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재 육성 갈길 멀다]③“정부 R&D투자론 파괴적 혁신 어려워…민간투자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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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민 기자
입력 2019-04-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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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2020 개원 앞두고 세계 최고 교수진 유치 나서

  • 세상 바꿀 혁신기술에 아낌없이 투자한 폴 앨런같은 기업가 한국서도 나와야

  • 지금 뒤쳐지면 남의 인프라에 예속

  • 기업, 대학 경계 허물고 인재 유치해야

“미·중 디지털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답은 사람입니다. 인공지능(AI) 분야 주류세력 인재들을 국내로 영입해야 해요. 정부지원금만으로는 ‘팔로어(follower)’밖에 못합니다. 민간 자금이 투입돼야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실험이 가능하죠. 한국을 주류세력으로 편입시킬 톱티어(Top-tier) 인재를 모시려면 서울대 예산으론 턱없이 부족합니다. 폴 앨런 같은 기업가가 한국에서도 나와야 하는 이유죠.”

정부의 AI대학원 지원 사업 공모가 나던 지난해 12월, 서울대는 데이터사이언스 전문대학원 설립을 위한 정원을 확보했다. 타 대학들보다 체계적이고 앞선 행보였다. 서울대는 신규 전임교원 15명, 석사 40명, 박사 15명 규모로 대학원을 운영할 계획이다. 교육부 인가를 앞두고 있다.

대학원 설립은 홍기현 교육부총장이 진두지휘한다.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이 2013년부터 데이터사이언스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설파해 온 결실이 맺어진 셈이다. 지금 차 원장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바로 ‘톱티어’ 교수진 유치다.

하지만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조차도 세계적인 AI인재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는 AI대학원들조차 학내 교원을 두루 찾아서 교수진을 꾸리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 AI연구를 주류세력으로 편입시킬 톱티어 교수진 영입은 요원해 보인다.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은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이 AI분야에서 세계주류가 되려면 세계 최상급 교수진을 유치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간 자금의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사진=유대길 기자]

차 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모델로 언급한 인물은 폴 앨런.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지난해 림프종에 걸려 세상을 떠나기까지 바이오 사이언스, 브레인 사이언스, AI 등 미래를 이끌 과학 분야에 많은 투자를 했다. AI연구소, 세포연구소 등 신기술 분야 개척에 거액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대학뿐만 아니라 대학 외 연구소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세상을 바꿀 ‘혁신’ 기술을 먼저 알아챘기 때문이다.

“해외 한국인 연구자 중 누구나 인정할 만한 톱티어가 몇 명 있죠. 올 준비돼 있어요. 다만 서울대 연봉의 10배를 받는 이분들을 영입하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겠죠. 한 명이 움직이면 그 다음부터는 쉬울 겁니다.”

그가 제시하는 조건은 두 가지다. 우선 이들을 교수로 초빙하면서 겸직을 허용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구글 등에서 연구과학자 겸직을 유지하도록 보장해주는 것이다. 겸직을 통해 교수진은 서울대에는 없는 빅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고, 서울대에 모시기 힘든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일부 분야에서 사외이사는 맡을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겸직은 금지돼 있다. 차 원장은 “북미권을 비롯한 외국은 이미 겸직을 허용하고 있다”며 “미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분명 대학과 기업의 경계를 넘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은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이 AI분야에서 세계주류가 되려면 세계 최상급 교수진을 유치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간 자금의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사진=유대길 기자]

최상급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차 교수의 두 번째 조건은 연봉과 일정 규모 이상의 연구비다. 충분한 연봉 없이 선도적인 연구는 불가능하다. 교수들이 규모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해 부족한 연구비를 채우기 위해 ‘앵벌이’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로부터 연 20억을 지원받는 고려대, 성대, KAIST AI대학원 교수진도 프로젝트 확보에 여념이 없다.

“잘게 쪼개진 연구비 체제에서 서울대에 오면 과제 대여섯 개는 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 데려다 놓고 과제 따러 돌아다니면 연구가 되나요? 북미권 교수들은 연 2~3개 과제만 합니다. 저는 정말 괜찮은 교수를 모셔오려면 초기 연구기금으로 인당 30억원은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5~6년 정도 독립적으로 연구한다면, 그걸 종잣돈으로 해서 창의적이고 수월성 있는 실험들을 공격적으로 해볼 수 있어요.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의 ‘설립자’가 돼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는 거죠.”

차 원장은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분야 교수들이 함께 하는 연구소 기업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 100대 AI·빅데이터 연구자들이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과와 연구소 기업을 오가며 자유롭게 연구하고 창업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표=김효곤 기자]

모델은 폴 앨런 연구소다. 한 과제 예산으로 5년간 1억2500만 달러를 쓰는 폴 앨런 AI연구소는 한 해에만 300억원을 투입한다. 연구를 이끄는 교수와 70~80명의 전임연구진이 협업해 규모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연구소 기업은 어떻게 실현될까? 국내 대기업들이 서울대 교수진 확보에 민간 자금을 투자한다. 세계적 톱티어 교수가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에서 인재를 양성하며 연구소 기업에서 자유롭게 연구한다. 이를 보고 캐나다, 독일, 중국 등의 포닥 인재들이 연구소로 모여든다. 이 과정이 몇 년 되풀이 되면 한국은 AI 주류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게 차 교수의 설명이다.

“1~2년 만으로는 안 돼요. 3년도 어렵고요. 4~5년 정도 해 보면 분명 뭔가가 나올 겁니다. 이걸 공적 자금만으로 하기는 어려워요. 정부의 R&D 투자 방식이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기 위한 전략 투자를 못하게 돼 있어요. 민간 자금 투입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은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이 AI분야에서 세계주류가 되려면 세계 최상급 교수진을 유치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간 자금의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사진=유대길 기자]

차 원장은 규모 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연 400억원의 연구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민간 자금 확보에는 대기업들이 나서달라고 말했다. “한국의 폴 앨런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 대기업 총수들은 선친들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돌아봤으면 해요. 그리고 지금 시대에 과연 어디에 투자해야 나라를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죠. 혁신의 새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데이터사이언스가 의학, 금융, 자율주행차 등 미래에 모든 분야에서 필수가 되는 시대에 우린 이미 들어섰어요.”

기업들에게 무작정 투자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기업들이 대학연구소를 찾는 이유는 해결되지 않는 과제가 있을 때다. 차 원장은 많은 기업들이 같은 과제를 개별로 의뢰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했다. “데이터사이언스에서 공통된 연구는 같이 하자는 이야기죠. 오픈소스처럼요. 그 다음에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서비스는 기업별로 연구의뢰를 하면 됩니다.”

몇 년 정도 남았을까? “골든타임이요? 이제 정말 막바지예요.” 미·중 디지털패권 다툼에서 남은 공간은 얼마 없다. 미국·캐나다·영국이 한 축, 중국이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한국 그리고 일본이 따라가는 형국이다.

차 원장은 현 상황을 조선 말기로 비유했다. “사방에서 열강이 들어오던 그때 우린 독립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모든 산업이 데이터사이언스에 의존할 겁니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AI주권을 잃고 남이 만든 인프라에 예속되겠죠. 너무 독립투사처럼 말하나요? 100년 전 상황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민간도 시대적 사명을 다해야 할 겁니다.”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은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으로 학사를, 제어계측공학으로 석사를, 스탠퍼드대에서 전기컴퓨터공학으로 박사를 했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와 전기공학부 교수를 맡고 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비상임이사, 한전 Digital KEPCO 위원장, 2012년부터 2019년까지 KT 최장수 사외이사등을 역임했다. 실리콘 밸리 창업후 SAP 와 M&A, SAP 를 독일 주식 시장 시총 1위 기업으로 만든 SAP HANA 연구 개발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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