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人①] "피움랩스 투자, 가치 있는 선택이란 것 검증해야죠”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신보훈 기자
입력 2019-12-26 17:13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스타트업이 세상에 등장했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2의 배달의민족을 꿈꾸며 열정을 불태우는 젊은 창업가부터,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채 조용히 퇴장하는 기업까지. 법인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시간은 그들 ‘인생’의 전부지만, 대부분 시간은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조용히 흘러갑니다. ‘스타트人’에서는 숫자가 아닌 속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소리소문없이 창업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스타트업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편집자 주]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스마트디퓨저 개발사 피움랩스를 찾았다. ‘스타트, 人’ 첫 번째 취재 대상이다. 피움랩스는 디캠프, 넥스트드림엔젤클럽 등으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았고, 최근에는 프리팁스에 선정된 기업이다. 현재는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 입주해 있으며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제품을 판매 중이다.
 

피움랩스는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 입주해 있다. 한 기업에 소속된 직원들처럼 보이지만, 5~6개 스타트업이 공동으로 일하는 장면이다. 이들은 공용공간에서 각자의 사업을 검증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다.[사진=신보훈 기자]


오전 10시 10분. 스타트업의 일과는 어떻게 시작되는지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직원 출근 시간에 맞춰 디캠프 1층에 도착했다. 입주사 직원만 들어갈 수 있는 문 앞에서 김재연 대표에게 전화를 거니 잠시 은행에 나와 있다고 했다. 대신, 박상용 이사가 문을 열어줬다. 피움랩스를 포함해 5~6개 디캠프 입주기업이 함께 일하는 공간이었다.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직원들 바로 옆에 앉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일의 난이도는 어떤지, 왜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지 질문하고 싶었지만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11시 14분. 아직 김 대표를 만나지 못했다.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지 소심하게 카톡을 하나 보냈다. 그는 이미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조금 더 빨리 카톡을 보내야 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인터뷰를 바로 진행했다. 외국에서 공부를 오래 했는데, 친구 집에서 우연히 맡은 향이 심리적 안정을 줬고, 스타트업에 관심이 생겨 귀국해 퓨처플레이에서 경력을 쌓았다고 했다. 이후 스마트디퓨저의 시장성을 확인했고, 독립해 지금의 피움랩스를 만들었다. 이미 기사화된 내용이 많았다. 조금 더 일상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 직원은 어떻게 채용했나요. 팀원들 자랑 좀 해주세요.

“소개를 통해서 뽑았어요. 좋은 회사처럼 직원 복지를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나 뽑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미 검증된 분들을 지인들에게 추천받았어요. 엑시트(투자금 회수)나 스톡옵션 등 경험이 있으면서 비전을 보고, 초기 단계에서부터 함께 만들어보고 싶다는 분들로요.

아침에 인사한 박상용 이사는 ‘노리’(KnowRe, 인공지능 수학교육 플랫폼 회사)에서 근무했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까다롭고, 관리하기 어려운 사용자가 학부모에요. 그들을 고객으로 만들어 설명회를 개최하고, 노리가 대교에 인수되는 과정을 경험한 분이에요. 피움랩스에서는 UX(사용자 경험), 기획, 영업 등을 담당하고 있는데 초기 단계에서 서비스가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해주고 있죠.

개발자는 배달의민족 출신으로, 스타트업에서 성장을 경험하고, 같이 성장한 멤버와 함께 창업한 경력도 있는 분이에요. 개발자는 기술적 완성도를 따지기 때문에 초기에 더 중요한 (가치나 사업방향에 대해) 대화하기 힘든 경우가 있어요. 우리 개발자는 창업 경험도 있어서 그런 부분을 이해해주고, 지금 단계에서 소비자에게 무얼 더 주어야 하는지 조언도 해주죠. 이런 개발자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엑셀러레이터 퓨처플레이에서도 근무하셨죠. 그 때와 지금은 업무가 많이 다르겠죠?

“많이 다르죠. 그땐 IP(지식재산권) 위주로 했고, 그 전엔 논문을 많이 썼습니다. 지금은 최전선에 있고요.”

-어때요. 어떤 직무가 더 맞나요?

“맞냐고요? 다 힘들어요. 쉬운 건 없는 것 같아요. 대학원에서 논문 쓸 때는 내가 미래를 만들어 가고,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IP팀에 있을 때는 스타트업들이 변화에 어떻게 방어할지 전략을 세워주는 보람이 있었고요. 지금은 세상에 없는 서비스를 만드는 희열이 있어요. 사용자 피드백을 통해 좋은 점, 불편한 점을 듣는 과정도 기분 좋습니다.”
 

피움랩스가 개발한 스마트디퓨저. 3가지의 향기 캡슐을 기반으로 시간과 상황, 취향에 따라 각기 다른 향기를 뿜는다. 기기는 휴대폰과 연동해 사용할 수 있다.[사진=피움랩스]


피움랩스는 넥스트드림엔젤클럽의 후속 투자를 받았다. 후속 투자는 벤처캐피탈(VC)에서도 쉽지 않지만, 엔젤 투자 단계에서는 특히 드물다. 시장성,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단계에서 사람과 아이디어만 보고 투자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도 이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게감도 느낀다고 했다.

“초기 기업에 팔로업(투자)하는 VC가 별로 없고, 엔젤클럽은 더욱 없죠. 클럽에도 우리의 성장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 잘 알고 있어요. 투자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돈만 많고, 투자한 기업에 신경 안 쓰는 투자자, 제품 범위에서 사업하고 있는 투자자, 멘토 같은 투자자 등등. 넥스트드림엔젤클은 사실상 파트너로 보고 있어요. 제품이 나올 때 실제 사용자 입장에서 이런저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알려주고, 지금 단계에서 무얼 잘하고 못하는지 솔직하게 조언해주니까요. 제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투자자, 피투자자 관계에요. 단순히 돈만 투자하면 주식 투자와 다를 게 없잖아요.

2016년 10월 회사를 시작했어요. 창업 3개월 전엔 결혼을 했고요. 가정을 이뤘을 때 가장이 되는 무게감이 있잖아요. 회사에서도 남의 돈을 투자받아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고, 시간과 인생을 투자해 같이 일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게 만들 만큼 내 역량과 아이디어가 가치 있는가? 고민이 많이 되고, 무게감도 큽니다. 더 좋은 조건의 회사에서 일할 수 있고, 다른 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데, 우리 회사에 투자한 사람들에겐 그 선택이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검증해줘야죠.“


피움랩스의 스마트디퓨저는 미국 포시즌스 호텔, 로우스 호텔, 킴프톤 호텔 등 해외 유명 호텔과 파일럿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0월 와디즈 론칭을 통해 3,792%의 목표를 달성했고, 롯데하이마트 플래그십스토어를 포함해 오프라인 입점도 늘려가고 있다. 창업 초기기업이지만, 시제품을 출시하고 시장의 반응을 조금씩 확인하고 있는 단계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생각하는 창업은 무엇일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내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내 월급만 포기해도 진행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요.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통해 시장에서 가치를 만들고, 내가 만들려는 가치가 무엇이며 구매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창업과정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실패라는 건 결국 돈이죠. 사돈에 팔촌 돈을 빌려서 창업하고 망하기도 하는데, 스타트업은 이런 사업과는 다릅니다. 정부지원사업으로 연명하는 스타트업도 많죠. 그러면 꿈이 없어집니다. 내가 왜 시작했는지 희미해지죠. 창업 2년차에는 매출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품을 출시하고, 매출 목표를 세웠죠. 우리가 현실적으로 무얼 갖고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플랜을 세워 나갈 겁니다.“
 

팀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한창 바쁜 시간이었지만, 회의실에 모여달라고 부탁했다. 한 자리에는 모였지만, 카메라를 들이대자 모두가 어색해했다. 그나마 인터뷰 경험이 있는 김 대표가 한 손을 들어올려 사진을 만들어줬다.(사진=신보훈 기자)]


12시 30분. 김 대표와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팀원들을 찾았다. 평상시 모습대로 회의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 장면을 사진에만 담기로 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존재다. 어색하게 사진을 찍고 팀원들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 미래가 불투명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저희는 취업이 안 돼서 떠밀리듯 창업한 케이스가 아니에요.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설사 사업이 잘못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요. 두려움보다는 자신이 있습니다.”

'아, 이 사람에게, 그리고 이 팀에 투자하고 싶다.' 

자신감 차 있던 그 팀원의 한 마디에 인터뷰 내내 김 대표에게 느꼈던 감정을 팀원들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오후 1시. 취재 종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