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20m 대작에 담은 보통의 이야기" 좌혜선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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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 기자
입력 2018-07-17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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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보통의 이야기' 8월 19일까지


공원 벤치에 앉아서 깊은 사색에 잠기거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자동차가 오가는 도시의 거리에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시민, 여름철 아이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여인, 비 오는 날에 우산을 쓰고 갈 길을 재촉하는 여인, 눈 오는 날에 거리를 배회하는 길고양이 등 이 모든 장면이 한 개의 작품 안에 담긴 것이 흥미롭다. 
목탄으로 그려진 흑백의 풍경화는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절이 모두 존재하는 기묘한 세상이다. 

[좌혜선 작가가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삼청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삼청에서 8월 19일까지 좌혜선(34)의 개인전 '가장 보통의 이야기'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 15점을 이어붙인 목탄 드로잉 연작과, 짧은 소설 15점, 채색화 7점 등 총 37점을 선보인다.

지하 1층에 들어서니 이어진 두 쪽의 벽면이 100호짜리 15개 작품을 어어 붙인 대작이 마치 파노라마 사진처럼 쭉 펼쳐져 있다. 그 옆에는 15점의 소설이 늘어서 있다. 이 모든 것이 '가장 보통의 이야기'라는 한 작품이다.

좌혜선 작가는 "2년여에 걸쳐서 그림 작업을 해봤고 하나로 이어진 풍경이지만 하나하나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며 "하나하나 단편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로 모였을 때는 우리가 다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좌 작가는 이어 "15개 연작은 낮과 밤이라는 시간이 섞여 있고,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감이 하나로 이어진 전체 풍경화이다"고 말했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삼청에 전시된 좌혜선 작가의 15작품 연작 '가장 보통의 이야기']


연작의 길이는 20m가량 되고 전시장에 맞춰서 제작한 것이다.

"전시 공간을 고려해서 배치를 생각하면서 작업을 했다. 작품을 이 길이로 처음부터 정해서 한꺼번에 구성을 한 것은 아니고 하나하나 구성하면서 이런 형태가 됐다. 어느 정도 작품이 만들어진 다음에 전시장에 들려서 설치하는 것을 참고하고 크기를 조절했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삼청에 전시된 좌혜선 작가의 '가장 보통의 이야기' 작품 중의 소설]


연작들은 전부 목탄을 사용한 단색화이다. 좌 작가가 목탄을 사용한 이유는 회화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채우기 위해서다.

목탄은 버드나무, 회양목, 너도밤나무 등을 구워서 만든 가늘고 부드러운 소묘 재료를 말한다.

"보통 회화 작업이 가진 아쉬운 점이 있어서 다른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다가 목탄을 선택하게 됐다. 목탄은 하나하나 선이 닿는 재료이고 시간을 쌓아 나가는 작업이 가능하다."

15점의 연작과 함께 선보인 15점의 소설은 작가가 '방문 미술 교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시절에 실제로 봤거나 전해 들었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쓴 것이다. A3용지 한 장 분량의 소설은 글씨체가 전부 달랐다.

좌혜선 작가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쓴 것이고 내용은 사람 하나하나마다 약간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사건을 다룬 이야기들이다" 며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종이에 옮겨진 이야기들이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경계를 흐리며 더욱 있음 직한 이야기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삼청에 전시된 좌혜선 작가의 '출근길']


소설이 내용은 지긋지긋한 직장에서 벗어날 수도,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수도 없는 아버지, 남편을 손버릇을 닮아 친구의 뺨을 때린 초등학생 아들을 둔 젊은 엄마, 손주를 원해 아들 내외에게 굿까지 해준 할머니, 기별도 없이 수시로 가출하는 엄마를 둔 딸의 이야기 등이다.

'가장 보통의 이야기'라는 작품의 제목과 맞지 않게 어떤 면에서는 절대 평범하지 않은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1층에서는 유난히 어두운 바탕의 채색화 7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길가에 핀 장미꽃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남자의 옆모습, 비행기 안에서 창을 통해 하늘을 보는 여인의 옆모습,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이의 뒷모습,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여인의 뒷모습, 손을 잡고 걸어가는 형제의 뒷모습 등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지만 어둡고 음울한 기운을 풍기고 있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삼청에 전시된 좌혜선 작가의 '귀가2']


좌 작가는 그림 속 인물들을 모두 누군지 알 수 없도록 모호하게 표현했다. 성별이나 연령대 정도만 가늠할 수 있게 뒷모습만 등장하거나, 표정과 이목구비 등은 알아볼 수 없게 흐릿하다. 정확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이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 사연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좌혜선 작가는 "얼굴을 알아보면 얘기들이 좀 더 한계지어진다. 넓게 보고 싶었고 바라보는 분들이 낯익게 느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작품을 보면서 가까운 이웃이든 자기 자신이 든 사람들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렇게 '가장 보통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지만, 가장 보통의 삶이란 지금 우리의 현재이면서도 가장 다다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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