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은 기술민족주의와 디지털 보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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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18-08-20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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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교수l]




관세보복을 주고받던 미국과 중국이 이번 주 무역협상을 재개한다.  양측이 서로 체면을 세우는 선에서 이번 협상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양국이 돌파구를 마련하더라도 무역전쟁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너무 이르다. 왜냐하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무역전쟁의 성격과 내용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이제 무역전쟁의 핵심 전선은 무역적자의 규모가 아니라 첨단기술의 개발과 보호로 이전되었다. 미국은 중국처럼 기술 민족주의(techno-nationalism)와 디지털 보호주의(digital protectionism)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따라서 마이클 필스버리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연구센터 소장이 예고한 양국 사이의 '백 년의 마라톤' 경쟁은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다.

대중 강경파 피터 나바로가 이끄는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이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의 제목은 ‘중국의 경제적 침략은 어떻게 미국과 세계의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위협하는가’였다. 이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내용은 ‘중국제조 2025’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향후 제조업을 중국 내 제조(Made in China) → 중국과 함께 제조(Made with China) → 중국을 위한 제조(Made for China)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차세대 정보기술, 고정밀 수치제어 및 로봇, 항공우주장비, 해양장비 및 첨단기술 선박, 선진 궤도교통설비, 에너지절약 및 신에너지, 자동차, 전력설비, 농업기계장비, 신소재, 바이오 의약 및 고성능 의료기기 등 10대 전략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1단계(2015~2025년)에서는 제3그룹(영국, 프랑스, 한국), 2단계(2025~2035년) 제2그룹(독일, 일본) 추월하고 3단계(2035~2045년)에서는 제1그룹(미국)에 진입한다.

관세보복에 대해서는 협상 여지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과학기술 경쟁에서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8월 초 중국 정부가 과학기술 육성을 위해 리커창 총리와 류허 부총리가 주도하는 과학기술영도소조를 창설했다.

미중 과학기술 경쟁에서 가장 논란이 많이 되는 기업은 1988년 창업 이후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업체로 발전한 화웨이라고 할 수 있다. 화웨이는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이미 세계 1위 점유율을 달성했으며, 2018년 2/4분기에는 애플을 제치고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2위로 부상하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세계지적재산권기구가 집계한 기업별 특허출원 건수에서 화웨이가 2014년 이후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5G 네트워크 통신장비 개발 경쟁에서 화웨이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무역전쟁이 발발하기 훨씬 전부터 화웨이의 창업자 런정페이가 인민해방군 출신이라는 점에 주의하고 있었다. 1993년 국가 통신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 네트워크 중계 장치 공급업체로 선정된 이후 화웨이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화웨이와 중국 정부 및 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이유로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2008년 화웨이의 미국 통신장비업체 3Com의 인수를 불허하였다. 2012년 미국 하원은 화웨이가 통신장비에 백도어를 설치해 사이버 보안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화웨이가 사이버 보안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사례는 없다. 2015년 영국 정보통신부가 실시한 보안 검증에서 아무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4년 미국 NSA가 화웨이 본사 서버를 해킹해 스파이웨어를 심었다.

중국에 적대적인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화웨이에 대한 제재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2018년 1월 AT&T와 버라이즌을 포함한 미국 통신업체는 미국 정부의 압력으로 화웨이 스마트폰의 판매 계획을 취소하였다. 2018년 4월 미국이 북한과 이란에 대한 자국의 경제제재 조치를 위반했다고 중국의 2대 통신장비업체 중싱통신(ZTE)에 7년간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조치를 부과하였다. 8월 1일 미국 상원을 통과한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는 미국 정부기관이 화웨이와 ZTE가 생산한 위험한 기술의 사용을 금지하는 조항이 삽입되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캐나다, 호주, 영국, 일본 및 한국을 포함한 주요 동맹국에게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이런 견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정보를 공유하는 '5개의 눈(Five Eyes)'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 모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LG유플러스가 2013년 화웨이 LTE네트워크 장비를 도입한 바 있다. 이때 미국은 사이버 보안을 이유로 주한미군 기지 일부 지역에서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하였다.

현재 초미의 관심은 세계 최초로 5G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우리나라 통신기업들이 화웨이 제품을 채택할 것인가에 쏠려 있다. 가격은 30% 정도 저렴하고 기술은 1분기 정도 앞선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통신기업 입장에서는 화웨이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화웨이가 백도어를 통해 해킹을 할 수 있다는 사이버 보안이다. 화웨이가 본격적으로 진출하면 우리나라 통신장비 기업의 발전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화웨이가 우리나라 시장을 선점한다면 5G 네트워크의 기술표준도 주도해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대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화웨이 제품에는 우리 기업이 수출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이 내장되어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의 매출에서 중국 비중은 2018년 기준 35% 내외이다. 또한 앞으로 중국 기업이 한국 제품을 사이버 보안을 이유로 차별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적용한 규제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민족주의와 디지털 보호주의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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