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식민·독재서 식인왕국까지 시차적응법"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스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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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 기자
입력 2018-08-0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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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펫 쿠스위다난토·주 시앙민·심래정·백경호 작가

  • -시차적응법(JET LAGGED) 7월19일~10월7일


오토바이를 타고 깃발을 흔드는 사람, 손뼉을 치는 사람, 확성기로 소리치는 사람 등이 무질서하게 군중들을 호도하지만, 정작 이들은 실체가 없는 유령들이고 주위는 파리의 날갯짓 소리만 가득하다. 회화의 캔버스가 사각이 아닌 마치 사람처럼 얼굴과 손이 달려 있다.

어떤 작가는 본인이 사는 현실이나 사회와 다툼이 있는 경우가 있고 어떤 작가는 추구하고자 하는 매체에 대해서 끊임없는 실험을 한다. 이들은 결국 조율의 미로 속에서 헤매거나 새 좌표를 설계해 가는 과정을 겪는다. 이런 과정을 장거리 비행 후 겪는 시차적응에 빗댄 전시가 열렸다.

[좀펫 쿠스위다난토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은 개관 두 번째 전시로 인도네시아 작가 좀펫 쿠스위다난토(42), 중국작가 주 시앙민(29), 한국작가 백경호(34)와 심래정(35) 등 네 명의 작가를 초대해 아시아 작가 초대전 '시차적응법(JET LAGGED)'을 지난달 19일부터 10월 7일까지 연다.

좀펫 쿠스위다난토와 주 시앙민 작가는 본인이 사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갈 것인가에 관해서 얘기하고, 백경호와 심래정 작가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매체의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서 끊임없는 실험을 하고 도전을 한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에 전시된 좀펫 쿠스위다난토의 '파워 유닛']


▶인도네시아 식민 문화에 적응 중인 좀펫 쿠스위다난토 작가

전시장에 들어서면 파리의 날갯짓 소리와 함께 좀펫 쿠스위다난토 작가의 '파워 유닛(Power Unit)' 작품이 제일 먼저 보인다.

오토바이를 타는 15명을 표현한 대형 설치 작품으로 오토바이 헤드라이트와 헬멧, 두건, 바닥의 신발이 사람들의 행렬임을 보여준다.
소리를 지르고, 깃발을 흔들며, 칼을 휘두르는가 하면 손뼉을 친다.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한 느낌을 준다.

강소정 아라이로갤러리 큐레이터는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1년간 인도네시아를 독재했던 수하르토 정권이 1998년에 무너지고 인도네시아 내부에는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정권을 잡기 위해 많은 사람이 움직임을 내기 시작했다" 며 "다양한 퍼포먼스를 하면서 대중을 호도하지만, 작가는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임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그 모든 행위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매우 시끄러운 외침만 가득한 공허한 메아리로 여긴다.

"그게 안타까운 인도네시아의 현실인 것이고 그런데 그 현실을 슬프거나 불편하거나 그런 맥락이라기보다는 그냥 사회 속에서 재미있게 하나의 삶처럼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파리의 날갯짓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넣은 것은 식민 역사 속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작품에서 사람들은 몸통이 없는 것은 죽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시체를 방치하면 파리가 꼬이게 되고 파리의 날갯짓 소리만으로 이들의 죽음을 연상할 수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에 전시된 좀펫 쿠스위다난토의 '온 파라다이스 더 도그']


전시된 '온 파라다이스 더 러브'(On Paradise, The Love)와 '온 파라다이스 더 도그'(On Paradise, The Dogs) 작품은 테러를 다루고 있어 논란이 될만한 작품이다.

'온 파라다이스 더 러브'는 6분 30초짜리 영상 작품으로 '2002년 발리 폭탄 테러'의 테러범이 만든 음악이 포함됐다.

2002년 발리 폭탄 테러는 2002년 10월 12일 발리에서 일어난 테러로, 202명이 죽고 209명이 다친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악의 테러였다. 테러범들은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 조직인 제마 이슬라미아(JI)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에 검거된 이 테러범은 2008년에 처형당하기 전까지 감옥에 있는 동안 시나 노래 등을 많이 남겼다.

강 큐레이터는 "폭탄테러를 해서 많은 사람을 죽게 한 것은 굉장히 잘못된 행동이다. 이 사람의 아버지와 자식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ISIS(이슬람국가)에 가입했다가 죽임을 당했다" 며 "인도네시아에서 사는 삶 자체가 테러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그의 행동이 옳다 나쁘다는 그런 기준을 떠나서 한 명의 인간이 태어나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서 많은 사람을 죽기게 하는 그런 과정을 겪게 되는 이 사람이 인간적으로 궁금했던 것이다.

'온 파라다이스 더 도그'(On Paradise, The Dogs) 작품은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개 형상의 투구가 있고 형체가 없는 사람들이 드럼을 치는 것을 묘사한 설치 작품이다.

샹들리에는 식민지배의 잔재인 자본주의를 상징하고, 개 형상의 투구는 테러단체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훈련받을 때 사막에서 들었던 늑대의 울음소리를 상징한다. 작품은 오랜 시민 문화에서 형성된 벗어날 수 없는 정체성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좌절과 투쟁을 표현한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에 전시된 주 이앙민의 '선원 시리즈']


▶중국의 빠른 발전에 적응 중인 주 시앙민 작가

중국의 주 시앙민 작가는 '선원 시리즈'와 '복싱 시리즈'를 통해 빠르게 돌아가는 중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시차에 적응하고 있는지 관찰하면서 작업을 했다.

'선원 시리즈'에서는 몸에 문신한 젊은이들을 느리고 나태하게 표현했지만, '복싱 시리즈'에서는 빠른고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은유하듯 속도감 있고 거칠게 표현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에 전시된 주 이앙민의 '복싱 시리즈']


강 큐레이터는 "작가는 문신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연구를 하고 싶어서 작업했다" 며 "권투경기를 하는 작품의 경우에는 사람이 궁금했다기보다는 중국 사회의 혼란한 바탕들을 좀 더 표현하고 싶어서 권투 소재를 채택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기 다는 회화적인 기술, 매체 연구를 하면서 좀 더 정적이면서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는 연구를 하는 실험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심래정(왼쪽) 작가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식인왕국'이라는 독특한 상상력에 적응 중인 한국의 심래정 작가

심래정 작가는 '식인왕국 : 심령수사' 작품 시리즈를 내놨다. 2016년 시작한 식인왕국 시리즈는 지난해 발표한 '식인왕국 : 생산공장'에서 인육 통조림의 식자재로 쓰인 희생자 모넬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심령수사는 사건이나 사고를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영적인 행위를 통해 수사하는 방식을 말한다. 심령수사 중에서도 작가는 사건과 연관된 물건에 손을 대어 사건 당시를 회상하는 수사법인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를 작품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에 전시된 심래정 작가의 '식인왕국 : 심령수사']


심래정 작가는 "죽음에 관해서 작업을 해왔는데 최근에는 여러 죽음 중에 연쇄살인에 관한 것을 알아보다가 식인에 관한 작업을 하게 됐다" 며 "식인 행위를 통해서 희생된 모넬라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 사람에 대한 사후 세계나 혹은 그녀가 어떻게 희생됐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을 드로잉과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봤다"고 말했다.

'식인왕국 : 심령수사' 작품에는 코튼100%라고 쓰여있는 모넬라의 옷이 보이고 이것을 사이코메트리를 해서 모넬라가 어떻게 죽었는지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백경호 작가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각의 캔버스를 벗어나 적응 중인 한국의 백경호 작가

백경호 작가의 회화는 전통의 사각 틀을 거부한다. 과거 여행에서 마주했던 모아이 석상처럼 둥근 머리도 있고, 팔과 몸통이 있다. 작가는 회화라는 큰 틀 안에서 이미지나 색채들을 거침없이 배치하고 두서없이 표출함으로써 이미지의 조형적 가능성과 유희의 한계를 끊임없이 탐문하고 확장한다.

백경호 작가는 "기존의 사각형 프레임이 아니라 원형의 캔버스가 추가된, 변형된 프레임이다" 며 "먼가 사람이 항상 놓여있고 이것을 전체 프레임으로 삼아 그 안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것을 생각해서 시작했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에 전시된 백경호 작가의 '천사 시리즈']


전시장에는 천사(Angel) 시리즈와 꽃무덤(Flower Grave) 시리즈가 전시됐다.

'천사 시리즈'는 사각 캔버스 양쪽에 날개가 달렸으며, 중앙에는 실제 티셔츠를 매달아 그 위를 채색했다. 날개 사이에는 둥그런 웃는 얼굴도 달려있어 마치 조각 작품처럼 보인다.

백경호 작가는 "모티프(motif)가 됐던 것은 유럽 여행에서 봤던 천사 조각상이다" 며 "그림을 그릴 때는 계획 없이 그림을 그리는데 과정 중에서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에 전시된 백경호 작가의 '꽃무덤 시리즈']


'꽃무덤 시리즈' 또한 형태가 흥미롭다. 사각의 캔버스 위에 둥그런 얼굴이 달려 있다. 꽃의 무덤에는 '모든 이에게 축복을 빈다'는 글이 쓰여 있고, 마치 하늘로 향하는 천국의 계단이 얼굴 아래까지 그려져 있다.


"처음에 꽃을 위한 무덤을 생각했었고 사유를 어떻게 풀까 고민을 하다가 무덤 공간으로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주된 모티프는 계단이다. 하늘을 향해 끝없이 올라가는 계단을 상상하면서 공간을 구성했다."

백경호 작가의 사각과 동그라미의 조합이 만드는 특별한 캔버스는 구성적 형상을 명확히 제시하지만, 그 내부를 가득 채운 색채나 질감들은 대부분 추상적이다. 음과 양으로 대비되는 구상과 추상의 대립과 조화는 이번 전시의 주제인 '시차적응법(JET LAGGED)'을 완벽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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