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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우리는 새정치 'K-Politics'를 보고 싶다
누가 당대표가 되든 국민의힘 새 지도부의 최우선 과제는 내년 4월 총선에서의 승리일 것이다. 총선에서 이겨서 지금의 여소야대 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하나 교체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새 정부의 철학과 정책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남은 임기 내내 야당과 티격태격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다. 그로 인한 갈등의 심화와 국정 운영의 난맥상과 비효율은 여야(與野) 차원을 떠나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터이다. 보수 우파의 대표적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박사(고성국TV 대표)는 지난달 25일 대구에서 열린 ‘동서미래포럼’ 창립식에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조건으로 공천혁명과 정치쇄신을 들었다. “4월 총선을 계기로 젊고 참신하고 유능한 정치신인을 발굴해 대대적인 공천혁명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동서미래포럼은 지난 대선 때 영호남 화합운동을 벌였던 인사들이 선거 후 확대·재결성한 모임이다. 고 박사는 특별 연사로 초대됐다.) 내년 4월 총선에 尹 정권 성패 달려 그는 “모두들 ‘윤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한 몸을 바치겠다’고 하는데 4월 총선에서 지면 무슨 수로 대통령을 도울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국민의힘과 자유 시민사회단체 및 지식인 그룹 간에 정치개혁 연대를 꾸려서 공천혁명 담론의 선점과 전파를 주도하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 국민 체감도가 높은 국회의원 특권 전면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공천혁명은 선거 때마다 나오는 얘기지만 이번엔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나라 안팎으로 사정이 어려운 데다가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욕구도 그만큼 커진 탓이다. 공천혁명은 정치의 한 축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정치의 요체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넘어, 한 시점에, 한 사회에 주어진 문제들을 얼마나 잘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능력(적실성)의 문제로 진화한 지 오래지만 요즘 이를 더 절감하게 된다. 공천은 그 첫 단추를 끼우는 작업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좋은 정치는 좋은 공천에서 시작된다. 실패로부터 배운다고 몇 가지 사례를 보자. 21대 총선 참패의 교훈 보수 우파 정당으로서 국민의힘이 공천에서 실패했다고 평가되는 대표적인 총선이 2020년 21대 총선과 2016년 20대 총선이다.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득표율 41%로 지역구에서 84석을 얻었다.(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19석을 합치면 103석. 총 의석수는 300석) 상대인 더불어민주당은 49%로 163석을 차지했다. 충격적인 참패였다. 특히 수도권에선 전체 의석 121석 중 103석을 민주당에 내줬다. 그 패배의 결과로 만들어진 강고한 여대야소 정국 속에서 문재인 정권은 유화(宥和) 일변도의 대북정책, 소득주도 성장, ‘검수완박’ 등을 밀어붙였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뒤늦게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견제받지 않은 권력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공천관리위원장(2020년 1월 17일∽3월 13일)이었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2021년 3월 <총선 참패와 생각나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공천고백기’란 부제(副題)가 말해주듯이 공천관리를 책임졌던 사람이 쓴 일종의 참회록이다. 저자가 “나 하나 불쏘시개 되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듯이 웬만한 용기와 애당심 없이는 쓸 수 없는 책이다. 이런 고백록이 나온 것 자체가 우리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참회록’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과거의 잘못을 다스려 앞으로 닥칠 우환을 경계한다’는 징비록(懲毖錄)으로 읽혔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 특히 보수 우파에겐 가히 필독서다. 좋은 공천, 좋은 정치 그의 패인분석과 대안 제시는 실증적이고 구체적이다. 책에 따르면 당시 공천관리위는 이른바 ‘혁신공천’의 3대 원칙, 곧 △과감한 물갈이(인적쇄신) △구태 청산(계파별 나눠먹기 배제) △청년과 여성 신인 적극 충원을 내걸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 역대 총선에서 보기 힘든 ‘보수통합’을 일궈냈지만, 이게 표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국민에게 ‘보수가 통합됐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소회다. “··· 거기에다가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중도층도 끌어오지 못했다. 안정을 희구하면서도 변화에 대한 수용이 강한 중도층을 의식해 변화의 고삐를 끝까지 잡고 갔어야 하나 그러지 못했다. 고삐를 쥐고 전국을 누빌 유력인물(리더)도 없었다. ··· 역대 총선에선 대개 변화의 폭을 크게 움직인 쪽이 승리했다. 17대 탄핵풍의 진원지인 열린우리당, 18대 뉴타운 바람의 한나라당, 19대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변신한 변화의 새누리당 등이 그런 경우였다. ··· 이러는 사이에 코로나(재난) 지원금이 뿌려졌다. 전대미문의 역병 앞에서 민주당은 안정과 신뢰의 탑을 쌓아갔고 우리는 하나씩 무너져갔다. ···” 저자는 대안으로 ‘시스템 공천’을 제안한다. 의정활동이 공천에 직결되어야 하고, 지역관리를 잘하면 공천을 보장해주고, ‘포청천 윤리위’를 상설해 공천도 사전 검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천관리위는 선거 5개월 전에 구성하고, 공천관리위원회의 독립성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공천자 40%는 매년 의정활동 평가와 당무감사를 통해 미리 정해놓고, 나머지 60%는 공천관리위에서 심사해 확정하는 방안도 제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천 작업을 심도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에도 참고가 될 듯싶다. 공천파동 나면 공약은 묻힌다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국민의 힘)은 들떠 있었다. 야권의 분열로 180석 이상을 얻을 거라는 전망들이 돌았다. 김무성 대표부터 그런 예상을 했다. 결과는 지역구 105석에 비례대표 17석 등 122석에 그쳤다. 123석을 얻은 민주당에 제1당을 내준 참패였다. 오만한 행태와 공천파동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의 진박 논쟁과 김무성 대표의 ‘옥새파동’은 지금도 조롱거리다. 이때도 총선백서가 나왔다. 참회록이라기보다는 유권자들과 일문일답하는 형식으로 정리된 백서였다. 그래서 이름도 <국민백서>. 국민이 물었다. 참패의 원인이 뭔가? 당이 답했다. “지지층의 외면을 자초한 공천파동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지지층에게 지지할 근거를 주기보다는 지지를 철회할 근거를 주었다. ··· 계파 간 극한 대립 상황에서 리더십도 실종됐다. 여권 내 권력 획득과 방어에만 집중하다 보니 공당의 이미지를 상실했다.” 공천에 대한 평가를 구했더니 이런 답이 올라왔다. “민주당보다 못한 느낌이었다. 신선한 인재는 찾아볼 수 없고 구태의연한 현역 중심의 공천, 친박 중심의 공천이 식상했다.” 당도 이를 시인했다. “공천 파동과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밥그릇을 놓고 싸우면서도 계속 지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착각과 오만이 지지층까지 외면하게 만들었다. ···” 야당에도 타산지석 <국민백서>는 이 대목을 ‘공천파동의 쓰나미, 모든 것을 집어삼키다’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계파 갈등의 조짐은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 구성에서부터 시작됐다. ··· (계파 갈등으로) 얼렁뚱땅 구성된 공관위는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비롯해 친박 중심으로 이뤄졌다. 공관위원들의 자질도 대내외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 공천이 계속 지연되면서 당내 모든 조직과 대응능력이 마비되고, 본격적으로 선거준비에 돌입해서도 각각의 과정들이 유기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선거 전략을 진두지휘해야 할 사무총장 등 핵심라인이 공천정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내부조직은 우왕좌왕했다. ··· (이를 포함한) 당내 계파갈등이 연일 언론을 통해 전달되면서 국민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다짐이나 공약은 모두 묻혔다. ···” 유감스럽지만 이게 현실이다. 필자는 이를 보다 생생하게 되살려주고 싶어서 가능한 한 원문을 그대로 인용했다. 마지막 부분, “계파갈등이 연일 전달(보도)되면서 공약은 묻혔다”가 유독 가슴을 친다. 정치현장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민주당에도 타산지적이 될 듯하다. 주변적인 것들이 본질을 밀어내는, 가십(gossip)이 정책을 밀어내는 퇴행적 정치 관행과 보도는 SNS 유튜브 시대에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4월 총선에 다가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남아있는 1년여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지금 시작해도 늦다. 혁신공천을 통해 4월 총선에서 승리하고, 정치개혁도 이뤄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번 공천은 단순한 공천이 아니라 정치교체를 위한 공천으로 인식해야 한다. 공천혁명으로 정치선진화를 앞당겨 한국 정치의 틀을 바꿔야 한다. 언제까지 ‘4류 정치’라는 오명 속에서 헤맬 것인가. 우리도 우리 정치를 ‘K-정치’라고 부르고 싶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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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한국정치 증오와 분열의 벽… '정서적 올바름'으로 넘어서자
민주당의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념’ 발언을 소환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 쇼’(1월 26일)에서다. 당이 강성 지지층에 줄곧 끌려 다니다가 정권을 빼앗겼는데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양념’ 발언도 한몫을 했다는 거다. 윤 전 총장은 ‘양념’이 “문의 어록 중 제일 아팠던 부분”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4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지지자들이 상대 후보들에게 문자폭탄과 댓글테러를 가해 논란이 되자, “경쟁(경선)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했다. 왜곡, 과열된 팬덤 정치의 비민주성을 걱정하기보다는 ‘해프닝’ 정도로 여긴 것이다. 그 ‘양념’이 증오의 씨앗이 돼 우리 정치를 극심한 대립과 반목 속으로 몰아넣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文 정권 5년, 증오의 굿판이 된 정치 문 정권 5년 내내 정치판은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 막말과 저주의 굿판이 됐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수 국민을 “토착왜구”로 몰아도 대통령은 물론 책임 있는 여권 인사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다. 증오는 정권이 바뀌면서 극단으로 치닫는 듯하다. 새 정권에 비판적인 일부 성직자들은 “해외순방 중인 대통령의 전용기가 추락해버렸으면 좋겠다”는 경악할 만한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이 지독한 증오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증오상업주의>(2013년)를 쓴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악마화’라는 말을 썼다. 신간 <퇴마정치>에서 민주당의 대선 패배는 “윤석열을 악마화 한 탓”이라고 했다. “윤석열을 미워하는 수준을 넘어 2년7개월간 계속 악마화 했고 이런 민주당의 자해(自害) 탓”에 졌다는 것이다. 증오가 넘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위험한 사회다. 증오는 이성을 마비시켜 합리적 소통과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증오는 증오를 먹고 자란다. 내가 상대를 증오하면 상대는 더한 증오로 되갚음 한다. 그 끝은 공멸(共滅)이다. “견해가 다르면 결혼도 안 해” 문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김부겸 전 의원은 “한국정치는 견해가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고 결혼도 안 하겠다는 ‘정서적 내전상태.’에 있다”면서 “다음 단계는 ‘싹 쓸어 없앴으면 좋겠다.’는 사회심리 위에 등장했던 나치와 파시스트로, 우리는 그만큼 위험하다(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했다.(1월 29일 ‘정치학교 반전’ 강연, 경향신문) ‘증오’는 역사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의 복합적 산물이어서 해소도, 치유도 어렵다. 우리만 해도 근대 이후 일제의 주권침탈, 식민체제, 전쟁과 분단,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압축 성장만큼 압축된 증오가 도처에 쌓여왔다. 불공정, 차별, 특권, 내로남불이 증오를 낳는 원인이라면 대한민국처럼 적합한 토양도 없다. 미국의 반(反)명예훼손연맹(ADL · Anti-Defamation League)은 증오가 심화되는 과정을 5단계로 나눈다. 증오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샐리 콘(Sally Kohn) 박사는 저서 <왜 반대편을 증오하는가>(The Opposite of Hate, 2018년, 에포케, 장선하 역)에서 이를 소개한다. 이에 따르면 ‘증오의 피라미드’ 맨 아래쪽인 1단계는 ‘어떤 집단은 본래 우월하다’는 고정관념 등이 형성되는 단계다. 2단계는 왕따나 욕설 같은 편견을 바탕으로 행동과 말은 안 해도 은근히 이뤄지는 사회적 따돌림처럼 남에게 해를 입히는 단계다. 3단계는 취업이나 주택 정책, 혹은 정치적 시스템 안에서 제도적 형태의 차별이 일어나는 단계다. 4단계에선 테러나 증오범죄처럼 편견에 치우친 폭력이 발생하고, 맨 꼭대기인 5단계에선 대학살로 발전한다. ‘증오의 3단계’로 넘어가선 안 돼 우리는 이 중 2단계의 정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SNS를 통해 이뤄지는 상대에 대한 멸시와 조롱, 집회와 시위 등이 절정에 달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3단계는,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노골적인 배척이나 채용 기피, 성(性)소수자에 대한 겁박 등이 벌어지는 단계다. 다행히 아직 3단계로 넘어가지는 않고 있다.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장치들, 예컨대 위헌심사제도나,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이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증오의 파고 앞에서 방어벽이 언제 무너질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울 때가 많다. 증오는 이른바 증오상업주의(hatred commercialism)에 의해 조장되는 경향이 있다. 증오상인들(hatred mongers)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위해 ‘증오’를 만들어 판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북한의 대응을 그런 관점에서 보기도 한다. 북은 남한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겨 체제의 결속과 김씨 왕조에 대한 충성을 확보해왔다. 한국의 두 거대 양당 체제에 대해서도 그런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公敵 1호, 증오상인들(hatred mongers) 증오를 파는 건 결국 언론이라는 인식도 팽배하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맷 타이비(Matt Taibbi)는 저서 <증오주식회사>』(Hate Inc., 필로소픽, 2021년)에서 이를 시니컬하게 파헤친다. “…(기자들을) 우리(cage) 안에 전부 몰아넣는다. 이렇게 해서 안전하게 포획되면 우리는 스포츠팬들이 하는 방식대로 뉴스를 소비하도록 훈련받는다. 우리 팀은 응원하고 나머지 팀은 모두 증오한다.… 증오는 무지의 파트너이며, 미디어 종사자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판매하는 전문가 됐다.” 증오는 SNS를 타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국내 유튜브 중 광고수익을 내는 채널수만 5만이 넘는다고 한다. ‘증오’는 익명성으로 무장한 채 ‘가짜 뉴스’에 얹혀서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둘 다 파괴적이고 선동적이다. 미디어 소비자는 이중으로 피해를 보는 셈이다. 증오는 정치의 가십화(化)를 초래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상대를 증오하다보니 기사의 경중(輕重)은 제쳐두고, 반대편에게 망신을 줄 수 있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들만 찾느라 혈안이 된다. 침소봉대와 ‘기사 비틀기’는 일상이 됐다. 한국 신문의 정치면에서 ‘가십난’이 사라진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권위주의 시절, 언론자유의 위축 속에서 정치판의 짤막한 뒷얘기, 속칭 ‘가십’을 통해 정치 뉴스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도 했지만, 정치의 경박화(輕薄化), 희화화, 저질화를 초래한다는 논란이 있어 대다수 언론사가 이를 없앴다. 증오가 죽은 가십난을 되살려내고 있다. 정치와 정치기사의 퇴행이라고 할 만하다. 누가 죽은 가십난을 불러내나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거대한 진영(陣營·block)이 도사리고 있다. 진영을 감싸고 도는 것은 끝 모를 증오다. 진영은 제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주지만 그 대가로 상응하는 충성을 요구한다. ‘보호’와 ‘충성’을 맞바꾸는 셈이다. 충성심을 어떻게 보여줄 건가. 증오를 보여주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공천 시즌이면 돌출하는 일부 의원들의 막말과 기행(奇行)은 그래서 나온다. 증오의 정치가 한국사회를 더 갈라놓기 전에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어떤 모임에서도 정치 얘기는 안 하는 게 현명하다는 걸 안다. 친구들끼리는 물론 가족 간에도 정치 얘기는 금물이다. 필자는 설을 쇠러 고향에 갔다가 죽마고우 친구들끼리도 격렬한 언쟁 끝에 사이가 틀어져 돌아온 경우를 흔하게 봤다. 정치판이 깨끗해야 증오가 사라져 정치를 주제로 한 논쟁이야 어디에서나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전통적으로 정치를 도덕적 선악(善惡)의 문제로 포장해온 데다가, 실제로 현실 정치인들이 불법과 비리의 주범인 경우가 많아서 더 거칠고 위선적이다. 한국정치는 우선 정치판이 깨끗해져야 증오가 사라진다. 증오를 유발하는 모든 모순과 불합리를 없애야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우리의 근, 현대사부터 다시 써야 한다. 결국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끊임없이 소통하고 함께 민주적 합의와 협치의 전통을 세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도 여야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여기에다 나는 샐리 콘 박사가 말한 ‘정서적 올바름’(emotional correctness)을 하나 추가하고 싶다. ‘정서적 올바름’이야말로 증오를 완화시키는 실천 가능한 첫째 덕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쉽게 말하면 ‘편견이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말자’는 거라면 “‘정서적 올바름’은 ‘극과 극으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예의를 갖춰 대화하고, 상대와 공감하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에 거는 기대 콘 박사는 “입 밖으로 나오는 말뿐만 아니라 말을 할 때의 의도와 표현방법을 통해 상호존중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 효과를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수많은 악플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필요하면 가서 만났다.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온라인에서 내게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평범한 보통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놀라우리 만큼 심오한 경험이었다.” 역시 언제 어디서나 중요한 것은 태도(attitude)다. 증오라는 거대 담론의 철옹성 앞에 작고 왜소해 보이겠지만 ‘증오 줄이기’의 첫걸음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마침 여야 의원 121명이 참여하는 초당적인 정치개혁 모임이 출범했다. 전체 의원 40%에 해당하는, 전례가 없는 큰 규모다. 승자독식의 한국정치의 폐해를 바로잡는 게 목표라고 한다. ‘정서적 올바름’으로 내부규율을 삼아 부디 소기의 성과가 있기를 빈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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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방탄' 민주 정당 …표류하는 한국 민주주의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걸 보면서 책 한 권을 다시 꺼내들었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는 읽었을 책이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브로드웨이 북스, 2018년).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의 공저인 이 책은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그중 인상적인 대목이 정당에 관한 언급이다.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당’이라고 말한다. 흔히 국민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과도한 기대라는 거다. 민주주의가 유지되려면 어느 나라에나 있기 마련인 대중선동가, 잠재적 독재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튼튼한 정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당이 없거나, 있더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악마와 거래라도 하듯이 선동가, 또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populist outsiders)을 영입하게 되고, 결국 그들에 의해 민주주의는 죽는다는 것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차베스의 집권이 그런 경우였다는 것. 192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나치와 파시스트가 집권에 성공했을 때 그들의 당원 수는 전체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도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집권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정권을 잡았다. 기성 정치세력 내의 내부자들(insiders)의 방조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히틀러를 영입하려는 자신들의 야망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해선 눈을 감았고, 히틀러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보다 치명적인 착각은 없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 제어해야” 두 차례의 쿠데타 실패로 수감 중이던 차베스(1954~2013년)를 불러낸 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두 번이나 지낸 원로정치인 라파엘 칼데라(Rafael Caldera 1916~2009)였다. 차베스는 칼데라와의 연합 덕분에 1998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했고, 14년간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 차베스는 독재와 포퓰리즘의 대명사가 되었고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는 붕괴됐다. 훗날 칼데라는 차베스를 영입한 자신의 실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들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이 권력의 중심부로 진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당의 주류가 협력해 이들을 당에서 고립시키거나, 경선에서 패배시켜야 한다는 거다. 저자들은 이를 당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적인 게이트키퍼(gatekeeper‧문지기) 기능으로 보았다. 게이트키핑이 잘 되는 정당은 차베스 같은 인물들이 정권을 잡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얘기다. 당이 성공한 민주주의 게이트키퍼가 되려면 행태주의 정치학자 낸시 버메오(Nancy Bermeo)가 말한 ‘거리두기’(distancing)도 잘 해야 한다. 선동가나 극단주의자(전제주의자)들은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데 능하다. 그들은 지금의 민주주의는 엘리트집단에 의해 부패한 가짜 민주주의이므로, 정권을 잡으면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한다. 이런 식의 선동을 차단하려면 이들과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당내 경선에서 배제하거나 제명, 또는 고립시켜야 한다. 그들과의 연대를 거부하고, 그들에게 대항하는 민주세력끼리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영국, 코스타리카, 핀란드 등은 선동가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잘 막아냈지만 베네수엘라 등 다수의 남미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민주정당의 게이트키핑과 거리두기 그들은 물론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일종의 담론 차원에서의 해법도 제시한다. '상호관용’(mutual tolerance)과 ‘제도적 절제‘(institutional forbearance)’가 그것이다. 민주주의, 특히 미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 때는 이 두 개의 가드 레일(guard‧rail)이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트럼프가 출마했던 2016년 대선 전까지는. 저자들은 이 가드 레일을 다시 세워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원론적인 얘기보다 ‘게이트키핑’과 ‘거리두기’를 콕 집어서 제시한 데 주목했다.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을 식별해서 격리시키고(isolate), 경선에서 패배토록(defeat) 해야 한다는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제안에 더 끌렸던 것이다. 거기에서 정당정치의 엄중함, 단호함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일까. 정당은 느슨하고 허술한 조직체가 아니라,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보루’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던 것이다. 노웅래 의원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민주당이 그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자 여권에선 즉각 “이재명 대표를 위한 방탄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노 의원 건을 부결시켜야, 곧 국회로 넘어올 이 대표 체포동의안도 부결시킬 수 있어서 그랬다는 거다. 민주당이 임시국회 종료(1월 8일) 직후 새 임시국회를 소집할 걸로 알려졌을 때도 1년 내내 이 대표 방탄 국회를 열어두겠다는 거라고들 했다. 방탄, 방탄, 방탄, 왜 이리 관대한가 실제로 대선 이후, 이 대표와 민주당의 관심은 오로지 ‘방탄’에 쏠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헌 80조를 고쳐 부정‧부패로 기소된 당직자라도 정치보복일 경우엔 구제할 수 있도록 한 게 단적인 예다. 최근엔 ‘탁란(托卵)’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 원로 언론인은 “한국 민주화의 적통인 민주당을 종북 좌파세력과 586, 부정·비리 의혹의 당대표가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 낳듯(탁란) 접수했다”고 했다. “어찌해서 169석의 거대 야당이 대표 한 사람의 방탄놀이에 올인해 그의 부정‧비리 사건에 당의 명줄을 건다는 것이냐”고 그는 개탄했다.(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11월 29일) 송영길 전 대표는 이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하자 자신이 5번이나 당선됐던 지역구(인천 계양을)를 선뜻 내주었다. 이 대표는 이 선거구의 보궐선거(6월 1일)에서 당선됨으로써 확실하게 ‘방탄조끼’를 챙겨 입었다. 대체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해 왜 이렇게 관대할까. 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어떤 확신이라도 있어서일까. 아니면 드러나지 않은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민주당은 대장동 비리의혹과 이로 인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대목은 앞서 소개한 레비츠키와 지블랫 교수의 지적과는 대조적이다. 두 저자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권력 중심부 진출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게이트키퍼(문지기)의 중요성과 이들 선동세력과의 ‘거리두기’를 강조했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당은 ‘거리두기’는커녕 이 대표 중심의 ‘단일대오’ 유지에 올인했다. 필자 눈에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라고 하기에 충분한 한 야심가를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비쳤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2019년 한 논문에서 이 대표를 ‘아웃사이더 기질과 카리스마 성향 등을 가진 좌파 포퓰리스트로’ 규정한 바 있다. 월간 신동아 2022년 10월호) “대표직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해가 바뀌면서 상황도 바뀌고 있다. 연초 5선의 이상민 의원과 문희상 상임고문은 ‘이 대표의 유고에 대비해 플랜2, 플랜3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고문은 ’영리한 토끼는 굴을 3개 판다‘는 교토삼굴(狡免三窟)과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거론하기도 했다. 사법 리스크로 당이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으니 대비하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었다. 야권의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도 “측근 비리가 확인되면 이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동아일보는 4일 당내 핵심 친명(친이재명) 이라는 한 의원의 말을 익명으로 보도했다. 그는 “이 대표가 당은 당이고, 사법 리스크는 내 문제라고 당당히 말하고, … 체포동의안이 넘어오면 결과에 따르겠다, 수사엔 언제든지 응하겠다고 의연하게 (대처)했어야 했다.”는 것이다.(최근엔 이 대표도 그런 쪽으로 마음이 바뀐 듯하다. 그는 4일 기자들에게 “소환조사 받겠다는 것인데 뭘 방탄이냐”고 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도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방탄’ 이미지로 내년 총선을 치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 대표는 ‘방탄’ 뒤에 숨지 말고 당당히 수사에 응함으로써 당을 ‘방탄의 족쇄’에서 풀어줘야 한다. ‘방탄’ 뒤에서 ‘정치보복’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공감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적대적 의존관계’ 해소에 밀알 되어야 올 한 해가 우리 정치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 대표가 더 잘 알 터이다. 승자독식의 한국정치를 바꾸기 위한 제도적 개혁방안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도 그중 하나다. 결과에 따라서는 기존 여야 관계가 허물어지고 정치판이 재편될 거라는 관측도 있다. 이 대표가 지금과 같은 ‘방탄’에, 좌파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 이미지로 그 논의와 작업에서 중심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진부하기는 해도 한국정치가 이른바 ‘적대적 의존관계’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은 틀리지 않는다. 여야가 서로 증오하고, 그 증오에 기대어 공존하는 관계 말이다. 그만큼 편 가르기와 증오(악마화)가 일상이 됐다. 문재인 정권에서 유독 심했다. 다수 국민이 ‘친일 토착왜구’로 낙인찍혀도 대통령이 말리는 시늉이라도 하는 걸 보지 못했으니까. 이 대표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 대표는 큰 틀에서, 한국정치의 적대적 의존관계의 해소를 위해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를 몸을 낮춰 고민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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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김정은 딸의 등장 …30년 햇볕정책 결말 '4대 세습'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 9살 난 딸을 데리고 나타나다니, 이건 또 무슨 꿍꿍이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8일과 26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화성-17형) 발사 현장과 자축 행사장에 딸 김주애를 데리고 나왔다. 김주애는 엄마(리설주)와 함께 발사 순간을 지켜보았고 아버지 손을 잡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사진 속 부녀(父女)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바람에 공포의 미사일은 어디로 가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소녀의 이미지만 오래 남았다. 딸이 엄마를 많이 닮아 관심도 그쪽으로 쏠렸다. '판박이' '붕어빵'이라고들 했다. 그 틈새에서 비핵화 논의는 잠시 실종됐다. 김정은이 노리는 게 이거라면 성공한 셈이다. '후계자 수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김주애 위로는 세 살 많은 오빠가 있다. 북의 남아선호(男兒選好) 현상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다. 발사 현장의 군 관계자들이 김주애를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부르고, 줄지어 그에게 ‘폴더 인사’를 했다고 후계 운운하는 건 성급하다. 김정은도 어릴 때는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미사일 공포는 사라지고 소녀의 미소만 김 위원장은 1남 2녀로 알려진 자녀 중에 왜 김주애만 데리고 나타났을까. 오빠(12세)나 막내 여동생(5세)을 데리고 올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김주애가 김정은이 원하는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췄기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 김주애는 백두혈통이다. 김일성 왕조의 직계 핏줄이다. 백두혈통은 김씨 왕조를 떠받치는 정통성(legitimacy)의 원천이자 기반이다. 백두혈통이라야 주민들에게 먹힌다. 김주애가 미사일 발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북한 당국이 즉시 “백두산 정신의 핵은 다름 아닌 수령 결사옹위 정신”이라며 주민들에게 백두혈통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백두산 행군을 독려하고 나선 것은 그래서다. 둘째, 김주애는 북의 미래 세대다. 미래의 주역이 될 그를 핵·미사일과 나란히 놓음으로써 핵·미사일도 그리고 북한 체제도 영원하리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 김주애는 북한의 미래와 안전을 담보하는 상징인 것이다. (물론 김주애의 오빠와 여동생도 백두혈통이고 미래 세대다. 그러나 십중팔구 유학 중일 오빠는 공식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크기에 아직 공개하지 못했을 것이고, 여동생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리설주 우상화’ 시작되다 마지막으로 김주애는 엄마 리설주(33)와 닮았다. 이 대목이 핵심이다. 딸이 엄마를 안 닮고 누구를 닮겠는가마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 동그랗고 통통한 얼굴에 머리 스타일(긴 머리 반묶음)과 옷차림까지도 닮았다. 꾸미다 보니 같아진 게 아니다. 세심하게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두 사람 사진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리설주의 위상 제고, 곧 우상화를 위해서다, 리설주는 백두혈통이 아니다. 김일성의 두 번째 부인으로 항일운동을 했던 김정숙(1917~1949) 같은 ‘여성영웅’은 더더욱 아니다. (김정숙은 1941년 소련군 극동88정찰여단에서 활약했고 지금도 북에선 국모 대접을 받는다.) 리설주는 평범한 상류층 집안 출신으로 한때 은하수관현악단 가수로 활동했다. 2009년 김정은과 만나 세 아이를 낳긴 했지만 북한판 영부인으로서 아우라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김정은은 이런 리설주의 위상을 높여줄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리설주가 어린 자식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려면 격(格)부터 달라져야 했다. 특히 자신의 여동생이자 리설주에게는 시누이가 되는 김여정(34·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생각하면 더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게다. 김여정은 누가 뭐래도 정통 백두혈통이 아닌가. 올케와 시누이에게 맡겨진 北 리설주의 위상 제고를 위해서는 딸 김주애를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백두혈통인 김여정에는 못 미치지만 리설주도 백두혈통(김주애)을 낳은 엄마다. 따라서 리설주를 차제에 사실상의 백두혈통에 ‘편입’시킴으로써 시누이인 김여정과 힘의 균형을 이루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려면 엄마 김주애가 리설주와 닮아야 했다. 누구든 김주애를 보면 리설주를 떠올릴 정도가 되어야 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발사 현장에 나온 모녀의 사진을 보면 당 선전선동부에서 세심하게 터치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했다. 이 또한 김정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정은 자신도 집권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할아버지 김일성과 똑같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지 않은가. 김정은의 개인적 경험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생모 고용희(1953~2004)와 여성 편력이 극심했던 아버지 김정일의 순탄치 않았던 결혼생활을 보면서 자랐다. 고용희는 재일동포로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북에 들어와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김정일의 눈에 들어 네 번째 부인이 됐다. 김정일과 사이에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 세 자녀를 낳았지만 2004년 지병으로 프랑스에서 사망할 때까지도 김씨 왕조의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김정은은 스무 살이었다. 生母 고용희와 같은 운명은 NO! 고용희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상화 시도가 있었다. 김정일(2011년 사망)의 ‘10·8 유훈’에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가 된 데에는 모친(고용희)의 뛰어난 노력과 공적 덕분”이라는 취지의 언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용희는 2000년대 초와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 한때 ‘평양의 어머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신분이 낮은 무용수 출신인 그를 누구도 영부인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생모에 이어 아내인 리설주까지도 그런 운명으로 떨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리설주도 고용희와 같은 연예인(가수) 출신이다. 리설주가 남편이 내민 그 줄을 잡고 ‘백두혈통’의 성(城)에 무난히 입성할 수 있을까. 부모를 따라 자식의 신분을 바꾸는 게 아니라 거꾸로 자식을 따라 부모의 신분을 바꾸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진짜 백두혈통인 시누이 김여정과 관계에는 문제가 없을까. 올케와 시누이 관계라는 게 마냥 좋을 수만은 없고 보면 향후 북한을 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리설주와 김여정은 한 살 차이다. 드라마 ‘궁중 잔혹사’를 보게 될 수도 권력은 부자(父子) 간에도 나눠 갖지 못한다. 하물며 올케와 시누이 사이에서야. 김정은의 힘이 조금만 빠져도 두 여자는 치열한 권력 쟁패로 치달을 수 있다. 리설주의 아이들에게 김여정은 고모다. 북한에서 ‘고모’란 어떤 존재일까. 김정은은 집권하자마자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을 반역죄로 몰아 고사총으로 잔인하게 처형한 바 있다. 어쩌면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한 편의 리얼 드라마, ‘궁중 잔혹사’를 시청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예고편은 오래전 김일성 시대에 아들 김정일과 그의 계모 김성애(1924~2014·여맹위원장)가 이미 보여준 바 있다. 김정일은 계모에 맞서기 위해 계모와 아버지 김일성의 사이를 끈질기게 이간질했고 마침내 1974년 자신을 중심으로 한 후계 체제를 굳힘으로써 김성애를 밀어냈다. 세습 왕조의 행로와 운명이 대개 그러하다. 忍耐하며 ‘레짐 체인지’의 순간 기다려야 어떤 경우나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은 부정적이다. 9살 난 어린 딸을 통해 대대손손 핵과 미사일로 인민을 지켜주겠다고 공언까지 했는데 핵을 포기하겠는가. 비핵화는커녕 남북 관계도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진정한 관계 개선보다는 이런 식의 핵·미사일 이벤트나 쇼에 치중할 게 분명하다. 그러다가 언제든 국지 도발로 긴장도 조성하고 내부 결속도 도모할 것이다. 크게 보면 이게 30년 햇볕정책의 결말이다. 햇볕정책의 양탄자 위에서 현대사에 전무후무한 4대 세습이 진행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리설주 우상화 작업도 이미 시작됐다. 햇볕정책에 대한 총체적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뒤틀린 남북 관계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그렇다고 책임 논쟁을 벌이자는 것은 아니다. 책임 논쟁은 거대한 블랙홀이 돼 한국 사회를 집어삼킬 것이고 그 후유증은 심각할 것이다. 다만 햇볕정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얻자는 얘기다. 다시 ‘인내와 관리의 시간’인 듯하다. 섣부른 대화도, 대결도 자제하면서 상황을 관리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과욕은 피해야 한다. 역대 진보‧좌파 정권이 ‘임기 중 남북 정상회담 개최’라는 욕심을 버렸다면 대북 정책에서 시행착오를 그만큼 줄였을 것이다. 관리하면서 인내하다 보면 누가 아는가, ‘궁중 잔혹사’의 결과로 왕이 바뀌듯이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의 순간이 다가와 있을지도.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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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南 참사 애도기간에 北은 '막무가내' 미사일 도발
이태원 참사에 대해 북한은 끝내 어떤 애도의 표시도 하지 않았다.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까지도 위로의 말을 전해왔지만 북은 침묵했다. 대신 미사일만 쏘았다. 애도기간인데도 개의치 않았다. 같은 민족의 비극적 참사에 미사일 세례로 대응한 꼴이다. 도중에라도 잠시 멈추고 애도를 표했어야 하지 않을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참사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한-러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위협하더니, 곧바로 조전을 보냈다. “희생자 유족과 친구들, 다친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보내며 조속한 쾌유를 기원한다.” 북의 미사일 공세는 대한민국에 대한 ‘2차 가해’였다. 이태원 참사로 패닉상태에 빠진 우리에게 애도의 성명 한 장 없이 미사일을 퍼부었다. 저들이 입만 열면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던 그 동족인가 싶을 정도다. ‘참사와 미사일’ 사이에서 우리는 북의 실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대응을 재점검하도록 요구받는다. 참사에 대한 ‘2차 가해’ 미사일 세례 북은 갈수록 막무가내다. 지난 2일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하는 등 10시간 동안 25발의 미사일과 대포 100발을 쏘았다. 3일에도 장거리탄도미사일 1발과 단거리탄도미사일 5발을 날렸다. 한-미가 연합공중훈련(비질런트 스톰)을 연장키로 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했다. 북의 박정천 당 군사위 부위원장은 “끔찍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겁박했다. 무엇이 북을 이처럼 천방지축 오만불손하게 만들었을까. 원래 ‘버릇없는 아이’(spoiled son)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갈수록 커지는 남북 간 격차 앞에서 느꼈을 초조함이 핵(核)과 결합하면서―더 정확히는 핵을 통해 만회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서―과거와는 사뭇 다른 북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래서 북이 마구 쏘아댄 미사일은 초조함의 표시이자 자신감의 과시로 보인다. 한 세대 가까이 북을 선의(善意)로 대하면 북도 달라질 거라는 착각이 남북관계를 갑과 을의 관계로 고착시키고, 끝없는 대북 굴종을 낳았다. ‘햇볕을 쪼여야 북이 외투를 벗을 것’이라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생각은 말 그대로 우화(寓話)에 그쳤어야 했다. 그게 절대시 되고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사달이 난 것이다. 햇볕정책은 질이 나쁜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의 하나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북의 핵 보유로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됐다. 햇볕정책이 갖는 남북 화해와 협력의 취지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마저도 북핵과 미사일 앞에서 휴지가 됐다. 문재인 정권 때, ‘김여정 하명법’으로 조롱당했던 대북전단금지법이나, 북이 우리 대통령과 정부에 했던 입에 옮길 수도 없는 막말을 생각해보라. 국민의 피 같은 세금 235억원을 들여 개성에 세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북이 일방적으로 폭파했을 때 우리는 응징은커녕 항의다운 항의 한번 못했다. 그 대가가 북의 핵무장이고 미사일 세례다. 이게 정상적인 남북관계인가. 햇볕정책 30년, ‘설거지’는 누가? 북한은 2003년 대구 지하철,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만 해도 애도를 표했다. 1984년 우리가 수해를 입었을 때는 쌀, 시멘트, 옷감(포플린)을 보내오기도 했다. 북은 당시 전두환 정부가 자신들의 수해지원 제의를 전격 수용하자 내심 당황했다고 한다. 그때도 형편이 어려웠던 북은 구호물자 마련에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그 성의(誠意) 덕분에 그해 11월 남북 경제회담이 열리는 등 남북관계가 풀렸다. 이제는 이런 공존 공생의 남북관계를 더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핵폭탄과 미사일을 머리에 인 북과 무슨 진정성 있는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햇볕정책 30년, 누구는 즐겼고, 누구는 감격했다. 하지만 부(負)의 유산은 오롯이 남았다. 설거지는 늘 보수정권의 몫이었다. 햇볕잔치는 끝났고, 윤석열 정부도 그 어깨가 무거워졌다. 북의 NLL 이남 미사일 발사에 대해 윤 대통령은 “실질적 영토 침해”로 규정하고 “대가를 치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당연한 대응이다. 핵 공론화도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핵 공론화는 확장억지의 강화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는데 이제는 전술핵 재배치는 물론 독자 핵무장까지도 거론될 정도로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북으로서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북이 도발하면 할수록 한·미동맹은 굳건해진다. 핵억지(핵우산)도 강화된다. 이 ‘안보 딜레마’가 몰고 올 군비 상승을 북은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북, 미사일 비용 감당하다 內破될라 북이 지난 2일 하루에 발사한 단거리탄도미사일 등 미사일 25발을 돈으로 환산하면 7500만 달러(약 1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미사일 1발에 200만~300만 달러 꼴이다(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3일 자유아시아방송). 이 정도 비용이면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걱정하기에 앞서 국가부도로 인한 내파(內破)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암호화폐 해킹으로 그 비용을 댄다지만 서방 국가들이 보고만 있겠는가. 핵 공론화 중 확장억지, 곧 기존의 핵우산을 더 넓고 두텁게 펴야 한다는 데 대해선 한·미부터가 이론이 없다. 그러나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한 자체 핵보유에 대해선 한·미는 물론 우리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반대하는 쪽은 북의 핵보유를 정당화시킴으로써 한반도의 비핵화를 어렵게 만들고, 핵 도미노 현상을 촉발시킬 거라고 우려한다. 미국의 반대를 꺾기도 어렵거니와 중국과 러시아도 이를 용인하지 않을 거라고 지적한다. 전술핵 재배치도 어려운데 자체 핵무장이라니, 현실성이 없다는 거다. 그러나 독자 핵무장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핵 개발이 임계점을 넘었고, 이제 완전한 비핵화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됐다”고 지적하고 “새로운 전략목표는 ‘의심할 바 없는 확실한 핵 억지’의 제공으로 (이를 위해) 모든 핵 옵션을 테이블 위에 놓고 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도 “북이 핵무기로 미 본토를 위협할 때 과연 미 대통령이 북한과의 핵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핵 보복을 결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독자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4일 국방안보포럼). 어느 쪽이 우리의 안보와 미래에 더 적실성을 갖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거칠게 말하면, 미국 등 국제체제로부터의 반대 압력 때문에 핵무장을 못하는 거지, 할 수만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전후(戰後) 70년이 넘도록 세계가 인류사에 드물게 긴 평화의 시대를 누려온 것은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 아닌 핵무기에 기초한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때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확장억지 속에서 NCND의 핵 옵션을 그럼에도 북의 미사일 사태로 한층 강화된 확장억지가 제대로 작동만 된다면 굳이 핵무장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미는 3일 끝난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확장억지의 일환으로 미 전략자산을 상시 배치에 준하는 효과가 있도록 운용하기로 합의했다. 확장억지 제공 과정에서 한국의 관여도 보장키로 하는 등 미국은 독자 핵무장만 빼고는 뭐든지 다 들어줄 태세였다. SCM 공동성명에 “김정은 정권이 핵공격을 하면 종말을 맞을 것”이란 경고를 처음 담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5일자 사설에서 “공동성명에는 (핵 억지에 관한) 선언적 말만 있을 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없다”면서 “미국의 어떤 강한 말도 ‘핵 있는 북한과 핵 없는 한국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달라진 안보환경 아래서 독자 핵무장 외에 믿을 만한 무슨 방책이 있느냐는 얘기다. 결론은 분명하다. 양측 사이에서 어떤 형태로든 접점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강화된 확장억지를 더 강화하고, 그 아래서 독자 핵무장은 NCND의 전략적 기술적 옵션으로 놔두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어떻든 지난한 일이다. 햇볕에 취해, 이대로 가면 북이 핵보유국이 되고, 조국의 안보와 미래, 그리고 운명까지 그 하위변수가 되고 말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의 가책 소리가 크다. 실로 기이한 시절이었다. 구차한 대북 굴종주의자들은 ‘평화세력’이고, 원칙을 지키고, 남북 간 형편에 맞는 융통성 있는 상호주의로 가자는 사람들은 ‘전쟁세력’으로 몰렸다. 이에 복무했던 그 많은 구루(guru)들은 오늘 북의 미사일 세례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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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낡은 '친일타령'으로 핵 게임 이길 수 없다
박근혜 정권 때 주일대사를 지낸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한·일관계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2013년 7월 도쿄 국제도서전에 참석했을 때였다. “과거의 한·일관계는 위(상층부)는 좋았으나, 아래(민초 수준)는 나빴다. 요즘은 거꾸로다. 위는 안 좋고, 아래는 좋다.” 한·일관계를 이처럼 쉽게 압축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흘렀다. 그의 인식과 진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양국 간 바닥 정서는 우호적이고 활기가 넘친다(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기반 위에서 피어난 문화교류와 한류도 한몫 했을 터다). 반면 정부, 정치, 정상(頂上) 수준에선 관계가 더 소원해졌다. 문재인 정권에서 특히 그랬다. 그 사이 윤석열 정권이 들어섰지만 그 여파로 아직 제대로 된 정상회담 한번 못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근 한·미·일 3국의 동해 합동훈련에 대해 “일본을 한반도에 끌어들인 것은 자충수, 극단적 친일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위기를 핑계로 일본을 끌어들이다간 한반도에 욱일기가 다시 걸릴 수 있다”고도 했다. 전에 없이 사나워진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 위협 앞에서 다시 ‘친일’을 꺼내든 것이다. 물론 북한에 대한 규탄도 빼놓지 않았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미사일을 쏘고 7차 핵실험을 준비 중이라는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의 일체의 행위를 규탄한다”고 했다. 앞뒤가 안 맞는다. 북의 위협이 그렇게 심각하다면 한-미 공조에 더해 한-미-일 3국 공조로 가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게 상식이다. 같은 당의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한·미·일 3국간 안보협력이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있다”고 했다. 태극기가 일본열도를 뒤덮으면 안 되나?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겹친다. 그런대도 일본은 빼라는 얘기는 현실성이 없다. ‘오늘 동해훈련에 일본이 끼게 되면 미래의 한반도에 욱일기가 나부끼게 될 거라’는 논리인데 정체된 낡은 반일(反日) 인식의 소산이다. 이 대표는 거꾸로 이런 생각은 안 해봤나 모르겠다. 첫째,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우리가 싫다고 어디로든 보내버릴 수 있는 이웃이 아니다. 둘째, 중국은 계속 초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다. 셋째, 미국은 언젠가는 우리와 헤어질 수 있다. 동북아의 국제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속단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욱일기가 나부낄 거라고? 거꾸로 태극기가 일본열도를 뒤덮으면 안 되나. 나는 이 대표에게 유럽의 7년 전쟁(1756~1763년)을 심도 있게 연구해보기를 권한다. 어제의 적(敵)이 친구가 되고, 친구가 적이 되는 국제전쟁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 대표는 ‘욱일기’ 발언으로 배일(排日)은 했을지 몰라도 미래 지향의 용일(用日)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 대표는 ‘욱일기’를 걱정할 게 아니라 북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어야 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심각한 안보위기 상황에서도 친일 선동 노름에만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에 대해선 “고장난 축음기처럼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오라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핵 보유로 인해 이제 북핵문제는 남북 간 ‘핵 균형’을 유지하는 문제로 성격이 바뀌었다. 핵 균형은 왜 필요한가. 억지(抑止·deterrence)의 균형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북은 핵무기를 가졌고, 우리는 못 가졌다’는 말은 쉽게 풀면 북은 억지력이 있고, 우리는 없거나 부족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 갭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전술핵 재배치, 韓美 입장 달라 원론적으로 4가지 방법이 있다. ⓵자체 핵무장 ⓶전술핵 배치 ⓷핵 공유 ⓸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핵우산)가 그것이다. 이 중 자체 핵무장은 지금과 같은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 아래선 어렵다. 미국을 비롯한 기존 핵보유국들이 핵무기 확산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전술핵 배치는 1991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때 미국이 가져간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자는 것인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선 한·미 양국 전문가들의 생각도 다르다. 박원곤 교수(이화여대)는 12일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당초 반대에서 지금은 입장이 조금 바뀌었다”면서 “전술핵이 한반도에 와 있고, 주한미군이나 한국군의 전투기를 활용한 투하가 북의 전술핵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방송에서 유성옥(전 국정원 안보전략원장), 김태우(건양대 교수)도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반면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본부장(전 이재명후보 선대위 실용외교위원장)은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 있지만 아직은 그 단계는 아니다”고 했다. 미국 측 전문가들은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13일 6명의 전문가들을 상대로 의견을 물었더니 모두가 부정적이었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핵의 수량이 많지 않은데다, 북한의 직접적인 공격에 노출될 위험 때문에 한반도에 배치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미국이 전술핵을 배치하는 상황을 상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도 ”전술핵 배치 없이도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로 한국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 확장억지 말고는 다른 대안 없나 핵 공유에 대해서도 미측은 부정적이다. 클링너 연구원은 “자체 핵무장, 전술핵배치, 핵 공유 중, 핵 공유가 차악(least bad)”이라면서도 미국이 한국에 핵통제권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핵무기가 어떤 목표물에 대해 어떻게, 몇 개 사용될지는 한·미 확장억제전략회의(EDSCG)에서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확장억지(핵우산)뿐이다. 미국은 1978년 제11차 한·미 SCM(연례 안보협의회)에서 한국에 대한 핵우산 보장을 천명한 이래 확장억지를 일관되게 유지, 강화해 왔다. 2013년 10월 북의 제3차 핵실험 이후 열린 제45차 SCM에선 이른바 ‘맞춤형 억제전략’(Tailored Deterrence Strategy)에 합의하기도 했다. 미국의 양자 동맹국들 중 이런 억지전략에 합의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은 핵무기, 재래식 무기,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9월에는 EDSCG 논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신범철 국방차관 일행에게 전략자산인 B-52 전략폭격기에 탑재된 핵탄두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확장억제를 믿으라는 일종의 현시였다. 이쯤 해서 우리는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그걸로 충분한가. 가짓수가 많은 현란한 비핵억제조치들보다 전술핵 같은 똘똘한 대응수단 하나가 더 절실한 것 아닌가. 억지 논의는 결국 전술핵 재배치 여부로 다시 돌아오고 만다. 윤 대통령, “여러 의견 경청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측 당국자들의 말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부터가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지난 12일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했다. 조태용 주미대사도 워싱턴 주미대사관 국정감사에서 “확장억지 실행력 강화가 정부의 입장”이라면서도 “북핵이 현실적인 위협이 된 상황발전에 따라 창의적인 해법도 점검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창의적 해법’이란 표현을 썼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작년 9월에 내놓은 ‘한국인의 외교안보 인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1.3%가 전술핵 재배치에 찬성했다. 독자 핵무장에 대한 지지율은 69.3%였다. 이는 2010년의 55.6%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수치였다.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응답은 93.3%. 유사시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을 이길 수 없다’는 응답도 67%에 달했다. 달라진 안보의 성격과 수요, 달라진 국민의 인식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윤석열 정부의 최대 과제가 됐다. 북은 앞으로도 고도화된 핵무기를 기반으로 더 공세적으로 나올 게 분명하다. 이근욱 교수(서강대)는 2014년 지역 핵 국가들의 문제를 연구해온 비핀 나랑(Vipin Narang· MIT대) 교수의 이론을 기초로 북의 핵 행보를 예측했다. 결론은 이러했다. “북은 파키스탄과 유사하게, 핵무기 보유 덕분에 만들어진 전략적 공간과 안정성을 악용하여 전술적 도발을 반복하고, 제한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함으로써 반복적으로 위기가 발생하는 ‘안정-불안정의 역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은 북의 국지도발이 반복될 거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정치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 (이근욱, 「비핀 나랑의 현대 핵전략」, 『전략연구』 2014년) 억지 경쟁의 핵심은 신뢰다. 상대방이 우리 측의 의도와 결심을 의심하지 않아야 억지력이 생기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핵보유국 북한을 상대로 핵 균형을 이루려면 확장억지든 전술핵 배치든 이게 관건이다. 이재명 대표의 ‘친일국방’ 주장은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본격적인 핵 게임이 시작됐다.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낡은 ‘친일타령’으로 그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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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정치 달인' 이재명, 져야 이긴다
1. 특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일 검찰이 자신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자 ‘김건희 특검’으로 맞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두 사안은 동열에 놓을 사안이 아니다. 하나는 당사자가 순수한 사인(私人)이었을 때 일이고, 다른 하나는 선출된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된 비리 혐의다. 특검은 공직자의 비리를 주 대상으로 한다. 공직자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그렇다. 김건희 건은 그동안 나름대로 검찰의 판단을 거쳤다. 주가조작 혐의는 문재인 정권에서 2년 반 동안 수사를 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허위 경력 기재는 공소시효가 지났다. 반면 이 대표는 선거법 기소에 이어 14일 성남FC 후원금과 관련해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 두 사안은 시기나 성격도 다르다. 패키지가 될 수 없다. 이 대표는 2021년 7월 12일 MBC 라디오와 인터뷰하면서 “결혼 전 일은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특검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패스트트랙에 태우기도 어렵고, 태운다고 해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특검을 들고 나왔다. 누가 봐도 검찰의 기소에 대한 맞불 놓기로 비친다. 당내에선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는 걸 명심하라”는 말 등이 쏟아졌다. 발의된 특검도 대규모다. 특검보 4명과 파견검사 20명을 포함해 100여 명으로 팀을 꾸리도록 돼 있다. 역대 최대로 알려진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최순실 특검(105명)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2. 영수회담 이 대표는 그러면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1대1 영수회담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여야를 떠나서 민생을 구하는데 어떤 게 필요한지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자”는 것이다. 민생을 살리겠다는 집념이 그만큼 강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절박한 정치적 동기가 있는 건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한쪽에선 특검을 하자며 영부인을 직격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1대1 영수회담을 요구하는 것인데, 우리 정치사에서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치권 일각의 시선대로 이 대표는 자신을 향해 조여오는 검경(檢警)의 칼날을 무디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 그렇다면 영수회담까지 방탄용이라는 얘기인가. 국민의힘 일각에선 “우리도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고가 옷 구입 의혹 사건에 대한 특검 요구로 맞서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저런 식으로 나오면 ‘쌍특검’으로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3월 25일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는 김정숙 여사를 업무상 횡령과 국고 손실 교사죄 혐의 등으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김 여사가 청와대 특수활동비 담당자로 하여금 수백 벌의 고가 명품 의류와 수억 원에 해당하는 장신구 등을 구입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민생대책위는 “청와대에선 모두 김 여사가 사비로 구입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에서는 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한국납세자연맹도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특활비 지출 내역과 김 여사의 의상과 액세서리 등이 포함된 의전비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문재인 청와대는 “국가안보 등 민감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거부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월 일부를 공개하도록 결정했다. 청와대는 불복하고 3월 항소했다. 납세자연맹은 윤석열 대통령실에 대해서도 특활비 공개를 요구 중이다. 3. 정치와 기회 이런 상황에서 ‘쌍특검’을 하게 되면 여야 극한대치로 정국은 얼어붙고 국정은 마비될 게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고 보면, 이에 반발하는 친문(親文)과 친명(親明) 간에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권 여당이 그 단초를 제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대표는 대선 이후 우리 정치를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정상 궤도에 복귀시킬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가 먼저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서 당을 떼어 놓을 각오를 했어야 했다. ‘김건희 특검’만 해도 당 안팎에서 처음 그 얘기가 나왔을 때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으니 당이 나서서 그 짐을 나눠 지려 하지 말라”며 말렸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신선한 충격을 줬을 것이다. 내가 너무 순진한가? 이 대표는 그와는 정반대로 갔다. 그의 행보는 오직 ‘방탄’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비쳤다. 대선 패배에 대한 의미 있는 진단과 논쟁 한번 없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당대표가 됐다. 이 과정에서 당헌까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사법 리스크와 당의 분리(격리)보다는 일체화를 꾀한 셈이었다. 4. 방탄 그는 ‘방탄’에 성공했을지 몰라도 다수 국민이 ‘방탄’ 너머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정치인의 야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 어떤 비정함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팬덤 지지자들 생각은 다르겠지만 필자에겐 그렇게 다가온다. 적어도 그가 큰 꿈을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이념과 계층의 유권자들은 나와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야당 탄압' 탓으로 몰아붙인다. 정부·여당에 대해 “정쟁, 야당 탄압, 정적 제거에 국가 역량을 소모하지 말라”고 한다. 다수 국민의 인식과는 간격이 있다. 논객 진중권의 반응이 그 간격을 잘 보여준다. “무슨 정적 제거이고, 무슨 국력 소모인가. 공직자라면 ‘수사를 성실히 받고 제게 씌워진 혐의를 벗겠습니다’라고 해야지 당 차원에서 무슨 기구(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를 만든다고 될 일이냐.”(문화일보 9월 14일) 필자는 17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허위사실 공표) 공소장을 보았다. ‘대장동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에 대해 이 대표는 “성남시장 재직 때는 하위 직원이라 몰랐다”고 했지만 해외 출장을 함께 가고, 대장동과 관련해 여러 차례 보고를 받았음이 드러났다.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 특혜’ 건도 이 대표는 당시 “국토부에서 협박을 받았다”고 했지만 협박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5. 정치가와 정치인 ‘진보’로 분류되는 한 중견 언론인은 이 사건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에 대해 모두 “이재명 대표의 부패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폈다. “법리상 유죄일 수는 있어도 정치를 그만둬야 할 정도의 부패 범죄는 아니다”는 것이다.(한겨레 2022년 9월 17일) ‘정치’를 ‘법’이라는 경직된 틀로만 볼 수 있느냐는 점에선 공감할 부분이 없지 않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논쟁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기에 딱 하나만 묻고 싶다. 그 거짓말이 내 진영(내편)이 아닌 반대 진영에서 나왔어도 그렇게 관대했을까. 지난 대선 과정에서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했다. 2021년 12월 3일 전주에서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가 문제가 되자 3월 7일 그 경위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이 대표는 단순한 수사(修辭)였다고 해명했지만 나에겐 쉽게 잊을 수 없는 말로 남아 있다.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직 이르지만 이 대표는 벌써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에 대한 필자의 고언도 그래서 나왔다.) 진부하지만 정치학개론 시간에 누구나 배우는 게 정치가(statesman)와 정치인(politician)에 대한 구별이다. 정치가는 대의(大義)를 좇아 큰 정치를 하는 사람이고, 정치인은 정치 자체에 능한 사람이다. 임기응변이 뛰어나고, 정쟁(政爭)에서도 좀처럼 지는 법이 없다. 대선 직후인 지난 3월 10일 한국갤럽은 투표자 1002명을 상대로 윤석열, 또는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윤 후보는 ‘경험 부족’이 18%로 1위였고, 이 후보는 '신뢰성 부족‧거짓말'이 19%로 1위였다. 권위는 물론 심지어 권력까지도 도덕성에서 나온다. ‘한 사람의 인격을 시험해보려면 그에게 권력을 주어라’(링컨)는 말도 있다. 이 대표, 져야 이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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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尹의 '담대한 구상'과 햇볕정책의 그늘
윤석열 정권은 남북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다. 식량, 전기, 항만‧공항, 농업, 의료, 금융 지원은 물론 북·미 관계 개선과 재래식 무기 감축까지도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북은 일거에 거부했다. 입에 담기도 어려운 조롱과 막말로 답을 대신했다. 1. ‘햇볕 적폐’의 딸 김여정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34)은 “10년 전 이명박 역도가 내들었다가 버림받은 ‘비핵‧개방‧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면서 “오늘은 담대한 구상을 하고, 내일은 북침 전쟁 연습을 강행하는 파렴치한 이가 윤석열 그 위인으로, 역시 개는 엄지(어미)든 새끼든 짖어대기 일쑤”라고 조롱했다 “윤석열이란 인간 자체가 싫다”고도 했다. 한 세대에 걸쳐 ‘햇볕’이란 이름하에 왜곡·누적되어온 굴종적 대북 정책의 적폐를 한눈에 보는 듯하다. 김여정은 그 적폐가 낳은 딸이다. 그는 과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도 “미국산 앵무새”라고 했다. 그가 김일성 핏줄이라고는 해도 우리로 치면 통일부 차관급 관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문 정권 내내 우리 대통령의 카운트파트라도 되는 양 위세를 부렸다. 막말은 ‘양념’이다. 더는 그런 수모를 당해선 안 된다. 누구는 밸도 없나.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분을 느껴야 한다. 국격을 염두에 두지 않은, 시종일관 대북 저자세가 자초한 일이다. 대통령실이 즉각 “무례하다”며 유감을 표하고 나선 것은 만시지탄이다. 이제라도 균형 잡힌 대북 정책을 통해 이런 품격 없는 언행이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2. ‘유연한 상호주의’에 거는 기대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 야당과 좌파 측은 “비핵화를 전제로 삼은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북이 비핵화를 수용할 가능성도 없는데 뭐가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윤 정부는 북이 비핵화 의지만 보여줘도 초기 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주겠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먼저 다 비핵화해라. 그럼 우리가 그다음에 한다’는 뜻이 아니다”면서 “의제를 우리가 먼저 저쪽에 줘야 (저쪽의) 답변을 기다릴 수 있고, (그렇게 해야) 의미 있는 회담이나 대화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비핵화와 대북 제재 해제를 엄격한 상호주의가 아닌 ‘유연한 상호주의’ 방식으로 풀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핵 합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자원·식량 지원 프로그램 같은 기제가 작동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제재 해제의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있다. 미국을 움직이려면 북·미 간 최소한의 신뢰가 조성돼야 한다. 그게 우리에겐 부담이자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차제에 상호주의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상호주의는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1대1의 엄격한 상호주의만 있는 게 아니다. 현실 속 상호주의는 훨씬 다양하다. 비대칭 상호주의도 많다. 여유 있는 쪽에서 더 많은 것을 주고, 가난한 쪽에선 더 적게 주는 것이다. 좌파가 보수 진영을 공격할 때 동원하는 단골 무기가 상호주의다. ‘상호주의’를 고집해 형편이 어려운 북을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대부분 ‘비대칭 상호주의’로 북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보수의 상호주의를 기계적 상호주의로 보는 것은 정확한 인식이 아니다. 남북 문제 해결에 ‘교류‧협력’이 큰 역할을 했던 시대가 더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북이 핵 보유국이 된 후로 그런 인식이 더 강해졌다. 이번에도 일각에선 교류‧협력보다 북 체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 곧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제시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럼에도 교류‧협력이야말로 남북 쌍방 간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손쉬운 방법이다. 적십자사를 통한 이산가족 상봉이나,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식량 지원 방안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3. 북핵, ‘관리’가 더 중요해졌다 남북 문제가 구조적으로 어떤 접점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북이 핵을 포기할 리 없고, 남은 ‘핵을 보유한 북’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쪽에서든 양보를 하면 좋겠지만 안 한다. 아니, 못한다. 국가와 정권의 존폐가 걸린 일인 데다 미국,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까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북은 1956년 물리학자 30여 명을 소련 드부나 핵 연구소에 파견한 이래 핵 개발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2006년 제1차 핵실험에 성공했고, 지금은 7차 실험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핵기술 고도화와 핵무기 경량화에도 진전이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북의 핵 개발을 막았어야 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대한 책임 문제도 규명되어야 한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에 준 5억 달러는 북한 경제 규모로 보아 실로 큰돈이었다. 당시 한 재벌그룹 총수는 “1억 달러만 있으면 식량난을 비롯해 북이 직면한 산적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물경 5억 달러가 북에 건네졌다. 비핵화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상황 관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모든 전문가들은 “북이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전쟁만은 안 된다”고 한다. 어떻게 하라는 건가. 상황을 잘 관리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지금의 한·미 동맹 체제 아래에선 실현되기 어렵다. 북핵 문제 관리가 새 정부에는 또 하나의 큰 과제인 셈이다. 비핵화가 이뤄지면 좋겠지만 안 되면 튼튼한 관리 체제라도 갖춰야 한다. ‘최선은 차선의 적(敵)’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4. 좌파의 ‘대화 공세’에 대처하는 법 ‘안보 딜레마’는 상대 국가의 군비 증강에 불안을 느낀 나라가 자신도 군비 증강에 나서지만 상대방도 다시 군비를 늘림으로써 두 나라 안보가 모두 불안해지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대화 딜레마’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하자니 상대를 믿을 수 없고, 안 하자니 호전적 대결주의자로 몰리는 현상 말이다. 남북 대화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대화에 소극적인 듯 비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잘 안다. 좌파는 불문곡직하고 ‘대결주의자’로 몰아버린다. “평화에 반대해? 그럼 전쟁하자는 거야?” 같은 단순 무지한 공격으로 그동안 보수는 힘들었고 좌파는 재미를 본 게 사실이다. 이산가족 상봉이든, 코로나 방역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든 기회만 되면 북과 대화할 의지를 내비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적인 화해 협력 기류에 편승해 남북 대화에 물꼬를 튼 것은 좌파가 아닌 보수 우파였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이 없었더라면 김대중(DJ)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DJ의 최초 통일 방안이 1980년대 중반에 나온 ‘공화국연방제’였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혹독했던 냉전시대 서슬 푸른 군사독재 치하에서 자신의 통일 방안에 ‘연방제’라는 이름을 붙였던 DJ는 이로 인해 극심한 고초를 겪었다. DJ는 결국 1990년대 초 ‘공화국연방제’ 통일 방안을 ‘공화국연합제’로 바꾼다. 그 결정적 계기가 1989년 노태우 정권이 발표한 7‧7선언이었다. 북방정책의 시발점이 된 7‧7선언은 ‘남북 관계를 동반자 관계로 규정하고 북한과 미국·일본 등 간 관계 개선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게 골자였다. DJ 측근들은 뒷날 “DJ는 7‧7선언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남북 평화체제 수립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음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통일론을 더 한층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게 된다”고 증언했다. (졸저 <사회통합형대북정책> 나남, 2013년) 좌파의 ‘대화 공세’에 주눅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5. “쇼는 안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운동 중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대북 쇼는 안 한다”(1월 24일 공약 발표)고 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북한과 대화는 필요하지만 정상 간 대화나 실무자들의 대화와 협상이 정치적인 쇼가 돼서는 안 되고 실질적인 평화 정착에 유익해야 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다수 국민이 남북 간 대화나 행사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두 차례 정상회담을 했고, 이 회담이 또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싱가포르, 하노이)으로 이어짐으로써 화제가 되긴 했다. 그럼에도 주 의제였던 비핵화 문제엔 어떤 성과도 없었다. 권위주의 독재와 민주화 시대의 파고를 헤쳐 나오면서 보수나 진보나 남북 문제의 정치적 이용에 관한 한 원죄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이와 결별하겠다고 먼저 선언한 셈이다. 대북정책은 물론 일련의 외교 행사는 현안 논의와는 별개로 정치적·상징적 의미가 있게 마련이고, 이것이 한 나라의 중요한 외교적 자산이 된다. 거품(쇼)은 걷어내고 자산은 늘리겠다는 윤 대통령의 다짐을 주목한다. 이재호 (정치학 박사, 극동대 교수, 전 동아일보 논설실장)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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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정지 6개월' .. 그에겐 행운의 시간 .. 말(言) 화두로 씨름하라
··· 당 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를 받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페이스북에 광주 무등산에 오른 사진과 글을 올렸다. 징계 잠행 이후 닷새 만이다. 왜 무등산일까. 그는 "정초에 왔던 무등산, 여름에 다시 오겠다고 했었다"면서 “광주에서의 약속들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공언한 ‘서진(西進)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정치 재개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당의 가장 약한 고리인 호남의 상징, 광주 무등산을 찾아 자신의 심경과 의사를 보다 극적으로 드러냈다는 거다. 역시 이준석답다. 그는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두 가지가 빠진 징계결정 나는 이준석 대표가 당의 징계결정을 받아들이는 게 순리라고 본다. 물론 억울한 점도 있다. 징계결정에는 두 가지가 빠져 있다. 하나는 성상납에 대한 유죄의 증거다. 경찰이 수사 중이라고는 하나, 그가 성상납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증거를 인멸하나. 그 ‘인멸’도, 이 대표와 김철근 정무실장 간 공모, 또는 이 대표의 묵인이나 양해가 있었다는 정황상 증거조차도 아직 없다. 윤리위가 심증만으로 징계를 한 것이다. 이 대표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법적수단을 총동원해 대응하겠다고 했다. 한때는 “징계처분”이 당대표에게 있으므로 “징계가 납득이 안 되면 우선 징계처분을 보류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당원권이 정지되면 피선거권과 선거권도 정지되므로 대표자격도 정지된다. 따라서 징계처분의 권한도 대표 직무대행(권성동 원내대표)에게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당도 11일 의원총회에서 이를 확인했다. 의원들은 “(권 대표) 직무대행 체제로 당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권 대표는 직무대행 기간에 대해선 “윤리위가 결정한 바와 기본적으로 6개월”이라면서 “정치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 예측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복귀 가능성은 열어둔 셈이다. “징계결정 수용하고 재충전하라” 당의 원로인 홍준표 대구시장도 8일 “징계결정을 수용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6개월간 오로지 사법적 절차를 통해 누명을 벗는 데만 주력하라”면서 “누명을 벗고 나면 새로운 이준석으로 업그레이드 돼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100% 공감한다. 홍 시장은 자신의 경우를 언급하기도 했다. “2017년 3월 탄핵 대선을 앞두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엮여 당원권이 1년 6개월 정지됐다”면서 “항소심 무죄판결로 당원권이 회복돼 대선후보와 당 대표를 다시 한 일이 있다”고 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김순례 전 최고위원도 자유한국당 시절이던 2019년 4월 5·18 폄하발언으로 당원권이 3개월 정지됐지만 징계 종료 후 복귀했다. 중앙일보는 이 대표에게 남은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보도했다. 재심 청구나 징계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할 수는 있겠지만 인용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이 대표에게 호의적으로 알려진 20대 남성 팬덤이나, 자신의 임기 동안 급증했던 책임당원들을 앞세워 당을 압박할 수도 있겠지만 당을 쪼개는 행위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7월 10일) 黨의 중진들은 바라만 보고 있었나 문제의 성상납(성매매 알선수재)은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권 때인 2013년과 2016년에 있었던 일이다. 공소시효는 7년이다(징계시효는 공무원의 경우 3년). 당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 조기 수습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죄는 엄중히 묻되 파장은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게 사법(司法)이 아닌 정치가 해야 할 일 아닌가. 물론 이번 싸움은 이 대표와 ‘윤핵관’과의 세력다툼 성격을 띤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이로 인해 당이 입은 상처가 너무 컸다.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2개월여 만에 30%대까지 떨어졌다. 당의 중진의원들이 제 역할을 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홍준표 시장도 “(내홍 중인데도) 중진들의 모습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다선(多選)의 중진 의원들은 경륜도 있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사전에 조율하는 능력도 있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지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안 내거나 못 내는 분위기다. 이번에도 이준석 대표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나선 것은 오히려 민주당의 이상민 의원(5선)이었다. 그는 이 대표가 “본인 스스로를 갉아먹고 궁극적으로는 당까지도 무너지게 한다”고 했다.(CBS 라디오) 중진들 무력하게 만든 팬덤정치 여야를 막론하고 중진들의 위축은 정치의 팬덤(fandom)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치인과 지지자들의 관계가 인기연예인과 팬 사이의 관계로 변하면서, 정치 참여의 수준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만큼 지지자들에게 구속된다. 그런 관계가 반드시 바람직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속칭 ‘∽빠 정치’나, 일부 초선 의원들의 일탈이 그 방증이다. 지지자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정도라고 믿어온 중진들에겐 생경한 정치 환경이다. 그러다보니 ‘꼰대’ 소리를 듣기보다는 나서지 않겠다는 심리와 분위기가 강하다. 이 대표는 우군 확보 차원인 듯 당원 모집에 나섰다지만 그래서 될 일은 아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논리로 팬덤에 호소하겠다는 것인데 먹힐 것 같지 않다. 한 네티즌은 인터넷에 “피해자 코스프레와 윤핵관 프레임으로, 사적 목적과 보복을 위해 저희 2030 보수 청년들을 소환하지 말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시대의 아이콘 이준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그가 2011년 말 정치에 입문한 이후 오늘까지 그의 행적을 여러 자료를 통해 꼼꼼히 살펴보았다. 착잡했다. 대개는 그의 ‘업보’라고 했다. 자업자득, 뿌린 대로 거뒀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를 바꿀 재목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 영민한 청년에 대한 평가치고는 너무 박했다. 口業 – 입으로 쌓은 업보 40쪽이 넘는 ‘나무위키-이준석 논란 및 사건 사고’를 읽으면서 나는 중간 중간에 내가 느낀 점들을 제목 형태로 써보았다. 예컨대 2019년 3월 당시 바른미래당의 청년학교 회식자리에서 차마 옮길 수 없는 말로 안철수를 모욕, 안 지지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제명을 촉구한 일이 있었다. 그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이 기사 밑에다 나는 ‘천방지축 안하무인’이라고 썼다. 2021년 6월 신임 당대표로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면회할 계획이 없다. 내가 당대표가 된 걸 감옥에서 보며 위안이 됐기를 바란다”고 했다. 논란이 되자 그는 기사 수정을 요청했다. 그해 8월 윤석열과의 통화내용이 유출돼 파문이 일었다. 이 두 기사 아래에 나는 ‘신뢰부족, 진정성의 결여’라고 적었다.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 다 인용하기 어렵다. 전장연(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운행 방해 시위는 이 대표의 지향성과 함께 정치인으로서 그가 뭘 보완해야 할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이 사안은 본질적으로 어느 한쪽 편을 들기 어려웠다. 여론도 시민들의 불편을 생각해야 한다는 쪽과 전장연의 이동권 보호를 지지하는 쪽으로 갈렸다. 이 대표는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경찰과 교통공사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당장 유화적인 언어로 그분들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줄 생각이 없다”면서 “불법시위를 중단하고 공식 대화채널을 통해 얘기하자”고 했다.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반발도 거셌다. 주목할 것은 당시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의 고언(苦言)이었다. 그는 “당 대표가 항상 본인의 소신만 피력할 것 같으면 정치 해나가기를 어렵다”면서 “참을 때는 참고 자제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 선배인 임태희 당시 대통령당선인 특별고문도 “정치에는 차가운 머리로 하는 영역도 있고, 따뜻한 가슴으로 해야 되는 영역이 있다. 발언을 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헤아려가면서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6개월, 말(言)만 붙들고 씨름하라 정치인으로서 이준석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이 두 사람의 조언 속에 다 들어있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붉은 사인펜으로 ‘오만과 독선’을, 파란 펜으로는 ‘겸양과 말, 그리고 인내’를 적어 넣었다. ‘사고는 디지털로, 태도는 아날로그로’라는 말도 추가했다. 이준석이 말을 조금만 더 가려 했더라면, 그러기 위해서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무슨 엄청난 사건이나 사고 때문에, 거창한 이념이나 이론, 비단주머니에 담긴 비책 같은 게 없어서 이리 된 게 아니다. 말 때문이다. 말로 지은 업보, 곧 구업(口業) 때문이다. 말을 아끼려는 노력, 말을 할 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하나만 있었어도 피해갈 수 있었다. 예부터 화종구출(禍從口出),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주어진 6개월-나는 역설적으로 이 대표에겐 행운의 시간이라고 본다- 말(言)이란 화두 하나만을 붙들고 씨름하시라. 정치를 구하고, 대한민국을 구하는 일쯤은 잠시 접어두시라. 한국정치의 자산(資産) 하나가 이런 식으로 피지도 못하고 꺾여서야 되겠는가.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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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동맹열차 탑승' 바른 결정이나 내릴 곳은 우리가 정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나토 파트너 국가 자격으로 참석한다. 한국 대통령이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다.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이고, 대면(對面) 다자외교 무대 데뷔이기도 하다. 나토 파트너국은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나토 훈련에 참여하거나 정보 교환 등을 통해 협력 관계를 맺은 나라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 간 회의 세션에 참석하는 한편 여러 정상들과 양자 회담도 할 것”이라면서 “가치와 규범을 토대로 한 국제질서를 위해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우리의 역할을 확대할 중요한 계기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와 글을 정리하던 중 김기수 전 세종연구소 국제정치연구실장이 쓴 <21세기 대한민국 대외전략-낭만적 평화란 없다>(2012년)란 책자에 눈길이 갔다. 출간된 지도 꽤 됐고, 100쪽이 채 안 되는 분량이지만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북방정책 관점에서 짚어볼 단초가 됐기 때문이다. 북방정책이 햇볕정책의 뿌리 저자는 노태우 정권(1988∽1993년) 때 북방정책을 '한국이 국제 체제 수준의 외교 전략을 최초로 입안해 실행한(성공한) 케이스'로 본다. 한·소, 한·중 수교를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체제의 변화를 유도했고, 북한은 이로 인한 체제적 압박(systemic constraint)을 견디지 못하고 끌려 들어옴으로써 획기적인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체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확한 평가다. 북방정책은 그 창의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감이 있다. 결실인 남북기본합의서만 해도 남북 화해와 상호 불가침, 교류협력의 방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대북·통일정책의 대장전(大章典)이었다. 그럼에도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다. 북한 측의 이행 노력이 뒤따르지 않은 게 주된 원인이었지만 우리 측에서도 뒤이은 정권들이 그 동력을 살려가지 못했다. 오늘날 진보 좌파 진영이 전가의 보도로 삼는 햇볕정책도 그 출발점은 북방정책이다. 북방정책 없이 햇볕정책이 가능했겠는가. 햇볕정책을 열 번 얘기할 때 북방정책을 한 번이라도 언급하는 균형감과 아량을 보였더라면 남북 관계 담론과 논의 구조가 이토록 한쪽으로 기울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체제 압박의 효과 윤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참석은 북한에 대한 체제적 압박, 곧 국제 체제에서의 압박을 가중시킬 게 분명하다. 핵을 포기하고 책임 있는 국제사회 일원이 되라는 압박이다. NATO는 회원국이 30개국이고, EU(유럽연합)는 회원국이 27개국이다. 윤 대통령이 NATO 회원국 정상들과 만날 때마다 김정은의 심경이 어떨까. 북방정책 당시 김일성 주석의 심경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국제 체제의 압박을 통해 외교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최초의 인물로 오스트리아제국의 재상 메테르니히(Klemens von Metternich, 1773∽1859)를 소환한다. “메테르니히는 국제 관계가 단순 양자 관계에 기초해서는 평화롭게 유지될 수 없고, 강대국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체제(국제 체제·International System) 수준의 결속 혹은 압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메테르니히는 독일 통일의 주역 비스마르크(1815∽1898)와 함께 구미(歐美) 외교사에서 전설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이념적으로는 보수 반동이었지만 나폴레옹전쟁이 끝난 후 세력 균형에 기초한 유럽 협조 체제(Concert of Europe)를 구축함으로써 유럽에 100년 평화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저자는 북방정책이 메테르니히의 전략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암시한다. 김일성, “천군만마를 얻었다” 북방정책에 대해 당시 북한이 느꼈던 압박감은 실로 컸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자고 나면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이 우수수 무너지던 때였다. 당시 필자는 통일부 출입 기자였다. 김일성 주석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됐을 때 안도의 숨을 쉬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김일성은 “(기본합의서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는 말도 했다고 들었다. 당시 김 주석은 “남북 관계는 누가 누구에게 먹히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1991년 1월 북한 신년사)고 했는데 이는 흡수 통일에 대한 북의 우려를 처음 표명한 것이었다. 6자 회담 실패 딛고 글로벌 접근으로 물론 지금 상황은 다르다. 그때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기 이전이었지만 지금은 엄연한 핵 보유국이다. 북핵 문제를 남북 양자 관계 차원에서 풀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그럴수록 다자적 차원에서 다시 시도해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한다. 북한에 대한 국제 체제적 압박을 통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압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압박'이란 용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렛대’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겠다.) 다자 정상외교를 통한 대북한 ‘체제적 압박’은 북핵 6자 회담 실패와 오버랩된다. 남북한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6자는 2003년부터 10여 년간 수차례 회담을 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모색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이번 나토 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북핵 문제를 거론한다면 다자적 해결 노력, 곧 6자에 국한되지 않는 확대된 ‘글로벌 접근’으로 새롭게 재조명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참석에 대해 언론은 “미국 중심의 동맹 열차, 그것도 앞자리에 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어떤 동맹 열차인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타는 열차다. ‘자유’가 인류 보편의 가치임을 강조해온 윤 대통령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영향력 상승” 미국 측 전문가들도 일제히 반겼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윤 대통령이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기로 함으로써 북한에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면서 “한국은 윤 대통령 취임 후 불과 몇 주 만에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과 파급력이 최상위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석좌교수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 한·미 동맹에 대해 우위에 서려고 시도한다면 한국이 매우 강력한 파트너들과 함께 국제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보면서 그러한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6월 11일 미국의소리 방송·VOA) 한·나토 양자 관계 차원에서 긍정적인 발전이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정섭은 “나토가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 선진국들의 안보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안보 개념과 한국군의 안보 역량을 현대화하는 거시적 차원에서 협력에 실익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김정섭, <외교상상력 – 지나간 백년 다가올 미래>, MID)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대미 편중으로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을 자초한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한 당사자로서 분단의 구조적 현실 앞에서 동맹 열차 탑승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백번 양보해도 한·미 관계가 이완돼 “한·미 연합훈련을 컴퓨터 게임으로 축소·전락시켰다”는 말을 들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동맹 열차 탑승’은 잘한 결정 동맹 열차 탑승은 바른 결정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통상질서가 흔들리고, 가치(價値)는 물론 첨단 기술과 자원을 놓고서도 서로 ‘깐부’가 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더욱 그런 확신을 갖게 된다. 예컨대 한·일 관계 복원이라는 외교적 난제 중 난제도 일단 동맹 열차에 올라타고 난 후에 풀어야 한다. 동맹열차를 타기로 한 이상 일본과 함께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다. 일본 측에도 이점을 설득해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현지 정상회담이 성사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의 실익을 배가하는 방책일 것이다. 다만 언제 어디에서 동맹 열차에서 내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친구 따라 장에 간다’고, 무작정 따라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서 내려야 한다. 앞으로 윤 대통령에게 그 결정은 탑승할 때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결정이 될 것이다. 우리 외교안보팀에 충분한 복안이 있을 걸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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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한 尹과 광주의 새로운 미래
주말 저녁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의 첫 인사가 화제에 올랐다. 요지는 “장관급 인사에서 호남 출신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정권이 몇 번 바뀌어도 장관 자리를 특정 지역에 대한 배려와 균형 인사의 기준쯤으로 여기는 세간의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도 개각 때면 장관들 프로필을 보면서 영남은 몇 명, 호남은 몇 명 하며 세던 시절이 있었다. 유인태 전 의원이 노무현 정권에서 정무수석(2003∽2004년)을 할 때 얘기다. 사석에서 공정인사 시비가 일자 그는 일갈했다. “자꾸 영남, 호남 하지 마라. 우리 같은 사람(충북 제천)은 영호남 어디에도 못 끼어서 ‘기타’로 분류되니까.” 좌중엔 폭소가 터졌다. 장관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다 장관 인사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들이 있다. 이른바 개발독재-영남패권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생긴 소외와 피해 의식 탓이다. 민주화가 되면서 나아지긴 했지만 그 상처까지 치유된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쉽게 단순 비교가 가능한 고위공직자 수(數)나 출신 지역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는 단순한 인사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정권의 국정 운영의 한 수단으로 인식된다.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유력 정치인에게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반문(反文) 정서가 심상치 않은 지역을 어떻게 끌어안고 갈 것인가? 그의 대답이 이랬다. “우선 장관 인사에서 조금 배려해야 되겠지요. 청와대도 (어떻게 대처할지) 다 알아요.” 이런 ‘배려’를 윤석열 정부에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지역 안배보다는 능력 위주의 인사를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징후도 보인다. 보수와 광주의 상징자산을 공유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장관과 여당 의원 전원을 데리고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을 때 나는 궁금해졌다. 40년 동안 한국 사회를 옥죄어온 이념과 지역 갈등의 한 매듭이 이렇게 풀린다면, 앞으로 광주는 어떻게 될까. 아니 어떻게 되어야 하나. 광주의 언론들은 윤 대통령의 파격적인 5·18 참배를 긍정 평가하면서도 단서를 달았다. “호남 민심을 겨냥한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기 위한 개헌과 진상 규명의 로드맵까지 함께 제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미 공수(攻守)가 바뀐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도 계속 광주를 찾을 것이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더 우렁차게 부를 것이다. 그 추모사와 노래가 ‘이제는 광주가 달라져야 한다'는 압박으로 들리지 않을까. 광주는 윤 대통령과 자유, 민주, 인권이란 광주(5·18)의 상징자산을 공유할 수밖에 없게 됐다. 사실 진작 그렇게 됐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5·18 비방금지법 같은 과잉 입법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피 흘린 게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뒤틀린 수구 좌파와 단절하라” 우파 보수정권의 적극적인 5·18 포용 노력 앞에서 광주에 남은 것은 뭘까. 5·18 정신을 국민 통합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꾸준히 해나가야겠지만, 현실의 광주로 돌아간다면 새로운 광주, 달라진 광주를 만드는 일밖에는 없을 것이다. 민주도시 광주가 세계 일류도시로 비상(飛翔)하는 미래 말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광주 출신 정치인이자 시민사회운동가인 주동식(64)을 주목한다. 운동권 출신으로 일관되게 영남패권주의를 비판해 온 그는 ‘광주담론’ 세계에선 잘 알려진 논객이다. 지금은 국민의힘 광주 서구갑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반노(反노무현), 반문(反문재인) 인사로 꼽힌다. 주동식은 호남 혐오와 맞서 싸우면서 유명해졌다. 일베(일간베스트) 같은 곳에서 호남과 호남인을 비속한 표현으로 조롱하고, 멸시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뛰어들었다. 다른 지역들도 이와 비슷한 혐오에 시달리고 있어서 ‘지역평등시민연대’라는 단체도 만들어 대표로 활동 중이다. 친노·친문 패권의 대안 세력을 그에게 있어서 달라진 광주, 새로운 광주는 친노·친문 패권과 단절한 광주다. 정리하면 이렇다. “김대중(DJ)을 중심으로 한 광주의 민주화 투쟁이 5·18을 거치면서 좌파(주로 NL계 주사파)에 의해 반미자주화투쟁으로 변질됐고, 광주가 이들 좌파의 숙주(宿主)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2016년 <호남과 친노>라는 저서에서 “독자 정치세력화에 실패한 친노가 민주당에 들어와 호남의 정치 기반을 접수하고, 호남의 민주 자산까지 훔쳐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친노는 ‘우리가 아니면 호남 너희는 왕따가 된다’는 논리로 호남을 압박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친노·친문의 패권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세력의 형성을 광주의 시급한 정치적 과제로 꼽았다. 이에 대한 반론도 물론 차고 넘칠 것이다. 그럼에도 친노·친문에 대한 현실정치적이고 객관적 접근을 통해 광주·호남 정치의 실체를 봐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차제에 공론화가 되기를 소망한다. 주동식과는 다른 관점에서 양향자 의원(55·무소속·광주 서구을)은 새로운 광주를 얘기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되는 한 요소다. 아니, ‘자산(資産)'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어릴 때 광주는 그 자체로 자부심” 광주여상 출신인 양 의원은 연구보조원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고졸 직원으로는 삼성전자 사상 처음으로 여성 임원(상무)이 된 반도체 전문가다. 반도체의 ‘반’자도 모르던 그가 당시만 해도 커피를 타고 복사를 하던 일이 당연했던 보조원에서 28년 만에 반도체 설계 담당 임원이 된 과정은 어떤 인간승리보다 극적이다. 그의 자서전 격인 <꿈 너머 꿈을 향해 – 날자, 향자>(2018년)에는 그가 반도체를 알기 위해 밤잠 안 자고 사내대학과 직장 선배들에게 공학과 수학의 기초를 배우는 모습이 나온다. 읽다가 몇 번이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양 의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반도체 경쟁은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우리 미래가 걸린 국가 간 패권 경쟁인데도 우리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정부에 더 과감한 투자와 인재 양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보좌진의 성폭력 문제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민주당을 탈당했다. 최근 복당이 가능해졌으나 복당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제가 입당했던 민주당이 지금의 민주당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릴 때 광주는 그 자체로도 자부심이었다고도 했다. 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와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이재명 고문의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출마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광주에서 민주당 정치인이 이런 결심을 한다는 게 놀랍다. 양 의원의 말이다. “지금 광주는 멈춰 있다. 바다를 향해 굽이쳐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저수지와 같다. 사람도, 돈도, 일자리도 모두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다. 광주가 흐르려면 이제 다른 생각이 필요하다.” 그는 스티브 잡스의 말,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인용한 것인데 나는 그걸 이렇게 이해했다. 문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기울어진 실력이야. 자랑스러운 광주를 되찾아야 윤 대통령이 광주를 다녀간 이튿날, 광주 무등일보는 ‘20대에게 외면받는 5·18, 달라져야 한다’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5·18이 그 당시를 살았던 세대를 중심으로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어서 젊은 세대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낼 콘텐츠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광주, 달라진 광주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주동식의 지적처럼 좌파의 숙주가 되고, 좌파 특유의 반(反)기업 정서로 인해 인구 145만 대도시에 복합쇼핑몰 하나 유치하지 못하는 광주라면 보여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광주 출신 한 출향 인사의 자탄이다.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자랑스러운 광주의 정신과 역량, 인정(人情)과 관용의 문화는 다 어디로 가고 뒤틀린 좌파와 마주 잡은 손만 덩그러니 남았는가.” 한없이 정치적이지만, 정작 정치가 죽어버린 땅에, 윤 대통령의 5·18 참배가 새 정치의 싹을 돋게 하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게 이번 대통령의 5·18 참배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 고려대 정치학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