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4강 리더십 특집] 美 지도력 공백 파고드는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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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8-06-2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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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광양회' 버리고 대외팽창정책 추진

  • 국제사회 우려에 인류 공존·공영 선회

  • 무역전쟁 격화, 반미투사 이미지 확보

  • '中 우선주의' 유혹 떨칠 수 있나 우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갖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 때부터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를 외교 정책의 최고 덕목으로 삼아 왔다.

'유소작위(有所作爲·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룬다)'는 도광양회와 대구를 이룬다. 

'조용히 경제 발전에 매진하며 실력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장쩌민(江澤民) 집권기에도 그대로 유지됐고 후진타오(胡錦濤) 대에 와서 '화평굴기(和平堀起·평화적으로 일어선다)'로 살짝 변형됐지만 함의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인생 역정이 도광양회다. 1970년대 초 하방(下放·지식인을 농촌으로 보내는 조치)을 계기로 전면에 나서는 것을 자제하며 내실을 다져 왔다.

혁명 원로였던 부친 시중쉰(習仲勳)의 정치적 입지가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 등을 거치며 부침을 겪는 것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던 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한 계단씩 차근차근 위로 올라 2007년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낙점되고 이듬해 국가부주석을 맡은 후에도 시 주석은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너무 존재감이 없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대국' 의식 감추고 '국제' 공조로 선회

시 주석의 변신은 중국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뒤부터 시작됐다.

2012년 11월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되고 2013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국가주석에 취임한 시 주석은 외교 노선의 변경을 알린다.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고,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국제 문제에 대처하는 '신형 대국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주요 2개국(G2) 위상에 걸맞게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새로운 외교 방침에 대해 '주동작위(主動作爲·제 할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집권 이후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구상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 대외 팽창을 지속했다.

이 같은 정책으로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강화되는 만큼 주변국의 불만도 커졌다.

미·중 갈등이 상존하는 가운데 북한과의 관계도 역대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북한의 핵 도발과 중국의 대북 제재 참여로 서로 간의 불신이 극에 달한 탓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일대일로 추진에 따른 국익 침해를 호소했고, 유럽연합(EU)은 중국의 기술 탈취에 불만을 표하며 견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인도와의 국경 분쟁이 빈번해졌고, 호주는 자국 내 중국계 기업인들의 스파이 활동 의혹을 제기하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갈수록 고조되는 '중국 위협론'을 불식하기 위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중국의 외교 전략도 변곡점을 맞았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18차 당대회에서 연임에 성공한 시 주석은 '신형 국제 관계'와 '인류 운명공동체'를 새로운 화두로 제시했다.

시 주석은 당대회 업무보고를 통해 "상호 존중과 공평·정의, 협력, 상생이 신형 국제 관계의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또 업무보고 중 인류 운명공동체라는 표현을 10차례 이상 언급하며 일방 국제사회의 공존·공영을 모색하는 데 중국이 주도적으로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맞서 국제사회 대변" 강조하지만···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국제 사회가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던진 화두는 레토릭(외교적 수사)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의 이익만 챙기겠다는 트럼트 대통령과 달리 함께 번영을 이뤄 나가자는 시 주석의 메시지에 국제 사회가 공감을 표한 것이다.

미국의 도발로 발발한 미·중 무역전쟁은 시 주석에게 '투사'의 이미지까지 더해줬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 달러 달성과 샤오캉(小康·중산층) 사회 진입을 위해 안정적인 경제 환경이 절실한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미국이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정보기술(IT) 제품에 25%의 관세를 매기는 안을 확정한 데 이어 2000억 달러 규모의 상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경고하자 중국도 더 이상 저자세로 일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 싸울 생각이 없지만 무역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며 "미국이 전쟁을 원한다면 우리도 함께 갈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미국이) 습관적으로 몽둥이를 들고 협상에 나서지만 중국에는 쓸모없는 일"이라는 원색적인 논평까지 나왔다.

중국 관영 매체는 "미국은 중국 외에 EU·캐나다·멕시코, 심지어 (우방인) 일본과도 갈등을 빚는 등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반(反)트럼프 전선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시도는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무역 분야의 경우 일본이 중국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올해 들어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문제도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에 유리한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북·미 대화 초기에는 '차이나 패싱' 논란이 불거졌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개월 동안 세 차례 방중하면서 중국 역할론이 확고해졌다.

시 주석은 북한을 지렛대 삼아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고, 한반도 내 중국의 지분을 유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다만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움직임이 포착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미·중 경쟁을 의식해 국제 사회의 대북 압박 대열에서 이탈한다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과 다를 바 없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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