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국 70년]덩샤오핑 40년 전 마스터플랜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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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9-09-19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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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⑤양안 반목, 홍콩 폭발…'일국양제' 미래는

 

[그래픽=아주경제DB]


1981년 9월 중국의 10대 개국 원수이자 당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맡고 있던 예젠잉(섭검영·葉劍英)은 대만 문제에 대한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통일이 실현되면 대만을 특별행정구로 삼고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며 대만 국민당 정부에 협상을 제의했다.

이듬해인 1982년 1월 11일 중국 최고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은 "예 동지의 제안은 실질적으로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一個國家, 兩種制度)'를 의미한다"며 "국가 통일이라는 전제 하에 대륙은 사회주의, 대만은 자본주의를 실행할 수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중국이 통일을 추구하며 내세우는 대원칙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처음 거론된 순간이다.

중국은 이 원칙을 앞세워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되찾았고 1999년에는 포르투갈령이던 마카오를 다시 품에 안았다.

하지만 중국이 고도 성장기를 구가하며 미국과 더불어 주요 2개국(G2) 지위에 올라서고 정치·경제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지면서 일국양제를 거추장스러워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다.

특히 과거 어느 때보다 권위주의적인 시진핑(習近平) 체제로 접어든 뒤 일국양제 원칙은 점차 누더기가 되고 있다. 중국의 사상과 제도를 주입하려는 시도가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홍콩에서는 일국양제의 덫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고, 아직 편입되지 않은 대만에서도 일국양제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는 양상이다.

홍콩의 반중 시위는 100일 넘게 지속 중이며, 내년 초 대선을 앞둔 대만의 경우 독립주의자인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의 재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은 홍콩과 대만을 지렛대 삼아 대중 압박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덩샤오핑이 제시한 통일 마스터플랜이 흔들리고 있다.

◆일국양제, 흑묘백묘의 정치적 변형

중국은 1949년 건국 후 1950년 한국전쟁 참전, 1950~1960년대 대약진 운동 실패에 따른 경제 악화, 1966~1976년 문화대혁명 등의 풍파를 겪으며 통일 문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덩샤오핑이 집권하고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대만과의 대화 재개, 홍콩·마카오 흡수 통합 관련 논의가 활발해졌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틀만 유지할 수 있다면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개의치 않겠다는 일국양제 원칙은 개혁·개방 정책의 슬로건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을 정치적으로 응용한 것이다.

1979년 1월 1일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대만 동포들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을 통해 양안 간 군사적 대치 종식과 통일 추진을 위한 협상을 제안했다.

1982년부터 영국과 홍콩 반환 협상을 시작한 중국은 1983년 홍콩 문제 해결을 위한 12개 조항의 정책 방침을 발표했다.

특별행정구 설치, 고도의 자치권·입법권·사법권 부여, 현행 법률 및 경제·사회제도 유지, 사유재산 인정 등이 골자인데 사실상 일국양제의 얼개가 확정된 셈이다.

중국은 영국과 무려 22차례에 달하는 협상을 벌인 끝에 1984년 9월 18일 '중국과 영국 간 홍콩 문제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데 성공했다.

덩샤오핑의 뒤를 이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은 1992년 "일국양제로 조국 통일을 촉진하자"며 대만에 협상을 재요구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과 대만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그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92 컨센서스'에 합의했다.

중국은 일국양제 가운데 '하나의 국가(一國)'에 방점을 찍는다. 대만과 홍콩은 각각 청일전쟁과 아편전쟁에 패배하면서 일본과 영국에 빼앗겼던 영토다. 이를 되찾아야 치욕스러운 역사를 씻고 민족적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다고 여긴다.

1997년 7월 1일 홍콩에 대한 주권 행사를 재개한 날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100년의 산전수전을 겪은 홍콩의 귀환으로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대만이 독립을 주장할 때마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1993년 발간한 통일백서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 합의로 분단된 독일과 북한 문제와는 다르다"며 "양안 간 협의를 통해 하나의 중국이라는 틀 안에서 합리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

◆대만·홍콩에는 안 맞는 옷인가

중국의 기대와 달리 일국양제 원칙은 대만과 홍콩 등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첫 계기는 1989년 6월 터진 천안문 사태였다.

젊은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를 탱크를 앞세워 유혈 진압하는 장면을 목도한 홍콩인들은 중국 공산당의 일국양제 약속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당시 수십만 명의 홍콩 시민들이 베이징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극에 분노하며 중국의 민주화 열기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었다.

대만도 마찬가지였다.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에 흡수 통일된다면 대만의 민주주의 체제를 더이상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이후의 상황도 우려했던 대로 흘러갔다. 고도의 자치권을 약속했던 것과 달리 홍콩 정부를 이끄는 행정장관은 초대 둥젠화(董建華)부터 5대 캐리 람(林鄭月娥)까지 모두 친중파 인사가 당선됐다.

홍콩의 줄기찬 요구에 중국은 2017년부터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를 공언했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한 직후인 2014년 이 결정을 번복했다.

중국 중앙정부가 선호하는 후보 2~3명 중 한 명을 선거로 뽑는 '무늬만 직선제'로 선회한 것이다. 홍콩 시민들은 2014년 9월부터 79일간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외치며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잘 알려진 '우산혁명'이다.

대만에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에 부정적이던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이 1996년 재선에 도전하자 중국은 당선을 막기 위해 대만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군사적 압박에 나섰다.

중국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정치인이 득세할 때면 어김 없이 군사적·경제적 도발이 이어졌다.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와 대만 및 홍콩의 민주주의 체제는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불안한 경제가 본질

정치적 괴리감 외에 경제적 종속 가능성도 일국양제에 거부감을 갖게 된 요인으로 꼽힌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된 중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13조6000억 달러로 대만의 23배, 홍콩의 37배에 달한다.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으로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6%대 초반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대만은 2%대에 불과하고 홍콩은 마이너스 성장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홍콩은 아시아의 금융·무역 허브, 대만은 첨단제품 제조기지로 200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차이나 머니의 융단 폭격이 시작되면서 금융·부동산·관광업은 중국인들의 손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지난 2014년 11월 시 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의 만남, 이른바 시마후이(習馬會) 당시 대만에서 만난 젊은 대학생들은 "시마후이가 밥 먹여주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분단 66년 만에 양안 정상이 회동한다고 떠들썩했지만, 장기 불황에 지치고 위세를 더해 가는 차이나 파워에 예민해진 대만인들은 오히려 불안감을 드러냈다.

1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도 팍팍한 삶에 지친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있다. 밀려드는 중국인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부동산 가격을 높이고 홍콩만의 고유한 문화를 훼손하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큰 세대다.

우산혁명에 이어 송환법 반대 시위까지 이끌며 홍콩 내 반중 아이콘이 된 조슈아 웡(黃之鋒)은 1996년생으로 홍콩 주권이 중국에 반환되기 한 해 전에 태어났다.

조슈아 웡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홍콩을 되찾은 뒤 한 세대가 흐르는 동안 중국의 화학적 결합 시도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덩샤오핑은 중국의 일부가 된 홍콩에서 일국양제를 50년간 유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이후에도 일국양제 원칙은 유효할 것인가.<6회부터는 온라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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