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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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입력 2018-08-0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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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가수트라> I.27

배철현 교수 (서울대 종교학) 


변화變化

파탄잘리는 <요가수트라> I.23-26에서 이슈바라를 정의했고, <요가 수트라> I.27-29에서는 이슈바라를 직접 경험하게 만든다. 이 세 구절들을 이해하기 위해 음성을 통해 신을 만나는 ‘주문’은 무엇이며, 요가 전통 안에서 그 중요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 구절은 이슈바라를 뜻하는 주문 ‘옴’을 소개한다. ‘옴’은 삼라만상이 생성되고 진화하고 소멸하는 창조의 소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태양 주위를 회전하며 지구가 속한 태양계는 우주의 한 축인 블랙홀 주위를 빠른 속도로 돌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쓰고 있는 내 몸 안에서 셀 수 없는 세포들이 생멸을 반복하고, 과학의 관찰을 초월하는 더 미세한 세포들도 무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시간이라는 우주의 거대한 원칙 안에서 만물은 변화한다.

기원전 6세기 오늘날 터기 에베소 출신 철학자 헤라클리투스는 자연과 인간의 심오한 관찰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판타 레이”. 이 고대 그리스어 문장을 번역하자면, “만물은 변한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웅장한 산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바다도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 우주를 관장하는 ‘시간’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곧 “변화한다”라는 의미다. 헤라클리투스는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는 허상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강둑 위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어떤 인간도 동일한 강을 두 번 건널 수 없다.

나는 북한강이 굽이쳐 흘러 들어와 한 바퀴 돌아나가는 시골에 산다. 1월이면 끝없이 펼쳐진 강이 서서히 얼기 시작하여 급기야 내 시야 안의 강은 모두 언다. 밤이면 수십만평되는 강이 하나가 되어 ‘쿵쿵’하는 장엄한 소리를 2월 말까지 낸다. 내 삶의 반려견들도 어디서 괴물이 등장했는 줄 알고 마당으로 나가 강에 대고 짖어댄다. 이 소리는 특히 한적한 밤에 선명하게 들린다. 강 전체가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변화하는 과정을 소리도 알려준다.



신은 무슨 행위로 우주를 창조했을까? 138억년 전 우주가 지극히 작은 점에서 엄청난 힘으로 팽창하기 시작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는 흔히 그 순간을 ‘빅뱅’이라고 말한다. ‘빅뱅’이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소리를 넘어선 큰 소리다. 우리는 그 순간을 인간의 오감 중 청각을 통해 ‘소리’로 표현하였다.

기원전 6세기 한 유대 시인은 이 빅뱅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빛이 있으라!” (<창세기> 1.3) 빛의 생성의 원인은 말이다. 말을 통하지 않고는 빛이 생성될 수 없다. <창세기> 1.1-절은 처음 상태, 즉 창조 이전 혼돈의 상태에 대한 설명이다. 1~2절은 사실상 종속절이므로 주절은 3절이라고 볼 수 있다. 1장 3절은 <창세기>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성서 전체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첫 문장은 어떤 단어로 시작될까? 그 단어는 다름 아닌 ‘말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마르’라는 히브리어 동사다. “신은 말했다. “빛이 있으라!” 그랬더니 빛이 생겨났다.”신은 누구에게 말했는가? 이 광활한 우주 안에서 신은 말할 상대가 있었는가? 이 우주에는 신 자신밖에 없었다.

이 시를 쓴 시인은 당시 근동 지방과 지중해에서 회자되던 우주 창조 신화와 인간 창조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관심은 사막에 앉아 하늘의 별을 보고 한가하게 일장춘몽과 같은 우화를 되풀이하는 데에 있지 않았다. 전쟁 포로로 잡혀와 바빌론의 지구라트와 찬란한 문명에 압도되어 점점 아브라함과 모세의 비전과 영감을 잃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우주 창조 이야기는 다른 문명의 신화 내용과 접근 방법이 유사하다. 하지만 그는 ‘말하다’라는 단어를 통해 그들의 잠자는 영성을 깨우려고 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신은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 항상 ‘말’을 통해 명령한다. 신은 말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제로 존재하게 한다. ‘아마르’라는 동사 단어는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다바르는 ‘말’과 ‘행동’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 이유는 말이 곧 행동이기 때문이다. 창조자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행위자다.

이 유대 시인의 혜안을 기원후 120년경 ‘요한’이라고 불리는 그리스도교 저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 그 말이 신과 함께 있었고 그 말이 신이다.” (<요한복음> 1.1) 요한은 혼돈을 질서로 변화시킨 원초적인 힘을 ‘말’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진정한 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말을 통해 우주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요한은 심지어 ‘말이 신이다’라고 주장한다. 말은 오랜 생각의 표현이다.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이나 외부의 자극에 의해 나오는 말은 말이 아니다. 그저 지껄이는 소리다. 내가 명상으로 숙성하고 입으로 세상에 던진 말은,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져야한다. 행동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는 말을 ‘거짓’이라고 부른다. 내가 거짓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침묵(沈默)'뿐이다.

기원전 12세기경 노래로 만들어져 회자된 인도의 가장 오래된 경전인 리그베다의 <크리슈나 아주르베다>의 ‘카타가 삼히타> 12.5에서도 말의 선재성先在性을 노래한다. “태초에 파라자파티(브라만)가 있었다. 그와 함께 말(vag)이 있었다. 그리고 말은 진실로 브라만이었다.” <바가바드기타> 7.8에서 신은 말한다. “오, 아루주나여! 나는 물속에 존재하는 액체성이며, 달과 태양에 존재하는 광채다. 모든 베다에는 거룩한 소리인 ‘옴’이다. 공기 중에 있는 소리이며, 인간에 존재하는 힘이다.” <리그베다>와 <바가바트기타>에서의 소리는 바다를 바다답게 만드는 성질, 모든 물들을 한데로 모이게 만드는 그 내재적인 힘이다. 혹은 달과 태양이 발산한 빛을 온전하게 사방에 퍼뜨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그것은 나의 목숨을 매 순간 유지시켜주는 공기이며, 나를 나답게 만드는 힘이다.

 

세로파라날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사막에 있는 산, 세로파라날 천문대에서 촬영한 은하수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



만트라

‘만트라’mantra는 우주를 생성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탱하는 신의 속성을 표현하는 소리다. 만트라 묵상은 요가 수련자들을 신의 활동을 감지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수단이다. ‘만트라’는 ‘생각하다’라는 산스크리트어 동사 ‘만’man-과 ‘도구’를 의미하는 명사어미인 ‘트라’-tra의 합성어다. ‘만트라’를 직역하자면, ‘깊은 생각을 도와주는 도구’다. 한자로는 ‘진언(眞言)'이라고 번역되었다.

만트라는 인간의 인위적인 소리가 아니라 삼라만상이 우주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소리와 자신을 일치시키기 위한 소리 수련이다. 소리는 우리를 치유하기도 하고 불안하게도 만든다. 날카로운 철이 철로 만든 냄비를 긁는 소리는 나를 그 순간에 움츠러들게 만들어 오감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반면에 한적한 바닷가에서 지속적으로 들리는 파도 소리는 나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킨다. 만트라는 요가 수련자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고 몰입하게 훈련시킨다. 만트라가 내뿜는 파장은 요가수련자를 더욱 더 깊은 참 자신을 대면하도록 삼매경으로 인도한다. 나의 만트라는 무엇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듣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되새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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