 기술패권 대처···과학기술 자립 가속화 겨냥 중국은 미국과 벌이고 있는 기술패권 경쟁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과학기술 행정체제를 개편했다. 그 골자는 과학기술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당 중앙위에 중앙과학기술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달 5∼13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심의·의결을 거친 뒤 같은 달 16일 관계기관들에 이 같은 내용의 ‘당·국가기구 개혁 방안’을 통지했다. 이 같은 조치는 시진핑 국가주석 주도 아래 과학기술과 산업정책에 대한 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과학기술 자립을 가속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학기술부 기능 축소···소관 업무 타 부처 대거 이관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신설···당 중앙의 컨트롤타워 그동안 과학기술부가 맡았던 소관 업무들이 공업정보화부, 농업농촌부, 생태환경부를 포함한 타 부처로 대거 이관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가자주혁신모델구, 국가하이테크산업개발구 등 과학기술원구 건설, 과학기술서비스 지도, 기술시장과 기술중개조직 발전 등 업무를 공업정보화부로 이관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일부 과학기술부 소속 기관도 타 부처로 이관된다. 중국농촌기술개발센터는 농업농촌부로, 중국생물기술발전센터는 국가위생건강위원회로 넘어간다. 중국 공산당은 과학기술부의 자금 배분 관련 역할도 조정했다. 과학기술부가 개별 과학연구 프로젝트의 심사·관리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한편 주로 연구기금전문관리기관의 운용관리를 감독하도록 했다. 그 대신 과학연구 프로젝트 전체 실시 상황에 대한 감독·검사, 과학연구 성과의 평가를 강화하도록 규정했다. 과학기술부 기능 축소와 함께 별도의 중앙당 조직으로서 중앙과학기술위원회가 신설된다. 중앙과기위원회는 과학기술 활동에 관한 당중앙위원회의 통일된 지도력을 강화하고, 국가혁신시스템의 건설과 과학기술시스템의 개혁을 집중적·통일적으로 계획·조정·추진하는 컨트롤타워로서 당 중앙의 정책·의사결정기구다. 중앙과기위원회 사무국은 과학기술부가 맡는다. 이 같은 중앙과기위원회 설립은 “과학기술의 자립자강(自立自强)을 촉진하기 위한 당 중앙의 의지와 결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위하이보(于海波) 베이징사범대학 교수는 설명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는 존속되며, 공산당 중앙의 중대한 과학기술정책의 결정을 맡아 책임을 지는 한편 중앙과학기술위원회에 대한 보고 의무를 가지게 된다. 국무원 산하 국가과학기술윤리위원회는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산하의 학술적인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위원회로 바뀐다. 국가데이터국 설립···디지털 경제를 효율적으로 추진 디지털 경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산하에 국가데이터국이 새로 설립된다. 국가데이터국은 중앙네트워크보안·정보화위원회에서 디지털 중국건설계획 수립, 공공서비스와 사회 거버넌스 정보화 추진 등 업무를 넘겨받는다. 또한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서 디지털 이코노미 발전을 향한 조정과 디지털 인프라 배치 추진 등 업무도 넘겨받는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은 이렇듯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다시 요약하자면 미국은 민주·공화 양당의 정권을 거치면서도 제조혁신을 핵심 국가전략 과제로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나아가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한 거액 보조금 지급을 견인차로 반도체와 배터리를 포함한 주요 제조업 부활을 내세운 신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신산업정책을 뒷받침하는 2024회계연도 과학·기술·혁신 R&D 예산안은 제조강국인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비해 중국의 과학기술 행정체제 개편은 미국의 기술패권과 관련한 압력에 맞서기 위한 과학기술 자립을 겨냥하고 있다. 과학기술부의 많은 업무를 공업정보화부를 포함한 다른 부처로 넘긴 것은 과학기술을 효율적으로 산업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령탑 역할을 하는 중앙과학기술위원회는 과학기술 정책과 산업정책의 연계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중국이 왜 과학기술 행정체제를 전폭적으로 개편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한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에 협조해야 하는 처지다. 중국은 이러한 미국과 한국의 움직임에 반발하면서 과학기술 자립으로 그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러한 형국에서 생명선을 찾아야 하는 한국은 혁신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제조강국 건설에 미래를 걸어야 한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04-26 22: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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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의 Now&Future] '데이터 강국'의 길 …AI 전략에 있다 요즘 AI(인공지능)가 만병통치약(panacea)처럼 전 세계에 걸쳐 맹위를 떨치고 있다. AI는 여러 차례 붐을 거쳐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지만 이번에는 마치 절정에 이르는 듯한 폭발적 기대를 뿜어내고 있다. 1956~1960년대 제1차 AI붐은 미국에서 열린 연구자들 회의에서 ‘인공지능’ 개념이 등장하며 시작됐다. 1980년대 제2차 AI붐에선 지식을 겸비해 전문가처럼 행동하는 AI 개발이 성행했다. 제3차 AI붐은 심층학습 혁신, 데이터 증가, 계산능력 확대를 특징으로 2010년대에 나타났다. 영상과 음성의 인식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2020년대 들어서면서 새로운 진화의 단계에 진입한다. 2020년 인간과 같이 문장을 쓰는 ‘GPT-3’가 등장했다. 2022년 문장을 기반으로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AI가 속속 출현했다. 드디어 올해는 ‘챗GPT’ 등 대화 AI의 도입이 본격화하면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창조력을 변혁시키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현대인의 삶은 AI에 많은 힘을 얻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와 알렉사 등 음성인식 AI를 사용해 검색과 주문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 징표 중 하나다. 최근 등장한 미국 오픈AI의 ‘챗GPT’는 보통 인간이 대답하듯 자연스럽게 복잡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을 정도다. AI가 사회에 널리 침투한 배경에는 사진, 음성, 글 등 다양한 빅데이터가 사용 가능해진 데 있다. 게다가 그것을 분석하는 기계학습(특히 심층학습)의 기술 진보로 음성 데이터를 통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예상하거나 화상 데이터를 통해 적절한 행동을 예측하는 정밀도가 현격히 높아졌다. 예컨대 비즈니스, 특히 마케팅 세계에서도 빅데이터와 AI가 주목받고 있다. 마케팅 업무에서 관심 있는 예측 대상은 고객의 행동과 그 배후에 있는 동기일 것이다. 미국 경영학자 필립 코틀러는 마케팅이란 사람들과 사회의 요구를 특정하고 이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객의 행동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은 마케팅의 핵심이다. 빅 데이터와 AI를 통한 고객 행동 예측이 마케팅에서 사용되는 사례로는 넷플릭스 추천 엔진이 있다. 고객이 과거 열람한 동영상을 바탕으로 아직 열람하지 않은 동영상 중 어떤 것을 좋아할 것인지 예측해 추천 형태로 표시하고 있다. 전자상거래(EC) 기업도 고객의 과거 행동 데이터를 토대로 쿠폰 등 마케팅 시책을 결정하고 있다. 이들은 데이터를 이용해 어떤 고객에게 어떻게 접근할지 결정하는 좋은 예다. 민간 쪽에서 불던 이러한 바람은 이제 공공부문으로 불기 시작했다. 기업에서 정부에 이르기까지 데이터 분석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간과 정부 부문의 데이터를 적절히 분석하면 친숙한 문제에서 의외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며, 산업정책 등 큰 과제에도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최근 진보가 현저한 데이터 분석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많은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의 일기예보와 꽃가루 알레르기 경보 발령, 병원 치료와 입원자 통계의 연관성을 분석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는 연구는 정부 통계를 적극 활용하는 사례다. 일본 도쿄대는 민간 데이터를 분석해 산업정책에 활용하는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는 AI의 진보·보급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기존 연구들은 어떤 작업이 AI로 대체되기 쉬운지 가늠하고 AI가 어떤 일자리를 빼앗을지 예측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AI가 직장에 도입됐을 때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개별 근로자가 AI를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미시(微視) 데이터를 입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쿄대 연구팀은 ‘AI 이용이 근로자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택시기사들에게 주목하고 분석했다. 배차 앱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익명화된 운전자 주행 이력 데이터를 제공받았다. AI는 승객이 있을 확률이 높은 지역으로 운전자를 유도하는 이 회사의 기술이다. 과거 수요 패턴에서 미래 수요를 기계학습으로 예측하는 기술로 실무 세계에서 폭넓게 응용되는 전형적인 수요예측 AI다. 이를 통해 공차 시간이 운전자의 총 근로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낮춰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했다. 리스킬링(재교육) 관점에서도 현시점에서는 어렵다고 생각되는 소셜 스킬(사회 속에서 타인과 양호한 관계를 구축하는 힘)도 AI가 향후 한층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민관 데이터를 이용한 분석 결과가 정책 결정과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 연구팀은 현재 데이터 분석으로 얻은 ‘실증 결과에 근거한 정책 형성(EBPM)’을 침투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게오카 히토시(重岡仁) 도쿄대 교수는 “행정데이터는 ‘국민의 공유재산’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AI 도입에 의한 생산성 향상 효과를 한층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그는 두 가지 포인트를 지적했다. 하나는 연구자(분석)와 정부(정책)를 잇는 인재 육성이다. 분석상의 가정과 전제조건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연구 성과를 정책에 적절히 반영할 수 있는 인재가 행정기관에 많이 포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데이터의 정비·개선이다. 그는 데이터 분석에서 연구자를 ‘셰프’, 데이터를 ‘식자재’로 비유한다. 셰프의 솜씨도 중요하지만 식재료의 질 향상이 더 좋은 ‘요리(=에비던스)'를 만들어내는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데이터의 질과 양에서 일본은 한참 뒤졌으며 코로나19 사태는 그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통계에 대한 이용 신청 후 데이터 입수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아 접근의 어려움이 시기적절한 연구를 저해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 점에서 앞서 가고 있는 북유럽 국가에서는 세무와 사회보험 등 업무에서 수집하는 행정데이터의 이용을 연구하고 있다. 사생활 보호를 고려해 출생 시 체중에서부터 학교 성적, 병원 입원 이력과 약 처방 이력, 과세 수입, 연금액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들이 개인식별번호로 묶여 있어 연구자들은 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책 형성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일본 여당인 자민당은 지난해 11월 대화 AI 챗GPT의 등장을 계기로 대화 AI를 정부와 지자체 등 행정에 활용하는 방안을 최근 제안했다. 답변 작성을 지원하고 주민들의 문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이 밖에 지식과 문장 요약, 조사 작업, 프로그래밍 등도 대상이다. 업무를 효율화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민당 디지털사회추진본부는 이를 실행하기 위한 프로젝트 팀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디지털청 등 관계 부처는 물론 전문가, IT 관련 기업이 참가해 논의를 거듭해 왔다. 챗GPT의 등장으로 그동안 불가능했던 전문적인 업무를 대행할 수 있는 툴이 많이 탄생할 전망이다. 정부와 의회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행정 서비스는 효율뿐만 아니라 정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행정의 잘못으로 주민에게 손해가 생기면 소송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대화 AI의 답변으로 기밀정보가 유출될 우려도 따라 다닌다. 그 원인으로 학습 데이터가 편중되거나 사용하는 데이터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리스크를 두려워해 새로운 AI 도입을 피하면 ‘성장의 기회도 물거품이 된다’. 자민당은 의회와 정부, 그리고 기업들에 이 같은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자민당이 작년 ‘Web3’에 이어 이번에 대화 AI 활용을 제안함으로써 정부 내에서 AI 활용을 위한 검토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화 AI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기밀 유지와 안전 대책 등 환경 정비가 필요하지만 세계 각국은 아직 탐색 단계에 머물고 있다. AI 활용에서 리스크 관리는 국제표준화기구(ISO)와 미국 NIST(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관련 규격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새로운 규격 개발이 필요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민관 데이터 개방과 정부의 AI 전략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정부는 공공데이터법 제정 10년을 맞아 데이터 생성부터 활용까지 생태계 전반을 활성화하고 ‘디지털플랫폼정부’라는 국정 전략에 맞춰 공공데이터법을 전면 개정한다고 한다. 공공데이터와 데이터 기반 행정 등 공공데이터 총괄·협력을 위한 추진 체계를 강화한다. 공공데이터 개방으로 3년 이내에 범정부적 디지털플랫폼정부의 틀을 갖출 계획이다. 데이터 개방과 공유로 국민 신뢰도를 높이고, 기업 생태계를 지원하며, 정부 업무에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1000여 개 행정·공공기관에서 공공데이터 7만4229개를 개방했다. 혁신성장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지원하는 국가중점데이터 168개 분야를 개방했다. 공공데이터포털에서 데이터 민간 이용은 4393만건을 돌파했다. 지난해 10월 초 기준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모바일 앱 등 민간 서비스 개발은 2797건에 달했다. 조만간 디지털플랫폼정부가 본격 가동될 것이다. 먼저 데이터 이용 절차 간소화 등 정부 통계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정비가 필수다. 기술적인 안전성을 확보한 후 정부 통계와 행정데이터를 ‘국민의 공유재산’으로 제공하는 이점을 사람들이 널리 실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질 높은 실증 연구를 꾸준히 계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데이터 개방 환경 속에서 정부가 솔선수범해 AI 활용을 추진함으로써 환경 정비를 꾀하고 안전 확보를 위한 규칙을 제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민간에서도 대화 AI 활용이 촉진되고 인재 육성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제 세계는 데이터 선진국과 후진국, 데이터 강대국과 약소국으로 구별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새로운 글로벌 질서가 생겨난다. 우리도 예외 없이 그 기로에 서 있다. AI 전략이 데이터 경제 시대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은 이런 AI 전략을 바탕으로 데이터 강국 대열에 반드시 진입해야 한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03-2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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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의 Now&Future] AI혁신과 산업저변 확대, 정부는 움직여라 정부가 금주 초 신성장 4.0 전략을 발표했다. 3대 분야(미래 기술, 디지털 혁신, 신산업 창출) 15대 프로젝트다. 올해부터 5~6년간에 걸친 실행계획의 연도별 로드맵도 밝혔다. 로드맵에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우주 탐사, 양자컴퓨터, 첨단 재생의료, 소형모듈원전(SMR), 인공지능(AI), 차세대 물류, 탄소중립 도시, 스마트 농어업, 스마트 그리드 등 15대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 정책과 추진 일정이 잡혀 있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전략 기술들이지만 특히 주목되는 분야는 역시 AI다. AI 로드맵을 보면 2023년은 AI 학습용 데이터·바우처 지원 확대, 2024년은 전 국민 AI 일상화 프로젝트 추진, 2025~2026년 사람 중심의 AI 개발, 2027년 이후 범용 AI 개발 등으로 짜여 있다. AI 기술 개발 계획은 2~3년 전부터 추진되어 왔으나 이번에 로드맵을 통해 집대성한 셈이다. 나름 야심 찬 모습이나 최근 AI가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터라 보다 긴박감 있는 실행계획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 세계는 가히 AI 시대라 할 수 있다.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회화 등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쓰는 AI가 미국 등에서 속속 탄생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 학습으로 똑똑해진 기반 모델로 불리는 AI가 그 만능성을 드러내며 충격을 주고 있다. AI가 인간보다 우위에 서는 SF 같은 세계가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1960~1980년대에 이은 제3차 AI 붐이 시작된 2010년대 초반 AI가 가속적 진화를 거쳐 인류를 능가하는 싱귤래리티(기술적 특이점)가 2045년에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한 미국 연구자 레이 커츠와일의 책이 주목을 끌었다. 2016년 영국 딥마인드사의 바둑 AI(알파고)와 한국 프로기사 이세돌의 대국은 AI의 급속한 발달을 세계에 알리며 지금의 제4차 AI붐에 불을 댕겼다.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미국 기업가 일론 머스크 등이 AI의 인류 위협을 주장했으며, 컴퓨터화로 사라질 직업을 분석한 영국 옥스퍼드대 논문도 화제를 모았으나 이젠 오래된 작은 얘기로 사라졌다. 이후 미국 조사회사 가트너가 공표하는 첨단 기술 트렌드 ‘하이프 사이클’에서 AI는 2019년에 ‘과도한 기대’에서 ‘환멸기’ 단계로 옮겨 그 과실이 2021년부터 2022년에 걸쳐 빛을 보게 된다. 2020년 오픈AI가 내놓은 대규모 언어 모델 'GPT-3'는 텍스트 번역과 질문 응답 외에 소설도 만들어낸다. 심지어 계산 문제를 풀거나 프로그램 코드를 쓰기도 했다. 2022년에 등장한 고도의 화상 생성 AI는 기술 진화를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AI 연구 비영리단체인 오픈AI의 DALL-E 2(달리 투), 미국 독립계 연구소의 Midjourney(미드 저니), 영국 AI 스타트업 Stable Diffusion(스테이블 디퓨전) 등 화상 생성 AI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기반 모델은 그 규모나 학습하는 데이터의 양, 컴퓨터의 능력을 확대할수록 그 정밀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후 미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거대 모델 개발 경쟁에 속도가 붙었다. 싱귤래리티 제창자 커츠와일은 작년 가을 한 인터뷰에서 싱귤래리티의 전 단계로 2029년에 AI가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춘다고 재차 주장했다. 현재 상황은 그의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6~7일 발발한 인터넷 검색엔진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은 전 세계 톱뉴스가 됐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출자회사 오픈AI의 충격적인 최첨단 AI 기술 '챗GPT‘를 자사 제품에서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터넷 검색에서 압도적 지배력을 자랑해온 구글이 밀려날지 모른다는 예측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전문가들은 ’챗GPT’ 등장으로 경쟁의 씨름판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글의 대항책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진 몇 가지 강점(파이낸셜타임스 분석)을 본다면 향후 승패는 아주 불투명하다. 첫 번째 강점은 경제적인 것이다. 대량의 텍스트 데이터를 미리 읽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장을 생성하는 자연어 처리 AI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이 점에서 생성 AI ‘챗GPT’는 유리하다. 두 번째 강점은 잘 알려진 것처럼 이 회사 소프트웨어가 PC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싸움도 압도적 지배력을 쥔 검색엔진 구글 대 마이크로소프트 빙(Bing)의 오랜 싸움의 재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진짜 강점은 브라우저 Edge(에지)에 있다고 본다. 에지는 테크 관계자들 사이에서 평가가 높다. 이번 발표에서는 에지에 탑재되는 새로운 생성형 AI를 통한 문장 생성 능력과 검색 기술도 선보였다. 키보드 키를 하나 누르면 에지가 화면상 장문의 자료 내용을 순식간에 조목조목 5개 글로 요약해 준다. 그 편리함은 상상하기 어렵다. 세 번째 강점은 생성형 AI 투입으로 선수를 친 것이다. 생성형 AI 경쟁은 마이크로소프트가 3년여 전인 2019년 오픈AI에 처음 약 10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시작됐다. 네 번째 강점은 많은 기업과 깊이 관여해 왔기 때문에 자사를 절대 필요로 하는 고객 기업을 다수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검색엔진이 다양한 사이트에서 정보를 망라적으로 획득하는 크롤링과 함께 고객이 가진 데이터를 자사의 거대 언어 모델에 접목해 개별 기업에 최적의 결과를 출력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인터넷 검색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의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할 수 있다. 각종 소프트웨어가 인터넷 검색의 개념을 바꿔간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사용자가 어떤 작업을 하든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얼마나 찾아내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느냐가 검색엔진의 성패를 결정하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검색 사업이 완전히 새로운 사업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간 2000억 달러 규모가 넘는 인터넷 검색 사업이야말로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시장 그 자체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가 동향은 생성형 AI가 가져올 수 있는 창조적 파괴력을 주식시장도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기술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테크 대기업들이 어느 곳도 이 생성 AI라는 신기술을 자사의 강점으로 살리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금 기술시장 화두는 ‘챗GPT’지만 결국 중심은 AI 시장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더 큰 트렌드는 기업들이 AI 연구를 가속화하면서 산업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는 지금 AI 주도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자연스러운 문장이나 이미지를 생성하는 AI를 비롯해 모든 영역에서 데이터 활용에 AI는 필수가 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세계에 발표된 AI에 관한 연구 논문을 분석하면 IT뿐만 아니라 제약·의료, 에너지, 자동차 등 업종에서도 질 높은 성과가 나왔다. 일본경제신문은 최근 네덜란드 학술정보 대기업 엘제비아의 협력을 얻어 2012~2021년 학술 논문과 학회 논문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누적 논문 수가 많은 기업 톱10에는 미국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6개사, 중국에서는 국유 송전업체인 국가전망, 텐센트 등 4개사가 포함됐다. 일본 최상위는 NTT로 12위였다. 논문 피인용 수를 바탕으로 한 엘제비아 산출의 질(質) 지표에서는 미국 알파벳이 선두였다. 현재의 AI 열풍이 시작된 2012년 시점에 AI 논문을 100편 이상 낸 곳은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뿐이었다. 각 사의 논문 수는 급속히 늘어 2019년 이후에는 상위 10개 기업이 매년 각 100편 이상을 발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논문 발표를 하는 것은 대학과 공적 연구기관이 많지만 AI는 학술적인 연구와 산업 응용 관련이 깊고, 성과를 적극적으로 공표하는 기업도 많다. 지난 10년간 기업별 누적 논문 수 1위였던 IBM은 전 세계에 연구자 3000여 명을 거느리고 AI를 경영 중심축의 하나로 내세운다. 이 회사는 반도체부터 소프트웨어, 윤리 등 사회적 영향에 관한 것까지 폭넓은 AI 관련 연구 주제를 다루면서 음성 인식 등 분야에서 뛰어난 실적을 올려왔다.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비즈니스용 AI ‘왓슨’을 개발해 언어와 음성 관련 등 다양한 서비스를 클라우드로 제공한다. 연구의 질적 측면에서도 기업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다른 논문에서 인용된 횟수가 상위 10%인 주목 논문을 분석했다. 2012년 시점에 주목 논문을 1편 이상 발표한 기업은 36개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90여 개에 달했다. IT 이외 업계에서도 질 높은 성과가 생겨나고 있다. 성장세가 눈에 띄는 분야는 제약·의료, 에너지, 자동차다. 2012년 시점에는 주목 논문을 내고 있는 기업이 각 업계에서 1개밖에 없었지만 2021년에는 제약·의료가 13개, 에너지가 8개, 자동차가 7개로 늘었다. 제약·의료는 진단과 창약(創藥) 등으로 AI 응용이 빠르게 진행되는 분야다. 2021년 주목 논문 수가 가장 많았던 곳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21편)였다. AI를 ‘치료하고 싶은 질병 이해’ ‘약이 되는 분자(分子) 설계’ ‘임상시험 가속’ 등에 활용해 창약을 효율화하려 한다. 이 회사는 반도체 대기업인 미국 엔비디아와 협업하는 것 외에 AI 창약 스타트업인 영국 베네볼런트 AI와는 만성콩팥병, 특발성 폐섬유증 등을 대상으로 5개 이상 신약 후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GE헬스케어는 미국 의료기관·대학 등과 손잡고 의료용 영상을 AI로 해석하는 기술을 향상시키고 있다. ‘에디슨’으로 불리는 AI 활용 서비스를 통해 이 회사의 진단기기를 도입한 의료기관이 활용하고 있다. 에너지업계에서 중국 국가전망은 1억대가 넘는 스마트미터 데이터를 분석해 효율적인 전력 공급을 실현하는 스마트 그리드(차세대 송전망) 등에 AI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트로차이나는 석유자원 탐사 등에 AI를 활용하는 논문을 내고 있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독일 부품 대기업 보쉬가 특출하다. 연구 거점인 ‘보쉬 AI 센터’를 설치해 230개 이상인 동사 공장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을 진행하고 있다. 센터는 설립 3년 만에 초기 투자를 회수해 2021년 현재 3억 유로 가까운 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까지 전 제품을 대상으로 AI를 이용한 개발·제조나 AI 탑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의 AI 열풍은 ‘심층학습’이라고 부르는 기술의 혁신으로 2012년경 시작돼 아직 관심이 시들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유창하게 언어를 다뤄 정교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성 AI'가 연구개발의 주 전장이 되고 있다. 이러한 최첨단의 연구를 견인하는 것은 미국 빅테크들이지만 이제 경쟁은 글로벌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도 민관 일체의 ‘AI 산업기술전략’을 시급히 마련하여 지체 없이 추진해야 할 때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02-24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