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노무현과 이명박 그리고 ‘피의사실 공표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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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훈 기자
입력 2018-05-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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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9주기다. 햇수로 9년.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재판도 받지 않은 채 검찰 수사 중에 생을 마감했고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과연 누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의 합작품이 아닐까. 그 중에서도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 공표죄’의 사문화는 당시 ‘검언유착‘을 더욱 부추긴 측면이 있다.

당시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억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확인 안 된 사실을 언론에 흘렸고, 언론들은 받아쓰기에 바빴다. 매일 같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당시 집권당 대표가 '이런 수사 처음 봤다'면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해당 보도에 노 전 대통령이 극심한 좌절, 절망, 무력감을 느꼈다는 말이 그의 주변에서 나왔다. 보도 이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노 전 대통령은 투신자살했다.

특히 한 언론은 기획시론이란 코너를 만들고 학자들을 동원해 ‘노무현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란 칼럼을 시리즈로 제작하기도 했다. 피의사실을 공표한 검찰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고, 언론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9년이 지난 지금도 피의사실 공표는 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 전 대통령 수사가 한창일 때 한 검찰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국정원 자금 관련 중 원세훈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통해 10만 달러를 받은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고 말했다.

또 이 전 대통령의 큰형인 이상은씨 명의 도곡동 땅 판매대금 중 67억원을 논현동 사저 건축대금으로 사용한 사실도 검찰은 언론에 흘렸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로 향후 재판여부에 상관없이 이 전 대통령은 ‘뇌물 대통령’이 됐다. 

피의사실 공표죄 사문화의 본질적인 문제는 헌법상 보장된 ‘무죄추정의 원칙’과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데 있다. 수사 선에서 검찰과 언론의 ‘모욕주기’와 ‘망신주기’를 당한 상태에서 피고인의 재판은 사실상 ‘패소’에서 시작하는 싸움이다.

피의사실 공표로 기소된 검사가 10년 간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검찰이 수사 중 파악한 내용으로 피고인을 망신주기보다는 삼권분립의 한 축인 법원의 판단을 받게 하는 것이 법치주의 보루로서 최소한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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