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 진대제 회장 "기업은 스스로 길 찾는다…불필요한 정부 개입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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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현·김지윤 기자
입력 2019-08-1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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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재·부품 국산화, 시간만 충분하면 가능…'컨트리 리스크' 최소화 방안 찾을 것"

  • 반도체 공급 과잉 오래갈 수 없다…시스템 반도체 이스라엘·실리콘밸리 눈여겨 봐야"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 공정에 필수적인 포토 레지스트와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한 수출 허가 규제를 강화한 지 한달 반이 지났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국내에선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일 일어나고 일본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기업들은 수출이 규제된 품목에 대한 대안 찾기에 분주하다. 

18일 한국 반도체업계의 산증인이자 IT업계의 '구루(Guru, 정신적 지주)'로 꼽히는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회장을 만나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 전략과 향후 한국 반도체업계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회장이 집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아주경제]

 
수출 규제 소식이 알려진 직후 진대제 회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치명타"라는 진단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 그의 평가는 사뭇 달라졌다. 일본은 지난 8일 '극자외선(EUV) 포토 레지스트'의 한국 수출을 허가했다. 이는 7월 4일 포토 레지스트를 포함한 3개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행한 후 처음이다.

진대제 회장은 "일본이 수출을 아예 안 하겠다고 해버린다면 치명타였을 것이다. 가장 민감한 게 포토 레지스트인데 수출이 허가됐다. 한국이 반도체를 완전히 제조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국산화가 어려운 품목도 시간을 주면 가능하다"며 "정부에서는 R&D(연구개발) 예산을 확보하고 인력 양성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규제가 도입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진대제 회장과의 일문일답.

-일본 정부가 생각보다 강경하게 나오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포토 레지스트 수출 허가를 내준 것은 일본 기업들에도 한국 반도체업계가 큰 고객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치면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20~30%가 된다. 그 고객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 회사로 봐서는 큰일이다. 특히 수출규제가 걸린 품목들은 변질 때문에 재고를 오래 쌓아둘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재고가 많지 않지만 그만큼 수출하는 일본 기업 입장에서도 재고를 소진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매출 타격으로 이어진다."

-소재·부품 국산화 가능성을 어느정도로 보고 있나.

"한국 반도체가 세계 1등이 된 지 벌써 26년이다. 그동안 일본 의존도를 많이 낮춰왔다. 일본은 한국에서 못 만드는 소재나 부품은 비싸게 판매한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대체품을 만드는 순간 값을 반으로 낮춘다. 2003년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휴대폰에 들어가는 음향칩은 100%가 일본 야마하(YAMAHA)사의 제품'이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이 깜짝 놀랐다. 이런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부품들을 A4 한 쪽 분량으로 적어내고 국산화를 위해 노력했다. 일부 못하는 게 조금 남아 있는 상황인 셈이다.

삼성전자는 절대 한 회사에서만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다. 다른 회사에서도 만들라고 지원해서 7대3이나 6대4로 위험을 분산한다. 그런데 이번 수출규제와 같은 '컨트리 리스크'는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이런 위험이 있다는 교훈을 얻었으니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국산화가 어려운 품목도 시간을 주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포토 레지스트, 불화수소는 전체 반도체 생산 단가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아주 미미하다. 그래서 그동안 안 했던 것이지 못했던 게 아니다. 포토 레지스트가 합성하기 까다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비용을 들여 개발할 만큼의 규모가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소재와 부품을 국산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맞는다. 중국이 그 많은 인구와 자금력을 동원해도 인텔의 프로세서와 마이크로소프트의 OS에서는 독립을 못하고 있다. 국제 분업의 관점에서 수입할 수 있는 부품은 당연히 수입하는 게 이득이다. 다만 전 세계가 공급 과잉 상황에 접어들면서 국제 분업이 깨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삼성의 대응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재용 부회장이 잘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일본에 가서 기업들을 만났을 것이고, 그 기업들이 일본 정부에 건의를 했을 거다. 기업은 자기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야 한다. 삼성전자도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대비하고 있을 거다. 삼성전자에 박사급 인력만 3000명이 넘는다.

사실 언론에서 삼성이 어떻게 대비하고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기업에는 불리할 수 있다. 기업은 알아서 잘할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수출규제와 같은 이슈가 있었나.

"한국이 중국산 마늘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해 '마늘 파동'이 발생한 적이 있다. 그때 중국 정부에서 한국산 휴대폰을 사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삼성전자가 마늘을 사줬다는 말이 있었다. 휴대폰을 팔아야 하니까.

이처럼 국가 간 마찰로 인한 통상이슈는 늘 있었다. 비일비재하다. 최근에도 한국산 세탁기에 미국이 관세를 매기자 미국에 공장을 차렸다. 삼성전자도 미국에 반도체 공장이 있다. 관세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 간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본다. 협력관계가 잘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이 뒷수습을 하려면 힘들다."

-이번 사태로 인한 우려도 있는지.

"중소기업에서 만든 품목을 대기업에 쓰라고 강제하는 법이 생길까봐 우려된다. 이런 규제는 양면성이 있다. 한국 대기업이 계속해서 써주면 기술은 좋아질 수 있다. 국제 분업이 잘된다면 포토 레지스트 몇백억원어치는 사다 쓰는 게 낫다. 불화수소의 경우도 고순도는 일본에서 수입하지만 일반 수준의 제품은 국내에서 사용한다. 일부 사안으로 법을 만들다 보니 과도한 규제가 생길 수 있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을 아이 취급하는 것도 이상하다. 삼성전자의 주주 중 56%가 외국인이다. 삼성전자가 아무 대비책이 없다면 주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평가는.

"1990년대 이전 반도체업계는 메모리 세대별로 1등이 바뀌었다. 도시바가 1메가 D램 시절엔 1등이었고 이어 NEC가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이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기를 잘 탄 것도 있다. 일본 경제가 꺾이던 1980년대 중반부터 투자를 잘하고 제품을 잘 만든 것이다.

중국은 언젠가는 따라온다. 메모리 분야에서 우리나라만 독식한다고 하면 누가 놔두겠나. 아직까지는 반도체 간수를 잘하고 있다. 지금 중국이 한국 기술자들에게 연봉 5배를 제안한다고 한다. 우리도 기술을 배워 오려고 별짓을 다했다. 1980년대를 돌이켜보면 외국 손님이 오면 가지고 온 서류를 카피하고, 외국 공장에 가서도 캐비닛을 뒤지고. 그렇게 컸다.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중국이 20년 전부터 미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봐야 한다. 네트워크 장비 전부 미국 시스코사의 제품을 쓰다가 국산화를 위해 노력한 결과가 '화웨이'다. 이제 중국이 내세운 제조 2025의 핵심은 반도체다. 300조원을 투자한다고 했다. 중국은 전 세계 PC의 70~80%, 휴대폰의 반 이상을 만드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한국산이다. 그래서 삼성 의존도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앞으로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어떻게 움직일까.

"메모리 반도체가 영구적으로 공급과잉일 수는 없다. 수요가 팽창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은 금방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이 한국 기술력을 따라온다면 공급 과잉 상황이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설비 수는 제한돼 있다. 예를 들어 ASML에서 만드는 노광장비는 대량공급할 수 없다. 때문에 옛날과 같은 공급과잉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은 전략에 따라 움직이는 거고 재고가 많다면 생산을 줄일 것이다."

-삼성전자의 시스템LSI 2030년 1위 비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20년 전과 비교해 시스템LSI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노력하면 1위는 가능하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만은 어렵다. 기술자가 부족하니 해외에 연구소를 만들거나 해외 기업을 사야 한다. 이스라엘, 실리콘밸리의 기업을 눈여겨봐야 한다."

-20년 전 소프트웨어를 강조했던 것처럼 AI가 대두되는 상황이다. 인력 양성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삼성전자에 있을 때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부에 가보니 기술자는 남아도는데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자가 부족했다. 필요한 인력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술자였다. 그래서 인력 양성에 3000억원씩을 책정해 긴급 육성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한국은 전체적으로 AI 기술자가 부족하다. 인공지능과 관련해 앱을 만드는 사람은 많은데 시스템 엔지니어는 적다. AI대학원을 만든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교육 정책이 유연하지가 않다. 정부는 전체적인 틀만 잡고 대학이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스탠퍼드대에 음악학과가 없는 것처럼 대학이 스스로 판단해 학과 운영을 탄력적으로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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