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부자가 세금 더 내라"… 부유세 도입 현실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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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득균 기자
입력 2019-03-2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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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들 "국민적 공감대 되짚어 봐야"… 정부는 '신중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자유한국당 이종배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최모씨(52)는 이른바 부자 증세인 '부유세' 도입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우리 사회에 극심한 혼란을 일으키는 요즘. 복지 확대를 위해 최상위 부자들에게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서울 강남에 살고 있는 직장인 강모씨(42)는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에 대해선 일부 찬성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부자에게 추가로 세금을 매기는 부유세 논쟁이 불붙고 있다. 경제적 계층별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다. 이는 부(富)의 양극화에 대한 사회적 문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낸다.

부유세는 일정액 이상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비례적 또는 누진적으로 과세하는 세금이다. 소위 많은 재산을 가진 특정 계층이 부과 대상이다. 따라서 조세저항이 거셀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양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재산의 해외 도피 △기업의 투자의욕 상실 △이중과세의 이유로 도입을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국내 상황이 이렇다면, 부유세 도입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부유세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국내 경제 상황상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 부유세 도입 신중론과 맥(脈)이 같았다. 

◆"현실 수용 가능성·국민 공감대 되짚어 봐야"

동국대 K교수는 "우선 우리나라 소득 불평등이 가져온 요인은 근로소득 집중도보다 비근로소득 집중도가 좀 더 빨리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돈이 돈을 버는 속도(자본 증가율)가 노동으로 돈을 버는 속도(소득 증가율)보다 빠르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크게 앞지르면서 빈부 격차가 확대됐다.

K교수는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율만 올리는 부자증세는 소득계층 간 사회적 갈등을 확대시킬 수 있다"면서 "이미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 80%가량을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득 불평등은 단순히 부자 증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부유세가 도입되면 상위계층이 해외로 나가버릴 수 있다"며 "일부 상위계층에 부담을 몰아준다고 해서 불평등이 해소되고 복지 재원이 마련되는 게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즉 부자들에 대한 높은 세금은 경제 성장을 억누르고 자본 유출로 이어져 결국 상대적으로 세수 증대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영국은 유명 영화배우들에게, 스웨덴은 테니스 스타들에게 70~80%에 가까운 부유세를 징수한 전례가 있다. 이에 대한 납세자들 반발은 자국 부유세를 피하기 위한 국적 이동이었다.

중앙대 S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가장 높은 자살률 같은 사회적 재난 원인이 불평등"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 급증으로 불평등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이 때문에 불평등에 대응하는 정책을 마련하려면 △불평등 완화에 효과적이고 바람직한가 △정치적 지지와 리더십,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해 실현 가능한가 △사회경제적 조건과 조화를 이뤄 지속 가능한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사례를 보면 △북유럽 및 룩셈부르크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 부유세를 도입했다. 반면 △일본 △아일랜드 △덴마크 △네덜란드는 과거에 시행했다가 실효성이 낮다는 이유로 폐지한 상태다. 결과적으로 부유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수용 가능성과 국민적 공감대 등 여러 요소를 모두 짚어봐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세계 곳곳 부유세 논쟁… 韓 정부는 '신중론'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도 부유세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부자 증세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프랑스 곳곳에선 '노란조끼' 시위대가 대규모 집회를 열고 부유세 부활과 서민복지 추가대책을 요구했다.

정치권은 물론 경제계에서도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옹호론이 제기된 것이다. 부유세 요구가 커지는 건 무엇보다도 경제적 불평등이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미국 상위 1% 가정의 세금부담은 재산의 3.2%에 그치지만 하위 99%의 세금부담은 7.2%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이 부유세를 도입할 경우 △프랑스 △노르웨이 △스페인 △스위스에 이어 다섯 번째로 부유세를 도입한 국가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불평등과 양극화는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라며 부유세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유승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우리나라 복지 예산은 190조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절반에 불과한데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복지 지출을 두 배 확대해야 한다"면서 부유세 도입을 포함한 부자 증세를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상위층을 겨냥한 약간의 '핀셋 증세' 시도는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조세 구조를 어떻게 개혁할지 등 세금 관련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낙연 총리는 양극화 심각성을 인정했지만 부자 증세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이 총리는 지난 21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재작년에 최고 소득세를 43%로 올렸다"면서 "그게 불과 1~2년 전이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현실성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홍 부총리는 "부유세는 해외에서 채택한 국가도 있고 도입했다가 문제가 있어 철회한 국가도 있다"며 "우리 경제 현실에서 (부유세가) 작동하려면 국민적 공감대 등 여러 요소를 모두 짚어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는 "부유세를 도입하면 부유세가 없는 나라로 자본유출이 심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옛날 얘기"라면서 "국가는 돈이 돌도록 하되 시장 질서를 공정하게 하고 참여 기회를 균등하게 함으로써 그 과실을 공평하게 세금으로 거두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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