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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일념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입력 : 2018-09-17 04:01수정 : 2018-09-17 04:01
요가수트라I.32

배철현 교수(서울대 종교학)


명중
내가 올림픽 경기들 중에서 가장 숨죽여 보는 경기는 양궁이다. 양궁 선수는 바닥에 표시된 선 밖에 가지런히 발을 놓고 몸을 비스듬히 놓고 가만히 과녁을 응시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난 4년 동안 매일 매일 연습한 활시위에 화살을 올려놓는다.

왼손으로는 활을 잡고 오른손은 시위와 그 위에 장착된 활을 어깨와 팔, 아니 온몸을 이용하여 뒤틀며 힘껏 뒤로 당긴다. 왼손은 거의 부러질 정도까지 휘어지는 활을 잡고 있지만, 그 힘이 부쳐 떨면 안 된다. 강력하지만 부동의 힘으로 미세하지만 폭력적으로 흔들리는 활을 역설적으로 고요하게 잡고 있어야 한다. 그에 걸맞게 힘으로 오른손과 손가락도 조화롭게 버텨줘야 한다. 눈은 과녁의 정중앙에 고정되어있다. 가파르던 숨도 고르게 되어 잔잔해진다. 겉보기에는 움직임이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미세한 숨이 천지진동하고 있다. 시위를 떠난 활이 과녁의 정중앙으로 쏜살처럼 달려간다.

대한민국의 신궁(神弓) 김수녕 선수는 바람과 비와 같은 외부상황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의 반복 훈련으로 비바람조차 다스리는 자신만의 비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과녁을 향해 달려가는 화살과 같은 일관된 마음인 심지(心志)를 거역할 수 있는 장애물은 없다.

아르주나의 심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활 연습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스승인 드로나(Drona)는 영웅 아르주나(Arjuna)와 그의 다른 네 형제에게 궁술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나무로 제작한 작은 새를 높은 나무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화살로 떨어뜨리라고 말한다.

드로나는 활을 쏘기 전에 다섯 명에게 묻는다. “무엇을 너는 보는가?” 형제들은 각각 나무의 웅장함. 가지의 풍성함, 자신과 나무와의 거리, 활과 화살의 견고함, 자신의 몸 상태, 새의 모양 등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드로나는 마지막으로 아르주나에게 질문한다. 그러자 아르주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는 새를 봅니다.” 그러자 아르주나가 다시 묻는다. “그러면 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묘사해보아라!” 그러자 아르주나는 “저는 새의 모양을 묘사할 수 없습니다. 저는 새의 눈만 보기 때문입니다.” 아르주나의 화살은 여지없이 새의 눈에 명중하였다.

아르주나는 온통 새의 눈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집중(集中)이라 부른다. 아르주마의 형제들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아직 찾지 못했거나 그것에 자신의 시선을 집중하는 수련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간과한다. 자신들의 마음을 한 군데 모으지 못하고 여러 군데 흩어버리면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나의 눈은 외부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매 순간 나를 유혹하는 흥미롭고 오감을 직접 자극하는 매력적인 물건들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활과 화살의 성능, 화를 잘 당기기 위한 기능성 옷들과 신발, 날씨, 그리고 함께 활을 쏘려는 형제들 이 모두가 아르주나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들이다. 그의 마음은 오랜 수련을 통해 이것들이 더 이상 방해물이 아니라 무시해도 되는 대상이 되었다.

'바가바드기타' II.41에는 아르주나의 마음을 크리슈나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오 쿠루의 자손(아르주나)여! 이 한 가지 길 위에 있는 자의 생각은 단호하다. 그의 목적은 하나다. 그러나 단호하지 못한 자의 생각은 잡스럽고 끝이 없다.”

연습
파탄잘리는 신을 만나 신과 하나가 되는 방법으로 오랜 기간에 걸친 반복인 ‘자파(japa)'를 소개하였다. 요가수련자는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자신의 정성을 바쳐 수련해야 한다. 그는 '요가수트라 I.32'에서 수련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타트-프라테세다-아르쌈 에카-타트바-아비야사흐(tat pratiṣedha artham eka tattva abhyāsaḥ)"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은 의미다. “(요가수련을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다양한 수련방법들 중에) 한 가지 원칙(을 선택하여 그것을 완벽하게) 연습해야한다.” 이 문장은 수련자를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한 실질적인 두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하나는 ‘한 가지 원칙’을 발견하여 고수하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매일 매일 ‘연습’하는 인내다.

연습이란 산스크리트어 ‘아브야사(abhyāsa)'는 세 개의 요소로 구성되었다. 첫 부분인 접두어 ‘아비(abhi)'는 ‘-을 향하여’라는 전치사적 의미도 있고 ‘매우 잘; 훌륭하게’라는 부사적 의미도 있다. 아비는 수련자가 무엇인가를 지향하여 급기야는 한 분야에서 최선의 성과를 도출하는 수준에 도달하는 과정을 뜻하는 접두어다.

두 번째 부분인 ‘아스(ās)'라는 동사는 ‘자리를 잡다; 앉다’라는 의미다. 내가 어딘가에 앉기 위해서는 그 바닥에 평평하고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부드럽지도 않아야한다. 내가 앉을 장소에는 외풍이 없어 오랫동안 앉을 수 있어야한다. 세 번째 부분인 접미사 ‘아’는 앞에 나온 동사를 명사로 전환하는 접사다. 이 세 단어가 합쳐진 ‘아브야사’의 축자적인 의미는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편하고 효율적인 자세로 자리를 잡아 준비하는 마음’이다.

연습은 실전이며 실전이 연습이다. 연습의 과정 안에 실전이 있다. 연습과 실전을 구별하는 사람은 실패한다. 평상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최적의 결과까지 올린 그 연습이 실전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그(녀)는 평상시 연습을 게을리 했거나 연습과 실전을 구별하여 실전에 임했을 때 심리적으로 당황하기 때문이다. 연습은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는 훈련이다. 예를 들어가 태권도 검은 띠가 상징하는 실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흰 띠 과정을 충실하게 받아야한다. 왜냐하면 흰 띠는 검은 띠로 가는 과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흰 띠 없이 검은 띠는 존재할 수 없다.
 

'당당한 궁술애호가' 영국화가 스펜서 고어 (1878-1914) 1872, 유화 영국 왕립 알버트 기념 미술관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하나의 원칙’
우리는 무엇을 연습해야 하는가? 파탄잘리는 그 연습의 대상을 산스크리트어로 ‘에카-타트바’란 문구를 이용하여 표현하였다. 이 문구의 첫 단어인 ‘하나’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 단어 ‘에카’는 인간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원론적인 구조 이전의 원래 모습이다.

하나를 통해 둘이 등장한다. 파탄잘리와 동시대 인물인 그리스 철학자인 플로티누스(204-270년)는 만물의 기원은 하나이며 현실은 하나에서 흘러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최고의 현실이자 우주의 기반이 되는 제1원칙을 고대 그리스어로 ‘토 헨(to hen)', 즉 ‘그 하나’라고 정의했다. 그 하나는 영원히 완벽하고 영원히 생산적으로 우주의 기반은 ‘이성’을 낳았다. 요가수련자는 실질적인 수련을 위해 자신에게 훌륭한 수련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이 문구의 두 번째 단어인 ‘타트바’는 축자적으로 ‘그것 자체’란 의미다. 그것 자체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본질이자 현상이다. 어떤 사건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어떤 현상의 원인이자 결과다. 타트바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추상적인 개념인 ‘진리’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원칙의 가감이 없는 표현이다. 원칙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찬도가 우파니샤드 6.8.7'의 말미에 현인 우달라카와 그의 아들 슈베타케두의 대화가 등장한다. 우달라카는 오랫동안 경전공부에 몰두한 아들이 대견스럽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힌두경전을 암송하며 자신의 지식을 전시하였다. 아버지는 배움의 목적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자신의 ‘자기됨’을 발견하는 수련이란 사실을 알고 싶었다.

현인 우달라카가 말한다. “타트 트밤 아시(tat tvam asi)!” 이 문장의 의미는 “그것은 (바로) 너다!”이다. 아들 슈베타케투가 오랫동안 수련한 목적은 결국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다. 인간에게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알려줄 열쇠는 자신의 마음이라는 자물통 안에 숨겨져 있다. 요가수련은 그 자물통을 열 열쇠를 만드는 작업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에게 던져진 인생이란 ‘거대한 질문지’를 들여다보지 않는 자다. 그의 시선은 타인에게 가 있다. 그는 자신 존재이유를 질문해 본 적이 없다. 혹은 그 이유를 곁눈질하여 옆에 있는 사람을 통해 찾는 자다. 보통 사람은 자신의 존재이유와 목적을 어렴풋이 알지만 그것을 위해 매일 매일 수련할 의지와 인내가 부족하다.

요가수련자에겐 자신에게 유일한 삶의 목표가 있다. 그 원칙은 ‘타트바’는 결국 ‘나에게 감동적인 내 자신’이다. 나는 그 ‘내 자신’을 매일 매일 혁신하여 새롭게 선정하고 하루라는 시간 동안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수련한다. 나는 그런 나를 만들기 위해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연습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삶을 이끌어줄 나만의 삶의 원칙을 소유하고 있는가? 그 원칙은 바로 내 마음속 깊이 숨어 있어 나의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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