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해고 없는 도시’에서 ‘해고 없는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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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입력 2020-04-2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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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



전주시가 코로나19 위기국면에서 ‘해고 없는 도시’를 선언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노·사·민·정의 상생선언을 통해 ‘시민 일자리 지키기’를 도모함으로써 고용불안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이다. 이보다 한 달 앞서 전주시는 전국 최초로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함으로써 총선 국면을 거치면서 전국 단위의 재난기본소득을 민주당이 도입하는 데 발화점 역할을 한 바 있다. 또한 2월에는 한옥마을 건물주들이 임대료 10% 이상 인하할 것을 결의함으로써 대통령을 포함한 전국적인 관심을 끌면서 정부의 ‘착한 임대인을 위한 감세’를 이끌어낸 바 있다. ‘착한 임대인운동’과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해고 없는 도시’ 선언에 SNS를 통해 ‘존경과 감사’를 표시했다.

전주시가 코로나19 대응책에서 중앙정부를 선도하고 있는 측면은 단지 시점에서만이 아니다. ‘인간 중심’ 대응책의 구성에서도 중앙정부의 프로그램을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기업에 대한 지원으로 고용 유지를 달성함으로써 노동자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우선하는 데 비해 전주시는 처음부터 고용보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일용직 근로자, 실직자, 생계형 아르바이트 등 취약계층 5만여명’을 대상으로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했다. 또한 상생선언을 통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기업(전체 기업의 약 11%)에 6개월간 보험료를 지원해 보험 가입을 유도함과 아울러 고용보험 가입 기업에는 휴업이나 유급휴직 노동자에게 지원되는 고용유지지원금의 기업체 부담금(10%) 절반을 지원키로 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지역구성원 모두’가 참여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많지 않은 전주 소재 대기업이 동참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최상의 코로나19 대응책이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데는 정부 차원에서도 이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취임하면서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했던 대통령 스스로 4월 22일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일자리대책은 ‘정리해고를 통한 기업 살리기가 아니라 일자리 지키기’임을 천명했다. 그래서 기업 지원의 조건으로 ‘고용총량 유지’가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자구노력, 이익공유, 임직원 보수 제한과 주주배당 제한, 자사주 취득금지 등을 통해 작금의 경제위기 국면에서의 일자리 대책을 ‘고통분담’으로 설계하겠다는 의지가 표명되어 있다. 앞으로 기재부장관이 본부장이 되는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에서 이들 조치가 대통령의 선언에 충실하게 실행에 옮겨지는지 지켜볼 일이다.

헌법에서 노동은 교육과 함께 모든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헌법 제32조 ①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비추어 본다면 오랜 관행인 정리해고는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횡포’였으므로, 경제위기 국면에서 정부는 고용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용유지지원금이 이에 부합되는 정책수단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고용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속력 있는 제도화가 절실하다. 여기에서는 독일의 ‘고용안정적 단체협약’ 모델이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핵심은 요즘과 같은 경기침체 국면에 고용유지를 전제로 하여 노사가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삭감에 합의하는 것이다. 기업은 비용 절감의 효과를 얻고 노동자는 고용유지를 가져가는 고통분담형 구조조정모델이다. 이는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독일 일자리 120만개를 지킨 '고용기적'(폴 크루그만)을 일으킨 성과를 거둔 바 있다. 해고 억제에서 기업이 기대할 수 있는 이점은 경기회복 국면에서 다시 필요해지는 숙련인력을 계속 보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는 삭감된 임금을 사회정책수단이나 노동시간예금을 통해 보전받을 수 있다. 노동시간예금은 평소 잔업을 수당으로 가져가지 않고 저축해두는 제도이다. 한국의 구조조정모델이 외부유연성(정리해고)에서 내부유연성(유연노동시간제)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법제화에 있다. 독일은 노사협력의 오랜 전통 덕분에 ‘고용안정적 단체협약’이 가능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그러한 전통이 없기 때문에 결국 법적 기반이 갖추어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한국형 뉴딜’이 5월 중에 마련될 것임을 예고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를 ‘디지털뉴딜’, ‘SOC뉴딜’ ‘사회적 뉴딜’로 구체화하고 있다. 이 ‘사회적 뉴딜’에 고용안정형 구조조정이 포괄적으로 포함될 수 있다면 한국은 ‘해고 없는 나라’로 한 걸음 크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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