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신중년 일자리 박람회] 5060세대 재취업은 ‘번데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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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승일 기자
입력 2019-09-1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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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신중년 인생 3모작 박람회’, 중장년 3000여명 모여

  • 재취업 직종에 맞게 허물 벗어야 나비 될 수 있어

정장 차림에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한 중년이 어두운 얼굴로 일어났다. 모 건설사와 즉석 면접을 본 직후였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플랜트 쪽으로 취업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마땅한 곳이 없네요. 대부분 젊은 사람이나 기술직 위주고. 나한테 맞는 직종을 찾기가...” 김모씨(57)는 말끝을 흐렸다.

그는 28년간 생산 설비업체인 플랜트 분야에서 일하다 올해 퇴직했다. 노무관리, 자재구매 등의 경험이 있어 이 직종으로 재취업을 알아보는 중이다. 몇 군데 이력서를 넣고, 면접도 봤지만 “나이가 많으시네요”, “우리가 생각하는 직종이 아니에요”라는 부정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지난 17일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이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연 ‘2019 신중년 인생 3모작 박람회’에는 김씨를 포함해 3000여명의 50~60대 중장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렸다.

건설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 중견·중소기업 120여 곳이 채용관을 열었고, 이 중 65곳이 현장에서 즉석 면접을 진행했다.

김씨가 면접을 본 건설회사는 도로, 교량 등에 건설 수주를 하는 곳으로 토목, 설계 등의 전문 기술인을 찾고 있었다.

김씨가 떠난 뒤 인사담당자는 “지금까지 13명가량 면접을 봤는데 인사관리 경력을 가진 분이 대부분이고 딱 들어맞는 사람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면접자 중 기술직 3명을 경력 검증차 다시 연락할 예정이라고 했다.
 

'2019 신중년 인생 3모작 박람회'[사진=노사발전재단]

생애경력설계관에선 이모씨(56)가 직업 상담을 받고 있었다.

26년간 전자업종에서 인사관리 일을 했다는 그는 건강이 나빠져 회사를 그만뒀고, 숲해설가를 하며 취업 자리를 알아보는 중이었다. 딱히 기술도 없고, 기존 경력이 아닌 새 일을 한다는 것이 두려워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취업 컨설턴트가 희망 직종을 묻자 이씨는 특별히 관심 있는 직종은 없다고 답했다. 어느 회사, 어떤 직종으로 재취업할 것인지 계획도 없었다.

상담사는 “선생님이 어떤 일을 원하는지 찾는 일이 우선입니다. 채용사이트에 들어가 관심 있는 키워드 몇 개를 적어 보세요. 강아지, 중국어 등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부터 찾다 보면 관심 분야가 생길 겁니다”라고 조언했다.

상담사는 구직자들이 주로 급여 조건과 일의 강도, 근무 시간대 등을 궁금해한다고 했다. 정작 본인이 어떤 일을 원하고, 어떤 직종의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상담사는 “특별한 기술 없이 수십년을 일반 사무직으로 일하다 은퇴한 뒤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러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사전에 재취업 계획을 세우고, 이전 직장의 경력보다는 구인 기업 쪽에서 원하는 직무능력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직업 훈련이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9 신중년 인생 3모작 박람회'에서 채용공고를 보고 있는 중장년들.[사진=노사발전재단]

행사장에서 채용공고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장년들을 보면서 이제미 작가의 소설 <번데기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주인공 18세 소녀는 성적도 밑바닥인 데다 친구도 없다. 본인이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소설 쓰기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문학 교사는 글쓰기 훈련을 시작한다.

번데기 시절 어떤 모습의 나비가 될지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허물을 벗는 노력을 해야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장년들이 이전 직장, 기존 경력이란 허물을 벗어던지고 새로 기술을 익히고, 훈련과 교육으로 탈바꿈해야 기업에 필요한 나비가 될 수 있다고 상담사는 말하고 있었다.

바로 옆 메이크업, 사진 촬영을 해 주는 ‘꽃중년 재도약 스타일링’에는 중장년들로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중년의 한 여성이 검은색 면접 의상을 요구하자 컨설턴트가 베이지색을 권했다. 거울 앞에 선 그녀에게 컨설턴트는 “으레 면접 복장으로 검정 의상을 찾는데 선생님은 베이지색이 잘 어울리고, 또 어필할 수 있을 듯해요. 앞으로 스타일을 이렇게 바꿔보세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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