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작업'은 택배기사 업무일까?…법적 논란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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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18-07-1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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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으로 치닫는 배송수수료 갈등...택배원 업무 범위는 어디까지?

  • 택배기사들, 분류작업 7시간 '공짜노동' 주장

  • CJ대한통운 “관련 작업비 이미 지급…법적 문제도 없어”

  • 분류작업 노동주체 명확한 정의 없어…법조계 “논의 필요”

[사진=택배 분류작업 노동의 주체를 누구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노동계와 기업간의 의견 충돌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사진은 CJ택배원들이 분류작업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제공.]

 

“택배기사의 주된 업무는 배송이다. 분류작업은 추가 노동을 요구하는 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라.”(CJ택배기사) “택배기사 업무에 집화와 배송작업이 포함된다. 지급 중인 배송수수료에 이미 분류작업 대가가 들어있다.”(CJ대한통운)

택배 분류작업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배송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당일배송체계 뒤에는 택배기사들의 눈물겨운 분류작업이 있다. 그동안 분류작업은 택배기사 업무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는데, 최근 벌어지는 논쟁은 과연 이 합의가 유효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된다.

택배기사들은 부수 업무로 취급하던 분류작업이 주업무인 배송업무를 넘어설 정도로 과중해진 만큼 사측이 별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사측은 택배기사 분류작업 대가는 이미 배송수수료에 포함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 대립이 파업이나 법적 분쟁 등 극한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와 노동계에서는 택배업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택배노동자들의 현행 ‘무임금 분류작업’에 대한 개선책을 요구하면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노조 측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CJ대한통운에 ‘부당한 노무로 인한 부당이득 반환’ 집단소송을 할 계획이다. CJ대한통운이 경제적 약자인 도급 택배기사에게 분류작업을 하도록 강요해 부당한 이득을 얻었다는 이유에서다.

택배노조는 택배기사들이 하루 작업하는 14시간의 노동 중 화물분류와 상하차 작업에 걸리는 시간(6~7시간)이 무임금 노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같은 분류작업을 하더라도 직영기사들은 늘어난 노동시간만큼 대가를 받는다. 그러나 택배기사들은 특수형태근로자로서 ‘배송 건당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분류작업에 대한 아무런 대가가 없다.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이라고 하지만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시간 외 무임금 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만큼 현행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분류작업은 택배기업의 허브터미널(메인 거점)에서 서브터미널(지역별 거점)로 옮겨진 택배를 다시 지역별로 구분해 차량에 싣는 작업을 말한다. 택배서비스 업무는 화물을 송하인으로부터 수집하는 집하업무, 목적지별로 분류해 지역센터로 운송하는 운송업무, 지역센터에서 수령인에게 배송하는 배송업무 세 가지로 구성된다. 통상 택배기사는 그날 자신이 배송할 물건을 배달지 순서에 따라 차량에 싣는 분류업무와 배송업무를 담당해왔다.

최근 분류작업 임금체계가 문제가 된 건 택배 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택배물량은 2000년 2억269개에서 2016년 20억4701만개로, 매출액은 3862억원에서 4조7444억원으로 15년 동안 각각 10.3배, 12.3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경제활동인구 1인당 택배 이용횟수 역시 5회에서 75.1회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물량이 별로 없던 10여년 전에는 분류작업이 1~2시간 이내였기 때문에 건당 수수료를 받아도 문제가 안됐지만 지금은 분류작업에만 하루 6~7시간이 걸린다”라면서 “택배기사는 배송건당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분류작업은 무상노동을 강요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택배기사는 제품을 배송하는 노동자이지, 제품을 분류하는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분류작업이 길어지면서 사측이 추가 임금을 줘야 하는 직영기사 대신 특수고용형태인 택배기사를 동원해 분류작업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조세화 변호사는 “이 부분에 대해 사측이 부당한 노무로 부당이득을 취하진 않았는지 법적으로 따져볼 계획”이라면서 “최저시급으로 계산하더라도 택배기사들의 누적된 근로시간이 상당하므로 배상액이 커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반면 택배기사를 고용하고 있는 물류회사 측은 분류작업비는 기존 배송수수료에 포함됐다고 주장한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택배 수수료에 분류작업비가 포함돼 있다’라는 논리는 이미 법원에서 다수 판결로 증명된 사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며 "직영기사 역시 다른 택배기사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수당 없이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미 전국 지역 터미널 80% 이상에 자동분류설비를 설치해 분류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은 2~3시간 정도"라며 "택배기사는 자기 담당구역 화물인지만 확인해 차량 적재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법원 판결은 어떨까. 법원은 여러 판결에서 택배업에 대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서울지방법원은 현대택배가 영업소를 상대로 제기한 운송대금 등 사해행위 취소 손해배상 판결에서 택배업무 범위는 택배화물 집하와 배송, 그 밖의 부수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서울고등법원 역시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영업소가 제기한 화물분류작업비 부당이득금 등 청구소송에서 “그동안 원고를 포함한 여러 운영자가 운송계약을 체결한 뒤에도 분류작업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면서 “이에 대한 묵시적인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서는 분류작업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 법무법인의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이들 판결은 택배노동자가 아닌 영업소를 대상으로 했고, 업무 범위에 대한 묵시적 합의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한 점 등을 고려할 때 확대 해석하기에 무리가 있다”며 “법원이 근거로 삼은 택배업에 대한 소송은 위탁대리점주가 제기한 것이 대부분으로, 위탁대리점은 택배기사와 업무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택배기사 업무와 분류작업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린 판례는 아직 없다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변호사 역시 “분류작업을 택배기사 업무로 인정하던 업계 관행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실상 깨진 것이기 때문에 법원이 기존 판례대로 이를 해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서도 이와 관련한 청원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 23일 게시된 ‘7시간 공짜노동 분류작업 개선·CJ대한통운 교섭 촉구’라는 제목의 택배노동자 근무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청원에는 현재 약 6만명이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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