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전쟁] 무역전쟁과 다른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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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기자
입력 2018-08-2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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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차 산업혁명과 미·중 기술전쟁]'제로섬' 무역전쟁 vs '승자독식' 기술전쟁

[사진=AP·연합뉴스]


무역전쟁은 모두 지는 싸움이라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불거지면서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1930년대 글로벌 무역전쟁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무역전쟁은 미국 허버트 후버 행정부가 1930년 제정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에서 비롯됐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원래 대공황 초기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불황 타개책이었다. 지역구의 이해관계를 내세운 의원들의 요구로 관세품목이 순식간에 2만여 개로 늘면서 1920년대 초중반 평균 26%였던 미국의 수입관세율이 1932년 59%까지 치솟았다. 미국의 무역상대국들은 보복관세, 수입제한, 환율통제 등으로 대응했다.

보복의 악순환은 글로벌 무역을 급격히 위축시키며 세계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세계 무역 규모가 1929~34년 66% 줄었고,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1929~32년 15% 쪼그라들었다. 전문가들은 당시 글로벌 무역전쟁이 대공황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 경제를 황폐하게 만든 대공황은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됐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글로벌 무역전쟁도 겉만 보면 과거와 다를 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막대한 무역적자를 불평하며 무역상대국에 폭탄관세를 물리는 것이나, 중국을 비롯한 무역상대국의 보복은 모두 보호무역 싸움의 전형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무역전쟁에서 주요 표적으로 삼은 게 중국, 특히 중국의 첨단기술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폭탄관세로 중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등 동맹국까지 몰아세웠지만, 중국에 집중된 화력에 비할 게 못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1차로 연간 340억 달러어치에 이어 23일부터는 16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물릴 예정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연간 2000억 달러어치에 대한 추가 폭탄관세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연간 5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모든 중국산이 대상이 되는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무역전쟁 전면에 내세운 명분을 보면 이번 무역전쟁이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미국이 1974년 제정한 무역법 301조가 대표적이다. 미국이 무역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문제삼을 수 있는 근거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이용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첨단산업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를 표적으로 삼았다. 중국이 미국의 지식재산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며 우주항공, 정보통신기술(ICT), 로봇공학, 반도체, 전자부품 등 중국 첨단산업을 폭탄관세 부과 대상에 올린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통신장비회사인 화웨이와 ZTE 등 중국 기업들을 규제 표적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센터(CEPS) 소장은 최근 기고 전문매체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쓴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위험천만한 무역전쟁을 벌인 게 지식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자국 시장 진입을 빌미로 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려 하는 데 대한 불만이 무역전쟁으로 표출됐다는 설명이다. 구경제(old economy)의 무역전쟁에선 하드웨어 수출입이 관건이었지만, 신경제(new economy) 무역전쟁에서는 지식재산권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가 핵심이다. 

구글(모회사 알파벳)이나 페이스북을 비롯한 기술기업이 중국 같은 새 시장에 진출하는 데는 사실상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공장을 세우는 대신 매뉴얼만 현지어로 만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이미 막대한 수익을 올린 미국 3대 기술기업은 3대 철강기업보다 50배나 많은 시가총액을 자랑한다.  

결국 최첨단 기술의 경쟁터인 '제4차 산업혁명' 시대는 핵심 기술의 지식재산권을 가진 이가 승리하고, 승자가 모든 걸 갖는 기술 경제 체제다. 문제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이 '만리장성' 같은 거대한 방화벽으로 기술 대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 뚫리지 않으면 첨단기술을 가진 미국 기업에 중국이라는 막대한 수익 기회는 '그림의 떡'이다. 그렇다고 중국시장에 들어가느라 지식재산권을 일부라도 내주면 사업모델 자체를 잃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 '만리방화벽'이 눈엣가시인 이유다.

후발주자인 중국은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첨단기술을 육성해왔다. 중국 내 7억 명이 넘는 인터넷 사용자는 토종 기업들이 급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공세에 맞서 최근 핵심기술 육성 조직을 재편하는 등 전열 정비에 나섰다. 중국 국무원은 이달 초 '국가과기교육영도소조'를 '국가과기영도소조'로 개편하고 리커창 총리를 조장, 류허 부총리를 부조장에 앉혔다. 

뉴욕타임스(NYT)는 기술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중국이 미국의 과거 기술경쟁 상대인 일본이나 소련과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은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의 동맹국이고, 소련은 당시 상업적인 면에서 미국의 상대가 안 됐다. 애덤 세걸 미국 외교협회(CFR) 기술·안보 부문 전문가는 "미국과 중국은 무역·투자·연구협력을 통해 과학·기술 시스템이 서로 얽혀 있지만, 둘은 서로를 전략적 경쟁자이자 적으로 본다"며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로스 CEPS 소장은 승자독식시대의 무역전쟁이 독점의 폐해를 몰고 오기 때문에 '제로섬 게임'이었던 과거의 무역전쟁보다 더 파괴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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