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반복과 명상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입력 2018-08-20 05:05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요가수트라I.28

 

배철현 교수(서울대 종교학)


파탄잘리는 요가수련자들의 주문인 ‘옴’을 계속해서 설명한다. ‘옴’ 같은 주문의 힘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옴’의 힘은 잠재적으로 오랜 수련을 통해 서서히 발휘된다. 옴은 거대한 나무와 울창한 숲을 만들기 위한 첫 단계인 씨를 뿌리는 행위와 같다. ‘옴’을 입으로 수없이 중얼거린다고 요가수련을 완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망고 과일을 먹고 싶은 사람에게 망고 씨를 주는 것과 같다. 농부는 토양에 알맞은 씨를 선택해 땅에 심고, 물과 거름을 주며, 때때로 병충해를 막기 위해 가지를 쳐야한다. 농부가 수년 동안 이런 작업을 반복해야 망고나무에 비로소 망고열매가 달린다. 요가수련자는 자신의 정신적이며 영적인 진보를 위해 ‘옴’이라는 씨를 마음속에 심고, 매일 매일 올바른 방법으로 그 씨를 발아(發芽)시켜야한다. 이 수련과정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수년 혹은 수십년 걸린다.

파탄잘리는 ‘옴’은 요가수련자가 자신의 이상이며 신인 ‘이슈바라’에 마음을 고정하는 행위라고 해석한다. 이슈바라는 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 존재한다. 이슈바라를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슈바라’가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옴’이란 음절을 반복적으로 암송하고 그 의미를 명상하는 것이다. 힌두교 경전 '카타 우파니샤드' I.10에서 옴은 우주의 원리인 ‘브라흐만’과 다르지 않으며, 명상을 지탱하는 최선의 도움(ālambana)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이 도움을 아는 사람은 브라흐만 안에서 즐거워한다. 옴을 자신의 삶 안으로 유인하여 실천하려는 요가수련자를 위해 파탄잘리는 구체적인 훈련방안을 '요가수트라' I.28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타즈-자파흐 타드-아르타-바바남(taj-japaḥ tad-artha-bhāvanam)" 이 문장을 번역하면 이렇다. “옴 소리를 반복하고, 그 의미를 명상하십시오.”

반복
수련의 시작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동일한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기원전 6세기 오늘날 터키의 항구도시 에페소스에 살던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 헤라클리투스가 있었다. 그 당시 파르미니데스라는 철학자가 등장하여 우주 안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객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파르미니데스의 철학은 ‘존재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헤라클리투스는 객체는 존재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철학은 ‘변화의 철학’이다.

헤라클리투스는 반복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은 고대 그리스어 문장으로 설명한다. “에토스 안스로포 다이몬(ethos anthropō daimon).” 이 문장은 흔히 “습관은 사람에게 운명이다”라고 해석된다. 이 문장 해석의 열쇠는 ‘다이몬’이란 단어에 달려있다. ‘다이몬’은 ‘악마’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데몬(demon)'과 같은 어원의 단어로 천사에 대비되는 부정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을 자신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주는 ‘천사’로 해석했다.

다이몬은 천사일 수도 있고 혹은 악마일 수도 있다. 무엇이 내 삶의 천사일 수도 있고 악마일 수도 있는가?

다이몬은 ‘에토스’가 만든 결과다. 에토스란 그리스 단어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가축들이 거주하는 '마구간’을 지칭할 때 자주 사용됐다. 가축들은 항상 같은 장소에서 잠을 잔다. 호메로스는 에토스를 동물이나 사람이 항상 반복하고 안주하는 총체적인 행위를 이르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사람은 ‘그 사람이 자주하는 그것이다’. 그 사람이 하루 종일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다면, 그 사람은 휴대폰이거나 휴대폰의 노예다. 혹은 어떤 사람이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요가수련을 한다면, 그는 이미 더 나은 사람이다. ‘에토스’는 반복적인 생각, 말, 그리고 행위를 지칭하는 의미로 흔히 ‘습관’으로 번역된다. ‘에토스’는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등장인물’과 그 등장인물의 핵심인 ‘개성’을 의미한다. 영어에서는 ‘에토스’의 이런 다양한 의미를 ‘캐릭터(character)'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표현한다.

인간은 운명을 남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운명은 자신의 습관이 서서히 만들어낸 자신의 집이다. 자신의 반복된 생각과 그 생각의 표현인 말, 그리고 말이 몸으로 표현된 행동, 행동의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환경, 그리고 그 굳어진 환경이 운명이다. 인간들은 흔히 운명 탓을 하지, 운명의 원인인 자신의 생각을 돌보지 않는다.

파탄잘리는 ‘옴’이 지닌 잠재력을 발휘하는 두 가지 중에 첫 번째를 산스크리트어로 ‘자파(japa)' 즉 ‘반복’으로 정했다. ‘옴’ 암송은 먼저 자신의 입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귀로만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작은 소리로 출발해 점차로 소리를 내지 않는 침묵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으로 정리한다. 옴 소리를 반복하는 것이 요가수련자에게 필수적이다. 반복은 요가수련자가 자신을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려 변화하는 인간으로 변모시키는 문법이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단계의 경계를 조금씩 파괴해 다른 단계로 진입하기를 시도해야 한다. 자신이 알게 모르게 습관적으로 쌓아놓은 경계가 편견(偏見)이며 무식(無識)이다. 이것들을 허물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고, 조금씩 매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허물기를 시도해야 한다.

이 수련의 핵심은 ‘반복’이다. 요가 수련자 개인으로 온 우주의 축소판인 ‘지바트마(jivatma)'다. 그(녀)는 개인이기도하고 전체이기도 하다. ‘옴’은 소리이면서 자신의 귀에 감지되는 파장이기도 하다.
 

'씨 뿌리는 사람'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1888년 6월 프랑스 남동부 아를, 64 cm x 80.5 cm,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명상
파탄잘리는 ‘옴’이 지닌 두 번째 잠재력을 ‘그 의미에 대한 명상(artha-bhāvanam)'이라고 말한다. ‘아사(artha)'라는 단어는 ‘가리키다, 지칭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르스(arth)'에서 파생됐다. ‘아사’는 요가수련자가 추구하는 삶의 궁극적인 의미다. 그는 ‘명상’을 통해 그 핵심에 접근한다. 인도철학에서 인간 삶의 네 가지 목표가 있다. ‘다르마(dharma)'는 우주의 원칙에 맞추어 자신에게 주어진 도덕적인 삶이며, 카마(kama)는 인간의 욕망·감정·쾌락 혹은 오감의 만족이며, 목샤(moksha)는 욕망과 쾌락으로부터의 해탈이다. 그리고 ‘아사’는 자신의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실질적인 도구들과 궁극적인 목표를 포함한다. ‘아사’는 개인적으로는 다르마에 부합하고 카마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그의 부, 직업,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인 경제적인 안정을 취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의 긍정적인 역할을 포함한다.

아사는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1905-1997)이 주장하는 ‘삶의 의미’다. 개인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궁극적인 의미다. 인간의 삶을 지속시키는 동기는 삶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다.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하든 그 안에서 의미를 자유롭게 찾을 수 있다. 플랭클은 인간이 존재의미를 다음 세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 새로운 일을 창조할 때. 둘째, 새로운 사람이나 사건을 만날 때. 셋째, 불가피한 고통에 처해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고 그 고통에 대해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자유가 주어질 경우다.

파탄잘리는 ‘옴’을 반복하여 암송함으로써 자기 삶의 존재의미를 선명하게 깨닫는 ‘명상’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명상’이란 산스크리트어는 ‘바바나(bhāvana)'다. ‘바바나’는 ‘되다, 변화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부(bhū)'에서 파생된 명사다. 혹은 ‘땅을 개간하다; 존재하게 하다’란 의미도 있다. 농부가 봄에 씨를 심을 때, 그는 자신의 정성에 따라 적당한 시간에 발아하고 열매를 맺을 것을 상상한다. ‘바바나’란 단어를 획기적으로 사용한 글자가 바로 붓다다. 붓다는 ‘명상’을 의미하는 단어로 ‘바바나’를 사용하였다. ‘바바나’는 농부라면 누구나 아는 자연의 섭리다. 우리가 아는 ‘명상’이나 ‘묵상’과는 달리, 붓다의 ‘바바나’란 단어 선택은 진부하고, 일상적이면서도, 다층적이며 생동감이 넘친다. ‘바바나’는 흙냄새가 난다. ‘바바나’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이지만 변화의 가능성으로 충만하다. ‘명상’이란 굳어진 마음의 땅에 희망의 씨를 뿌리는 행위다.

‘명상’은 가만히 앉아 잡념을 떠올리거나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약육강식의 전략을 짜는 행위가 아니다. 명상은 오늘이라는 절체 절명의 시간에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거룩한 행위다. 그것은 내가 속한 내 가족, 이웃, 공동체, 그리고 국가 안에서 자신을 위한 최선의 찾는 행위다. 그런 행위야 말로 공동체를 위한 최선이 되기 때문이다.

'요가수트라' I.28를 다시 의역하면 다름과 같다. “당신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인내와 지구력을 요구하는 ‘옴’을 암송해본 적이 있습니다. ‘옴’을 음성으로, 침묵으로, 생각으로 반복하다는 의미는 이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가지 이유를 아십니까? 만일 없다면, 그것을 찾고 계십니까? 명상이란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당신은 오늘 당신 자신을 위해 희망의 씨를 뿌리시겠습니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