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샘의 시샘]화살나무 - 박남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19-02-11 11:2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그리움이란 저렇게 제 몸의 살을 낱낱이 찢어
갈기 세운 채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그대의 품 안 붉은 과녁을 향해 꽂혀 들고 싶은 것이다
화살나무,
온몸이 화살이 되었으나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있다


                                             화살나무-박남준


화살은 원래 날아가야 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나무가 화살의 모양을 입고 있으니, 세상 답답한 노릇이다. 하늘을 비상하고 싶었던 꿈은 땅바닥 아래에 뿌리 박힌 몸 때문에 늘 여의치 못했으나, 마음은 여전히 화살인지라 붉으락푸르락 날개를 돋운다.

세상의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 사람은 고슴도치처럼 된다. 등에 수많은 화살을 꽂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자동차에 올라타거나 분노에 찬 표정으로 회전문 속으로 들어간다. 대개 화살은 입에서 튀어나오지만, 가끔 눈에서도 나오고 손가락 끝이나 주먹에서도 나온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거대한 화살통이다. 온몸이 화살인 나무이다. 분노의 활에 걸려 탄력을 받는 순간 살의(殺意)를 집행하려 한다. 최근 여론의 비난 화살 속에 꽂히거나 법의 화살에 꽂혀 화살나무가 된 이들이 있다. 어떤 이는 화살을 꽂은 쪽을 향해 다시 화살을 쏘기도 한다.

하지만 이름만 살벌할 뿐, 자연 속의 화살나무는 아름답다. 지느러미를 단 가지에서 붕어눈 같은 싹눈을 슴벅이는 모습도 아름답고, 초록저고리를 살랑거릴 때의 귀여움과 피처럼 붉은 치마를 갈아입을 때의 농염과 루비 몇 알로 사치를 부릴 때의 중년도 모두 아름답다. 한때는 제 몸이 모두 바람이 나서 어디론가 꽂히고 싶었던 영혼이었고, 또 어느 때는 세상의 화살들이 모두 제 몸에 꽂혀 쩔쩔 매던 생이었다. 인간이나 나무나 다 한 촉의 화살이다. 결국 깨달음의 살점 속으로 뼈아픈 화살 한 촉도 꽂지 못한 채, 인생 화살처럼 지나간다. 

                                      이빈섬(시인·이상국 논설실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