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설 연휴마저 망친 '얌체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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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미 기자
입력 2019-02-0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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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은 기분이죠. 설 연휴 닥쳐서야 악재를 공시했어요."

일진기업은 이번 연휴 직전인 이달 1일 2018년 실적을 내놓았다. 순손실이 143억원으로 1년 전보다 7배 가까이 불어났다. 율촌화학도 비슷했다. 같은 날 반토막으로 줄어든 영업이익을 발표했다. 한탑은 적자로 돌아선 사실을 알렸고, 메디포스트는 한술 더 떠 폐장 후에야 악재를 공시했다. 메디포스트는 뒤늦게 화장품 사업부 일체를 양도한다고 밝히는 바람에 주식거래정지까지 당했다.

설 연휴를 이런 '얌체공시' 탓에 망친 투자자가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주가에 불리한 악재를 관심이 느슨해지는 시기에 밝히는 행위를 얌체공시라 불러왔다.

얌체공시는 줄기차게 비난을 받아왔지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당하는 쪽은 늘 투자자다. 공시만 제때 해줘도 손실이 커지기 전에 주식을 팔 수 있다.

금융당국이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뚜렷한 지연공시에 대해서는 제재금을 부과하고 있다. 벌점이 15점을 넘어서면 상장폐지 심사대상에도 오른다.

문제는 너무나 큰 사각지대다. 얌체공시 자체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자백하지 않는다면 악의적으로 늦게 알렸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한국거래소는 2006년 얌체공시를 줄이려고 공시 운영시간을 단축하기도 했다. 평일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이던 공시시간을 3시간 줄여 오후 6시 마감으로 바꾸었다. 이뿐 아니라 토요일은 아예 공시서류를 낼 수 없게 막았다.

부족한 대책이다. 주식시장은 오후 3시 30분이면 폐장한다. 이때부터 오후 6시까지 쏟아지는 악재에는 대책이 없다. 실제로 이런 시간대에 나쁜 소식을 담은 공시가 줄지어 올라온다. 아직까지는 상장사가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얌체공시는 직접 관련돼 있는 투자자만 다치게 하지 않는다. 주식시장 자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외국인 투자자는 올해 들어 코스피 주식을 4조3000억원 넘게 사들였다. 반대로 개인 투자자는 3조3000억원 이상 순매도했다. '바이 코리아' 덕에 랠리가 펼쳐져도 개인 투자자는 주식시장을 믿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무리 어려워도 당국이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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