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떨·드랍·서울'…마약 구매, 세 단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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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1-04-2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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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떨(대마)·드랍(가져다 놓다) 검색하자 마약 판매자 연락처 수두룩

  • 어려지는 마약 사범들 배경엔 변화하는 '마약 유통망' 있어

  • 지난달 마약류 사범 1위 20대…마약 위험성 인식서도 '꼴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퀵서비스 기사 A씨는 지난 2월 새벽 '화장품을 빨리 배달해 달라'는 콜을 받고 경기도 평택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한 20대 남성은 상자를 건네며 "대전까지 빨리 보내라"고 독촉했고 A씨는 지제역에서 SRT를 탄 뒤 배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A씨는 내용물이 화장품이라기엔 너무 가볍고, 청테이프로 완전히 밀봉돼 있던 상자가 꺼림직해 결국 '수상한 상자'를 철도특별사법경찰대(철도특사경)에 넘겼다. 조사 결과 상자 속에는 10g가량의 향정신성 의약품 케타민이 들어 있었고, 경찰은 마약 운반을 시킨 남성과 구매자를 서울 강남구에서 검거했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실제 마약을 투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화장품이나 건강보조식품 등으로 둔갑한 마약이 전국을 오가면서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란 말도 옛말이 됐다. 특히 과거에는 마약 거래가 뒷골목에서 은밀하게 행해졌다면, 최근에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마약 유통로로 변질되어 구매 방법도 한층 쉬워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가 젊은 층의 마약 사범 증가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달간 791명이 마약류 사범으로 검거됐으며 이 중 20대가 31.9%(252명)를 차지해 전 연령층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보였다. 마약에 손을 대는 연령대가 점점 어려지는 추세는 지난 통계를 보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작년에 검거된 마약류 사범 1만2209명 중 20대가 26.3%(3211명)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마약 사범 4명 중 1명은 20대라는 뜻이다. 특히 작년은 마약류 사범 중 처음으로 20대 비중이 가장 컸다. 10대 마약류 사범도 241명으로 2016년(81명)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그래픽=우한재 기자]

마약 사범이 어려지는 배경으론 마약의 유통망 변화가 꼽힌다. 온라인 거래를 통한 마약 유통이 증가하면서 이런 방식에 익숙한 10·20세대들의 범죄가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마약을 거래하다 적발된 경우는 매년 400~500건씩 느는 추세인데,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을 통해 접속할 수 있는 웹)과 가상화폐를 사용한 불법 거래는 82명에서 748명으로 1년 만에 9배가량 치솟았다. 지난달 검거된 마약류 사범 중에도 온라인 이용 사범은 27.1%로, 작년(21.4%)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 판매자 연락처? 은어와 지역명으로 검색하면 일사천리
 

마약 은어와 구매 지역 등을 조합해 포털사이트에 검색하자 올라온 글  [사진=트위터]

실제로 마약을 뜻하는 은어와 구매 지역 등을 조합해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마약 판매자의 연락처를 손에 쥐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마초를 뜻하는 은어 '떨'과 가져다 놓는다는 의미인 '드랍'을 검색하자 마약 판매자로 추정되는 텔레그램 아이디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약 판매 글을 올린 한 작성자는 물건(마약)을 잘 받았다는 구매평과 함께 자신의 텔레그램 아이디를 남겼다. 다른 판매자는 마약 투약에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사기 사진을 올리면서 필로폰을 뜻하는 은어인 시원한 술·아이스·얼음을 태그로 남겼다.

마약중독 치료 전문가인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요즘 진료실을 찾아오는 환자들을 보면 20대 초반과 여성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이 호기심에 구글링(인터넷 검색사이트 구글을 통해 검색하는 것)해서 마약을 너무 쉽게 찾아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마약 위험성에 대한 젊은 층의 인식이 낮아지면서 마약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일부 20대들의 마약 범죄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작년 12월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마약류 심각성에 대한 국민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국민인식도는 71.2점으로 전체 평균인 78.28보다 크게 낮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민 인식도는 마약 위험성을 얼마나 인지하는지를 100점 만점으로 산출한 점수로, 75점은 마약 위험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는 수준, 50점~75점은 마약의 위험성을 중간 수준으로만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60대의 국민인식도가 83.7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30대의 국민인식도는 76.4점으로 20대 다음으로 낮았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퇴본) 중독재활센터 팀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도 마약류 공급자들이 온라인과 택배를 통해 마약류를 확산하면서 거래가 꾸준히 느는 추세다. 온라인을 통한 마약류 접근 장벽이 낮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마약은 중독되면 늦고, 예방이 최선이다. 다이어트와 집중력 강화 등을 이유로 마약에 손을 대는 순간 끊는 것이 매우 어렵다.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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