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논설위원kjwon54@gmail.com
- 아주경제 수석논설위원
- 가천대 교수
- 前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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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의 Now&Future] '트럼프 트윗놀이'의 끝장을 보는 시선 영구 정지 당한 트럼프 트위터 계정 (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이 8일(현지시간) 정지된 상태를 보여주는 스마트폰의 화면 캡처. 트위터는 이날 "추가 폭력 선동의 위험"을 이유로 그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 [ [곽재원의 Now&Future] 코로나 팬데믹, 제4차 산업혁명의 심화, 미국의 대선은 풀기 어렵게 몹시 엉켜 있다. 적어도 작년 초부터 지금까지 1년 동안은 그래왔다. 오는 20일 미국의 46대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국의 난맥상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심지어 어떤 미디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해도 트럼프 류(流)의 난맥상이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한다. 이른바 ‘위드(with) 트럼프’다. 쏟아지고 있는 많은 뉴스와 분석을 종합해 보면 이 난맥상의 일단(一端)을 ‘미국식 민주주의와 SNS’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국의 모든 것을 상징하면서 그 속살을 드러내기도 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역사는 IT와 네트워크 등 커뮤니케이션 기술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뉴욕타임스와 일본 쇼지츠종합연구소의 미디어 분석을 정리해 보자. 2000년 선거 때 각 후보자들은 인터넷상에서 ‘홈페이지’를 운영했다. 부시(공화당)와 고어(민주당) 두 후보의 정책과 선거 CM(로고송)이 세계에 전해졌다. 2004년 선거에선 ‘블로그’가 유력한 정보발신 수단이 됐다. 민주당 대선 출마자인 하워드 딘은 그것으로 일약 프런트 라인에 올라섰다. 비록 예비선거의 초반전에서 패배하면서 사라졌지만 그는 블로그를 통해 ‘네트워크(가상)와 리얼리티(현실)는 다르다’는 사실을 사람들에 가르쳐 주었다. 미국 정통 미디어들은 이를 ‘일대 사건’으로 평가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조지 앨런 상원의원(버지니아·공화)은 ‘유튜브’로 흘러나간 실언 때문에 낙선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사이버상에서의 실언에 대해 비난과 비방의 댓글이 쇄도한 것이다. 2008년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온라인으로 소액헌금을 대량으로 모으는 데 성공했다. ’크라우드 펀딩‘의 위력을 과시하는 단서가 되었다. 2012년 선거에서는 마침내 정보전달 수단의 주역이 ‘스마트폰’으로 넘어갔다. 스마트폰은 무선 인터넷 접속기능을 가진 휴대전화로 터치가 가능하며 별도의 OS(운용체계)를 갖추고 있어 지능형 단말기의 대명사가 된 디바이스다. 미국 대선을 묘사한 조지 클루니 감독·출연 영화 ’슈퍼 튜즈데이‘(2011년)에서는 선거참모 전원에 새로운 스마트폰이 배포되는 장면이 나온다. 애플이 2007년 발표한 아이폰이 스마트폰의 효시라면 2012년에는 ‘아이폰 5’가 나와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를 연 것이다. 2016년 선거에 이르러 시대가 급변하면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선거전의 주전장으로 떠올랐다. 대선 후보들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대거 이용하면서 ‘페이크 뉴스(가짜뉴스)’를 비롯한 정보조작이 개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른 국가에 의한 선거개입 우려도 커졌다.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아마존, 유튜브 등 SNS 관련 기업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제는 정치·경제·문화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면에서 영향을 미치는 압도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2020년 선거에서는 AI(인공지능), 빅데이터, 5G(5세대 이동통신망)을 포함한 다양한 혁신 기술과 새로운 선거전술이 어우러지며 놀랄 만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왔다. ‘선거 캠프들은 인스타 그램’과 ‘텔레그램’ 같은 신종 서비스도 선거에 최대한 활용했다. 2020년 대선 결과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현직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을 이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4년 전 대선전은 물론 대통령 재직기간 내내 트위터를 중심으로 SNS를 거칠게 구사해 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가 다시 SNS를 통해 선거패배가 부정선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패배 승복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서 여러 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을까. 트럼프는 아마도 자신에 호의적이지 않은 종래 미디어와 많은 SNS의 가담을 지목했을 수 있다. SNS는 정치의 민주화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조역으로서 존재해 왔다. 2020년 대선 이후 즉 포스트 트럼프 시대에서도 누가 뭐래도 정치의 주요 수단으로서 민주주의 체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 분명하다. 민주주의와 SNS의 바람직한 조합이 깨지면서 SNS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우려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주 트럼프 지지자들이 연방의회에 난입한 사건은 큰 의미를 던지고 있다. 이 희대의 사건은 바이든 차기 대통령의 선출 저지를 촉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에 선동된 지지자들이 SNS에 올린 글들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트위터는 8일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정지하고 페이스북도 기한을 정하지 않고 이용을 정지하면서 디지털시대의 민주주의 위기가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1월 6일 수도 워싱턴을 향해 모든 애국자들이여 무장하라”, “우리들 모두의 적에게 통고한다. 전쟁을 원하고 있는가?” 트럼프 지지자들은 보수계의 신흥 SNS인 팔러(Parler)로 옮겨가 의회 습격을 선동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2020년 11월 대통령 선거 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는 주장을 SNS로 퍼트렸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 때부터 약 2개월간 트럼프 대통령의 친족과 측근은 트위터에 부정선거에 관한 글을 200회 이상 올렸고, 리트윗된 수는 약 350만회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Stop the steal’(선거를 훔치지 말라)을 기치로 내건 극우그룹들이 난립하면서 팔러와 갭(Gab)으로 무대를 옮겨 지지자들을 계속 선동했다. 팔러는 11일 결국 정지됐다. 아마존닷컴이 이날 팔러가 폭력적인 선동에 충분히 대처하고 있지 않다며 이 회사 사이트의 관리 서비스를 끊었다. 구글과 애플은 이미 애플리케이션 몰에서 팔러를 삭제했다. 2018년 창업한 팔러의 존 메이츠 최고경영자(CEO)는 “경쟁을 파괴하는 거대 IT의 공동 공격”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대형 SNS들이 미국 대통령 선거대책으로 콘텐츠 관리를 엄격하게 하자 대체 서비스로서 애플리케이션 몰서 팔러의 다운로드 수가 급증세를 보여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은 규제가 느슨한 ‘최후의 보루’로 여겨온 팔러도 잃고 말았다. “트위터가 없었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지지자에 직접 소통하면서 지지 기반을 확대했다. 취임 후에도 9000만명 가까운 팔로어들에게 트윗을 계속해왔다. 폭스 뉴스 같은 보수 미디어와 SNS가 트럼프 영향력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연방의회 점거 사건 이후 IT(정보통신기술) 대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미디어를 활용한 사회 분열을 가져오는 트럼프 SNS 선동 정치는 종언을 고하고 있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우선 트위터의 영구정지에 대해 논의가 무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SNS와 민주주의의 관계다. 트위터는 사람들이 생각을 전하고 다양한 정보를 얻는 장(場)이다. 거기에서의 활동을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미디어 사회학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에는 2개의 흐름이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초이며 개인의 인격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것으로서 특히 중시되고 있다. 반면 유럽에서는 과거 나치의 존재도 있어서 사회에 중대한 영향과 위험을 초래하는 표현은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가스실은 없었다’고 진술한 언론에 처벌을 가했다. 인도주의에 반하다는 죄목이었다. 과거에 이 같은 주장을 한 책을 출판한 이에 대해서도 처벌한 사례가 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 대해 트위터社는 반복해 경고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폭력을 유도하는 듯한 트윗을 반복했기 때문에 폐쇄에 이르게 된 것이다. 미국과 같이 표현의 자유가 중시되는 나라에서도 일정 요건이 있으면 제한은 인정된다는 뜻이다. 국가와 세계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이라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사의 계정을 정지시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점을 논의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11일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정지한 트위터의 결정에 대해 의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는 “법에 기초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이 회사의 대응을 비판했다. 대변인을 통한 공식 코멘트다. 그는 의사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일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와 SNS의 관계, SNS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화두를 던진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SNS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따져보면서 순기능을 살리는 방안을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트위터가 만든 비현실 세계는 트럼프 극장이다. 트위터 중지는 트럼프 극장의 강제종료라는 비극이다. 민주주의 방식으로 이러한 비극은 막아야 한다. 2021-01-13 07: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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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의 Now&Future] 대만.싱가포르, 우린 '코로나 찬스" 썼다오 · [국민들에게 "경제·사회활동제한 완화 이후에도 감염방지책은 철저히 이행되어야 한다"고 당부하는 리 총리 =14일, 싱가포르 중심부 (사진=정보통신부 제공)] [곽재원의 Now&Future] ‘봄의 우등생인 독일과 한국이 물러나고, 결국 올해 최고 우등생은 싱가포르와 대만이 차지하게 됐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세계 나라들의 실력이 12월 마지막 질주에서 올해 승부가 드러나고 있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집계에 따르면 2020년 12월 21일 현재 세계의 코로나19 누적 감염자는 총 7690만명, 이 중 회복자는 4340만명, 사망자는 170만명에 이른다. 인구 2350만명의 대만은 감염자 766명, 회복자 627명, 사망자 7명으로 거의 코로나를 피해간 모습이다. 초기 방역에 실패했다가 재빨리 만회한 싱가포르는 인구 570만명 가운데 누적 감염자 5만8430명, 회복자 5만8287명으로 99.8%의 완치율을 보이고 있다. 사망자는 29명이다. 한국은 누적 감염자가 싱가포르보다 적은 5만591명, 회복자는 3만5155명으로 완치율은 69.5%로 낮은 편이다. 사망자는 698명에 이른다. 코로나 방역을 경마에 비교하자면 대만은 초지일관 페이스를 지키며 수위를 달려왔고, 싱가포르는 가속도를 붙이며 계속 추월을 해온 형국이다. 21일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출하분이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보건당국은 앞으로 2~3주 내에 접종을 개시한다고 한다. 백신을 벨기에로부터 공수한 것은 싱가포르 항공이다. 이에 앞서 싱가포르는 지난 14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화이자 백신의 사용을 승인했다. 리셴룽 총리(68)는 연말에 백신접종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리 총리는 "내년 3분기(7∼9월)까지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백신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과 장기 거주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되 의료진과 노인, 취약계층은 조기에 백신을 접종할 계획이라고 했다. 싱가포르 당국은 이와 관련해 미국의 다른 제약업체인 모더나, 중국의 백신 개발업체인 시노백이 개발한 백신을 포함해 유망한 백신 후보에 대한 선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조기 지불해 10억 달러(약 1조900억원) 규모 이상의 백신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이러한 안전방역 태세가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이 코로나19 백신을 각국에 분배하는 허브기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온 창고나 냉동차 등에서 끊김 없는 콜드 체인(저온 물류)을 정비, 싱가포르를 경유해 구미 등 생산국으로부터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시장에 재빠르고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체제로 강화했다. 여객 이용이 침체되는 가운데 백신 수송으로 화물기의 발착을 늘려 침체된 항공산업을 지탱하기 위한 것이다. 공항 운영회사인 창이 에어포트그룹과 싱가포르 민간항공국 외에 싱가포르 항공, 공항 지상업무를 맡고 있는 디나타와 SATS, 물류회사 DHL 등 항공화물 관련 민관 18개 조직이 백신 수송에 관한 ‘창이 준비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창이는 최근 부가가치가 높은 의약품 수송에 힘쓰고 있어 이미 각사가 독자적으로 설비투자를 하고 있다. 이 기반에서 태스크포스를 통해 업계 전체의 협조를 강화함으로써 큰 수요가 확실시되는 코로나 백신을 원활하게 수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창이를 경유해 물류 인프라의 정비가 늦어지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지방도시 등에 효율적으로 배송할 수 있다고 한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항공계열인 디나타는 백신을 채운 컨테이너를 항공기에서 저온환경을 유지하면서 창고에 옮길 수 있는 전용차를 개발해 지난 11월 창이에 2대를 배치했다. 디나타와 SATS는 공항 내에 영하 25도까지 대응할 수 있는 총 9000㎡의 창고를 갖고 있으며, 연간 37만5000t의 저온 화물를 처리할 수 있다. 공항에 인접한 보세구에는 물류회사가 다수의 창고를 짓는다고 한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허브 공항인 창이는 구미와 아시아로부터의 여객 환승거점으로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 대책으로 각국이 출입국을 규제하면서 이용자가 3월부터 급감했다. 창이 에어포트 그룹 측은 코로나 백신이 확산되면 항공여행이 되살아나 여객 이용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세계 강국들이 제조업의 서플라이 체인(공급망) 경쟁을 할 때 강소국인 싱가포르가 콜드체인을 장악하려는 차별적인 전략에 외신들은 주목한다. 지난 12월 7일 싱가포르에는 코로나 시국에서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전 세계 각국의 정·재계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 경제문제 등을 논의하는 자리인 세계경제포럼(WEF)이 연례회의 일명 ‘다보스 포럼’을 내년 5월 스위스가 아닌 싱가포르에서 개최한다고 밝힌 것이다. WEF는 보도자료에서 “2021년 특별 연례회의를 5월 13∼16일 싱가포르에서 개최한다”며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심사숙고 끝에 싱가포르가 회의 개최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보스포럼이 1971년 시작된 이후 스위스 밖에서 개최되는 것은 2002년 뉴욕에 이어 두 번째다. 2001년 뉴욕 동시 테러로 슬픔에 잠긴 뉴욕 시민을 위로한다는 명목이었다. 싱가포르가 새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코로나19 통제가 비교적 잘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 덕분이다. 이날 기준 싱가포르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만8000여명으로 일일 신규 확진자는 13명이었다. 이에 비해 스위스는 이날 현재 확진자가 총 35만4000여명대로 일일 신규 확진자가 거의 1만명에 달했다. 클라우스 슈밥 WEF 창립자는 “2021년 싱가포르 특별 연례회의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한 이후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 리더들이 처음으로 직접 만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싱가포르 포럼은 ‘위대한 재설정(Great Reset)’을 주제로 내걸고 있다. 이번 포럼에선 코로나19가 몰고 온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전환 가속화, 사회 전체에 봉사하는 그리고 인간 중심적인 신기술 시대의 도래 등 굵직한 이슈들이 논의될 전망이다. 싱가포르로선 사상 최고의 국가선양의 기회가 되는 셈이다. 대만도 엊그제 국제보건기구(WHO)로부터 대만식 코로나 대책과 경제방어에 대해 극찬의 메시지를 받았다. 코로나19의 진원지로 알려진 중국은 정부가 강력히 나서 감염을 차단시켰다. 중국과 대립하는 민주주의 국가 대만은 감염억제에 한층 더 성공했다. 중국의 견제에 밀려 WHO 옵서버국가의 대우도 제대로 못받고 있던 나라를 WHO가 연말에 새삼 칭찬하고 나온 대만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대만방역이 성공한 이유는 초기단계에서 역내에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감염증 관련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러한 신속한 대응의 배경에는 2003년 37명의 사망자(관련 사망자를 합치면 73명)를 낸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의 경험이 있었다. 대만은 당시 감염증 대책을 담당하는 질병관제서(CDC)가 없었다. 게다가 중국의 압력으로 WHO의 정보도 얻지 못했다. 당연히 행정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중앙의 지시에 지방자치체가 따르지 않고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반성으로부터 2004년에 전염병 예방법을 개정해 긴급 시에 행정부문을 아우르는 대책본부를 설치할 수 있었다. 대책본부는 민간의 부동산과 의료관련 물자를 징용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 대만은 록다운(도시봉쇄)을 하지 않고, 코로나19 봉쇄에 성공했다. 지난 9월 11일 일본 인터넷 포털인 라인(LINE)이 개최한 연차 이벤트 ‘라인 데이 2020’에서는 대만정부의 디지털담당 장관인 오드리 탕(唐鳳)이 온라인으로 참가해 대만의 코로나 대책과 AI(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소감을 밝혔다. 탕 장관은 성공한 대만의 코로나19 대책에 ‘3개의 F’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즉 Fast(고속), Fair(공평), Fun(재미)의 3F다. 탕 장관은 ‘고속’과 관련해 “2019년 12월 대만의 소셜미디어에서 중국 우한의 신종 바이러스가 화제로 떠올랐다. 이에따라 의료기관은 즉시 우한에서 대만으로 향하는 항공편 승객에 대해 검역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2020년 1월 1일로 다른 국가들보다도 열흘 이상 빨랐다. 사스 교훈으로 매년 훈련을 해 온 성과라고 한다. ‘공평’의 경우 마스크의 배포에서 알 수 있다. 대만정부는 마스크의 생산체제를 하루 200만장부터 10배인 하루 2000만장 체제로 바꾸었다. 이러한 마스크를 어떻게 공평하게 배포할 것인지가 과제였다. 단순히 판매한다면 마스크 매점(買占)이 발생할 수 있었다. 대만정부는 국민의 99.99%가 가지고 있는 건강보험증을 활용해 이를 토대로 2주 분의 마스크(9장, 아이들은 10장)를 공급했다. 대만정부는 가장 가까이 있는 약국과 거기에 있는 마스크 재고 수치가 리얼타임으로 표시되는 마스크 맵을 준비했다. 내각 차원에서 회의를 열어 약국의 협력아래 약국 영업시간, 마스크 재고를 30초마다 경신하는 오픈 데이터를 활용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끝으로 ‘재미’는 챗봇이었다. 이는 맵 조작에 익숙지 않은 고령자 등을 감안한 것으로 챗봇을 사용해 위치정보로부터 마스크 재고가 있는 가장 가까운 약국을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가장 인기있는 챗봇이 라인(LINE)으로 대만질병관제서의 라인 계정의 플로는 1주일도 안되는 동안 급증했다. 또한 대만정부는 국외에서 입국하는 사람에 대해 14일간의 격리를 요구했지만 대만에 거주지를 갖지 않은 사람의 숙박시설로서 고급호텔 이상의 방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33달러도 지급했다. 14일간의 격리를 확실히 지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챗봇은 이 대목에서도 활약했다. 무엇보다도 대만의 방역 성공 요인으로 제4차 산업혁명의 첨단기술이 총동원됐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대만의 대표적인 휴대전화 제조·판매회사인 HTC와 산하 딥큐(DeepQ) 라인의 챗봇과 연계, AI 대화 로봇을 개발해 고령자가 정확히 검진정보를 얻을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개발과 실행에 드는 시간은 1개월에 불과했다. 그 결과 보건소와 의료기관 담당자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대만정부의 행동은 민간기업이 과제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와 똑같았다고 한다. 어떠한 문제의식을 갖고 자원을 조달해 해결안을 마련할 것인가라는 자세로 접근한 것이다. 대만정부가 평가받는 대목 중의 하나다. ‘딥큐 AI 플랫폼’, 가상현실·확장현실(VR·AR), 블록체인 등의 기술로 대만의 의료행태와 업무는 크게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최근 대만에서는 ‘의료 x 블록체인’이라는 유행어가 생겨났다. 병원과 보험회사와 기술개발을 담당하는 기업이 제휴해 다양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의료현장에 도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딥큐의 블록체인 그룹은 대만대학과 미국 스탠퍼드대학과의 협력 아래 최근 ‘멀티플 레이어 헬스케어 블록체인’을 개발했다. 이는 정보를 병원 간에 유동시키는 동시에 병력의 개인정보 보호를 양립시키는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년 가까이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에 세계 각국은 나름대로 대응해 왔다. 각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외신에 비친 싱가포르와 대만의 사례를 정리하면서 작지만 강한 나라로 사는 지혜를 발견하게 됐다. 중(中)대국·중(中)강국의 길목에 선 한국도 지난 1년을 뒤돌아보며 싱가포르와 대만에서 배워야 할 게 적지 않다. 2020-12-23 0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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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의 Now&Future]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는 큰 정부와 현명한 정부 환담장 향하는 문재인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임 대사들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조현옥 주독일대사, 노태강 주스위스대사, 문 대통령. 2020.11.10 cityboy@yna.co.kr/2020-11-10 13:35:49/ <저작권자 ⓒ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곽재원의 Now&Future] 유례없이 부산한 코로나19 위기 속의 12월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지난 11개월 동안 어떤 방역대책도, 어떤 경제대책도 무시한 채 세계를 휘젓고 지금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력한 백신 출현이 오늘 낼 눈앞에 있고 치료제도 곧 나올 참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불안은 좀처럼 가실 기미가 아니다, 이런 사정은 남은 한 달도 달라지지 않을 듯 싶다. 1년을 통틀어 지난 3분기(7~9월)에 겨우 각국 경제와 기업이 반짝 경기를 탔지만 4분기에 다시 악화될 전망이고 보면 세계경제가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회복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이런 가운데서도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에서 주가가 수년래 최고의 상한가를 치고 있다. 이 모습도 정상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정상의 정상화’ 사례는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바둑의 세계로 말하자면 이제 세계 주요국들의 관심은 어떤 정책으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현명하게 끌고 나갈 것인가 하는 새로운 포석(布石)에 쏠리고 있다. 지난 11개월은 팬데믹에 응급 대처하는 행마(行馬)의 시기였다. 포석의 핵심은 정책의 진화와 함께 큰 정부에서 현명한 정부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경제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라지 체티 교수는 코로나19 확산 후에 발표한 논문에서 데이터 해석기술을 구사해 지역과 소득계층의 차이를 감안한 최적의 경기부양책을 제시했다. 경제정책의 새로운 틀이다. 요약하자면, 미국 기업의 경영데이터를 폭넓게 수집해 매출과 개인의 고용·소비 등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날짜별로 조사한 다음 우편번호 등 지리적인 정보도 가미해 분석했다. 체티 교수는 “부유층이 타인과의 접촉을 꺼려 소비가 급감해 타격을 받은 부유한 지역의 음식점과 소매점들이 종업원을 삭감하고, 그 결과 임금 노동자가 직업을 잃어 개인소비의 부진이 확대·고정화되고 있다”는 경기악화의 경로를 밝혀냈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불황은 과거의 불황보다도 타격을 받은 지역·소득층이 편재(偏在)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미국의 경우 나라와 주(州) 전체로 지원하는 ‘얇고 넓은’ 형태의 대책은 효과가 한정되어 있다고 체티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실업이 심각한 지역·계층을 핀포인트로 찍어낸 고용지원과 사회보장 등이 앞으로의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3년 전 미국에서 발표된 체티 보고서에선 명문대 졸업 후 연봉 상위 20%대의 직업으로 진입한 사람들 중 저소득층(소득 하위 20%) 출신은 2.2%, 즉 100명 중 2명꼴이라는 분석결과를 내놨다. 가장 큰 이유는 명문대에 저소득층 학생이 워낙 적기 때문이었다. 당시 분석한 미국 12개 명문대의 경우 소득 상위 1% 집안 출신 학생이 14.5%인 데 비해 저소득층 학생은 3.8%로 나타났다. 즉 입학 기회의 불공정이 결과적 불공정을 낳는다는 말이다. 이 보고서는 ‘명문대학은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계층 유지에 열심이지, 저소득층의 상향 이동을 이끄는 역할은 미흡하다’는 사실을 계량적으로 증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체티 교수의 발상은 자본주의의 약점을 근본적으로 극복해 보려는 하나의 시도로 볼 수 있다. 2008년 9월 발생한 세계적인 금융불황 리먼 쇼크 때는 금융 폭주와 경제 혼란에 대해 대부분의 정책이 작동하지 못했다. 일반 시민은 깊은 상처를 입고 자본주의에 강한 회의를 갖게 됐다. 지금 코로나19 위기에서 다시 어떤 정책을 구사할 것인가. 모든 국가들의 최우선 과제다. 지난 9월 새로 출범한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정부는 특히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서의 새로운 정부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은 최근 특집기사에서 “우리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정부의) 규모가 아니라 ‘현명함’이 정책의 효과를 결정한다는 사실이다”고 정부에 조언했다. 어느 나라 정부가 더 현명한지를 가늠하는 잣대는 정책 이노베이션(혁신)의 모습이다. 지금 세계는 정책 이노베이션의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미국 바이든 신정권이 추진할 신산업·기업 정책, 중국 시진핑 정권의 제14차 5개년 계획(2021~2025)과 2030년 비전, 일본 스가 신정권의 민관 디지털 혁신 정책 등은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정책 이노베이션의 상징은 역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제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 되고, 인간 삶의 패러다임이 비가역적으로 달라지는 시대의 키워드가 바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 뚜렷한 방향을 갖고 있다. 외국 미디어들이 ‘한국판 뉴딜 정책’을 자주 소개하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이 정책을 발표하며 향후 5년간 160조원을 투입한다고 했다. 이 중 디지털 분야에 58조2000억원을 배정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전국의 초중고에 고성능 와이파이(Wi-Fi)를 도입하고, AI(인공지능)의 정밀진단이 가능한 ‘스마트 병원’을 정비키로 했다. 지난 2일 국회에서 확정된 내년도 예산에서 보듯이 재정지출 확대는 불가피한 사안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 팽창된 예산을 어디에 쓸 것인가. 일본 신문들은 한국의 디지털 투자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일본도 재정지출 확대를 피할 수 없다면 한국처럼 디지털 영역의 인프라 정비에 자금을 집중해 다음의 경제성장을 위한 포석을 깔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속통신망 등이 정비되면 재택근무가 쉬워지고 새로운 팬데믹에 대한 내성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책 이노베이션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이슈는 경기대책을 환경배려형 사회로 전환시키는 ‘그린 리커버리’가 세계적인 조류가 됐다는 점이다. 한국은 한국판 뉴딜정책 안에 그린뉴딜(녹색성장)을 챙겨 넣었다. 그린뉴딜에는 2050년 탄소중립과 수소경제 정책이 담겨있다. 신재생 에너지 부문에만 5년간 35조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 분야에 선도역인 유럽연합(EU)은 2021년부터 7년간 환경 분야에 적어도 5500억 유로(약 700조원)를 투입한다고 한다. 캐나다는 긴급융자제도 이용조건에 기후변화의 영향을 포함한 재무정보 등재를 기업에 의무화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재정지출 팽창으로 선진국의 공적(公的) 채무잔고가 2020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124%로 전년보다 20%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4년(18% 포인트 증가)를 넘어, 기록이 존재하는 과거 140년 사이에 가장 큰 수치다. 코로나방역 대책에서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가 확연히 구분되고, 이에 동반해 그 나라 지도자의 부침이 결정되는 모습이 목격된다. 재정투입도 그럴 것이다. 비효율적인 분야에 재정자금을 쏟은 나라는 경제가 정체되고, 늘어난 공적채무 처리에 고통을 겪을 것이다. 반대로 창의적이고 미래를 내다보며 재정을 투입한 나라는 활력을 붙일 것이다. 나라의 부침(浮沈)이 쉽게 결정되는 시대가 됐다. 내년도 558조원의 팽창 예산은 그 씀씀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큰 정부는 어디에 쓰느냐가 관심이지만 현명한 정부는 어떻게 쓰느냐에 신경을 쓴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정책을 정책 이노베이션의 승부처로 잡았다면 매우 대담하면서도 치밀하게 끌고나가야 한다. 체티 교수가 제시한 핀포인트 정책의 개념을 새겨 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현명한 정부로 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2020-12-04 16: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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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의 Now&Future] 한국판 뉴딜은 리뉴얼이다 뉴딜 전략회의 참석한 문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3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 참석했다. [곽재원의 Now&Future] 지금 세계의 화두는 ‘Re(再)’다. 제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와 코로나19 팬데믹의 높은 파고 속에서 도출된 지구촌의 집단지성이 다시(再)를 뜻하는 접두어 ‘리(Re-)’로 집약되고 있다. 여기에는 분리와 단절의 대명사가 된 ‘트럼프 현상’이 한몫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외 주요 미디어에 쏟아지고 있는 ‘리(Re-)’의 행렬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리셋, 리빌딩, 리 셰이핑, 리 메이킹, 리스토어링, 리 조인, 리 디자인, 리페어링, 리 밸런싱, 리컨스트럭션, 리뎀프션 같은 용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매년 1월 말 그 한 해의 키워드를 결정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세계경제포럼(WEF)은 일찌감치 2021년 키워드를 ‘Great Reset’(거대한 재조정)으로 정했다. 지금은 리셋이 ‘리 브러더스’의 맏형이 된 모습으로 가장 빈번히 쓰이고 있다. 미국 대선 결과 트럼프 체제에서 바이든 체제로 바뀌는 확실한 미국의 변화를 의식한 각국의 유수 싱크탱크들이 ‘리셋’을 보고서 타이틀이나 키워드로 삼는 것도 뉴 노멀이 된 것 같다. 팬데믹 발생 이후의 ‘리(Re-)’는 과거의 연장선상에서의 ‘재출발’이 아니라 전혀 달라진 환경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뜻한다. (과거로의) 비가역적 시대라는 말을 쓰는 이유다. 최근 발표되는 주요국들의 정책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시키면서 팬데믹 시대를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력과 참신성을 불어넣으려는 노력들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새 총리가 발표한 행정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디지털 전환) 전략,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이 내건 중장기 계획인 제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과 2035년 비전 등에 그러한 노력이 담겨 있다. 얼핏 보면 새로운 내용이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국가 대전환 전략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막강한 IT 인프라를 민관협력을 통해 국가 디지털 혁신으로 풀가동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새로운 세계 전략까지 구상하고 있다. 한국이 IT강국이라고 하지만 IT소비강국이지 세계경제에서 우뚝 서 있는 IT경제 강국이 아니라는 점에 비춰볼 때 일본의 동향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내수경제와 무역경제를 묶는 ‘쌍순환’전략은 글로벌 전략인 일대일로의 제2탄으로 훨씬 섬세해진 대미 경제전쟁의 핵심이 될 것이다. 내년 초 바이든 정권이 출범하면 바이드노믹스(바이든 경제정책)가 어떻게 펼쳐질지에 관한 진단과 전망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의 시사지 포린 어페어스는 ‘Repairing the World’(세계를 수선한다)로,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Great Rebalancing’(글로벌 경제회복과 균형)으로 바이드노믹스의 방향을 예견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문재인 정부는 2년이 채 안되는 임기 후반기에 한국판 뉴딜정책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 뉴딜정책은 정부가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 대규모 건설토목공사를 통해 유효수요를 일으키는 1920~30년대 루스벨트식의 뉴딜은 아니다. 행여나 닮아서도 안된다. 민간섹터가 공공섹터의 몇 배나 되는 달라진 시대다.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우리의 삶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대의 뉴딜정책은 과거와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뉴딜정책은 과연 과거 회귀형의 ‘리(Re-)’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향한 ‘리(Re-)’인가?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제3차 한국판뉴딜 전략회의'에서 "국가목표로 약속한 2050년 탄소중립을 다음 정부에 넘기지 말고 이 정부에서 출발해 확실한 기틀을 잡아야 한다"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바이오헬스 산업 경쟁력과 관련해 "바이오 헬스는 정부의 미래 먹거리 3대 핵심 산업이다. 그러나 시스템 반도체, 미래차에 대한 우리 역량은 잘 알지만 바이오헬스 산업의 경쟁력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판 뉴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얼마나 속도 있게 추진하느냐, 둘째 국민이 체감하느냐"라며 "이 두 가지는 서로 얽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주요 민간 연구소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산업전략 키워드로 '넷제로(Net Zero, 탄소중립)'를 꼽았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앞다퉈 추진하고 있는 '탄소중립'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신산업 시장 선점을 제안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성윤모 장관 주재로 주요 민간 연구소 기관장들과 '산업전략대화'를 개최한 자리에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산업별 영향을 진단하고 미국 대선, 탄소중립 등 최근 여건 변화에 대응하는 산업전략을 모색했다. 산업부는 이러한 여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3대 산업전략으로 산업구조 혁신, 산업활력 제고 , 연대와 협력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탄소중립 등 친환경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미국산업 보호와 제조업 육성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2050년 탄소중립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에게 도전적 과제이지만 지속가능한 성장과 친환경 시장 선점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경제·산업정책은 친환경화와 디지털화 흐름에 맞게 산업 구조를 혁신하고 한국판 뉴딜 추진과 빅3 신산업 육성으로 산업 활력을 회복하겠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한국판 뉴딜정책의 ‘리(Re-)’는 ‘(정책) 추진 속도-국민 체감-산업구조 혁신’이란 삼각형으로 대변된다. 문제는 거버넌스(관리체제)다. 누가 국가 빅 프로젝트를 잡아채서 끌고 나갈 것인지, 이를 가능케 할 조직과 사업예산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이 정부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과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을 어떻게 정리해 둘 것인지 등 구체화해야 할 일이 많다. 세계적인 ‘리(Re-)’의 시대에서 무엇보다도 급한 일은 행정혁신이다. 정부의 일하는 방식이 확 달라져야 한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의 논쟁은 과거형이다. 기능하는 정부가 미래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기능하는 정부와 그러지 못한 정부의 차이를 극명하게 목격했다. 세계 경제가 요동칠 때 우리를 지켜낼 한국경제의 최대 강점은 어디에 있는가. 나라경제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제조업이다. 한국은 제조강국에서 IT강국으로 발전했다. ‘리(Re-)’의 시대에 제조강국 코리아의 레거시(유산)는 유효하다. 한국판 뉴딜정책에서도 제조강국의 유산을 토대로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산업 전략도 제조강국의 유산을 활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2020-11-18 03: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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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의 Now&Future] 대한민국의 침로(針路)를 결정짓는 11월 [곽재원의 Now&Future] 온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을 때도 이따금 구름 틈새로 햇빛이 들어온다. 3분기(7~9월)가 꼭 그런 모습이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세계 경제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는 가운데 주요국가·지역의 경제는 3분기에 고개를 들었다. 다시 4분기(10~12월)의 부진이 대세로 전망되고 있지만 3분기의 약진은 코로나 불황에 저항한 희망찬 뉴스다. 이 뉴스는 지난주에 모든 미디어를 통해 세계로 전송됐다. 3분기 한국의 경제성장률 회복, 삼성 등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선방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8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다. 우선 가장 중요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다. 문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을 ‘국난극복’과 ‘선도국가’로 가기 위한 의지를 담아 555조8000억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본예산 기준으로 8.5% 늘린 확장 예산이다. 정부가 제출한 2021년 예산안은 ‘위기의 시대를 넘어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예산이란 이름을 붙였다. 문 대통령은 위기를 조기에 극복해 민생을 살리고, 빠르고 강한 경제회복을 이루는 데 최우선을 두었다고 설명하면서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대전환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을 본격 추진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고용·사회안전망 확충에 투자를 늘려서 혁신과 포용의 기조를 뒷받침하는 한편 국민의 안전한 삶과 튼튼한 국방,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의지 또한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회는 대통령이 보고한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최종 예산정리 작업에 들어간다. 예년이라면 11월 한달간 여야가 길항(拮抗)하는 모습이 최대 뉴스거리가 된다. 그러나 올해는 아무리 중요한 나라살림살이(예산)라도 코로나 뉴스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확장된 본예산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재정투입이 계속되고 있어 국가 전략과 정책을 자칫 잘못 세우면 오랜 기간 동안 도저히 만회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자기파괴적이고 혼란한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고 여론을 왜곡시켜가는 작금의 정국에서 국가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경제의 신진대사를 촉진시킬 수 있는 기회로 만드는 방안이 없을까. 세계 각국의 공통된 국가과제다. 이 점에서 문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한 지난주의 일본과 중국발 뉴스 2건은 우리에게 사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10월 26일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시정연설이다. 7년 8개월에 걸친 아베 신조 장기 정권체제의 바통을 이어받은 스가 새 총리의 시정연설은 여느 나라와 같이 코로나 방역과 경제성장의 양립을 바탕에 깔았다. 이러한 양립 속에서도 스가 정권은 최우선 과제로 정부와 지방자치체의 디지털화로 잡았다. 일본 경제의 생산성이 낮은 것은 아날로그 행정과 그에 이끌려가는 기업 측의 늦은 행보 때문이란 민간으로부터의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스가 정권은 디지털개혁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과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일본의 디지털 행정 사령탑은 한국의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내각관방의 IT종합전략실이 담당해 왔다. 민간인도 등용하긴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각 부처를 지원하는 역할에 그쳤다. 스가 총리는 “에스토니아가 20년에 걸쳐 실행한 개혁을 5년에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스가 정권은 이를 위해 내년 초에 디지털청(廳)을 출범시킨다. 디지털청에 민간 출신의 우수한 인재를 대거 기용해 개혁의 선봉에 나서게 한다는 구상이다. ‘민간의 힘을 살려 개혁의 추진 동력을 확보한다’는 스가 정권의 전략이다. 스가 내각은 민간 출신 인재를 수용하기 위해 공무원 정원법의 운영방식을 바꾸거나 기간직 인재를 등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무 관리 방식도 바꿔 민간에서 사용하고 있는 BPR(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 경영 기법도 도입하기로 했다. 스가 총리는 이와 함께 ‘지구온난화대책추진본부’를 통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일본의 새로운 성장전략이다. 이 도전을 산업구조와 경제사회 발전으로 연결시켜 경제와 환경의 호순환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강조하며 각 각료들에 전략강화를 지시했다. 중국 공산당은 10월 26일~29일 열린 제19기 중앙위원회 제5회전체회의(5중전회)에서 2021년~2025년의 경제운영목표인 ‘제14차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은 이 계획에서 미·중 대립의 장기화를 겨냥해 성장의 축족(軸足)을 외수 의존에서 내수주도형으로의 이행을 목표로 한 신정책 ‘쌍(双)순환’을 삽입했다. ‘제14차5개년 계획’은 쌍순환을 통해 국내 시장 확대를 꾀하면서 ‘경제구조,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도모한다’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계획은 또한 “과학기술을 자력으로 향상하는 것이 국가전략의 요체(要諦)’라고 강조하며 미국과의 하이테크 패권전쟁을 염두에 둔 디지털 기술 등의 연구 강화 방침을 제시하고 있다. 2035년까지 국가전략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고령화와 환경문제, 빈부격차 등을 해결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이 새로운 5개년 계획에서 2035년을 목표로 모든 신차 판매를 환경친화형 자동차로 바꾼다는 방침도 밝히고 있다. 50%를 전기자동차(EV) 주축으로 하는 신에너지차로 하고 나머지 50%는 하이브리드차(HV)로 한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중국시장의 방향전환은 세계 자동차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킬 전망이다. 이 같은 일본과 중국의 정책 방향은 문재인 정부의 시정 연설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성장 동력을 보다 구체화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환경 문제에서도 한국보다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일본과 중국은 코로나19 이후의 미래를 우리보다 더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11월 3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이 되든,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이 되든 간에 미국의 주요 정책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4년간 트럼프 대통령이 행한 탈세계화와 미국 제일주의, 중국과의 마찰 등이 워낙 깊은 자국을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19의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의 경제 환경은 당분간 크게 호전될 것 같지 않다. 정치 공방전을 거듭하고 있는 올해 예산 국회에서 여야가 진정한 한국의 미래를 위한 전략과 방안을 논의해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2020-11-02 00: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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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의 Now&Future] 안팎이 서로 다른 미중관계 [곽재원의 Now&Future] 9월 29일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에 의한 전세계 사망자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의 새로운 중심지가 된 인도와 중남미에서는 의료체제의 취약성이 노출되며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지역이동 제한의 완화로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고 있는 유럽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가·지역별 누계로 사망자가 가장 많은 국가는 미국으로 약 20만명에 이른다. 그 다음으로는 브라질(약14만명), 인도(약9만명) 순이다. 사망자수 100만명은 1968년 홍콩독감(인플루엔자)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하루당 신규 사망자수(7일 이동평균) 는 7월 중순부터 약5천~6천명에 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개월 동안 세계의 톱 뉴스는 당연히 코로나19 피해 관련 내용들이었다. 이러한 코로나19 뉴스만큼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는 톱 뉴스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것들이다. 코로나19가 글로벌 뉴스라면, 미·중 관계는 지정학적 뉴스다. 이 지정학적 뉴스는 코로나19 만큼 임팩트가 전례없이 크다. 글로벌 권력체제가 이미 미·중의 G2체제로 정착됐다는 방증일 것이다. 올들어 1, 2, 3분기의 지난 9개월간의 미·중관계를 보면 마치 벌어진 악어 입 같은 모양새다. 양국이 밖으로는 무역·기술 등에서 첨예한 마찰과 대립을 노출시키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전략적 실리와 미래를 챙기는 모습이 목격된다. 다시 말해 ‘분단과 교류’의 두 얼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몇가지 상징적인 사례를 짚어보자. 지난 9월 10일 국제 곡물거래 지표인 시카고선물시장에서 대두(大豆) 시세가 1부셸당 9.85달러로, 8월 상순부터 10%기량 상승하며 2년 3개월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두는 식용유 원료와 가축사료로 쓰인다. 이런 대두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주산지인 미국 중서부가 고온건조로 작황이 악화되어 생산량 전망이 하방수정되고 있는데다 남미산 대두는 내년초에 출하되기 때문에 가격 강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시장 관계자들은 이같은 계절적 요인보다는 미·중 대립 격화 속에서도 중국이 견조하게 미국산 대두를 구입해 시세를 받쳐주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2019년 9월~2020년 3월 기간 중 중국이 구매하기로 계약한 미국산 대두는 모두 1247만t으로 무역마찰이 격화된 전년동기보다 3% 줄었다. 그러나 2019년 9월~2020년 8월 기간 동안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 계약물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 급증했다. 8월 하순들어 미국이 2020년 중국에 수출하는 대두 물량이 사상 최고 수준인 4000만t에 달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2020년 한해동안 중국의 미국 농산물 구매 금액이 2017년 수준까지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충격에서 회복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가정과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대두유는 물론 양돈수가 늘어나며 배합사료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덕분에 대두 가격 부셸당 10달러 시대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 금융기관과 중국기업간의 밀월(蜜月)도 선명하다. 9월 22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8월 사이에 주식에 의한 자금조달을 통해 중국기업이 미국 투자은행에 지불한 수수료는 6억달러를 넘어서면서 전년동기비 80%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통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중국기업이 지불한 수수료 전체(약12억달러)의 절반을 미국 투자은행이 가져갔다는 계산이다. 미국 주식 시장의 활황을 배경으로 중국기업과 투자가들이 상장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말 전기자동차(EV) 스타트업인 리샹 자동차(Li Auto)가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했다. 한달 후인 지난 8월 중국의 또다른 전기자동차(EV) 샤오펑 자동차(Xpeng Motors)가 뉴욕증시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증시관계자들은 미국정부의 규제강화라는 악재는 있지만 이러한 ‘중국발 향연’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들어 코로나19 사태로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 쇼 같은 자동차 전시회가 잇달아 취소되고 있는 상태에서 9월26일부터 10월 5일까지 베이징국제자동차쇼가 열리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한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코로나19 사태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중국시장에서의 선점으로 노리고 대거 참가했다. 이 자동차 메이커들은 중국 자동차업체들과 함께 새로운 전기자동차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미국기업도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중국의 고객들에게 신차를 선보이면서 어필하고 있다. 포드자동차는 SUV의 EV인 ‘머스탱 마하E’를 발표했다. 내년부터 중국에서 수입판매 할 계획인 포드 중국 현지법인은 중국 고급 EV 시장의 다크호스로 등장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는 뉴스다. 포드 중국 현지법인은 이를 위해 10월 중 중국 디자인센터를 설립하고, 중국시장용 신차개발에도 나설 것이라 한다. 이에 앞서 지난 9월15일 중국 정부는 내륙지방의 충칭(重慶)시에서 ‘중국 국제스마트산업박람회’를 열었다. 미·중 기술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퀄컴과 인텔, HP(휴렛 패커드)를 포함한 미국의 첨단기업의 간부들이 대거 참가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측근인 친빈지(陳敏爾)가 충칭시 공산당위원회서기를 맡고 있다. 친서기가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산업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번 박람회에서는 화웨이와 텐센트, 바이두 등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수장들이 모두 나와 강연을 했다. 중국 측이 부른 미국기업의 간부들은 온라인 등을 통해 등단했다. 컬컴은 이미 60개가 넘는 중국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퀄컴의 차세대통신규격 5G 반도체를 채용한 중국기업의 스마트폰도 10개기종이 넘는다며 친중 자세를 확실히 취했다. 인텔 관계자도 “중국은 디지털경제가 가장 빠르게 진전하고 있다”며 “충칭의 반도체개발거점을 강화할 것”이라고 표명했다. HP는 충칭의 개인용 컴퓨터공장에서 철도를 통해 세계시장에 내보내고 있어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트럼프 정권은 화웨이 등 중국기업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미국기업들은 코로나19의 감염확대로 세계경제의 후퇴 속에서도 다시 성장궤도를 타고 있는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일본 측의 분석은 명료하다. "미국 트럼프 정권은 미·중 관계의 악화 속에서 경제 전략을 계속 수정해 왔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중국 의존의 위험성을 부각시키고, 홍콩·남중국해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수출규제 강화와 서플라이체인(공급망)의 수정, 사이버 공격대책 강화 등 눈앞의 과제만 매달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동맹국과의 협력 아래 새로운 전략산업 분야의 국제기준을 확립하고, 연구개발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신냉전으로 불리는 중국과의 대결을 전제로 한 중장기전략을 다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설령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시각이 아직은 대세다.”(일본국제문제연구소 연구보고서) 이런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유화를 주장하는 인사들도 나오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 명예교수인 이즈라 보겔은 최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을 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강경한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겔 같은 유화파의 지적은 미국 산업계와 경제계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생산거점과 거대시장으로서의 중국을 끌어들인 국제경제 체제는 큰 전기를 맞고 있다. 미·중 양대국의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설(逆說)과 부조리(不條理)를 직시하면서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국가전략을 짜야할 때다. 모터쇼의 화웨이 부스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한 베이징 모터쇼에서 중국 화웨이의 부스가 마련돼 있다. 2020. 9. 27 yk 2020-09-30 02:5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