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운전대를 내려 놓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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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주 기자
입력 2019-05-1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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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우리의 미래를 빼앗기고 말았다."

한 남자가 카메라 앞에 앉아 슬픔 섞인 말을 쏟아냈다.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다고 했다. 가해 차량은 적색 신호에도 횡단보도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운전자는 87세 고령이었다. 고령 운전자 사고로 골머리를 앓던 일본 열도는 충격에 빠졌다. 

영국에서도 노인 운전 논란이 일었다. 지난 1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이 왕실별장 근처에서 운전을 하다 충돌 사고를 일으켜서다. 1921년생으로 올해 98세인 필립공은 이틀 만에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다시 운전하다 구설수에 올랐다. 필립공은 한 달여 뒤 면허증을 자진 반납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12일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75세 운전자가 몰던 차가 불자들을 덮쳐 한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2월 서울 강남에서는 96세 운전자가 건물 벽과 차를 잇달아 들이받은 뒤 30대 행인을 치어 사망하게 하는 사고를 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한국의 고령자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08년 2만3012건에서 2017년 3만7555건으로 10년간 61.3% 급증했다. 2017년 기준 고령 운전 교통사고 발생건수와 사망자 수, 부상자 수는 각각 전년 대비 5.0%, 2.0%, 5.6% 증가했다. 고령 운전자 관리가 더욱 중요해진 이유다.

일본 경시청은 이른바 '실버 드라이버'를 대상으로 자진 면허 반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도 면허증을 반납할 경우 10만원 상당의 교통카드를 지급한다는 유인책을 내놨다.

고령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좀 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 쇼핑이나 통원에 불편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면허증 반납과 더불어 자동차를 대체할 이동 수단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노인학 교수인 앨리스 포미도르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2030년까지 운전자 4명 중 1명이 고령 운전자가 될 전망이다. 그는 면허를 반납한 고령자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개방적이고 정중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령 운전자의 질주로 가족을 잃은 30대 일본 남성은 "조금이라도 운전이 불안한 사람은 운전하지 않는 선택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모두가 공존할 수 있도록, 현명하게 운전대를 내려놓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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