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근무 시행] ② 출퇴근 여유 생겨 脫서울 확산…출산율도 증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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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훈·임애신 기자
입력 2018-06-27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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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취미생활·공부 등 자기계발 집중, 전문성 활용해 부가수입 올리기도

  • - 출퇴근 시간 여유 생겨 脫서울 현상 확대 예상…출산율 증가도 기대

[사진=프렌트립]


#직장인 윤모씨(35·여)는 매주 화요일이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나만의 밀크티 베이스 만들기' 클래스에서 호스트로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취미로 배운 밀크티 제조법을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소소한 성취감과 함께 딸려오는 수입은 '덤'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교제의 즐거움도 크다.

#직장인 김민정씨(31)는 퇴근시간이 2시간 정도 빨라진 후 경기도로 이사했다. 서울에선 단칸방밖에 구하지 못했지만 같은 돈으로 경기도로 이사하면 방 2개짜리 다세대주택에서 살 수 있다. 방마다 콘셉트를 잡아서 서재, 드레스룸, 운동룸으로 꾸몄다. 출퇴근 시간은 전보다 길어졌지만 집 평수가 확연히 넓어진 데다 물가도 저렴해 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쏟아지는 업무, 밥먹듯이 하는 야근, 직장의 비공식 연장근무이던 회식 전쟁. 직장인들의 일상이었던 이 같은 풍경이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직장인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자기계발이다. 그동안 바빠서, 시간이 맞지 않아서, 격무에 지쳐서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 또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판단에서다. 

26일 액티비티&여행 플랫폼 프렌트립에 따르면 지난달 가입자 수는 약 42만명으로 1년 사이 40% 넘게 증가했다. 월평균 참가자 수는 약 9000명으로 같은 기간 80%가량 늘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자신만의 공간에서 쉬는 것을 뜻하는 '케렌시아' 문화가 2030의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취미 공유 플랫폼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케렌시아는 스페인어로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을 뜻한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의 휴식 장소나 휴식거리' 혹은 '그것을 찾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대표적인 케렌시아로 책과 맥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책맥카페', 맥주와 요가를 즐기는 '비어요가' 등이 있다. 이는 단순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휴식을 원하는 이들이 주 수요층이다.

나만의 고체향수 만들기, 한강 야경 카약 투어, 수제맥주 만들기, 자아성찰 워크숍, 유기농 화장품 제조하기, 웰빙 야경 등산 등 종류도 다양하다. 기존에 학원에서 열리지 않던 사소한 취미 활동부터 전문적인 강습까지 약 1000개의 클래스가 제공되고 있다.

수업을 진행하는 사람은 취미 활동으로 돈을 벌 수 있고, 그동안 배우고 싶었는데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은 하루 두 시간만 시간을 내면 배울 수 있다. 

퇴근 후 호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김모씨는 "직장인이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부가 수입을 올릴 수 있어서 큰 장점이 있다"며 "주 52시간이 시행되면 '투잡'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인구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시행은 단순히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넓은 시각에서 보면 주거와 출산 등 가족 계획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서울엔 대기업·정부기관 등 주요 업체들이 몰려 있다. 청년층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는 이야기다. 돈이 흐르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살인적인 서울 집값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평균 집값은 7억원에 달한다. 단순히 계산하면 연봉 3000만원인 사람이 급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모은다고 해도 서울에 집을 구하려면 23년 넘게 걸린다. '죽을 때까지 일해도 서울에 집 사긴 글렀다'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퇴근 시간이 빨라지면 주거 환경부터 바꾸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정모씨(29)는 "처음에 집을 구할 때 잠을 잘 수 있는 곳이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살다 보니 집이라는 게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며 "단 한 시간을 머물더라도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고 밝혔다. 

실제 이 같은 '탈(脫)서울' 현상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경기도에 6만 가구가 순유입된 반면, 같은 기간 서울은 2만8000가구 줄었다. 출퇴근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거주지를 서울에서 경기도로 옮기려는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교통 인프라 개선으로 인해 출퇴근 시간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다음달 1일부터 수도권에서 운행 중인 경인·경원·장항·분당·경의선 등 광역전철 5개 노선에 총 34회의 급행전철을 신설 또는 확대 운행한다.

근로시간 단축은 장기적으로 출산율 증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워킹맘 한사라씨는 "야근이 잦아서 둘째는 엄두를 못 냈는데 지금처럼 오후 5시 30분에 퇴근이 가능하다면 하나 더 낳아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든다"며 "남편이 역시 유연근무제가 가능한 직종이라서 한 사람이 아침에 아이를 돌본 후 좀 늦게 출근하고, 다른 한 사람은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빨리 퇴근해 아이를 돌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유연근무제 정착을 위해 기업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놨다. 재택·원격근무를 확대하는 기업에 시스템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의 50%를 정부가 뒷받침한다.

또 만 8세 이하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대상으로는 최장 2년까지 임금 삭감 없이 오전 10시~오후 4시 유연근무를 할 수 있는 '더불어돌봄제도'도 추진한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급여지원 수준을 통상임금의 60%에서 80%로 상향해 경제적 부담도 덜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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