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조선시대 '징신'이 토즈 신발의 원형?"수제화 장인 특별전..국립민속박물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홍준성 기자
입력 2018-07-03 19:39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세대를 넘어-수제화장인 특별전 10월 15일까지

조선 시대 '징신'은 원형 돌기가 밑창에 촘촘히 박혀 있어서 바닥의 흙이 달라붙지 않고 어느 정도 방수 효과도 있다. 옆에 놓인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구두 제조업체 토즈에서 만든 2018년 신상 신발과 비교해도 디자인에서 밀리지 않았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징신과 토즈 신상품]


국립민속박물관은 기획전시실2에서 10월 15일까지 '세대를 넘어-수제화 장인'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4년 송림수제화를 조사하고 작성한 '을지로 수표교에서 4대 80년-송림수제화의 장인들' 보고서를 바탕으로 수제화 제작도구, 산악인 허영호의 수제 등산화, 구두를 신은 고종황제의 사진 등 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 약 131건 224점을 선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구두를 신은 고종 황제 사진]


전시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신발의 발달 과정을 비디오 작품으로 보여주는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영상은 가죽으로 발을 싸는 것으로 시작해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신발을 만들고 그 신발로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는 이야기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양혜목형제조기 관련 기사]


▶1부 구두 갖바치

가죽신을 만드는 장인인 갖바치는 조선 시대에 천한 신분이었지만, 근대에는 군의 서기보다 4배나 많은 급여를 받는 위치까지 올라갔다.

1부에서는 조선 시대 갖바치가 만들었던 징신부터 대통령이 신은 수제화 가죽구두의 이야기까지 만날 수 있다.

전시장 한쪽에 조선 시대 징신과 이탈리아의 명품 토즈 신발이 나란히 놓여 있다.

구두는 구한말 일본어 '구츠'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구두가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은 조선 시대부터 신발을 만드는 기술력이 있었고 그것은 '징신'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혁화공, 갓신깁고, 신삼는 사람, 목혜파는 모양 등 전시장에는 조선 시대에 신을 만드는 모습이 그림으로 재현됐다.

외국의복제도가 법으로 허용된 것은 1895년 고종 32년 때다. 전시된 신문기사에는 '의복제도는 외국의 것을 채용도 무방함'이라고 쓰여 있다. 그 전에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은 불법이었다.

한국의 첫 양화점은 1898년 이규익 양화점이었다. 1895년 외국의복제도가 발표된지 3년 만이어서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개점 2년만에 폐업했다.
하지만 당시에 군의 서기가 12원을 월급으로 받을 때 1등 직공은 48원을 받았다. 가파치가 아니라 이제 장인이 된 것이다.

구두가 본격적으로 일상생활에 들어온 것은 1926년 양혜목형제조기를 만들면서부터다.
구두를 만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라스트(Last, 구두골)라고 불리는 나무로 만든 발 모양 조각이다. 항상 손으로 직접 깎아서 만들었지만, 목형 제조기 발명 이후 목형을 대량으로 생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사진에는 한복에 구두를 신고 다니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일상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1950년대 군화로 만든 등산화]


▶2부 백 년의 가게

2부 '백 년의 가게'에서는 서울 을지로 수표교에서 4대에 걸쳐 83년의 역사를 지닌 송림수제화의 이야기를 다룬다.

1936년 시작한 송림수제화는 1950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등산화를 만들었다.
그 당시에 등산화를 만들 기술이 없어서 군화의 목 부분을 줄이고 밑창만 바꿔서 등산화를 만들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송림수제화에 대한 고객의 감사 편지]


전시장 한쪽에 마련된 작은 방에는 1970년 후반부터 1990년 초반까지 신문과 잡지에 나왔던 송림수제화의 광고들을 모아 놨다.

1955년에 발행된 지도에는 을지로 3가에 있던 송림수제화의 위치와 서울의 주요 상가들이 표시돼 있다.

방 한쪽에는 표창장, 인증서 등 최근에 받았던 상들과, 소비자들에게서 온 감사편지들이 전시됐다.

편지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발상태도 많이 좋아지고 있어 고마운 시간들이랍니다', '가죽 이중화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다시 힘찬 한걸음' 등의 글이 쓰여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수제화 제작 과정 중에 접객 부분]


▶3부 천 번의 손길

수제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천 번의 망치질과 못질을 해야 한다. 수제화 제작과정은 접객, 가죽 재단, 갑피, 저부의 과정으로 이뤄지고 전시는 이에 맞춰 구두 제작 과정을 설명한다.

갑피는 바닥창을 뺀 가죽 부분을 디자인에 맞춰 자르고 박음질해서 붙이는 공정이고, 저부는 겉가죽을 바닥창에 붙이고 밑창과 굽, 깔창 작업까지 해 구두를 완성하는 공정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수제화 제작 과정 중에 재단 공정]


먼저 접객에서는 손님의 발의 형을 석고로 만들고 이를 기초로 깔창을 제작한다. 석고형으로 깔창을 만드는 작업은 구두를 만드는 공정 중에 가장 중요하며, 실제로 송림수제화 측에서도 기업 비밀로 여겨 공개를 안 했다.

재단에서는 종이를 이용해 재단하고, 재단된 종이에 맞춰 가죽을 잘라 낸다.

잘라낸 가죽으로 구두의 윗부분인 갑피를 만들고, 갑피를 깔창에 붙이고 밑창을 덧대는 저부공정으로 구두를 완성한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수제화 제작 과정 중에 갑피 공정]


이밖에 전시장에는 수제화와 관련된 특별한 전시물들이 있다.

1967년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제화 부분에서 한국인으로 첫 금메달을 딴 배진효씨의 사진과 상장이 전시됐다.

스키부대에 납품했던 스키화도 있고, 88서울올림픽 때 사격단 선수들이 신었던 신발도 전시됐다.

허영호 대장이 북극점을 횡단할 때 신었던 신발과 에베레스트 등정 때 사용했던 등산화도 눈여겨 볼 만하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수제화 제작 과정 중에 저부 공정]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