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상' 천우희 "이수진 감독님, 어때요? 저 잘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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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9-04-1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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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체 쉽지 않다. 배우 천우희(31)가 그리는 '삶'도, 그 '삶'을 보는 것도 말이다. 대중에게 천우희를 각인시켰던 공주(영화 '한공주')를 비롯해 생계를 위해 발버둥 쳤던 미진(영화 '카트'), 사랑하는 이와 친구의 사이에서 엇갈린 선택을 하게 되는 가수 연희(영화 '해어화'), 마을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을 목격한 미스터리한 여인 무명(영화 '곡성') 등에 이르기까지. 그는 스스로 또 대중에게 아로새길 만큼 불편하고 피로하며 괴로운 인물들을 연기하곤 했으니까.

지난달 20일 개봉한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도 마찬가지다.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 명회(한석규 분)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좇는 아버지 중식(설경구 분),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 련화(천우희 분)까지.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어쩌면 천우희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처절하고 맹렬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우상'에서 조선족 여인 최련화를 연기한 천우희[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조선족 여인 최련화는 맹렬히 '삶'을 쫓는 인물. 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고, 저가 받은 모욕적인 일은 똑같이 갚아주고 마는 이른바 '독종'이다. 작은 체구, 깡마른 몸에서 빛나는 서슬 퍼런 눈은 그가 예사 인물이 아님을 감지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솔직히 시나리오가 술술 읽히지는 않았어요. 숨어있는 단서가 많아서 천천히 뜯어가면서 읽었죠. '내가 뭘 놓친 건 아닐까?' 생각을 많이 하면서 동시에 '아, 감독님은 왜 나를 시험에 들게 할까' 지레 겁부터 먹고 시작했어요. 의욕은 앞서지만 두려움이 그만큼 컸죠."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최련화는 이제까지 천우희가 보여준 인물들을 비틀고 쥐어짜 여린 면들을 모두 탈탈 털어낸 '진짜배기'였으니. 최련화 앞에서 망설임과 두려움을 느꼈다는 천우희의 말이 막연하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텍스트만 봐도 '도대체 이 캐릭터를 어떤 여배우가 연기할 수 있을까' 숨이 턱 막힐 정도니까.

"듣기로는 제가 '우상' 시나리오를 마지막에 받았다고 들었어요. 그때가 2016년이었는데 이수진 감독님께서 '곡성'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우상' 련화 역할을 두고 주저하셨대요. '천우희 말고 다른 배우를 써야겠다' 하시는 찰나, 설경구 선배님께서 '천우희는 어때?'라고 물어서 결국 돌고 돌아 제게 오게 되었죠."

영화 '우상'에서 조선족 여인 최련화를 연기한 천우희[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최련화 캐릭터가 더 막연하고 두렵고 멀게 느껴졌던 건 그의 억척스럽고 거친 서사도 그렇지만 그가 겪게 될 고문에 가까운 상황들과 죽음에 관한 공포 그리고 고문의 흔적들이었다. 앞서 영화 '한공주'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었던 이수진 감독과 천우희는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사이"라 '청테이프에뜯겨 사라진 눈썹'이라는 지문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단 한 줄의 지문에서도 '두려울 거리'가 많았다는 말이었다.

"분명 감독님 성격상 특수분장이나 CG는 안 할 텐데! 감독님께 '이거 어떻게 하실 거예요?'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눈썹은 밀어도 다시나'라고 하시는 거예요. 하하하. 제가 겁먹으니까 감독님 딴에는 저를 꾄다고 '야, 이 캐릭터 다른 여배우 주면 배 아프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맞는 말이긴 한데 저는 또 자신 있었죠. '감독님, 여배우들이 탐내긴 해도 선뜻 한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요?' "

천우희의 예상이 맞았는지 빗맞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련화의 운명은 역시나 천우희였다. 한석규, 설경구까지 캐스팅을 다 마치고 또다시 '우상' 캐스팅 제안이 돌아왔을 때 천우희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천우희와 이수진 감독은 서로에 대한 남다른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열정이 빚은 '한공주'로 천우희는 그해 신인상은 물론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까지 받으며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됐고, 이수진 감독 역시 작품성을 인정받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이름을 알려왔다.

"저는 이수진 감독님에 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한공주'를 찍고 많은 작품을 해왔잖아요. '감독님 어때요? 저 잘 컸죠?'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거 같아요. '한공주' 때보다 더 잘하는 배우가 되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감독님께서 제게 이 작품, 최련화를 어떻게 입혀줄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영화 '우상'에서 조선족 여인 최련화를 연기한 천우희[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한공주'를 비롯해 '카트' '해어화' '곡성' '어느날' 등에 이르기까지 꼿꼿하고 당차게 걸어온 천우희. 자신의 성장을 증명하고 싶었다는 그에게 "감독님께 잘 컸다는 걸 보여주었냐"고 묻자 그는 멋쩍은 듯 웃기만 했다.

"그걸 보여주려고 더 열심히 했는데. 이따금 외부적 요인 때문에 몰입할 수 없는 순간이 있었어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루가 지나면 그 신은 끝나버리잖아요. '아! 난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런 아쉬움이 남았어요. 모든 연기가 만족스러울 수 없지만 이번 작품은 특히 더 그랬던 거 같아요."

결과물은 언제나 정교하고 촘촘 하나 그 과정은 집요하고 지독한 것으로 유명한 이수진 감독. "'한공주' 때 이미 당할 대로 당해봐서" 또 찍고 또 찍어도 쉬이 지치지 않았다는 천우희는 오히려 이수진 감독의 집요하고 치밀한 성격이 '찰떡' 같이 맞았다고.

"저는 집요하게 굴수록 더 발동 걸리는 타입이에요. 돌이켜보면 유난히 집요한 감독님들과 많이 만났거든요. 특화가 되어있다고 할까요? 밀어붙이면 더 잘해내고 싶어요. 일례로 제 첫 등장이 CCTV신이었는데 겁에 질린 련화가 산에서 뛰쳐내려오는 장면이었거든요. 그 장면만 4~50번을 찍었어요. 다들 '괜찮나' 하고 걱정하는데 저는 이상하게 신이 나는 거예요. 몸이 풀리는 느낌? 련화로서 연기하는데 정신이 맑아지고 몰입해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아, 나도 참 만만치 않은 애구나. 하하하."

역할에 푹 빠졌다가 쉬이 털고 나오는 편이었지만 련화만큼은 달랐다. 눈썹을 밀어버렸기 때문이었을까? 련화가 천우희에게 남긴 자국은 꽤나 깊었다. 그는 눈썹이 자라는 시간만큼 칩거 생활을 하며 캐릭터와 멀어지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7개월 찍었으니 7개월 쉬어야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지난해는 작품 활동을 안 했어요. 이 작품이 힘들기도 했지만 (김)주혁 선배를 잃고 의욕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제겐 너무 큰 일이었어요. 배우로서 영혼을 불태워 가며 일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나 자신이 하찮다는 생각도 들고. 연기를 하면서 한 번도 흥미를 잃은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아무런 여력이 없더라고요."

영화 '우상'에서 조선족 여인 최련화를 연기한 천우희[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우상'과 최련화 그리고 김주혁을 떠나보내고 천우희는 조금씩 '회복' 하고 있는 단계다. 그의 차기작은 영화 '버티고'와 드라마 '멜로가 체질',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고.

"'버티고'는 엄청나게 자기 감상적이고 위안적인 작품이에요. 시나리오를 보고 엄청나게 울었어요. 다른 분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지 몰라도 저는 '아, 이걸 연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잘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걸 부끄러워했었던 거 같아요. 부끄러움과 경계를 버리고 이기적으로 연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천만 감독 이병헌 감독의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로 무거운 모습을 벗고 가볍고, 말랑말랑한 모습도 선보이게 됐다.

"다른 방식의 작업이 될 거 같아요. 작품을 할 때마다 방법을 바꿔 보는데 이병헌 감독님은 색깔이 분명하시니까. 최대한 현장이나 감독님 함께 하는 배우들에 따라서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도록 유연하게 있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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