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균형보다 평균을 선택한 중용(中庸)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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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입력 2020-09-2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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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뉴스가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뉴스가 가져올 파급 효과의 크기나 범위? 예를 들면 태풍과 같은? 아니면 인명이나 재산에 끼칠 치명도? 즉, 에볼라나 테러 같은? 그러나 태풍이나 바이러스, 테러처럼 그 영향이 즉각적이지 않고 중요성을 식별하기 어려운 사건이면 어떨까? 어떤 사건은 시차를 두고 영향을 주며 ‘기대’, ‘우려’, ‘불확실성’이라는 인간의 심리적 공명 과정을 통해 실제 물리적인 충격보다 영향력을 증폭시킨다.

경제와 금융에 관련된 이벤트가 대부분 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이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고 결국 경제적 행동과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로버트 실러 교수는 내러티브 경제학(narrative economics)에서 설명한다. 사건에 관련된 스토리를 내러티브라고 정의하고, 사건 내용이 어려울수록 ‘기대’나 ‘우려’는 진폭의 상하한을 키운다. 필자가 지난 칼럼에서 ‘금융교육’을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 중요성 식별이 난해한 이벤트가 있었다. 매년 캔자스 연방준비은행은 전 세계 중앙은행과 최고 경제통을 초청해 경제정책 토론회를 연다. 지난 8월 27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 의장 제롬 파월은 기조연설을 통해 통화정책 전략의 변경을 발표했다.

국내 언론에서는 발표문 중심으로 하루 이틀 기사로 다루었으나 큰 반응은 없었다. 22쪽 분량의 연준 보고서 중에서 주로 기사화한 내용은 연준이 ‘평균 물가 목표제’를 도입하고, 물가상승률이 2%를 넘더라도 초저금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1년 6개월 이상 미국 경제를 관찰하고 분석한 것을 정리한 결과로, 최고 수준의 경제학 지식이 집약된 것이다. 기사에 담긴 내용이 어려워 사람들이 얼마나 이해할지는 미지수다. 아마 쓰는 쪽이나 읽는 쪽 모두 이해를 기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연준만이 발행하는 달러는 세계 외환보유고의 60% 이상 비중을 차지하고 금, 석유를 비롯한 핵심적인 상품을 포함한 국제거래의 기본 통화로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연준의 통화정책은 달러의 가치를 통해 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므로 그 변경은 중요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이 통화정책 변경은 중요성 식별이 어렵고, 그 영향은 시차를 두고 반드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이를 헤집고 자세히 살피는 일이 부질없지는 않을 것이다.

가급적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몇 가지 의미를 짚어본다.

먼저 이번 통화정책 변경은 어느 날 갑자기 준비한 것이 아니며, 미국 경제의 오래된 질적 문제가 원인이다. 통화정책 변경 보고서의 제목이 ‘새로운 경제적 도전과 연준의 통화정책 재검토 (New Economic Challenges and the Fed’s Monetary Policy Review)’인 것처럼, 과거와는 다른 뭔가 심각한 경제적 문제가 있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바꾼다는 점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준은 코로나19 발발 오래전부터 미국경제의 -사실 선진국은 대부분의- 이상 증상을 감지했다. 이상 증상의 정체는 저성장·저물가·저생산성으로 경제의 엔진이 식었다는 것이다. 2020년 2월까지 미국경제는 10년 이상 조금씩 명목상 성장을 지속해 왔지만,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잠재성장률은 지속 하락했다.

고질병으로 소득의 불평등이 생산성 저하를 가져왔고 이것은 다시 성장과 물가의 발목을 잡았다. 이러한 저성장·저물가 현상은 ‘필립스 곡선’이라는 통화정책 근거도 약화하며 연준은 난관에 부닥쳤다. 타개책으로 저소득층 고용과 임금 상승을 통한 소득 불평등 해소가 저성장 구조 해소에 필요하며, 강한 노동시장이 해답이라고 연준의 17명 위원은 한목소리를 냈다.

강한 노동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첫째, 완전고용 목표 달성 평가를 완전고용 수준의 -예를 들면 4% 실업률- ‘상·하 이탈(deviation)’에서 완전고용 수준의 ‘부족분(shortfall)’으로, 둘째는 물가 목표를 2% 절대 수준에서 ‘평균’ 2%로 통화정책의 목표관리 방법을 변경한 것이다. 대부분 국내 언론에서는 금리에 초점을 두고 후자 내용을 보도했으나 전자의 비중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음, 이번 통화정책 변경은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경제학의 패러다임 변화도 보인다는 점이다. 보고서에서도 이번 통화정책의 변경은 40여년 만이며 흔한 일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즉, 1980년 초 전설적인 연준의장 폴 볼커가 미국경제를 고물가에서 구하고 ‘대안정기’를 누린 이후 죽 지켜온 통화정책의 방법론을 변경한 것이므로, 이번 조치는 장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연준이 ‘2%’와 ‘완전고용 수준’이라는 특정 균형점 관리를 포기하고 ‘평균 2%’와 ‘부족분’으로 변경한 것은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건이기도 하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경제학은 공급곡선과 수요곡선일 텐데, 이 곡선의 교차점은 하나이며 균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경제학자에게 이러한 균형점을 찾고 사수하는 것은 신념과도 같은 것이다. 특정한 수치의 균형점에서 경제를 가두고 관리하지 않으면 경제는 미지(未知)의 영역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연준은 균형 수준 관리라는 경제학의 금기를 용기 있게 벗어난 것이다.

경제학의 금기 깨기는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일본, 유럽연합(EU) 등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도 금기를 깬 사례이며 일시적 실험 차원의 고육지책으로 시도했지만 우려와는 달리 일반화되고 있다. 연준은 경제학의 금기를 넘은 목적을 명료하게 제시했다. 바로 미국경제 성장의 장애 요인인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다.

과거 경제학은 ‘균형과 효율성’을 수학적으로 추구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샤일록 이미지에 가까웠다. 인간 중심의 해답을 찾기 위해 균형이라는 금기를 깬 것은 연준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연준의 조치는 -고전 지식은 부족하지만- 중용이라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도올 김용옥님은 ‘중용, 인간의 맛’에서 "중이 발현되어 상황의 절도에 들어맞게 하는 것을 화라고 일컫는다(···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고 했다. 또한 "중과 화를 지극한 경지까지 밀고 나가면 천과 지가 바르게 자리잡을 수 있고, 그 사이에 있는 만물이 잘 자라게 된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고 해설했다. 이 중용의 문장과 연준 통화정책의 변경을 비교해보면, 연준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이 인간을 생각하며 상황에 적절하게 통화정책을 맞춰가는 중용의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경제학의 인문학적 변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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