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 文 정부 ‘1년 6개월의 법칙'에 주저앉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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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아주경제 논설고문
입력 2018-08-21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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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아주경제 논설고문 겸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와 관련해 1년 6개월의 법칙이란 게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국민의 권태감이 생겨나고 언론의 비판 수위가 높아진다. 이 시기에 경제에서 실적을 내주지 못할 경우 5년 단임 정부는 회복하기 어려운 내리막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3개월이 지나면서 고공비행을 하던 국정수행 지지도가 50%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의 2년차 1분기 지지율과 비교해 보면 노무현(25%)·이명박(33.5%)·박근혜(47%) 대통령보다는 훨씬 높고 김영삼(55%)·김대중(59.6%)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작년 31만명이던 월평균 취업자 수가 지난달 5000명으로 급락하는 고용 재난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민심은 싸늘하게 돌아설 것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도면밀한 대비 없이 밀어붙인 주 52시간 근로제가 고용 재난을 부른 근본적 원인이다. 지금에 와서도 이것을 부인한다면 재난을 부른 정책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이념형 정책의 그늘에서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경비 및 시설관리 등 분야에서 서민 일자리 18만개가 날아갔다. 최저임금을 2년 만에 29.1%나 올리니 가뜩이나 취약한 자영업이 무슨 수로 버티나. 내가 가끔 들르는 커피 가게 주인은 “손님이 적은 시간에는 알바 인건비도 안 나오는 판이라 아예 문을 일찍 닫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도덕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고, 소득주도 성장정책도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 국정을 끌고 갈 수는 없다. 착한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가 꼭 잘되는 것은 아니듯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다. 미국·영국은 완전 고용 수준으로 일자리 시장이 회복됐고, 일본도 규제완화 등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으로 실업률이 2% 중반까지 내려갔다. 문재인 정부는 정책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관련 책임자 교체를 비롯한 획기적인 일자리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 속에서 여당은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반사이익을 챙겼지만 실제로 자기 실력으로 이룬 승리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북 관계에서 획기적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국민의 지지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껏 높아졌던 기대와는 달리 북한 비핵화의 돌파구는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 임기(5년) 두 번에 해당하는 10년을 주기로 보수와 진보 정권이 교체됐다. 미국에서도 대통령 임기(4년)의 연임에 해당하는 8년을 주기로 대체로 정권이 바뀐다. 1970년대 이후 예외가 있었다면 지미 카터(민주당) 전 대통령과 조지 H W 부시(공화당) 대통령 정도다. 조지 H W 부시는 걸프전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대선 승리를 낙관했지만 경제에 발목이 잡혀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패했다.

한국에서 경제위기론은 보수정부에서도, 진보정부에서도 있었다. 위기를 잘 극복해 경제를 살찌운 정부도 있었고 치욕스럽게 국고를 거덜낸 정부도 있었다. 지금의 경제위기론을 보수 세력의 음모론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아주 편협한 시각이다. 민생경제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하다. 여론조사를 보면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낙관론을 더블 스코어로 앞서고 있다.

세금을 쏟아부어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도 곧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 세수가 작년보다 20조원 가까이 더 걷혔는데, 이것은 대부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호황 덕이다. 반도체 효과가 사라지는 2020년부터 불어난 재정 수요를 감당할 다른 수입원이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에워싼 사람들은 1987년 6월항쟁의 주력이었던 386, 그리고 참여연대 출신들이다. 이들이 정책을 주도하면서 청와대가 이념 과잉의 집단사고에 빠져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다.

이 정부는 에너지 정책에서도 환경근본주의의 색깔이 진하다. 값싼 원자력 발전을 멈춰놓고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석탄, 값비싼 LNG로 생산하는 전기를 사들이다 보니 연 10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던 한전은 적자로 돌아섰다. 폭염을 맞고서야 원전을 정상 가동했다. 엄청난 보상비를 지출하며 확보한 영덕 등의 새 원전 부지를 풀어버린 것도 환경근본주의에서 나온 단견이다.

가뭄이 들어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판에 MB표인 4대강 보는 모두 개방하겠다고 한다. 환경운동가 출신인 김은경 환경부장관은 충청 주민의 식수원인 대청댐을 개방해 녹조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극심한 가뭄에 정책의 우선순위도 모르는 사람에게 수자원 관리를 맡겨두고 있는 셈이다.

목표가 좋으니 방법은 서툴러도 좋다는 생각만큼 큰 착각이 없다. 경제는 이념과 슬로건이 아니라 실력으로 실적을 보여줄 때 국민의 믿음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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