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경력과 역량,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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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관 기자
입력 2019-08-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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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우리 경제의 성장 전망을 어둡게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기업가 정신이 고갈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기업을 키우기 위해 ‘야성적 충동’으로 투자를 확대하거나, 새로운 인재 영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기업가를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근로의욕이 떨어지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는 노동자는 많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근로의욕이 충만한 노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저출산과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고령화와 숙련인력 부족 같은 인구구조 변화도 우리 경제의 중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건설산업도 고령화와 숙련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2016년 말 기준으로 건설기능인력은 약 136만명에 달하는데, 이 중 40세 이상 인력의 비율이 84%로 전 산업 평균인 63%보다 훨씬 높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오래전부터 많은 대책을 수립해왔다.

그중 하나가 건설기능인 등급제다. 이 제도는 현장의 건설기능인을 초급·중급·고급·특급 등 4개 등급으로 구분하여 관리함으로써 중장기적인 직업 전망을 제시하고, 신규 인력의 유입을 촉진하며, 숙련인력을 지속적으로 양성·지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이미 지난 7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소위원회에서 이 제도를 담은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건설기능인의 고령화와 숙련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하기로 한 기능인 등급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제도의 내용이 경력을 중심으로 등급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력이란 자격, 훈련 및 포상 실적도 경력으로 환산해서 현장경력과 합산하는 ‘통합경력’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현장경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아무튼 초급은 6개월 이상 6년 미만, 중급은 15년 미만, 고급은 25년 미만, 특급은 25년 이상의 ‘통합경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 잠정적인 등급제 기준(안)이다.

이 같은 경력 중심의 등급제가 젊은 기능인력이 건설현장에 들어와서 세월이 지날수록 높은 등급으로 승급되고, 좋은 처우를 받을 수 있는 직업 전망을 제시해 준다고 정당화하기도 한다. 과연 그런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젊은 기능인이 건설현장에 들어와서 아무리 탁월한 역량을 쌓아도 경력이 부족하여 승급되지 않는다면, 그런 산업은 기피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경력이 많은 고령의 기능인만 높은 등급으로 대우한다면, 젊은 기능인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아 건설현장의 고령화는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 제도 자체가 고령화된 기능인력의 기득권을 공고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둘째, 경력 중심의 등급과 역량 중심의 등급은 같을 수가 없다. 일을 오래 했다고 해서 항상 더 잘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2015년에 실시된 국토교통부의 기능인 등급제 2차 시범사업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경력을 중심으로 부여한 등급과 역량을 중심으로 부여한 등급이 일치하는 비율은 28.4%에 불과했다. 역량이 부족해도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높은 등급을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 같은 문제 제기를 수용하여 건설노조도 경력을 중심으로 등급을 부여하되, 보완적인 수단으로 ‘숙련도 평가’를 도입하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한다. 기본은 경력이고, 보조적으로 숙련도를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오히려 그 반대로 숙련도를 원칙으로 하되 경력을 보조적으로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초급이나 중급까지는 상대적으로 경력 비중을 높이더라도 고급이나 특급은 숙련도에 더 큰 비중을 두었으면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경력 중심의 기능인 등급제라면, 건설현장의 고령화와 숙련인력 부족 문제의 해소라는 당초 제도 도입 목적은 달성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한다. 그럴 듯한 명분이나 취지만 볼 것이 아니라 세부적인 정책 내용과 수단을 꼼꼼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력과 역량 중 어느 것을 더 우선시할 것인지는 우리 사회와 산업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에 관한 중차대한 과제다. ‘연공서열(年功序列)’보다는 역량과 성과를 더 중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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