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공정위 ‘의심스러운 고용’ 자초한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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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차장
입력 2018-08-02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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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생활경제부 차장]

“의심이 가거든 고용하지 말라. 의심하면서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 그리고 고용된 사람도 결코 제 역량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을 채용할 때 신중을 기하라. 일단 채용했으면 대담하게 일을 맡겨라.”

한국경제의 초석을 닦은 고(故)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말이다. 호암이 1938년 단돈 3만원으로 대구 서문시장에서 시작한 삼성상회를 지금의 글로벌 일류 기업 삼성으로 성장시킨 배경은 ‘인재제일’ 철학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대다수 대기업들은 호암의 인재제일 철학을 간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동안 조직적으로 퇴직자의 ‘특혜 재취업’을 불법적으로 알선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전직 공정위원장과 부위원장이 구속되는 등 공정위 37년 역사상 처음 있는 불명예 사건이다.

검찰은 공정위 직원들이 대기업과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퇴직 후 취업 등 대가를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고위공직자는 퇴직 후 직전 5년간 본인 업무와 관련 있는 기관·기업에 3년간 재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의 인사부서인 운영지원과는 ‘퇴직자 관리 방안’ 문건을 내부 작성했으며, 4급 이상 퇴직 예정 간부들의 취업 리스트를 작성해 주요 대기업들을 상대로 이들을 고문 등으로 채용하라고 압박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행정고시 출신 퇴직자는 2억5000만원 안팎, 비고시 출신은 1억5000만원 안팎으로 연봉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입사한 공정위 퇴직자들은 별다른 업무를 맡지 않았고 제대로 출근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 연루돼 수사선상에 오른 기업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가장 먼저 압수수색을 받은 신세계그룹 계열 신세계페이먼츠를 비롯해 대림산업, 중외제약 지주사 JW홀딩스, 현대·기아차, 현대건설, 현대백화점, 쿠팡 등이다.

이들 기업은 하나같이 “경제 검찰인 공정위의 갑질(채용 청탁)로 어쩔 수 없이 고문이나 자문 자리를 준 것”이라면서 “검찰 수사까지 받으니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렇게 억울하다면, 호암의 말대로 아예 ‘의심스러운 고용’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검찰은 공정위와 해당 기업이 ‘불법 취업’과 ‘사건 부당 종결’을 맞바꾸는 등 유착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앞서 공정위 전·현직 간부들은 신세계 이명희 회장 등 대기업 사주의 차명주식을 발견하고도 묵인해준 사례가 있다. 또 기업 공시의무를 위반한 네이버 등 30여곳 역시 검찰 고발 등 제재 없이 넘어가기도 했다.

어쩐지 최순실 국정농단의 사건과 닮은꼴이다. 삼성과 롯데는 K스포츠재단 등에 준 돈이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오너가 모두 구속되는 불운한 사태를 맞았다.

공정위가 기업을 상대로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해온 것은 맞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언제까지 그들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기만 할 것인가. 대가성이 없는 채용이라면, 일단 채용 후 ‘별다른 업무도 맡기지 않은’ 기업의 책임도 면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호암이 꼬집은 ‘의심스러운 고용’이다.
 

세종 정부종합청사 내 공정거래위원회 입구 현판 [사진=이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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