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쥐만 잘 잡으면…권력구조 개선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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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8-05-30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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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사회주의 경제 강국 건설 선언

  • 베트남 모델 선호, 中노하우 적극 습득

  • 세습권력 우상화, 시장경제 발전 장애

덩샤오핑(왼쪽부터)과 호찌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바이두 캡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1년 상하이를 방문해 "천지가 개벽했다"고 감탄했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중국식 개혁·개방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방중했을 때다.

하지만 핵 개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2002년 2차 북핵 위기를 초래한 뒤 이듬해인 2003년 핵확산금지조역(NPT) 탈퇴를 선언했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진 2007년 북한은 김영일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베트남에 파견했다. 대표단은 베트남이 1986년 도입한 도이머이(쇄신) 정책의 결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뒤 귀국했다.

김정일의 대외개방 의지는 2008년 핵실험과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퇴색했다. 2009년에는 6자 회담 테이블마저 걷어차 버렸다.

올해 들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경제 발전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부친과 달리 주변국의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발신 중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정치사상 강국, 군사 강국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선 현 단계에서 사회주의 경제 강국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는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북한 경제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중국과 베트남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경제 발전의 첫걸음을 뗐다.

김 위원장은 중국식 개혁·개방보다 베트남식 모델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판문점 도보다리를 산책하며 베트남 얘기를 많이 나눴다는 전언이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 확인은 없었다.

한 중국 소식통은 "북한 내부적으로 개혁·개방보다 혁신과 조정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며 "국력이나 국제사회 내 지위 등을 감안할 때 베트남식 모델이 북한에 적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동부 연안을 시작으로 점진적인 경제 발전을 추진해 온 중국보다 개방을 선언한 뒤 일거에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베트남의 전철을 밟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그렇더라도 북한 입장에서 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파트너다. 북한 내 경제특구 5개, 경제개발구 22개 등 27곳의 대외창구 중 절반에 가까운 13곳이 북·중 접경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의 자금과 인력, 자원을 받아들일 문이다.

북한이 파견한 친선 참관단은 지난 14일부터 11일간 중국에 머물며 경제 발전 노하우를 습득하는 데 주력했다.

베이징(인프라·농업)과 상하이(금융), 항저우(IT), 닝보(물류) 등 향후 북한 경제에 꼭 필요한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둔 지역만 골라 발을 디뎠다.

정지융(鄭繼永) 중국 푸단대 교수는 "단기간 내에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김 위원장도 자신감을 갖게 됐을 것"이라며 "내부 실정에 맞는 북한 특색의 혁신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유독 중국이나 베트남의 사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산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 발전에 성공한 유이(有二)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중국 공산당처럼 북한 노동당의 영도를 중심으로 인민의 생활을 높여 나가는 게 김 위원장의 목표일 것"이라며 "현 체제 유지가 대외개방의 전제"라고 분석했다.

다만 중국·베트남과 북한의 통치 구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당 1당 독재 국가이지만 집단 지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와 결별한 덩샤오핑(鄧小平)은 집단 지도 체제를 도입하며 개혁·개방의 불을 댕겼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집권 이후 희석된 측면이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임기가 유한한 집단 지도 체제가 유지되는 모양새다.

베트남도 공산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고 있다. '국부' 호찌민 때부터의 관례다.

북한은 권력 세습과 개인 우상화가 체제 유지의 토대다. 절대 권력에서 오류는 있을 수 없다. 실패를 통해 경험을 축적하는 시장경제의 속성과 배치된다. 2010년 화폐 개혁에 실패한 북한의 장관급 인사는 공개 처형을 당했다.

북한이 비핵화에 따른 경제 발전에 성공하려면 중국식 모델과 베트남식 모델을 저울질하기에 앞서 정치 구조의 유연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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