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8년 만에 '활짝' 웃은 류샤…남편 류샤오보 유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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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선 기자
입력 2018-07-1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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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 '가택연금' 끝에 석방…신병치료차 독일방문

  • 시인, 사진작가로 다재다능…남편 옥살이 후 '민주투사' 변신

  • 무역전쟁 의식한 중국이 독일에 인권문제 양보했다는 해석도

중국 인권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의 부인 류샤가 10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국제공항에 도착, 활짝 웃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중국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인권변호사 고(故) 류샤오보(劉曉波)의 아내 류샤(劉霞)가 지난 10일 8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류샤오보의 기일을 사흘 앞두고서다.

2009년 ‘국가정권 전복선동죄'로 11년형을 선고 받고 수감 중이던 류샤오보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석방돼 지난해 7월 13일 사망했다. 류샤오보는 수감 중이던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불참한 그를 대신한 ‘빈 의자’에는 노벨상 메달과 증서만 놓여있었다.

그때부터 지난 8년간 줄곧 중국 당국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였던 류샤가 지난 10일 석방됐다. 이날 중국 외교부는 그가 신병 치료차 독일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류샤는 사실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집 귀한 딸이었다. 그의 부친은 중국 재경계통 차관급까지 오른 인물로, 중앙재경대 당서기 직까지 올랐다. 부친은 딸을 위해 국가세무국에 자리까지 마련해줬지만 자유로운 성향의 류샤에게 공무원 직은 답답하기만 했다. 결국 그는 자유를 선택했다.

다재다능했던 류샤는 중국에서 유명한 시인, 화가 겸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그가 류샤오보를 처음 만난 건 1989년 5월 톈안먼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다. 당시 둘 다 모두 기혼자였다. 당시엔 그저 문학을 논하는 친구 사이로 지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해 6월 4일 발발한 톈안먼 사태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당국에 붙잡힌 류샤오보는 20개월간 구금됐다. 이후 감옥에서 풀려 나왔을 때는 베이징 사범대 교수 자리도 박탈당했고, 가정은 파탄 상태였다. 류샤 역시 이혼 후 홀로 방황하던 때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만났고, 민주화 운동의 동지로, 연인으로 발전했다. 류샤의 부모도 둘 사이를 반대하기는커녕 지지를 보냈다.

류샤의 사진작품. [출처=www.liu-xiaobo.org(류샤오보단체)]


하지만 두 사람의 연애사도 평탄하지는 않았다. 류샤오보는 복역을 마친 후에도 중국에 남아 민주화 운동을 계속했다. 1995년 5월 톈안먼 사태의 진상 규명과 정치개혁을 요구하던 그는 또다시 당국에 의해 8개월간 베이징 인근에 감금됐다. 그리고 결국 3년형을 선고 받고 다롄 노동교화소에 수감됐다.

당시 류샤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다롄까지 몇 시간씩 기차를 타고 류샤오보를 만나러 갔다. 하지만 연인 사이였던 류샤에게 면회는 허용되지 않았다. 류샤오보는 옥중에서 류샤와 혼인신고를 마쳤다. 두 사람의 혼인신고는 공안부 부부장의 허가까지 얻어야 할 정도로 힘겨웠다. 당시 류샤는 “국가의 적에게 시집을 간다”고 말했고, 류샤오보는 “한 여인에게서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찾았다"고 표현했다.

류샤오보(왼쪽)과 류샤 부부. [출처=www.liu-xiaobo.org(류샤오보단체)]


류샤오보는 아내를 ‘작은 새우’라 불렀다. 류샤의 ‘샤(霞)’의 중국어 동음어인 蝦(새우)’에서 따온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과거 미국 온라인 매체인 쿼츠가 공개한 류샤오보의 옥중 편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류샤오보는 세 번의 옥고를 치른 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는 2008년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08헌장’ 서명운동을 주도하다가 국가 전복 선동혐의로 2009년 징역 11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옥중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류샤오보의 아내 류샤도 가택연금을 당했다.

사실 류샤는 연약한 데다가 원래 휴대폰이나 인터넷을 전혀 할 줄도 모르는 기계치였다. 하지만 류샤오보가 감옥에 간 후 민주화 투사로 변신했다. 머리를 짧게 삭발한 그는 컴퓨터 신기술을 배우고, 감옥에 갇힌 류샤오보를 대신해 트위터 등을 통해 남편의 수감생활과 중국 인권 문제 등을 폭로했다.

중국 반체제 작가 위제는 류샤를 ‘위대한 여인’이라고 표현했다.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 전 파리대 교수는 류샤는 ‘중국의 유태인’이라고 표현했다. 소르망 교수는 가택 연금된 류샤를 대신해 전 세계에서 그의 사진전을 20차례 열었을 정도로 그를 아낌없이 지지했다.

류샤오보는 지난해 7월 "잘 사시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잃은 류샤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당국의 가택연금 조치는 풀리지 않았다. 당시 국제사회는 류샤가 법적 근거 없이 행동의 자유를 제한받고 있다며 그를 석방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렉스 틸러슨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직접 “부인 류샤가 중국을 떠날 수 있도록 중국 당국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지난 10일 8년 만에야 가택연금이 풀린 류샤는 베이징을 출발해 핀란드 헬싱키를 경유하고 오후 5시께 베를린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나오는 그가 팔을 벌리며 활짝 웃는 모습을 전 세계인이 주목했다. 

일각에서는 류샤의 출국이 리커창 중국 총리가 독일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만나 회담을 가진 지 하루 만에 허용된 점을 주목했다. 그동안 독일 정부는 류샤가 자국으로 오면 언제나 환영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이를 두고 AP통신 등은 미국과 무역갈등을 겪는 중국 정부가 독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인권 문제에서 양보차 류샤를 석방시켜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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