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레시피 공개하라니"···화관법에 난감한 산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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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기자
입력 2019-05-1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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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화학 물질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은 요리 레시피를 내놓으라는 것과 같다."

반도체 소재를 개발하는 국내 한 중소기업 대표는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어떤 첨가제를 어떤 비율로 넣느냐가 소재 산업의 핵심인데, 이를 공개하면 영업기밀이 다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유해물질에 대한 안전을 강화한다는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한국 반도체 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사용하는 화학물질 정보를 의무적으로 정부에 제출토록 하는 규제 입법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이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사업장 주변 지역 시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안전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기업의 기밀 정보까지 노출된다는 것이 업계의 우려다.

화관법은 2015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를 계기로 기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전면 개정하며 탄생됐다. 약 5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일부 조항들은 내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환경부는 이미 충분한 준비 기간을 가졌고 지난해 업종별 간담회(8회), 현장방문(12회) 등을 통해 이미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와 환경부의 입장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모양새다. 기업들은 정부가 애초에 지키기 어려운 높은 기준을 제시하고, 유예기간 동안 규제 현실화 요구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유해물질 취급 공장이 충족해야 할 안전 기준은 79개에서 413개로 대폭 늘어난다. 특히 법 시행 전에 설립돼 이미 가동 중인 공장들도 배관검사 등 새 기준에 맞춰 안전진단을 다시 받아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장 등에서 배관검사를 다시 실시할 경우 약 14개월이 소요된다고 한다. 주력산업 생산 라인이 멈춰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나마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들은 대안 마련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생존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한 중소 화학업체 종사자는 "대기업의 경우 화관법에 대응하기 위해 컨설팅 회사와 계약하는 등의 방법으로 운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영업이익에 맞먹는 시설투자를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2015년 당시 화관법은 법안 발의 후 한 달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졸속 입법'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산업 현장의 상황을 반영하고,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만 이 같은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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