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국보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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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선 기자
입력 2019-05-0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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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및 고려‧조선 금속활자 서책 등 2건은 보물 지정

[문화재청]

고려청자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가 국보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우리나라 청자 제작의 시원으로 불리는 보물 제237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를 국보로 지정하고, 통일신라에서 고려 초기에 제작된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와 고려‧조선 시대 금속활자로 찍은 신간유편역거삼장문선대책 권5~6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2일 밝혔다.

국보 제326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는 고려 태조를 비롯한 선대 임금들의 제사를 위해 건립한 태묘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된 왕실 제기다. 굽 안쪽 바닥면에 돌아가며 ‘순화 4년 계사년 태묘 제1실 향기로서 장인 최길회가 만들었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고, 이를 통해 993년(고려 성종 12년) 태묘 제1실의 향기(제기)로 쓰기 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는 1910년경 처음 공개됐지만 발굴경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고 일본인 소장가들을 거쳐 1957년 이화여대가 구매해 전해지고 있다

이 항아리는 문양이 없는 긴 형태로 입구가 넓고 곧게 서 있으며, 몸체는 어깨 부분이 약간 넓은 유선형이다. 표면에 미세한 거품이 있으나, 치밀한 유백색의 점토를 사용해 바탕흙(태토)의 품질이 좋고 표면에는 은은한 광택과 함께 미세한 빙렬(도자기 표면에 유약이 굳으면서 생긴 미세하게 갈라진 금)이 있고, 군데군데 긁힌 사용 흔적이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1989년~1990년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가 황해남도 배천군 원산리 2호 가마터에서 발굴한 ‘순화3년’명 고배를 비롯해 여러 파편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역시 원산리 가마터에서 제작돼 태묘의 제기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는 현전하는 초기 청자 가운데 드물게 크기가 큰 대형 항아리로 바탕흙의 품질이 우수하고 형태가 비슷한 사례가 없는 유일한 작품으로 굽 안쪽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제작연도, 기명의 용도와 사용처, 제작자를 알 수 있다.

보물 제2022호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은 2008년 인각사의 1호 건물지 동쪽 유구에서 발견된 유물로 금속공예품과 도자류로 구성된 총 18점의 일괄 출토품이다.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에서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18점의 일괄 출토품 중 ‘금속공예품’은 총 11점으로 금동사자형 병향로, 향합, 정병(목이 긴 형태의 물병), 청동북 등이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청동제 의례용품들로 조형성이 뛰어나고 섬세한 기법이 돋보이는 가운데 불교에서 천상의 새를 상징하는 금동가릉빈가상은 그동안 출토 사례가 거의 없어 희귀하고 청동발과 청동뚜껑 역시 통일신라 시대부터 유행한 전형적인 형태로 당시 공예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청자’ 7점은 모두 당나라 월주에서 생산된 중국 도자로 추정된다. 발굴 당시 포개진 채 한꺼번에 발견됐고, 함께 출토된 금속유물의 제작 시기 등을 추정하는데 참고가 된다. 청자는 8세기 말~10세기 전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국내 출토 중국 도자의 편년기준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신라 말에서 고려 초 금속공예품들은 대부분 사찰이나 박물관 등지에서 전해 내려오던 유물인 반면, 인각사 출토 공양구는 보기 드물게 땅속에서 온전히 출토된 것들로 비교적 이른 시기의 보기 드문 금속기명과 청자 유물들이 일괄 출토돼 명확한 출토지와 편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보물 제2023호신간유편역거삼장문선대책 권5~6은 원나라 유인초가 원에서 시행한 향시와 회시, 그리고 전시의 ‘삼장’에서 합격한 답안들을 주제별로 분류해 1341년 새롭게 편집한 책의 권5와 권6에 해당한다. 총 72권으로 편찬된 이 책에 대해서는 그동안 고려의 전래 기록과 실례가 증명되지 않았지만 ‘신간유편역거삼장문선대책 권5~6’이 알려지면서 고려 시대에 유입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번에 지정된 대상은 총 72권 중 고려본(2권 2책)과 조선본(2권 2책) 권5~6에 해당한다. 모두 금속활자로 인출했고 일부 떨어져 나간 부분도 있으나 간행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고려본은 판심(책장 가운데를 접어 양면으로 나눌 때 접힌 가운데 부분)의 규격 등이 조선본과 다르고, 경의 처리법의 적용과 권차나 편자의 표기에서 조선본보다 앞선 시기의 특징을 보인다. 조선본의 경우 1403년(태종 3) 주조된 계미자를 바탕으로 간행됐다. 계미자는 1420년(세종 2) 경자자를 주조할 때까지 사용된 조선 시대 최초 금속활자로 15세기 대표적인 금속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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