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 이재용-최태원의 제로섬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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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익 IT과학부 부장
입력 2018-09-1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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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5G 장비선정, 미국배를 탔다..뱃값은 누가 내는가



A와 B가 제로섬 게임을 한다. 조직의 리더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A를 도우면 파벌을 만드는 것이다. A와 B를 똑같이 도우면 결과적으론 아무것도 안 한 게 된다. 전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니 사악하다. 후자는 착한 리더처럼 보이지만 무용하다. 위선이다. 그들은 네트워크를 밖으로 확장해 파이를 키우는 데 힘쓰지 않는다. 조직 내 제로섬 게임의 조정자 역할을 성과로 치장하는 데 몰두한다. 조직의 운명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5G(세대) 이동통신 상용화를 위한 장비 선정 작업이 시작됐다. SK텔레콤이 지난 14일 삼성전자와 에릭슨·노키아를 파트너로 낙점했다.

5G 장비 선정은 제로섬 게임이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3사의 초기 망 구축 비용은 총 20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와 에릭슨·노키아·화웨이 등 글로벌 장비업체들이 파이를 나누는 셈이다.

업체들 국적이 다르다. 조직 간 제로섬 게임이다. 정부가 삼성전자를 지원하는 게 우리에게 이익이다. 국수주의란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미국 트럼프 정부 수립 후 전 세계가 앞다퉈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추세다. 무역은 쌍방간 거래다. 안 하면 우리만 손해다.

다른 차원의 제로섬 게임이 있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 간의 게임이다. SK텔레콤은 화웨이를 선택할 경우 최대 5조원가량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SK텔레콤이 통신 시장의 50%를 점하고 화웨이 장비가가 삼성전자보다 최대 50% 저렴하다는 전제 아래서다. 4G(LTE)와의 연동과 유지·보수 비용 등을 고려하면 실제 액수는 이보다 훨씬 적다고 한다. 절대액수는 무의미하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가 5조원 규모의 파이를 놓고 게임을 하는 것이다. 화웨이 장비를 쓰는 만큼 SK텔레콤 파이가 더 커지는 셈이다. 조직 내 게임이 된다.

정부의 개입은 리더의 역할에 따라 누가 더 많은 파이조각을 갖느냐의 문제와 같다.

정부가 SK텔레콤이나 삼성전자 중 어느 하나를 지원하면 정부와 업체 간 파벌을 만드는 것이다. 정경유착이다. 둘을 똑같이 지원하면 헛수고다. 아무것도 안 한 게 된다.  

SK텔레콤이 삼성전자를 낙점하면서 5조원 규모의 파이는 모두 삼성전자의 차지가 됐다. 게임 당사자인 SK텔레콤이 왜 이 같은 선택을 했을까.

SK텔레콤은 LTE와의 연동성을 주된 이유로 든다. 서울·수도권 지역에서 삼성전자의 LTE 장비를 쓰고 있어 5G도 삼성전자 장비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장비 호환, 유지·보수 등의 비용을 따져 보니 파이 크기가 5조원보다 훨씬 작다는 얘기다. 포도를 뺏기고 너무 시어서 먹지 않았다는 여우와 같다.

미국이 제기한 화웨이 장비의 보안 문제는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니었다는 게 SK텔레콤의 설명이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현실 문제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우리가 어떤 배를 타느냐의 선택이다. 어불성설이다. 글로벌 기업이 이 문제를 계산하지 않았다면 위험하다. 현실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게 설득력이 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5G 상용화는 국산 장비로 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수차례 했었다. 구두 개입이다. 유 장관은 최태원 SK 회장 파이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준 셈이다. 파이 크기는 단 1원도 늘지 않았다.
 
 

결국 파이 값을 누가 치르느냐가 문제다. 상품과 서비스 가격은 비용에 적정이익을 더한 값으로 정해진다. 비용이 커지면 가격은 필연적으로 오른다. 아니면 이익을 줄여야 한다. 5조원의 비용은 결국 SK텔레콤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부담한다. 정부가 압박하면 SK텔레콤이 이익을 포기하는 수도 있다.

이 게임에서 정부의 올바른 역할은 무엇일까. 네트워크를 밖으로 확장해 파이를 키워야 한다. 유 장관이 할 일은 삼성전자가 가격 경쟁력을 키우도록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것이다. SK텔레콤의 선택으로 우리는 사실상 미국 진영의 배를 탔다. 미국과 호주·인도는 공식적으로 5G에서 화웨이 장비를 배제했다. 최근 삼성전자가 버라이즌과 AT&T 등 미국 업체들의 5G 장비업체로 선정되고 인도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선 건 그나마 줄타기의 성과다.

화웨이가 협상 과정에서 가격을 더 낮추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파이를 5조원이 아니라 6조원, 7조원이 되게 하는 것이다. 통상 외교는 의리가 아니라 실리의 문제다. 동맹 문제도 비용으로 따지는 게 정작 트럼프 정부다. 우리도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중국 배로 갈아탈 수 있다. 시기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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