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中 재계, 정치 바람에 '몸살'…민영기업 서열 지각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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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8-09-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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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난항공·화신 추락, 지리·푸싱 상승

  • 시진핑 체제 부패·권력유착 기업 철퇴

  • 내수중심경제 재편, 유통 등 약진 눈길

[그래픽=이재호 기자 ]


중국 재계가 급격한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부패 혐의 등으로 정권의 타깃이 된 기업들이 대거 몰락한 반면 시진핑 체제에서 '관시(關係)' 구축에 성공한 기업은 승승장구를 거듭하면서 재계 서열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내수 확대와 서비스업 발전 등 산업 지형도 변화에 따른 유통·금융 분야 기업들의 약진도 주목할 만하다.

◆민영기업 서열 급변…톱10 중 3곳 퇴출

지난달 29일 중국 전국공상업연합회(CPIC)가 발표한 '2018 중국 500대 민영기업 명단'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선정한 순위에서 화웨이는 6036억 위안(약 98조원)을 기록해 1위에 올랐다. 3년 연속 1위를 질주 중이다.

글로벌 최대의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화웨이는 5G(세대) 이동통신 시장을 주도하며,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애플을 누르고 2위로 올라선 뒤 삼성전자를 맹추격하고 있다. 중국의 정보기술(IT) 산업 굴기를 상징하는 대표 주자다.

법인세 납부액은 710억 위안(약 11조5000억원)에 달한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미워할 수 없는 효자 기업이다.

가전 유통기업인 쑤닝과 구리 기업인 정웨이그룹이 각각 2~3위를 차지했다. 이어 징둥과 산둥웨이차오, 롄샹(레노버), 헝다그룹, 궈메이, 헝리그룹, 다상그룹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하이난항공(4위)과 화신에너지(7위)는 올해 명단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기업 모두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정경 유착 논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따른 부채 급증 등으로 철퇴를 맞았다.

중국 4대 항공사 중 하나인 하이난항공은 지난해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부주석과의 연루설이 불거진 데 이어 자금난까지 겹치면서 궁지에 몰렸다.

지난 7월에는 왕젠(王健) 회장이 프랑스에서 사고로 사망하기도 했다. 현재 부채 감축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경영 정상화까지 얼마나 걸릴 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최대 민영 에너지 기업인 화신에너지는 경영 부실 심화로 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 자제)과의 연루설, 부패 혐의 등에 휩싸인 예젠밍(葉簡明) 회장은 당국의 조사를 받은 뒤 경영권을 빼앗겼다.

중국 최대의 부동산 개발업체인 완다그룹도 순위가 지난해 9위에서 올해 17위로 급락했다. 왕젠린(王健林) 완다그룹 회장은 정권 실세를 뒷배로 두고 있다는 루머 때문에 홍역을 치른 이후 호텔·리조트 등 핵심 자산을 대거 매각하며 회사 살리기에 매진하고 있다.

중국 언론은 이들 기업이 과도한 부채에 의존한 경영 모델을 고수한 탓에 위기를 맞았다고 분석하지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눈 밖에 난 결과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지리자동차는 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 지분을 인수하는 등 적극적인 M&A를 통해 순위를 13위에서 11위로 끌어올렸다.

다임러 지분 인수 자금 90억 달러의 출처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리수푸(李書福) 지리자동차 회장과 시 주석의 인연으로 중국 당국이 지원에 나섰다는 설도 흘러나온다.

지리자동차는 시 주석이 저장성 서기 시절 처음으로 시찰한 민영기업이다. 리 회장은 올해 초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선출됐다.

이밖에 투자 전문기업인 푸싱 역시 지난해 179위에서 올해 49위로 수직 상승했다. 은행 신규 대출 금지 기업에 포함된 이후에도 추가 M&A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왕젠 전 하이난항공 회장(왼쪽부터)과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 예젠밍 전 화신에너지 회장. [사진=바이두 캡처 ]


◆뜨는 산업, 지는 산업 '변화' 확연

지난해 상위 10위권 가운데 유통 기업은 쑤닝과 전자상거래 업체인 징둥 등 2곳이었지만 올해는 궈메이와 다상그룹이 추가됐다.

궈메이는 가전제품 전문 유통 기업이며 다상그룹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 내수 시장과 민간 소비 확대가 가져온 변화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소비가 기여하는 비율은 이미 70%를 넘었다. 올해 상반기 기준 78.5%를 기록했다.

제조업 기반의 수출 기업 자리를 내수형 서비스 기업들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는 의미다.

보험 등 금융회사들도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 타이캉보험은 21위로 전년 대비 한 계단 올라섰고, 톈안생명보험은 127위에서 99위로 상승해 100위권에 진입했다.

서비스업으로 불리는 3차산업 분야 기업의 경영 실적은 꾸준히 향상되는 추세다. 500대 민영기업 중 3차산업 분야 기업은 2012년 117곳에서 지난해 162곳으로 38.46% 증가했다.

반면 제조업 등 2차산업 기업은 380곳에서 288곳으로 줄었다. 지난 3위에서 올해 5위로 떨어진 산둥웨이차오의 사례를 들여다볼 만하다.

1984년 산둥성 내 작은 방직 기업으로 출발한 산둥웨이차오는 섬유, 패션, 알루미늄 등 비철금속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해 왔다. 현재 발전소까지 운영하고 있다.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중국을 대표하는 민영기업으로 떠올랐지만 최근 들어 실적 하락세가 완연하다. 지난해 매출은 3595억 위안으로 전년보다 3.7% 감소했다.

주력 사업군이 사양산업으로 분류되는 시기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향후 산둥웨이차오의 경영 행보를 지켜보는 것으로 중국 내 전통 제조업의 반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법하다.

◆中 동부연안 지역 기업 강세 여전

500대 민영기업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은 저장성으로 93곳이 이름을 올렸다. 이어 장쑤성(86곳), 산둥성(73곳), 광둥성(60곳), 허베이성(24곳) 등의 순이었다. 베이징과 상하이 소재 기업은 각각 15곳과 18곳이 포함됐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중국 동부 연안 지역 기업들의 강세가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 정부가 중서부 육성에 주력하고 있지만 대형 민영기업의 출현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500대 기업의 총 매출액은 24조4793억 위안(약 3978조원), 평균 매출액은 489억5900만 위안(약 8조원)으로 집계됐다.

총 임직원 수는 950만8300명으로 전년 대비 7.05% 증가했다. 전체 직원 중 연구개발(R&D) 인력이 10% 이상인 기업은 189곳으로 조사됐고, 화웨이의 R&D 투자액이 896억9000만 위안(약 14조58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2위인 지리자동차(182억7000만 위안)보다 5배가량 높은 수치다.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관련된 기업은 181곳으로 전체의 44.7%에 달했다.

가장 큰 경영 애로사항으로는 '인건비 상승(61.4%·복수응답 기준)', '법인세 부담(54.8%)', '대출 규제 강화(50.8%)' 등이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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