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명절 특수 사라진 전통시장…"추석 대목? 물어볼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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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연 기자
입력 2020-09-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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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앞둔 남대문시장·광장시장…코로나19·불경기·태풍 겹치며 '꽁꽁'

  • "지난해 추석 매출 10분의 1도 안 돼…올해 장사는 끝났다"

추석을 앞둔 남대문시장. [사진=오수연 기자]

"추석 대목요?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 보시다시피 손님이 하나도 없잖아요."

불경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치며 서울의 대표 전통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명절을 목전에 앞둔 주말이건만 추석 특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경기 불황에 더해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친지끼리 모이지도 않고, 외출을 꺼리는 탓이다. 전통시장을 찾던 발걸음은 온라인을 향한다. 여기에 더해 최근 태풍 영향으로 물가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도 전통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임모씨(77)는 남대문시장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40년 넘게 장사하며 처음 겪는 최악의 불경기"라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가락시장 가서 채소를 떼 오는데 요즘 배추 세 포기에 3만5000원씩이나 한다. 살 수가 없다"며 "채소는 늘 먹는 거라지만 요즘은 제사를 안 지내기도 하고, 코로나19로 모이지도 않고, 태풍 영향으로 물가까지 오르니 손님들이 본인들 몫만 조금씩 구매한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도 코로나19를 피해 가지 못했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날 만큼 유명한 이곳의 터줏대감 맛집들도 가게 앞이 한산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줄을 서서 10여분씩 기다려야 했던 곳들도 이전 같지 않았다. 간간이 '폐업정리', '긴급 특가세일' 등 현수막이 붙어 있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60대·여)은 "지난해에도 장사가 안 된다, 어렵다 했지만 올해는 정말 어렵다. 해가 갈수록 점점 안 된다"며 "지난해 추석에 비하면 매출이 10분의1도 안 나온다. 아니 그 이하"라고 근심 어린 표정을 내비쳤다.

그는 "과일은 추석 차례상에도 올라가고, 선물로도 많이 하지만 요즘은 제사도 안 지내고 경기가 어려우니 선물도 안 보낸다"며 "우리가 잘 안 된 만큼 어디선가는 또 잘되고 있겠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상인은 "다 인터넷에서 사지. 거긴 잘돼"라고 거들었다.

홍삼가게 직원(40대·여)은 "보다시피 추석 선물 수요는 없다. 다들 코로나19 걱정에 집 밖으로 안 나오고 인터넷으로 구매하니 가게를 찾는 사람이 없다"며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니 식료품은 그나마 팔리는 것 같은데, 다른 업종은 요즘 하루 매출이 10만원도 안 나오는 곳이 허다해 가게 세를 내기도 어려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추석을 앞둔 광장시장. [사진=오수연 기자]

서울의 또 다른 대형 전통시장인 광장시장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광장시장 앞에는 '우리 시장은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나부꼈다. 비록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는 안전했으나 코로나19가 몰고 온 불경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점심시간인 낮 12시경임에도 서울의 명물로 꼽히는 광장시장 먹거리 골목은 이전 같지 않았다.

"손칼국수 맛있어요. 드시고 가세요."

먹음직스러운 국수와 고소한 빈대떡 굽는 냄새도 발걸음을 붙잡진 못했다. 시민들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건강식품점을 운영하는 이모씨(60대)는 "명색이 광장시장인데 봐라. 손님 발걸음이 뚝 끊겼다"며 한숨을 쉬었다.

홍삼이나 각종 즙류는 대표적 명절 선물로 꼽힌다. 추석을 앞두고 바빠져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그의 가게 앞은 한산했다.

이씨는 "젊은 사람들은 다 인터넷으로 사고, 시장에 오더라도 가격만 물어보고 그냥 간다. 나이 든 사람들은 에누리하는 맛에 시장을 찾기도 했지만 요즘은 자식들이 코로나19 걸린다고 집에만 있게 하니 다들 마스크로 입을 꼭 막고 집 밖으로 안 나온다"며 "주말이고 추석이고 기대감이 없다. 명절 선물 수요도 없다"고 말했다.

49년째 광장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토박이 상인 중 한 명인 그는 "시장 중심 거리에도 문 닫은 곳이 있다. 가게에 나와도 5만원어치 만들면 2만원어치 팔려서 3만원 손해보는 상황이니, 자식들이 코로나19가 위험하다고 문을 열지 말라고 한다더라"며 "취미로 사진을 찍는데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작년 12월 이렇게 붐비던 곳이 지금은 텅텅 비었다"고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과거 골목마다 손님으로 가득 찼던 광장시장의 모습을 보여줬다.
 

광장시장 상인이 촬영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인파로 붐비던 광장시장의 모습. [사진=오수연 기자]

한복가게를 운영하는 한모씨(63)는 "이곳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했는데 IMF 외환 위기, 사스, 메르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금요일에 이미 추석 택배가 마감됐는데 올해 장사는 글렀다. 다 끝났다"고 말했다.

이어 "점점 한복 수요가 줄어드는 데다 코로나19가 터지며 최악의 한 해가 됐다. 매출이 평년의 10분의1 수준"이라며 "우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거리만 봐도 장사가 안 되는 게 보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시장에서는 상인들만 분주하게 카트를 끌고 지나갔다. 명절을 앞두고는 양손 가득 제수거리가 든 장바구니를 든 풍경이 펼쳐져야 하건만 행인들의 손은 가벼웠다. 지나가는 시민에게 추석을 앞두고 제수거리 장만을 위해 방문했냐고 질문하자 "아니다"고 고개를 저으며 빈손으로 시장을 빠져나갔다.

한씨의 걱정은 젊은 후배 상인들이다. 그는 "코로나19가 지나가도 회복할 거란 기대감이 크지 않다"며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들이야 하다가 정 안 되면 가게를 접으면 되지만, 어린 아이를 키우는 젊은 사람들은 앞으로 어찌 될지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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