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주의 도심 속 진주찾기] 숨어버린 중개사들...현장 점검 뒷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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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주 기자
입력 2018-08-1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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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일 국토부, 송파구 중개업소 단속 실시


지난 13일 국토교통부가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현장 점검에 나섰습니다. 새로운 건 아닙니다. 이미 지난주부터 언론을 통해 불시에 점검을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날 점검에 동행했습니다. 오늘은 그 뒷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이번 현장 점검 동행취재는 저에게 두 번째입니다. 작년 여름에는 강남구에서 현장 점검을 실시했고 저는 서울시청 출입기자 소속으로 동행했습니다. 올해는 국토부 출입기자로 동행했죠. 작년이나 올해나 기억에 남는 건 달궈진 시멘트 위에 앉아 기사를 썼다는 것 뿐이지만 말입니다.

작년에는 개포동이었습니다. 동행 취재가 진행되는 방법은 비슷합니다. 국토부와 시청에서 동행 취재를 원하는 기자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함께 이동하는 방식입니다. 지난해 방송을 탔던 중개업소는 어느 정도 섭외가 됐던 곳입니다. 흔히 말하는 뉴스의 ‘영상’을 위해 서류를 검토하는 장면을 담아야 했기 때문이죠.

이번엔 달랐습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미리 섭외된 업소도 아니며, 장소도 기자들을 태운 버스가 이동할 때까지 비밀에 부쳤습니다. 당일 오전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는 ‘영등포구 일대’가 대상이라고 했지만, 동작역 앞에 주차돼 있던 버스가 좌회전이 아닌 우회전을 하는 순간 저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속았구나!’

‘일부러 영등포구라고 공지한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토부 관계자는 시원하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지난 7일 용산구를 점검했으니 오늘 영등포구라고 공지하면 모두들 ‘여의도’로 생각할 걸로 예상한 것 같습니다. 점심을 먹기 전에 여의도에 맞춰서 기사를 써놓고 나온 저는 ‘아직 나는 멀었구나’하고 땅을 쳤죠.

이번에 미리 업소를 섭외를 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지난해 섭외를 해보니 점검을 받은 업소가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뉴스에 나오자 ‘문제 있는 곳’으로 찍혀버렸다는 불만이 나왔단 겁니다.

이번에도 상황은 같습니다. 중개업자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뉴스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찍힌다’고 생각하니 찍히기 전에 문을 닫아버립니다.

사실 점검이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이미 단속이 시작될 거란 소문이 돌면 중개업소는 문을 닫기 때문입니다. 마침 휴가 기간이기도 하니 ‘휴가 중’이라고 창문에 써붙이면 됩니다. 이날 점검을 위해 찾은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도 이미 8월 초부터 대부분 업소들이 휴가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장사를 안 할 순 없으니 이들은 동네 카페에서 개인적으로 만나 일을 진행합니다. 취재를 위해 동네를 방문했다가 카페에 들어가면 이런 광경을 심심지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최대한 숨 죽이고 귀를 기울이곤 하죠.

매년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고 중개업소를 단속하는 이 반복되는 광경에 중개업자들은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문을 닫냐’는 질문엔 ‘뭐라도 잡아내려는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왔는데 실수 하나라도 트집 잡을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결국 쫓을수록 숨어버리는 게 현실입니다.

공포 영화는 한 순간의 클라이맥스를 위해 영화 곳곳에 작은 장치들을 숨겨놓습니다. 하지만 결론이 부실하면 관객들은 앞서 늘어놓은 장치들에 실망할 수밖에 없겠죠. 정책도 같습니다. 튼튼한 뿌리 없이 겁만 주는 정책으론 이 숨바꼭질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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