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스톰'에 갇힌 터키…어쩌다 이 지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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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기자
입력 2018-08-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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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印보다 빠른 초고속 성장 터키 '외환위기' 직면

  • 쌍둥이적자·외채·포퓰리즘이 지속 성장 발목 잡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사진=AP·연합뉴스]


터키는 최근 몇 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뽐냈다. 지난해 성장률이 7.4%로 중국(6.9%), 인도(6.7%)보다 훨씬 높았다. 터키의 초고속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이 7.4%나 됐다.

문제는 이 같은 성장세가 지속될지 더 이상 장담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 압력에 최근 터키 리라화가 곤두박질친 게 이 나라 경제의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주말부터 자유낙하하던 달러 대비 리라화 값이 14일(현지시간) 급반등했지만, 미국의 압박이 아니라도 터키가 금융위기를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찻잔 속 태풍'이냐, '퍼펙트 스톰'이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리라화 폭락 사태를 미국 등이 개입한 외부의 작전, 경제전쟁 탓으로 돌렸다. 그는 이번 사태가 경제적 문제로 생긴 일이 아닌 만큼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JP모건 자산운용은 최신 보고서에서 터키가 '퍼펙트 스톰'의 한가운데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사태가 생사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JP모건 자산운용은 터키의 금융환경이 날로 나빠지고 있고 투자심리가 흔들리고 있으며, 당국은 경제 운용에 무능하다고 꼬집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는 구조적인 문제에 더해진 또 하나의 악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터키의 미국인 목사 장기구금 등을 문제 삼아 터키산 철강·알루미늄에 2배의 폭탄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 조치가 최근 리라화 폭락의 방아쇠를 당긴 건 사실이지만, 리라화의 약세 추세는 이미 5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2013년 5월 벤 버냉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양적 완화 축소(테이퍼링)를 언급했을 때다. 버냉키의 발언은 당시 '긴축발작(taper tantrum)'을 일으키며 신흥시장을 뒤흔들었다. 그중에서도 터키가 상대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쌍둥이적자+외채폭탄··· 亞외환위기 데자뷔

터키 경제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경상수지와 재정수지다. 물론 둘 다 적자(쌍둥이 적자)다.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5.5%에 달했다. 역대 최고치인 2011년의 9%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졌지만, 터키는 2000년대 초부터 한 번도 흑자를 달성한 적이 없다. 지난해 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1.5%로 역시 2000년대 들어 줄곧 적자다.

터키의 쌍둥이 적자는 그동안 씀씀이가 헤펐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재정을 풀고 개인과 기업은 빚을 내 수입품 소비를 늘리며 성장세를 떠받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준을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이 천문학적인 경기부양 자금을 풀면서 특히 외채를 빌리기 쉬웠다. 터키는 GDP의 50%가 넘는 외채를 떠안고 있다.

터키가 2013년 긴축발작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쌍둥이 적자와 외채 부담 때문이었다. 연준이 느슨하게 풀었던 돈의 고삐를 죄면 충격이 만만치 않아서다. 리처드 브릭스 크레디트사이트 애널리스트는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에 터키의 외환보유액이 단기 외채를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브릭스는 터키의 단기 외채를 약 1810억 달러로 추산했다. 터키의 외환보유액은 5월 현재 1308억 달러에 불과하다.

CNN머니는 1990년대 말 태국 밧화 폭락 사태로 시작해 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가 터키에서 다시 불거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중앙은행 발목 잡은 에르도안의 성장 포퓰리즘

성장지상주의에 빠진 터키의 무능한 경제정책을 탓하는 이들도 많다. 에르도안 정권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한 게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터키 중앙은행은 2013~2014년 긴축발작에 맞서 기준금리를 단숨에 4.5%에서 10%로 높였다. 덕분에 터키는 당시 환율을 안정시키고 고금리 매력으로 글로벌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금리인상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선거를 의식해 경기를 냉각시키는 금리인상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로지 성장'을 외치는 포퓰리즘이 중앙은행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 5~6월에도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나섰다. 리라화 약세 속에 지난달 16%에 이른 물가상승세를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8%였던 기준금리가 17.75%까지 뛰었다. 시장의 환영 속에 지난달에는 예상을 깨고 금리인상 행보를 중단했다. 6월 말 대선에서 압승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다. 그는 지난 12일 연설에서도 "내가 살아 있는 한 금리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며, 고금리는 부자들의 배만 불린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화정책 개입이 터키 중앙은행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사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에릭 로버트센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외환·금리·신용 리서치 부문 글로벌 책임자는 "금리인상 말고 터키가 경제적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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