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진칼럼] '싸구려' 중국의 종결과 '싸구려' 북한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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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진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
입력 2018-08-1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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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중 무역전쟁, 세계 싸구려 구조 변동 가속화

  • 북·미 관계 성패, 북한 제대로 된 '싸구려' 되느냐에 달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리설주 여사와 함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진보적인 생태운동가이자 여러 권의 저서를 쓴 작가인 라즈 파텔(Raj Patel)은 작년에 '일곱 가지 싸구려로 본 세계의 역사(A History of the World in Seven Cheap Things)'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자본주의, 나아가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싸구려를 추구한 역사이며 이것이 오늘날 기후변화를 비롯해 어쩌면 인류의 종말로 귀결될 수 있는 전 지구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내용이다.

인간의 싸구려에 대한 갈망은 상식에 불과할 수도 있다. 꼭 비즈니스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떻게든 비용을 절감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사업을 해본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비용의 절감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수요와 공급의 마법 속에서 가슴 졸이며 시장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이윤 증대보다는 우선 임금을 깎고 원재료를 싸게 구해 비용을 줄이는 게 합리적이라는 논리다.

파텔의 독창성은 비용, 이윤, 금융 등 잰 체하는 용어로 포장된 인류의 욕망과 파멸의 논리를 '싸구려(cheapness)'라는 날것의 개념으로 생생하게 폭로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근대 자본주의 국가들은 모두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대신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가 생존할 수 있도록 농산물과 에너지의 가격을 낮추려고 했다. 노예제와 가부장제에서 엿보이듯 최종적으로는 흑인, 여성 등 특정한 인간의 삶 자체를 싸구려로 만들었다. 좁은 국경 안의 싸구려만으론 한계가 있었기에 더 싼 물건과 더 싼 사람을 찾아 변경을 확대하며 식민지를 만들었다.

인류의 싸구려에 대한 열망으로 지구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바다는 몇십 년 뒤면 생선의 총량보다 플라스틱의 총량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처럼 싸구려는 단순한 비용 개념과 달리 인류의 모든 영역에서 작동하며 지구라는 행성의 미래를 결정할 개념이라는 것이다.

생태적 가치를 유보하고 파텔의 '싸구려' 개념을 빌려 현재의 국제관계를 이야기해 보자. 노예제로 싸구려 인간을 마음껏 부려 유럽에 싸구려 농산물을 팔아 성장한 미국은 산업국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더 이상 싸구려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노예해방 이후 미국은 과거의 유럽처럼 잔혹한 식민지 침탈이 아닌 대량생산과 금융을 통해 싸구려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나름 문명적이었다고 자부할지도 모른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양껏 찍어대며 돈 자체를 싸구려도 아닌 거의 공짜로 활용해 왔다. 달러를 환류시켜 식민지가 아니라 일본, 그 다음은 중국으로 대표되는 싸구려 수출국을 통해 자국민에게 싸구려 물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

미·중 관계의 변화도 전 지구적인 싸구려의 구조 변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과거 미국이 노예제에 기반한 농업국가에서 벗어났듯이 중국도 눈부신 성장으로 이제 미국의 싸구려 공급처에서 벗어나고 있다.

중국은 더 이상 싸지 않다. 더구나 철저한 신자유주의 논리로 불평등을 확대한 미국은 자체적으로 싼 인간들을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환경 파괴의 대가를 감수해야 하지만 낮은 가격으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준 셰일가스 혁명으로 인해 싸구려 에너지 공급처로서 중동 지역의 가치도 낮아졌다. 최근에는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싸구려 셰일 가스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적인 태도는 국내적으로 인간과 자원이 싸진 데다 기존의 변경이 너무 비싸졌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논리라면 과거만큼 싸구려가 아닌 중국이 미·중 무역전쟁에서 좀 더 싸진 미국에 승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싸구려가 필요하며 중국만큼 싸구려를 생산할 수도 없다. 미국은 인류사가 증명하는 싸구려 공급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 식민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명이 오랫동안 애용해 온 이민의 방식, 파텔의 용어로 말하자면 싸구려 인간들의 유입을 철저하게 막기로 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싸구려의 구조 변동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 지식재산권을 지키고 환율에 대한 개입을 줄인 중국은 싸구려를 만들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중국의 패배는 역설적으로 중국을 더 비싸게 만들고 미국은 싸구려를 얻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미국에 있어 비싸진 중국은 덜 필요하기 때문에 미·중 대립은 구조적으로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인류의 욕망과 자본주의라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미국은 새로운 싸구려 공급처와 싸구려를 갈망하는 자국의 달러가 흘러갈 곳을 찾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틈만 나면 북한에 대해 성장과 투자를 말하는 것은 타고난 비즈니스맨의 감각으로 세계 싸구려 구조의 변동과 새로운 싸구려로서의 북한의 가치를 인식했기 때문일 수 있다.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에 입맛이 다소 쓰지만 북·미 관계의 성패는 비핵화보다 북한이 미국에 있어 얼마나 훌륭한 싸구려가 되는가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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