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관영매체 도배한 왕지차이는 누구…習 '애국주의' 카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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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8-08-09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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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習 "왕지차이 애국심 신시대 가치로 삼아야"

  • 1986년부터 32년간 군사요충지 지키다 사망

  • 아사위기, 살해위협, 구타·방화 등 일화 많아

중국의 동쪽 끝 섬 카이산다오를 지키다가 최근 사망한 민병 왕지차이. [사진=신화통신]


최근 중국 관영 매체는 왕지차이(王繼才)라는 이름으로 도배가 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그의 이름을 거론하며 애국 정신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왕지차이는 중국의 동쪽 끝 섬 카이산다오(開山島)를 32년간 지키다가 지난달 27일 질병으로 사망한 인물이다.

시 주석은 "왕지차이 동지는 아무런 원망과 후회 없이 대가를 치렀다"며 "평범한 자리에 있었지만 평범치 않은 인생을 살았다"고 극찬했다.

이어 "우리는 이같은 애국 정신을 앞장서 제창하며 신시대 투쟁가의 가치로 추구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아울러 왕지차이의 유가족을 잘 챙기라고 주문하는 한편 장기간 험난한 임무를 맡아 헌신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도 적극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시 주석이 왕지차이의 사례를 언급한 것은 애국주의를 앞세워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어수선해진 민심을 다잡고 체제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다만 왕지차이가 보통 사람은 쉽게 감당하기 힘든 임무를 묵묵히 수행했던 것도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꽤나 유명한 그의 인생 역정을 소개한다.

왕지차이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카이산다오는 장쑤성 관윈현의 작은 항구인 옌웨이강(燕尾港)에서 12해리(약 2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무인도다.

지난 1939년 일본은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장쑤성의 수륙 교통 요지인 롄윈강(連雲港) 점령에 성공했다. 군사적 요충지라는 의미다.

1985년 현지 부대가 재편되면서 군인들이 섬을 떠나자 민병 초소를 설치하고 인근 주민들을 머물게 했다.

처음 임무를 부여받은 주민 10여명은 13일 만에 모두 섬을 떠났다. 한 주민은 1980년대 중반 기준으로 "100만 위안(약 1억6000만원)을 준다고 해도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증언했다.

1986년 7월 관윈현 인민무장부는 왕지차이에게 섬을 지키는 임무를 맡겼다. 그는 호기롭게 상륙했지만 고도(孤島)를 둘러싼 황량함에 점차 지쳐갔다.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처음에 가져간 30병의 바이주(白酒)와 60보루의 담배가 한 달도 안 지나 모두 소진됐다"며 "나중에는 해초를 말려 신문지에 말아 피웠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중국의 동쪽 끝 섬 카이산다오에 설치된 민병 초소. 왕지차이 부부가 초소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두 달여가 지난 뒤에는 부인 왕스화(王仕花)도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섬으로 들어왔다. 두 살배기 딸을 할머니에게 맡긴 채였다.

이후 부부는 매일 국기를 게양하며 순찰, 부표 관리, 풍량 측정 등의 임무를 수행해 왔다. 이듬해에는 부인의 산통을 시작했지만 태풍으로 배가 뜰 수 없게 되자 왕지차이가 직접 아이를 받기도 했다.

즈궈(志國)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아들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장교로 군 복무 중이다.

1992년 겨울에는 기상 악화로 17일 동안 식료품 보급이 중단돼 굶어 죽을 뻔했고, 1996년에는 밀입국 브로커가 건넨 뇌물을 거절했다가 살해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99년 한 조직폭력배가 카이산다오를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윤락가를 만들려 했다. 왕지차이가 격렬히 저항하자 흠씬 두들겨 패고 당시 11세였던 아들을 인질로 잡았다.

숙직실은 불에 타 전소됐다. 때맞춰 경찰이 출동한 덕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2008년 상급 부대에서 작은 풍력 발전기를 설치해준 뒤에야 왕지차이 부부는 섬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TV를 시청할 수 있었지만 얼마 안 가 발전기가 태풍에 쓰러졌다.

2008년 소형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되면서 전기 걱정은 하지 않게 됐다.

2015년 장쑤성 시찰에 나선 시 주석은 왕지차이와 만나 "섬을 지키느라 고생이 많다"며 "애로가 있으면 언제든지 상부에 보고하라"고 치하했다. 왕지차이는 그 자리에서 "내가 반드시 섬을 지켜낼테니 안심해도 된다"고 화답했다. 관영 매체를 통해 자주 회자되는 일화다.

올해 58세인 왕지차이는 근무 중 갑자기 쓰러져 응급 조치를 받던 중에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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