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 심재철 vs 유시민 ‘1980년 서울의 봄’ 진실공방 전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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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기자
입력 2019-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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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柳, 방송서 당시 상황 언급해 발단…沈, 진술서 전문 공개

이른바 ‘1980년 서울의 봄’ 상황을 두고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사이의 진실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1980년 당시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억이 엇갈리면서다. 각각 서울대 총학생회장(서울대 영어교육학과)과 대의원회 의장(서울대 경제학과)이었던 이들은 서로 반박과 재반박을 주고받으며 난타전을 벌이는 중이다.

유 이사장은 7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진술서는 앞부분부터 다 거짓말이다. 내가 1980년 3월 심 의원을 처음 만난 대목부터 완전히 창작이었다”며 “합수부 수사관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도록 성의있게 진술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위를 할 때마다 신문에 났던 심 의원이 나 때문에 기소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오히려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 학생활동위원장이었던 이홍동, 그리고 나는 총학생회 간부 3역으로 진술서에 자주 나올수록 좋은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진술서의 내용과 방식을 볼 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창작인지 사람들이 구분하지 못할 거고 그걸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다”면서 “나는 당시 우리의 행위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법적으로 끝나길 바랐다”고 강조했다.

유 이사장은 “심 의원이 나한테 없는 진술서를 공개한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생각도 없다. 이 모든 일을 학생회 간부가 다 한 것으로 진술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 점만 이해해주면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심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유시민의 거듭된 거짓 해명이 유감”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유시민씨는 드러난 학생지도부 뿐 아니라 복학생 9명의 행적을 상세히 기술해 김대중 씨를 추종하는 국민연합의 사조직인 민청협(민주청년협동조합)이 복학생들을 통해 재학생에게 폭력 가두시위를 사주했다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중 내란음모 혐의의 밑그림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두 사람의 서울대(철학과) 한 학번 아래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도 공방에 가세했다.

윤 사무총장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형만이 아직도 80년 신군부의 법정에 남아 당시의 원한과 부끄러움에 사람들을 원망하고 상처내고 있다”며 심 의원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심 의원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S형’이라고 적었다.

윤 사무총장은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투옥시킨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유죄판결에 있어서 핵심 법정증언이 바로 형의 증언임이 역사적 진실로 인정되고 있다”며 “80년 서울역 진출과 회군을 결정한 총학생회장이었던 형이, 84년 복학해서는 왜 복학생협의회장을 맡지 못하고 대의원대회의장이었던 후배 유시민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는지 스스로 잘 아시지 않느냐”고 일갈했다.

그는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거나 군대에 끌려갔다온 분들 중 어느 누구도 기간 방송사에 기자로 채용된 이가 없건만, 유독 형만이 징역 대신 군대에 갔다 와서 다른 정권도 아닌 전두환 정권에서 MBC 기자가 될 수 있었다”면서 “형이 그 이유를 모른다 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심 의원은 영어교사와 MBC 기자를 거쳐 1995년 당시 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윤 사무총장은 “1994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들이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를 내란죄로 고발할 당시 형이 80년 자신의 행위를 ‘폭력 앞에 자포자기하고 철저히 무너져버렸다’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느냐”며 “혹시 문민정부로 불렸던 김영삼 정권에서 정계에 입문하기 위해 자신의 훼절과 배신의 경력을 세탁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냐”고 반문했다.

두 사람의 공방은 지난달 20일 유 이사장이 KBS2 ‘대화의 희열2’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방송에서 계엄군사령부 합동수산본부에 끌려가 구타를 당하던 당시를 회고하며 “뜻밖의 글쓰기 재능을 발견한 곳이 합수부”라며 “우리 학생회 말고 다른 비밀조직은 노출 안 시키면서 모든 일이 학생회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썼다”고 밝혔다.

유 이사장은 이 과정에서 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다. 하지만 방송 이후 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실을 왜곡했다. 유 이사장이 진술서에 운동권 내부 동향을 적시해 77명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겨눈 칼이 됐다”고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심 의원은 1980년 5월 15일 일명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이날 서울대, 고려대 등 30여개 대학 총학생회가 주도한 10만명 규모의 시위대가 서울역 앞으로 모였다가 해산했다.

유 이사장은 심 의원의 반박에 노무현재단의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를 통해 “당시 학생회 간부를 맡을 때 명단을 진술하게 되면 무엇을 감추고 노출할 것인지 다 합의가 됐다”며 “두들겨 맞으면서도 수배자 명단에 포함이 안 되도록 비밀조직을 감췄다”고 재반박했다.

결국 심 의원은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1980년 유 이사장이 쓴 진술서의 원본 사진 파일과 텍스트를 공개했다.

심 의원은 “유시민은 그의 진술서에서 나를 78번 언급하며 내 공소사실의 90%를 입증했다”며 “검찰 공소 사실의 핵심 증거로 활용됐다”고 주장했다. 또 “이 진술서로 행적이 소상히 밝혀진 77명의 학우 가운데 미체포된 18명은 그의 진술 직후인 6월 17일 지명수배 됐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유시민의 진술서는 전지적 관점에서 관찰자적 시각으로 학우들의 행적을 상세히 기록했다”며 “유시민은 당시 운동권 핵심인물이었지만 진술서 제출 이후인 1980년 8월 20일 아무런 처벌 없이 불기소로 석방됐다”고 썼다.

심 의원은 자신의 진술을 둘러싼 의혹도 해명했다. 그는 “본인의 행적에 관한 것이 90%였고 다른 사람에 관한 것은 ‘유시민과 이홍동이 회의에 참석했습니다’와 같이 단순 기술 단 1회였다”고 부연했다. 유 이사장이 심 의원 진술서에 나온 내용으로 자신도 진술서를 작성했다는 취지로 답변한 데 대한 반박으로 해석된다.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노무현재단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준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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