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돌 깨는 노동에 웬 살인미소?"..2018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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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 기자
입력 2018-09-1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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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

  • -9월 7일부터 11월 11일까지 66일 동안 전시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남자가 여자의 옷깃을 여며주는 다정한 모습을 보인다. 어린 소녀는 바위를 깨는 일을 하면서도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다소 상황과 맞지 않는 표정들이 북한 미술의 한 특징이다.

[2018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청년돌격대']


'2018광주비엔날레'의 7개 주제전 중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North Korean Art: Paradoxical Realism)전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북한 미술전에서 북경 만수대창작사미술관장 소장품 15점, 국내 개인 및 미술관 소장 3점, 그리고 워싱턴 예도예술재단(Yedo Arts Foundation)에서 소품 4점 등 대형 집체화 6점을 포함한 북한 조선화 22점이 설치됐다.

윤건, 왕광국, 남성일, 정별, 김현욱, 백일광, 림주성 등 7명의 작가가 참여한 가로 5.2m 세로 2.1m 대형 회화 '청년 돌격대'는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문범강 큐레이터가 '2018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 전에서 '청년돌격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북한 작품에는 한국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연극적인 요소들이 있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남자가 여자의 옷깃을 여며주는 다정한 모습, 손에 붕대를 감고 아픔 속에서도 작업하는 모습, 심지어는 여린 소녀가 곡괭이로 바위를 깨면서 연신 환한 미소를 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문범강 큐레이터는 7일 "북한 작품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볼 수 있다" 며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1995년부터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것을 거치면서 많은 아사자가 나오고 생활이 피폐했는데, 그 당시에 김정일 위원장이 '이렇게 힘들더라고 웃으면서 가자'하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그것이 미술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가진 사람들의 심성이라고 문 큐레이터는 분석했다.

"북한이 아무리 힘든 환경에 속에 있을 때도 높은 자존심, 자긍심 내지 존엄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북한 작가들이 작업하는 자세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여성의 우아한 면모를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모습을 작품 곳곳에서 발견 할 수 있다.

[문범강 큐레이터가 '2018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 전에서 '평양성 싸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평양성 탈환을 다룬 '평양성 싸움' 작품에서도 이런 양상은 나타난다.

작품 중앙에는 역사적 실존 인물인 사명당 대사가 불장을 움켜잡고 왜군을 노려보고 있으며, 그 옆에는 미소를 머금고 우아한 동작의 칼질로 왜군을 격살하는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문범강 큐레이터 "여성이 전쟁터에서 왜군을 살육하는 장면이다. 모든 액션은 상당히 액티브하게 돼 있지만 표정은 상황과 반대이다" 며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이라도 찡그린다던가 어느 정도 험악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있는 것이 북한의 고유한 표현법이다"고 강조했다.

어떤 상황이라도 존엄성, 단아함, 내적인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상황과 전혀 다른 모습을 그리게 된다. 많은 작품에서 이런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배경에 유교가 있다. 한국과 발상지인 중국에서 많이 퇴색된 유교는 북한에서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외교적인 처지에서 보면 어려운 상태에서도 생떼를 쓰고 그러는데, 그것도 유교의 영향이다. 미술에서는 이렇게 표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범강 큐레이터가 '2018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 전에서 '소나기'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소나기가 오는 거리를 화폭에 담은 김인석 작가의 '소나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숨어 있다. 작품의 왼쪽, 중앙, 오른쪽 등 세 부분에는 종이를 이어붙인 자국이 있다.

이는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구도가 마음에 안 든 작가가 왼쪽과 오른쪽의 그림을 잘라내고 종이를 이어서 다시 그린 것이다. 왼쪽 그림에는 원래 여성이 혼자 있었는데, 지금은 남자친구인듯한 사람이 같이 나타나 있다.

문범강 큐레이터는 "김인석 작가는 만수대 창작소에 계신 분이고 제가 수년 동안 계속 교류를 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목탄 스케치 상태에서부터 완성되기까지 계속 지켜볼 수 있었다" 며 "북한의 작가들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수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18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 전에 전시된 리재현·정현웅 작가 작품]


북한의 문인화 맥이 끊겼다고 알려졌지만, 이번 전시에서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북한 미술사학자인 운봉 리재현 작가의 글과 정현웅 작가의 그림으로 된 문인화가 전시된 것이다.

['2018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 전에 전시된 정현만 작가의 '금강산' ]


금강산을 그린 스승과 제자의 산수화도 나란히 전시됐다.

스승인 정현만 작가의 '금강산'은 운무에 가린 금강산의 표현이 너무나 유려하고 독특하다. 반면 제자인 최창호 작가의 '금강산'은 호랑이 같은 기백과 산세의 표현이 동양화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섬세하다.

문 큐레이터는 "북한의 미술은 천편일률적이라고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산수화의 발전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며 "정영만이 살이 있을 때 자기 제자한테 '너는 남들과 같은 작품을 그리지 마라, 너의 개성을 살려라'고 말하곤 했다"고 강조했다.

['2018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 전에 전시된 최창호 작가의 '금강산']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위적인 현대미술 축제인 '2018광주비엔날레'는 43개 나라에서 165명의 작가가 참여해 9월 7일부터 11월 11일까지 66일 동안 광주비엔날레전시관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300여 점을 선보인다.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을 주제로 한 '2018광주비엔날레'는 개발·냉전·분단·난민·격차·이주 등 묵직한 성찰과 비판 메시지를 11명(팀)의 다수 큐레이터들이 7개의 주제전과 광주의 역사와 정신을 시각문화로 승화·확장하는 GB커미션, 해외 유수 문화기관의 기획전으로 펼쳐지는 위성프로젝트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로 구성됐다.

11명(팀)의 큐레이터는 ▶클라라 킴(Clara Kim)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 ▶그리티야 가위웡(Gridthiya Gaweewong) 짐 톰슨 아트센터 예술감독 ▶크리스틴 Y. 김(Christine Y. Kim) LA카운티미술관 큐레이터 ▶리타 곤잘레스(Rita Gonzalez) LA카운티미술관 큐레이터 ▶데이비드 테(David Teh) 싱가포르국립대학 교수 ▶정연심 홍익대학교 교수 ▶이완 쿤(Yeewan Koon) 홍콩대학교 교수 ▶김만석 독립큐레이터 겸 공간 힘 아키비스트 ▶김성우 아마도 예술공간 큐레이터 ▶백종옥 독립큐레이터 겸 미술생태연구소 소장 ▶문범강(B.G. Muhn)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겸 작가 등이다.

7개의 주제 전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리는 ▶클라라 킴의 '상상된 국가들/ 모던 유토피아'(Imagined Nations/Modern Utopias) ▶그리티야 가위웡의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Facing Phantom Borders) ▶크리스틴 Y. 김&리타 곤잘레스의 '종말들: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정치'(The Ends: The Politics of Participation in the Post-Internet Age) ▶데이비드 테의 '귀환'(Returns) 등이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서 열리는 주제 전은 ▶정연심&이완 쿤의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Faultlines) ▶김만석&김성우&백종옥의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The Art of Survival: Assembly, Sustainability, Shift) ▶문범강의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North Korean Art: Paradoxical Realism)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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